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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1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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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글씨라고 하면 흔히 서예를 연상할 것이다. 전통예술의 한 가지로서 진부하게만 여겨져 왔던 그 서예가 디자인에 접목되면서 캘리그래피(Calligraphy) 라는 이름으로 요즘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전통예술로만 알려져 왔던 서예가 본래의 생명력과 원동력으로 현대디자인이라는 커다란 울타리 속에서 다시 태어나 새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1.캘리그래피의 개념

 
 캘리그래피(Calligraphy)란 의미전달 수단인 문자의 형태에 순수한 조형미를 더한 것이다. 그 어원을 살펴보면, 원래 아름다운 서체란 뜻을 지닌 그리스어 ‘Kalligraphia’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리스어로 아름답다는 뜻을 가진   kallos와 필적을 의미하는 graphy의 합성어이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 모든 글자를 직접 손으로 썼던 시대의 유산이며, 보다 아름답게 쓰고 읽기 위해 전개된 글자예술의 영역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기계적인 표현이 아니라 모필로 쓰거나 손으로 쓴 감성과 표정이 담긴 글씨로, 붓 또는 펜 등 기타 도구에 의해 장식화 된 것을 캘리그래피라고 말한다. 따라서 컴퓨터를 이용해 기호나 상징을 그려내는 레터링과 달리 캘리그래피는 직접 손으로 쓰는 모든 글자의 디자인 작업을 포괄한다. 
 
 이를 우리 서체문화 속에서 보면 한자의 행서, 초서와 같은 흘림의 정도에 따른 필체들을 모두 포함하는 것은 물론, 고전적 서풍에서부터 창작, 전위적 서풍까지도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서양에서의 캘리그래피와 동양에서의 캘리그래피에는 개념적으로 다소 차이가 있는데, 동양의 경우  우리만 보더라도 서예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 서단에서도 현재 ‘캘리그래피’라는 단어로 서예를 대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예’의 정신적인 면까지는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디자인 시장에서의 캘리그래피는 연필, 펜, 크레파스 등 무수히 많은 도구를 이용한 모든 글씨를 포괄하는 점도 다르지만, 서예가들이 획을 그으며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면 디자인계의 캘리그래퍼는 대상의 이미지를 대변해주는 작업을 한다는 점에서 그 목적도 다르다는 것이다. 나를 중시할 것인가? 아니면 대상의 요구에 충실할 것인가? 붓을 잡고 있는 캘리그래퍼라면 누구나 이런 고민을 한 번 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이를 우리 서체문화 속에서 보면 한자의 행서, 초서와 같은 흘림의 정도에 따른 필체들을 모두 포함하는 것은 물론, 고전적 서풍에서부터 창작, 전위적 서풍까지도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서양에서의 캘리그래피와 동양에서의 캘리그래피에는 개념적으로 다소 차이가 있는데, 동양의 경우 그 해답은 ‘서예’에서 쓰는 지필묵(종이, 붓, 먹)의 독특한 질감에 ‘디자인’ 영역의 감성적 시각과 마케팅을 더하고, 여기에 모필의 탄력과 강약, 속도감 등으로 글씨의 표정을 끌어내 한국적 디자인을 구현하겠다는 지표를 가짐으로써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인 표현의 한계성을 극복하는 데 캘리그래피가 새로운 역할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만의 독보적 문자인 한글 캘리그래피의 가능성을 가늠해 보며, 디지로그 시대에 발맞추어 고전미와 현대미가 어우러진 한국적 캘리그래피의 지표를 마련해볼 일이다.
         

