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선
이화여대 문헌정보학과 졸업
캠퍼스저널 취재부 기자
끄레어소시에이츠, 정신세계사 디자이너
2000년 design Vita 설립, 현재 디자인 실장
글을 쓴다는 것과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일맥상통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편집 디자인 작업을 하거나 북 디자인을 하는 경우에는 더더군다나 글과 디자인이 하나의 바퀴로 굴러가야 결과물이 좋을 수밖에 없죠.
비따 디자인의 김지선 실장은 그런 면에서 어쩌면 비전공자이기 때문에 북 디자인을 다른 시각에서 더 깊게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디자인에 대해 그리고 그 과정에 대해 속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ㄱ
국어 독립 만세_유토피아 / 국어 만세, 한글 만세, 세종대왕 만세, 한글을 표현하느라 애쓰는 사람들 모두 만세
ㄴ
뇌_열린책들_뇌가 없다면? / 가슴이 없다면? 마음이 없다면?
ㄷ
도쿄이야기_이산 / 도쿄에는 어디든 서점이 있고, 사고 싶은 책이 있고, 맛있는 음식이 있고, 걷고 싶은 골목길이 있고, 꼭 보고 싶었던 전시가 있고, 나를 깨우는 자극이 있다.
ㄹ
릴케와 한국의 시인들_고려대출판부/ 릴케는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 시인다운 죽음이다. 디자이너다운 죽음은?
ㅁ
문명은 디자인이다_김영사 / 마주 보는 한일사_사계절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디자인과 통하는 길은 마주보기.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보기.
ㅂ
변신_인디북 / 변하고 또 변하는 시대에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은 존재한다.
ㅅ
삶의 향기 몇 점:황동규산문집_휴먼앤북스 / 삶의 향기는 흔적과 상처다.
ㅇ
예찬_현대북스 / 예찬한다. 모든 빛나는 것을, 살아있음을...
ㅈ
지금도 쓸쓸하냐_샨티 / 지금 당신도 쓸쓸하냐? 쓸쓸함도 손님이다. 지극 정성으로 대접하라. 너에게 온 손님이니 때가 되면 떠날 것이다.
ㅊ
천천히 읽기를 권함_ 샨티 / 천천히 읽기, 천천히 숨쉬기, 천천히 생각하기, 천천히 살기, 천천히 디자인하기?
ㅋ
코_정신세계사 / 코로 숨쉬고 계십니까? 코~ 잠들고 계십니까?
ㅌ
타오_운디네 / 타오 도교의 근본 교리이자 우주의 근본 원리 도를 믿으십니까?
ㅍ
핑계_21세기북스 / 폭력의 기억,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_양철북 평화주의자 예수_샨티
핑계는 무덤을 만든다. 무엇이든. 폭력은 잃어버리게 만든다. 그것이 무엇이든. 평화는 살게 만든다.
또 그것이 무엇이든.
ㅎ
황무지에서 사랑하다_동방미디어 / 황무지에서도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온한글 현재 운영하고 있는 회사명 ‘vita’는 무슨 뜻인가요?
김지선 라틴어로서, ‘vitamin’의 어원이 되는 말입니다. 그래서 라틴 발음대로 ‘비따’로 읽습니다. 비따는 ‘삶, 생명, 일생, 살아있는 것, 세상, 귀중한 사람, 애지중지하는 것’이란 의미를 가집니다.
디자이너로서의 삶은 제게 육체적이 아닌 정신적인 새로운 탄생과도 같습니다. 디자인 또한 일생동안 늘 살아있는 사람들과 세상을 위한 일이기도 하구요. 제게 vita란 말은 곧 “내가 생각하는 design”이란 의미이기도 합니다.
온한글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디자인을 하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김지선 중고등학교 시절에 교지를 만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책 만드는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죠. 그래서 책과 가까운 과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입학 당시에는 도서관학과였어요. 그런데 입학 후 책과 가깝지만 만드는 일이 아니다보니 선택에 회의가 왔었죠. 학교를 그만두고 재수를 할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그때 선택에 책임을 지려면 일 년은 열심히 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여 교지편집실에 들어가 교지, 과학회지, 동창회지를 만들면서 학교생활의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졸업 후 대학생들을 위한 잡지사 캠퍼스저널의 취재부 기자가 되었고, 1년간 기자생활을 하다가 남들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해야 하는 기자가 적성에 안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을 새워서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좋아하는 책과 그림이 행복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이 북디자인이라고 생각해서 진로를 바꿨습니다.
