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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4. 2. 09:45

누리글길 43400913



나는.
지렁이나.
잠자리처럼.
벌레도.
알아치릴.
수.
있는.
글꼴도.
생각했다.

-금누리 



작가 금누리는?

조작가라는 한 마디 말로 부르기 어려울 만큼, 디자인과 예술 모든 분야를 넘나드는 기획자이자 창작가. 그가 이르는 직업은 '멋질비, 국민큰배움터 스승'이다.

1998년부터 2년간 홍익조각회장을 지낸 바 있으며, 금누리글꼴, 구름글꼴들을 만들었고, 두루쓰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한글꼴과 쓰기에 관한 혁신적 제안으로 글꼴계에서도 화제의 중심에 있어왔다.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부터 표현하고자 애쓰는 선도자이며, 디자이너 안상수와 함께 펴내는 실험문화 예술지 <보고서 보고서>로 진보적 시각을 일깨우는 데 앞장서고 있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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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 3. 14:30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책과 타이포그래피의 상관관계
 
 우리가 어떤 그래픽물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분리해낸다면 그것은 아마도 이미지와 글자(텍스트)일 것이다. 이미지는 사진이 될 수도 있고 일러스트레이션 혹은 기본적인 도형이 될 수도 있다. 텍스트는 숫자, 영문, 한글, 한자 등 문자들이 가지는 기호적인 형태와 그 문자가 가지는 의미로 이루어진다. 이들의 집합과 해체를 통해 우리는 그래픽 디자인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하고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그림책의 가장 기본적인 그래픽 요소에 대해 따져본다면 위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이미지에 대한 부분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림책과 타이포그래피라는 것은 매우 상충되어 보이지만, 그래픽의 기본 요소를 텍스트와 이미지라고 보았을 때 서체들을 그림과 같은 맥락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관계로 생각된다.

 그런데 우선 우리나라의 대중들이 느끼는 그림책의 범위를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림책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일반인들에게 그림책이란 아직 유아를 위한 학습용이나 교육적인 동화(童畵-아이들 그림)의 도서분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또 아동문학의 하위 장르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러한 시각들이 완전히 틀리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림책의 범위를 좀 더 넓게 본다면 예술창작성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편이 바람직할 듯 하다.
 단순히 아이들이 보는 매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작가가 자신의 철학적 사고를 유희하고 그것을 그림이란언어를 통해 전달하는 매개체로 본다면, 아마도 그림책의 범위는 세대와 시대, 국경을 넘어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아주 중요한 수단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러한 관점에 의해 그림책과 타이포그래피와의 관계를 본다면 매우 예술성이 높은 작품들까지 그림책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위 작품들을 텍스트의 의미를 알기 전에 그림으로만 본다면 하나의 멋진 타이포그래피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자나 기호의 역할이 이들 작품 같은 범주까지 가는 그림책은 극히소수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문자에 대한 설명을 그림책으로 표현한 몇몇의 단행본을 보면, 대개 그림를 설명하는 보조적인 수단이거나 그림과 되도록 잘 융화되어 어울리게 하는 역할 정도에 머무르는 듯하다.
 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옛이야기 그림책은 대부분 동양화적인 기법 때문에 서예 느낌이 나는 옛 서체를 많이 쓰는 편이다. 옛스러운 그림에 굵고 딱딱한 고딕체 같은 서체를 쓴다면 아무래도 안 어울릴 것이다.

 좀 더 현대적인 그림책에 쓰인 서체들을 보면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특히 외국의 저작물이 한국어로 번역되었을 경우 타이포그래피의 문제점들이 극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즉 원서의 타이포그래피가 주는 느낌과 비율 그리고 어울림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오히려 전혀 엉뚱하게 처리되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을 크게 손상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특히 그림 문자의 형태로 그려진 작품들은 번역하면서 그 느낌이 매우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심스 태백의 <요셉의 작고 낡은 코트가...?>를 원서와 비교해 보면, 타이틀에서부터 그림 이미지로 시작함으로써 다른 책들에 비해 비교적 원서와 가깝게 연출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질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우리 그림책들

 그림책의 질적인 성장은 그래픽적인 관점에서만 논해야 할 일은 아니다. 아동책 관련 시장으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볼로냐 국제어린이도서전은 해마다 볼로냐 라가치상을 시상한다. 세계 각국에서 최근 2년 내에 출간된 새로운 작품을 주최측에 출품하고 세계적인 아트디렉터들의 심사를 통해 픽션과 논픽션 분야를 나누어 선정된다.