2.한국 캘리그래피의 특수성과 양상  


2-1. 한글에 내재된 기호학적 의미와 리듬감
 

 표현성과 우연성이 중시되는 캘리그래피(Calligraphy)는 우리 일상 속에서 쉽게 발견된다. 건네는 명함 한 장, 책표지, 대형 건물 외벽에 설치된 홍보물, 버스나 택시에 부착된 광고, 영화포스터, 앨범재킷 등 다양한 곳에서 아름다운 서체의 향연이 펼쳐짐을 볼 수 있다.
 그러한 것들을 보면서도 흔히 서예를 연상하곤 하는데, 물론 완전히 틀린 해석은 아니지만 분명히 언젠가부터 진부하게만 여겨왔던 그 서예는 아닐 것이다. 디자인적인 접근으로 훨씬 세련되어지면서 그 속에 담겨진 생명력과 원동력에 힘입어 조형예술의 한 분야로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캘리그래피는 이제 ‘아름다운 서체’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아름답게 쓰이는 방향으로 진보하고 있다. 그렇다면 모필(毛筆) 또는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손으로 쓰는 글씨, 즉 문자를 조형적으로 만들어내는 행위에 우리의 문화와 정서를 함께 담아낼 수는 없을까? 이는 서체예술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스스로 끊임없이 자문해야 하는 과제일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은 다른 문자와는 달리 자음과 모음이 조합
  되어 하나의 글자를 이루고 있다. 천지인 삼재(三才,ㅡ l)와 자음 다섯
  자 (ㄱ ㄴ ㅁ ㅅ ㅇ)를 이용해 24개의 자모를 만들어내는 한글은 음양
  오행의 철학이 담긴 단순한 기호들로 600여 년 전에 이미 디지털화의
  초석을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글의 생김새를 보면 구성 자체가 과학적이며 조형적이어서 디자인적으로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렇게 우수한 한글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데 있어 ‘모필’은 그리 만만한
  도구가 아니다. 하지만 누르면 획의 굵기가 굵어지고, 들면 얇아지고,
  획을 빨리 그으면 거친 질감으로 속도감이 생기고, 천천히 그으면 먹물이 많아 촉촉하고 포근해진다. 이러한 특성들은 글꼴에서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요소들로 작용한다.
   한글에서의 종성 부분, 즉 받침은 많은 조형적 변화를 만들어낸다.
  받침이 있는 글자는 그 받침을 더욱 강조함으로써 문장에 리듬을 줄 수
  있다. 이것이 손글씨에서 보이는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
  필기도구를 펜이 아닌 모필, 즉 붓을 이용한다면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강약을 통한 감성적인 표정을 만들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캘리그래
  피에서 살려야 할 전통서예의 장점이 아닌가 싶다.




2-2. 영화와 음반의 타이틀부터 북커버 디자인까지 

  2000년도 초반 한국 영화 시장엔 ‘이름 모를 서체가 충무로를 떠돈다.’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컴퓨터 활자체만 쓰던 기존 스타일과는 다른, 손으로 쓰인 타이틀 로고가 선보여졌기 때문이었다. 감성이 살아있는 캘리그래피가 등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저 제목을 위한 제목 글자체가 아니라 영화의 이미지와 내용까지 대변해주는 로고타이틀로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많은 한국 영화들에서 로고타이틀이 캘리그래피로 제작된 사례가 늘게 되었고, 보다 감성적 로고를 표현하기 위해 많은 캘리그래퍼들이 즐거운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음반 시장에도 캘리그래피 바람이 불어 이제는 음반 재킷에서 손글씨 타이틀을 보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을 정도다.
 
 그런데 영화든 음반이든 제대로 된 로고타이틀이 나오려면 그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과 관련된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라도 경험을 해보아야 한다. 머릿속으로만 그리는 이미지나 손끝의 기술에만 의지해서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
 영화「타짜」의 로고를 제작할 당시 패를 바닥에 던지듯 거칠고 자신감 있는 필체를 구사했던 것도 나름대로는 경험을 통해 힌트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박하는 곳을 직접 찾아가지는 못했지만 직원들과 함께 화투판을 벌이면서까지 타짜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고 매달리다 보니 몇 시간이 지나서야 들어온 결정적인 한 패가 얼마나 통쾌한 것인지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음반 작업을 할 때도 미리 데모 테이프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으면서 그 가수의 캐릭터와 새 음반에서 선보일 타이틀곡의 느낌, 성향 등을 분석하는 노력이 전제되어야만 클라이언트와 소비자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북 커버 디자인은 책의 내용과 독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교량역할을 한다. 이때 제목에 캘리그래피를 쓰면 사용하는 도구와 재료, 그리고 쓰는 이의 역량에 따라 무궁무진한 형태로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낱말의 의미나 스토리를 전달하는 데 매우 강력한 디자인 소재가 된다. 이러한 조형적 기능적인 특징 때문에 국내 북 커버 디자인에서 캘리그래피가 선호되고 있는 추세이다.





