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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에 해당되는 글 4건
2009. 5. 12. 13:32


구체시 작가 고원의 아이디어에 뉴미디어 작가 변지훈이 인터랙션을 부여하였다.
글자 '정'과 '신'은 관객이 입으로 부는 바람에 의해 발생되고 '병'에 담긴다.

'정'과 '신'이 담기는 '병'은
형태적으로 사물을 담는 '병'이지만, 그속에 '정신'을 담음으로써
'병'은 '정신'과 결합하여 '정신병'이 되고 만다.


<동영상>



고원
서울대 인문교수이며, 전위적 문화예술 전문지 <제 3의 텍스트>의 편집인으로도 일하고 있다.
시집으로 <하늘나라><마음 ㅁ속의 사랑><마음 ㅇ속의 이응>등이 있으며, <제 3의 텍스트, 영화와 소설 또는 정신분석학적 글쓰기>와 같은 저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변지훈
프로그래밍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미디어 작가로 서울대와 연세대, 건국대 등에 출강하고 있다. MAAP(싱가포르 2004), Experiment Vanishing Point (호주 2005), National Review of Live Art (영국 2006), Bitforms(서울 2006), Como(서울 2008),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서울 2008) 등
국내외 전시에서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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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2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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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와 예술의 확장’이라는 주제 아래 최근 개최됐던 한 포럼(아트센터 나비)은 디지털 미디어가 새롭게 펼쳐가고 있는 예술창작의 모습들과 그 사회적 연관성을 짚어보는, 매우 값진 토론의 장이었다. 그 가운데 정보기술의 사용법과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접근의 필요성을 제시한 ‘장소성의 부활’이라는 주제발표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이 내용이 뉴미디어에 한글을 접목시키고자 노력하는 디자이너들에게 보다 확장된 시공간 개념을 짚어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편집자)



 가상과 현실이 교차되고 간섭하는 현상이 내게는 중대한 관심거리였다. 이러한 두 개의 공간이 만나는 접점을 인터스페이스 또는 인터리얼리티라고 하는데, 미디어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공간으로서의 ‘장소’에 대한 연구도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일단 여기서는 ‘장소’란 공간이라는 말보다 다소 좁은 의미인 반면 좀 더 구체적인 공간을 뜻한다는 정도만 얘기하고 지나가자.


가상공간이 진화해 온 다섯 단계

 흔히 말하는 가상공간, 즉 사이버스페이스, 버추얼리얼리티 등으로 불리는 실재하지 않는 공간은 역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 첫 번째인 ‘프레임 너머의 피안’은 원근법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공간이다. 여기서는 프레임을 경계로 가상과 현실이 마주보고 있는 관계에 있다. 우리는 현실에 발을 딛고 서서 ‘세상을 향하여 열려진 창문’이라고 불렸던 프레임 너머의 가상공간을 관조한다.
 가령 액자 속 사진이나, 영화관의 스크린, 모니터 속 영상 등을 보면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의 사이에는 넘나들 수 없는 경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가까이서 보고 있지만 그것은 피안의 세계처럼 멀리 있는, 현실의 세계가 아닌 공간인 것이다.

 두 번째는 ‘3D’, 즉 입체영상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바 있는 경계를 넘어선 가상공간으로, 1838년 C. 휘트스톤(Charles Wheatstone)이 양안시차에 의한 입체시(stereoscopic vision)의 메커니즘을 발표한 이래 다양한 미디어에서 실현되었다.
 즉, 두 눈에 다른 정보가 들어가 사물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이론으로, 화면 저편의 사건이 입체적으로 돌출하듯 관객 쪽으로 돌진해온다. 이로써 프레임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던 현실과 피안의 경계가 무너진 것이다. 입체사진이나 입체영화, 홀로그래피 등 가상공간의 이미지에 리얼리티가 확장됨으로써 가상공간이 현실과의 경계를 넘어 다가온다.


