훈민정음 창제 과정이 숨기고 있는 충격적 사실을 79통의 편지로 엮은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역사소설!
훈민정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세자빈 봉씨의 동성애 비밀 모임(자선당 봉선화 모임)과
새 왕좌를 꿈꾸는 정치적인 집단의 숨막히는 승부!
지난 온한글 책꽂이에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편찬한 책 리스트를 소개해드렸는데요.
오늘은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에 얽힌 흥미진진한 스릴러 소설을 소개코자 합니다.
바로 '훈민정음의 비밀' 인데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만큼 여간 흥미롭지 않습니다.
훈민정음에 어떤 무시무시한 음모가 서려 있는지 역사속으로 고고!!!
'훈민정음의 비밀'의 간략한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정식 궁녀가 되기 위해 관례식(신랑 없는 혼례식)을 올리기로 되어 있던 한 궁녀가 폐세자빈 봉씨의 거처였던 자선당에서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나체로 발견된 이 궁녀의 옷가지 속에서 세자빈 봉씨의 이름으로 쓰인 편지가 발견되죠.
죽은 세자빈의 원혼은 억울함을 풀기 위해 다시 산자의 몸을 빌어 돌아왔으며, 앞으로 남자의 자리에 여자들을 앉힐 것이며, 이로 인해 여인들이 죽어간 숫자만큼 남자들이 죽어나갈 것이라는 믿기 어려운 무시무시한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시신을 부검했던 내의녀는 내명부의 심상치 않은 술렁임을 감지하고 수사에 나서게 됩니다.
중전과 세자빈이라는 내명부를 다스리던 최고 자리들이 비어 있던 특이한 상황!
자선당 봉선화 모임이라는 궁녀들의 동성애 비밀 모임에 대한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하며
애증과 관계의 그물들이 궐안에서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왕권과 신권의 미묘한 대립은 훈민정음 창제 이후 커다란 충돌로 이어지고,
“훈민정음을 널리 쓸 방안을 찾으라”는 별시 책문의 장원급제자가 자격루 물받이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궁녀와 급제자의 죽음!
연관 없어 보이는 두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세종은 밀지를 내려 집현전 박사를 수사관으로 임명했으나... 잇달아 의문스런 죽음과 사건이 계속 일어납니다.
죽음의 유일한 단서는 시체 곁에 놓였던 훈민정음 필사본!
필사본을 둘러싸고 훈민정음을 만들고 널리 쓰고자 하는 집현전의 7학사와
한문을 권력의 언어로 유지하고자 하는 반언문 7인회의 대결이 펼쳐집니다.
궁궐의 음지와 양지를 넘나들며 필사본에 담겨 있는 죽음의 비밀을 풀어가는 내의녀와 집현전 박사.
두 사람 앞에 서서히 드러나는 거대한 음모의 전말은 뜻밖에도…….
'뜻밖에도...' 그 다음이 무척 궁금해지는 줄거리 소개는 여기까지!
줄거리부터 흥미롭지 않나요?
79통 편지 속에 얽힌 인물들의 목소리와 시선
'훈민정음의 비밀'은 세종대왕 당시의 궁궐 안팎에서 욕망하고 꿈꾸고 다투며 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왕과 왕비, 세자와 세자빈, 벼슬아치와 내명부의 이름난 이들. 그리고 묵묵히 제 역할을 하면서 역사의 바퀴를 굴려간 이름 없는 백성들과 궐의 빛나는 자리의 뒤꼍에 소리 없이 버티어 섰던 궁녀들.
작가의 상상력으로 새 숨을 받은 인물들의 편지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의 물결을 일으키며 살인사건 안에 숨겨진 비밀스런 진실들을 속삭입니다.
자선당 건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궁녀들의 비밀스런 사랑 이야기와 훈민정음과 한문으로 대변되는 문화적 권력을 차지하려는 암투가 마치 살아있는 이들의 육성을 듣는 것 같이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이미지들로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놓습니다.
왕과 신하, 남자와 여자, 양반과 상민 등 적과 아군이 구별되지 않는 숨겨진 관계의 그물 속에서 모두가 비밀스런 자신의 마음을 편지로 새겨내고 있습니다. 중심을 관통하는 커다란 사건의 줄기는 궐 안의 숨겨진 주인인 내명부 여인들의 외로운 삶과 슬픈 사랑, 왕의 권위로 대변되는 권력을 욕망하는 사대부 남성들의 치열한 다툼으로 갈라집니다.
