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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새로운 시선

랩뮤직 속 한글 라임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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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rap)의 고향은 미국 대도시의 뒷골목 흑인 거주지이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소외된 흑인들이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에 걸쳐 힙합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하위문화(sub-culture) 양식을 구축하는데, 춤에서는 브레이크 댄스, 시각예술에서는 그래피티라고 불리는 집단낙서, 그리고 음악에 있어서는 바로 랩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 하위문화들은 백인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힘없는 소수의 항변이자 유희였다. 이들은 정교하게 짜여진 운문의 수사학 대신 슬랭으로 가득한, 거의 욕설에 가까운 산문을 속사포
같이 쏟아내었으며 선율의 권위를 아예 무시하고 동물적이고 충동적인 리듬을 강조함으로써 노래를 육체언어화하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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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규칙적인 리듬을 바탕으로 주절거리는 랩은 70년대 후반 미국에서 발생한 힙합(hiphop)문화의 음악적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힙합음악을 타 장르와 비교함에 있어 가장 차별되는 점을 꼽으라면 랩이라는 메시지 전달 수단과, 일정 마디가 계속 반복되면서 특유의 리듬감을 만들어내는 브레이크 비트(Break Beat)라는 형식적 수단, 이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힙합의 사전적 의미는 ‘엉덩이(Hip)를 들썩거리는(Hop) 것’으로 이것은 가장 단순화된 힙합음악의 정의이자 또한 가장 유효한 정의이기도 하다. 랩과 비트의 핵심은 모두 ‘리듬’에 있기 때문이다.


 랩의 음악적 리듬감을 살려내는 라임

랩의 시작에 대해서는 사실상 정확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기록이 없다. 하지만 여러 흑인음악 매체들은 디제이 쿨 허크가 파티에서 브레이크 비트를 틀어주고 큰 호응을 얻자 무대의 생동감과 흥분을 더하기 위해 마이크를 통해 거리의 슬랭들을 외쳤던 것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 후 일종의 여흥구로 혹은 쇼의 진행멘트로 쓰이던 랩은, 턴테이블 기술이 점차 복잡해지고 다양화되자 디제이들이 쇼의 진행을 전문적으로 맡는 엠씨(MC)를 고용하게 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이 같은 팀이 브롱크스를 중심으로 늘어나면서 지금의 디제이와 엠씨(혹은 랩퍼)의 구도가 갖춰지게 된 것이다. 이후 엠씨들은 자신들의 멘트를 음악에 걸맞게 하기 위해 효과적인 발음법을 개발하며 랩이 가지는 리듬의 영역을 확대시키기 시작했는데 그에 활용된 것이 바로 각운, 즉 라임(Rhyme)이다.
 이렇게 랩은 엠씨들의 구술적인 메시지에 라임을 통한 리듬요소가 결합되면서 점차 음악적인 영역으로 편입되고 진화했다.

 그럼 여기서 공식적인 최초의 랩 음악으로 거론되는 70년대 말 슈거힐 갱의 <Rapper's Delight>의 가사를 살펴보자. 보다시피 여흥구와 간단한 라임이 어우러지며 리듬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I said a hip hop the hippie the hippie
to the hip hip hop, a you dont stop the rock it
to the bang bang boogie, say up jumped the boogie
to the rhythm of the boogie, the beat..."


 랩은 파티에서 시작되었지만, 그랜드 마스터 플레시 앤 퓨어리어스 파이브(Grand Master Flash & The
Furious Five) 이후 사회적인 메시지를 내포하기 시작했고, 이는 다시 아프리카 밤바타를 거쳐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에 이르러 사회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 메시지의 가사로
진보하게 된다. 또한 데 라 소울이나 탈립 콸리(Talib Kweli), 커먼(Common) 등으로 대표되는 엠씨들은
다소 이상주의적 성향의 가사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랩의 기술이 점차 분화되고 발달하자 랩퍼들 간에 경쟁이 발생하게 되었고 이것이 랩 배틀(Rap Battle), 혹은 프리스타일 배틀(Freestyle Battle)이라 불리는 하나의 의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프리스타일 배틀은 특정 주제를 라임이라는 룰 안에서 누가 얼마나 더 재치 있고 순발력 있게 표현하는가를 겨루는 것으로 청자들의 호응도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그리고 이것은 메시지의 전달력과 라임을 통한 형식미, 그리고 청자들과 즉시 호흡하는 라이브의 묘미를 두루 갖춤으로써 랩의 시작과 현재를 연결하는 중요한 상징이자 고급의 언어유희적 게임이 되었다.
또한 힙합음악의 메시지가 주제의 한계나 표현의 장애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결정적인 힌트이기도 하다.