       


 세 번째는 ‘전방위와 몰입’이다.
18세기에 유행했던 파노라마(Panorama), 디오라마(Diorama)를 거쳐, 시네오라마(Cineorama) 등 이른바 360도 전방위 영상으로 관객의 시야를 커버하는 영상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프레임이 시야에서 없어지는 것은 물론, 관객은 자신이 서 있는 장소를 망각하고 가상의 정보공간 속으로 몰입하게 된다. 사실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이 서 있는 장소를 잊게 하는 것이 목적인 셈으로, 파노라마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유럽과 미 대륙을 중심으로 대중흥행물로 유행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싸이클로라마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흥행물을 보면 남북전쟁 당시의 모습을 마치 영화장면을 보는 것처럼 느끼도록 했다. 1900년 파리박람회에서 마레오라마라는 이름으로 출품된 작품은 2,500피트짜리 두루마리 그림 두 개를 펼쳐나가면서 관객들이 마치 배를 타고 항해를 즐기는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또한 같은 박람회에 소개되었던 사례 중에는 10대의 영사기로 360도 영상을 쏘는 방법으로 기구를 타고 알프스를 넘어 바르셀로나까지 가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는 시네오라마라 불리는 시뮬레이션 장치가 있기도 했다.
 

                                      


 다음은 위의 몰입형 가상공간에 상호작용이 더해져서 그것이 현실로 지각되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단계다.
시카고 대학 데이비드 젤처 교수는 가장 완성된 형태의 가상현실이 되기 위한 모델로서 ‘VR in AIP cube’(1994)라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런 가상현실의 제작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도 그런 형태의 장치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비용문제도 있고 만들어야 할 필요성도 못 느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복합현실’ 또는 ‘증강현실’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사용자의 의식이 현실과 가상세계에 동시에 접속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일정한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현실공간과 대치했던 가상공간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현실공간과 조우하고 있지만, 오늘날과 같이 가상과 현실이라는 이질적인 두 세계가 동등한 무게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초유의 상황이다.

 예술이나 철학, 종교적 상상력의 무대였던 가상공간은 생활 속에 널리 확장됨으로써 인간 활동의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무대가 되어 왔다. 그리고 현대의 미디어 테크놀로지에 의해 보다 다양한 양상으로 실현됨으로써 이를 무대로 한 창작활동에서 공간에 대한 해석이나 표현이 한층 더 풍부해진 것이 사실이다.
 

                                        


‘장소의 기억’의 소생과 예술활동

 하나의 통일된 유비쿼터스정보환경=기술권(technosphere)에 둘러싸인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기억의 저장고가 되며, 인간은 이동하면서 그것과 만나고, 연결되고, 몰입하며 상호작용하게 된다. 이에 따라 산업사회에서 점점 몰개성화 되어가던 ‘장소’들이 갑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하고, 가상의 세계는 이 현실세계와 함께 존재하며 융합하게 된다.

 2000년 복합현실형 엔터테인먼트 콘테스트의 대상작이 이를 보여주는 한 예가 될 것이다. 네 명의 플레이어가 투시형 HMD를 쓰고 데이터 글로브를 끼고 모여 있는데, 글로브를 끼고 있는 손을 펴보면 손바닥 안에 물속에서 살고 있는 돌고래가 있다. 손을 움직이면 수면에 파도를 일으켜 돌고래와 놀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돌고래를 훈련시켜 다른 사람 손바닥 안으로 뛰어들게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까지의 몰입형 가상공간이 아닌 이중적 리얼리티가 있는 장소를 보여주고 있다. 네 명의 친구들은 현실공간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 동시에 가상공간에 접속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언젠가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이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에 동상이 있었던 기록이 숨겨져 있다면, 그리고 그런 데이터 장치를 가진 사람이 그곳을 지나가게 된다면 그 기록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매우 다양한 방식의 장치로 실현되고 있다.
 가령 2006년에 올리버 그립이라는 작가가 지휘하는 팀이 제안했던 것으로, 360도 파노라마로 청계천 복원 사업 전후를 동영상 촬영해 그 데이터를 담은 뷰어를 현장에 설치함으로써 복원 이후에도 이전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과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나는 그 아이디어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건설될 광주 전남도청 주변에 적용할 것을 추천하기에 이르렀다. 뷰어를 지금부터 설치하면 전당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도 지켜볼 수 있고,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2012년 이후에도 이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는가? 또한 그 반대로 80년대 있었던 사건이나 조선시대의 모습 등 그 장소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기억을 되돌려 볼 수 있지 않을까? 뷰어도 현재와 같은 기계적인 방식으로 위치정합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GPS를 이용한 위치정합방식으로 대치한다면, 관람객이 자신의 위치를 GPS로 읽어 그 장소에 기록되어 있는 가상의 데이터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제안이었다.



