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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23.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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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이란?
한글날은 세종대왕께서 우리 글자인 한글(훈민정음)을 만들어 반포한 날을 일제시대인 1926년에
기념일로 정해 기리다가 지난해부터 국경일로 정해 경축하는 날이다.




 한글날의 시작은 일제 식민지 시대인 1926년 11월 4일, 훈민정음 반포 480돌인 날에 조선어연구회와 신민회의 공동주최로 한글학자와 민족지도자 400여 명이 모여 ‘ 가갸날 ’ 을 선포하고 처음 기념식을 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로부터 두 해 뒤인 1928년에 기념일 이름을 ‘ 한글날 ’ 로 바꾸기로 한다.  날짜도 훈민정음 반포일이 조선왕조실록에 음력 9월로 기록되어 있다 하여 음력 9월 마지막 날인 29일로 옮겼다가 1934부터는 이를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한 날인 양력 10월 28일로 바꾸어 1937년까지 기념식을 착실하게 시행했다.

 그런데 일제가 일본말만 쓰라며 우리말은 못쓰게 탄압해 한글날 기념식을 못하다가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날짜를 10월 9일로 바꾸어 다시 시행한다. 1940년에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에 보면 반포일이 음력 9월 상한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를 양력으로 환산한 날짜인 10월 9일로 바꾼 것이다. 다음 해인 1946년 미군정은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는데 마침 한글 반포 500주년이 되던 해여서 덕수궁에서 대대적인 기념식을 거행하고 거리행진을 하기도 했다.

 1948년 대한민국이 제대로 세워진 후에도 한글날은 계속 공휴일로 이어졌으며 한글학회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의 한글 단체들이 주관하는 한글날 행사가 매년 있어왔다.


왜 한글날을 만들었나?

 1446년 세종대왕이 우리 글자인 훈민정음을 만들었지만 그 뒤 500여 년 동안은 널리 쓰이지 못한다. 한문에 길든 학자와 관리들이 큰 나라인 중국 눈치를 보면서 우리 글자를 우습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조선 말기부터 한글을 많이 쓰게 되는데, 대한제국 때 고종이 공문서에도 국문을 쓴다는 칙령을 내리면서 비로소 나라 글자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때 주시경과 여러 선각자가 한글을 살려 써서 강대국의 침략에 맞서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10년에 일제 식민지시대를 맞게 된다.

 식민지 시대에도 한글이 훌륭하고 중요함을 깨달은 주시경의 제자들은 ‘조선어학회’를 세워 겨레말을 지키려고 애쓴다. 그러던 중 1926년에 이르러 한글학자와 민족지도자들이 '겨레의 보물인 한글을 갈고 닦아 우리말을 살리고 겨레의 얼을 지키는 일을 더욱 잘 하자'는 취지로 훈민정음 반포일을 기념일로 정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해마다 한글날 그 다짐과 정신을 되새겨 오다가 1933년엔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만들기도 한다. 또한 우리말 사전을 만드는 작업을 하다가 그 때문에 1942에는 한글학자와 민족지도자들이 함흥 경찰서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목숨까지 잃기도 한다.

 한글날은 이렇게 일제에 나라를 빼앗겨 겨레가 사라질 위기에 있을 때 세계 으뜸가는 글자인 우리 한글로 우리말을 지키고 빛내어 겨레를 지키고 나라를 되찾겠다는 꿈으로 만든 날이다.   


한글날이 겨레와 나라에 이바지한 공로

 어두웠던 일제 식민지 시대에 한글은 우리 겨레의 희망이었고 한글날은 독립을 준비하는 기념일이었다. 한글날이 있었기에 한글이 더욱 빛날 수 있었고 겨레의 말과 얼을 지키며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선각자들이 한글날을 만들고 목숨까지 바치며 한글을 지켜 나갔기에 일제가 물러간 뒤 우리 말글로 된 교과서도 만들고 공문서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한글날은 나라를 잃은 시기엔 독립을 다짐하고 준비하게 한 '건국 공로일'이며, 광복 후엔 국민을 자주민주시민으로 키워내고 나라를 더욱 굳건히 하는 데 이바지 한 민족 최대의 기념일이다. 대한민국 시대의 한글날은 ‘나라 사랑, 한글 사랑’을 생각하고 그 바탕에서 튼튼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한 날이다.
 한글이 우리나라를 문맹 없는 나라로 만들어 주었다면 한글날은 한글을 지킬 뿐만 아니라 빛내 주었으며 나아가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빠지게 된 이야기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글날은 광복 후부터 공휴일로 지정되어 매년 한글 단체들이 공식적으로 행사를 주관해 왔었다. 그러던 것이 전두환 정권 때인 1981년엔 서울시가, 그 다음 해엔 문화공보부(지금의 문화관광부)가 주관하기 시작하면서 마지못해 하는 행사처럼 치러진다. 그리고 1990년대 초 노태우 정부가 마침내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버리면서 3등 기념일로 전락하게 된다.

