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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새로운 시선

문맹률 0%가 입증하는 한글의 과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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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학과의 찰떡궁합, 훈민정음

 이제 한글(훈민정음)의 과학성은 세계의 전문가들이 두루 입증하는 세상이 되었다. 유엔의 유네스코에서 문맹 퇴치에 이바지한 사람들에게 주는 상 이름을 ‘세종대왕상(The King Sejong Prize)’라고 명명한 것은 아주 상징적인 예이다.
 ‘문맹률 0%’ 가까운 국민이라는 놀라운 사실이 한글의 과학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그들도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과학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이다. 그러나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다. 과학의 꽃 컴퓨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문자임을 입증하면 된다.

 컴퓨터 과학자인 변정용 교수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컴퓨터야말로 한글과 궁합이 매우 잘 맞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만능의 기계로 생각하는 컴퓨터는 단 두개의 숫자 ‘0’과 ‘1’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되풀이하는 것인데 이 세상을 순식간에 정보화시대로 만들지 않습니까? 서양음악의 경우도 ‘도레미파솔라시도’ 일곱 개의 음만을 가지고 모짜르트의 고전음악에서부터 우리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서태지의 랩음악까지 무궁무진하게 만들어 냅니다.
 한글의 경우도 똑같습니다. 28글자의 유한수의 기호와 몇 가지의 규칙만으로 천지자연의 무한한 소리를 만들어 표현하는 방식이 바로 한글의 특성이지요. 그런 점에서 한글은 다른 어떤 글자보다 과학적이며 현대 첨단과학의 산물인 컴퓨터의 원리에 매우 잘 부합하는 문자입니다.
  한글이 로마자보다 컴퓨터에 더 적합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자판에 글자를 배열할 때 타자의 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사용하고 집게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좀 더 자주 사용할 수 있게 배열해야 되는데, 로마자의 경우 소리마디의 구성에서 자음과 모음이 어울리는 규칙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배열이 매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서 현행 쿼티키보드에서 R, E, A, D를 칠 때 왼손만으로 쳐야 합니다. 그런데 한글은 한 소리마디 구성에서 자음-모음, 또는 자음-모음-자음의 두 가지로 일정합니다.”1)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한글이 핸드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문자임을 입증하면 된다. 핸드폰이야말로 컴퓨터 원리의 최고 집적물이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과학의 꽃이라면 핸드폰은 컴퓨터의 꽃인 셈이다. 핸드폰의 자판은 컴퓨터의 자판보다 글자쇠가 더 적기 때문에 한글의 과학성이 더욱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현재 휴대전화 자판은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표 1>에서 보듯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이들은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뚜렷하지만 저마다 회사의 이익이 걸려 있어 표준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두 방식 모두 가획과 배합의 한글의 과학 원리를 반영하고 있다. 자음과 모음의 과학적 원리를 어느 쪽이 더 많이 반영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자음위주의 배치방식은 모음 최소 배치를 통해 모음자 만드는 원리를 최대한 반영하고, 모음위주의 배치방식은 자음 최소 배치를 통해 자음 만드는 원리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방식이든 간에 영자 자판과 비교할 때 그 운용체계가 훨씬 합리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널 사랑해’와 ‘I love you’만 비교해 봐도 금방 드러난다. 자모음의 자소 자체는 한글은 10자지만, 영어는 8자로 두 자가 적다. 그러나 실제 자판을 누르는 횟수는 한글은 18번, 영문은 커서를 옆으로 옮기는 것을 제외하고도 26번이다. 
 또한 한글은 굳이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도 무슨 뜻인지 거의 알 수 있지만 영문은 띄어쓰기를 하지 않으면 정확한 의미를 알기가 어렵다. 가령, ‘널사랑해’와 ‘ Iloveyou’를 보면 알 수 있다. 또 한글과 달리 영문은 대소문자가 나누어져 있어 메뉴버튼을 눌러서 대소문자를 변환시켜주어야 하기 때문에 매번 메뉴버튼을 눌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2. ‘과학 한글’의 실체 

