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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새로운 시선

레코딩 스튜디오의 일본식 용어를 찾아서...

무려 35년에 이르는 일제 강점기에도, 한국은 우리 고유의 말과 문화를 지켜내기 위해 숱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한국과 비슷한 기간동안 미국의 식민 통치를 받은 필리핀은 식민 통치 기간동안 미국이 필리핀 국민을 비교적 관대하게 대우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제 2의 국어로 사용할 정도로 미국화 됐다. 이에 비해 한국은 끝까지 우리말과 문화를 일본의 문화 말살 정책으로부터 지켜내 왔죠.  


그러나, 35년이라닌 시간이 그리 짧지만은 않았는지 우리 생활 여기저기에는 일본어의 잔재가 생각보다 많이 흩어져 있습니다. 접시를 ‘사라’, 큰 쟁반을 ‘오봉’이라고 하는 어르신들 생각보다 많습니다. 당근을 뜻하는 ‘린징’, 양파의 일본어인 ‘다마네기’ 역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면서 이러한 단어는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전문적인 영역에서 사용하는 일본어들입니다. 영화나 음악, 미술과 건축 등 전문 분야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수 많은 일본식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실제 현장에 가면, 이사람들이 한국어를 하는지 일본어를 하는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전문 현장에서 쓰이는 용어라 그런지 사람들이 이것을 공식적인 '업계 용어'로 알고 있다는 것이죠. 다음의 간단한 꽁트를 한 번 보세요.

adactio@www.flickr.com


엔지니어: 그만!!! 
드러머:    왜요? 분위기 좋았는데... 기까기 죽이게 들어갔잖아요!
엔지니어: 임마. 기까끼를 좀 와꾸에 맞게 넣어라. 후루꾸로 
               한방 노리지 말고!
드러머:    예... 
엔지니어: 그리고, 노래의 사비에서는 심벌 한 번씩 찍어주는 것도 
               잊지 말고...



이 콩트가 과장같을진 몰라도, 이정도 대화는 실제 레코딩 스튜디오 등 음악 현장에서는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기칵케(きっかけ)'라는 말은, 가부키에서 배우의 출입이나 음악, 조명 등의 변화가 시작되는 동작이나 대사를 말합니다. 보통 드럼 연주에서 분위기가 변하거나 액센트를 주고 싶을 때 넣는 솔로 연주 등을 의미해요. 정확한 용어는 ‘브레이크(Break)’나 ‘필인(Fill In)’이 되겠습니다. 이 또한 미국 용어이지만, 아직 용어가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공식적인 용어를 쓰는 것이 낫겠죠? 
'와꾸(わく)'는 '(콘크리트 공사 등에 쓰는) 상자 모양의 널. 패널. 콘크리트용의 거푸집’을 뜻하는 말입니다. 음악계에서는 어떤 노래의 구성이나 진행을 뜻하는 은어로 쓰이는 일이 많은데요. 이 역시 굳이 일본식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구조’‘편곡’ 정도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출처:SK커뮤니케이션즈


‘사비(サビ)’라는 용어는 여러 가지 설이 많지만, ‘Subject’라는 영어를 일본식으로 줄였다는 이야기가 가장 유력하더군요. 사비는 보통 노래에서 가장 강렬하게 인상을 남기는 부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원더걸스의 <Tell Me>를 보통 ‘훅 송’이라고 하죠? 사비가 바로 ‘훅(Hook)’입니다. 

제가 가장 원하는 것은 브레이크나 필인, 훅 같은 용어가 아름다운 우리 말로 바뀌어 쓰는 것이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이를 대처할 우리 말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한 번 만들어 주시지 않겠어요?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에 이러한 말이 널리 퍼지게 될 수도 있잖아요. ;-)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2기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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