캠퍼스저널의 초기 아트디렉션을 서기흔 선생님이 하셨어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선생님께 배우고 싶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함께 간 부장님이 끝까지 같이 계셔서 그 말은 차마 못하고, 마치 취재를 온 것처럼 이것저것 마음에도 없는 것들만 물어보고 왔었죠. ^ ^;
온한글 전공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겪었던 어려움은 없었는지?
김지선 일을 하면서 어려움이 있었다기 보다는 의논하거나 정보를 공유할 상대가 없었다는 것이 참 힘들었어요. 전태일 열사가 대학생 친구 한 명만 있었으면 했다면, 저는 디자이너 친구가 절실했어요. 그 절실함이 일 속으로 더 파고 들게 했고, 편집자와 소통하게 만들었어요. 저는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편집자다’라고 이야기하죠.
제 주위에 우수한 편집자들이 많았어요. 그들이 늘 고맙죠. 지금도 함께 일하고 있구요. 그래서 비따를 하면서 전공자가 아니거나,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을 가능한 더 뽑으려고 했어요. 나와 같은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과 서로 힘이 될 수 있도록,, 지금도 디자이너 선배나 동료가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요.
온한글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업들은 무엇입니까?
김지선 신영복 선생님의 ‘나무야나무야’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었어요. 신문에 연재되고 있던 신 선생님의 ‘이어도의 아침’ 원고를 아는 분이 팩스로 보내주었는데, 그 글을 너무 좋아해서 몇 번이나 따라 적어서 읽고 또 읽었죠. 그런데 그 책의 디자인을 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았겠어요. 작업물을 퇴근하면서 가져가서 보고 또 보면서 안고 잤어요.
그때는 행간이 지금보다는 많이 좁을 때였어요. 저는 어떻게 해서든 선생님의 글을 천천히 읽게 하고 싶었어요. 글자와 글자 사이에 담긴 생각을 읽을 수 있게 최대한 행간을 늘리고, 과부글자(단어 중 글자가 홀로 떨어지는 것)가 없도록 뒤흘리기를 했어요. 여백 속에 생각이 읽히고, 또 담기도록,,
표지 시안작업을 하면서 신 선생님의 글씨 중 ‘나무야나무야’라는 글씨가 좋아서 스캔을 받아서 앉혀 놓았어요. 제목이 뭐가 되든 선생님에게 이 글씨 느낌으로 새롭게 글씨를 받을 생각이었는데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구요. “내가 글씨를 써주면, 항상 내가 쓴 것 중 세 번째로 마음에 드는 것으로 결정되곤 했죠. 그것이 너무 속상했었는데, 디자이너 분도 그렇죠. 그러니 제일 마음에 드는 것으로 하세요. 그리고 제목도 ‘나무야나무야’로 하죠. 좋네요.”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나무야 나무야’가 되었습니다.
그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디자인을 하게 되었는데, 감옥에서 편지지로 사용되는 거친 종이 느낌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인쇄 가능한 제일 거친 용지를 표지로 썼죠. 10년이 넘는 지금도 두 책이 아직 그 디자인이에요. 서점에 가면 반갑죠.
또 하나는 ‘한국소설 베스트’입니다. 이 책은 시리즈입니다. 시리즈들은 모여 있어서 존재감과 무게감을 나타낼지는 모르나, 새로 출간되어도 각각의 특성이 살지 않고 그 속에 묻힌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 문제를 고민하다 ‘일러스트를 쓴다는 것(내용을 설명하지 않고 분위기만 나타내는), 포켓북이라 책이 작은데도 제목과 저자는 단행본에 비해 크게(한국소설 베스트니만큼 어떤 것보다 저자 이름이나 소설명이 가장 큰 디자인요소라는 생각이 들어서)’라는 원칙만 지키고 나머지는 그 책의 특성에 맞추어 다르게 하는 시리즈를 만들었습니다.
