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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행사와 모임

한글문화관 조성, 왜 필요한가?-한글문화관 건립의 당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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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그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인정하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한글이 그 이름값만큼 제대로 대접받고 있는지 자문해보는 토론회가 있었다.
 지난 2008년 10월 1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렸던 ‘한글문화관 건립에 대한 토론회’는 한글에 집중하는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세계문화 속에서 한글이 영향력을 행사할 토대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자리였다.
 이날
“한글문화관 조성, 왜 필요한가?”라는 발제내용 가운데 한글문화관과 관련된 문제의식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 ‘한글문화정책의 현황과 문제점’ 부분을 소개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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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문화정책의 동향과 주무기관의 변화


 1443년 세종이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이름으로 창제한 한글은, 사대부들의 멸시로 반포 후에도 근세에 이르기까지 우리글로 공인받지 못했다. 심지어 숙종 초에는 한글로 작성된 문서에 대해선 법적인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단행법령이 내려진 적도 있다. 한글이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고종이 ‘법률과 모든 칙령에서 한글을 으뜸으로 삼고 한문은 번역을 붙인다’는 ‘국한문 혼용에 관한 법령’을 마련하면서부터였다. 해방 후에는 정부가 조선어학회의 맞춤법과 표준어를 교육용어로 채택하고 1948년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까지 발효됐으나 실제로는 국한문이 혼용되는 문자생활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러던 것이 1976년 대통령령으로 정부 차원의 국어순화운동이 추진되고 1988년 ‘한글맞춤법’이 고시되기에 이른다. 1990년에는 정부조직개편으로 신설된 문화부가 그동안 문교부 편수국에서 다루던 국어정책을 이어받아 한글정책을 담당하면서 문화정책으로 전환되는 계기를 맞는다.

 한글에 관한 정책이 처음 마련된 곳은 세종조에 한글 창제를 도왔던 집현전 언문청이었다. 그 뒤 학부(지금의 교육부) 내 국문연구소(20세기 초), 문교부 편수국(정부수립 후), 문화부 어문출판국 어문과(1990년)를 거쳐 1994년부터는 문화체육부 문화정책국에서 관장하고 있다. 문화체육부 문화정책국에 속해 있는 동안에도 어문과에서 국어정책과로, 다시 국어민족문화과로 그 소속을 조금씩 달리해 왔다. 현재는 2004년 확대 개편된 국립국어원이 국어정책과에서 담당해오던 국어정책 수립 및 집행기능의 많은 부분을 이관 받아 집행하고 있다.


한글문화정책의 현황과 한계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동안의 한글 관련 정책들은 어문 중심 정책에 치우쳐 있었던 게 사실이다. 국어기본법 제정 및 국어기본계획 수립 등 국민들의 언어능력 향상을 위한 국어 기초발전을 위한 지원이 대부분이었으며,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가치 인식과 그 활용을 위한 정책은 매우 미비한 실정이었다. 유네스코가 수여하는 문맹퇴치 공로상의 이름이 ‘세종대왕상’일 정도로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있으나 정작 우리 국민들은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원리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 2005년부터 정부가 한국의 고유성에 기반을 두면서도 세계적 보편성을 갖는 컨텐츠를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 시작한 ‘한스타일’ 사업에서도 한식, 한복, 한옥, 한지, 한국음악 등과 함께 한글이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해외 세종학당 개설 및 운영과 국내외 한글 전문가 양성 등 한류 지원 및 해외보급 사업, 해외 실정에 맞는 맞춤형 한글 교육자료 개발 및 이주민 대상의 한글교육 기반 구축 사업, 한글 디자인 상품 개발과 한글 전자학습체계 구축 등 한글의 산업적 활용 및 정보화 촉진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한식이나 한복에 대한 지원과 연구에 비하면 한글 기반의 컨텐츠 개발에서는 아직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보인다.