           



 몇 년 전 완성된 ‘ROME REBORN’ 프로젝트에도 같은 방법을 적용해볼 수 있다. 콘스탄티누스대제 시절 로마의 거리와 건축물 등의 모든 좌표를 현재 로마시의 GPS 데이터와 일치시켜 저장해둔다면 사람들은 현재의 길과 건물, 사람들의 모습을 과거의 길과 건물들과 오버랩 시키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것은 ‘Rome Reborn 1.0’이지만, 3.0 버전 정도라면 아마도 이런 방식으로 구현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구글 지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로마에 간다 하더라도 자기가 가져간 프로그램에 따라 각기 다른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같은 공간 안에서도 얼마든지 여러 가지 소프트웨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06년부터 독일에서 추진되었던 모바일랩 프로젝트(Mobile lab project)는 장소의 개념을 기반으로 한 예술활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Location based game, arts, service’ 개발을 위한 연구실로, 버스 안에 각종 정보통신 장비와 예술가들을 싣고 전국 각지의 미술관이나 문화센터를 돌아다니면서 문화적 이벤트를 실행하는 개념의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 중 한 사람이 방문하는 도시마다 하이쿠를 지어 나무 위나 화분 뒤, 혹은 건물 등에 붙이는 방법으로 장소에 대한 기억을 남겼다. 만약 그 시들이 종이 위에 쓰인 채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심어둔 데이터로 남아 있다면 GPS를 이용해서 그 장소에 접근하는 사람은 그 시를 읽을 수가 있을 것이다.

 비슷한 아이디어로, 영국의 어느 소도시에서 만든 사운드 매핑 프로젝트인 ‘Surface Patterns’는, 서로 다른 10개의 장소에 번호를 정해놓은 뒤 원하는 장소의 번호를 누르면 그곳의 지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고 자신의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일 수도 있다.


몰장소성(Placelessness)과 장소성의 부활

 에드워드 랄프라는 캐나다의 지리학자에 의하면,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생겨난 철도나 자동차와 같은 교통수단, 전화나 인터넷 같은 통신수단 등은 이전시대의 사람들에겐 중대한 속박이었던 장소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왔다. 이들이 자유와 안락함과 안전에 대한 욕망을 채워주는 기술인 것은 분명하지만, 세계화·지구화가 진행되면서 모든 장소는 그 개성을 잃어버리고 겉모습뿐 아니라 그 분위기마저 동일화되어버린 나머지 어떤 장소든 그 아이덴티티가 대동소이해져 버린다고도 했다.

 사실 철도와 전화의 개발에 따라 제일 먼저 하게 된 작업이 시간과 공간의 통일이었다. 철도나 전화가 나오면서 전세계적으로 공간과 시간의 표준화가 추진되었고, 시간을 통일하고 좌표를 통일하는 작업이 요구되었다. 예를 들어 건축이나 도시 만들기의 목적 중 하나는 시간과 공간과 관심을 공유하는 동상동몽(同床同夢)의 상태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휴대폰이 보급됨에 따라 다른 공간에 있는 누군가와 계속해서 연결되고 접속과 글쓰기가 끊이지 않는 블로그나 게시판 등의 형태로 관심을 공유하는 이상동몽(異床同夢)이 실현되면서, 그 반대로는 한 장소에 모여 있으면서도 모두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의 현상이 빚어지곤 한다. 이 같은 현상들은 소통을 너무 많이 하는, 즉 연결의 과잉 때문에 빚어지는데, 결과적으로는 서로 아무 것도 공유하지 않는 이상이몽(異床異夢)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데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처럼 장소성을 몰락시키는 주범은 정보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생각을 바꾸면 이를 역이용해서 장소에의 관여를 회복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즉, 정보기술의 사용법을 새로 디자인함으로써 ‘장소’를 부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장소란 처음부터 장소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장소와의 관계와 참여의 반복과 축적을 통해 장소에 대한 감각, 즉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적절한 감각을 가질 때 비로소 장소성을 획득하게 되며, 나아가 이는 행동을 해석하고 구속하는 문맥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장소성의 부활이 전제될 때 정보기술과 미디어를 통한 미적 경험의 확대도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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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6.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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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란 거대한 캔버스다. 시간의 흐름을 갖는 움직이는 캔버스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디자이너 노승관 씨에게 도시란 창작의 원천이며 작품을 표현할 수 있는 무대이다. 오히려 무질서하게 범람하는 이미지들과 소음이 안락함과 재미를 준다. 그중에서도 특히 네온사인들의 발광 속에서 부유하는 한글에 묘한 매력을 느껴 실험적인 미디어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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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상한글’전에 출품한 작품의 제목이 ‘한글 패브릭’이었는데, 이는 한글이 씨실과 날실처럼 얽혀 만들어진다는 구조적인 특징을 암시하고자 함이었나?
 

