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BLOG main image

온한글 전체보기 (655)
한글, 새로운 시선 (164)
온한글이 만난 사람 (52)
한글 행사와 모임 (54)
한글이 있는 작품 (64)
폰트 (41)
캘리그래피와 손글씨 (13)
트렌드와 마케팅 (46)
역사 속 한글 (19)
세계 속 한글 (40)
온한글 책꽂이 (44)
한글 관련 자료실 (27)
무료다운로드 (15)
단신 (74)
douglas pitassi
douglas pitassi
Clash of Clans Hack
Clash of Clans Hack
Related Web Page
Related Web Page
kitchen table
kitchen table
http://healthdrugpdf.com
http://healthdrugpdf.com
http://www.161997up.com
http://www.161997up.com
CT
CT
http://pharmacyreviewer2014.com
http://pharmacyreviewer2014.com
UT
UT
Laura Glading APFA
Laura Glading APFA
1,373,787 Visitors up to today!
Today 13 hit, Yesterday 223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궁체'에 해당되는 글 2건
2009. 2. 26. 10:14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글 서체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1990년대에 들어와 활성화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으나 서체의 분류나 명칭에 대한 견해는 각양각색이어서 서체연구에 상당한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선행연구들이 각각의 기준을 바탕으로 서체를 분류한 것에 의하면 모필과 관련된 서체용어만도 40여 종1)이나 된다. 이러한 현상은 조선시대에 생산된 서체가 그만큼 복잡다단함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서체란 일정한 시기에 통용되면서 사회성을 확립하여 '정형화'될 때 한 유형으로 인정되는 바, 서체 분류에 있어 일정한 기준이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까지 한글 서체 연구는 주로 글자 기계화와 관련하여 글자체 개발을 위해 이루어져 왔으며 조선시대 서체에 대한 연구는 그나마 서예술적 측면에서 주로 다루어졌다. 그래서 한글 서체의 분류 및 그 명칭들이 서예술적 요소들을 기반으로 삼고 있어 보다 본질적인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가령 어떤 합리적인 기준이 미비한 채 단순히 선행연구의 것들을 적절히 절충한 명칭으로 분류하는 단편성 등이 그것이다.

 물론 각 연구자마다 서체의 분류 명칭이 다른 점은 조선시대에 출현한 한글 자형이 그만큼 복잡해서 일정한기준을 두고 유형화하기 어려움이 따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다행인 것은 선행 연구자들의 서체분류의 바탕을 살펴보면 서체를 대략 세 가지 군으로 유형화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첫째, 훈민정음 창제와 함께 문자의 시원을 보인, 직선, 둥근 원, 둥근 점으로써 정방형으로 이룬 글자체군,
 둘째, 붓글씨로 썼을 때 나타나는 필서의 기운이 있는 것으로서 필사본의 글씨체나 활자본, 판각본에 나타난 글자체군,
 셋째, 이 붓글씨체 중 노봉으로 기필하여 오른쪽 흐름 축을 맞추어 독특하게 구성된 서체군 그것들이다.




1.조선시대 한글 서체의 형성요인

 한글은 종래 한자를 빌려 쓰던 틀을 완전히 깨고 우리말에 맞도록 창제된 소리글자라는 점에서 발생학적인 특수성을 갖는다. 우선 글자의 자형과 글자가 가지는 음가를 정확하게 제시해야 할 뿐 아니라 정형화된 글꼴을 제시해야 글자를 이해하는 데 혼란이 없을 터인즉, 창제 당시를 보면 나름대로 글자의 도안적 성격과 아울러 기본 글꼴로서의 가치를 가짐과 동시에 서체의 대강을 제공하고 있다.

 다음은 글자보급과 관련된 특수성이다. 이 또한 한글이 창제 글자라는 특수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곧, 창제된 글자를 언중에게 최단기간에 보급하기 위해 당시 어떤 방편을 강구했을까 하는 문제인데, 현전하는 당시의 자료가 주로 판본이나 활자본인 점을 고려하면 판각이나 활자에 의해 다량의 서책을 찍어내는 방법을 취했음을 알 수 있다.
 서체연구에 있어서 판본이나 활자본, 필사본을 그 목적에 따라 나누어 연구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으나, 판본과 활자본도 결국 필사한 서체를 모사한 것이기 때문에 간본에 의거해 서체를 연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한글 창제 초기에 도안된 서체와 그 뒤 붓글씨 형태의 서사적 글꼴이 주를 이루는 시기가 서체분류에 있어 큰 분수령이 되므로, 서사형태나 방법에 의해 서체를 나누는 것이 좀 더 변별성과 객관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낱자의 ‘모아쓰기’ 로 하는 문자생활도 또 하나의 특수성이다. 한글은 소리글자로 창제되었는데 실제 문자생활에서는 초성자, 중성자, 종성자를 합자하여 한 음절에 하나의 합자형이 대응되도록 했으므로 서체연구는 합자형과 관련하여 할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 당시 서사도구가 ‘붓’ 이었다는 점도 서체연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사도구의 변천은 단순하다. 개화기 이전까지의 자료는 판본이나 활자본, 또는 필사본으로 남아있는데, 이들은 붓글씨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개화기 이후에나 ‘펜’ 종류가 유입됨으로써 붓과 펜이 혼용된 것으으로 미루어, 조선시대 한글 서체에 대한 연구는 붓으로기록된 자료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한글 서체의 분류기준
 
 앞서 지적한 바에 근거해 조선시대 한글 서체의 분류 기준이 되는 자질로 ‘전형성’ ‘중앙축성’ ‘기필의 노봉성’을 들고자 한다.