 경제단체들이 연합해 ‘공휴일이 많아서 나라 경제가 어렵다’며 투덜대자 정부가 이를 위해 세운 대책이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시키는 것이었다. 그 결과 한글 사랑 정신이 식고 겨레의 말과 얼이 흔들리니 나라까지 흔들리고 기울게 되어 국제 투기 자본의 먹이가 되는 경제 식민지 시대를 맞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은 군사 독재 정치에 대한 국민과 노동자의 저항을 줄이고 환심을 사려고 공휴일을 많이 늘렸었다는 사실이다. 양력 1월 1일 새해 첫날만 쉬던 것을 음력 설까지 쉬게 하더니 이를 3일로 늘리고, 한가위도 이틀만 쉬던 것을 3일로 늘려 놓았다. 게다가 성탄절만 쉰다고 불교인들이 불만을 표하니 석가탄신일도 공휴일로 지정한다. 그러니 전경련, 무역협회 등 경제단체들로서는 휴일이 너무 많아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불만스러워할만도 했을 것이지만, 그 폐해를 완화시키기 위해 한글날을 희생시킨 것은 한글단체와 민족지도자들을 봉기시키는 발단이 되었다. 

 이로부터 한글단체는 15년에 걸쳐 국경일 제정운동을 하게 되었고 2005년 마침내 국회에서 국경일 지정 법안이 통과되어 국경일이라는 위치를 되찾게 된다. (그러나 공휴일이 아닌 국경일이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 운동

 한 나라의 말은 그 나라의 얼과 정신이 담겨 있는 그릇이다. 말이 흔들리고 지저분해지면 그 나라까지 흔들리고 지저분해진다. 한글날을 짓밟으니 우리 말글살이가 혼란스럽게 되고 민족자주정신이 흔들리면서 국운도 시들었던 것이다. 한글단체들의 ‘한글날 국경일 승격 운동’은 이러한 전제와 대의에서 시작되었다.

 정부가 끝내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시키자 1991년 2월 전국국어운동대학생연합회 학생들이 탑골공원에 모여 정부를 규탄하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시키라고 외치며 서울 명동까지 거리행진을 한다. 그리고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회장 안호상)이 1991년 10월 1일에 국회의장에게 ‘한글날 국경일 제정 청원서’를 내는 것을 필두로 한글단체들은 정부와 국회에 건의와 청원을 쉬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의 애타는 호소도 못 들은 듯 오히려 한글날 기념식도 무성의하게 해치우곤 한다. 또한 김대중 정부에 와서는 그때까지 기본적으로 한글 전용 정책이던 것을 일본처럼 한자를 혼용하는 정책으로 바꾸려 하더니 결국 한자 병용 정책을 강행한다. 이에 한글단체가 분노해 거세게 반대 시위를 하고 나오니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겠노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이를 계기로 한글 단체들이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 공청회’를 여는 등(1999년 7월 9일) 대정부 촉구를 보다 본격적으로 하니, 마침내 신기남 의원 외 34명이 ‘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한 법률안 ’ 을 입법안으로 발의한다 (2000년 10월 2일). 그리고 그 해 11월 15일자로 여야 의원들이 ‘한글날 국경일 추진을 위한 의원모임’을 발족하고 30일에 국회에서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한 공청회’를 연다.

    그러나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게 한 경제단체가 또 반대하니 행정자치
   부가 그들 편을 들어 법안을 제대로 심의조차 하지 않는다. 이에 한글
   단체와 시민들이 하나가 되어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위원회'
   (위원장 전택부)를 만들어 국회와 정부를 찾아가기도 하고, 촉구 결의
   대회나 1인 시위를 하는 등 더욱 활발한 운동을 펼쳐 나간다.
    그러한 투쟁의 결과로 2005년 12월 5일 국경일 지정 법안이 국회를 통과
   하게 된 것이다.
 