‘한글 패브릭’은 그러한 거창한 의미를 암시하기보다 편안한 패브릭을 떠올리며 만든 작품이다. 언젠가 남산공원에 오르다가 내려다본 서울의 전경이 누워서 자고 싶은 패브릭으로 느껴졌던 경험을 담아낸 것이다.



     
                                                            <한글 패브릭-노승관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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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서울 전경이 그렇게까지 편안히 쉬고 싶은 패브릭으로 느껴졌다는 것을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서울의 어지러운 네온사인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편안할 뿐 아니라 가끔 밀레오레 같은 건물 아래서 네온사인을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아마도 도시에서 나고 자란 영향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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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자랐다고 해서 모두 그렇게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공기나 물의 오염만큼이나 시각물의 공해에 누구나 지쳐가고 있지 않은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길거리 노래방들의 조명이나 육교 위에서 바라본 도시의 스펙터클한 전경 등이 좋은 것을 어쩔 수 없다.
 나로서는 인공적인 것들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작가로서 질서를 부여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럴 때마다 “자연에 대한 무책임한 비유를 경계하기 위해 나는 한동안 도시에서 시를 썼다”는 고 기형도 시인의 말이 떠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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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인으로 사는 경험들을 새로운 질서로 재창조해낸다는 말인가?

무질서한 듯 보이는 네온사인과 간판들은 보는 사람의 관심이나 관점에 따라 시각적으로 가깝게 다가오고 점멸하는 내용이 달라질 것이라는 전제가 내 작업의 출발점이 된다. 또한 그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눈에 들어오고 나가고를 반복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변화를 상징화하기 위해 일정한 움직임을 갖는 인공적인 프로그램을 부여하는 것이다.



본질적인 영상언어와 움직임의 심리학적 해석에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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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글자들이 쉬지 않고 움직이며 읽혔다가 안 읽혔다가 하는 것이 그렇게 깊은 뜻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

개인적으로 움직임이 들어간 것에 관심이 많다. 애니메이션 작업에서도 스토리텔링 보다 움직임의 현상 자체에 집중하고 그 움직임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주목한다. 지각심리학의 ‘가현운동(apparent motion)’ 의 현상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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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것이 작품에 많은 영향을 줄 것 같다.
 

원래는 미술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고 1때 색약판정을 받아 그 꿈이 좌절되면서 미술이라는 학문과 가장 비슷한 심리학과를 선택하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지금의 작업들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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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심리학이 다른 학문들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비롯되며 작가의 인지과정을 통해 자연이 재해석되고 재조립된다는 측면에서 미술은 심리학과 닮은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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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미국에서는 심리학을 계속하지 않고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는데,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나?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특히 게슈탈트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때가 마침 매킨토시 시대가 시작되던 시점이었다. 당시 ‘맥다모’라는 동호회에 참여해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맥 페인트나 초창기 하이퍼 카드 등을 가지고 놀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미국 유학할 준비를 하는 친구를 돕다가 덩달아 시각적인 인지현상 과정을 담은 애니메이션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지원해봤는데 합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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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도 여러 학교를 옮겨 다니며 공부했는데 어떤 이유에서였나?
 

처음 들어간 SVA(School of Visual Arts)에서 1년 정도 커머셜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다 보니 좀 더 본질적인 영상언어를 공부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로드아일랜드 스쿨오브 디자인(RISD)으로 옮겨 필름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며 타임 아트(Time Art)에 대한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대학원을 캘아츠(CalArts)로 선택한 것은 RISD의 지도교수를 가르치셨던 실험애니메이션계의 큰 스승 Jules Engle 교수께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으로, 덕분에 시각예술 뿐 아니라 연극이나 무용 등 종합예술, 미디어 아트 등을 모두 경험해볼 수 있었다.

 

한글은 인물의 성격을 가진 캐릭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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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미디어에 대한 수업과 경험들에 한글을 등장시킨 것은 무빙타이포그래피를 연구하기 위함인가?

엄밀하게 무빙타이포그래피 개념이라기보다 애니메이션적 접근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한글이라는 캐릭터를 문자 개념의 캐릭터가 아닌 인물의 성격을 가진 캐릭터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한글은 무척 재미있는 소재가 된다. 형태적 구성적으로 재미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모아쓰기 등과 같은 체계가 있어서 성격이 있는 움직임의 주체로 작업할 수 있게 한다. 

