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은 세종의 비밀 프로젝트였다?
▶ 연산군은 한글 사용을 탄압했다?
▶ 일제 강점기에는 한글을 배울 수 없었다?
▶ 글자의 이름과 순서는 어떻게 정해졌을까?
▶ 한글날은 왜 10월 9일일까?
◆ 500년 전 역사 속으로 떠나는 한글 여행
이 책은 여전히 의문이 많은 한글의 창제 과정을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섬세하게 파헤치고 있습니다.
'과연 세종대왕은 새로운 문자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것일까?' '세종은 한자를 없애기 위해 한글을 만든 것일까?' 등 크고 작은 상상과 궁금증으로부터 이 책은 시작하고 있습니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다음 수년 동안 어떤 실험을 했는지를 살펴보면서 세종이 한글을 만든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되짚어보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17~18세기에 등장한 한글소설을 중심으로 한글이 대중에게 파급된 경로도 추적하고 있는데요.
부녀자들의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던 수많은 한글 소설의 보급 과정과 《설공찬전》에 얽힌 일화 등이, 영화 <음란서생>에서 볼 수 있었던 세책가(貰冊家)의 풍경과 겹쳐지면서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픽션에 불필요한 상상이 덧씌워져 한글에 대한 또 다른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엄밀하고도 객관적인 시선을 견지하면서, 한글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거론함으로써 역사적 맥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연산군은 1504년(연산 10) 자신을 비방하는 한글 투서 사건이 일어나자 한글을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말 것이며 이미 배운 자도 쓰지 못하게 하는 이른바 ‘언문금압’을 발표한다. 심지어 이틀 후에는 관리들의 집에 보관되어 있는 언문으로 된 책을 다 불사르도록 명한다.
이러한 일화는 연산군을 역대 임금 중에 한글을 가장 탄압했던 임금으로 기억하게 했다.
더욱이 폐비 윤 씨 사건과 관련해 폭정을 일삼았던 폭군의 모습과 한글 탄압의 모습이 자연스레 중첩되면서 더욱 그럴 듯한 이야기로 각인된 것이 아닌가 한다.
(중략) 그러나 주목할 것은 이러한 한글 금지에 대한 법령이 과연 한글 탄압을 위한 조치인가 하는 점이다. 연산군이 한글을 증오하고 무가치하다고 판단해 사용을 금지한 것일까? 아니면 한글로 투서를 만든 범인을 잡기 위해 내린 조치일까?
- 연산군은 한글 사용을 탄압했다? 中
◆ 한글의 형태와 기능에서 한글의 문화사와 정책사까지
이 책은 한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가는데 그치지 않고 한글 문화사와 한글 정책사에까지 시선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궁금증이 부정확한 사실에 근거해 있거나 문자의 원리와 기능을 정확히 알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 주목한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글자의 이름을 만들려면 다른 것과 똑같이 ‘기윽, 니은, 디귿…’으로 해야지 왜 유독 ㄱ만 ‘기역’이었을까?”하고 시작된 질문은 쉽고 명쾌한 해설을 통해 어렵지 않게 답을 말해줍니다. 글자의 이름과 순서, 글자의 모양, 모아쓰기와 풀어쓰기 등 복잡하고 어려웠던 한글의 기능과 숨겨진 질서가 선명한 그림처럼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한글 자모의 명칭을 ‘기역, 니은, 디귿…’으로 하는 것은 《훈몽자회》에 나타난 자모의 명칭을 한글로 적은 것뿐이다. 그러니 그 기원은 《훈몽자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훈몽자회》에서 변한 게 있다면 ‘키, 티, 피, 지…’ 등이 ‘키읔, 티읕, 피읖, 지읒…’으로 바뀐 것뿐이다. 왜냐하면 현행 표기법상으로 모든 자음이 받침에 다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자의 이름을 만들려면 다른 것과 똑같이 ‘기윽, 니은, 디귿…’으로 해야지 왜 유독 ㄱ만 ‘기역’이었을까? 기역만이 아니다. 똑같이 통일하려면 ‘디귿’도 ‘디읃’으로 바뀌어야 하고, ‘시옷’도 ‘시읏’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 왜 이렇게 규칙없이 글자 이름을 지었을까.
- 글자의 이름은 어떻게 정해졌을까? 中
이 외에도 한글 맞춤법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 한글날이 10월 9일로 정해진 배경은 무엇인지 등을 주시경, 지석영 등 수많은 국어학자들과 조선어학회, 국문연구소 등의 구체적인 활약사를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 영어 광풍의 시대, 한글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다
오늘날 위태로워진 한글의 위치 때문인지 일제 강점기 일본의 ‘일본어 상용화 정책’을 다룬 장은 결코 가벼이 읽히지 않습니다. 단계적으로 치밀하게 진행된 일본어 상용화 정책은 ‘일본어 필수, 조선어 필수’ 체제에서 ‘일본어 필수, 조선어 선택’ 체제로 전환하면서 학생들이 스스로 조선어를 포기하고 일본어를 선택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일본어 상용화 정책은 일본의 교육 정책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1차 교육령과 2차 개정교육령에서는 언어 교육에 있어서 ‘일본어 필수, 조선어 필수’라는 체제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미 일본어는 국어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과목의 교과서가 일본어로 되어 있었고, 교실에서는 일본어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조선어 과목을 필수로 정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은 강의를 잘 듣고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라도 일본어를 우선적으로 학습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조선어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교육하던 시절이었지만, 이미 학생들은 조선어를 학습해야 할 특별한 동기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 해서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입시과목에 조선어가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조선어가 필수과목으로 허용되던 시기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조선어 교육이 무시되었던 것이다.
- 일제 강점기에는 한글을 배울 수 없었다?
점차 폭력적인 양상을 띠게 된 일본어 상용화 정책 하에서 조선어학회가 펼친 한글 강습회 등 한글 보존 활동은 오늘날의 한글을 있게 만든 우리의 소중한 역사입니다. 그러나 한글 창제 560여 년이 지난 오늘, ‘편안한 마음으로 한글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다’는 저자의 고백은 과연 국어학자만의 고민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은 세계 속에 인정받았지만, ‘세계 속의 한국’을 외치는 우리는 지금 영어 몰입 교육의 광풍에 휩싸여 있는 게 현실입니다.
언어와 문자에까지 실용이라는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지금,
굳이 다시 한글의 중요성을 끄집어내어 이야기하고 있는 저자의 글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많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 ‘한글은 우리의 생활에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에 만들어졌고, 우리의 생활에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새롭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깨달음이 ‘한글만 잘 사용해도 이 땅에서 아무런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권리의식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 저자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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