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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새로운 시선

제가 3,800원짜리입니까?

외국사람들은 (당연히) 한글 배우기를 꽤 어려워 한다고 합니다. 다른 문자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받침’ 글자나 종결어미의 다양성, 조사와 띄어쓰기 문제 등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이런 것은 다 연습만 하면 고칠 수 있는 일이죠. 실제로 한글 배우기를 힘겨우 하는 이유중 가장 큰 것은 바로 ‘존댓말’이 아닐까 생각해요. 

자신의 옆집에 사는 ‘톰’이라는 아저씨를 지나가다 만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라틴 문자를 사용하는 문화권이라면, 열 살 짜리 꼬마건 80세가 넘은 할아버지건 인사는 ‘안녕, 톰!’ 정도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라면 굉장히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길 수 있습니다. 톰 아저씨가 친척이라면 ‘안녕하세요. 이모부’, 손아랫처남이라면 ‘처남 잘 지내나?’ 같은 인사가 나올 수 있겠죠. 이밖에도 변수가 참 많죠?
하지만, 한국 사람들도 존댓말을 정확히 사용하지 않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됩니다. 실생활에 잘못 쓰이고 있는 존댓말, 지금부터 몇 가지만 짚어볼까요?


 Case #1 - 제가 3,800원짜리입니까? 

가끔 커피 전문점에 가서 점심을 해결할 때가 있습니다. 샌드위치 하나를 골라 계산대에 올리고, 아메리카노 작은 사이즈를 하나 주문하면 예쁘장한 아르바이트 직원이 제게 상냥한 목소리로 말해줍니다. 

“3800원이십니다~”


아가씨! 내가 3,800원짜리입니까?! 이렇게 오해할 한국인이야 물론 없겠지만, 이건 틀린 맞춤법이죠. 사람 이름이 ‘삼천팔백 원’이 아닌 이상, 아무리 황금 만능주의가 팽배한 시대라도 돈을 존대할 필요는 없는거잖아요. 이경우에는 ‘3800원 입니다~’ 해도 전혀 예의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택배 도착하셨습니다’ 같은 말도 마찬가지에요. 무슨, ‘택배님’께서 도착하신 것도 아니고 말이죠. 


 Case #2 - 이사인 나보다 김부장이위인거냐?

“어이 이대리! 지금 박이사님이 연락이 안되는데, 
내가 지금 기다리는 전화가 있어서 움직일 수가 없네? 
휴게실 가면 계실테니 30분후 임원진 긴급 회의 
참석하셔야 한다고 좀 전해줄래?”

휴게실로 들어선 이대리... 마침 박이사님께서 찾아온 친구와 담소를 나누고 계십니다. 잠시 대화중 양해를 구한 이대리는 이사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이사님, 김부장님께서  잠시후 회의 참석해야 한다고 전해달라십니다.”

갑자기 들리는 고함소리...

“이대리! 김부장이 내 윗사람이야?”


외국사람들이 제일 어려워 하는 게 바로 한국의 ‘위계질서’입니다. 형과 동생, 높고 낮음이야 외국에도 있는 문화지만, 이렇게까지 철저히 구분지어 존칭을 쓰는 경우는 아마 동양 문화권 중에도 한국이 유별나지 않나 싶어요. 방금 이대리가 박이사에게 한 말은 뭐가 문제인걸까요?

방금 이대리는 자신의 상급자인 김부장의 말을 박이사에게 전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박이사에게 김부장은 하급자가 되겠죠? 이대리는 ‘김부장님’이라고 존대를 하면서 박이사와 김부장을 최소 동급으로 취급하는 실수를 한 것이죠. 

바르게 고치자면, ‘이사님. 김부장이 잠시 후 회의에 참석하셔야 한다고 전해달라고 합니다.’ 라고 고치면 되겠습니다. 물론, 연락이 안되는 상황이니 이대리가 말을 전한 것이지 원칙적으로는 김부장이 직접 박이사를 찾아가야 하는 거겠죠?

‘동방예의지국’인 한국. 사실 조금 불편하기는 합니다만, 어른을 공경하는 아름다운 한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올바른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여러분도 조금만 신경쓰신다면, 상황에 맞는 존댓말을 구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2기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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