손으로 쓰는 제목이 베스트셀러를 만든다.
 
 출판계에 내려오는 불문율 가운데 "제목이 80"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제목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올해 들어 한 항목이 추가됐다. "이젠 캘리그래피"이다.
 캘리그래피(Calligraphy)란 '미(美·calli)+ 서법(書法·graphy)'으로 활자 이외의 서체 또는 손으로 그린 그림문자를 뜻한다. 즉 제목을 기존의 활자체가 아닌 손으로 직접 쓴 글씨로 장식해야 잘 팔린다는 얘기다. 지금까지는 주로 영화 포스터, 광고 디자인, 음반이나 과자류 포장 디자 인에 주로 쓰여왔으나 이제 책 표지에도 당당히 등장한 것이다.

 실제 이달 중순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종합 100위권 가운데 16권이 캘리그래피로 표지를 장식한 책이다. 소설 분야로 국한시키면 베스트 10권 중 3권이 이 경우에 해당하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 소설 분야에서 단 한 권도 없었던 것과는 크게 대비되는 현상이다.
 인문·교양서적을 주로 출간하고 있는 '웅진지식하우스'의 경우 2006년 상반기 이후 출간한 60여 종의 책 가운데 표지에 캘리그래피를 사용한 비율이 무려 70%에 이른다. 외국 소설에 주력하고 있는 '열린책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 출판사 디자이너 김민정씨는 "작년 한 해 출간(개정판 포함)한 80여 종 중 40%가 캘리그래피를 사용했으며, 나머지 60%도 손으로 쓴 느낌이 나게 활자를 변형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주로 한자(漢子) 제목이나 무거운 주제의 책에 캘리그래피를 사용한 반면, 요즘에는 소설이나 에세이류에 집중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이소영 열린책들 편집장은 "독자가 제목의 모양을 통해 소설 내용이나 느낌을 전달 받을 수 있게끔 캘리그래피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서점에 수북이 쌓인 '고만고만한' 책들을 비집고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서, 그리고 요즘 독자들이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 책 디자인을 선호한다는 점도 캘리그래피 유행의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웅진지식하우스의 이영미 차장은 "박완서 소설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작년 5월 재출간하면서 제목을 단순 활자에서 캘리그래피로 바꾼 뒤 젊은 독자층을 많이 흡수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 책과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행복한 이기주의자' (21세이북스)는 그림이나 사진 장식 없이 캘리그래피로만 표지를 꾸며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진입시킴으로써 캘리그래피 붐에 불을 지폈다.

 현재 출판계에서 캘리그래피를 전문적으로 맡는 작가는 20명 선이다. 그 중에서도 시작 디자이너 출신의 강병인('행복한 이기주의자'), 영화 '복수는 나의 것'등 포스터에서 이름을 날린 김종건('봉순이 언니', '질그릇 아내'), 성시경과 춘자의 음반 타이틀을 디자인한 이상현('바람과 구름과 비')등이 특히 유명하다.

<2007년 1월 22일 조선일보 >


   기존의 폰트에는 없는 독특함과 주목성도 보다 차별화된 북 커버 디자인으로 소구
  하려는 출판 기획자들에게 각광받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캘리그래피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유행처럼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어 디자인적인
  면은 물론 책 자체의 질까지 의심하게 하는 우려를 낳게 하기도 한다. 

   글자의 형태로 이미지를 전달하며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 만큼 북 커버 디자인에
  서의 캘리그래피는 책의 본질적 의미에 보다 충실하면서북 커버 디자인에서의
  캘리그래피는 책의 본질적 의미에 보다 충실하면서 교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다른
  ‘디자인 요소들과의 조화와 절제’라는 덕목을 중시해야 한다.

