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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새로운 시선

음악 용어, 왜 일본식 용어가 많은 걸까?


한국에서 첫 번째 음반 녹음이 언제 시작했는지는 알수 없습니다.
사실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아 최초의 녹음 스튜디오가 어디인지도 잘 알 수 없죠.
현재 구글링을 통해서는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영화의 거의 80%를 넘게 녹음했으며,
영화 음향 전문 스튜디오 ‘한양 스튜디오’의 창립자인 이영순씨가 기록상 최초의 영화 음향
기사라는 것 밖에는 알아낼 수가 없네요. 

시네21 홈페이지 기사

출처: 시네21 홈페이지 기사


사실, 현실이 그랬습니다. 당시 그 시절 음악계 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죄다 '딴따라’라는 낮춤말로 싸잡을 때이니... 게다가 대부분의 장비나 서적들은 일본을 거쳐 들어와 일본인들 위주로 돌아가던
산업이었으니 제대로 된 기록이 남아있을 리가 없죠. 

해방이 되고, 일본인들은 자기 나라로 떠나가 대부분의 음악산업은 한국인들의 손으로 들어오게 
되었지만, 주로 일본인들과 함께 일한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용어는 결국 일본식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많은 부분들이 없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음악 분야에서는 일본 용어의 잔재가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일단, 제가 취미로 기타를 치니 기타 용어부터 알아보도록 할께요. 기타를 치는 사람들이라면 ‘초킹’이라는 주법을 들어봤을거에요. 기타의 플랫을 누른 채로 손가락을 밀어 올려 음을 올리는 기술이죠. 연주자들마다 뉘양스의 차이가 달라지는 초킹 주법은 음을 떨리게 하는 비브라토와 함께 기타리스트들의 특징을 나타내는 중요한 주법입니다.  그런데, 사실 초킹이라는 말은 일본식 기타 주법 이름입니다.

초킹, 아니 벤딩을 하는 손의 모습

초킹, 아니 벤딩을 하는 손의 모습


초킹의 바른 이름은 바로 ‘벤딩(Bending)’입니다. 벤딩은 ‘구부리다’라는 뜻의 영단어의 현재진행형으로, 줄을 구부리는 듯한 형태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일본식 음악 용어를 써서는 안될 법은 없지만, 굳이 기타의 발상지도 아닌 일본의 용어를 쓸 필요는 없겠죠? 주로 일본의 교본을 번역한 한국
기타 교본들에는 ‘초킹’으로 나오지만 미국의 교본에는 모두 ‘벤딩’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또 하나 간단히 예를 들어볼까요? ‘일렉트릭 기타’ 하면 생각나는건 뭐니뭐니해도 거칠게 일그러지는 굉음일 것입니다. 예전에는 기타 앰프의 볼륨을 최대로 해 소리를 일그러지게 했지만, 점점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타 소리를 일그러지게 하는 다양한 종류의 효과기기가 선보이게 됐습니다.
보통 ‘이펙터’라 하죠?
‘디스토션(Distortion)’이나 ‘오버드라이브(Overdrive)’도 있지만, ‘현대 일렉트릭 기타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할 수 있는 지미 헨드릭스의 사운드의 핵심인 ‘퍼즈(Fuzz)’를 빼놓을 수는 없죠. 

지미 헨드릭스가 사용하던 'Fuzzface'

지미 헨드릭스가 사용하던 'Fuzzface'


그런데, 일본의 기타 교본이나 각종 음악 관련 서적에서는 퍼즈를 ‘파-즈(パズ)’라고 부릅니다.
처음에 일본 기타교본을 번역한 한국 기타 교본을 읽던 중, ‘기타의 일그러진 사운드를 얻으려면
디스토션이나 오버드라이브, 파즈류를 사용해야 한다’라는 부분이 도저히 이해가 안가 그냥
무시했던 기억이 납니다. 

모든 외국어를 최대한 자국어로 표기하는 일본인들의 특성은 이해하고 본받을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좀 너무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발음이 비슷한 단어들은
괜찮은데, ‘오스트레일리아’를 뜻하는 ‘오-스또라리아(オーストラリア)’ 같은 용어들은 좀
너무하지 않나 싶다는 생각까지 들거든요. 그냥 차라리 영문으로 ‘Fuzz’라고 표현하는 게 더
올바른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믹싱콘솔의 채널 부분

믹싱콘솔의 채널 부분


기타나 신디사이저를 그냥 앰프에 연결하거나, 믹싱 콘솔에 연결할 때 보통 서적에서는
앰프의 입력 단자나, 믹싱 콘솔에 연결한 다이렉트 박스의 출력 단자를 악기의 아웃풋
단자와 연결한다’라고 써있는 것을 보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단자(端子)’는 보통 전기기기들의 입출력 부분을 나타내는 말로, 이것도 일본식 한자 용어입니다.
알맞은 우리 말이 있으면 좋겠지만, 딱히 없기 때문에 ‘채널’이나 ‘커넥터’ 같은 공식적인 용어를
사용하시면 되겠습니다.  

음악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좋은 한글 용어가 많지 않다는게 참 아쉽기만 합니다. 기타를 치는 한국 사람으로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 용어들을 한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도 참 꺼림직한 일이구요. 그러나 어차피 외국의 문화인 이상, 올바른 외국 용어가 있다면 그것을 정확히 쓰는 것이 제대로 된 차선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2기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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