 한 예로 ‘ㅇ의 여행’이라는 작품을 보면, 수직과 수평구조의 자모음들과는 다른 형태를 가진 ‘ㅇ’가 가출하거나 귀가하는 상황에 따라 글이 읽히기도 하고 안 읽히기도 한다. 여기서 ‘ㅇ’은 마치 미운 오리새끼 같은 역할을 하는 배우나 무용수처럼 보인다. 즉, 글자들의 움직임으로 하나의 무대를 연출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ㅇ의 여행’-노승관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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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의 글자들이 쉽게 읽혀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어떻게 해야 예쁘게 혹은 잘 읽혀질 것인가?’보다는 사람은 어디서든 의미나 재미를 찾고 혹은 자기 앞의 대상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심리가 있다는 측면에 더 주목하고 있다. 내 작품은 그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끌어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저마다 독자적인 움직임의 규칙을 가진 자모들이 다른 자모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것을 보는 동안 관객은 예상치 못한 글자와 단어를 발견하는 재미에 빠져들게 된다. 자모들이 움직이다가 충돌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수직적인 형태의 글꼴을 수평적으로 움직이도록 재구성하거나, 전각에서처럼 각 글자들의 스페이스에 포지티브와 네거티브로 변화를 주는 것도 재미있다. 이러한 장치와 현상들이 도시의 이미지들과 시간의 느낌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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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계층적인 구조가 미디어 작업을 가능케 하는 양질의 성분이라고 말할 수 있나? 

형태적 구성적으로 재미있는 구조를 가진 한글의 특수성이 움직임 자체를 연구하는 내 작업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한글의 무빙타이포그래피 작업에서는 우선 글꼴을 만들어 놓고 움직임을 부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 추가되는 움직임으로 인해 원래 글자꼴의 조형미가 파괴되는 경우가 많다.
 애프터이펙츠 같은 소프트웨어 들을 이용하여 무빙타이포그래피 작업을 할 때도 고민이 필요하다. 이들 소프트웨어의 기능들 중 대부분은 로만알파벳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면서 한글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한글은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뭘 줄 수 있나?’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각각의 캐릭터는 각자에게 맞는 연기와 구성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좋은 작품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터랙션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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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 경계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피지컬한 참여에 의한 인터랙션보다는 관람객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인터랙션을 지향하고자 한다. 관람객들의 참여 유도에만 신경 쓰다 보면 더 중요한 ‘감상’과 ‘체험’을 놓칠 수 있다. 훌륭한 회화작품을 감상할 때 머리 속에서 엄청난 인터랙션이 일어난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가령, 세잔의 정물화를 볼 때 우리는 움직이지 않는 그림 속에서도 구도, 형태, 색 등에 대해 많은 수수께끼와 해답을 발견할 수 있고, 그 질문과 대답이 많아질수록 좋은 감상을 경험하게 된다. 정지된 화면이 아닌 움직이는 화면을 쓰고 있는 지금에도 ‘감동’이라는 전통적인 미학이 밑받침되어야만 작품의 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예전에 비하면 인프라가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미디어 작업을 하는 데에는 작품을 실연하기 위한 도구나 디스플레이 방법 등에서 많은 비용이 드는데, 그 또한 절반은 작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주어진 환경에 맞는 컨텐츠를 담기 위해 고민하다 보면 작품의 특성상 쉽게 팔고 사기 어려운 미디어 작품을 놓고 ‘해프닝이냐 비즈니스냐’ 하는 논란을 벌이는 일도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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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늘 한글을 소재로 한 미디어 작업을 해나갈 계획인가?

사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국내에서는 내가 꿈꾸는 애니메이터로서 살기 어려운 것 같아 한동안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만 열중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돌아가신 Jules Engle 선생의 장례식에 다녀온 이후로 어디서라도 작업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 한글작업이었다. 그 결과 2년여 만에 나름대로 인정도 받게 되었지만 하면 할수록 새로운 구상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것은 움직이는 캔버스 위여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움직임은 보다 직접적인 호소력을 갖는 세계 공통어라고 말하고 싶다. 시간의 흐름을 동반하며 작품을 살아있게 한다. 그러한 무대에 한글이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계속 연기하게 할 수 있다면 연출가로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BlogIcon 달의아이 | 2009.02.06 21:3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잘보고 갑니다~^^ 이상한글 전에서 한글 패브릭을 인상깊게 봤지만 도록에 써있는 설명으로 이런 의미까지 읽지 못했어요~ "ㅇ"의 여행이 너무 재밋는 작품같아요!
BlogIcon 온한글 | 2009.02.09 10:11 신고 | PERMALINK | EDIT/DEL
안녕하세요. 달의아이님ㅎㅎ
작품과 함께 설명과 의미까지 읽는다면
작품을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겠죠? ㅎㅎ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릴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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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5. 09:59

