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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6.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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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기념해 2008년 8월 마련했던 '국어사랑큰잔치'는 한국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과 관심을 과시한 그야말로 ‘큰잔치’였다.
 우리 말글살이 안팎의 여러 분야에서 모인 참석자들도 민족문화와 국어, 세계 속의 한국어, 문화창조의 동력으로서의 한국어 등 무게 있는 주제를 놓고 발제와 토론으로 이 행사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 중 한국어의 가치와 지평을 새롭게 이해하는 기회가 된 것으로 평가되는 김중순 교수의 발제 ‘문화창조의 동력, 한국어’를 되짚어본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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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의 말처럼 ‘창조란 그 전에 있었던 상식을 파괴하는 행위’라면, 창의적인 사고를 하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남과 다르게 하기’ 위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용기’라는 미덕의 이면에는 ‘융합’, ‘참여와 공유’ 그리고 ‘스토리텔링’ 등의 주목할만한 요소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창조에 있어 ‘융합’이 주목받게 된 것은 창조력이 이성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에서 시작되었다. 이성은 사물에 거리를 두고 대상화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주체와 객체를 이분화해서 관찰하는 것이다. 그렇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모든 예술적 수용행위에서도 발견되곤 하는데, 이제는 이성으로 ‘보는 법’이 아니라 감성으로 ‘느끼는 법’이 요구되는 시대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융합의 개념들이 문화예술이나 사회과학 분야에서 보편화되면서 상상력을 높이고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음으로 참여와 공유 주목받게 된 것은 정보의 소비자이기만 했던 개인들이 정보의 생산자로 나설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블로그나 미니 홈피 등을 통해 글쓰기 아이콘만 누르면 얼마든지 정보의 창조자로 참여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포털 사이트들은 통제보다 놀이터의 기능을 더 많이 갖게 되었으며, UCC나 위키피디아(Wikipedia) 같은 집단지성의 창조적 결과물이 등장하게 됐다. 

 정보의 사용자가 창조자와 소비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프로슈머가 된 것이다. 레이 올덴버그(Ray Oldenburg)는 <Celebrating the Third Place>라는 저서에서 ‘제3의 공간’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집이나 일터가 아닌 카페, 레스토랑, 책방, 커뮤니티센터, 미용실, 쇼핑센터, 박물관, 영화관, 뮤직센터 등 긴장감 없이 편안하게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놀이터와 같은 공간을 제3의 공간으로 분류한 것이다. 그리고 이 공간이야말로 사람들과 공통의 관심사를 이야기하며 창조력을 키울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현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준다는 것이다.

 창조의 마지막 조건으로서 스토리텔링이 주목받게 된 것은 이야기야말로 사람들이 가장 쉽고 재미있게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임을 확인하면서부터다. ‘이야기’와 ‘말하는 행위’, 그리고 현재진행형이라는 세 요소로 구성된 것이 스토리텔링이다. 특히 청자와 화자가 함께 하는 구도는 현장성의 회복, 즉 상황의 공유와 그에 따른 상호작용성의 의미를 갖는다. 스토리텔링으로 성공한 창조경영의 모델 중 하나인 스타벅스가 시사하는 바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녹색 로고 안의 인어에 관한 이야기나 소설 <모비딕> 속 일등항해사 스타벅과 커피에 관한 이야기 등으로 스타벅스는 커피만 파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팔고 문화를 파는 것이다.

 리처드 플로리다는 <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라는 저서에서 서로 다른 가치들을 융합시켜 아우르고 참여와 공유를 통해 재미를 일궈내고, 박물관의 화석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능력을 가진 자들을 '창조계급(Creative Class)'이라고 칭했다. 한국어가 가진 문화창조의 동력도 이처럼 창조계급이 가진 능력들, 즉 아우름과 일굼, 풀어냄의 원리로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아우르는 한국어