제목 서체도 다르고, 색도 다르고, 크기도 모두 다릅니다. 어떤 책은 저자가, 어떤 책은 제목이 더 큽니다. 제목이 책의 70%를 차지하는 것도 있구요. 시리즈에 대한 고민들은 디자이너에게 아주 좋은 기회이고, 도전일 수 있습니다. 모여 있어도 혼자 있어도 차별화될 수 있는 그런 시리즈를 만드는 것은 어느 디자이너에게나 끝나지 않는 숙제입니다.
온한글 최근에 진행한 프로젝트 중 기억에 남는 무엇입니까?
김지선 홍대 앞 상상마당에서 전시한 ‘한글, 시간에 말을 걸다’에 참여한 것입니다. 이 전시는 작년 ‘한글, 책에 말을 걸다’에 이은 두 번째 전시입니다. 캘리그라퍼 강병인 선생님과 북 디자이너 6명이 공동으로 작업한 전시죠. 책의 형태적인 한계를 벗어나는 실험을 하는 것은 아주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좋은 내용이 종이컵이나 캘린더, 테이프, 포장지, 엽서, 박스 등 일상에서 필요한 물건으로 다양하게 디자인되어 나온다면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도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죠. 벽지나 현수막, 건물에도 쓰여질 수 있구요. 앞으로도 계속 디자이너들이 이런 작업을 더 많이 해서 이어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사무실 이사와 겹쳐서 더 만족할 만큼 작업을 못한 것과 한글날 기념으로 기획된 전시인데 한글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있지 않았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09년에는 자음을 시작으로 공부를 시작한다는 의미로 포스터를 만들고, 앞으로 10년간 한글날 기념 포스터를 만들면서 한글에 대한 공부와 고민을 하려 합니다. 내년에는 개인으로만 그치지 않고 vita 디자이너들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자 하구요.
온한글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지?
김지선 굿판이 끝나면 형식을 떠나 참여한 사람들이 즉흥적으로 자기가 가진 기량을 마음껏 신명나게 벌이는 판이 있다고 합니다. 책을 통해 내가 디자인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그 판을 벌이고 싶습니다.
우선은 건축에서 리노베이션(renovation) 처럼 책의 리크리에이션(recreation) 즉, 재창조를 꿈꿉니다. 이미 나온 책들 중에서 디자인, 제목, 마케팅이 잘못되어 좋은 책임에도 사장된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단 그 책들에 다시 생명을 주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출판사에서 이런 작업들은 이루어지고 있어 반가운 일입니다만, 아직 살려내야 하는 책들이 많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만나면 감명 깊게 읽은 책들을 물어보거나 추천할 책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책의 소재나, 크기, 형태를 변화시켜 학습도구 뿐 아니라 놀이도구, 혹은 더 발전된 것으로 실제 사용될 수 있도록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온한글 북 디자인을 하고 싶은 후배에게 이르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지선 인내는 짧고 결과는 길지요. 지금 하는 일이 힘이 들더라도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가 세상에 나왔을 때 그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디자인은 또 에너지입니다. 디자인을 할 때의 생각, 느낌, 마음 이 모든 것이 사실 에너지의 형태로 담긴다고 믿습니다.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일을 하는지는 그래서 중요하죠. 좋은 열매를 얻고 싶다면, 당신이 우선 좋은 나무가 되어 보세요.
온한글 끝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김지선 작년 전시 때 이청준 선생님의 ‘당신들의 천국’을 작업하면서 쓴 글을 질문에 대신하겠습니다.
점을 찍는다.
이 점은 내가 만난 사람들이고,
모두 다른 그들의 열망이고, 천국이다.
그것을 깨닫는데 시간이 그리도 갔다.
또 점을 찍는다.
이 점은 서로 번져 하나가 되고 싶으나 하나가 되지 못한다.
아마도 인간의 사랑이
두 점을 하나로 만들어 줄 것이나
그것은 영원하지 않다.
또또 점을 찍는다.
여기에 내가 만난 당신이 있고, 내가 있다.
나의 천국이 있다. 우리들의 천국이라 믿고 꾸었던 꿈이 있다.
그 속에 늘 아파하던 내가 있다. 당신이 있다.
비록 내가 꾸었던 천국이 당신들의 천국일지라도
난 오늘도 점을 찍는다.
함께 천국을 꿈꾸었던 그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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