 2-1. 문자 생성의 과학성 
 일반적으로 과학이라고 하면 자연과 대립적인 말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과학을 기술이나 물질문명 차원에서 얘기할 땐 자연과 대립적인 개념이지만, 알고 보면 과학 그 자체는 자연과 하나가 된다. ‘자연과학’이란 말이 있듯이 자연 속의 보편법칙을 찾아내 설명하는 것이 과학이기 때문이다.
 근대과학을 열고 완성한 갈릴레이나 뉴우튼 역시 자연 속의 보편법칙을 제대로 찾아내 설명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종은 인간의 소리에서 보편법칙을 제대로 찾아내 문자화시켰다. 이는 자음자와 모음자의 상형방식에서 드러난다.




 자음을 순우리말로 ‘닿소리’라고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모음과는 달리 발음하는 과정이 특정 발음기관, 발음부위와 연관되어 있다. 반면에 모음은 순우리말로 ‘홀소리’라고 하는데 자음자와 달리 특정 발음기관과 관련이 없다.
 세종은 이런 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자음자의 원형문자 다섯 자를 발음기관과 발음작용을 상형해 만들었고, 모음자의 원형문자 세 자를 하늘과 땅과 사람의 추상적인 모습으로 상형했다. 그래서 한글은 창제과정이 분명한 가장 인공적인 문자이면서도 가장 자연스러운 문자가 되었다. 가장 자연스러운 문자를 만들고 보니 가장 과학적인 문자가 된 셈이었다.
 소리문자의 대표격인 서양의 알파벳이 소리의 자연 이치를 직접 반영하지 않은 데 반해 한글은 직접 반영한 소리문자인 셈이다. 나머지 문자도 이러한 원형문자에서 배합 확장해 나가는 방식을 썼기 때문에 기본 문자 모두가 소리문자로서의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이다.


  여기서 이체자라는 것은 가획의 원리를 전혀 적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계열의 문자들과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른바 꼭지이응은 생긴 것은 목소리 글자들과 같은 계열이지만 소리로서는 기역과 같은 계열이다. 소리 성질에 따라 어금닛소리는 목소리에서 이어져 나는 곳이므로 목소리 동그라미에 꼭지를 가획하여 만들었다.
 소리 나는 과정을 반영하다 보니 박쥐(이것과 저것을 함께 포함하는)같은 기호가 되었다. 반설음과 반치음도 가획의 원리를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가획의 의미가 없고 소리성질의특이성 때문에 특별한 명칭과 더불어 이체자라 한 것이다. 곧 다른 가획자는 획을 더함으로써 거센소리가 되고 원형문자와 논리적 관계에 놓이게 되지만 이들 반설음과 반치음은 그렇게 논리정연한 자리매김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운용(응용)문자는 <표 5>에서 보듯 합체방식에 의해 가로로 합체하는 병서와 세로로 합체하는 연서글자를 만들어 냈다. 여기서 각자병서의 ㅇㅇ,ㄴㄴ는 글자 설명에는 나오지 않지만 실제 문헌에서 쓰인 글자이다.
 이 두 자를 빼면 자음자는 모두 37자, 두 자를 합치면 39자가 된다. 실제 우리말 표기에 쓰이지 않은 글자도 있지만 ‘원형문자’에서 ‘기본문자’로 ‘기본문자’에서 ‘응용문자’로 확대해가는 과정이 논리정연하다.



 모음자의 경우는 원형문자 세 자를 1차 배합하여 초출자 4자를, 2차 배합에서 4자를 만들어, 기본자 11자가 되었다. 초출자, 재출자에 쓰인 아래아(·)는 다른 글자(-, 1)와 대등하게 합쳐진 것이 아니라 글자 생성의 기준역할을 한 셈이다. 운용글자 18자에 쓰인 아래아(·)는 대등한 자격으로 합쳐진 글자이다.