국경일 제정의 의의

   한글학회와 외솔회,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등 한글단체뿐 아니라
  전교조, 국어교사모임, 참교육학부모회 등의 교육단체와 국회의원,
  시민단체까지 힘을 모아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지난
  15년에 걸친 세월 동안 이 많은 단체들이 하나가 되어 한글날을 국경
  일로 만들고자 했었던 참뜻은 무엇이었는가?

   첫째, 정부와 정치인, 경제단체와 일부 학자들까지 한글과 한글날을
  우습게 여기는 잘못을 바로 잡으려고 했던 것이다.

   한글날을 온 국민과 함께 뜻깊게 보내는 데 앞장서야 할 지배층들이
  한글날을 3등 기념일로 내리면서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등의 주장을
  하는 얼빠진 정신과 풍조를 바로 잡자는 것이었다.

   둘째, 우리 한글 문화, 자주 문화를 꽃피우자는 것이었다. 한글은 세계
  언어학자가 인정하는 세계 으뜸 글자다. 그럼에도 헌신짝 보듯 해온
  역사를 반성하고 한글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자 하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사실,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고는 하나 내놓을만한 우리 문학작품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문으로 씌여졌던 고전들은 중국 문학과 문화의 곁가지에 지나지 않았고, 일제시대 때 길든 일본식 한자 혼용이 우리 말글살이인 줄 알고 한글을 살려 쓰는 것을 가로막는 한국인도 많았었다. 그러나 이제라도 우리말과 우리 글자인 한글로서 우리 문화를 부흥시키는 계기를 삼고자 했다.

 셋째, 과학과 철학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한글을 더욱 갈고 닦아서 과학 강국, 철학 강국이 되자는 것이었다. 정보통신 학자들이 ‘세종대왕은 셈틀(컴퓨터)을 이용한 정보통신시대를 내다보고 600년 전에 한글을 만든 것 같다’고 할 정도로 한글과 셈틀은 찰떡궁합이다.
 그리고 실제로 한글은 우리 나라가 정보통신 강국이 되는 데 크게 이바지해왔다. 그 공을 살려 문화 경쟁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라도 한글날은 국경일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한글날을 마음껏 즐기고 기리자

 우리에겐 삼일절, 개천절, 제헌절, 광복절 등의 4개 국경일이 있지만, 지금까지 중앙 정부 차원에서 매년 기념식이나 치르는 것 외에 국경일의 참뜻을 살리는 국민 참여행사를 마련하지는 못했었다. 그러다 보니 국경일이란 그저 등산이나 가고 집에서 노는 날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것 같다. 국경일은 경사스러웠던 날을 온 국민이 함께 기념하며 경축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한글날이 정부와 국민이 모두 함께 참여하고 즐기는 국경일이 되고 세계인이 주목하는 문화의 잔칫날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스스로 500여 년동안 천대했던 것을 반성하고 한글이 제 빛을 발하고 제대로 된 대접을 받기를 바란다.

 한글 창제 정신과 만든 원리는 민주정치와 과학시대에 딱 어울린다. 한글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신 있게 자랑할 수 있는 우리 보물이고 긍지다. 세계에서 으뜸가는 글자를 만든 세종대왕의 위대한 정신을 잘 계승하고 그 글자를 가진 겨레라는 긍지와 자신감으로 학문, 예술, 정치, 문화의 선진국을 만들자.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라도 한글날은 우리 국민 스스로가 먼저 마음껏 자랑하고 즐겁게 기리는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한주헌 | 2010.09.30 22:1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요.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 그런데 본문 처음부분에 조선어 학회라고 쓰셨는데요. 제가 알기론 조선어 학회는 1932년도에 창립한것으로 알고있습니다. 1926년도에는 조선어 연구회가 아닌가하는 생각이드네요. 사실확인 부탁드립니다.
BlogIcon 온한글 | 2010.10.05 09:11 신고 | PERMALINK | EDIT/DEL
한주헌님 안녕하세요.
지적 감사합니다. 님이 말씀하신 대로,
1926년도에는 조선어연구회가 맞네요.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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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1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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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은 한글을 사랑하고 우리말을 걱정하는 시민운동모임이다. 
 1998년 1월 24일에 서울지식산업사에서 준비모임을 가진 뒤, 5월 27일 창립모임을 통해 이오덕(한국글쓰기연구회장), 김경희(전자출판협회장), 이대로(한말글사랑겨레모임 대표)가 공동대표가 되었다.