 그 심사의 기준으로 작품성도 중요하겠지만 또한 인쇄술과 제본술도 본다. 즉 그림이나 글 등 작가의 수려한 작품도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책으로 귀결되어 독자들에게 펼쳐 보여지게 하는 가장 직접적인 과정인 제작의 수준도 그 못지 않게 중요시하는 것이다.
 종이가 가지고 있는 특성과 그 형태, 판형, 제본술 등 여러 가지 제작에 관련된 기술이 작품과 얼마나 잘 어울려져 있는가를 종합해서 심사위원의 기준을 통과해야만 상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림책의 노벨상으로 불릴 만큼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상은 작가에게만 수여되는 것이 아니라 제작에 참여한 출판사에게도 영광이 주어진다.

 해외의 그림책과 우리나라의 그림책에 쓰인 서체를 어떤 기준을 세워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좋은 그림책일수록 좋은 서체와 타이포그래픽의 연출력이 수반되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다. 해외와 국내에서 연출되고 있는 타이포그래픽의 차이는 아마도 그림책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의 소양과 연출력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
 적어도 작가의 창작 마인드를 이해하고 그 메시지를 가장 잘 연출해줄 수 있는 표현방식을 찾아나가는 노력이 국내의 그림책 작업자들에게서도 많이 보여진다.

 그 한 예로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의 경우는 목판체를 썼는데, 사실은 목판체라는 서체가 출시되기 이전에 발행된 책이다. 그럼 이 책의 글자는 어떻게 썼을까? 옛 고서본을 찾아 가장 잘 어울리는 글자를 일일이 집자해서 작업했다고 한다. 내지를 보면 지금의 디지털 서체보다 더 자연스럽고 그림의 이미지와 일체감을 줄 정도로 잘 연출되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도깨비와 범벅장수>의 경우 길쭉한 판형이 주는 느낌과 세로쓰기에 대한 고민을 통해 아이들에게 새로운 읽기방식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다. 그에 맞는 서체의 선택과 그 운용의 방법을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미국 IBM 로고의 개발로 유명해진 전설적인 디자이너 폴랜드가 작업한 <외로운 꼬마1>의 경우 원서의 타이프라이트 서체를 한글의 타이프라이트 서체로 이어서 표현했으며 원서처럼 모든 본문의 서체를 한 가지 서체로만 통일해서 진행한 것을 볼 수 있다.

 앞에서 본 서체의 선택 방식과 달리 작가가 자기 작품에 맞는 고유의 글자체를 만들고 연출한 작품들은 훨씬 다양한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는데, 대부분 그림의 느낌에 맞춘 것들이다.




창작 그림책과 번역 그림책 속 한글꼴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한국의 그림책 시장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선진국이 이루어놓은 질 좋은 그림책들을 많이 수입해서 번역하기 시작했다. 또한 아이들과 부모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지면서 예전의 교훈적이고 교육적인 동화책 뿐 아니라 예술성을 겸비한 해외의 창작그림책에까지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에 비해 국내의 창작그림책 시장은 외국의 선진적인 느낌이나 기법을 따라가기 바빴으며 그 중심에 놓여있는 서체나 글꼴에 대한 고민은 많이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그림책 속 한글꼴들은 많은 부분 일반적인 서체에 머무르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국내 창작물의 경우 오히려 작가나 디자이너가 서체의 선택과 마무리에는 크게 비중을 두지 않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작은 차이로 작품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림책을 다루는 디자이너라면 서체의 선정은 물론 그 책에서 중요하게 쓰일 서체의 목록을 매우 신중하게 만들 필요가 있는데, 되도록 작가와 함께 이 부분에 대한 논의를 거쳐야 할 것이다. 스토리 작가에게나 그림 작가에게나 그림책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서체가 차지하는 비중이란 생각 이상으로 크기 때문이다.
 만일 그러한 논의가 없이 디자이너나 편집자에게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그 그림책은 아마도 시간이 갈수록 좋은 작품으로 남지 않게 될 확률이 커질 것이다. 따라서 혹 그림 작가가 별다른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하거나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더라도 그 부분에 대한 중요성과 필요성을 꾸준히 설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해외의 그림책을 한국어판으로 낼 때에는 텍스트적인 부분 이외에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여러 가지 기호나 문자를 다시 표현하려면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들 언어상의 특유의 표현을 모두 한글화할 필요가 있느냐에 대한 판단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알파벳권에 대해서는 별다른 저항감 없이 받아들여 그대로 살리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어 같이 한자문화권일 경우에는 되도록 그들의 색채가 느껴지지 않도록 그림 속에 들어 있는 기호나 문자들을 애써 한글서체로 바꾸어 어색하게 만드는 경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책을 읽어주는 어른이나 아이들은 책을 한두 번만 보고 끝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오류를 쉽게 찾아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미지와의 합일로 어필하는 그림책 글꼴
 