 


 2-2. 문자 도형의 과학성
  
 한글의 두 번째 과학적인 특성은 도형의 과학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치 수학의 연산기호처럼 간단한 도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도형의 기본이 점과 선과 원이라면, 한글은 이런 기본도형으로 이루어졌다. 직선과 사선을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가로와 세로, 긴 선과 짧은 선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그야말로 도형문자, 그래픽 문자를 만들어냈다.
 특히 자음자와 모음자를 막론하고 도형의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대칭구조가 되었다. 기본 자모음자 28자 가운데, 대칭원리가 적용되지 않은 글자는 ‘ㅋ’자가 유일하다. 자음자를 대칭방식별로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ㄱ ㄴ’ 의 경우 두 글자 대각선 대칭이다. 모음의 경우는 글자 각각으로 보면 상하, 좌우 대칭이지만 기본 글자를 모두 모아 보면 사방 대칭이 된다. 모음자의 경우, 한 글자 내부 대칭은 물론 기본자 11자가 짜임새(시스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자음자와 모음자가 대칭구조로 되어 있다 보니 자음자 모음자도 합리적인 배치가 가능한 것이다. 더욱이 아래 그림처럼 21세기 첨단 입체수학인 위상학(topology)의 원리와도 같이 최소한의 공간에서 최대한의 문자결합을 이뤄낸다. 한 글자를 같은 자리에서 90도 단위로 회전시키면 새로운 글자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자음자와 모음자를 확연하게 다르게 도형화시킨 것도 과학적인 특성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훈민정음은 다른 문자와는 달리 자음과 모음의 균형대응이 된다. 영어는 26자 자모 중에 모음은 다섯 자(a, e, I, o, u) 뿐이면서 자음이 21자나 되지만, 훈민정음은 자음이 17자, 모음이 11자로 수적인 균형이 어느 정도 맞는다.



 실제 쓰임새에서 영어는 자음과 모음의 배열이 들쑥날쑥하다. ‘school'은 ‘자자자모모자’이고, ‘apple'은 ‘모자자자모’이다. 그러나 훈민정음은 매 음절마다 모음이 배치되어 일종의 기준 역할을 한다. 이런 자음과 모음의 효율적인 대응성은 컴퓨터 자판을 보면 금방 드러난다.
 한글자판은 왼쪽은 자음, 오른쪽은 모음으로 확연히 나누어져 있어 배우기 쉽고 치기 쉽다. 이에 반해 영어는 모음의 글쇠 위치에 일정한 원칙이 없고 칠 때도 ‘read'의 경우와 같이 오로지 왼손으로만 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음운은 초성, 중성, 종성으로 삼분법으로 나누되 문자는 초성자와 종성자를 같이 쓰게 하는 이원화의 방법을 채택했는데, 오늘날 두벌식 표준화 자판이 가능한 것은 훈민정음의 이런 중층 (이분법과 삼분법)의 속성 때문이라 볼 수 있다.





 2-3. 소리성질의 과학성  
 흔히 한글을 자질 문자 또는 소리 바탕 문자라고 한다. 문자 자체가 소리의 성질을 과학적으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영국의 저명한 문자 학자 샘슨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뒤로 붙여진 이름으로 이제는 자연스러운 명칭이 되었다. 

 “과학적으로 볼 때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라는 사실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한글은 일정한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문자라는 점에서 세계에서 그 유례가 없습니다. 로마자, 그리스 문자 등 세계의 모든 문자들은 오랜 옛날에 중동지방에서 생겨난 알파벳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한글은 음성기관의 소리 나는 모습을 따라 체계적으로 창제된 과학적인 문자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문자 자체가 소리의 특질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영어의 T와 N이라는 글자는 소리를 갖고 있지만 그들과 음성기관의 모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글의 ㄴ은 혀가 잇몸에 닿는 모습을 본떠 만들었고 또 T에 해당하는 ㄷ은 ㄴ에 한 획을 더하여 같은 자리에서 소리 내는 것을 나타내고 글자는 이런 방식으로 발성기관의 모양을 따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세계의 다른 어떤 문자에서도 그런 과학적 원리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놀랍게도 한글은 500년 전에 그런 언어학적 원리에 따라 창조되어 실용화되었습니다. 서구의 많은 학자나 지식인들은 이 특이한 한글의 창조원리에 감탄해마지 않습니다.”2)

