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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한글

제주도 여행 간 김에 살펴본 제주도 사투리

‘촌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시에 살지 않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서울이나 다른 대도시에 살면서 콕 쳐박혀 다른 지방의 문화는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이 ‘진짜 도시 촌놈’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여행을 다닐 때마다 계속 들곤 합니다. 

얼마전에는 어지간한 사람들은 한 번 정도는 다 가봤다는 ‘제주도’ 땅에 태어난지 30년도 더 지난 지금에서야 발을 디디게 됐습니다. 제주 공항 입구를 나설 때 부터, 야자수에 코발트빛 하늘, 이건 뭐 딴나라 같네요. 

일단 배고프니 밥집부터... 처음 간 집은 흑돼지 두루치기를 전문으로 하는 ‘동성 식당’이었습니다. 털이 까만색이어서 붙인 이름이라는 흑돼지. 가격표를 보니 흑돼지 삼겹살은 비싸지만, 야채와 흑돼지 다릿살을 넣어 철판에 볶아먹는 두루치기는 1인분에 5000원 밖에 안되더군요. 두루치기가 익어가는 동안 메뉴판을 살펴보니, ‘돔베 고기’라는 메뉴가 있었습니다. 

간판에는 '돔배고기'라 적혀있지만, 보통 '돔베고기'라 합니다.

일하는 분에게 물어보니, 조선족 분이신지 더듬거리시다 한 손님의 테이블을 가리킵니다. 아, 흔히 말하는 돼지고기 수육 같네요? ‘돔베’가 돼지를 뜻하는걸까요? 이상하다... 내가 아는 돼지의 제주도 방언은 ‘도새기’인데. 아이폰으로 찾아본 결과, 돼지고기의 제주도 방언도 ‘돗괴기’인데... ‘모르면 물어가라’는 속담이 정답. 주인 아주머니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돔베가 육지 말로 ‘도마’이우다”


아하 =) 흑돼지 수육을 자른 채로, 바로 도마위에 얹어 내어서 돔베고기인가보네요~ 점심은 두루치기였지만, 저녁은 돔베고기를 잘 한다는 집을 찾아가 먹었습니다. 서울처럼 새우젓이 나오지는 않지만, 쌈장에 찍어 매콤한 마늘 한 쪽 얹어 먹어도 꽤 좋더라고요. 

이렇게 힘을 채운 다음날, 제주도에 왔으니 요즘 한참 제주도에서 ‘뜨고 있는’ 올레길을 걸어야죠? 그런데 올레길의 ‘올레’가 뭘까요? 모 통신사의 ‘olleh’는 아닐거고... 

중세 한글에서는 거릿길에서 대문까지의, 집으로 통하는 좁은 길 ‘오라’, 또는 ‘오래’라고 했다네요. 그것이 발음이 바뀌어 ‘올레’로 정착한 것이라죠? 거기다 ‘제주도로 올래?’라는 이중적 의미도 있고요. 

올레길 1코스를 타박타박 걷기 시작했습니다. 초반에야 언덕도 많고, 숨이 좀 깔딱깔딱 하기는 했지만 조금 힘을 내 올라가니 성산 일출봉과 우도가 보이는 시원한 풍경이 보이는 능선에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능선 초입에는 작은 대피소가 있었고, 유리창에는 이런 말이 써있었습니다. 

해석하면 ‘올레길에 오셨어요? 반갑습니다. 어서 오세요. 놀다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정도가 되겠죠? 제주도 사투리는 섬 지역인 만큼, 한글의 원형이 가장 옛말과 비슷하게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현재는 쓰이지 않는 ‘아래아’ 발음도 아직 사용되고 있고요. 금방 알아챌 정도로 재미있는 규칙들도 많습니다. 

올레길 1코스 중간 정도를 걸어가니, 이제 슬슬 배도 고프고 피곤해 옵니다. 그때 보이는 쉼터. 지금은 운영하고 있지 않지만, ‘쉬영 갑서’라는 말이 괜스레 정감이 가네요? 천 원 밖에 안하는 미숫가루를 맛볼 수는 없었지만, 잠시 앉아 서늘한 바람 쐬며 미리 싸온 도시락 까먹기에는 딱 좋은 자리였습니다. 

대강 식사도 했고 충분히 쉬었으니, 이제 물어물어 교통편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 경치가 끝내준다는 섭지코지로 향했습니다. 시원한 눈맛의 바다 풍경에 해풍를 맞으며 자란 억새의 풍경이 기가 막힙니다. 섭지코지는 ‘좁다’는 뜻의 ‘협지’ 발음이 바뀐 것이고, 코지는 ‘곶’을 의미하는 제주도 사투리였습니다. 

간판에는 찾아와 줘서 고맙다는 제주 사투리가 써있습니다. 제주도 사투리는 받침이 ‘ㅇ’으로 끝나는 단어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를 ‘하르방’, 할머니를 ‘할망’, 아저씨를 ‘아즈방’, 아줌마를 ‘아즈망’이라고 하는 것 처럼요.

이 정도로 제주도 여행 이야기는 끝내야겠네요? 이번에는 어쩌다 보니 제주도 현지 사람들을 한 명도 만나볼 수 없었습니다만, 다음번에 제주도를 오게 되면 꼭 제주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거나 대화해 보고 싶습니다. 제주도 사투리는 어떤 느낌일까가 정말 궁금하거든요. =)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2기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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