 이어령 교수는 한국어가 통합 혹은 융합의 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관용, 나눔, 어울림 등의 글로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승강기’ ‘나들이’ ‘빼닫이’ ‘시원섭섭하다’ ‘엇비슷’ 등 상반된 뜻이 조합된 표현이 가능한 것은 한국어가 서로 같이 있을 수 없는 것들을 통합해내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황토흙’ ‘동해바다’ ‘처가집’ ‘역전앞’ 등처럼 한자말을 쓰고서도 우리말을 겹쳐놓은 것도 융합과 통합의 특징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말 중 많은 어휘들이 한자어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어는 순우리말만 있는 한국인만의 고유한 언어라기보다 한․중․일 세 나라 언어가 통합되어 있는데, 남의 것이라고 내치지 않고 우리말에 융합시켜 녹여낼 수 있는 관용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채팅이나 이메일, 블로그나 카페 등에서 쏟아내는 언어들에 대해서도 무조건 어문규범을 파괴하는 외계어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해석해 세계적인 언어문화의 경향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강추(강력추천)’, ‘방가(반가워요)’, ‘안냐세요(안녕하세요)’, ‘셤(시험)’, ‘ㅊㅋ(축하)’, ‘ㄱㅅ(감사)’, ‘Oㅋ(오케이)’, ‘출첵(출석체크)’, ‘쌩얼(화장 안 한 얼굴)’, ‘은따(은근한 따돌림)’ 등 말줄임이나 속어, 은어, 이모티콘 따위를 남용하는 언어관습은 영어나 독일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CU2NITE(See you tonight)' 'TTYL(Talk to you later)' '8-tung(Achtung;조심)’ ‘ild(Ich liebe dich;사랑해)’ 등이 그러한 예들이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서는 ‘철자파괴가 언어생활에 해롭기만한 것이 아니라 언어구사력을 높여준다’는 연구도 있다.

 데이비드 크리스털이 최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결과를 토대로 <Txting:the Gr8 Db8(Texting:the great debate)>라는 책에서 주장한 바에 따르면, “철자법을 갖고 장난치려면 낱말과 소리가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 충분히 이해해야 하고, 어느 방법이든 말과 글에 많이 노출되면 그만큼 언어능력은 향상된다.”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이상 한국어는 수용과 소통의 기능을 넘어 이제 언어를 적극적으로 생산해내는 기능도 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 말했던 발랄한 언어들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해방감을 드러내고 그들의 상상력을 자극한 창의력의 결과다. 훈민정음 창제 이전의 언어들도 한국어의 일부였듯이 화자의 다수가 받아들인다면 디지털 공간에서 쓰이는 언어들도 한국어의 일부로 아울러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표준어 규정’의 내용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언어가 소통의 도구인 한, 그리고 정보통신 분야의 끊임없는 표준화 시도가 당연시되고 있는 마당에 표준어의 제정 자체는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표준어가 휘두르는 획일화와, 언어학의 지평에서는 한국어의 한 방언일 뿐임에도 ‘서울말’이 갖는 사회적인 위세가 표현의 가능성을 제약해 우리말을 앙상하고 밋밋하게 만들까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 디지털 문명을 실어나르는 새로운 언어들과 함께 다양한 지방언어들까지 아우르는 것이야말로 문화창조의 디딤돌이 되는 한국어의 모습일 것이다. 서울 중심주의에 대한 문학적 저항과 경상도 방언의 섬세한 매력을 함께 담아낸 정일근 시인의 ‘쌀’이라는 시가 시사하는 바도 그것이다.


서울은 나에게 쌀을 발음해 보세요,

하고 까르르 웃는다.

또 살을 발음해 보세요.,

하고 까르르 웃는다.

나에게는 쌀이 살이고 살이 쌀인데 서울은 웃는다.

쌀이 열리는 쌀 나무가 있는 줄만 알고 자란 그 서울이

농사짓는 일을 하늘의 일로 알고 살아온 우리의 농사가

쌀 한 톨 제 살점 같이 귀중히 여겨온 줄 알지 못하고

제 몸의 살이 그 쌀로 만들어지는 줄도 모르고

그래서 쌀과 살이 동음동의어라는 비밀을

까마득히 모른 채 서울은 웃는다.