 처음엔 국어교육과 국어운동을 하던 사람들 50여 명이 시작한 작은 단체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전국에서 모인 농민과 교수, 학생, 할아버지까지 회보를 받는 회원만 해도 무려 600여 명이 되고 여기에 누리통신 회원 400여 명까지 우리말을 지키고 살리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순전히 회비로만 운영하기 때문에 넉넉한 살림이 아니어서 제대로 된 사무실이나 사무원도 없지만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힘을 내고 있다.

 지난 10년은 결코 짧지도 쉽지도 않았다. 세계화 태풍과 함께 몰려온 영어 열병이 우리말을 짓밟아 더욱 힘들었다.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니고 오직 봉사와 희생만 해야 하는 일임에도 오늘까지 잘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있는데 우리말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려운 건 마찬가지니 안타깝다. 

 그 사이에 이 모임을 만드는 데 가장 앞장섰던 이오덕 선생은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아마 그곳에서도 우리말을 걱정하고 계실 것이다. 이오덕 선생이 돌아가신 뒤 공동대표로 김수업(전 대구카돌릭대 총장), 김정섭(우리말바로쓰기모임 회장) 선생을 더 모셔서 지금은 김경희, 김수업, 김정섭, 이대로 네 사람이 맡고 있다.





공병우 박사의 독려를 뿌리로

 1988년 우리나라의 유명한 안과의사였던 공병우 박사가 미국에서 한글의 기계화를 연구하고 돌아오셔서 종로구 와룡동에 한글문화원을 열고 한글기계화운동을 시작하시면서 그 건물에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회장 이대로), 한글글쓰기연구회(회장 이오덕), 아래아한글을 만든 이찬진과 정래권 등의 젊은이들에게 한글사랑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 주셨다.
 그 즈음 정부가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는 것을 보고 앞으로 우리말과 한글에 더 큰 위기가 올 것을 걱정하시면서 ‘이오덕과 이대로가 힘을 모아 더 강력한 모임을 만들어 활동할 것’을 제안하셨다. 그러나 우리말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만으로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모여 운동방법에 합의를 이룬 전국적인 단체를 만든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뜻이 이루어진 것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의 경제식민지가 되는 위기를 맞으면서였다.

 그때 우리는 나라살림이 거덜나 국제투기자본의 밥이 된 원인을 1990년에 정부가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고, 영어조기교육을 강행하면서 세계화를 외치다가 얼빠진 나라가 되었기 때문으로 보았다. 공병우 박사께서 우리말과 얼을 지킬 수 있는 강하고 힘찬 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했을 당시 제대로 모임을 만들어 그에 대처했더라면 불행을 막을 수도 있었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우리말과 한글을 업신여기며 남의 말과 글을 우러러 받들다가 국민정신이 병들게 되고 마침내 외세에 짓밟히는 것을 목도한 뒤에야 우리말과 우리 얼을 지키고 살려 튼튼한 나라를 재건하자는 뜻으로 뭉치게 되었다.

 정치인이나 학자, 언론인과 기업인 등 지도층들이 외국어 능력을 우선시하며 우리말과 우리 한글을 사랑하는 일반 국민을 열등하게 보는 풍조가 만연해지면서 영어의 조기교육과 일본식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세력들이 늘어가는 것을 보게 되었고, 그렇지 않아도 오랫동안 한자어와 서양말법에 우리말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가던 중에 외환위기 이후 더욱 외국문화가 판을 치게 된 것으로 보고 뜻있는 한국인들이 뭉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앞으로 온갖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어 다시 숨통이 트이게 되더라도, 혹은 전보다 더 잘 살게 되더라도 그것은 뿌리 없는 가짜 세상이이어서 다시 낭떠러지로 달려가는 길밖에 안 된다고 보았다. 또다시 그런 위기를 겪지 않으려면 우리말과 우리 얼을 잘 지켜서 튼튼한 나라를 만들어야 했다.


우리말글살이 10년의 기록 <우리 말 우리 얼>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은 ‘온 국민이 날마다 입으로 하는 말, 읽고 쓰는 글을 누구나 잘 알 수 있는 쉬운 우리 말과 글로 하도록 하여 서로의 생각을 올바르게 알리고, 깨끗한 마음을 주고받으며,잘못된 말로 남을 속이지 않고 또한 속지 않고, 어려운 말을 몰라서 세상을 불편하게 살아가거나 죄를 짓게 되는 일이 없게 하며, 유식함을 자랑하거나 겉치레하는 풍조나 남의 것을 부러워하며 우리 것을 멸시하는 태도를 바로 잡아 온 국민이 겨레를 사랑하는 한마음으로 살아가는 참된 나라’를 세우는 바탕을 다지는 데 목표를 두고 활동했다. 그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우리말 우리얼>이라는 회보를 통해 우리의 주장을 글로 펴내고 우리 말글살이를 바로 잡으려 애썼다. 처음엔 회보를 다달이 내다가 살림이 어려워지면서 두 달이나 석 달에 한 번씩 내고 있지만, 58호까지 펴내는 동안 지난 10년 동안의 활동을 비롯해 우리 말글살이의 역사와 흐름을 고스란히 담았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들면서 “어린 백성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글을 몰라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서 새 글자를 만드니 잘 쓰라.”고 하셨던 말씀을 실천하고자 함이다.