2-1. 전형성
 전형성은 글자로서 보편성을 확보하기까지 글자의 전범으로 주어지는 특성으로 글자 창제 때 나타나는 특성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될 당시에 사대부를 비롯한 지식층은 한자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어서, 읽기나 쓰기가 꽤 자유로워 한자의 필기엔 대단히 능숙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새로운 글자를 창제하여, 그것을 지배층 뿐 아니라 일반에게까지 보급하기 위해서는 자형을 쓰기 위주 보다는 읽기 위주로 구성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으며,2) 또 시각상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엄격히 제한된 도안적인 형식을 구사해야 했을 것이다. 이러한 의식을 바탕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오는 고딕체 모양의 글자 형태가 나왔을 것이며 바로 그 점에 전형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창제 후 간행된 「용비어천가」,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동국정운」등에서의 자형이 「훈민정음 해례본」과 같은 전형성을 가진 형태로 나타난 점은 바로 ‘읽기 위주’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글자는 필서의 맛이 없이 직선적이면서 모가 나고 원은 완전히 둥근 형태여서 판각이나 활자로 사용하기에는 적당했을지라도 당시의 주 필기도구였던 붓으로 쓰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형태였다.
  아래 <그림 1>을 보면 창제 글자로서의 전형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략 세 가지 원칙이 부여된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서선의 굵기가 일정하며 끝과 모서리는 둥글게 다듬었다.
 둘째, 글자의 획은 직선과 둥근 원만으로 구성되었다.
 셋째, 시각성을 강조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보여지듯이 한글과 한자를 동일한 면에 함께 사용했음에도, 한자의 해서나 행서와는 전혀 다른 고딕체 형태의 한글을 사용한 것은 시각적으로 현저함을 드러내기 위함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후 「훈민정음 언해본」에 오게 되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전형성이 다소 약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래 <그림 2>에서 그 변화를 비교해볼 수 있다.



 위를 비교해 보면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정방형의 직선적인 글꼴이던 것이 「훈민정음 언해본」에서는 붓글씨체 느낌으로 완성됨을 볼 수 있으며, 우선 중성자의 길이가 차츰 길어지기 시작하여 정방형을 벗어남과 동시에, 획 간 공간 조절이 강조되어 조형성이 생기기 시작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수평이던 가로 서선이 오른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쓰기가 중심이 되는 이른바 궁체에 오게 되면 <그림 3>에서와 같이 한글 창제 당시의 전형성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

 아래의 <그림 4>는 이러한 전형성의 변화를 해례본의 서체에서부터 궁체 흘림체까지의 흐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2-2. 중앙축성

 다음 기준은 모아쓰기 방식으로 운필함에 특정한 순서가 있다는 점을 바탕으로 글자 구성의 축을 어떻게 잡았느냐 하는 것이다.

 운필 시 흐름의 축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각 서체별 특징이 나타나는데, 해례본에서는 정방형 틀에 모아쓰기 하는 한글의 제자원리에 따라 자소를 직선, 둥근 원, 둥근 점만으로 구성하되 획의 연결성은 전혀 없으면서 앞선 자소의 좌우 혹은 상하의 중앙부분에 다음 자소를 위치시키는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획의 순서와 관계 없을 뿐 아니라 획의 모양에도 변화가 없고, 오직 흐름의 무게를 두는 흐름축이 글자 가운데에 있는 이러한 특징을 바로 ‘중앙축성(中央軸性)’형이라 한다.


 <그림 5>와 <그림 6>은 모아쓰기를 함에 있어 ‘ㅡ, ㅗ, ㅜ, ㆍ’와 어울리는 글자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축성이 중앙에 있음을 알 수 있다.3)
 <그림 6>은 모아쓰기를 하여 글자를 구성할 때는 구성의 차례를 좇아 각 자소 위치는 반드시 앞 구조의 중앙에 배치됨을 보인 것이며,〈그림 7〉은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등에서 볼 수 있는 중앙축성의 실례들이다.



 이러한 중앙축성은 「훈민정음 언해본」에 오면 다소 변형된다. 「훈민정음 언해본」에서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방형 서체구성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으나, 차츰 필서의 맛이 나는 서체로 바뀌게 되면서 다음 획으로 향하는 필의를 살려 씀에 따라 글자 모양도 변형되고, 조형성까지 갖추는 등 다양하게 써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오른쪽 세로획을 중심으로 한 오른쪽 종렬 축의 서체가 된 것이 아니고, 한자의 행서나 해서의 필서와 같이 글자의 중앙에 흐름의 축을 싣고 있다. 특히 국한문 혼용을 많이 사용하게 됨으로써 한글도 그 흐름 축이 한자와 같이 중앙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구성했다.



 다음의〈그림 8〉과〈그림 9〉를 보면 글자의 중앙을 흐름의 축으로 하여, 좌우 같은 비율로 변화를 주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점이 「훈민정음 해례본」의 글씨와 다르다.




      

 궁체 단계에서는 위의〈그림 10〉에서 보는 바와 같이 초·종성자의 오른쪽 끝과 우측 중성자의 맨 오른쪽 세로획에 흐름의 축을 두고 맞추어 쓰도록 구성, 초·중·종성자 모두 종렬축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또한 우측 중성자는 더욱 길게 늘어나고 우측 중성자나 종성자의 세로획은 반드시 끝을 뽑아서 아래에 있는 다음 획으로 향하게 한다. 즉, 궁체에는 글씨의 흐름을 오른쪽 흐름 축에 정확히 맞추어 쓰는 서체적 특징이 있다.

 이상을 바탕으로 글자의 축성을 개념도로 보이면 <그림11> 과 같다.