 한편 랩의 가사와 라임의 형식미를 예술적 범주로 편입시킨 장본인은 라킴(Rakim)으로, 그는 직설적인 화법에 의존하던 랩의 메시지를 은유와 비유를 통한 문학적 감수성을 강조했으며 라임과 플로우에 있어서도 모음을 주로 이용하던 당시의 수준을 뛰어넘어 기술적으로 한 단계 진보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노토리어스 비아이지(The Notorious B.I.G.)와 나스(Nas) 같은 후배 랩퍼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Just when things seemed the same, and the whole scene is lame
I come and reign with the unexplained for the brains till things change
They strain to slang sling, I'm trained to bring game...”

 
 “모든 것이 똑같아 보이고 그 모든 광경들이 절룩거릴 때, 나는 천재들에게조차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지니고 와서 이 모든 것들이 변화할 때까지 군림한다. 그들은 비속어의 끈을 잡아당기고 나는 즐거움을 가져오도록 다듬어졌지(그들은 비속어만 내뱉고 있지만 나는-랩의 순수한-즐거움을 가져다 줄 수 있지)...”

 1997년 발매된 라킴의 솔로 데뷔 앨범 《The 18th Letter》의 동명 타이틀곡은, 당시 하드코어/갱스터의
과격한 메시지가 전성기를 누리던 힙합 씬 속에서 빛나는 라임과 멋진 은유적 표현의 가사로 많은 청자들의 극찬을 받았으며 랩핑의 꽃이 라임임을 보여주었다. 
  

현대 대중음악에 원시의 구음을 되살린 랩뮤직
 
 비슷한 음을 반복함으로써 독특한 운율을 자아내는 라임은 동서양을 막론한 모든 언어문화권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왔다. 그중에서도 행의 마지막 음을 맞추는 각운이 가장 도드라지는데, 이는 중국의 오언절구 같은 전통시가나 영미시를 비롯한 대중음악 가사, 그리고 흑인의 랩 등에서 두루 볼 수 있다. 백인 팝 듀오 사이먼앤가펑클의 <April come she will>은 그런 정교한 라임의 고용이 가장 극적으로 성취된 하나의 예증이다.

 
April come she will
When streams are ripe and swelled with rain;
May, she will stay,
Resting in my arms again.

June, she'll change her tune,
In restless walks she'll prowl the night;
July, she will fly
And give no warning to her flight.

August, die she must,
The autumn winds blow chilly and cold;
September I'll remember
A love once new has now grown old.

 

 한편, 랩의 등장은 세계 대중음악의 마지막 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적어도 한 세기 이상,아니
천년 이상 지속되어온 선율의 주도권을 허물고 대중음악의 질서를 원시의 구음(口音) 상태로 되돌렸다. 노래의 역사가 낭송에서 비롯되었음은 주지의 사실. 인도의 전통적인 성악양식인 무라파드나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 기원하는 오페라의 레시타티브, 그리고 우리의 판소리나 민속음악의 제반 창(唱)이 그런 흔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 흔적들이 랩에 이르면서 오랫동안 노래양식을 지배해온 운문적 성격을 뒤집고 산문적 상상력을 폭발적으로 신장시켰다.

 그런 점에서 판소리라는 고대 서사음악의 전통을 갖고 있는 우리가 랩뮤직을 수용하는 데 무의식적인 친근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유추하는 것이 지나친 몽상은 아닐 것이다. 판소리 <춘향가> 중에서 자진모리장단으로 짜여진 ‘신연맞이’ 대목을 듣고 있노라면 판소리와 랩의 근친성이 두드러지게 느껴지는데, 이를 세속적으로 결합하면 <흥보가 기가 막혀> 같은 퓨전 판소리 랩음악이 된다.