 그림책을 꼭 어린이들만 보는 것은 아니겠지만 소구하려는 대상이 어린이임이 분명하다면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서체와 크기 등을 고려해야 한다. 어린이 대상 책들의 서체 선택의 폭이 넓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귀여운 서체나 모양이 많이 들어간 꾸밈서체 등을 쓰면 아이들에게 쉽게 어필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책을 제작하는 어른들의 관점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일수록 오히려 바른 서체나 읽기에 분명한 서체를 쓰는 것이 좋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번역된 그림책에서도 한글서체를 잘 선택하고 신중하게 운용해야 겠지만 창작 그림책일 경우 특히 표제의 글꼴은 작가의 그림에 맞게 연출하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디지털화된 서체를 그대로 쓰기 보다는 되도록 시간을 많이 들여 다듬으면서 그림의 느낌에 맞게 앉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헤어드레서 민지>의 경우 기존의 디지털 서체를 선형화해서 디자이너가 작품의 느낌에 맞게 다시 연출했다. 이처럼 기존의 디지털 서체를 쓰더라도 작품의 성향과 내용 그리고 컨셉에 맞게 새롭게 연출할 수 있다면 작품의 이미지를 배가시킬 것이다. 어떤 이미지가 어떻게 전달되느냐에 따라 그 책의 독자인 아이들이 성장한 후에도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림책의 이미지와 텍스트 요소를 따로 분리하지 못한다. 대략 글을 읽기 시작하는 나이에서야 서체를 인지하기 마련인데 표지의 타이틀은 그림책의 이미지와 하나로 기억되는 특성 탓에 ‘좋은 그림책’으로 기억하게 되는 조건으로서 타이틀에 쓰인 서체의 느낌까지 포함되는 것이다.
 이것은 표지의 이미지로 쓰인 그림의 그래픽적 특성과 글자의 집합체가 더 큰 합일적인 이미지로 변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책에 있어 서체를 잘 고르고 제대로 쓰는 일이란 그만큼 중요한 작업이며 그림 작가가 그림을 완성하는 일 못지 않게 오랜 고민을 수반해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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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10. 09:26


글꼴 생산방식에 의한 변화
 
 편집디자인에 사용되는 글꼴의 선호도와 사용빈도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글꼴의 생산방식에 따른 디자이너의 작업 변화를 고려해야 보다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
 글꼴의 생산방식은 우선적으로 '사진식자기에 의한 시기' '컴퓨터에 의한 시기' 크게 대별할 수 있다. 이 두 시기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전문가에 의한 생산이냐 일반인에 의한 생산이냐 하는 것이다. 전자는 전문가의 안목과 추천에 의해서 글꼴이 골라졌지만 후자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의해 글꼴이 골라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차이점이 글꼴의 선호도 또는 사용빈도가 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사진식자에 의해서 글꼴이 생산되던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까지는 사실상 명조, 고딕 외에는 유행하는 서체라는 것이 딱히 두드러지는 것이 없었다. 고작해야 광고를 중심으로 자주 사용되었던 헤드라인체(영문글
Helvetica Black에 대응해 만들어진 고딕계열의 획이 굵은 한글 글꼴) 정도가 아닐까?
 글꼴 개발 자체가 아주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자되는 작업이었기에 더욱 새로운 글꼴의 출현이 미미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사진식자 시기는 사실상 디자이너들이 직관적으로 글꼴을 선택하고 생산하기가 쉽지 않았다. 글꼴을 생산하는 사진식자기가 워낙 고가인데다가 사용방법도 많은 숙련을 요구하는 작업이었기에 전문 오퍼레이터가 필요했다.
 즉, 오퍼레이터를 통해 글꼴을 생산하는 과정 때문에 많은 변화를 추구하기 보다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안정적인 작업이 선호되었던 탓에 새로운 폰트에 대한 요구 또한 크지 않았던 것이다.


컴퓨터에 의한 글꼴 생산
 
 90년대에 들어서면서 폰트라는 개념의 글꼴 개발이 매킨토시를 비롯한 퍼스널 컴퓨터에 의해 용이해지게 되면서 명조, 고딕을 중심으로 과거 사진식자에서 사용되었던 글꼴들이 우선적으로 폰트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제작된 폰트들은 한글 폰트 제작의 초기인 탓에 몇 가지의 문제점을 가지고 탄생하게 되었다. 기존의 사진식자의 글꼴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전문가에 의해 제작된 원도를 가지고 제작되었다. 하지만 폰트제작은 이런 사진식자에서 생산된 글꼴을 스캔해서 폰트제작 프로그램에서 형태를 입력해서 만들어야 했다.
 이런 폰트제작 과정에서 서체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던 오퍼레이터들이 대거 투입되어 기계적으로 제작한 탓에 초기 한글 폰트는 획의 세부 형태라든지 획의 공간배분 등에서 많은 문제점을 보였다. 그래서 예민한 편집 디자이너들은 컴퓨터가 대두된 초기에도 계속해서 사진식자를 고집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 인력을 갖춘 폰트전문회사에 의한 안정된 폰트의 개발과 오퍼레이터를 거치지 않고 디자이너가 직접 글꼴을 생산하게 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디자이너들이 모니터 상에서 직관적으로 글꼴을 고르고 생산하며 레이아웃을 하게 되면서 많은 실험이 시도되었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글꼴에 대한 욕구가 커지기 시작했다.