2-3. 기필의 노봉성
 다음 분류 기준으로는, 서체에 작용하는 것이 필법이며 조선시대의 서사도구가 붓이 중심이었다는 점을 고려하여 ‘기필의 노봉성(露鋒性)4)’을 들 수 있다.

 획의 기필(입필)에 있어 역입 여부에 따라 각 서체의 특징을 찾을 수 있는데, 「훈민정음 해례본」의 글씨체는 획이 곧은 직선이나 둥근 원이면서 시작의 머리 모양이 한자의 전서처럼 둥글거나 막대 모양으로 뭉툭하게 된 것이 특징이다. 붓끝을 감추지 않으면 획의 시작 머리를 만들 수가 없는 것이 필봉의 이치다.

 따라서 「훈민정음 해례본」의 글씨체는 기필할 때 반드시 역입하여 필봉을 감추어 장봉으로 휘필하는 필법을 구사하고 있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판각을 목적으로 하였기에 편리한 쪽으로 생각하여 디자인하거나 판각기술로 다듬었을 것이나, 만일 붓으로 한자의 전서처럼 획을 쓴다면 기필에서 반드시 역입, 장봉하여 서사해야 필봉의 뾰족한 맛을 감출 수가 있는 것이다.

 또 「훈민정음 언해본」에 쓰인 글꼴은 한자 해서의 필획과 닮은 점이 많다. 다음의〈그림 12〉에서 보다시피 가로 세로획은 마제잠두(馬蹄蠶頭) 형으로, 기필에서 송필을 거쳐 '수필' 에서는 회봉함으로써 필압에 따라 서선의 변화가 뚜렷이 나타난다. 이는 당시 한자 필서에 익숙했던 식자층들이 필서를 하다 보니 한자 획과 닮은 부분이 자연스럽게 많아지게 된 것으로, 한자 해서를 서사할 때 기필을 역입하여 장봉하는 운필법을 따랐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궁체는 앞의 해례본체와는 달리 기필을 역입하지 않고노봉으로 서사했다는 점이 방법상의 큰 특징이다. 따라서 아래〈그림 13〉과 같이 봉이 겉으로 드러나(노봉) 날렵한 맛이 나며 주로 작은 글씨에 많이 썼다.

 이 궁체는 궁중 여성들에 의해 많이 필서되었으며 획의 시작과 대부분의 끝 획에서 필봉이 겉으로 드러남으로써 그 미세한 변화를 엿볼 수 있으며 단아하면서도 활달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이는 운필상 방필에 의한 서체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조선시대의 서체를 전형성, 중앙축성, 기필의 노봉성을 자질로 들어 분류해 보았다. 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위〈표 1〉에 따르면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체는 읽기 위주의 서체이며 중앙 흐름 축을 가진 서체로 운필상 역입하여 장봉하고, 「훈민정음 언해본」의 글씨체는 쓰기 위주의 서체로서 초기에는 중앙 흐름 축 중심으로 쓰다가 점차 오른쪽으로 흐름 축이 이동하는데 운필상으로는 역입하며, 궁체는 쓰기 위주이나 우측에 흐름 축을 형성하며 기필 시 역입하지 않고 반드시 노봉으로 시작한다.


3.조선시대 한글 서체의 유형과 명칭

 위의 분류기준에 따라 조선시대의 한글 서체를 ① 훈민정음 해례본체(줄여서 해례본체), ② 훈민정음 언해본체(줄여서 언해본체), ③ 궁중서체(줄여서 궁체) 등으로 3대분할 수 있다. 이렇게 명명한 것은, 서체적 특징을 정형화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그 형성범위가 넓으면서 내용은 객관적이되 고유한 성격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이 전제되었을 때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명칭을 붙인 좀 더 구체적인 이유5)는 다음과 같다.

 1) ‘해례본체’는 훈민정음 창제와 더불어 처음으로 목판으로 나온다. 여기에 사용된 글자는 자·모의 모아쓰기 형태로서 자형은 바른네모꼴이다. 서선이 곧고 획의 굵기가 일정한 것이 마치 그려서 디자인한 모양으로 붓글씨 맛은 없다.

 이와 같이 만들어진 글자가 목판에 새겨지면서 붓의 맛보다는 칼의 느낌이 강하고, 시각적으로는 창제 글자의 전형을 보여주는 형태로 강하고 뚜렷한 글자형을 나타내고 있다. 획은 직선과, 완전 둥근 원, 그리고 둥근 점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뒤에 나온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 등에 사용된 글자형들도 다 이 체로 분류할 수 있다.

 2) ‘언해본체’ 해례본체와는 달리 당시의 서사용구인 붓의 특징을 잘 살려서 쓴 서체이다. 붓으로 쓴 육필이나 혹은 육필을 모본(등재본)으로 하여 판각한 판본이나 활자본에 나타난 붓글씨체로서 후에 나온 궁체를 제외한 모든 한글 붓글씨체는 「훈민정음 언해본」에 쓰인 글씨와 같은 유형이므로 ‘언해본체’로 분류할 수 있다.

