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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새로운 시선

면접관을 멍하게 만들었던 A군의 한마디

얼마 전 8월 말, SK텔레콤에서 운영하는 ‘알파라이징 대학생 블로그 리포터’ 면접을 구경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아무래도 사회 경험이 없는 그들인지라, 잔뜩 긴장해 들어오는 지원자들...
‘짜식들 많이 떨리지?’ 하는 생각은 안드로메다로... 어느새 저는 그들이 엄청 부러워졌습니다.
대학생들의 거침없는 대답과 자기표현, 툭툭 던지는 말 속에 녹아 있는 젊음이 마냥
부럽기만 했어요. 이제 제가 서른을 넘긴 탓일까요? ㅜㅜ

개인적인 관심사를 주로 풀어내는 블로거라던 ‘A’ 학생이 떠오릅니다. ‘아무도 관심을 보여주지 않을 것 같은 자신의 일상을 블로그로 풀어내는 이유가 뭔가요?’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까만 눈동자가 인상적인 그 친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레알 잉여돋는 제 일상이지만, 제가 어떤 방식으로 대중에게 재미있게 다가가느냐에
따라 그것이 소소한 기쁨을 줄 수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면접관의 표정이 일순간 멍~해졌습니다. 그 학생의 생각에 감동한 걸까요? 아닐 거에요.
면접관들의 반응에 아랑곳없이 그 학생의 답은 계속됐습니다. 


“제 일상을 최대한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려고는 하지만, 제가 약간 필력도 모자라고 해서 아무래도 인기 있는 코믹 이미지나 상황에 맞는 사진을 짤방으로 넣어 방문자들에게 재미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면접관들이 눈빛이 더욱 흔들리며 고개를 갸우뚱 하는 가운데, 어떤 면접관 한 분이 떨리는 목소리로 A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 A씨...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잘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 ‘잉여’ ‘짤방’이 무슨 말이에요? ‘돋는’ 건 또 뭐고요?”


세대 간 격차가 가장 많이 느껴질 때가, ‘그들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들을 때’라고 합니다. 같은 한글을 사용하는데, 서로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아 내가 세대 차가 나서 쟤들 말을 못 알아듣는구나’ 하는 것이죠. 

이런 사람들을 잉여인간이라고 보통 부릅니다만...

‘잉여’라는 단어는 ‘쓰고 남은 것, 나머지’를 뜻하는 말로, 보통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쓸모없는 짓을 한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시민의 몇 가지 유형을 그린 손창섭의 소설 <잉여인간>이 모티브가 된 듯해요.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걸 ‘잉여 짓 하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거죠. 

‘돋는다’는 말은, 어떤 ‘느낌’을 나타내는 말로 ‘소름 돋는다’에서 온 말인 듯합니다. ‘오늘 카라 일본 데뷔 무대 봤어? 정말 미모 돋지 않아?’ 이런 식으로 젊은이들이 많이 쓰더라고요.

‘짤방’‘짤림 방지 사진’의 준말입니다. 예전 DC인사이드 게시판에서는, 글에 사진이 첨부돼 있지 않으면 관리자가 글을 삭제해 버렸습니다. 하긴, 거긴 게시판 이름이 아예 ‘갤러리’니까요.

이런 것도 짤방의 일종이죠?

그래서, 일반적인 글을 쓰더라도 글이 ‘짤리지 않도록’ 재미있는 사진을 아무거나 첨부했다고 해요. 이것이 바로 ‘짤방’이라는 말의 유래입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한글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유행어나 신조어들은 예전과 달리, 한번 인기를 끌면 빠르게 퍼져 나가 금세 ‘대세’가 되니, 그 속도는 더욱 빠르겠지요. 

한글 학자들을 비롯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지 몰라도... 저는요, ‘언어는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어린 뷕셩이 니르고져홇배 이셔도’라는 말을 요즘에는 쓰지 않잖아요?

그러나 비슷한 연배의 세대나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가 아닌, 면접이나 상견례 등 자신과는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이나 다른 연배의 사람들과는 그런 말보다는 표준에 가까운 우리 말을 사용하는 것이 서로 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말이란 게 ‘소통’이 가장 큰 기능인데, 그 기능을 망각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테니까요.

과연, A군은 합격했을까요? ^^;;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2기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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