   따라서 감성적인 표현도 중요하지만 그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원고부터 읽어보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큰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원고를 읽어보지 않았더라면 ‘비(碑)’를 하늘에서 내리는  비(雨)로 해석할 뻔 했던 작품이었다. 


3.왜 캘리그래피인가?
 
 한국 캘리그래피의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1999년 말에 “붓 한 자루로 대한민국의 문화를 바꾸겠다”며 디자인 시장에 감히 뛰어들었던 8년 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점점 서구화되어가는 우리의 문화와 정서를 지킬 수 없을까 고민하던 중 생활 속에 묵향(墨香)이 조금씩 베어 들게 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디자인이라는 거대한 울타리에 묵향을 접목시켜 보려고 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디자이너들조차 캘리그래피라는 용어에 대해 생소해 했고, 그저 대필소에서 써주는 붓글씨 정도로만 알고 있던 때였다.  
 
 그런 디자인 시장의 문턱을 넘기 위해 여러 디자인 회사들을 찾아다니는 동안 문전박대 당하기를 수년간, 하지만 나름대로 한국적 디자인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디자이너들도 만날 수 있었고 격려를 받기도 했다. 이후 동일한 작업을 하는 작가들과 뜻을 나누며 우리 캘리그래피의 발전을 위해 함께 고생하고 노력해온 결과들이 지금의 모습을 만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들 중 전문 캘리그래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필자를 포함해 강병인, 김기충, 김성태, 김종건, 나은주, 박병철, 여태명, 왕은실, 이규복, 이세웅, 이일구, 정병례, 조성주, 최연정(가,나,다 순) 등이다.
 이들은 영화, 음반, 책, TV 타이틀, CI 및 BI, 광고, 패키지, 캘린더, 의상 등의 다양한 장르를 통해 한국적 정서를 대변할 수 있는 문자와 이미지를 보급하고자 디자인, 교육, 전시 등에 참여하고 있다.
 서예의 대중화에 기여하려는 노력과 함께 올바른 캘리그래피를 보급하기 위해 전통서예의 다양한 안목과 임서를 통한 창작 또한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이들이 현장에서 불태우고 있는 사명감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글꼴의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강병인(캘리그래피 술통 대표)

 초등학교 때 서예반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서예는 내게 운명이자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붓을 통한 글꼴창작은 삶에 대한 용기 그리고 꿈이 되어 주었다.
 1999년대 편집회사, 광고대행사에서 근무하던 시절 일본에 간 적이 있는데, 이미 모든 디자인에 캘리그래피가 적용되고 있음을 보고 같은 필묵문화를 가진 우리는 왜 이 부분에 뒤쳐져 있을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후 광고 카피나 제품 타이틀 등에 붓으로 쓴 글씨를 적용해 본 결과 의외로 반응이 좋아 본격적으로 캘리그래피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고, 2002년 말 개인 홈페이지를 오픈하면서 그 토대를 마련했다.
 
 때마침 2000년을 시작으로 급격히 팽창된 폰트 시장 속에서 디자이너들은 보다 새로운 글꼴을 원했고, 그때 캘리그래피가 디자이너들에게 새로운 이야기가 되어 주었다. 또 하나 2000년 이후 한국 영화의 성공 속에 캘리그래피로 된 다양한 글꼴의 영화 타이틀들이 선보임으로써 캘리그래피가 대중 혹은 디자이너들에게 보다 쉽게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렇게 최근 캘리그래피가 우리나라 디자인계의 화두로 떠오른 이유는 아마도 컴퓨터의 차가운 속성에서 벗어난 사람의 손맛이 느껴지는 감성적인 글꼴이라는 매력 때문일 것이다. 또한 기존 폰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움과 힘, 디자인 컨셉에 따라 표현된 단 하나밖에 없는 글꼴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디자이너들에게 있어 한글꼴은 영문자에 밀려 늘 소외되어 왔었다. 그 상황 속에서 한글을 부활시킨 것이 캘리그래피라고 할 수 있다. 한글 글꼴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은 누가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단순히 붓으로 쓴 것이라 하여 모두 캘리그래피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붓으로 쓴 또 하나의 폰트일 뿐이다. 글자에 담긴 뜻이 글자 자체에 이미지로 표현되어져 보는 이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인간적 감성적인 글꼴일 때 진정한 캘리그래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 캘리그래피가 한때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디자인의 새로운 영역으로 자리매김하며 대중과 디자이너들에게 지속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닌가 싶다.