「훈민정음 언해본」은「월인석보」전후의 ‘세종어제 훈민정음’만을 따로 제책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흔히 ‘훈민정음 국역본’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세종의 어지와 예의 부분만 언해했는데, 처음에는 해례본의 이름과 같은 「훈민정음」으로 시작하였으나 세종 때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조 때 간행되어 나오면서 제목을 고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훈민정음」에 없는 치두, 정치에 관한 규정이 추가되어 있으며 해례본 간행 직후 1년 이내에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 원간본은 1459년 세조 4년에 간행되었지만,「석보상절」의 권두에도 실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 훈민정음이 반포된 후 1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월인석보」의 권두에 ‘세종어제 훈민정음’을 새로 넣었다기보다는 1447년 간행된 「석보상절」의 체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 즉 ‘세종어제 훈민정음’의 언해는 1446년 9월 「훈민정음 해례본」의 반포 이후 1447년 「석보상절」의 간행 이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에 판각된 서체는 판의 체제나 서체로 볼 때 한문필서에 익숙한 사람의 글씨를 등재본으로 하여 ‘세종어제’란 4자를 추가하고 앞 부분의 넉 줄을 개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필획을 보면 기필, 송필, 수필의 기맥이 뚜렷하고, 가로획 서선은 오른손 쓰기에 의해 오른쪽으로 어깨가 차츰 올라가고 있다. 또한 서사하는 순서에 의해서 초·중·종성자가 놓이는 위치와 모양이 다르게 변하고, 획에는 시작과 중간과 끝의 서체적 특징이 있어 획간과 자간의 연결과 흐름은 물론 필서로서의 속도감이 뚜렷해 보이는 붓글씨체이다.

 3) ‘궁체’ 오직 궁중에서만 사용하던 서체라는 개념에서가 아니라, 궁중이라는 특수 환경에서 창안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궁체로 된 것은 앞선 다른 서체와는 달리 최초의 간본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하나의 서체가 완전한 필법과 결구로 자형이 정립되어 정형화하기까지는 많은 변화의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그 특징을 드러낼 수 있었기에 최초나 대표적인 간본 자료의 이름을 쓰지만, ‘궁체’만은 서체가 창안된 특수한 환경적 요인과 배경을 중시하여 명명한 것이다. 즉 궁중이라는 공간적 특수성과 여성이라는 신분적 특수성을 배경으로 창안된 서체인 것이다.

 궁체는 붓으로 필서함으로써 붓글씨의 흐름과 특징이 확연한 것으로, 필법에 따른 자형과 결구 등이 한자 필법에 익숙했던 사람들의 서체인 「훈민정음 언해본」에 쓰인 체와는 다른 독특한 서체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당시 한자를 써 오던 습관으로 서사된 획과는 완전히 다른 서체로서, 초성자와 중성자에는 일정한 '서법적' 기
준이 있고 글자의 조형성과 정형화된 형태적 틀을 갖춘 정제된 서체이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미려한 감각이 돋보이는 서체라 할 수 있다.
 
 글씨는 특정 서체를 범본으로 하여 연마되지 않는 한 계속적으로 발전되었다고 볼 수 없다. 한자 서체의 흐름을 ‘전서-예서-초서-해서-행서’로 보되 이를 발전순서 보다는 출현이나 분화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듯이, 궁체도 특수한 여건에서 출현한 것이지 범본이 있어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한글 서체의 유형을 위와 같이 해례본체, 언해본체, 궁체등으로 대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각 유형의 특성을 가지면서 한 자 한 자, 한 획 한 획을 연결 없이 또박또박하게 표현한 것은 ‘정자’로, 획과 획의 붓길(필의)에 따른 연결과 글자간의 연결과 흐름을 살린 서체는 ‘흘림’으로, 글자간의 연결이 있으면서도 획은 축약으로 변형되는 등 글자형은 물론 연결 정도가 커서 어떤 것은 마치 암호처럼 사용된 것도 있는 서체는 ‘진흘림’으로 하위분류하면 다음과 같은 표로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표 2〉에 대응하는 각 서체의 보기는 다음〈그림 14〉<그림 15>, <그림 16>에서 찾을 수 있다.
 










1) 홍윤표, 2004, 「한글 서예 서체의 명칭」, 서예학술대회 발표 요지,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부 서예문화연구소, 1~13쪽
2) 김성계, 2002, 「훈민정음에 나타난 글꼴의 형성원인」, 비닥디자인 저널 통권 1호, 한국시각디자인협회
3)해례 초성해 ‘ 與   而爲  之類’ 에서 보이는 ‘  ’ 모양 을 초성자가 없음에도 초성자 자리를 비워 ‘   ’ 으로
쓰지 않고 굳이 중성자를 글자의 중앙에 배열한 것은 창제자가 글자의 축을 중심에 두고자 함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4)기필(起筆)이란 처음 붓을 대어 쓰기 시작하면서 붓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시작하는 운필의 한 형태이며, 노봉(露鋒)이란 획의 시작과 끝에서 뾰족한 붓의 끝(필봉)이 겉으로 드러난다는 뜻으로, 운필의 한 형태이다.
5) 동·식물 분류 체계나 성씨 형성 체계를 보면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써 형태적 혹은 본질적 특성을 따거나, 최초의 시원을 나타내는 지명, 조상 이름 등을 따서 명명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한글 문자와 관계되는 명칭 문제는 관련 학문 분야에서 이미 통용되는 것을 활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hangulsalang | 2010.08.11 05:0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요, 그림이 뜨지 않는데 다시 링크 걸어주실수 있나요?
BlogIcon 온한글 | 2010.08.13 09:50 신고 | PERMALINK | EDIT/DEL
hangulsalang님 안녕하세요.
우선 http://onhangeul.com/30043633020
에서도 볼 수 있는데요. 사진은 곧 다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9. 1. 12. 13:36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글 전각과 서체

 전각예술은 서·화와 함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변화되어 온 동양예술로, 전서가 지닌 문자성 위에 독자적인 조형미를 書·畵·刻의 종합예술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한 예술성을 인식하여 우리나라에서도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전각계가 활기를 띠며 다수의 전각인들이 눈부신 활동을 하게 된다.
 해방 후에는 한글전각이 등장하게 되어 지금까지 어느 정도 발전을 보았고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전각이라 하면 대부분이 한자 전각을 생각하게 되는데 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째로는 한글의 역사가 짧다는 것이다. 한글이 지금으로부터 530여 년 전에 제작된 것인 만큼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한문의 역사에 비하면 예술적 가치를 발휘하기엔 기간이 너무 짧았다.
 둘째로는 문자의 구조이다. 한자는 상형문자로서 수만자의 글자가 어떠한 형으로부터 변천하여 이루어지기까지 그 구조와 자형이 복잡하여 조형성을 의식한 예술성이 풍부하고 다양한 데 반해, 한글은 표음문자로서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자형이 이루어지므로 그 구조가 간단하여 조형적 배려가 단조롭다는 것이다. 

