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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리

왜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왜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한번쯤은 궁금해하지 않으셨나요? 그 궁금증을 풀어줄 재미있는 책이 있어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색다른 구성의 역사서를 통해 훈민정음이 왜 탄생했는지에 대해 알아보세요! 왜 세종 대왕은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최만리 VS 세종 대왕 /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이한우 글 | 이남고 그림 | (주)자음과모음 펴냄 시리즈는 역사 속에 라이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역사 이야기를 두고 원고와 피고, 증인 등이 되어 재판을 벌이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균형잡힌 시각과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학교 교과서에서 담고있는 해석과 함께 교과서와는 다른 해석과 생각들에 대해서도 수록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를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 더보기
'한글'이라는 이름을 갖기까지 지구상에는 수천여 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그 수가 정확하지 않아서 적게는 3000개, 많게는 6000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들쑥날쑥한 이유는 정밀한 조사의 부족도 있지만 언어의 구별 기준, 혹은 방언과 언어의 구별 기준이 모호한 데에 있다. 사용되고 있는 언어의 수가 이렇게 많지만, 이 많은 언어를 표기하는 데 쓰이는 문자의 수효는 이보다 훨씬 적다. 역사적으로 흘러간 과거에 존재하였던 문자를 포함한 총수는 대략 400여 개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사용되고 있는 문자의 수는 30~40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문자를 가지지 못한 언어가 압도적으로 많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한국말을 할 때 사용하는 말소리는 ‘한글’이라는 문자로 표기된다. 한국말의 소리는 귀에 들.. 더보기
한글 창제, 식자층의 반발을 넘어 1.한글 창제 반대의 이유 세종 25년 1443년 12월 한글이 처음 제정되었을 때, 온 국민이 기뻐서 날뛰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그런데 당시 지식층은 실제로 거의 반대하고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학술원 부원장에 해당하는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崔萬理)를 선두로 그 학사 일당 7명이 한글 창제 후 두 달째인 세종 26년 1444년 2월 대왕에게 정면으로 반대하는 상소문을 직소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렇게 반대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주장하기를, 만약 쉬운 한글이 시행되면 어려운 한문은 학습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모르면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상소문 제 3항을 보면 ‘쉬운 한글만으로 족히 세상에 입신하게 된다면 왜 노심초사하여 성리의 학문을 궁구하겠나이.. 더보기
한글의 반포와 보급 1. 한글의 창제와 반포 한글의 반포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한글의 창제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한글이 1443년(세종 25)에 창제되어 1446년(세종 28)에 반포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1443년 창제와 1446년 반포라는 설은 의 다음의 기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1) 이 달에 임금께서 친히 언문 28자를 만드셨다.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25년(1443) 12월조 끝부분 (2) 이 달에 훈민정음이 완성되었다.(是月訓民正音成) 28년(1446) 9월조 끝부분 20세기 초의 학자들은 이 두 기록을 놓고서 고민에 빠졌다. 1443년 12월에 언문이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1446년 9월에 다시 훈민정음(=언문=한글)이 완성되었다고 말하고 있으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