공중파로 전파하는 캘리그래피의 미학
-김성태(KBS 아트비젼 영상그래픽디자이너)

 6살 때부터 붓을 잡았으니까 묵향과 고락을 함께 한 지도 벌써 30여 년이 되었다.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 타이틀에 매료되어 방송 타이틀 캘리그래피에 꿈을 안고 방송국에 입사한 것은 5년 전, 그동안 2000여 건의 캘리그래피 타이틀 작업을 해왔지만 프로그램의 성격을 붓으로 표현해 낸다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면서 ‘방송타이틀 속의 캘리그래피’는 떨쳐낼 수 없는 생활이 되고야 말았다. 그러기에 하나를 하더라도 수십 번의 작업을 통해 그 성격이나 감정을 잘 표현해 낸 작품이 나올 때면 그 기쁨 또한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거창연극제를 만들었고 현재 경남예총회장을 맡고 계신 이종일 은사님의 말씀이 내 작업에 큰 자양분이 되었다.

  “예술은 창의적 사고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제시하고 실험적 행위를 바탕으로 상상의 한계를 허물며, 인간세상의 하늘 높은 미래를 밝혀주는 영원한 빛이다. 너는 그런 예술을 하고 있으니 늘 자신감을 가져라.” 

 TV 프로그램의 타이틀 디자인은 그 자체가 시각언어이며 바로 정보전달 수단이기에 어떤 분야보다도 디자이너의 창의력과 순발력, 그리고 표현력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캘리그래피에 의한 표현이야말로 디자이너의 독창성을 가장 발휘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에는 최첨단 기능의 방송매체 개발로 화면의 이용이 보다 자유로워질 것이며, 방송문자의 다양성도 극대화 될 것이다. 타이틀 디자인을 표현하는 도구가 인간의 감성까지 대신할 수 없는한 캘리그래피 표현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지금도 작업을 하면서 그 자유로움과 무한한 표현방법에 매력을 느낀다. 차가운 매체가 표정이 있는 감성적인 글씨를 통해 보다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메시지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 그 특징 때문에 공중파로 전해지는 캘리그래피의 파급효과도 엄청날 것이다. 지속적인 연구와 노력이 계속되어 우리만의 표정을 지닌 훌륭한 캘리그래피가 TV 타이틀 디자인 분야에서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디지로그 시대를 이끌어 갈 소통의 매체
-김종건(필묵 대표)

 1980년대 초 서예학원이 붐을 이루던 시절부터 이후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쳐 군대 모필병에 이르기까지 붓은 애인처럼 늘 내 곁에 있었다. 졸업 후엔 서예잡지사 기자, 폰트회사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서예를 상업화하기 위한 꿈을 키웠다. 1998년에 1년여 간 컴퓨터그래픽을 공부하고 이듬해 드디어 필묵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캘리그래피를 시작하게 되었다. 

 캘리그래피 작업을 하는 이유는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서이다. 서예가 점점 대중과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서예를 전공하면서, 기자생활을 하면서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시대적 미감은 변하는데 서예가들이 그 흐름을 무시하고 고집만 피우는 것인지 몰라도 서예라는 단어가 일반인들에게는 진부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을 나도 느끼고 있었다.
 ‘하얀 화선지에 푸른 먹색으로 글씨를 쓴다는 것이 내게는 행복감에 빠질 수 있는 충분한 것이었는데, 왜 일반인들과는 점점 거리감이 생기는 것일까? 작품의 의미는 무엇일까?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인가?’하는 질문들이 계속 되었다. 지금까지 캘리그래피라는 상업적 서예를 해온 것은 그 해답을 찾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디자이너들이 먼저 전통서예를 찾아오는 환경이 되었다.

