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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한글이 만난 사람

[인터뷰]이론과 감각이 조화로운 디자이너, 유정미




  유정미
  이화여자대학교 생활미술학과와 동 대학 산업미술대학원 졸업.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즈에서 디자인학 석사.
  대전대학교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교수
  나이테북스 기획이사




 편집 디자이너로서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고도 디자이너라면 감각 뿐 아니라 이론에도 능해야 한다며 강단에도 서고 있는 유정미 교수는,우리 디자인계가 이론으로 무장하여 한 단계 발돋움해야 한다는 목소리의 중앙에 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편집 디자인 분야가 전문가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작업되기 시작한 1980년대 무렵 출발하여 그동안 불모지를 옥토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뒤늦게 떠났던 영국 유학을 통해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고 그 경험을 살려 이제는 우리의 디자인 전반에 걸쳐 발전적인 방향 제시에 힘쓰고 있는 유정미 교수를 온한글이 만났습니다.


- 그리드-디자인의 뼈대
- 나무-종이의 원료
- 디자인-일상성 속에서 독특함을 끌어내는 일.
- 레이아웃-어떻게 놓을 것인가 보다 왜 놓을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할 것.



- 마진-편집지면을 광고와의 전쟁에서 구해주는 유용한 표식.
- 블리드-밀고 나갈수록 확장되어 보이는 힘.
- 상상력-창의력의 원천
- 이미지-텍스트와 만나 더 강해진다.




- 잡지-잡지는 매거진이다.
- 책-생각의 여행, 사람을 혼자 있게 만들어준다.
- 크리에이티브-새로운 것을 만들기보다 새롭게 보는 눈이 중요하다.
- 타이포그래피-자주 듣는데 정확한 뜻은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 폰트-폰트와 타입페이스, 서체와 글꼴... 헷갈린다. 
- 한글-영문자보다 촌스럽다는 오명을 쓰고 있는 우리 디자인의 기본.



온한글  처음 디자인을 시작했던 시기의 환경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텐데요?

유정미
  처음 디자인을 시작할 무렵인 1980년대 초반은 우리나라 편집디자인 분야에 전문가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제가 처음 출발한 곳은『현대주택』이라는 건축 전문 잡지였습니다. 입사 후 시키는 대로 무조건 일을 했는데,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과 실무는 너무 달라서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당시는 컴퓨터를 이용하던 시대가 아닌 사진 식자기를 이용한 수작업 시기였습니다. 

 컴퓨터는 디지털 방식으로 디자이너가 쉽게 작업할 수 있지만, 수작업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직접 손으로 해야 합니다. 본문 조판만 해도 디자이너들이 일일이 서체 목록을 지정해 주면 숙련공이 사식작업을 하고 그걸로 다시 대지위에 편집을 해나가는 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사식을 지정하는 방법 등 기초적인 것도 제대로 몰라서 답답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이때 체계적인 이론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제가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편집디자인 분야가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시기라 국내에는 이론 서적이나 아티클을 접하기 어려워서 공부에 한계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 갈증이 계속해서 이론 공부에 매달리게 되는 이유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국 그때 시작한 공부가 쌓여 1998년 <정글>에 잡지 디자인에 대한 강좌를 하게 되었고 그 원고로 <잡지는 매거진이다>는 책도 출간하게 되었으니 저로서는 큰 자산이 쌓인 셈이죠. 

 한편으로 1980년대는 우리 잡지 디자인 역사에 남을 만한『뿌리깊은나무』,『마당』,『멋』등이 창간되어 잡지계에도 아트디렉팅에 대한 인식이 시작되었던 의미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아날로그 방식으로 어느 정도 해나가던 9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도 맥킨토시가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식자에서 컴퓨터로의 변화는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사진식자로 하는 수작업은 대지위에 내용물들을 일일이 직접 레이아웃하는 작업이 따라야 합니다. 

 한 권의 잡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페이지 수만큼의 질감과 무게를 그대로 느껴야 합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된 요즘에는 그런 질감을 느끼지도 못할뿐더러 내 노고에 의해 잡지가 만들어진다는 느낌이 덜 들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디자이너들이 너무 기계에만 매달리고 있는 현재의 모습은 왠지 장인정신이 소멸되어 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온한글
  디자인에 있어 이론을 중시하시는데, 특별히 그런 이유가 있다면요?

