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하 김두경
강암 송성용 선생 사사. 하석 박원규 선생 사사.
1990년 전라북도 서예대전 대상 수상. 대한민국 서예대전 특선 수상.
현재 문자조형연구소 ‘문자향(文字香)’과 ‘선비문화 체험관-우리누리’ 운영중.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서예반 교수.
우리가 흔히 전통사상에 대해 얘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아!' 하고 떠오르시는게 있으신가요?
많은 사자성어 중 '온고지신(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로운 것을 앎)'이 많이 대두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옛 것을 익히고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문화 등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3년 동안의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토와 경제는, 선진국 경제 모임인 OECD 가입국이 되기까지 만 43년, 반세기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왜곡과 핍박에 무너진 문화는 광복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도 바로서기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 중 안타까운 것은 독립운동 정신의 근간이 된 선비사상의 왜곡이 아닐까 합니다.
체면치레에 급급한 사대부 중심의 선비정신이 온고지신해야 할 것이냐는 의문을 가시는 분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저 또한 선비에 대해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중하 김두경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그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21세기에 선비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선비문화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적극 홍보하고 계시는 김두경 선생은, 특히 서예가로서 그 명성이 자자하신데요. 10년의 긴 침묵을 깨고 2008년에 개최한 개인 전시회에서는 한글의 미적 가능성을 끌어올린 작품들로 호평을 얻었습니다.
왜곡된 우리의 중요한 사상 중 하나인 '선비정신과', 서예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무엇인지 묵(墨)향 가득한 21세기 김두경 선생님께 여쭤봤습니다.
밥
ㄱ_가슴 깊이 만나라 - 잊고 지냈던 친구 연락 와서 고맙고, 정 나누던 친구 못 챙겨서 미안한 마음
ㄴ_난나 나는 지금 내 길을 제대로 가고 있나.
ㄷ_당신 이 세상에 당신이 있어 내가 행복한 것처럼, 당신에게 나도 행복한 사람이고 싶어.
봄
ㄹ_룰루랄라 신나게 한 세상
ㅁ_마음모아 이 생각 저 생각, 이 일 저 일, 이 사람 저 사람, 다 놓고 마음 모아
ㅂ_바로바로 바로 그때가 아니면 그 말, 그 느낌은 영원히 없다. 바로 바로 행하고 느낌을 소중히
ㅅ_솔대바람 우리 집 마당 소나무와 대나무. 지금은 매서운 겨울 바람 맞고 있지만,
팔 베게 구름 벗해 솔대바람 안고 누워 느긋할 봄 멀지 않다.
수복
o_아침 매순간 순간이 아침을 맞는 기분이다. 발걸음도 가볍다.
ㅈ_자유로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는 내 삶, 자유롭지 않은가.
ㅊ_차마고도 꼭 가보고 싶은 곳.
ㅋ_큰일 인생에 큰일
밝게
ㅌ_태움 불태우리. 온 힘을 다해 텅 빌 때까지.
ㅍ_파도 파도처럼 살지 않고 물이 되어 살기.
ㅎ_향기 내가하는 작업이 이 세상에 향기가 되고, 밥이 될 수 있기를.
역사상 가장 진취적이며 창조적인 인간상 - 선비
온한글 선비문화체험관 '우리두리' 운영을 통해서 선비정신을 강조하시던데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선비정신이란 무엇인가요?
김두경 우리나라 역사상 자기 관리에 가장 철저했던 생활인을 선비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에겐 체면과 겉치레를 중시하는 부정적 의미의 선비정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우리의 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비정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켜 우리가 그렇게 여기도록 세뇌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의 선비는 꼿꼿한 지조와 목에 칼이 들어와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기개, 죽음도 불사하던 불요불굴의 정신력, 항상 깨어있는 청정한 마음가짐으로, 벼슬을 했건 안했건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이타적 삶을 실천하려는 지식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역사상 가장 진취적이며 창조적인 정신으로 사회 정의 구현을 위해 노력하는 인간상이기도 하였고 높은 사상과 탁월한 안목을 갖춘 문화예술인이기도 했으며 사회비평가이기도 했습니다.
※ 여기서 막간 테스트 "나는 포스트 21세기형 선비가 될 수 있을까?"
1. 나는 학식이 있어도 과분한 자리를 사양할줄 아는 사람인가?
2. 자신의 이익보다 공익적인 가치를 우선하는 사람인가?
3. 신의를 중시하며 부정부패와 탐욕을 멀리하는 사람인가?
4.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정성을 쏟는 사람인가?
5. 자연을 사랑하고 남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인가?
6. 문, 사, 철은 기본이며 의학, 천문, 지리와 시, 서, 화, 음률에 안목을 지닌 사람인가?
7. 의, 식, 주 등 생활문화 전반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
이중에 하나라도 걸린다면 진정한 선비라 할 수 없답니다!!!
선비되기란 정말 쉬운일이 아니군요.
