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소설이나 수필들도 많이 보지만, IT 관련 서적들을 가끔 읽다보니 번역서도 많이 접하게 되는 편입니다. 특히, 심심할 땐 IT영웅들의 무용담(?)을 풀어낸 수필 종류도 굉장히 재미있어요.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등 ‘팔팔한’ IT 영웅들의 통통튀며 재기발랄했던 이야기들을 읽고 있자면, 이전에 그만뒀던 IT분야 공부를 다시 하고 싶어질 정도에요. 그런데, 이런 번역서들을 잘 만나면 좋지만, 아니라면 영 읽기가 쉽지 않아요.
최근에는 애플이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의 엔지니어들의 에피소드를 모아놓은 ‘미래를 만든Geeks’(앤디 허츠펠트 지음, 송우일 옮김, 인사이트)를 관심읽게 읽고 있습니다. 당시에도 신선한 활어처럼 펄펄뛰는 그들의 재기발랄함 때문에 책장이 잘 넘어가는 편입니다만... 가끔 영~ 진도가 안나갈 때가 있어요. 특히 이런 문장 때문입니다.
래리는 애플리케이션 사이의 일관성을 옹호했고 매킨토시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기여를 많이 했다.(181쪽)
뭐 사실 특별히 어려울 것도 없는 문장입니다만... 영 읽기가 어색하더라고요. 이런 구절도 있더군요.
나는 퍼즐을 좋아한데다 고객의 틀에 박힌 비즈니스적인 관점에 굴복하고 싶지 않아서 제롬에게 말했다 (292쪽)
막연히 궁금해만 하던 중, 페이스북의 ‘Ray’s Writing Tips’라는 페이지를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어요. 억지로, 또는 번역 때문에 끼워맞춘 명사형이 끼어있거나, 말을 짧게 하기 위해 억지로 줄인 말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죠.
‘애플리케이션 사이의 일관성’이라는 말은 아마 영어 문장을 번역하다 나왔을 텐데요... ‘Ray’s Writing Tips’에 나온 대로, 서구 언어들은 명사를 중심으로 짜여졌지만, 한글은 동사를 더욱 많이 사용합니다. 명사를 사용하기보다는, 동사를 풀어 설명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는 것이죠. 명사형을 위해, 또는 말을 간단하기 위해 일부러 축약하는 것도 독자를 헷갈리게 할 수 있습니다.
래리는 애플리케이션들간의 관계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것은 매킨토시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많은 도움이 됐다.
이 정도로 고치면 쉽지 않을까요? 그 다음 문장도 고쳐봅시다.
나는 퍼즐을 좋아한데다, 비즈니스 상에서 흔히 보는 틀에 박혀있는 관점에 굴복하고 싶지 않아서 제롬에게 말했다.
‘비즈니스적인 관점’이라는 말때문에 너무 모호해 진 것을 살짝 풀어만 줘도 이렇게 이해가 쉬워지거든요. 그렇죠?
한글도 힘든데, 다른 나라 말을 번역하는 것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하지만, 기왕 하는 거 많은 독자들이 손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조금만 신경을 쓰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읽고 공감할 수 있을거에요. 그러다 보면 베스트셀러도 나오는거고요. 어때요, 공감하시나요? ;-]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2기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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