유정미
  아트 디렉터를 희망하는 분들은 감각도 중요하지만 먼저 이론적인 컨셉이 있어야 합니다. 편집디자인은 텍스트가 중심이 되는 작업이기 때문에 감각보다는 이론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디자인 이전에 편집자 등 스텝들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때 이론으로 무장한 해박한 지식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글의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고 보여줄 것인가가 중요한 만큼 감각이나 감성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론적인 내용이 바탕이 되어야 아트디렉터로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겁니다.




온한글
  아트디렉터로서 길을 걷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나요?

유정미
  본격적으로 아트디렉터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웅진출판사에서 발행하는 『까치』의 디자인 책임을 맡으면서 입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어린이 생태 전문 잡지였는데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잡지를 꼽으라면『까치』를 꼽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창간작업부터 참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진 스텝을 비롯해서 당대 최고의 ‘잡지쟁이’들이 모였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디자인 자문을 해주신 이상철 선생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아트디렉터라고 할 수 있는 분인데 그분과 함께 작업한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 잡지 디자인에 대한 A to Z 을 배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많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후 CATV의 방송위원회의 미디어 잡지를 몇 번 창간하는 경험을 하는데 밑거름이 되기도 했습니다.



온한글  CATV 방송위원회라는 안정된 직장을 뒤로하고, 늦은 나이에 영국 유학을 떠나셨던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는지요?

유정미
  유학을 결심하던 1995년은 제가 잡지 디자인을 한 지 꼭 10년째 되던 해였습니다. 10년간 약 120여 권의 잡지를 만들었는데, 그만큼 했으면 제 능력에 비해 넘치게 했으니 제게도 안식년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한계를 느껴 재충전의 기회로 유학을 택한 것이지요. 또한 저로서는 지나온 10년보다 앞으로의 남은 날들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저는 현장에서 정년을 맞이하고 싶은데 65세까지 일하려면 앞으로 30년은 더 해야 하는데, 3년 정도 투자하는 것은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때가 아마 디자이너로서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었고, 터닝 포인트가 된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에서도 대학과 대학원 과정을 마치며 짧지 않은 시간을 공부로 보냈다고 생각했지만, 영국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디자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할까요? 전 그 시기에 제가 유학을 결행한 것을 지금도 무척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기특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유학은 단지 공부만이 아닌 그 나라 문화도 함께 체험하는 것인 만큼 꼭 해볼만한 경험인 것 같습니다.




온한글
  유학 생활 중 느낀 영국의 디자인은 어떠했는지요?

유정미
  우리 디자이너의 의식수준이 영국보다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디자인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 수준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영국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일부 계층에 한정하지 않고 매우 일상적인 사회활동으로 디자인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지하철이나 거리의 간판, 공공 싸인 까지 사회적인 합의에 의해 정련시키고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유지합니다. 

 디자인을 문화로 인식하고 구체적인 생활 속에 적용시키는 실용주의가 영국 디자인의 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며 실험정신을 북돋우는 문화도 강합니다. 이러한 토대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펼치는 디자인 정책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 전 세계를 뒤흔드는 영국 디자인의 위력을 지켜보면 제 말이 이해될 겁니다.






온한글
  영국 유학을 통해 더 확실하게 확인하셨을 듯한데, 외국과 우리의 잡지 환경이 많이 다른데,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인지요?

유정미
  잡지는 한 나라의 문화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매체입니다. 우리의 경우 잡지라고 하면 여성종합지, 도색잡지부터 연상합니다. 양식 있는 사람들은 잡지를 통해 전문지식과 교양을 쌓는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외국의 경우 누가 어떤 잡지를 읽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지적 능력과 예술, 문화에 대한 관심 정도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보는 여자라고 하면 이는 대학을 나온 중산층 여성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만큼 특정 분야로 특화되고 전문화된 것이 잡지라는 인식이 강하다는 뜻입니다. 

 잡지는 본래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그 안에서 더욱 전문적인 지식을 얻기 위해서 읽는 것입니다. 잡지는 내용이나 편집에서 책보다 더욱 다양하고 폭넓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우리 경우 전문지를 표방하는 잡지조차도 전문가 집단에서는 외면당하는 수준입니다. 영국의 전문지는 어느 매체보다 권위를 가질 만큼 내용적인 수준이 높습니다. 

 디자인 분야를 예를 들면 『Eye』와 『Baseline』은 디자인 전문가들의 필독서로서 어느 전공서적 못지않게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타이포그래피 분야에 끊임없이 이슈를 만들어 가며 국제적인 규범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잡지가 더욱 특화되고 전문화되어 잡지만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을 발휘하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저로서는 매우 유감입니다.






온한글
  편집 디자인만큼 서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분야도 없을 텐데요?