 디지로그 시대는 문방사우가 아니라 문방오우라는 신조어를 생각하게 한다. 컴퓨터라는 새로운 친구가 문방사우들 속에 더해진 것이다. 문방오우로 펼쳐지는 캘리그래피의 세계는 훨씬 무한한 상상력과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다. 

 우리나라 캘리그래피 시장은 현재 중요한 위치에 있다. 캘리그래피는 지금 타이포그래피의 한 트렌드로서, 그리고 감성을 이야기하는 로고타입으로서 자리매김하며 그 영역을 점점 더 확대시켜가고 있다. 주변 국가인 일본 캘리그래피 시장과 견주어 보면 우리는 앞으로의 시간을 미리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론의 체계적 확립과 비평, 전시 등을 통해 아름다운 문자로 꽃피워지길 바라고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들의 인식의 변화로 단지 한 시대의 트렌드로 그치는 것이 아닌 문화를 리드하는 캘리그래피가 되길 바란다. 디자인과 예술, 전통과 현대, 디지털과 아날로그, 디자이너와 캘리그래퍼의 만남은 온 세상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소유하고 만질 수 있는 문화 컨텐츠가 되길
-박병철(캘리그래피 오로지 대표)

 광고인으로 시작했지만 초등학교 시절 붓글씨 시간에 곧잘 칭찬을 받았던 걸 보면 소질은 있었던 것 같다. 그 소질을 오늘에 되살린 것일까? 광고 디자이너 시절 모든 작업을 수작업으로 했는데, 그러다보니 붓을 잡아야하는 일들도 많았다. 자연스럽지만 행복하게 붓글씨와 재회할 수 있었고 결국 2년 여 전부터 전문적으로 캘리그래피 일을 하게 되었다.

  ‘가장 한국적인, 세상에 단 하나 뿐인, 그래서 아름다운 캘리그래피’. 이 글 안에 내가 캘리그래피를 하는 이유가 다 담겨져 있다. 덧붙이자면 우리들의 사는 이야기를 캘리그래피를 통해 나누고 싶다는 것. 마음 따뜻해지고 힘과 용기를 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그런 아날로그적인 감성 때문인지 아직도 주로 붓과 먹을 고집하고 있는데,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한글의 다양함을 표현하는 데 붓과 먹만큼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하지만 캘리그래피 작업에 있어 도구와 재료의 한계는 없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실험과 창작 속에 멋진 작품이 탄생한다면 더욱 신선하고 새로울 것이다. 

 재료의 느낌에 따라 달라지는 표현. 거칠고 투박하지만 세련된 여백과 선.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한국적인 캘리그래피의 조화’는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캘리그래피는 하나의 커다란 ‘문화’로 성장할 것이다. 바람이 있다면 그 ‘캘리그래피 문화’를 보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소유하고 만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여유와 감성의 문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 ‘한글’을 만들기 위한 보다 많은 컨텐츠 작업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4.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향하다
 
 모필로 대표되는 한국적 캘리그래피의 원형은 서예와 디자인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서예의 본질을 이해하고 붓을 다룰 줄 아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고전 속에서 수많은 표정과 미적 감각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형(字形)의 구조와 조형적 특성을 익힘으로써 글씨의 기본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점과 선, 획의 태세, 장단, 필압의 강약, 경중, 운필의 속도, 먹의 농담, 문자간의 통일과 비례, 균형, 변화와 동세 등의 조형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서예가 바로 우리 캘리그래피의 모태인 까닭이다.
 단지 의미전달의 수단이었던 문자의 조형적 특성을 잘 끄집어내어 현대적인 디자인을 통해 좋은 옷을 그렇게 탄생한 결과물이야말로 더욱 훌륭한 캘리그래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인의 여러 장르에서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는 캘리그래피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단지 글꼴의 아름다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글씨들 속에 마케팅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과정들이 캘리그래피를 대중들의 생활 속에 파고들고 자리 잡게 하는 원동력일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로 생산된 문자의 홍수가 거세지고 미래를 향해 달리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리들은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고 애틋하게 느낄 것이며 한 번 쯤 쉬어가고 싶어 할 것이다. 이러한 삶 속에 여유 있는 쉼표를 찍어주는 역할을 아마도 캘리그래피가 담당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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