 새로운 사또 부임을 묘사하는 ‘신연맞이’ 대목은 각운의 묘미는 없다. 그러나 몽룡과 춘향이 처음 합방하는 밤의 사랑가 바로 뒤에 등장하는 호(好), 정(情), 궁(宮) 세 글자를 각운에 놓고 노는 이중창은 판소리에서도 라임이 구사되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하지만 90년대에 본격화된 한국의 랩음악이 처음부터 라임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흔히 랩음악의 첫 시도로 운위되는 1988년의 홍서범의 <김삿갓>의 경우도 아래에서 볼 수 있듯이 1984년 낭송조의 코믹송으로 한반도를 강타했던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 정도의 단계였다고 할 수 있다.
 

 백일장 과거에서 조상을 욕한 죄로 하늘이 부끄러워 삿갓을 쓰고 이름도 버리고 가정도 버리고 욕심도 버리고 양반 또한 버렸네 같은 해 대학가요제에서 그랑프리를 획득하며 혜성같이 등장한 90년대의 음악감독 신해철 역시 초기에 랩을 구사한 이들 중 하나였다. 그는 한국어 랩을 궁리하다가 자신의 솔로 데뷔 앨범(1990)의 마지막 곡 <안녕> 후렴부에 득의의 영어 랩을 넣는다. 그는 앨범의 앞면에서 ‘사랑의 순수한 지속’을 진술하면서 바로 뒷면에서는 ‘사랑의 추악함과의 결별’을 다른 목소리로 말한다.<안녕>에서 음미할만한 랩 부분, 즉,

You didn't want a flower, you wanted honey / You didn't want a lover, you wanted money /
You've been telling a lie, I just wanna say "Good-bye"’를 보라.


 비록 영어를 통한 것이긴 하지만 라임의 기법과 메시지의 정합성을 동시에 갖춘 표현을 한국대중음악사에 제공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함께 검토되어야 할 노래는 1989년 작 노영심 작사/작곡으로 변진섭이 노래한 <희망사항>이다. 랩과는 상관없는 것이지만 운문중심적 질서에서 산문적 상상력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단계를 보여주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머리에 무스를 바르지 않아도
윤기가 흐르는 여자
내 고요한 눈빛을 보면서
시력을 맞추는 여자
김치볶음밥을 잘 만드는 여자

웃을 때 목젖이 보이는 여자
내가 돈이 없을 때에도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여자

 

 산문적 상상력의 핵심은 일상적 구체성이다. 그것은 관념적 수사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이제 (내가 사랑하는 여자는) ‘마음이 예뻐야 진짜 여자’가 아니라 ‘뚱뚱해도 다리가 예뻐서 짧은 치마가 어울리는 여자’인 것이다. 이 노래를 보면 바로 80년대 전반에 발라드 폭풍을 일으켰던 조용필의 <비련>(1982)으로부터 한참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련>은 관념적 형상화라는 전통적인 사랑가의 극점이다. 특히 다음의 대목은 관념적인 감정이입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돌고 도는 계절의 바람 속에서
이별하는 시련의 돌을 던지네
아 눈물은 두 뺨에 흐르고
그대의 입술을 깨무네
용서하오 밀리는 파도를
물새에게 물어 보리라
물어 보리라 몰아치는 비바람을
철새에게 물어 보리라


랩뮤직을 받아들인 90년대 한국의 십대들 

 1992년 서태지의 신화는 이른바 ‘포스트 88세대’의 산문적으로 파편화된 욕망과 그것에 대한 억압과의 긴장 속에서 탄생했다. 무엇보다도 헤비메탈 밴드 출신의 서태지가 주목한 것은 한국의 록 진영이 터부시한 흑인음악의 랩이었다. 나미와 홍서범 같은 80년대의 베테랑들이나 신해철 같은 90년대의 대표주자들이 부분적으로 이 음악언어를 조금씩 건드려 보고 지나치고 말았을 때, 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이 양식에서 90년대 음악의 승부가 갈려질 것임을 간파했다.