 셋째로 한자는 첩학(帖學)이나 비문 등 고전적인 자료가 풍부하나 한글은 자료가 부족하고 예술적 조형의지가 빈약하다. 문자 생성의 역사에서 그 길고 짧음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겠지만, 한글이 반포된 이후 귀족 양반사회의 사용문자로서 주인 구실을 하지 못한 원인도 크다. 한자의 풍부한 비첩(碑帖)의 자료에 비하면 예술적 조형의지를 가지고 제작된 한글 작품은 1900년 이전까지 한 점도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글 비(碑)로서 유일한 것은 ‘양주영비각자(楊洲靈碑刻字)’ 1)가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봉건적 유교사회의 사대성에 젖어 한글을 한자의 종속가치로 경시하는 경향이 뿌리 깊었던 것은 시대적 상황이었으나 현재까지도 그 잔재가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앞으로 한글에 대한 더욱 많은 연구가 이루어짐으로써 단순성의 극복과 함께 한글의 장점을 살린 전각예술이 그 미적 가치를 과시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한글 전각에 쓰인 서체를 보면 우선 <인장 이미지 1>를 통해 판본체를 볼 수 있다. 이는 훈민정음이 반포된 당대에 간행된 용비어천가나 월인천강지곡 등에 나타난 서체로서 중후한 맛을 지녀 격조 높은 전각예술로서의 미를 엿볼 수 있다. 

 여기서 판본체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는데 ‘각’자에서 ‘ㄱ’은 직각으로 꺾어져 있고, ‘대’자에서 ‘ㄷ’이 아닌

으로 위쪽의 가로획이 아래쪽 가로획보다 왼쪽으로 조금 길게 나와 있고, ‘한’ ‘민’ ‘원’ ‘전’의 받침 ‘ㄴ’은 윗글자의 너비와 같도록 하였다.
 그리고 판본체를 기본으로 하되 작가의 주관대로 자형을 조금씩 변형시킨 것이 있다.<인장 이미지 2> 이는 판본체보다 좀 더 경쾌한 느낌의 조형미가 보인다. 또한 조형적인 면에 더욱 관심을 두어 작가의 특유한 장법(章法), 도법(刀法), 자법(字法) 등으로 구성한 것을 볼 수 있으며,<인장 이미지 3> 극히 드물지만 궁체와 같은 자체(字體)도 볼 수 있다. <인장 이미지 4> 
 이렇게 판본체로 된 전각 외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한글 전각들이 있는데, 특히 장법을 중심으로 그들의 조형적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인장이미지 참고하기>




8가지 장법(章法)을 통해 본 한글 전각
 인(印)을 각(刻)하는 데 있어서는 장법이 상당히 중요하다. 장법이란 크게 보아 자체의 내용, 배자, 전반적인 인면 구성문제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인재에는 큰 것, 작은 것, 둥근 것, 사각인 것 등으로 그 형은 여러 가지이고, 그것에 각하는 문자는 자체가 많은 것과 적은 경우가 있으며, 획수가 많은 것과 적은 것이 있어서 그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리하게 같은 방법으로 각할 수는 없기 때문에 반드시 각각 잘 알맞은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중략)
중국의 장법으로 한자의 전각에 참고로 쓰이는 것은 14가지로서 임고(臨古), 소밀(疏密), 경중(輕重), 증손(增損), 굴신(屈伸), 나양
, 승응(承應), 교졸(巧拙), 의기(宜忌), 변화(變化), 반착(盤錯), 이합(離合), 계화(界畵,) 변연(邊緣)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이들 중 한글전각에 적용되는 경우는 소밀, 경중, 나양, 승응, 변화, 이합, 계화, 변연 등으로 필자는 한글 전각의 장법을 논함에 있어 배자(配字), 자체(字體), 공지(空地), 종형(縱衡), 윤곽(輪廓), 주백문 상간(朱白文 相間), 印의 形, 변화 등 8가지로 나누어보려 한다. 
 

1. 배자(配字)
 배자란 문자의 배치를 말하는 것으로 이에는 상당히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크게 세 가지 형으로 나눌 수 있다. 획이 많은 자인 경우에는 넓은 인면(印面)을 할애하고 획이 적은 자는 인면을 적게 할애하는 방법, 획의 다과(多寡)에 구애받지 않고 문자의 수대로 똑같은 인면을 할애하는 방법, 문자의 획과 수의 다과에 구애받지 않고 작가의 주관에 의해 임의로 인면을 할애하는 경우 등이다.