모션그래픽으로 리바이스, 니산, 소니, 하나은행 등의 TV 광고나 기업 아이덴티티 작업을 하거나, 혹은 역삼동 GS타워나 서교동 자이갤러리, 명동 SKtelecom 사옥 등의 외관영상 등을 만드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그리고 가끔은 음악을 믹싱하는 DJ처럼 크고 작은 미디어 공연에서 영상을 실시간으로 믹싱하는 VJing 작업을 하기도 한다. 그밖에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이나 예고편을 만드는 등 영상언어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하고 있는 즐거운 디자이너이자 감독이며 아티스트다.

 몸담고 있는 분야가 그래서인지 최근 뉴미디어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는 것을 누구보다 실감한다. 뉴미디어 페스티벌이나 뉴미디어 비엔날레 등의 굵직한 행사가 치러지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사실 얼리어댑터(Ealry Adaptor) 기질이 다분한 한국인들에게 뉴미디어라는 단어는 상당히 매력적일 것이다.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이 가장 대표적인 뉴미디어였고, 전자수첩, 핸드폰, mp3, 인터폰, 심지어 밥솥 같은 가전제품에까지 액정화면이 장착되고, 엘리베이터나 버스정류장, 혹은 건물의 한 면이 LED로 바뀌어 거대한 TV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예시했던 가상의 것들이 가시화되고 있고, 향후 5년 정도만 지나면 스크린을 통해 보이기만 하던 영상이 만져지는 영상으로 그 영역을 엄청나게 확장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필립스의 한 디자이너에 의해 LED 벽지가 만들어진 것이 이미 5년 전의 일이고, 그렇게 신기하던 터치스크린도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제는 보기만 하던 화면에서 내가 말하는 대로, 혹은 내가 움직이는 대로 반응하는 이미지들…. 화면이 보이지도 않다가 나의 특정 행위에 반응하는 ‘새로운’ 방식들이 심지어 친환경적으로 여겨질 정도의 힘을 가진 ‘멋진 신세계’로 다가온다.

 몇 년 전 한 정보통신기업의 전시관을 위해 일할 기회가 있었다. 광화문 한복판에 위치한 이 전시관은 해외 VIP나 기업의 클라이언트, 또는 일부 관광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었는데, 유비쿼터스 환경이 내가 상상하던 미래의 모습 이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모든 것들이 가까운 미래의 모습이라는 관계자들의 설명이었다. 실제로 그중 몇 가지 기술은 이미 상용화되고 있었다. 그 멋진 신세계를 경험하면서 느낀 것은, 나에게 뉴미디어란 신기술로 확장된 엄청난 매체라기보다 신나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작업영역이고 정복해야 할 대상이라는 점이었다.


한글은 쉽지 않은 천덕꾸러기?

 내 작업은 당연히 나만의 예술작업이 아니다. 클라이언트의 이미지나 제품의 가치가 확대되고 돋보이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직원은 두 명뿐이고, 작업의 스케일에 따라 다른 작업자들과 프로젝트팀을 구성했다가 흩어지는 시스템으로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규모가 큰 업체들만큼 스케줄이나 예산의 영향을 덜 받으며 즐기며 일을 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워낙 비용이 만만치 않은 프로젝트들이다 보니 제대로 된 논리와 설득력을 갖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애정을 쏟아야 한다. 클라이언트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은 항상 “알아서 멋지게!”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다 보면 경우에 따라 내용적인 기획력보다는 시각적인 유희에 비중을 둘 때도 있다. 논리와 설득력을 생명처럼 여기는 클라이언트들도 기획과정을 굳이 따지지 않는 만큼 ‘끝내주게 멋진 결과물 만들기’가 내 일의 핵심이다.


         


 그 과정에서 항상 문자와 씨름을 벌이게 되는데,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이미지와 소리의 물리적인 반응을 통해 감성을 전달함으로써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성격을 띠게 된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걸린 문자들처럼 글귀만으로 보는 이를 설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와 매끄럽게 조화되어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요소로서 문자를 등장시키는 것이다. 그러한 작업을 하는 동안 내가 쓰는 언어, 한글은 참 쉽지 않은 ‘천덕꾸러기’다.