일구는 한국어

 1만 여에 이르는 자연언어들 중 그 말을 쓰는 인구로 보면 한국어는 12위에 위치한다. 이는 사용인구수가 7,200만 남짓 되는 프랑스어를 앞지르는 순위다. 그러나 교통어로서의 한국어의 위치란 프랑스어를 제2, 제3의 언어로 익히는 사람의 수에 훨씬 못 미친다.
 현재 한국어를 교통어로 쓰는 사람이 매우 적다는 뜻은 한국어 공동체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힘이 그리 크지 못했고, 한국인들이 오랜 기간 국제교류에 소극적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문자가 가진 우수성만으로 한국어의 미래를 무조건 정보화시대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낙관할 수 없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국어를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참여와 공유’의 정신을 살려 한국어를 객관화 혹은 타자화하는 일이다. 우리말을 가지고 이룩한 문화창조의 성과 가운데 어떤 것이 인류에 널리 기여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의의를 갖는지를 밝히고 그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한국어 사랑의 핵심일 것이다.
 문자가 없는 민족들에게 한글을 수출해 인류문명에 이바지하는 것도 그 예가 될 수 있다. 한국어란 내부인들이 스스로 자기의 말과 글을 표현하는 언어인 ‘국어’의 개념을 넘어 탈지역화된 열린 언어의 개념을 갖는다.

 하지만 열린 언어라고 해서 문화창조가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언어란 문화의 집결체로 생산과 전수와 향유의 행위가 순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전제할 때, 한국어가 이러한 순환구조에 적절하게 위치하고 있는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한국어는 생산보다는 전수와 향유에만 신경을 써 지나치게 기능과 방법의 교육에만 치우쳐 있음이 지적되어 온 터였다. 이해와 감상, 듣기와 말하기 중심이 아닌 쓰기와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기 등 창작교육이 이뤄져야 학습자가 아닌 생산자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한국어를 일궈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대학의 학문활동은 ‘창조학’이라기보다 ‘수입학’ 차원이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글이 대학에서 학문의 언어로 자리 잡은 것은 해방 이후의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난삽한 한자어와 번역어, 외래어 및 외국어로 점철된 것이었다. 특히 의학이나 공학, 자연과학 분야의 경우 한국어는 학문으로서의 위상을 거의 상실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외국어 일변도 속에 ‘토씨’로서만 쓰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지식의 창조적 생산은 물론이거니와 소통의 역할마저도 급격하게 상실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한국어로 학문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고종석은 그 해답을 일본의 에도 중기 이후 ‘네덜란드 문헌들을 통한 서양의 학술연구’였던 란카쿠(蘭學)에서 찾고자 했다. 그들은 네덜란드어를 통해 유럽의 개념들을 일본어로 옮기기 위해 단어 하나를 번역하면서도 어원, 변천사, 당시의 쓰임새 등을 조사하며 그에 상응한다고 판단되는 한자를 골라내 조립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민주주의’ ‘자본주의’ ‘기준’ ‘출판’ ‘인권’ ‘공화국’ ‘인민’ ‘국민’ ‘가수분해’ 같은 개념어들이 그렇게 탄생한 것들이었다. 단순한 번역이 아닌 창조학을 통해 탄생한 이 낱말들처럼 우리도 한국어를 보다 적극적으로 일궈내어 창조적 개념어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존 로크나 칸트는 당시 유럽의 지식인들이 쓰던 라틴어를 두고 영어와 독일어로 글을 썼는데, 그렇다고 두 나라의 철학이 학문의 보편성을 잃었다거나 국수주의에 빠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때부터 영국철학과 독일철학이 본궤도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렇게 라틴어 못지않게 독일어나 프랑스어, 영어 등이 학문의 언어가 되었듯이 한국어도 세계적인 지식을 창조하는 언어가 되어야 한다. 한국어로 학문한다는 것은 외국의 학문을 외면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에 함몰되지 않고 우리 자신의 문제를 우리의 자연언어에 녹아 있는 우리 삶의 체험과 사고구조, 생각과 느낌의 표현방식으로 들춰내고 해결하려고 노력한다는 뜻이다.