 그중 첫 번째 경우의 예를 보면 <인장 이미지 5>의 ‘뫼는 높고 믈은 길고’에서 비교적 획이 적은 ’는’ ‘고’ ‘은’과 같은 자들은 작은 인면을, 획이 많은 ‘높’ ‘믈’ ‘길’ 등의 자들은 넓은 인면을 차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인장 이미지 6>을 보면 ‘주’ ‘시’ ‘이’의 공간을 ‘좋’ ‘을’ ‘놀’자 등에게 양보함으로써 더욱 느긋한 형을 이루게 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 장법 중 나양
의 방법과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두 번째 경우와 같이 문자의 수대로 똑같은 인면을 할애한 방법 예로는 <인장 이미지 1>에서 9개의 문자가 획수에 관계 없이 거의 같은 인면을 차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형식은 인의 기본골격을 갖추어 엄격중후하면서도 각 인면마다 공지(空地)의 대소로서 변화감을 느끼게 하여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게 한다.

 세 번째인 작가의 주관에 의해 인면을 할애하는 경우는, 윗글자의 받침 안에 문자를 집어넣어 인면을 활용한 경우<인장 이미지 7, 8>와 삼합자로 인면을 구성한 경우<인장 이미지 9, 10>, 인면에 적당히 공간을 남겨 여백을 살린 경우<인장 이미지 11, 12, 13>, 한 글자가 들어가고 남은 공간에 다시 글자를 잘 배치하여 자연스럽게 얽히고 설킨 듯한 인면을 구성한 경우<인장 이미지 14, 3>, 하나의 자음이나 모음을 두 자나 석 자에 공통으로 이용하여 배자한 경우<인장 이미지 15>, 문자끼리 조금씩 겹치도록 배자한 경우<인장 이미지 16, 17>, 배자함에 있어 자음과 모음을 가로로 풀어쓰는 방법으로 한 경우<인장 이미지 18, 19> 등 매우 다양한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들 중 마지막 세 가지 경우는 한자 전각에서는 이용될 수 없는 방법임을 알 수 있다.
 방법들은 한 글자 한 글자 문자 그 자체의 묘(妙)보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며 조형적인 면을 강조하여 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각기 특이한 인면 할애로 작가의 개성을 드러나게 한다.

 또한 획수와의 관계 외에 문자를 배열하는 순서도 여러 가지를 볼 수 있다. 인면구성에 있어서 한자의 문자배열은 회문인의 경우에는 상좌우, 하좌우의 순으로 새겨서 사용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고2), 보통 한자인에서는 우에서 좌로 배열하고 있다.
 그러나 한글인에서는 이러한 방법 외에 문자를 좌에서 우로 나열하듯 배열하고 있는 것도 찾을 수 있다. 그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3)

 


 
2.자체(字體)
 인면에 사용되는 서체에는 제한이 없으나 한글 전각에 있어서 판본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판본체를 기본으로 하되 작가의 개성에 따라 어느 정도 변형된 자체를 쓰는 경우도 있으며, 조형적인 면에 더욱 관심을 두어 작가가 주관적인 방법으로 자체를 구성해나간 경우도 있고, 극히 소수이나 궁체의 흘림자를 사용한 경우도 있다.

ㄱ. 판본체를 사용한 경우 보면, 우선 훈민정음 원본에 쓰인 자체의 전형적인 특징을 지닌 인을 볼 수 있는데, <인장 이미지 20>에서 모음 ㅗ, ㅕ, ㅜ 등의 상, 하, 좌에 붙어있는 획이 둥근 점획으로 된 것 등이다.
 또한 용비어천가나 월인천강지곡에서는 훈민정음에서 보였던 모음의 짧은 원필(圓筆)이 방필(方筆)의 획으로 바뀜을 볼 수 있는데, 그 예로 <인장 이미지 21>을 보면 ‘자’자의 ‘ㅏ’에 있어 모음의 짧은 획이 방필의 획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ㅈ’의 각도가 거의 60°를 이루고 있는 판본체와는 달리, <인장 이미지 22>의 ‘ㄱ’은 모두 직각을 이루고 있으며 받침은 윗글자 너비와 같게 썼고 모음의 짧은 획은 

 (아래 아)를 제외하고는 모두 방필의 형태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ㄴ. 판본체를 기본으로 하되 작가의 개성에 따른 변형된 자체를 쓰고 있는 경우 있다. 이들은 판본체가 지닌 고박(古朴)한 맛과 작가의 개성을 함께 엿보게 한다.
 <인장 이미지 11>의 경우 자체는 거의 판본체의 형을 하고 있으나 모든 획에서 작가의 개성적인 변화를 주고 있어 중후한 맛은 그대로 살리면서 전체적으로 경쾌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또한 <인장 이미지 2>의 모든 세로획의 끝을 보면 판본체의 특징인 직각의 형태를 이루지 않고 사선으로 되어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원각경언해>그림1에 나타난 획의 특징과 유사하다.

 ㄷ. 궁체를 사용한 경우 있다. <인장 이미지 4>는 궁체의 흘림자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판본체가 지닌 고박, 고졸(古拙)한 맛보다는 선의 우아함이 두드러져 보인다고 할 수 있다. 