한글을 문화로 인식하는 정책의 부족


 이러한 현황에 비추어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우선, 국어교육 중심의 정책으로는 한글문화정책의 구현이 미흡할 수밖에 없는 점이다. 한글을 문화라고 인식하기보다 자국 국민이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말글 교육의 일환으로만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영어조기교육과 해외조기유학 등 영어교육의 열기를 증대시키고 외래어와 외국어의 오남용 등 국민의 한글사용 능력을 저하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보다 더한 문제는 우리 민족의 독창성을 대표하는 가치물임에도 불구하고, 한글정신이나 그 창제원리에 대해서 국민들이 무지하다는 사실이다. 2006년 문화관광부가 1,175명의 내국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글이 연상시키는 이미지’에 대해 63.9%가 세종대왕을, 9.9%가 훈민정음을 꼽았지만, 한글의 우수성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5.9%에 그쳤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글의 세계화를 위한 한국어교육 보급정책에도 문제점이 있다. 재외동포 및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세계화 전략이 추진되고 있으나, 그것도 그야말로 언어교육의 차원에 치중해 한글에 담긴 한국의 문화를 보급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한국어 교육 지원도 계속 증가하는 학습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예산 및 프로그램이 부족한 실정이다.
 서구 선진국들이 자국의 언어를 세계에 보급하는 데 힘쓰고 있는 내용(2006년 기준
)과 비교해보면 그 실태를 알 수 있다. 영국이 세계 110개국에 220개, 독일이 74개국에 144개, 일본이 96개국에 187개의 자국어 보급시설을 갖추고 있는 데 비해 한국은 45개국에 60개의 시설만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지원예산도 영국이 9,280억 원을, 일본이 4,380억 원을 투자한 것에 비해 한국은 200억 원 정도에 그쳤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어 세계화 및 해외보급 관련 산하기관의 역할이 중복되기까지 한다.

 또 다른 문제점으로 한글에 대한 미학적 접근과 문화상품 개발의 미흡을 들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전자출판이 확대되면서 다양한 글자체에 대한 수요 급증으로 민간업체를 중심으로 한글꼴 개발이 증가해 왔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는 월드컵과 한류를 계기로 한글의 디자인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것이 사실이다.
 파리컬렉션에서 선보인 이상봉의 한글패션이나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한글로 새긴 휴대폰 등은 한글의 미학적 가치를 상품화한 좋은 선례로 기록됐다. 그러나 아직 한글 관련 문화상품의 개발이 소수의 개인이나 중소기업 수준에서만 이뤄지고 있어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한글문화의 구심점으로서의 아카이브 미구축


 지금까지 한글은 국어의 일부로 인식되어 주로 언어학이나 교육학 분야에서만 다루어졌다. 2005년 발표된 ‘국어기본법’의 경우 한국어에 대한 언급은 하면서 한글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또한 한글에 대한 연구는 한글학회, 훈민정음학회 등 민간차원에서 일부 수행될 뿐 정부차원의 연구 및 실행을 위한 주무기관이 부재한 실정이다.

 한글 관련 문화유산 중 일부는 국립중앙박물관 한글실에 전시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유산들이 개인소장 또는 사립대학, 지역 박물관에 산재되어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 비롯된 부분이 크다. 국립중앙박물관 한글실은 약 20~30평의 규모로, 한글 관련 소장품은 전체 소장품의 약 0.25%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한 한글 관련 문헌정보들에 대한 기록은 디지털한글박물관에서 담당하고 있으나, 보다 다양한 한글문화유산과 기록, 문헌정보 등을 통합관리하기 위한 아카이브는 구축되어 있지 않다.


한글문화관 건립의 필요성과 향후 과제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한글문화정책의 현황과 문제점에 대한 분석과 인식이 한글문화관 건립의 당위성을 시사해준다.
 한글문화관은 한글의 발전은 물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문화관광 브랜드를 개발한다는 차원에서도 시도해볼만한 사업이다. 문자에서 출발하여 한글이 담고 있는 정신과 전통문화를 일깨우는 전시와 체험, 교육으로 확장된 진정한 의미의 문화공간이 될 것이며, 박물관에서 출발하여 우리의 중요한 문화상징물로서 한국의 문화산업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으로 자리매김할 것을 기대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우선, 문화컨텐츠의 기획과 CI 개발, 전시 및 한글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네트워크 계획, 프로그램 운영계획 등 관련 내용을 위한 연구개발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사업의 형태나 규모의 확정을 위한 기본계획 및 타당성 조사를 위한 용역을 실시해야 하며, 마케팅 계획의 수립과 민간 참여방안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한글문화관 조성을 위한 전담 인력의 확보 및 기구의 운영을 위한 예산 지원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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