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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의 산고 끝에 탄생한 서울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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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역사성과 전통성, 문화성, 사회성 등의 심층적 고찰을 바탕으로 보다 세련되고 현대적인 감성을 담아낸다’는 것이 서울서체의 지상과제였다.
 구조적으로 단순하고 형태적으로 간결하여 여유로운 멋과 편안함을 보여주며, 명조와 고딕의 글꼴구조를 통일시킨 가족군으로 태어나야 했다.





디자인 컨셉과 후보안의 도출
 이를 위해 먼저 각종 문헌 및 현장조사를 통한 학술연구와 학계 및 디자인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디자인 컨셉과 그에 따른 후보안이 도출되었다.
 단아한 여백의 아름다움을 담은 ‘비움’ 안 두 가지와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마음을 담은 ‘열린 마음’, 다양함 속에 유연함과 통일성을 담은 ‘어울림’ 등의 네 가지 안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놓고 자문위원들의 냉정한 평가가 가해졌다.

  “본문용 서체에서는 정형화된 네모틀 분위기를 유지하기로 한다, 비움을 상징화하기 위해 비중을 줄인 초성과 종성을 완성도 높게 수정하면서 열린 마음을 표현한 열린꼴 초성의 적용을 확대하는 등 지나침이 없으면서도 새로운 감각을 가진 서체로 보완한다, WDC를 대비한 영문서체 디자인의 중요성을 더욱 고려하며 사인용의 경우 글줄의 지나친 흔들림을 자제한다.” 여기에 서울디자인위원회의 심의도 더해졌다.

 “서울서체는 장기간 사용될 것을 감안해 유행 보다는 보수적인 것이 좋다. 단, 사용용도에 따라 개성이 중시되는 디자인은 표준안 제작 후 별도의 서체를 개발할 수도 있다. ‘비움’안은 기존 서체들과 차별성이 없으며 명조체와 고딕체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열린 마음’안의 경우 ㅇ과 ㅎ의 열린 부분이 미완성된 것처럼 보인다. ‘어울림’안은 공한체와 비교되어 ㄱ과 ㅅ이 불안정해 보이고 ㅎ은 작고 가로획이 시각적으로 불균형해 보인다.”
 이러한 자문과 평가들에 근거해 후보안들의 디자인 컨셉이 보다 밀도 있게 조율되며 다음과 같은 추천안들로 진화하게 된다.


 초성과 종성의 크기를 시원하게 키워 형태적으로 안정감을 높이고, ㄱ과 ㅅ의 형태를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처리하여 부드러움이 느껴지게 했다. 글줄의 무게중심을 위쪽에 두어 글줄의 흐름을
시원하게 하고 글자와 공간의 조화를 추구했다.
 시작과 끝의 삐침 등이 세련된 느낌을 주고, 받침이 있는 글자와 없는 글자의 변별력을 높였으며, 돌기의 각도는 기존의 명조체에서 크게 벗어나게 않아 시각적으로 편안함을 준다.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마음을 담은 서체로 ㅎ의 원을 열린 꼴로 디자인하여 형태적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열린 마음’이라는 서체명의 컨셉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구조는 네모틀이지만 세리프의 모양을 직선으로 처리하여 현대적인 느낌을 부여했다. 첫돌기와 맺음 부분을 단순화하고 노출빈도를 최소화시키고, 고딕 또한 단순화·정형화된 자소로 형태적 통일감을 주고 조형감을 극대화하였다. 글줄에 있어서도 특별히 자간 조정을 하지 않아도 사용가능 하도록 디자인되었으며 무게중심을 1/3 지점에 두어 글줄의 흐름을 좋게 하였다.

 비녀의 형태적 모티브를 차용한 예스러운 감각과 여백의 아름다움을 담은 서체로, 기존 명조체의 돌기와 맺음을 새롭게 정리하여 현대적인 이미지를 부여했다.
 작아진 초성과 종성이 공간에서 여유를 느끼게 하며, ㄱ과 ㅅ은 강직한 선비를 연상시킨다. 고딕의 경우 최대한 정갈하고 단순하게 정리하여 가독성과 판독성을 높였으며, 전체적으로 글줄에서 변화와 정돈이 함께 하는 담백한 멋을 보여준다.


