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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행사와 모임

전국 어디든 찾아가는 누드 도서관을 아세요?


 

'콘테이너로 만든 도서관!'이라고 하면 벌써부터 뭔가 신선하다는 느낌이 확 오지 않으시나요? 위의 사진은 3월에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되었던 배영환 작가의 전시입니다. 지금은 경기도 미술관 등에서 실제로 프로젝트로 진행이 되고 있다고 해요.

'와, 구석구석까지 책을 배달한다니, 정말 감동적이구나!'
'콘테이너를 저렇게 예쁘게 바꿔놓다니, 포토제닉이 따로 없네.'

저도 이러한 생각들을 똑같이 느꼈는데요, 사실 제가 이번 와우북 책문화 포럼에서 가장 크게 얻었던 것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와, 구석구석까지 책을 배달한다니, 정말 감동적이구나!'

사회를 맡으셨던 이용훈님도 말씀하셨던 것이지만, 이러한 이동 도서관의 개념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동 도서관은 지난 60-80년대에 한국에서 꾸준히 이뤄져왔었고요, 초기에는 몇몇 뜻을 가진 개인들이 단지 책을 보내는 것에 그쳤다면 이후에는 좀더 의욕적인 교육활동도 함께 있었다고 해요.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계몽적 성격을 띠고 진행되었던 농어촌 마을에 책 보내기 운동과 같은 경우에는 책을 보내기만 하고 그와 함께 다른 교육들은 진행되지 않아서 책을 불쏘시개로 쓰거나 화장실 휴지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었다는 ... ^^;

지금도 도농복합도시와 같은 곳에서는 농촌 지역에 도서관을 짓고 주민들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많은 분들이 일을 하고 계십니다. 군인들이나 그 밖에 차가 들어가지 않는 지역에는 아직도 이동 도서관이 운영되기도 하고요. 이동도서관이 줄어든 것은 공공도서관이 재정비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정보가 유통될 수 있는 채널이 늘어나면서 병행되었던 당연한 수순인 것 같아요. 항상 갈 수 있는 곳에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이 많아지고 잘 정비되어 있는 편이 훨씬 더 공공도서관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겠죠? ^^



'콘테이너를 저렇게 예쁘게 바꿔놓다니, 포토제닉이 따로 없네.'

혹시 '팝업 스토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팝업 스토어는 한시적으로 상품을 팔고 사라지는 깜짝 스토어 같은 개념인데요, 콘테이너를 자주 사용하고 글로벌 마켓에서 아주 인기있는 매체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가깝게는 일본의 유니클로 팝업 스토어와 같은 것도 있겠고요.

배영환 작가의 작업에서는 이러한 콘테이너가 다양한 모습의 도서관으로 탈바꿈하여 바닷가가 보이는 도서관이라든지 천장에 별자리가 보이는 도서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도서관 안에 있는 책상들은 의자로도 사용이 가능하고 포개어 놓으면 책꽂이도 되기 때문에 활용도가 아주 높다고 해요. 디자인도 좋고 전기나 온방시설도 되어 있고 이동도 용이한 도서관이 풍경과도 잘 어울릴 수 있다니, 정말 매력적이네요.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저를 반짝이게 했던 한 장면은, 아래와 같은 풍경이었어요.

(via 맛짱)
"책을 꽉 채우지 않고 눕혀놓았어요."

'책을 꽉 채우지 않고 눕혀놓다니, 비효율적인데?'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빽빽이 꽉 차 있는 책 때문에 배가 아파보거나 하신 적은 없으신가요? 내가 죽기 전에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와 이거 언제 다 읽어, 이런 생각들이요.

책문화, 라고 하면 흔히 '책을 읽는 문화'를 떠올려요. 책을 읽는 문화라면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책을 가까이 하고 쉽게 빌려볼 수 있는 문화일까요? 물론 그것도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책을 꽉 채우지 않고 눕혀놓을 수 있는 문화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책 자체가 또 다른 억압으로 작용하지 않게 하는 것이요.

콘테이너 도서관에 책을 꽉 채우면 3000권까지는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꽉 채우면 바깥이 보이지 않게 돼요. 바닷가에 있는 도서관이라면 책장을 꽉 채우지 않는 게 좋겠죠? 어쩌면 책을 읽기 전에 이미 책에 대한 압박으로 마음 속이 꽉 차서 바깥풍경을 바라볼 여유를 쉽게 잃어버리는 것에 익숙해져있지는 않은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고 보면 제가 기분 좋게 읽는 책들은 자기 전에 읽다가 놓아둔 베갯머리의 책들인 것 같아요. 두 세권 정도가 쌓여있지만 쉽게 손이 가고 꼭 다 읽어내야 한다는 의무감 없이도 읽을 수 있는 책이요. 콘테이너 도서관의 책들이 저렇게 누워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베갯머리의 책들을 떠올렸어요. 책꽂이의 책들을 세워놓지 않고 눕혀 놓는다는 것은, 보유권수를 늘리거나 검색에 용이한 배열보다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쉽게 집어서 읽고 놓아두고 나갈 수 있는 공간'을 상상했기 때문에 가능한 작업이 아닐까요. 이런 공간에서 생겨나는 책문화는 분명히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책과 도서관을 많이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와우북 책문화 포럼이나 배영환 작가의 프로젝트처럼 다양한 의견들이 책문화에 대한 건강한 이야기들을 많이 생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저도 여기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안 읽고 꽂아만 두었던 책들을 베갯머리 옆에 좀 눕혀놓아볼까 해요, 하하.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1기 조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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