풀어내는 한국어

 표음문자를 사용하는 민족과 표의문자를 사용하는 민족의 사고체계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표의문자가가 과학적, 합리적 사고를 매개하기에 지나치게 다의적이고 추상적이라면 합리적 사고에 근거한 과학적 세계관을 표현해내는 데는 표음문자를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런데 한국어는 융합의 특성이 있어 과학성과 논리성, 그리고 다의성과 상징성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 한국어가 더욱 새롭게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1세기는 탈중심적인 네트워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세상은 더 이상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세계관에 의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표음문자와 표의문자를 동시에 사용한다는 것은 창조의 공간이 넓고 놀이도구가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놀이도구가 많고 편리한 놀이터(제3의 공간)가 넓은 언어일수록 풀어내야 할 이야기는 많을 수밖에 없다. 표의문자는 표음문자에 뜻을 덧입힐 수 있고, 표음문자는 표의문자에 실용성을 덧입힐 수 있다. 이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바로 한국어를 활용한 문화산업의 요체일 것이다. 

 동양화가 이용관의 작품을 보면 ‘ㄱ'을 사람이 몸을 앞으로 구부린 모습으로, ’l'는 서 있는 모습으로, ‘ㅡ'는 누운 모습, ‘ㅎ’은 양팔을 벌리고 뛰는 모습으로 해석해 수묵화로 표현하고 있다. 한글서예 대가들의 작품을 분석해보니 점과 획에 생명력이 들어있는 것을 알게 되어 한글서체만으로도 사람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단순한 기호체계로서의 글자가 갖는 의미영역은 시각적 범주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한글을 활용한 디자인은 분명 창조적 시도이고 디자인의 특수한 주제가 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시각적 범주 내에서 박수를 받는 것이지 시장이 갖는 보편적 가치마저 충족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결국은 ‘한글’만이 아닌 디자인물 전체가 갖는 예술적 가치를 통해 시장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상봉의 국제무대 진출도 그의 전문적인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이 주목받은 것이지 ‘한글’ 자체가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산돌티움의 한글수제초콜릿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가의 고다이바(Godiva)라는 초콜릿을 비교해보자. ‘초콜릿처럼 상큼한 당신을 위해 파이팅!’이란 구호가 쓰인 한글수제초콜릿이 인터넷을 통해 초콜릿의 이로운 점과 첨가된 성분이 무엇인지에 대해 직접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반면, 고다이바 초콜릿은 나체의 여인이 말을 타고 있는 그림으로 포장해 그림 속의 이야기를 팔고 있다.
 11세기 경 잉글랜드 중부지방의 한 영주 부인이 백성들에게 부과된 세금을 덜어달라고 부탁하자 남편이 빈정대며 했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심이라면 나체로 말을 타고 영지를 한 바퀴 돌아보라”는 말을 받아들였다는 숭고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다. 어느 쪽이 더 흥미로운가?

 한글수제 초콜릿은 한글을 원형으로 삼았고, 고다이바 초콜릿은 고다이바라는 영주 부인을 원형으로 삼았는데 한 쪽은 이야기가 없고 한 쪽은 이야기가 있다.
 문화상품의 원형이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스토리텔링이 필수적이다. 스토리텔링은 이야기의 생산행위(production)와 수용행위(reception)가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다. 디지털 분야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위상을 동시에 갖 창조적 참여자를 프로슈머라고 하듯이, 이야기의 생산과 수용을 동시에 행하는 스토리텔러를 ‘Story-recepducer'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담이나 전설, 신화 등 설화가 스토리텔링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그 파급력 때문이다. 설화는 인류문명의 공통의 영역에 놓여 있어 쉽게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오세정의 <설화와 상상력>이나 김의숙․이창식의 <한국 신화의 스토리텔링> 같은 것은 문화상품을 위한 원형(One Source)으로서의 활용가능성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가 될 수 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진, 창조적 재구성이 탄탄한 스토리텔링 상품이 디지털과 만난다면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문자문화와는 달리 상호작용성, 네트워크성, 복합성 등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풀어내는 한국어’의 시장은 무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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