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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한글이 만난 사람

[인터뷰] 소리문자가 들려주는 새로운 동화 -<소리나는 한글 나무>의 저자 정태선



한글이 과학적인 체계를 가진 소리 글자라는 사실이 아동문학계에서는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한다.
한글 자소의 소리 원리를 동화로 구현한 <소리 나는 한글나무>도 그중 하나다.
어린이 언어교육 프로그램 개발자이자 아동문학가로 활동 중인 정태선 씨가 들려주는
총체적 언어교육과 한글학습모형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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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나무라는 전혀 새로운 나무를 등장시킨 것도 인상적인데, 그것도 소리가 나는 나무라니 더욱 흥미롭습니다. 많고 많은 소재들 중에서 한글을 소재로 동화를 쓰시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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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여간 가족들이 미국에서 생활할 때 어느 날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에 갔다가 발견했던 한 책이 영감을 주었습니다. <Korean Grandmother>라는, 1800년대에 한국에 선교사로 왔었던 사람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를 그 딸이 쓴 책이었는데, 서양의 경우 스토리텔러라 하면 그 사회에서 어느 정도 권위 있는 남자 원로의 역할이었던 것과 다르게 오히려 남존여비사상이 강했던 당시 한국 사회에서 할머니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라면서 그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하늘에서 내린 글자’라는 제목의 이야기를 읽어보니, 손자에게 천자문 공부를 독려하던 할머니께서 손녀를 가리키며 “너도 옥자처럼 한글을 배우면 참 쉬울 텐데…” 하는 말과 함께 들려준 이야기가 흥미를 끌었습니다.
 내용인 즉, 세종대왕께서 한글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몰래 꿀단지와 붓을 들고 나가 나뭇잎에 한글 자모를 쓰시고는 애벌레가 그 모양대로 갉아먹게 된 나뭇잎들을 근거로 “보라, 하늘에서 내린 글자다.”라고 하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소리 나는 한글나무>의 캐릭터 애벌레 ‘깨치’는 이미 그때부터 잉태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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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그 이야기만으로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바로 공감할 수 있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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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미국 아이들이 파닉스 수업만 1년 여 동안이나 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어요. 우리나라 아이들이 한글을 공부할 땐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잖아요.
 배우기 쉽다는 것은 그만큼 그 문자가 체계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은 한글이 소리글자라는 사실과 관계가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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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동화책에 담아내려다 보면 자칫 교훈적인 방향에 치중해 흥미를 끌기 어려울 것이라는 부담감은 없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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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동화책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미국생활을 하는 동안 동화책을 구상하면서 여러 가지 자료수집을 했는데, 처음엔 미국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민주주의에 관한 덕목들을 동화책으로 자연스럽게 가르치는 것을 보면서 저도 가치관 교육에 관한 책을 구상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돌아와서 제 아이들이 한국 학교 수업에 적응하느라 10kg씩 빠지는 것을 보니 그런 구상들 보다는 ‘학습은 이렇게 시켜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학습을 위한 동화’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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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을 위한 동화라고 하면 구체적인 학습목표와 단계별 활동 등을 메인으로 하면서 재미요소로서 관련 이야기를 곁들이는 것들이 대부분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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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말 그대로 ‘학습을 위한 동화’로 보조역할을 하는 동화들이 대부분이죠. 하지만 <소리 나는 한글나무> 시리즈와 예측동화 <BLB>는, 학습을 목표로 하고 있는 점은 같지만 동화가 학습의 보조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동화를 중심으로 총체적 언어교육을 직접 시도합니다.
 요즈음 나오는 미국 영어교과서를 보면 교과서인지 동화책 모음집인지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의미있는 언어활동에 빠트려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죠. 이런 맥락에서 처음으로 언어를 배우는 시기부터 동화를 통해서 우리말과 글을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예측동화 <BLB>와 <소리나는 한글나무> 시리즈를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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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B(Big Letter Book) 동화도 제목으로 보아 언어학습동화인 것 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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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언어교육에 있어서 읽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는 방법이지만, 영어의 경우 파닉스 수업을 먼저 해주지 않으면 안될 만큼 그 문자체계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글은 글자의 체계 자체가 우수해서 더 빨리 적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개발한 책이 BLB(Big Letter Book) 동화입니다. 단순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한 낱말만 붉은 색으로 강조하고 흑백 일러스트레이션 중 그 낱말과 대응하는그림에만 색깔을 입혀 글자를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를 마련한 책으로, 이 책은 유치원에서 특히 반응이 좋아 워크북과 함께 수업에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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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언어교육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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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기존 한글 학습용 교재들의 학습방법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행동과학자들의
이론에 바탕을 둔 교재들은 자질, 문자, 문장의 순으로 학습하는 모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 어른들이 ‘ㄱ, ㄴ, ㄷ’부터 배우거나 ‘가갸거겨’부터 배우던 방법들이 그러했죠. 이후 통문자 학습법이 등장해 자소를 먼저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낱말카드로 바로 단어를 익혀 나가는 것이 우리 한글 학습법의 대세가 되었어요. 그런데 낱말카드에 의한 통문자 학습법은 원래 언어학습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정상인들보다
단순 암기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공략해 언어학습을 시키는 모형이었습니다.
이를 언어학습 장애가 없는 보통의 영아에게 적용해보았더니 영아들이 놀랍게도 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받아들여져 우리나라에서 낱말카드 학습인 통문자 학습이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언어교육과 총체적언어교육관점에서는 정상적인 영아들은 더 높은 고도의 언어 사고력이 잠재되어 있어서 그들에게 알맞은 동화가 개발된다면, 충분히 동화부터 읽어낼 능력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개발된 동화가 바로 예측구조를 갖춘 ‘예측동화’입니다. 총체적언어교육법은 이렇게 어린 아이들이 아직 언어표현은 미숙해도
사고덩어리는 이미 가지고 있다는 데 베이스를 두고 있습니다. 구조적으로 다음 이야기의 예측이 가능한 연결고리가 있다면 동화책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언어학습까지 가능해진다는 논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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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야기 속에서 학습적인 단서를 치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제공해야 할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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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동화책은 일단 재미있는 이야기가 이끌어 가는 모습이어야 하고, 어떤 학습적인 목표나
단계는 그 이야기 밑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해야 합니다.
 학습적인 느낌이 표면화되면 동화책이라고 보기 보다는 교재로 인식되기 십상일 테니까요. 그래서 예측동화는 작가의 문학적 소양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장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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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나는 한글 나무>의 이야기 구조는 어떤 식으로 전개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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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동화 <BLB>로 우리말과 글을 깨우친 아동들이나, 통문자학습으로 글자를 깨우친 아동들은 공통적으로 맞춤법이나 철자법 등을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애벌레 ‘깨치’의 경험과 모험을 통해 한글의 제자원리를 자연스럽게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날 나뭇잎에 어떤 모양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갉아먹고 그 모양대로 누워 다시 잠을 청하는데 자꾸 어떤 소리가 나곤 해서 다른 나뭇잎으로 옮겨 갑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먼저와는 다른 모양이 새겨져 있고 갉아 먹었더니 다른 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리고 보니 나뭇잎들마다 온통 다른 모양들이 새겨져 있고 그것들을 갉아먹고 나면 제각각 다른 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그러다가 나무에서 떨어지면서 올라앉게 된 연꽃잎의 대롱을 빨아먹었더니 거기에서는 그 대롱의 모양에 따라 ‘아, 야, 어, 여’ 하는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즐거운 경험담을 들려주고 있어요.

