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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한글이 만난 사람

[인터뷰]유네스코 본부 '청춘'의 작가 강익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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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뉴욕생활을 처음 할 때처럼 지하철에서 작업하기 위해 손 안에 들어가는 캔버스가 필요한 것도 아닐텐데, 아직도 3X3의 캔버스나 나무틀에 그린 그림으로 질서정연하게 향연을 펼치는 독특한 작품 스타일을 일관하고 계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경제적 이유로 작은 캔버스를 들고 다녔지만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큰 캔버스에 옮겨 그려야지라고
늘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10년 전쯤 어린이들의 작은 그림들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3인치 작은 캔버스와 계속 지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아이들의 그림을 모으면서, 그림은 작은 창문과도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창문이 아무리 커도 내가 멀리 서있으면 많은 것을 볼 수 없지만, 가까이 있으면 아무리 작은 창문을 통해서도 큰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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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작품을 비빔밥에 비유하곤 하는데, 이는 다양한 그림들을 한 자리에 모았을 때 그들이 혼연일체되어 빚어내는 회화적인 시너지 효과를 비유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비빔밥에도 남은 반찬들을 섞다 보니 예상치 못했던 맛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와 처음부터 계획된 맛을 목표로 만드는 비빔밥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방법 모두 맞습니다. 언제 어떻게 누가 비볐든 비빔밥은 늘 예상치 못한 맛을 냅니다
 

칠성신을 모시는 제주 무당이 사이다 한 병만을 놓고 굿판을 벌였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하는 무당에게는 어떤 형식이나 절차 대신 칠성사이다 한 병이 자신과 우주를 연결시키는 안테나의 역할을 합니다. 비빔밥도 만드는 사람의 형편과 계절에 따라 들어가는 재료가 달라지겠지만 '밥' 이라는 기본만 있으면 어느 것과 비벼도 우리의 비빔밥이 됩니다. 비빔밥적 사고의 '유연성'이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가장 큰 가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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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들 속에 한국적 이미지나 오브제들을 등장시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뉴욕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릴 적 먹던 김치찌개가 더욱 간절합니다. 어머니, 몽당연필, 학교 운동장, 친구들, 연 날리기, 한여름 수박, 초등학교 아침조회, 무심천의 코스모스, 이태원 시장골목, 등굣길 지하철, 얼음 썰매, 청주 가는 버스 등 어릴 적의 이야기들입니다.

운전을 오래 하면 내가 확장이 되어 자동차 앞뒤의 범퍼나 양옆의 거울까지 나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시간 속에서 확장된 나는 부모님의 부모님 자식의 자식으로 연결되고, 잊고 있던 어릴 적의 이야기는 현재를 지나 미래의 나로 다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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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소재로 하는 작업을 시작하시게 된 동기와 그 시점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칠년 전 세 살짜리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작업의 소재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모음과 자음을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각기 다른 색의 크레용으로 모음과 자음을 그렸는데 나중에 나무판에 옮겨 그리면서 지금의 한글작품이 나오게 됐습니다.

한글은 조형적, 과학적인 요소 외에 화합과 평화의 뜻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글의 모음과 자음이 모여 하나의 완전한 소리를 내는 것은 마치 두 개로 나뉘어 만들어진 달항아리가 뜨거운 가마를 통과한 뒤 하나가 되는 과정과 같습니다. 분열된 세계는 한글의 원리로 평화의 꿈을 꿀 수 있고, 한글은 남북을 잇는 화합의 연결고리가 되며 세계를 바라보는 창문이 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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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원의 ‘청춘예찬’을 소재로 한 ‘청춘’이라는 작품을 계획하신 동기는 무엇이고, 많은 방법들 중에서도 한 글자씩 담아 그리드를 짜듯 연출하신 의도는 무엇입니까?

 

민태원님은 '청춘예찬'을 통해 숨겨진 우리 민족의 가능성을 노래했습니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같이 힘 있다."

언젠가 파리의 에펠탑 근처에서 배낭을 맨 채 '대~한민국'을 외치는 젊은이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세계 속 낯선 구석에서 배낭을 매고 다니는 우리 젊은이들 갖고 있는 것은 뛰는 심장의 고동과 청춘의 끓는 피입니다. '청춘' 은 물방아같은 심장의 고동과 끓는 피를 가진 우리나라와 세계의 청년들에게 바치는 작품입니다.

그리드 형식으로 작품을 하게 된 것은 3인치 작업을 시작한 1984년부터입니다. 작은 이야기의 조각들이 이어져 조각보가 되고 모래알은 모여서 큰 백사장을 이룹니다. 그렇듯 작은 나무판에 올려진 모음과 자음은 하나의 소리가 되고, 하나의 소리는 모여서 세상을 울리는 큰 울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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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유네스코 본부에 전시된 것에 대한 성과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청춘’이 한글을 모티브로 했다는 점이 세계인들에게 얼마나 새로운 인상을 주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한글이 과학적인 문자라는 사실 외에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문자라는 사실도 함께 주목받는지를 현장에서 느끼실 수 있었나요? 
 

안타깝게도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 본부에 직접 설치를 하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여러 사람들로부터 한글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유네스코 본부의 코이치로 맛수라 의장이 직접 편지를 보내 감사의 뜻과 아울러 현지에서의 뜨거운 반응의 소식도 전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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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청춘’에 담긴 글자꼴을 보면 어느 정도 일정한 틀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특정한 서체를 서각하듯 그려낸 것인가요? 그렇다면 그 서체는 무엇인가요?


 

특별한 서체라기 보다는 그냥 한 자 한 자 정성껏 쓰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글을 쓸 땐 오로지 글을 쓰고, 걸을 때는 그냥 걷고, 웃을 때 웃을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제 작업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방법적으로는 한지 위에 연필로 글자 모양을 그린 뒤 14가지 크레파스로 색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나무 위에 붙인 한지가 마른 뒤 투명 플라스틱을 발라 작품이 오랜 기간 보존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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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한글을 소재로 한 작품을 계속 하실 계획이신가요? 한글을 소재 혹은 주제로 한 다른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일년 전, 백범 김구 선생의 '내가 원하는 나라' 를 나무 판에 옮겨 그려 독립기념관에 설치했습니다. 백범 선생이 말씀하신 '문화의 힘'은 결국 철학이라는 바늘로 잠자는 '나'를 깨우는 행위라고 믿고 있습니다. 문화란 고상한 음악을 듣고 발음도 하기 힘든 명품을 몸에 두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그리고 우리 민족이 혹은 세계가 어디로 가는지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계획으로는, 서예미술관에서 있을 '강세황, 강익중 300년 전' 이라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조선 정조 때의 사대부 서화가인 표암 강세황 선생(1713∼1791)의 여러 한시들을 한글로 번역해서 옮겨 그린 작품들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겠지만, 전 세계인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한글을 배울 수 있는 여러 나라 언어로 된 한글 교본을 만들어보겠다는 꿈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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