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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한글이 만난 사람

한글 옷은 어쩐지 멋이 안 난다고?

거리에 지나가다 티셔츠에 새겨진 글자들을 보면 가끔은 좀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시카고나 어디 있는지 모르는 대학교 이름들, 뭐라고 써져있는지 모르는 필기체들 ... 물론 티셔츠에 새겨진 것들을 메시지로 취급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겠죠? 의도된 것이 아니라면 티셔츠에 새겨진 알파벳들은 '빈티지'하거나 '스타일리시'한 어떤 이미지에 불과합니다.

초기의 한글 스카프나 한글 티셔츠 디자인은 어딘가 모르게 입고 싶지가 않았어요. 너무나 어색했거든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읽어야 하는 어떤 기호로서의 '한글'이 아니라 스카프나 가방이나 티셔츠에 박혀서 달랑달랑 따라다니는 이미지로서의 '한글'이 제게는 익숙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거 입고 다니면 분명 저 글씨 닮은 별명이 하나 생길 것 같아.'라는 생각을 했었죠. ^^; ㄱㄴㄷㄹ이 너무 뚜렷이 보이잖아요.

(via tochis)

10월 9일 한글날을 맞이하여 여러 곳에서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중에서도 '두잉'(dooing.net)이라는 티셔츠 커뮤니티&쇼핑몰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두잉은 시작부터 눈여겨 보고 있던 곳인데요, 두잉과 한글 티셔츠 디자인에 대해 브랜드 매니저인 펭도님과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두잉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펭도: 두잉은 "누구나 디자인하는" 티셔츠 커뮤니티 겸 쇼핑몰이에요. 미대를 졸업한 프로 디자이너만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타이틀이 없더라도 마음껏 내 디자인을 뽐낼 수 있는 곳입니다. 누구나 업로드를 하고 누구나 그 디자인을 평가할 수 있죠. 가장 많은 투표를 받은 작품의 디자이너에게 선인세를 지급하고, 디자인 사용권을 취득해서 티셔츠로 제작해 판매합니다. 이렇게 해서 소비자와 생산자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면서 수익을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티셔츠인가요?

펭도: 시장이 커요. 3조인가, 4조인가 ... (웃음) 티셔츠 디자인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지만, 메시지를 담는 미디어로서의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다고 보았어요.

메시지라면 두잉에서 공모하는 주제들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요, 공모 주제는 무엇을 기준으로 선정하시나요?

펭도: 공모 주제를 정할 때는 시의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을 주제로 정한 후에는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곳을 찾아서 파트너 제안을 합니다. 이번에는 "움직이는 말글문화"라는 단체에 제안을 해서 '한글옷이 날개'라는 이름으로 한글 티셔츠 공모를 하고 있습니다. 이후에는 대학로 길거리 투표를 함께 하기로 했어요.

혹은 NPO나 NGO에서 저희한테 제안이 오기도 해요. 두잉 프로모션을 위해서 시민단체에 메일링을 한 번 했었는데요, 참여연대에서 "서울광장"을 제안해주셔서 공모 주제로 올라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쥐잡는 고양이" 공모는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제안해서 이루어진 거고요. 이렇게 하면 시민단체의 PR이 되는 동시에 두잉에서 생각하는 대로 미디어로서의 티셔츠를 환기시킬 수도 있습니다.

두잉(dooing.net)의 '쥐잡는 고양이' 공모 당선작 (via dooing.net)

붓글씨와 같은 당선작 고양이의 자태는 정말 예뻤어요! 그런데 여성단체연합과 고양이는 무슨 상관인가요?

펭도: 고양이 보호 카페 같은 곳에 가면 활동하시는 거의 모든 분들이 여성분들이기도 하고,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고양이 애호가들이 늘어나고 있기도 하고 ... 과거에 고양이를 싫어하는 풍토가 많았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고양이 애호가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여권하고의 관련도 있는 것 같고.(웃음) 농담인 것 같지만, 여성단체연합이 실제로는 이전에 민주화 운동을 했던 곳이기도 했어요.

얼마 전 허경영 티셔츠가 히트였는데요, 제 생각에는 한글 티셔츠의 한글은 아직까지도 메시지를 주는 문자로서 더 많이 기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펭도: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된 것이 얼마 안 되었잖아요.(1940년 안동에서 발견) 만일 100년 정도만 되었어도 다르지 않았을까요? 디자인은 사람들의 생활하고 관련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때까지 축적되어온 문화적 역사적 재산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해외에서 타이포그래피를 공부하고 온 많은 사람들이 한글 풀어쓰기를 주장해요. 알파벳을 디자인하다가 모아쓰는 한글로 디자인을 하려니 너무나도 다른 부분이 많은 거죠. 그런 분들이 일본에서 타이포그래피를 공부하고 오셨다면 과연 풀어쓰기를 주장하셨을까요? 저는 달랐을 거라고 봐요.

안상수 선생님이 「'이상' 시의 타이포그라피적 해석」이라는 논문을 1995년에 내셨는데, 그 전까지 거의 한글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연구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 때부터 햇수를 헤아려보아도 지금 십오년이 되었는데요, 그렇게 따지자면 한글 타이포그래피는 아직도 초기 단계라고 볼 수 있죠.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두잉에서는 이후에 한글 타이포그래피 라인을 따로 만들려고 합니다.



아직은 거리에서 한글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분명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으시죠? '프로 디자이너가 아니어도 티셔츠를 디자인할 수 있다. 전문 비평가가 아니어도 비평을 할 수 있다'라는 두잉의 모토처럼 꼭 국문학자나 작가가 아니어도 한글과 한글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분들이 많은 걸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잉의 시의성 있는 공모 주제들 역시 앞으로도 쭉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세요. 한글 타이포그래피 라인도 기다리고 있을게요. :)



기사 작성 : 조지은(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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