 ㄹ. 조형적인 인 전체의 분위기에 관심을 두어 작가의 주관적인 방법으로 인면을 구성해나간 경우 있다. 여기서는 자체라든가 공간구성에 있어 조형적이고 조금은 자유로운 느낌을 주는데, <인장 이미지 23, 24>는 완전한 문자의 자체보다는 인위적이지 않은 순수함을 강조해 보고자 다른 맛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방법은 글씨의 묘보다는 인 전체에 나타나는 조형적인 면이라든가 구성미를 다루었다고 볼 수 있고, 중국에서 이렇게 조형적인 면에 치중한 인의 예로는 제백석(齊白石)의 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외에도 붓의 갈필의 맛을 강하게 낸 자체도 볼 수 있는데, <인장 이미지 25>가 그 예다. 또한 그밖에 한글 수결인(手決印)으로 <인장 이미지 26>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자체의 형태는 고전을 근본으로 제작되어진 것에서부터 작가의 개성적인 제작에까지 다양한 면을 보이고 있으며, 자체에 따라 모두 다른 특이한 분위기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3.공지(空地)
 공지란 인면에서 자와 획을 제외한 나머지를 말하며 주문인 경우는 흰 부분, 백문인 경우는 붉은 부분을 말한다. 공지의 조정은 배자 이전에 이미 구상되어 있어야 하는데 매우 어려운 과정이다. 대체로 인면의 상좌우보다 하단부에 많은 공지를 남기고 있는데 이것은 다른 어느 곳보다 안정감과 공간감을 지니게 한다.
 또한 인에서 글자 외에 상하로, 혹은 좌우로, 또는 대각선 방향으로 각각 공간을 두어 서로의 공간이 호응하여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인장 이미지 27>에서는 상좌우 부분의 공간과 하의 좌우의 공간이 서로 호응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고, <인장 이미지 28>에서는 ‘그’자를 좁혀 써서 공간을 생기게 하여 ‘새’자의 우측에 생기는 공간과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 <인장 이미지 29>는 대각선의 방향으로 서로의 상응하는 공간을 만들어 조화시키고 있다. 


 
4.종형(縱衡)
 종형에 있어서 종이란 인면에 사용한 세로의 선을 말하는 것이고, 형이란 가로의 선을 말하는 것으로 그 근원은 십자분계법(十字分界法)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종형은 대부분 문자의 수가 많은 경우에 사용되거나 문자의 획이 매우 적어 인면의 공간이 너무 많이 비어 있게 될 때 많이 사용하게 된다.
 종의 경우는 <인장 이미지 30, 31, 32> 등에서 볼 수 있고, 형의 경우는 <인장 이미지 2>가 있다. 또한 문자의 획이 종이나 형의 역할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인장 이미지 33, 34, 35, 7> 등이 그들이다. 
 
 또한 사자인(四字印)의 경우 중간에 
를 긋거나 삼자인의 경우 중간에 ㅣ,ㅏ, ㅓ, 二의 선을 긋거나, 이자인(二字印)의 경우 중간에 ㅣ또는ㅡ의 선을 긋는 일이 있다. 이러한 예로는 <인장 이미지 36, 37, 38> 등이 있다. 그리고 2개 이상의 종형을 한 인에 사용한 경우도 있는데, 이는 <인장 이미지 39, 40>에서 볼 수 있다

 
5.윤곽(輪廓)
 윤곽은 백문인 경우는 나머지의 공지가 그 구실을 하므로 별로 필요치 않으나 주문인 경우에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인문(印文)을 묶어 작품을 더욱 견고하게 하며 통일감을 불어넣고 안정된 효과를 내는 데 필수적이나 인문을 위한 부수적인 위치로서뿐 아니라 인문과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작 시 극히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윤곽의 두껍고 얇은 정도는 작가의 주관에 의하여 좌우되지만, 주문, 백문 구별 없이 자체가 인면에 가득 찼느냐 아니냐에 따라 대체로 달라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각에 있어서 기본 포자(布子) 형식은 자체를 인면에 가득 채우고 각 획간의 간격은 고르게 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런 형식을 만자법(滿字法)이라 부르는데 인의 형식 대부분이 이에 속한다.4)

 그러나 자체가 인면을 가득 채우지 않는 경우 작은 자체를 보완하고 많은 공지를 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윤곽이 만자법의 인형(印形)보다 두꺼운 경우를 볼 수 있다.5) 그 특징을 보면 대부분 전체적으로 상단부보다 하단부에 많은 공지를 남기고 있으며 장중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인장 이미지 1>의 형식은 윤곽이 넓고 두꺼워 더욱 중후한 맛을 내는데 이러한 형식은 중국의 과거 전각 구첩전(九疊篆) 형식에서 변모되어 수·당대에 사용되었던 관인(官印)이나 이조시대 고관의 관인에서 그 형식을 볼 수 있다. 

 또한 윤곽에 방락(傍落)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윤곽 전체에 방락을 하지 않아 간결한 맛을 살리는 경우가 있고, 윤곽의 적소에 방락을 하여 긴장감을 없애고 여유를 느끼게 하며 방락이 되어 있는 부분은 강하게 떨어져 있어 그 격을 가일층 높이는 경우가 있다.
 방락이란 인의 고박한 멋을 살리기 위해 인면의 적당한 부분을 때리거나(打) 마찰하기(磨), 혹은 깎아(刻) 그 정격(政格)을 깨뜨리는 과정을 말하는데, 크게 세 가지 방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인도(印刀)의 후미 부분이나 다른 도구로 작가의 주관에 의해 인면을 때리는 타법이다. 이때 중요한 필획이 떨어져 나가서는 안 된다.
 둘째는 각법으로 첫 번째의 방법으로 효과를 보기 어려운 나무에 쓰이나 석인재에도 쓰이며 그 특징은 예리한 맛에 있다.
 셋째는 마법(磨法)으로 굵은 모래를 펴놓고 그 위에 인면을 눌러 마찰하는 방법인데 모래와 인면의 접촉 정도를 세심히 고려해 제작하여야 한다.