폰트의 양적 팽창과 경향

 
 이러한 욕구를 반영하듯 90년대 중반 이후 폰트는 본문용에서 벗어나 제목용이라 일컬어지는 폰트들의 개발을 통해 엄청난 양적팽창을 보여주었다.
 이런 양적 팽창은 마치 양날의 검처럼 편집디자인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일정 수준이하의 글꼴이 생산되기도 했고, 미숙한 디자이너에 의한 절제되지 않은 폰트 남용으로 출판물이 마치 폰트 견본집처럼 보일 정도가 된 것이다. 90년대 말까지 광고와 출판물에서 다종다양하게 제목용 서체가 사용되었다. 이 시기에서 주목을 받던 서체는 윤체, 소망체, 회상체 등을 들 수 있다.

 이 후 2000년에 들어서면서 디지털의 차가움과 건조함에 온기를 불어 넣고자하는 시도들이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부드럽고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획을 가지고 있는 비상, 갈대, 소설가, 쿨재즈 등의 손글씨 느낌의 글꼴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손글씨에 대한 관심은 만화가, 서예가, 판화가, 캘리그래피스트 등의 서체를 폰트화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광수, 이철수 목판체, 효봉, 유려, 봄날 등이 주목을 받았다. 특히 광수체로 대변되는 만화적 손글씨는 청소년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엄청난 반향을 몰고 왔다. 이후 광수의 변형 글꼴이 계속 개발되고 있고 비슷한 류의 장식체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거기에 웹폰트인 대중스타들의 손글씨 폰트와 각종 장식 과잉의 글꼴들이 각광을 받으면서 일반 대중들의 글꼴에 대한 인식은 크게 변화하고 있다.
 이들 폰트는 인쇄매체를 전제로 한 것은 아니지만 주요 소비층인 10~20대의 글꼴에 대한 미감과 선호도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다. 책이라는 상품은 결국 주 소비층의 선호도에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독자가 선호하는 글꼴이 상품판매에 당연히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 서체의 미적 수준의 함량미달은 논외가 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책의 생산주체의 변화와 글꼴
 
 과거에 책을 만든다는 것은 실상 ‘타이포그래피와 편집디자인'이라는 전문적인 기술과 문선, 조판, 인쇄, 제본’이라는 엄청난 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했었다. 이러한 시기에 주로 사용된 글꼴의 경향은 오히려 일목요연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전문가들의 작업, ‘그들만의 리그’였기 때문이다. 비전문가인 일개 개인이 결코 쉽게 넘볼 수 없었던 영역이었기에 그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 일정 수준 이상의 글꼴이 선택되고 쓸모에 맞게 부려졌던 것이다. 독자는 전문가가 일방적으로 고르고 꾸려놓은 글꼴을 그저 수동적으로 소비하기만 했던 것이다. 물론 그만큼 전문가들끼리의 금칙과 제약이 많았고 발전과 변화가 더디었던 것도 사실이다.

 9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잡지와 단행본의 본문에 명조체(지금은‘바탕체’라 불리는) 이외의 글꼴이 적용된 예를 찾기란 굉장히 어렵다.
 고딕체는 ‘돋움체’, 즉 제목이나 발문의 역할이지 본문으로는 절대 기능할 수 없다는 것이 그 당시 팽배했던 인식이었다. 일부 전문 디자이너들의 고딕체 본문 사용의 시도는 ‘너무 실험적이고 가독성이 떨어진다’라는 평가와 함께 저지당하곤 했다.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이런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변화는 미뤄지고 있었다. 어쩌면 알파벳조차도 대문자로 시작된 지 2천년 이상이 지나서야 비로소 가독성 있는 소문자가 개발되었고, 또 산세리프체가 본문으로 사용된 것도 그리 오래된 역사가 아닌 것을 볼 때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그런 인식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사회의 구성원들의 디자인적 인식의 성숙에 의해서라기보다 컴퓨터라는 글꼴과 책을 생산하는 도구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밀어 닥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종이로 작성된 문서만큼이나 잦은 빈도로 모니터 상에서 문서를 접하게 된 상황변화가 글꼴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한 것이다.