 물론 서태지를 정점으로 하는 3인조가 모습을 처음 드러냈을 때는 모든 것이 생소해 보였다. 이들의 안무는 육체적으로 고안된 것이었으며 꼬리표를 밖으로 드러낸 흑인거리의 코디네이션은 파격을 넘어선 것이었고 무엇보다도 거침없이 자음과 모음이 충돌하는 랩은 아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음반시장은 발매 3개월 만에 이들에게 월계관을 씌워준다. 이와 같이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신드롬을 생성시킨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90년대 초반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의 생산담당자와 수용자 간의 모순에서 비롯된다. 즉 90년대의 십대들은 어른들의 성채에 버금가는 자신들만의 감수성의 전선을 쌓았으나(그 대응언어는 다름 아닌 발라드이다), 그들에게 제공된 노래의 대부분은 바로 윗세대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즉 십대를 위한 음악은 존재하지만 십대적 감수성에 의한 독자적인 음악적 질서는 제출되지 못했던 것이다(가령 김완선의 데뷔앨범의 음악은 산울림의 김창훈과 신중현이 제공했다).
 게다가 전반적으로 삶의 욕망이 향상되면서 십대에 대한 가정과 학교의 무의식적인 억압의 강도가
더욱 높아져가면서 그들은 살인적인 경쟁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존재로 내몰리게 되었다.
그들이 자신들만의 세대적 감성에 부응하는 문화적 대변자 혹은 세례자의 존재를 갈망하게 된 것은 필연이었다.

  90년대의 십대는 고리타분한 메시지가 아니라 기동력 있는 이미지를 원했으며 정제된 선율보다 돌발적인 리듬의 반역을 원했고 정작 아무런 내용이 없는 운문보다 사소한 일상과 미세한 감정의 편린까지 직설적으로 토로할 수 있는 산문체계를 갈망했다.
 그에 대한 답이 바로 한국어로는 왠지 어색하고 나아가서는 불가능하다고까지 여겨졌던 랩이었다.
그리고 서태지가, 홍서범이 <김삿갓>에서 단순히 해학적으로 고용한 이 20세기 최후의 음악언어를,
신해철이 <안녕>에서 영어로 살짝 비켜서거나 015B가 극히 느린 템포 위에서 내레이션 효과로만
제한했던 이 시한폭탄을 정면으로 터트려 버린 것이다.
 <난 알아요>는 랩의 근원적인 에너지가 한국어의 세계와 처음으로 조우하는 어색함을 상쇄시키는
익숙한 선율의 상승과 하강을 포함하는 후렴의 프레이즈를 결합시킨다.

 하지만 힙합의 내면적인 그루브가 더욱 선열하게 부각되는 것은 바로 이 앨범의 중심 트랙이나 진배없는 <환상 속의 그대>에 이르러서이다. 세 명의 청년들은 자아의 분열과 커뮤니케이션의 단절, 그리고 파괴적인 극복의 의지를 좌충우돌하며 질주하는 리듬 속에 어지러이 펼쳐 놓는데, 그 성과를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그 시도는 70년대에 김민기와 신중현이 포크와 록의 사대주의적 추종의 경향을 극복하고 한국 대중음악의 독자성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에 비견될 수 있는 것이었다.


결코! 시간이 멈추어 줄 순 없다 Yo!
무엇을 망설이나 되는 것은 단지 하나뿐인데
바로 지금이 그대에게 유일한 순간이며
바로 여기가 단지 그대에게 유일한 장소이다.
단지 그것뿐인가 그대가 바라는 그것은
아무도 그대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나, 둘, 셋 Let's go! 그대는 새로워야 한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고 새롭게 도전하자.
그대의 환상, 그대는 마음만 대단하다. 그 마음은 위험하다
자신은 오직 꼭 잘 될거라 큰소리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대가 살고 있는 모습은 무엇일까.
세상은 Yo! 빨리 돌아가고 있다.
시간은 그대를 위해 멈추어 기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대의 머리위로 뛰어다니고
그대는 방한 구석에 앉아 쉽게 인생을 얘기하려 한다.
환상속엔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속엔 아직 그대가 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 노래는 세련된 라임을 전혀 가지고 있진 않지만, 순식간에 세속적인 댄스뮤직으로 진화하고
있는 풍토 속에서 랩의 정신이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지를 제시했다. 이와 같은 힙합의 본령을 가장 강력하게 각인시킨 장본인은 이현도와 김성재가 짝을 이룬 듀스이다.

 서태지가 록그룹 출신으로 3인조 댄스트리오 해산 후 다시 록음악으로 돌아갔던 것과 달리,
이현도는 듀스 이후에도 철저히 힙합을 지킨 한국 힙합의 수문장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1993년 록그룹 H2O와 협연한 <Go Go Go!>라는 명곡을 통해 단순하지만 질주하는 각운을 우리에게 던진다.