 우리는 먼저 우리 스스로 우리말을 바르게 쓰고 깨끗하게 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회보를 통해서 정부나 기업, 언론과 학자들이 잘못하는 것을 알려주고 바로잡았다. 정부에 말글정책 건의도 하고 성명서도 발표했다. 한자혼용단체가 한글전용법을 폐지하고 한자혼용법을 만들겠다고 나섰을 때 이를 반대하는 서명운동에 가장 앞장서서 막아냈다.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한문에, 일제시대에는 일본말에, 오늘날엔 영어에 밀려 병들어가는 우리말을 살리려면 무엇보다 우리말을 우리 글자로 적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가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영어조기교육을 하려고 해서 그 반대운동에도 앞장섰다. 국어교육과 우리말 바로쓰기를 먼저 하고 중, 고교의 영어교육부터 잘 한 다음에 그래도 안 될 때 해도 늦지 않는다고 반대했으나 결국 막지는 못했다. 그 결과 우리말과 문화가 더 병들어서 ‘기러기 아빠’까지 만드는 불안한 가정을 낳고 있다. 엄청난 돈이 영어교육에 퍼부어지고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무리까지 등장했다.
 국사와 국어까지도 영어로 교육하겠다고 하고, 정부기관이 영어로 회의를 하겠다고 하며, 영어마을을 만들려고 수천억 원을 쓰면서 우리 국어교육과 발전을 위해서는 그 10%도 안 쓰고 있다. 이에 최근엔 ‘영어몰입교육반대, 우리말 지키기 서명운동’을 통해 그야말로 지금 당장 우리말을 지켜서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밖에도 국회의원의 이름패를 한글로 바꾸는 일,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드는 일에도 앞장섰다.

 둘째는 해마다 한글날에 ‘우리말 지킴이와 훼방꾼 뽑기’ 한 것이다. 어떤 것이 우리말을 살리는 일이고, 어떤 것이 우리말을 죽이는 일인지 알려주자는 뜻이었고, 누가 우리말을 지키고 있으며 누가 우리말을 짓밟고 있는지 밝히자는 것이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은 정부나 언론기관이나 학자나 기업이라도 잘못된 것은 용기 있게 밝혀서 바로 잡으려고 했다.

 그 원년이었던 1999년에 으뜸 훼방꾼으로 당시 국무총리 김종필 씨를 뽑고 한자병용을 찬성한 심재기(국립국어연구원장), 진태하(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위원장), 이응백(한국어문회 이사장)씨 및 박원홍 국회의원, 조갑제 <월간 조선> 편집장, 우리 정부에 일본식 한문약자를 공식 약자로 사용해 줄 것을 제안했던 고무라 마사히코 일본 외무장관과 일본 외무부도 훼방꾼으로 뽑았다.
 그리고 영어공용어론을 주장한 소설가 복거일 씨와 회사명을 영어 약자로 바꾸고 임원회의를 영어로만 진행하도록 지시하는 등 영어 우월주의 행동을 보인 최태환 SK회장, 혼란스러운 어문정책을 보였던 신낙균 전 문화관광부 장관도 훼방꾼으로 뽑았다.