 예를 들어 모니터가 아닌 종이로 문서를 접하던 시절, 일본의 ‘나루체’를 원형으로 만들어진 ‘굴림체’는 공간배분에 있어서 밀도가 떨어져 엉성해 보인다는 평을 듣고 사용빈도가 굉장히 낮은 글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윈도우 오에스에 기본 글꼴로 제공되면서부터 널리 쓰이게 되었다.
 공간배분의 밀도가 떨어지는 단점이 오히려 의도하지 않게 모니터상의 가독성에서 기존의 인쇄용 전문서체에 비해 장점으로 부각된 것이다. 모니터 상에서 굴림체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은 종이에 인쇄된 굴림체에도 아무런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스타폰트, 장식 글씨 등 가독성과 관계없이 장식적이고 개인적인 취향만으로 선택된 폰트들에 의해 가속화 되고 있다.


글꼴에 대한 선입관과 새로운 글꼴
 
 이런 세태의 변화는 과거 ‘본문에 고딕은 너무 실험적’이라고 치부했던 완고한 편집자들의 입에서 굴림체로 책을 디자인 해달라는 소리가 나오게끔 하는 상황을 가져왔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런 상황이 한글 폰트의 미래에 대한 단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글을 쓰는 중간에 잠시 멈추고 다시 한 번, 반성의 눈으로 아무리 살펴보아도 굴림체는 디자인적 미감이 너무도 떨어져서 내게는 기피 글꼴이다. 하지만 굴림체가 모니터 상에서 압도적으로 선호되는 이유만큼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존에 전문가들에 의해 가독성 위주로 판단되고 제작되었던 폰트들, 특히 본문 폰트에 대한 기준에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더 이상의 선입관은 필요 없다. 아주 새로운 개념의 본문 폰트가 개발되어져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폰트를 제작하는 전문가보다도 소비자가 훨씬 수용가능 폭이 커져있다. 많은 가능성이 열려있는 상태인 것이다.

 물론 소비자의 가벼운 취향에 영합하는 글꼴을 만들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글꼴은 상품이기도 하지만 문화다. 인류의 유산을 후대에 남기고 지적 생산물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 만큼 기능적 효율성과 심미적 형식, 그리고 독자와의 교감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 요건들이야말로 세월과 유행을 뛰어넘는 내구성을 가진 불후의 명작, 글꼴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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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 21. 16:09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매체의 변화, 다양화에도 불구하고 한글, 한글꼴, 한글 타이포그래피라고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매개체가 젊은이들에게 호기심의 대상, 연구의 가치, 매력의 요소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울과 같은 대학 한글 타이포그래피 연합모임의 활동과 성과에 비추어 볼 때, 한글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연구하고 발전시키려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매년 모든 학교가 연례행사로 치르는 졸업작품전에서는 한글 타이포그래피 작업을 찾아보는 것이 힘들다. 거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교육현장에서 느끼는 바를 통해 우리가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를 짚어보는 것으로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미래를 조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글자의 역할에 대한 그 시대의 요구와 기술이 융합하여 나타나는 표현이 타이포그래피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생각과 환경, 요구되는 역할을 접어둔 채 이야기될 수 없는 것이 디자인이고 타이포그래피이며, 한글 타이포그래피이다.한동안 해체적 타이포그래피, 모더니즘과 반 모더니즘, 키네틱
타이포그래피를 논했지만 지금은 감성, 감응이 시대의 이슈로 떠오르는 시점이니만큼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감성을 드러내는 부드러운 타이포그래피가 주류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 감성을 표현하는 방법을 서구 스타일의 모방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찾아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인데, 붓으로 쓴 글씨, 캘리그래피가 이 감성표현의 선두주자로 나섰는지도 모르겠다. 키네틱 타이포그래피가 디지털시대를 대변하는 표현방법이라면 이러한 기계적인 느낌의 반작용으로 일어난 캘리그래피는 이 시대 또 하나의 트렌드이다.
 캘리그래피의 특징은 글씨를 쓰는 도구와 재료에 의하여 생기는 즉흥적 형태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독립된 장르를 형성해 비례, 균형, 조화 등을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 하여 마음을 다스리는 수단으로, 감상의 대상으로 여겼던 전통서예와는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독창성이 우선시되는 캘리그래피와 타이포그래피의 관계는 어떠한가?
 글자의 형태에 맞는 장식과 자연스러운 우연적 효과 그리고 기계적 표현이 아닌 손으로 혹은 적당한 용구를 사용해서 독특한 개성을 담은 글자를 가리켜 캘리그래피라고 한다면, 단발성으로 끝나는 영화의 타이틀이나 책표지에 쓰인 경우 디지털화 되지 않은 서체이기에 캘리그래피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필묵서체와 같이 디지털화되어 상용되는 타입을 활용한 표현은 타이포그래피라 명할 수 있다. 즉 활자화된 글자를 이용하여 디자인하는 것이 타이포그래피라면 특정 도구를 이용하여 시간성과 순간성, 우연성을 느낄 수 있는 단발적인 글자 표현이 캘리그래피인 것이다.