우리들의 어린시절 이미 지나갔고
어른이란 이름으로 힘든 직장 갖고
생활하면서 이미 뽀얀 얼굴을 갖고
그런 걸 같고 고생이라 말하고
고지식한 생각으로 남을 무시하고
동심을 가진 어른을 이상하다 하고
전자게임, 프라모델, 만활 싫어하고
그게 왜 재미있는지 이해를 못하고
그런 사람을 보며 나는 답답하고
하지만 그 사람 역시 내가 답답하고
얽히고, 설키고, 꼬이고, 막히고…

이 넓은 세상에서 자기만 잘났고
조그만 일 하날 해도 남들보다 낫고
이거든지 저거든지 남들은 못났고
자기위친 높고 남의 위친 낮고
그런 식으로 언제나 이 세상을 살고


 이후 90년대 중반을 지나며 랩의 수사학은 다양화된다. DJ doc.의 경우처럼 오로지 자극적
효과를 노리는 <미녀와 야수>의 가사는, 곧 ‘오늘밤 너와 단둘이서 脫衣/행복을 예감하는
행복한 party/사랑을 느끼면서 脫衣...’ 같은 내용은 거의 포르노적 상상력을 아슬아슬하게
표현하고 있다. ‘타리’(‘탈의’의 발음)와 ‘파리’(‘파티’의 발음)가 희한한 대구를 이루면서
거리낌 없이 탈문법의 천민적 표현법으로 떨어진다
 

한국어 라임으로 자연스렙게 불려지는 랩 

 한편, 업타운과 드렁큰타이거 같은 재미교포 출신의 해외파들이 본격 힙합을 선언하는 가운데
9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한국 힙합의 역사에 있어 중요한 의의를 갖는 앨범이 발표된다.
패닉 출신의 김진표의 《열외》(1997)와 조PD의 《In Stardom》(1999)이 그것이다.

 먼저 김진표의 《열외》는 한국 최초로 순수하게 랩으로만 구성한 공식적인 앨범으로, 본격적으로
라임에 대한 인식이 엿보인 최초의 앨범이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비록 명사를 이용한
각운 맞추기가 대부분이었던 1차원적 라임이긴 했지만, 당시 오버그라운드와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많은 힙합 뮤지션들조차도 라임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상황 속에서 신선한 충격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 앨범 이후 오버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도 점차 라임을 갖춘 랩을 선보이기 시작하는데,
1999년 등장한 조PD는 여기에 직설적인 욕설을 얹으며 한국 힙합 씬에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그는 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진 래퍼들이 대부분이었던 가요계의 관행 속에서 PC 통신을 통한 데뷔라는
독특한 이력을 보여주었는데, 이전까지의 그 어떤 앨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원색적 사회비판과 욕설로 화제를 모으며 랩 가사의 저항성을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리는 한편, 힙합이라는 하위문화 자체를 이슈화시켰다.


사랑 노래하라 질질 짜라 이제 그만 바꿔라 너의 맘을 스타일을
그렇게 타이르는 너를 누구도 내 마음을 바꿀 순 없어 야 야 야
캡 바쁜 사람이든 집구석 백수든 어디서 뭘 하든 바보가 아니면 모두 같지
힘이 들지 사는 건 쉽지만은 않지 하지만 외롭진 않지
적어도 고 정도는 되지
오 그러면 좆되지 이제는 점점 커가지 늙어가지
그럴수록 점점 우리의 세상이 오지 아직 끝나지 않았지
할 말은 더 있지 누구나 사연은 많지
그게 좋은 거든 나쁜 거든 배울 점은 있지
그 경험이 있기에 우린 어른이 되지 비로소 다 큰 거지
우리에겐 자욱한 먼지 얼룩지게한 건 바로 너지
바른 생활은 없지 어릴 적 국민학교에서 배운 건 아무도 않지 그게 현실이지 그게 싫지


 세기말에 인터넷으로 먼저 유포된 조PD의 <이야기 속으로>의 랩은 미국 문화의 수입으로 등장한 랩이 십년 만에 어떤 세대의 감수성으로 무슨 사회적 동기에 의해 어떤 미디어를 통해 급격하게 지배적인 음악문화로 자리 잡게 되는지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한국어로도 자연스러운 랩의 라임이 구사될 수 있음을 자연스럽게 증명했다. <환상 속의 그대>로부터 칠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랩은 세기말-세기초 한국 대중음악의 가장 언더그라운드적인 상상력이면서 가장 대중적인 표현방식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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