온한글 현대사회에서 선비정신이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두경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자면 전 세계적 경향도 그렇거니와 우리 사회도 저속한 물질문명의 격랑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이런 격랑을 헤치고 국가와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선비정신이 바른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행하기 어렵고 배우기 힘들다 하여 외면한다면 우리의 미래도 그만큼 불투명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정적 선비 이미지가 아닌 고도의 자기수양을 통해 세상을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나오기를 꿈꾸며 선비문화 체험관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雪
온한글 우리누리 운영도 바쁘실 것 같은데, 서예 연구소 '문자향'을 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김두경 이 시대에 서예는 별 쓸모없는 예술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서예는 최고의 지식인들이 향유한 가장 품격 있는 예술이었으며 모든 대중들이 지향해가던 생활문화였습니다.
이런 서예가 21세기에 다시 대중들에게 필요 할 수밖에 없는 예술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그것을 위해서 서예를 이 시대에 맞도록 하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첫째가 현대 디자인적 요소를 서예에 도입하여 이 시대에 어울리는 서예를 하는 것이며, 둘째는 서예의 특징인 감성적 표현이나 사상적 표현성을 극대화시켜 좀 더 쉽게 대중들의 공감을 얻는 것이고, 셋째는 현대 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적극적인 제품 개발입니다.
온한글 일반적으로 서예하면 한문이라는 인식이 드는데, 특별히 한글로 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김두경 처음에 서예를 시작한 것은 한문 서예였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한문 서예에 있어서도 나름대로의 특징과 저만의 서체를 가졌다고 생각하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이나 중국 서예가들도 그 차별성을 별로 인식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중국이 종주국이라는 점에서 항상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동양문화권이 아닌 유럽이나 구미 등지에서 보는 시각은 중국의 아류라는 견해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안을 찾고자 한 것이 한글이었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한글은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가장 우리다운, 우리를 대표하는 가장 큰 한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문에 한글은 가장 독특한 한국적 디자인이 될 수 있으며 가장 독특한 문화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웃어요
온한글 2008년도에 10년만에 개인전을 여셨는데,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김두경 막상 한글을 잡고 보니 너무나 단순하고 너무나 반복적인 형태여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한글은 앞서 말한 두가지 점에서 내가 극복해야 할 목표가 되었고, 그것만이 나를 세우는 길이고 우리 서예를 세우는 가장 큰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10년만에 개인전을 갖게 된 것도 한글의 단순하고 반복적인 형태를 예술화 하는 어려움 때문입니다. 처음 몇 년간은 아무리 변화와 다양성을 주려 해도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과거에 쓰던 아래아나 쌍자음 변화법을 쓰는 것은 현대에 어울리지 않고 가독성 문제가 있기 때문에 오로지 현대에 쓰는 글자만으로 작품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둔한 머리로 그것을 해결하자니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 것 같습니다.
온한글 오랜 시간이 걸린만큼 서체와 작품 내용에 큰 변화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김두경 서체나 작품에 많은 변화가 생겼지요. 기존에 한글 서체와는 완전히 다른 한글 서체를 만들어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단순하고 반복적인 내려 긋기와 가로 긋기가 눈에 띄지 않도록 획의 느낌을 다양하게 처리한 것도 그렇고, 글자와 글자가 서로 공간을 공유하는 형태를 취하면서 작품에 많은 변화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서예 작품 경향을 보면 이런 공간배치는 다른 서예가 분들도 전혀 볼 수 없었던 형태입니다. 뿐만 아니라 조형과 상징성을 부여하여 현대 디자인적 구성을 이루어냈다고 생각합니다. 한자는 물론 한글에서도 독특한 조형과 표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하장
온한글 작품의 주제와도 맞닿을 수 있겠지만,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시는 메시지는 무언인가요?
김두경 제가 처음 서예를 시작할 때나 현재나 일관된 저의 생각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하는 일이 이 세상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거나 필요한 그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쓴 글씨를 보고 그 문자가 주는 의미를 보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도록, 보는 것만으로 행복하며 더 나아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밝고 맑아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온한글 선생님이 강조하시는 선비정신과 작품이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김두경 선비정신이나 서예정신은 지금 세상과 어우러져서 잘 사는 데에 최상의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맑고 향기롭게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맑은 정신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서예와 선비정신은 서로 일맥상통하며 고도의 정신이 우선하지 않는 서예는 결코 좋은 서예가 될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작을수록
온한글 선생님도 말씀하신 바와 같이 현대사회에서 서예는 접하기 힘든 분야입니다.
서예를 배우고자 하는 분이나 서예를 접할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두경 대중문화가 판치는 세상에서 서예는 낯설고 재미없고 어려운 예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서예는 무엇보다도 삶의 품격을 높이는 예술이고 훌륭한 취미생활이었으며, 삶에서 깊은 정을 멋으로 나눌 수 있는 생활문화였습니다. 지금도 서예는 그런 가능성을 가진 멋진 예술이며 취미활동이고 생활문화라 생각합니다.
서예는 자신을 아름답게 하는 길이 될 뿐만 아니라, 혼자서 자기를 성찰하며 희열을 느낄 수 있는 멋진 예술이기 때문에 서예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글씨 잘쓰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서예를 통한 삶의 품격과 멋을 배우는 것이라고, 그런 마음으로 서예를 배우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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