 요즈음 캘리그래피가 많은 사랑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글자로서의 글자가 아니라 그림으로서의 글자를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선호도 때문이 아닐까?
 문자는 그 의미를 알 수 있거나 소리로 읽어지는 경우, 비로소 글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의미와 소리를 모두 알 수 있는 글자는 글자로 인식되고, 의미는 알 수 없으나 그 소리는 알 수 있는 글자는 형태적 성질이 강해지며, 의미와 소리를 모를 경우엔 형태적 성질이 최대화된다. 

 이러한 성질을 타이포그래피의 텍스트성과 이미지성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글자는 구체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시각형태지만, 글자라고 하는 형태와 그 글자형태가 담고 있는 정확한 의미 사이의 관계를 교육받기 이전까지는 단지 추상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글자는 형태만 있는 그림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와 친숙하지 못한 외국어가 덜 복잡하게 느껴지고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도 그림처럼 인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글자의 의미를 알고 그 형태와 친숙해진 후에는 더 이상 그림이 아니라 구체적인기호가 된다. 따라서 한글의 형태가 다른 나라 글자의 형태보다 아름답지 못하다는 생각은 한글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우리만의 느낌일 수 있다. 반면, 캘리그래피를 아름답게 느끼는 것은 글자의 텍스트성보다 이미지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동그라미와 사각형, 수평선, 수직선이 글자가 될까?’

 외국인들이 한글에 대해 가장 신기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한글은 단순하고 간결할 뿐 아니라 ‘반복’과 ‘대칭’, ‘회전’의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글자로, ‘ㅣ’자 계열 모음자에서 보이는 상·하의 대칭과 ‘ㅡ’자 계열의 모음자에서 보이는 좌·우의 대칭이 뚜렷하다. ‘ㄱ’과 ‘ㄴ’에서도 대칭과 회전의 원리를 찾아볼 수 있으며, ㄲ, ㅋ, ㄸ, ㅌ, ㅃ, ㅔ, ㅕ, ㅖ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가획의 원리로 새로운 형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또 다른 ‘반복의 원리’를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한글의 형태는 구조적이고 논리적이다.

 그 창제 기원부터 철저한 계획과 표현원리에 의해 이루어진 한글이지만, 그 발전과정에서는 소극적이라고 할 만큼 조심스럽게 전개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훈민정음 해례본’과 ‘석보상절’, ‘용비어천가’의 목판본에서 볼 수 있듯이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 몇 년간은 기하학적인 형태로 보일 정도로 가로와 세로획의 굵기가 일정했으며, ‘o’의 형태는 정원에 가깝고, ‘ㅅ’과 ‘ㅈ’은 대칭적인 형태를 하고 있는데 그 시대의 글씨를 쓰는 도구가 붓이었다는 점을 의심하게 할 정도로 색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 서구에서 로만체가 펜으로 쓴 글씨의 형태를 재현하고자 노력하여 얻어낸 형태였다는 점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데 1500년대부터 이러한 기하학적 형태가 사라지고, 오히려 지금의 명조체나 목판체와 비슷한 글자체로 변모한 이후 일제침략기까지 한글의 모습엔 점진적인 변화만 있었을 뿐이었다.
 해방 이후에야 새로운 인쇄기술로 인하여 형태의 전환기를 맞게 되는데, 붓글씨체를 기본으로 한 명조체와 이와 대비되는 형태인 고딕체가 최정호 선생에 의해 정리되고 다듬어진 것은 실로 한글 형태의 발전에 초석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태동한 시기도 이때부터였지만, 모던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정립시키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고, 그저 서구 디자인을 무분별하게 모방해 한글에 대입하는 혼돈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모든 결과에는 과정과 이유가 있기 마련인데 풀이과정도 모른 채 답만 베끼다 보니 그것이 오답이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1990년을 전후하여 매킨토시 컴퓨터가 보급되어 디자인의 양적 팽창이 시작되면서 과거의 인쇄방법은 전자출판방법으로 대체되었고, 이를 뒷받침하고 이끌어갈 타이포그래피 분야에도 일대 혼란이 일었다. 수작업으로 글자를 만들던 시대는 사라지고, 디지털 방식으로 모든 디자인을 해결하게 되었고, 이러한 기술적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폰트의 개발이 가속화되어 인쇄물의 표정은 다양해졌지만 아이덴티티가 결여된 글자꼴의 무분별한 적용과 활용은 많은 과제를 남기게 되었다.
 새로운 폰트가 나오면 우선 하드디스크에 저장해 놓고는 그저 풀다운 폰트메뉴에 가득 찬 것만 보아도 보험을 들어놓은 것 같은 위안을 느끼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언가 낙오된 것 같아 불안감을 느끼는 디자이너들의 형태감각과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능력은 항상 시험받게 되었고, 그만큼 점점 폰트와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공부가 요구되었다.