 컴퓨터를 통해 거의 모든 과정이 이뤄지는 모션그래픽 작업에서 헬베티카(Helvetica), 딘(Din), 푸츄라(Futura), 아방가르드(Avangarde), 미리어드(myriad), 길 산스(Gill sans), 스톤 산스(stone sans), 타임즈 뉴 로만(times new roman), 가라몬드(garamond), 바스커빌(baskerville), 사봉(Sabon) 등 영문서체들에는 얹어놓기만 해도 그림이 되는 폰트들로 가득하다.
 내가 쓰는 한글폰트는 윤디자인의 대표 서체들과 산돌의 서체들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캘리그래퍼를 찾거나 이름 모를 디자이너나 업체가 만든 한글폰트들을 조합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며 우악스러운 결과물을 내곤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난관에 봉착하면 또다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한글폰트를 포기하고 영문서체를 기용하게 되는데, 차별화된 작품을 만들고 싶은 작업자로서는 당연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바람을 타고, 몇 년 전부터 알고 있는 디자이너 중 한 분은 취미생을 대상으로 서예학원을 운영하시다 전문 캘리그래퍼로 직종을 바꾸셨다. 그 후 별안간 스타디자이너가 되어 대한민국 전역에 당신의 손글씨들을 독점적으로 퍼뜨리셨다.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두어 달 정도까지 한 프로젝트와 씨름을 하는 나는, 찰나에 멋스럽게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그 분이 참 부럽고 샘이 나기도 했다. 그 분의 뒤를 이어 꽤 많은 캘리그래퍼들이 영화나 광고, 그래픽디자인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것을 보면, 캘리그래피가 마치 이 시대 한글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점의 해결사라도 되는 양 싶다.


한국인이 더 모르는 한글의 매력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구독해온 외국의 한 유명한 잡지에서 한글을 수차례 볼 수 있었다. 가장 트렌디한 작업들만 소개하는 그 잡지에서 한글을 발견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클라이언트가 한국의 기업이나 단체일 것 같지는 않아 보였는데, 그렇다고 그 감성이 한국인 디자이너의 작품으로는 볼 수 없는 프로젝트들이었다.
 그 중 하나는 ‘수트맨’이라는 한글이 정확하게 찍힌 향수병의 패키지 디자인으로, 디자이너 자신이 만든 폰트를 썼는데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맛스러운 한글이었다. 그 사람이 한국인이라기보다 미국인에 가까운 교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였다.


                                 


 
이 경우를 비롯해 무슨 의미인 줄도 모르면서 단순히 조형적인 면에 집중했을 뿐이지만, 한국인인 나도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한글 특유의 맛이 남의 손으로 요리된 작업들을 보는 것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우리가 런던이나 북유럽의 타이포그래피들을 흠모하며 날을 세우고 있는 동안, 모아쓰기를 하는 구조 때문에 이미지 작업들과 조형적으로 예쁘게 조화되기 힘들다는 그 한글을 그들은 오히려 ‘조형적인 매력’을 이유로 자유롭게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밖에 나가 그들의 생활 속에 있는 알파벳, 한자, 아라빅 문자 따위들을 열심히 디카로 찍어 우리 작업에 응용하는 것이나 그들이 우리의 문자를 자신들의 문화에 잘 버무려 맛스럽게 작업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나 크게 다른 일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얌전하고 단정한 것 외의 좀 더 자유로운 감성의 한글에 대해서는 어려워만 하거나 가볍다고 혹은 우악스럽다고 치부해버리는 소심한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맛있는 요리는 즐거운 요리사가 만든다

 나는 디자인을 즐긴다.
 어머니들이 집안에 앤틱 가구를 들여놓고 흐뭇해하시거나 벽지 하나를 바꾸고 즐거워하시듯, 혹은 젊은 여성들이 좋은 옷과 액세서리를 코디하고 즐거워하듯 디자인이라는 행위 자체는-물론 충족시켜야 할 여러 가지 현실적인 조건과 가치가 있지만- 분명 대상에 애정과 애착을 가지고 즐길 때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믿는다. 

 한글도 마찬가지다.
 한글의 형태와 생김새에 매력을 느끼고 한글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감성을 좋아할 때 그 결과물도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대부분의 모션그래픽 디자이너나 아티스트들은 아직 달구어지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타이포그래피를 가르치면서도 비슷한 것을 느꼈다. 내가 배워온 대로 반드시 알아야 할 영문문자들을 한 학기동안 가르쳤으나 디자인학교에 갓 들어온 학생들에게 외국의 문자들을 느끼게 하고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하기에는 시간이 빠듯했다.
 게다가 올해는 한글까지 다루게 되었으니 그래픽디자인만이 아닌 영상디자인 전체를 아우르는 능력을 습득해야 할 학생들이 한글의 맛을 알고 느끼기에 1년이라는 시간도 짧기만 했다.