 반면, 우리말 으뜸 지킴이로는 한승헌 감사원장을 뽑았으며, 판결문과 공소장 쉽게 쓰기에 앞장선 윤관 전 대법원장과 김진환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장, 한국방송공사(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회, 원광호(한자병용반대 비상대책위원장),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장), 진용옥(국어정보학회장), 조상현(하이텔 한글사랑모임 대표), 한국글쓰기연구회(회장 주중식), 한자병용정책의 문제점을 집중보도한 손석춘(한겨레신문 기자) 씨를 뽑았다. 이후에도 해마다 우리말 지킴이와 훼방꾼 10명 씩을 선정해오고 있는데, 으뜸 지킴이와 으뜸 훼방꾼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00년 으뜸 지킴이-법률문장을 쉬운 한글과 우리말로 바꾸라고 국회에 청원한 출판사 현암사 전 대표 조상원
          으뜸 훼방꾼-영어 조기교육과 영어 공용어 추진을 주장한 한국소설가협회(회장 을병)와 자유기업센터
                            (소장 공병호)
2001년 으뜸 지킴이-한글날 국경일 제정운동에 앞장선 전택부 한글날국경일제정범국민추진위원장 
          으뜸 훼방꾼-영어 조기교육과 영어 공용어를 주장한 경제5단체(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2002년 으뜸 지킴이-우리 토박이말을 살려 쓰려고 애쓴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으뜸 훼방꾼-공기업이면서도 회사 이름을 KT란 영문으로 바꾼 한국통신
2003년 으뜸 지킴이-한자혼용으로 된 법률문장을 쉬운 말과 한글로 바꾸기로 한 법제처
          으뜸 훼방꾼-한글만 쓰기를 반대하는 한자진흥법안을 발의한 박원홍 의원
2004년 으뜸 지킴이-새로 만든 시민문화극장의 이름을 ‘어울림누리’라고 우리말로 지은 고양시 문화재단
                           (총감독 이상만)
          으뜸 훼방꾼-직제 이름도 영어로 만들고 ‘하이 서울’이란 영문구호를 만들어 엄청 난 광고비를 쓰면서
                           영어 열병을 부채질한 서울특별시(시장 이명박)
2005년 으뜸 지킴이-누리통신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맞춤법 검사기를 만들어 보급한 부산대학교 ‘우리말
                           배움터’ 누리집 운영자 권혁철 교수
          으뜸 훼방꾼-공기업이면서 고속철도 이름을 우리말이 아닌 KTX로 지은 철도청(청장 이철) 
2006년 으뜸 지킴이-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국회(국회의장 김원기)
          으뜸 훼방꾼-영어 몰입교육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교육부(장관 김진표)
2007년 으뜸 지킴이-온 식구와 점포 이름까지 우리말로 지은 김텃골돌샘터 씨
          으뜸 헤살꾼-'제주영어교육도시'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제주지원위원회 (2007년부터는 훼방꾼이라는
                            한자말보다 헤살꾼이란 순우리말이 좋겠다는 의견에 따름)
 
 이들 외에도 회사 이름이나 상품 이름을 우리말로 지은 회사, 즉 빙그레, 우리은행, 금호건설의 아파트 이름 ‘어울림’ 등을 지킴이로 선정하는 것을 비롯해 한자와 영어 침투를 막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지킴이로 뽑아 칭찬했다. 반대로 회사 이름을 영문으로 바꾼 SK, LG, KTF 같은 기업과 '글로벌 빌리지'를 만들겠다는 부산시, '잉글리시 커뮤니티 광장'을 만들겠다는 인천시, '리틀 US'를 만들겠다는 밀양시와 경상남도, 영어 간판을 강요하는 서울시 노원구 국어연구와 정책을 다루는 국립국어원(원장 심재기) 등을 헤살꾼으로 지목했다.


우리 말과 글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남의 말 남의 글에 빠져서 유식한 척 지껄이고 알 수도 없는 글을 써서 학식을 뽐내며 우리 말과 문화를 업신여기는 풍조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우리말은 우리 얼이고 뿌리이니 튼튼하게 살려 나가야 한다고 외쳐도 듣는 귀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말글이 죽든 말든 돈만 벌면 상관없다는 기업만으로도 모자라 이제 정부까지 가세하는 판이니 어찌 해야 한다는 말인가?

 한글은 태어나고서도 600년 동안이나 제 몫을 하지 못하다가 이제 겨우 나라글자로 인정받고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수천 년 만에 온 이 우리말글 독립의 기회를 영어 숭배자들이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루 빨리 이 안타까운 짓을 그만두고 우리 겨레와 나라가 잘 사는 데 그 무엇보다 더 크고 근본이 되는 일, 먼저 해야 할 일인 우리말을 지키고 살리고 빛내는 일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한글단체나 한글학자만이 아닌 우리 국민 모두가 나서야 할 것이다. 이 일이야말로 평화시에 나라를 지키고 겨레를 빛나게 만드는 민족독립운동이고 애국운동이며, 온 겨레가 함께 잘 살자는 만민평화운동이고 홍익인간정신의 기본일 것이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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