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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새로운 시선

제품 설명서, 좀 쉽게 만들 수 없을까?

애초에 세종대왕님께서 ‘나랏말이 중국어와 달라 문자와 서로 맞지 않아’ 만드신 한글...
그 취지는 바로 사람과 사람이 서로 ‘뜻이 통해 서로 쉽게 이해할 수있도록’ 하려는 것이었어요. 
언어라는 건 서로 ‘통하고자’ 있는 거잖아요. 물론,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겠지만서도 ‘서로 통하기 위한 것이 언어’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언어가 갖출 요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쉬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쉬운 내용을 언어때문에 못알아듣는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거겠죠? 

출처: http://chelseafc.egloos.com/857598

출처: http://chelseafc.egloos.com/857598


이러한 ‘주객전도’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안내문입니다. 이런 것들의 용도는 오직 하나, 사용자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글을 읽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걸 사람들이 알아들으라고 만들기는 한 걸까?’ 

제일 간단한 예를 한 번 보실까요? 


일회용 커피믹스 박스 뒤에 있는 ‘습기를 주의하시고, 건냉한 장소에 보관하십시오’라는 문구... 뭐 어려운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문장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어요. 굳이 ‘건냉’이라는 어려운 말을 쓸 필요가 없잖아요. ‘건조하고 시원한’이라는 말을 써도 충분한데. 저렇게 어려운 말 써도 ‘있어 보이는 거’ 아니잖아요.  
그리고, 한번 쭉 읽어보시면 저 말은  공기중의 습기에 약하고, 건조하고 시원한 장소에 보관하라는 말이죠? 그냥 앞에 ‘습기를 주의하시고’라는 말은 애초에 필요가 없는 말이잖아요. 다른 말들도 아주 까다롭게 써놨죠? 우리가 일부러 알아듣거나 기억하기 힘들게 써놓은 것 처럼요... 

제 책상에 있는 핸드크림 사진인데요... 사용방법이 간단하니 좋기는 하지만, 좀 거슬리는 말이 있어요.  
‘적당량을 취해 거칠어진 손이나 손톱 등에 부드럽게 바릅니다’ 
늘상 느끼는 건데, 우리나라 사람들중 에는 어려운 단어를 쓰면 자신이 뭔가 ‘높은 사람’ 또는 ‘잘난 사람’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더러 있는 것 같아요. ‘적당량’, ‘취해’라는 말, 굉장히 거슬리지 않으세요? 그냥 ‘적당히 덜어 거칠어진 손이나 손톱에 부드럽게 바르세요’라고 해도 충분한데 말이에요. 개그콘서트에서도 이런 대사도 있잖아요. ‘니도 내가 알아 듣는 말을 해라 마!’
 

어려운 한국어의 집대성이 제품 설명서와 보증서입니다. 자, 사진 한 번 보세요. ‘보증기간은 고객의 수기의 영수증을 예외한 어쩌구 저쩌구...’ 쇼를 하는군요 진짜. '손으로 쓴 영수증'이라고 하면 5만원짜리 영수증이 5천원 짜리로 평가절하라도 된답니까, 진짜... 이건
고객들이 똑바로 보증서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게 하려는 술책 같기도 해요.  

요즘엔 어떤
‘안내문’같은 글을 어렵게 쓰는 것이 무슨 고질병처럼 정착한 기분입니다. 위의 사진은 스마트폰에서 3G  인터넷에 접근하려 할 때 나오는 경고문입니다. 사진의 내용과 ‘3G 데이터 네트워크에 연결하겠습니까? 3G 인터넷을 사용하거나 GPS 정보를 보내고 이메일 계정을 동기화 하는 등의 스마트폰의 특성 때문에 통화료가 나올 수 있습니다. '라는 말. 어떤 게 더 쉬운가요? 

어떤 분들은 쉬운 말로 이야기하면, ‘경박하다’며 정작 얘기하면 잘 알아듣지도 못하실 어려운 말을 품위있는 것으로 여기시곤 합니다. 그러나, 말에 있어서 품위라는 것은 전문적인 것 처럼 보이는 단어들과 어려운 문법에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건 그 사람의 말을 한 번 들으면 쉽게 이해해 삶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말이 더욱 가치있고 품위 있는 말이 아닐까요? 
어때요? ‘서비스 안됨’이라는 말... 좀 어색하시지만 이게 ‘서비스 불가’ 같은 한자어 보다 훨씬 이해가 잘 되는 말이 아닐까요?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2기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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