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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새로운 시선

'일상 속 사물의 재발견' 숨어 있는 한글 찾기

 물건. 우리가 실제로 접할 수 있는 모든 구체적인 형태와 부피를 가진 것들을  '사물' , 흔히 '오브제' 라고 합니다. 그러한 사물에 대하여 그것을 디자인하고 생산해내는 사람들과 시스템을 고찰해보는 관점의 영상 '오브젝티파이드(Objectified)' 가 작년 디자인영화제에서 각광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시선과 철학으로 제품 디자인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 'Objectified' 영화 포스터 일부 中 ]

 위의 포스터는 어떠한 물건도 글자로 읽히는 신기한 경험을 통해 사물을 재발견해볼 수 있게 합니다. 틀에 박힌 일상에 일말의 상상의 즐거움을 줍니다. 'oBjecTified' 타이포를 이루고 있는 위의 물체들은 볼수록 신기합니다. 아이팟의 조그셔틀, 선글라스 혹은 고글, 치솔 뒤집어놓은 모양, 그리고 클립을 조금만 펴니 e가 되는 군요. 파이프, 백열등, 의자...... 모두가 다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의 모습을 하고 있네요.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를 살고, 매일 무미건조하게 와닿는 사물들을 사용하는 우리들. 사물은 사물일 뿐, 그것들을 단지 사용하기만 하지 내면적으로 대화하거나 느낄 여유가 없는 게 현대인의 일상입니다. 지친 일상에 무언가 활력소가 간절히 필요하다면, 가만히 있지 말고 주변을 한번 둘러보세요. 그리고 주변 사물들의 재발견을 해보는 것입니다. 색다른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익숙해진 모든 것에 대해 '낯설게하기(defamiliarization)'는 예술과 창작의 한 기법입니다. 러시아의 형식주의자인 바흐찐 등이 주창한 '낯설게하기' 는 문자 그대로 이미 익숙해진 사물을 낯설고 이상한 시각에서 새롭게 바라봄을 의미하는데요, 바로 위와 같이 사물을 다른 관점으로 재발견하는 것으로 어떠한 물건도 글자로 읽히는 신기한 경험은 틀에 박힌 일상에 익숙해지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위의 포스터에서
첫 번째 사물, '오리' 가 우리가 흔히 욕조에 띄워놓는 장난감 '오리'로만 보인다면... 좀 더 한글 디자인적인 관점으로 한번 바라보세요. 한글로 읽힐지를 염두해두고 보니
제 눈에는 한글의 자음 가운데 'ㄴ' 으로 보입니다. 그것도 삐침 획이 있는 명조체의 'ㄴ'모양이네요. 두 번째 사물 역시, 우리가 너트라고 부르는 '나사'인데, 다시 바라보니 자음 'ㅇ',  바로 이응 이네요. 누군가는 'ㅁ'으로 읽힌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집게'는 'ㅗ', '열쇠'는 길쭉하게 생긴 'ㅜ' 로 보이고~

 

[ Found Alphabet by Jen Quinn ]

 
 Jen Quinn이 발견한 일상 속 알파벳의 모양처럼 우리의 일상 속 사물들에 숨어있는 한글도, 찾아본다면 끝이 없을 꺼에요. 굴러가는 자동차 바퀴도 'ㅇ' 으로 보일테고, 자전거 손잡이는 느닷없이 'ㅅ'으로 보이고, 지하철 손잡이은 어느샌가 'ㅎ'이 되고, 택배아저씨가 운반하는 박스들은 'ㅁ' 으로 다가오고... 이렇게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삭막하지 않네요. 

                                                

 
                                                 [ lisa reinermann's sky typeface ]

 
 건물이 빼곡한 도시. 답답한 건물들 사이로 하늘을 한번 올려다볼까요? 하늘과 건물 사이의 공간이 만들어내는 알파벳이 눈이 보입니다. 작가 lisa reinermann는 일상 속 타이포의 재발견을 이렇게 새로운 방식으로 시도하였습니다. 사물의 재발견에서 보다 한단계 더 나아가, 공간의 재발견을 이루어내었습니다.  

 

[ Dave Wood's bulldog clip typeface ]

  위트 넘치는 타입페이스 작품입니다. 클립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알파벳 글꼴 작품. 이것 또한 책상 앞에 놓인 클립을 본래의 용도가 아닌, 다른 각도로 바라보고 재발견해 본 결과일 꺼에요.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이렇게 놓고보니 'A' 모양, 저렇게 놓고 보니 'b' 등등... 창조적인 발견은 대단한 것이 아니고 일상에 아주 근접해 있습니다.

  여러분도 일상에 지쳐 무언가가 나에게로 다가와 활력소를 불어 넣어주길 간절히 바란다면, 넉놓고 가만히 기다리지 말고 무언가를 찾아 나서 보세요. 그냥 길을 걷다가도, 보도 블럭에서 다양한 블럭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갖가지 한글 자모음이 보일 수도 있어요. 그렇게 쫓아가다보면 마치 앨리스처럼 어느샌가 원더랜드에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사물을 낯설게 볼 마음의 준비와 열정이 있다면, 새로운 즐거움은 도처에 가득합니다.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2기 최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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