유정미
  편집디자인은 두 가지 중요한 요소로 이루어진다는 건 잘 아실 겁니다. 이미지와 텍스트죠. 컴퓨터의 영향으로 이제 디자인과 학생이라면 누구나 이미지는 어느 정도 흉내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타이포그래피는 컴퓨터 기술의 도움으로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타이포그래피는 오랜 역사로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적인 규범이 있어서 그 규범을 제대로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기에 덧붙여 디자이너 스스로 몸으로 체득하여 서체마다 미묘한 표정의 차이를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학교에서부터 서체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대부분 컴퓨터 안에서 보여 지는 것으로 끝내려고 합니다. 직접 프린트로 출력에서 눈으로 확인하며 미세한 조정을 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런 훈련을 소홀히 하기 때문에 점점 더 아마추어리즘이 강해지고 있는 겁니다. 

 또한 우리가 중심으로 다루는 한글 서체는 분명히 영문 서체와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열형인 영문자에 비해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모여 한 글자가 되는 조합형입니다. 영문은 한 글자 한 글자의 완성도가 높으면 그만이지만, 한글은 쌓여나가는 형식이기에 전체적인 균형미에 주목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타이포그래피 이론이 영문자 중심으로 되어 있어서 학교에서는 이런 특수성에 대한 경험을 할 기회를 못 가집니다. 그리고 현장에 나오면 누구하나 특별히 한글에 대한 이론을 가르쳐 주지도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젊은 디자이너들은 영문 폰트는 잘 활용하는데 한글은 어쩐지 어설프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글이 영문 보다 예쁘지 않다는 견해는 이런 풍토에서 나온 속설이기도 합니다. 한글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사용하면 어느 문자보다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온한글
  디자이너가 너무 많이 배출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몸담으며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요?

유정미
  한 분야에 오래 몸담은 디자이너로서 디자인계 전체의 발전을 위해 기여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자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일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유학 후 1998년 귀국해서 10년 동안 강의를 하면서 느낀 것은 디자인 인력의 넘치는 공급을 재고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자인 전공 졸업생이 한 해에 3만 명이 넘는데 우리나라 산업 규모로 보면 그 1/3인 1만 명 정도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이젠 양산이 아닌 양성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의 디자인 교육은 하향 평준화가 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포토샵만 다루면 디자인을 잘하는 줄 아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디자인의 퀄리티가 높아져가야 전반적인 문화도 발전합니다. 졸업 후 활용도 못하는 인력을 양산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낭비입니다. 

 유학 당시 함께 공부했던 태국 친구들에게 귀국 후 제 계획 중에 학교 강의에 대한 부분을 얘기했더니 놀라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태국의 경우 당시 디자인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이 3곳 뿐이라고 하면서 디자인과 교수는 매우 힘든 희망사항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디자인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그만큼 학생들의 퀄리티도 높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이제 어설픈 인력의 과잉공급을 반성하고 자질이 갖춰진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온한글
  현재 몸담고 계신 나이테북스를 소개한다면?

유정미
  나이테북스는 편집과 디자인 그리고 출판을 함께 하는 기획 집단입니다. 예전에 웅진출판사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생각과 느낌>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는데 98년 귀국 직후 제게도 합류 제의가 있어서 동참하게 된 거죠. 서로의 경험을 살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린이 책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 저는 어린이 책은 쉽고 단순하다는 편견이 있어서 그렇게 몰두하는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잡지에 비하면 별로 매력도 없고(웃음).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잡지 디자인과 북 디자인 등 다른 것들과 병행하며 어정쩡한 태도로 지내다가 본격적으로 몰두한지 3년 정도 되었네요. 

 이름도 나이테북스로 바꾸고. 자의든 타의든 어린이 그림책을 하다보니 디자이너로서 또 새로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어보다는 그림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더 빠른 어린이 세계에서 그림책이 차지하는 의미는 ‘책’ 이상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론 서적도 찾아보고 동료들과 스터디도 하면서 어린이 그림책의 수준을 높여야겠다는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경험에 의하거나 대충 주워들은 설익은 지식이 아닌 본격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어린이 그림책을 만들어야 함을 절감했습니다. 최근에는 정병규 선생님을 모시고 저희 사무실에서 일주일에 한번 그림책 강의를 듣고 있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가장 정서적으로 유연할 때가 어린아이 시기인데 현재 우리의 교육 상황 속에서 창의성을 키워주는 교육은 유치원 때뿐인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를 들어가면 바로 주입식 교육이 시작되는 것이 현실이죠. 그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창의력을 키워주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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