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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3. 11. 09:20


최근, 끔찍했던 과거의 기억을 털어버리고 활동을 재기한 전자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 씨의 근황이 사람들 사이에서 종종 회자되곤 했습니다. 그의 지인들은 오랜 칩거를 끝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예전 같은 경쾌한 연주를 펼친 그에게 응원을 보내는 동시에, 후덕해진 외모에 대한 인사도 잊지 않았어요.

작년 연말쯤 KBS TV ‘인간극장’이라는 다큐멘터리 시리즈에 출연했던 그가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이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인사말은 “살쪘어요.”였답니다. 본인도 처음엔 그러려니 하는 듯하다가,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신물이라도 났는지 지겹다는 제스처를 보이더군요.

KBS '인간극장'에 출연했던 유진박. 사진 출처 뉴스엔 / www.newsen.com

굳이 유진 박 씨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과 가장 먼저 나누는 인사의 주제는 바로 ‘살’입니다. “살이 쪘다, 살 빠졌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살이 쪘다’는 말을 들으면 내가 이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몸매나 건강 같은 자기 관리에 실패했거나, 아니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많았거나 하는 등 대체로 안 좋은 일이 많았을 것이라는 인상으로 비칠까 염려된다는 겁니다.

갑자기 ‘살쪘다’는 얘기를 친구에게 듣고, 상대방이 궁금해하거나 말거나 그간 살이 찐 경위에 대해 진술하고 있는 제 모습이 궁상맞아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었거든요. “내가 왜 그 상황을 이 사람에게 설명해서까지 살찐 이유에 대한 수긍을 받아야 했을까?”라고요.

반대로, 여러분은 “살 빠지셨네요?”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소감이 어떠신가요? 대다수 사람이 이 얘기를 기분 좋게 받아들이실 겁니다. 특히 여성들은 ‘예뻐졌다’는 말과 일맥상통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도 언제부턴가 주변에서 ‘살 빠졌다’는 말을 들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질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에게 “살이 빠지셨네요.”라는 말을 들으면 “그동안 무탈하게 잘 지내셨나 봐요?” 아니면 “뭐 좋은 일 있어요?”라는 의미로 해석해서 듣는 이들도 있어요. 그리고 이와 같은 의미를 넣어 인사치레 같이 이런 말을 건네는 사람들도 있고요.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살’이 소원했던 사람들 간 만남의 자리에서 말문을 터는 인사로 자리 잡은 걸까요? 곰곰이 생각해봤는데요, 저도 이 말을 인사로 듣기 시작하고, 남에게 건네는데 익숙한 것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시점부터 인 듯합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특히 상대가 여자일 때 ‘살’ 빠져서 ‘예쁘다’는 복합적인 의미를 건네면, 서로 간에 분위기가 원만해졌거든요. 물론, 개인적인 얘기입니다.

오랫만에 팬들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면서 "살쪘다"고 했다가 '망언스타'라는 얘기를 듣는 배우들.
맨위부터 신민아, 김희선, 장근석
사진출처 :   티브이데일리 / tvdaily.mk.co.kr, 아츠뉴스 / artsnews.co.kr, 국민일보 쿠키뉴스 / news.kukinews.com

그런데 살이 찌고 빠지는 형상이 외모에 관련된 묘사잖아요. 상대방이 예전보다 수척해졌는데 위와 같은 의미를 담아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런데 상대가 건강상이나 커다란 심적 고통을 받아 말랐다면 뜻이 달라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에게 살이 빠진 이유가 좋은 일 때문이 아니기 때문이죠.

제가 외국어를 뛰어나가 잘하는 사람은 아니라 장담은 못 드리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들어보고 겪어본 말 중에 아직까진 오랜만에 만나 나누는 인사 표현 중 상대방의 외모를 두고 건네는 문구는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 어떤 언어라도 좋으니 알고 있는 표현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 주심 감사하겠습니다.
 
외국에선 상대방의 외모나 나이 같은, 지극히 프라이버시 범주에 속하는 내용을 언급하는 것이 예의에 벗어난다고 알고 있거든요. 따라서 우리나라의 ‘살’에 관련된 인사말이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그들에게는 실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맨 처음 언급한 유진 박도 재미 교포시잖아요.

다행히, 우리말에는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반가움을 나눌 수 있는 좋은 표현이 많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오랜만입니다” 부터 “반갑습니다, 보고 싶었어요, 내내 근황이 궁금했는데 이렇게 만나는군요.” 등등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아니면 상대방과 관련된 일들, 만약 직장인이면 당시 함께 추진했던 업무를 들어 반가움과 고마움을 섞어 표시할 수도 있을 것이고요.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듣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지 생각하지 않은 채 무심코 말을 건넵니다. 그래서 더더욱 말은 조심해서 써야 한다고 하나 봅니다. 좋은 의미로 했다손 치더라도, 어쩔 땐 상처가 될 수 있죠. 외모에 관련된 말이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좋은 의미로 ‘살 빠졌다’고 말 하고 다녔는데, 뭐가 어떠냐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외모 지상주의의 한 단면’이라고 부풀려 생각할 수도 있겠고요. 솔직히 인사라는 것이 주고받으면서 서로 기분이 좋다면 그만입니다.

다만, 언제부턴가 ‘살’이 우리에게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주고받는 인사로 자리 잡은 것이 재미있는 현상 같았습니다. 그래서 트집을 잡기보단, 여러분도 이 말들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지 한 번 생각해 보셨으면 하는 의미에서, 쓴 것일 뿐입니다.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3기 배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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