 자음의 경우 발음기관 위치에 따라 다섯 음으로 나눈 뒤 네 가지 소리성질을 반영해 분류했다. 원형문자 다섯 자 가운데 세 자가 가장 여린 소리인 울림소리에 해당된다. 문자 만드는 원리에 소리성질을 바탕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거센 소리는 가획자로 이루어져 있고, 된소리에 해당되는 전탁자는 전청글자를 거듭 써서 만들어 소리와 문자의 유기적 관계를 보여 주고 있다.
 모음자도 아래아(·)가 위쪽과 오른쪽으로 향해 있으면 양성모음이요 아래쪽과 왼쪽으로 향해 있으면 음성모음이다. 모음조화의 성질을 문자 자체에 반영해 놓은 것이다. 자음의 경우 발음기관 위치에 따라 다섯 음으로 나눈 뒤 네 가지 소리성질을 반영해 분류했다. 원형문자 다섯 자 가운데 세 자가 가장 여린 소리인 울림소리에 해당된다. 문자 만드는 원리에 소리성질을 바탕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문자에 소리성질을 담다 보니 다른 문자에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1자 1음주의’라는 과학성을 이뤄냈다. 음운과 문자가 일치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최대한 이런 원칙에 근접시킴으로써 읽기 쉽고 쓰기 쉬운 문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특징이 왜 과학적이고 실용적인지는 영어의 불편함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영어는 한 소리가 여러 문자로 표기되거나 한 문자가 여러 소리를 낸다. 이를테면 a는 열 가지 정도의 발음으로, e, o는 열세 가지 정도, u는 아홉 가지 정도로 발음된다. 거꾸로 [o]라는 발음은 ‘all, caught, poll’ 등과 같이 다양한 문자로 표기된다. 그래서 발음기호가 필요한 것이다.
 미국의 생물학자 다이아몬드는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한 바 있다.
 
 “영어를 읽고 쓸 줄 아시오?”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의당 이렇게 답할 것이다. “물론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 잡지를 어떻게 읽고 있단 말이오?” “그렇다면 영어의 글말에 숨어있는 규칙(맞춤법)을 남에게 설명해 보려고 한 적이 있어요? 말하자면, ‘seed'란 낱말은 왜 ‘cede'나 ‘ceed', 또는 ‘sied'로 쓰지 않고 하필 그렇게 적으며, [sh] 소리는 왜 ‘ce'(ocean)나, ‘ti'(nation) 또는 ‘ss'(issue)같이 여러 가지로 적을 수도 있는 것인지 말이오.” 물론 이러한 예는 수없이 많다. 모두 영어의 글말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드러내고 있는 악명 높은 보기들이다.
 요즘 내가 1학년에 다니는 우리 집 쌍둥이 아들들을 통해서 새로이 느끼고 있는 바이지만, 영어의 맞춤법은 너무나 일관성이 없어서 비록 맞춤법의 기본규칙(그런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을 익힌 어린이라고 해도, 아직도 읽지 못하는 낱말이 많을 뿐 아니라, 들은 말을 글로 적지 못하는 일이 많은 것이다.3)
 