매체의 변화는 그동안 철칙으로 알았던 내용의 수정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글자에서의 가독성은 필요조건으로 여겨져 왔으나 그 또한 사용되는 목적에 따라 충분히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 될 수 있다. 어린이들은 어려서부터 TV, 영화, 비디오에 익숙해 있으며, 컴퓨터를 친구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상호작용적인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N세대는 일방적인 TV세대와는 다르게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웹을 선호한다.
 자기들만의 커뮤니케이션 용어와 기호가 있고, 아날로그적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공동영역을 구축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글자가 필요한 이유와 선호도는 매우 다르다.

 가독성이 높다는 것은 글자꼴의 변별성이 뛰어나 연속적인 본문을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고딕체의 경우 글자가 만드는 글줄의 상단과 하단이 큰 변화 없는 수평정렬이기 때문에 문자의 변별성이
낮다. 반면 명조체는 불규칙한 모양으로 글자의 변별요인이 풍부하여 문자의 인식속도가 높게 나타난다.
 그러나 명조체의 경우 화면상에서는 다른 중고딕체나 그래픽체에 비해 가독성이 떨어지는데, 지면에서 변별성의 요인이었던 명조체의 세리프가 화면에서는 오히려 모니터의 발광으로 인해 변별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표현 매체에 따라 목적을 만족시키는 형태의 조건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읽는 대상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어린이는 성인과 다르게 탈네모꼴의 글자를 화면상에서 훨씬 편하게 빨리 읽는다는 한 연구결과가 이를 말해 준다.


목적과 쓰임에 따라 적합한 제품이 필요하듯 글자 또한 마찬가지이다.

폰트 디자인은 제품 디자인, 타이포그래피는 시각디자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과장일까? 폰트 디자인의 특성 중 하나는 그 제품이 또 다른 제2의 상품으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하나의 완성된 디자인인 동시에 또 다른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흔쾌히 되어준다는 사실이다.

 최근 폰트 디자인의 이슈는 웹폰트의 등장이었다. 웹폰트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무상으로 폰트를 다운받아 사용해온 사람들에게 글자도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상품이라는 인식을 갖게 해주었고,홈피를 자신의 스타일로 만들 수 있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해주었으며, 폰트라고 하는 상품의 중심에 사용자가 자리하고 있다는 새로움과 더불어 글자의 역할을 한층 확장시켜 주었다.

 글자꼴을 만드는 폰트 디자인 분야는 고도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분야이다. 장인정신을 요구하는 예술과 디자인이 접목된 특수영역이기도 하다. 또한 창의적인 생각과 구조적, 논리적인 문제해결능력이 요구되는 영역이 글자꼴을 만드는 일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형태적인 해결을 최소한 2,350자에 일관성 있게 적용시켜야 하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자꼴을 만드는 일 이상으로 개발된 폰트를 효과적으로 전개시키고, 적용·활용할 수 있는 능력 또한 매우 중요하다. 같은 글자꼴 안에서도 굵기와 자폭 조절, 크기, 다른 이미지와의 관계, 글자꼴이 놓이는 위치 등에 따라 아주 다른 디자인이 만들어지는데, 이때 어느 글자꼴은 어디에 적합하다는 식의 수학적 공식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더 매력적인지도 모른다.
 디자이너들은 아주 섬세하고도 정교한 눈으로 글자꼴을 선택하고 적용시켜야 하며, 명확한 판단력과 정확한 안목을 위하여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 특히 타이포그래피의 역사에 대한 학습이 필수적이다. 효과적인 폰트를 디자인하고, 조화로운 폰트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글자가 가지고 있는 문화, 역사, 그리고 형태적인 면을 파악하는 공부가 선행되어야 한다. 왜 이 글자와 저 글자는 어울리지 않는지, 글자의 크기에 어떻게 변화를 주면 어울리지 않던 글자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지 등 많은 의문점들을 풀어줄 수 있는 해법을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표현대상을 기하학적이고 단순한 형태로 만드는 것을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고, 포스터는 간단명료한 형태와 3~5가지 색만을 사용하여 깔끔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배운 적도 있었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과 교육은 자유로운 생각과 표현의 폭을 제한시켰고, 목적성과 논리성을 결여시켰다. 그런데 이러한 잘못이 타이포그래피 교육에서도 범해지고 있다.
 디자인 실무분야 뿐 아니라 디자인 교육현장에서 이구동성으로 모든 디자인의 기본은 타이포그래피라며 그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기본이 여타 수업에서는 간과되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이다. 이에 대해 타이포그래피 수업에서 습득한 지식과 기술을 다른 수업에서는 적용, 응용하지 못하는 학생의 능력부족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이 생활화 되도록 지도해 주어야 하는 교육자의 무책임함이 더 크다. 기본은 모든 디자인 교육 프로그램에서 유지되어야 하고, 일관된 모습이어야 하는 데도 마치 ‘국어시간에만 맞춤법에 맞는 글을 쓰는 학생’을 키워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국어교사만의 잘못이라고 할 것인가?