 한글의 제자원리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면 <빗방울 글자놀이><자음 끼리끼리 모음 끼리끼리><친구야, 문장놀이 할까?><세종 임금님, 글자를 만들어주세요><한글로 하나 되어> 등으로 6권까지 단계적으로 이어집니다.
 마지막에는 애벌레 ‘깨치’가 나비가 되어 세계를 날아다니며 한글 자모를 떨어뜨려서 마침내 전 세계인들이 한글을 배우게 된다는 이상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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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제자원리를 모티프로 한 동화책이 만들어진 것에 대해서 출판계나 독자들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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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소리 나는 한글나무>가 처음 선보인 것은 잡지형식의 출판물에 연재되는 작품으로 서였고 <BLB> 동화와 함께 실렸었기 때문에 반응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느 신문사 산하의 출판사에서 독서운동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단행본 출간을 권했던 것을 보면 나름대로 가능성은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을 계기로 단행본으로 만들어지게 되었지만 출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소속 출판사가 옮겨지는 과정을 겪느라 제대로 마케팅을 해보지도 못했고, 그러다보니 그 후의 반응에 대해서도 체크해볼 여력이 없었습니다. 다만 책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고 특히 유치원 같은 곳에서는 전권을 주문하기도 하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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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출판사들과 경쟁하는 것이 불가피한 현실 속에서 개인 출판사가 한글학습동화라는, 아직은 불모의 영역으로 보이는 분야를 발전시켜 나가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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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사업가로서 안타까운 점은, 대형 출판사들이 연구진은 많이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심층적인 교육이론에 기반을 두지 않은 책들을 만들고 이를 헐값으로 공급하는 박리다매형 마케팅을 하고 있어 마침내 시장가격까지 형성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다가 자기소신으로 꾸려나가는 작은 출판사들이 문을 닫게 되고 나아가 우리 출판계가 무너질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자로서 안타까운 점은 우리 출판계의 경우 편집제작 등의 과정에서 작가료를 맨 나중에 정산하는 풍토가 고착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자를 제일 만만하게 대우할 것이 아니라 작가료를 우선적으로 챙겨주는 문화가 조성되어야 숨어 있는 인재들이 전업작가로 활동하게 되고 양질의 책을 만드는 데 공헌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제가 이 일을 계속 하고 있는 것도 책만으로도 생존할 수 있다는 철학을 보이고 싶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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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한글학습동화에 대한 사업과 연구를 계속 하실 계획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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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사업가가 되려 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젠 제가 감당해야 할 일이 되었으니 이미 만들어진 책들이 알뜰하게 팔리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도 저의 몫이겠죠. 또한 그 책들이 교육현장에서 최대한 잘 활용될 수 있는 수업안과 모델을 제시하고 싶어 지금도 현직 교사들을 위한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하고 있는 ‘책끼읽끼(책을 끼고 다니며 읽기)’ 운동도 계속할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한글학습동화에 대한 연구도 계속되어야겠죠. 어린이들이 한글을 빨리 터득해야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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