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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한글 책꽂이

2044년의 한글은 어떤 모습일까요? - [뚜깐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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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목으로 조여 묶은 멍든 가슴 멍든 마음
누가 알아보고 품어 줄까 안아 줄까
어매야 아배야 어쩌자고 날 낳았오
어쩌자고 날 만들었오

<딸년을 땅에 묻고 돌아오다>
                                                    정유년(丁酉年, 1537년) 시월 보름, ‘해문이슬’



한글 창제 600주년 2044년의 한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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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원을 초등학교 때부터 다녀야 하나요?”
“당연하죠!”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한 어학원의 광고 문구입니다.

영어 공교육 강화, 영어 공용화…… 뜨거운 논란 속에 결론 없이 영어 교육 열풍만 거세지고 있습니다.

 

 “국어 못해도 좋으니 영어만 좀 어떻게……”라며 왕왕거리는 사회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날까요? 태어날 때부터 쓰던 영어가 모국어인 한국어보다 편하고, 한글은 국어 시간에나 배우는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기는 『뚜깐뎐』의 제니가 혹시 미래의 우리 아이들은 아닐까요?

 

 한글 창제 600주년이 되는 2044년, 한글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그 시간속으로 고고!!  


 

 때는 한국에서는 영어 공용화 법안이 통과된 뒤, 영어가 일상어로 자리를 잡게 된 한글   창제 600주년 2044년. 

 한글은 학교 국어 시간에나 접할 수 있고, 한글 논술 시험을 보는 한국 대학들의 인기는 점점 떨어지는 등 한글이 사라질 위기에 처합니다. 

 여느 아이들처럼 한글에 대해 관심 없고 영어가 익숙한 열여섯 살 소녀 제니는 ‘한글 창제 600주년’을 기념하는 바이러스를 접한 날, 엄마의 유품으로 한글 시가 적힌 비단과 ‘뚜깐뎐’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받게 됩니다. 

 ‘뚜깐뎐’은 제니가 살던 시대로부터 540년 전, 주막집 딸로 태어났으나 양반을 무서워 않고, 계집으로 태어났으나 사내를 어려워 않고, 시집갈 생각은 않고 세상 구경할 생각만 하는 열여섯 살 소녀 뚜깐의 이야기였습니다. 

 뚜깐은 주막 일을 혼자 돌보느라 매일 고생만 하는 어머니와 노름꾼 아버지 밑에서 사내아이처럼 천방지축으로 자랐지만, 최 역관 댁 서진 도령을 사모하게 되고, 뚜깐을 탐하는 양반집 도령들에게 호된 모욕을 당하며, 여인으로 성숙해 갑니다. 

 그 즈음, 임금을 깨우치려 한글 괘서를 돌리며 한글을 유포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뜰에봄 일당을 만나 한글을 배운 뒤 양반집 도령들의 횡포로 풍비박산이 난 집을 떠나게 됩니다. 

 뚜깐은 ‘똥뚜깐’에서 태어났다는 뜻의 ‘뚜깐’ 대신 ‘해를 물고 있는 이슬’이라는 뜻의 한글 이름 ‘해문이슬’을 사부에게서 새롭게 받고, 그의 가르침대로 학문에 정진하여 한글로 된 시를 남깁니다.


"해를 물고 있는 이슬이라는 뜻이니라.”
잠든 줄 알았던 사부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벽에 쓴 ‘해믄이슬’을 두고 하는 말인 듯했다. 

 ‘해를 물고 있는 이슬?’

“동틀 녘 들판에 나가 보면, 들풀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지. 그 들풀 잎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느냐? 이슬이 맺혀 있었을 게야. 그 이슬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해가 들어 있느니!”
사부는 여전히 눈을 감을 채 천천히 말을 이었다.

 뚜깐은 사부가 쓴 숯 글씨를 응시했다.
‘해믄이슬.’
뚜깐은 입 속으로 중얼거려 보았다.

 “네 이름이니라!”
내 이름……. 뚜깐은 숨이 탁 막혀 왔다.
“부디 나라말 공부 팽개치지 말고 열심히 해서, 나라말로 고운 시(詩)를 쓰는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하려므나!”

 사부는 낮은 목소리로 뚜깐에게 당부한 뒤,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 본문 중에서-

 ‘뚜깐뎐’을 다 읽은 제니는 비단에 수놓인 시를 해독하며, 이를 물려주려 한 엄마의 마음과 한글을 지키려 했던 수많은 이들의 애환을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한글은 창제된 후 수백 년 동안 언문 취급을 받으며 수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은 그 명맥을 유지해 현대에 이르러 세계 최고의 문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한글 창제 이후 한문을 한글로 풀어 쓴 책이 수백 권에 이르렀고, 연산군 시절에는 한글 괘서 사건으로 한글이 불온문자로 낙인찍혀 사용이 금지되기도 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상상력으로 얽어, 민초들과 그들을 닮은 한글 이야기를『뚜깐뎐』통해 풀어 놓고 있습니다. ‘해문이슬’ 뚜깐이 한글로 된 최초의 시를 남겼다는 허구의 설정 위에 쓰여진 이 소설은, ‘한글’ 창제의 실제적인 의미, 고유의 말과 글을 지닌 우리 자신의 실존에 대한 성찰을 하게 만듭니다.

 국제화, 글로벌시대에 초점을 맞춰 정작 소중히 여겨야할 우리의 한글이 천대받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아이들에게 외국의 문자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곰곰히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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