시민 대상 설문조사와 공청회
 세 가지로 압축된 추천안들은 이제 서체의 실 사용자들인 서울시민들의 평가를 받는 무대에 올라야 했다. 무대는 지난 2008년 6월 5일부터 19일까지 서울광장과 신촌 대학가, 혜화동 대학로, 강남 코엑스몰 등 현장 설문조사와 디자인서울 홈페이지와 디자인정글, 온한글 등의 사이트를 통해 마련되었다. 설문에 참여한 시민 수는 총 106,394명(현장설문응답자 7,396명, 인터넷 설문조사 98,998명)으로, 이들 중 38%에 해당하는 40,151명이 지지한 두 번째 추천안이 마침내 서울시 전용서체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시민들에겐 서울서체를 가려내는 것 외에 또 하나의 책무가 맡겨졌는데, 그것은 서울서체에게 고유한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었다. 서울붓꼴, 서울한강체, 서울우아체, 서울바탕, 서울 고운글꼴, 서울명조 등의 후보안들 중 서울시민들의 선택은 40,270명이 지지한 ‘서울한강체’(명조)와 ‘서울남산체’(고딕)였다.

 서울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담는 것은 물론 서울시민의 마음이 모인 서체는 이렇게 결정되었고 그에 대한 공청회가 2008년 6월 20일에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목진요(홍익대 공공디자인연구소 교수), 백진경(인제대 시각정보연구소 교수), 서혜욱(IDI 대표), 원유홍(상명대 시각디자인과 교수), 최범(간판문화연구소장), 홍석일(연세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등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과 시민이 함께 한 이 공청회에서 서울서체의 문제점이나 수정사항에 대한 논의가 보다 구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주된 내용은 ‘서울서체가 단아하고 우아하며 정제된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조형적 완성도가 미진하며 활용면에서 용도에 맞는 충분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세로쓰기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후속 작업에 대한 필요성’이 함께 제기되기도 했다.


서울한강체의 탄생과 그 고유한 특징
  이렇게 탄생된 서울한강체는 선비정신을 담은 모던한 서체로, ‘단순하면서도 구조적인 체계’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가로획과 세로획의 굵기 차이를 최소화하고 통일되게 적용하여 고른 회색도를 이루고, 시작부분의 돌기와 끝의 삐침을 부드러운 형태로 처리하는 등 형태의 간결화로 눈의 피로도 덜고 글줄의 안정된 흐름을 이끌어낸다. 

 또한 구조적으로 단순화한 모듈로 시원한 형태감을 이끌어내며 글자와 공간의 비례를 비슷하게 해 판독성을 높인다. 여기에 ㅎ과 ㅍ 등에 열린 공간을 보여줌으로써 열린 사고를 상징하는 서울서체만의 독보적인 개성을 살려냈다.



 글줄의 시각중심선을 상단으로 조정하여 시선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며 받침이 있는 글자와 없는 글자의 변별력 또한 높였다. 자간이나 단어 사이의 간격을 적정하게 조정해 영문과 한자, 약물의 한글과 조화가 뛰어나 조판 시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영문의 경우 한글의 굵기 비례를 최대한 고려하여 진행하였으며, 열림을 상징하는 ㅍ과 ㅎ의 디자인적 특징을 영문의 P와 R에서도 동일하게 표현하고 돌기의 형태를 동일하게 가는 등 연계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실내외 사인물에 쓰일 것을 고려해 가로쓰기용과 같은 골격으로 통일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오른쪽 무게중심선으로 세로쓰기 환경에 최적화된 서체도 함께 마련하고 있다.

 그 가족군을 살펴보면 명조(Light, Medium)와 고딕(Light, Medium, Bold, Extrabold), 세로쓰기용 등 총 7종으로 구성된다. 한글은 유니코드 기반의 11,172자를 지원하며, 영문은 Basic Latin 94자, KS 심볼 986자, KS 한자 4,888자로 이루어진다. 명조와 고딕의 기본 구조는 하나의 골격으로 통일되며, 세로쓰기 환경을 고려한 세로쓰기용 서체를 포함하는 가족군을 보여주고 있다.



 

 1년여의 시간이 어떤 이들에겐 길지 않은 시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서울시 전용서체의 필요성을 역설해온 사람들에겐 조바심을 내며 기다려야 했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물며 디자인서울의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산고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침내 최선의 결과물을 내놓는 순간조차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아직도 아쉬운 부분은 남아 있고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일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서울한강체와 서울남산체가 아쉬운 부분마저 극복해 보다 이상적인 서체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특정한 담당자란 있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형성시키는 일일 것이다. 서울서체가 필요한 곳곳에 제대로 적용되어 시민들이나 방문자들이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끼는 도시가 되기까지를 생각하면 지금은 시작점에 불과하다.

서울한강체와 서울남산체는 '디자인서울' 사이트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