폰트 디자인 분야와 타이포그래피를 분리, 교육할 필요가 있다.


 글자의 형태를 창조하는 일과 창조된 형태를 가지고 또 다른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일은 작곡을 하는 일과 작곡된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일처럼 매우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타이포그래피는 폰트 디자인을 포함하지만 폰트 디자인이 타이포그래피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에게 작곡가 겸 연주가를 요구해 왔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글자를 디자인하는 일과 글자로 디자인하는 일을 상하로 나눌 수는 없을 터인데도 대부분의 대학들이 레터링이나 문자 디자인 수업을 저학년 기초과정에 개설해 운영하는것은 종합적이고 전문적이어야 할 글자꼴 디자인 분야를 지나치게 기술습득 정도의 과정으로 끝나게 할 우려가 있다. 글자꼴 디자인 작업은 수학적 예술작업인데 말이다. 모든 형태적 미감이 습득되고 난 후에야 해결 가능한 영역임에도 기존의 폰트 몇 글자 베껴보고 흉내 내어 만들어 보는 수업에 지나지 않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글자를 보는 눈을 키우는 것은 그림 보는 눈을 키우는 것과 같다.

 어떤 폰트가 좋은 폰트인지 구별해내는 안목이 단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나 교육과 학습을 통해 디자이너가 꼭 갖추어야 할 요건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도 자신의 폰트를 만들고 이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자랑하는 시대이다 보니 미적으로 좋은 형태에 대한 기준까지 혼란스러운 때가 아닌가?
 Bembo와 같은 글자꼴에서 순수한 아름다움을 느낄 때까지의 시각경험이 디자인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지름길 임에도 0.1포인트의 다름을 인지하지 못한 채 새로운 형태, 튀는 형태를 좋은 형태로 잘못 생각하는 오류를 쉽게 범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교육의 중요성을 통감한다. 자간과 행간 조절 없이 컴퓨터에 세팅되어 있는 크기의 굴림체를 그대로 출력한 레포트를 제출하는 디자인 전공 학생들을 볼 때는 더욱 그러하다.
 기본을 알고 행할 때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미래 또한 탄탄해질 수 있다.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고 그 미디어가 새로운 기술을 갖출 때마다 자신의 생각이나 정보를 표현하는 방법은 날로 다양해지고 있는데, 글자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 활용의 폭은 과거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졌다.
 의미전달이나 가독성이라는 문제들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장 중요한 글자의 존재이유였고. 지금까지도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지고 있는 내용이긴 하지만, 여기에 덧붙여 과거의 '글자'라는 개념을 뛰어넘어 새로운 그래픽 도구로서 활용할 수 있는가치의 발견을 이 시대는 요구한다.
 따라서 디자인 영역의 무경계화는 물론 장르의 구분도 무의미해지고 있는 시대의 요구를 모두 담아낼 수 있는 사고의 확장과 수용의 유연성이 교육현장에도 필요하다. 여기까지가 타이포그래피이고, 여기부터는 다른 영역이라는 생각은 변화하는 이 시대에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와 시각을 전제할 때 한글꼴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에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들이 고민하고 토론하는 만큼 우리 한글의 디자인적인 기본이 제대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이 신명나게 에너지를 쏟는 만큼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내일이 밝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글을 도구로 다른 사람과 가장 적절하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방법의 모색’이 한글 타이포그래피라면, 우리 교육현장의 시행착오까지도 달게 겪으며 한글 사랑에 매진하고 있는 젊은 그들이야말로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가능성이며 미래일 것이다.


 온한글의 '대학 한글 타이포그래피 모임' 관련 포스트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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