 치밀한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섬세한 맛은 떨어지나 둔한 듯 중후함이 느껴지는 작품을 제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위의 모든 방법은 처음부터 쉽게 의도되는 대로 이루어 지지는 않고 오랜 경험과 연구로만 좋은 효과를 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백문에도 쓰이기는 한다.
 또한 하나의 인면에 사용된 윤곽은 주문의 경우 좌우상의 윤곽보다는 하단부의 윤곽을 대체로 넓게 하여 제작한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인면의 공지가 하단부를 많이 차지하고 있는 데에 대한 제어의 역할로서 만자인 경우는 얇은 윤곽을 사용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두꺼운 윤곽을 사용하는 형식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단부의 윤곽이 두꺼움으로서 인에 안정감을 주고 있는 사실도 한눈에 알 수 있다.<인장 이미지 27, 41, 16, 42, 43>
 또 윤곽이 본래의 역할과 함께 획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는 형식이 근래 많이 사용되면서 인에 멋스러움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윤곽을 일정한 굵기로 하고 있는 것들은, 조형적인 변화보다는 고졸한 맛을 내기 위한 방법으로 <인장 이미지 31, 44, 45, 46> 등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주문이면서도 윤곽이 전혀 없는 것도 볼 수 있는데 <인장 이미지 47> 등이 그러하다. 또한 봉니의 탁본과 같이 자연스러운 넓은 윤곽을 보여주고 있는 경우도 있고<인장 이미지 22>, 윤곽 밖으로 글씨가 나온 경우도<인장 이미지 48> 있다.
 그리고 4면을 다 두르지 않고 2면<인장 이미지 49, 12>, 3면<인장 이미지 50, 5, 51>, 또는 공지의 적소에만 윤곽을 두른 것<인장 이미지 11, 52, 53> 등 여러 가지를 볼 수 있다. 

 
6.주백문 상간(朱白文 相間)
 이것은 주문(朱文)형식과 백문(白文)형식을 같은 인면에 함께 사용하는 방법으로, 크게 보아 주백 (朱白)의 인면 할애가 같지 않은 경우로 구별지을 수 있다.
 주백문 상간인(朱白文 相間印)의 인면 할애는 용이하지 않으며 효과를 제대로 살려낸 작품은 주백의 양자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변화와 특징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백의 인면 할애가 똑같은 면적인 경우로 <인장 이미지 54>를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백문으로 각되어진 문자의 굵기와 주문으로 각되어진 문자의 굵기가 차이가 나면서도 전체적인 조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주백의 인면할애가 같지 않은 경우로는 <인장 이미지 55>를 볼 수 있는데, 특이한 점은 대부분의 주백문 상간인에서는 주와 백으로 분리할 때 글자 각체로 분리하는데 여기서는 하나의 글자를 주백으로 분리하였다는 점이다.

 
7.인(印)의 형(形)
 인의 모양은 매우 다양하고, 다양한 만큼 각기 그 모양에 따라 문자의 배치라든가 공간의 구성을 잘 고려하여야 하는 것이다. 인의 형은 크게 방형과 원형으로 나눌 수 있다.
 방형인 경우는 대부분 정방형인 경우와 장방형인 경우가 많다. 또한 방형의 인을 마름모꼴의 형으로 만든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배자할 때 문자와 마름모꼴과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도록 세심하게 고려를 해야 한다.
 그 예로는 <인장 이미지 56, 57> 등이 있다.
 원형의 경우는 정원과 타원으로 구별지을 수 있는데 정원의 형으로는 <인장 이미지 58, 59, 60, 61> 등이 있고 타원으로는 <인장 이미지 62>가 있다. 그리고 최근에 이르러 재료에 가공을 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상태 위에 제작하여 조야(粗野)한 맛을 그대로 살린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한 예로는 <인장 이미지 63, 3, 64, 65> 등이 있으며 육면체의 형태도 있는데 그 예는 <인장 이미지 66>에서 볼 수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의 인에 나타난 배자방법은 모두 각각의 형에 잘 조화되도록 구성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각각의 형이 지닌 분위기가 다양하게 보인다.


8.변화
 인을 만들 경우에는 변화가 있는 것이 좋으나 그 변화라는 것을 말로 표현하기가 매우 어렵다. 한 문자에는 한 문자로서의 변화가 있고 한 인에는 한 인으로서의 변화가 있으므로 반드시 먼저 문자의 연결상태와 인 전체가 지닌 분위기의 흐름을 충분히 생각하여서 字나 劃을 가볍게 하느냐, 무겁게 하느냐, 공간을 크게 만드느냐, 작게 만드느냐 하는 것을 세밀히 검토하여 문자형의 조화와 전체의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의 인에 두 자 혹은 그 이상의 동일 문자가 있을 경우에는 변화를 주어 같은 형이 나란히 있지 않도록 해야 하고 이때 전체 분위기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잘 조화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본 글은 한글 전각의 조형적 가능성의 폭과 깊이에 관한 관심이자 탐색이었다.
 민족문화의 새로운 창달과 주체성 회복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도 한글 전각에 대한 연구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양회화 특히 남종 문인화가 화가의 직접 체험 못지 않게 간접 체험으로서의 인식가치를 중히 하는 데 그 특징이 있다면, 그리고 그러한 조형적 가치관 속에서 발생된 것이 ‘文字香 書卷氣’의 일환으로서의 전각예술이라면 그 전통을 시대적 미의식과 주체적 미감에 맞게 오늘에 접목해 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

1) 양주영비각자 : 이 비는 현재 경기공업전문대학(공릉동 구 서울공대) 뒷산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중종 31년(1536년) 이문건(李文楗)이 그이 부모 묘비에 잡인이 접근하는 것을 우려하여 언문으로 비신 측면에 따로 각한 것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2) 김영기, <동양미술론>,(서울, 우일출판사,1980), p190


 온한글의 '한글 전각' 관련 포스트 더보기~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