궐의 안과 밖에서 펼쳐지는 사건마다 이면에서 출렁이는 인물들의 그림자를 볼 수 있습니다. 대왕세종이 개혁하고자 했던 조선의 권력구조와 정치와 무관한 존재처럼 살아야 했던, 혹은 그렇게 역사화 된 여성들의 정치적 현실이 소설 속에서 감춰진 문양을 드러내는 것이죠.
결국 이 소설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내면에 비추어진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들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김다은 작가는 '훈민정음의 비밀'을 통해 구중궁궐 속 여인들이 주고받는 은밀한 편지 속의 대화를 통해,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정서 그리고 기운 등을 매우 촘촘하고 세밀하게 복원하였습니다. 서간체 소설이 갖는 힘은, 과장과 왜곡을 제어하는 사실성의 복원을 통한 리얼리티의 확보에 있는데요.
작가는 장편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서간체 소설을 의식적으로 실험하고 있는 것으며, 이는 한국 문학이 갖는 외연을 확장하는 매우 귀중한 노력이 아닐까 합니다.
다음은 감질맛 났던 줄거리 소개가 아쉬웠던 분들을 위한 보너스~
마마님, 여영의 죽음 때문에 놀라셨지요. 쇤네의 불찰이 크지만, 마마님의 지혜로운 지시에 따라 무리 없이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마마님, 궐내 누가 이런 큰 일을 처리하겠습니까? 중전 마마도 승하하셨고, 세자빈 마마도 계시지 않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주상 전하께서는 소갈증에 눈병까지 나셔서, 세자 저하가 첨사원에서 정사를 대신 돌보고 있습니다. 세자 저하가 곧 왕위를 이어받을 것을 염두에 두고 동궁의 엄 상궁이 상전 노릇을 하려고 듭니다.
하지만 우리 내명부의 육백여 명의 나인들을 총괄하는 분은 바로 제조상궁 마마님이 아니겠습니까? (……) 엄 상궁은 평생 세자 마마를 모신 사람입니다. 세자 저하의 마음과 느낌을 누구보다 잘 읽어내는 사람입니다.
물론 여영은 말도 별로 없고 궐 밖에 연고도 없고 세자 저하의 마음에 들 그런 미모를 지니지도 않았지만, 뛰어난 미모의 어떤 세자빈이나 궁녀에게도 마음을 주시지 않던 세자 저하시니 그 속내를 어찌 알겠습니까. (본문 50~52페이지)
자네, 궐 안에 도깨비가 사는 것 아는가. 궐내에서 도깨비장난을 심심찮게 볼 수 있지. 자고 일어나면 빗자루, 짚신, 부지깽이들이 제자리에 있지 않고 이리저리 옮겨져 있기 예사 아니던가. (……)
도깨비는 장난을 좋아해서 신발을 섞이도록 하거나 바꾸어 놓지. 도깨비는 신발만 바꾸어 놓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바꾸어 놓는다네. 이 방에 자야할 사람이 아침에 깨어나면 저 방에 있고, 저 방 친구가 이 방에서 잠을 깨기도 하는 것이네.
무슨 말인지 자네도 이해할 것이네. 나와 자네, 우리도 마찬가지였네. 각자의 방에서 밤을 보내지 않고 이 방 저 방으로 옮겨 다녔지. 당시 세자빈 봉씨는 자선당에 은밀하게 나인들을 불러들였네. 자선당에서 손톱에 봉숭아꽃물을 들인다는 명분으로 다들 모여서 놀았네. (……) 꼬리가 길면 잡히게 되어 있지 않은가. (본문 285~287페이지)
김문이 7인회에게 - 1448년 6월 2일
이번 문과 초시에서 주상 전하가 내신 책문이 무엇인 줄 들으셨겠지요. 무서운 분이십니다. 태종 상왕 전하께서 손에 피를 묻히시며 개혁을 하셨다면, 지금의 주상 전하는 손에 전혀 피를 묻히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뒤집는 일을 계획하신 것입니다.
조선의 기반을 이루는 사대부들을 흔들어 버리겠다는 의중이 아니라면 그런 책문이 나올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문과 초시의 책문에 “언문을 널리 쓸 방안을 찾으라”니요.
(……) 우리 7인회가 만들어진 지 이미 4년이 되었습니다. 훈민정음 반대 상소 사건은 우리 일곱 사람을 곤경에 빠뜨렸지만, 오늘 있었던 언문 과거시험은 앞으로 조선의 전 양반들을 위기로 몰아넣게 될 것입니다. (……) 며칠 후에 있을 7인회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도록 미리 좋은 대책을 세워 보시기 바랍니다. (본문 137~14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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