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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 있는 작품

석봉 한호(韓濩)의 친필 보물 지정 - 서울역사박물관 소장『석봉한호해서첩石峯韓濩楷書帖』

"불을 끄고 나는 떡을 설테이니, 너는 글을 쓰거라." 라는 한석봉의 유명한 설화를 한번 쯤 들어보셨나요?

최근 조선 중기의 서예가로, 우리에게 한석봉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한호(韓濩, 1543~1605)의 글씨첩이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한호는 우리나라의 서예계에서 추사 김정희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대표적인 서예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화재청이 보물 제1078-3호로 지정한 한호 필적 -『석봉한호해서첩』은 한호가 절친했던 간이당(簡易堂) 최립(崔岦, 1539-1612)의 시문 21편을 단정한 해서로 필사한 것입니다. 일찍이 조선 후기의 명신 서명응(徐命膺)은 “우리나라의 인재는 선조(宣祖) 대에 성하였으니, 이안눌(李安訥)은 시(詩)의 신(神)이요, 최립은 문장의 신이요, 석봉은 글씨의 신이다(保晩齋集)”라고 칭송하였는데, 그가 말한 문장의 신과 글씨의 신의 만남을 바로 이『석봉한호해서첩』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호의 글씨는 이전까지 유행하던 중국의 조맹부 서풍을 벗어나 조선 고유의 서풍을 이루었고, 후세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씨를 따라 배웠기 때문에 그가 우리나라 서예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 글씨첩은 승문원(承文院)에서 문서 정사(精寫)를 담당하는 사자관(寫字官)으로 입신했던 한호의 독특한 서풍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또한 작품이 깨끗이 보존되어 있고 필사한 양도 많으며, 또 하첩 말미에 18세기의 초서명필 만향재(晩香齋) 엄한붕(嚴漢朋, 1685-1759)의 아들 엄계응(嚴啓膺, 1737-1816)이 쓴 1803년 9월의 발문이 있어 그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고 하네요.

한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필로서의 굉장히 유명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친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한호진적 보물 지정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글씨의 신이라 불리던 석봉 한호의 명필, 한번 감상해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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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봉한호해서첩 표지, 
                          2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장황은 근대의 것으로, 제첨은 동창(東倉) 원충희(元忠喜)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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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서(楷書) 부분,
                          간이당(簡易堂) 최립(崔岦, 1539-1612)의 시문을 단정한 해서로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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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서(草書) 부분,
                          이백(李白)의 오언시를 초서로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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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계응의 발문,
                          한호의 글씨를 칭송하고 글씨첩의 내용을 기록하였다.


<이미지 및 자료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 - http://www.museum.seoul.kr/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1기 김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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