  이러한 영어 알파벳의 발음과 기호의 불일치는 숱하게 지적되어 온 것이며, 존 맨도 한글이 모든 알파벳의 꿈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장에서 반 이상을 영어 알파벳의 불편함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영어 철자법 알아맞히는 학생들 대회가 매우 비중 있는 행사가 된 것이다.
 세계음성기호(IPA)는 그런 불일치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것인데, 한글은 그 자체가 이런 음성기호 구실을 할 수 있는 바탕문자인 것이다. 한글은 몇 가지 예외는 있으나 한 음운이 한 문자로 표현되고(/a/-ㅏ), 거꾸로 한 문자는 한 음운(ㅏ-/a/)으로 나타난다.
 이 원리가 지켜진다면 배우기도 쉽고 표기법을 세우기도 쉽다. 또한 정보기기에서의 음성인식에서도 놀라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실제로 핸드폰에서 음성으로 이름과 번호를 검색할 수 있는 것은 이런 특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더 나아가 훈민정음은 소리의 이치를 따랐기에 음률의 이치까지 담을 수 있었다. 훈민정음 해례를 보면 자음들이 어떻게 우리 국악의 오음에서 배치되는지를 분명히 밝혀 놓았지만, 대다수 학자들은 이를 오행에 따른 관습적 배치로만 여겼었다.
 그러나 한태동(2003)은 이를 현대음악으로 입증하였다.4)  이렇게 보면 자음에 아래와 같은 동양의 오행철학을 부여한 것은 자연의 소리성질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모음자의 경우 수리적 의미를 부여했는데, 숫자적 의미 부여를 통해서 자음자에 비해 유동적인 모음자의 체계를 좀 더 짜임새 있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해례에서의 설명을 숫자 차례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위 설명을 입체그림으로 그려 보면 열 개의 모음이 그야말로 정형화된 기하구조로 배치됨을 알 수 있다. 이런 한글의 자질문자로의 위치를 일본의 저명한 훈민정음 연구학자인 우메다 히로유기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이 세상의 글자는 크게 3가지로 발달되어 있습니다. 한자와 같은 뜻글자, 일본의 가나와 같은 음절문자 그리고 로마자나 한글과 같은 음소문자가 그것입니다. 이들 글자들은 만들어진 시대상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기능상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음소문자이면서도 로마자보다 한층 차원이 높은 자질문자입니다. 이것은 한글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특징입니다.”




 2-4. 음절배합의 과학성 
 한글은 영어와는 달리 음절단위로 모아쓴다. 이런 특징 때문에 한글은 가로로 뿐 아니라 세로형으로도 글자를 배열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모아쓰기 음절글자의 장점은, 자음과 모음을 결합하여 수많은 음절글자를 생성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과학적 원리의 실용성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아래의 표에서 보여주는 현대 자모음들만 보더라도 현대어에서 생성될 수 있는 음절글자는 받침 없는 음절 399자(초성 19자 X 중성 21자), 받침 있는 음절 10,773자(399자 X 종성 27자) 등 무려 11,172자나 된다. 15세기의 자음자와 모음자는 현대말보다 훨씬 많으므로 생성 가능한 글자 수도 더욱 많았다.
 15세기 자음자의 <표 5>와 모음자의 <표 6>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받침 없는 음절은 986자(34자×29자), 받침 있는 음절은 33,524자(986자×34자)에 이른다. 이러한 놀라운 숫자는 한글의 과학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그만큼 인간 소리에 대한 표기영역이 넓다는 반증인 것이다. 



 3. 마무리
 
 한글의 과학적 원리의 원천은 ‘훈민정음 해례본’ 중 제자해에서의 다음 설명이 극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그 내용을 오늘에 되살려 해석하면 자연의 이치에 따라 만든 문자가 바로 한글이라는 것인데, 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앞에서 살펴본 내용들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한글이 과학으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천지자연의 이치는 오직 음양오행뿐이다. 곤괘와 복괘의 사이가 태극이 되고, 움직이고 멎고 한 뒤가 음양이 된다. 무릇 천지자연의 어떤 생물이든 음양을 버리고 어찌 살 수 있는가? 따라서 사람의 말소리도 모두 음양의 이치가 있건마는 생각건대 사람들이 살피지 않을 뿐이다.
 이제 정음을 만든 것도 처음부터 지혜로써 경영하고 힘써 찾아 낸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소리에 따라서 그 음양의 이치를 다하였을 뿐이다.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닌 즉 어찌 천지의 신(귀신)과 더불어 그것을 부려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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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 2) 훈민정음 기록 영화 ‘세계로 한글로’(감독:이봉원, 시나리오 초안 구성:김슬옹, 제작:국어정보학회), 1996년 10월 9일 KBS 방송
3) Diamond, Jared, 1994,〈Writing Right〉, Discover, June/ 이현복 옮김,「한글 새소식」1994년 8월호.)
4) 훈민정음의 음률도(한태동 2003: 171)
 
구분 변상 변치
불탁(不濁) ㅁ ㅱ
전청(全淸) ㅂ ㅸ    
차청(次淸) ㅍ ㆄ    
전탁(全濁)   ㅆ 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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