 이번 학기에 진행한 프로젝트는 좋아하는 음악을 선곡해 한글이든 영문이든 문자만으로 재미있는 뮤직비디오를 구성해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학생들이 그 작업을 힘겨워했다. 지켜보니 음악은 대부분 한국음악을 들으면서 정작 한글작업을 하는 학생은 전체의 15%정도이고 나머지는 영자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외국음악을 가지고 작업하려니 흥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나마 한국음악을 선택한 학생들도 서체를 변형하고 응용할 엄두를 내지 못해 듣지도 보지도 못한 괴상한 서체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먼저 음악을 즐기고 그 맛을 느껴야 작업 전체의 감성을 디자인할 수 있고, 그렇게 한글을 만진다면 비록 문자 하나하나의 조형성은 아쉽더라도 ‘수트맨’ 같은 개성 있고 유쾌한 작품이 나올 수 있으리라 기대했건만 사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도 한 학기가 끝나가는 지금 그 15%의 학생들 중 몇몇은 서체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엉성하고 투박한 솜씨지만 한글을 만져가며 조금씩 맛을 느끼고 있다. 한글의 맛도 못보고 심지어 그러한 맛이 있는지조차 모른 채 졸업한 사람들이 디자인 현장에서 한글을 이용한 작품을 제대로 해낼 리 없다.
 윤디자인을 비롯해 안상수, 홍성택 또는 금누리 선생 같은 분들이 디자인 분야에서 한글의 변형과 확장을 시도했던 것처럼, 모션그래픽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30대 초·중반의 의식 있고 욕심 있는 디자이너들이 꿈틀거리며 다양한 시도를 하는 과정에 있다.


솔직담백한 한글이 스타급 모델로 떠오른다

 디자이너들이 한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닿자와 홀자, 받침자의 조합에 매력을 느낀다. 각각의 요소가 합쳐지며 하나의 글자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멋스럽다. 그렇게 생성된 한 자 한 자가 모여 단어가 되고 문장을 이루고 문단을 만드는 과정은 분명 다른 문자들이 지니지 못한 묵직한 힘을 지니고 있다.

 2007년부터 2년간 진행했던 모 은행 프로젝트는 1년 동안의 홍보물을 비롯해 국내외 각종 행사에 사용될 은행의 이념과 실적, 구체적인 활동까지 수많은 정보를 담아야 했는데 거기에 사용될 한글의 양은 그 어떤 작업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방대했다.
 이러한 여건에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허공에서 홀소리와 닿소리, 받침들이 느리고 여유 있게 합쳐져 문장을 이루고 그 문장이 이미지로 변화되는 화면에 최소한의 소리를 곁들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파격적인 방법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였지만, 기업에 대한 정보를 잘 담아내면서도 딱딱할 수밖에 없는 금융기관의 이미지를 감성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나의 예에 불과하지만 그렇게 하나씩 풀어 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다행스럽게도 파괴되고 천대받는 한글 대신 어렵지 않고 ‘쾌(快)’한 한글들이 TV와 스크린, 웹 등 생활 속 다양한 미디어들을 통해 선보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불황의 여파로 이러한 결과가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광고계는 로케나 스타급 모델의 기용을 줄이면서 이미지와 카피만으로도 좋은 광고들을 만들고 있고, 음악계에서도 제작비용을 줄이기 위해 모션그래픽만으로 구성된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화려한 무대와 배우 대신 이미지와 뒤섞이며 춤추는 문자들이 어설픈 내용의 작업들보다 한결 부드럽고 보기편한 작품들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미디어의 등장은 정말 많은 컨텐츠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만큼 수요가 늘고 있지만 그럴수록 양질의 작업들이 절실한 시기다. 메이저 디자인 집단을 올려다보며 날만 갈고 있던 변방의 의식 있고 스타일 있는 디자이너들에게는 이 거대한 파도가 한번 신나게 올라타 볼 만한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다.

 어떤 분야든 어려운 포장이나 장식적인 표현보다 명쾌하고 솔직담백한 표현이 보는 이에게도, 작업하는 이에게도 더 즐겁다.
 이 시기야말로 쉽고 간결한 한글디자인이 미디어들 속에서 다양하게 피어나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한글에 대한 울렁증은 이제 그만! 애정이 듬뿍 담긴 즐거운 실험들이 점점 더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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