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를 흔히 지방의 시골마을에서 노인들이나 쓰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사투리에 대한 매우 좁은 생각이다.
필자는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 즉 생활어가 바로 사투리라고 말하고 싶다. 표준어란 언어정책적 관점에서 생활어 중 지역 간의 차이를 없앤, 추상화되고 단일화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한국어의 속살을 풍부하게 담아내지 못하며, 표준어만으로는 우리의 정서를 살뜰하고 온전하게 표현하기 어렵다. 일상생활에서 어느 지역에서나 누구나 편하고 쉽게 쓰는 생활어가 사투리인 것이다.
사투리는 우리 한국어의 문화와 역사, 한국인의 정서가 담겨 있는 보물창고다. 따라서 표준어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사투리를 무시하면 다양하고 풍부한 생활 속의 한국어를 모두 죽이게 될 것이다.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표준어를 중시하는 국어정책을 펴는 나라도 드물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이런 정책 때문에 표준어가 교양 있는 서울 사람들이 쓰는 말이라는 의식이 뇌리에 박히게 되어 사투리를 홀대하는 국민의식이 팽배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은 앞으로 우리말이 풍부하고 다양하게 발전하는 데 큰 장애가 될 것이다. 과도하게 강조된 표준어 의식과 표준어 교육 때문에 스스로 우리말의 풍부한 자원을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이다.
학교 교육과 방송과 같은 대중매체의 보급 등이 어우러지면서 지방 고유의 사투리는 급속도로 위축되어 버렸다. 특히 제주도 사투리는 소멸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 지금의 노년층이 떠나면 제주도 사투리는 사라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런 상황은 제주도 사람들과 제주도의 발전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은 꼭 제주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방언도 비슷한 처지일 것이다.
필자가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가리로 맹근다』를 간행한 것은 이러한 사투리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소중한 것을 찾아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사투리의 가치와 진정한 의미가 어디에 있는가를 널리 알리고 싶었다.
사투리에 대한 필자의 관심은 본인이 쓰는 말이 바로 사투리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비롯된 것이었다. 경상도 성주고을의 연산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어머니로부터 그곳의 사투리를 그대로 배웠던 터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쓰는 말에 관심과 흥미를 갖고 있다.
어렸을 때 어머니로부터 여러 번 들었던 ‘말뜩다’라는 말이 세종대왕 시절의 『석보상절』에 ‘’로 나오고, 이것이 현대어에서 ‘마뜩치 않다’로 연결되는 것을 발견했을 때 느낀 경이로움은 실로 큰 것이었다.
또 동네 할아버지 입에서 튀어나오던 ‘그르매’(그림자)는 현재까지 조사된 어느 방언사전에도 올라가 있지 않은 낱말로, 『두시언해』초간본에서만 잠시 보일 뿐이다.이런 희귀어가 방언 속에 살아있음을 발견하면서 방언연구의 가치를 재확인하게 되었다.
주변의 지인이나 혹은 모르는 사람이 전화로 사투리에 대해 묻기도 한다.
가령 “포항에서 쓰는 ‘오졸없다’(혹은 ‘오질없다’)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입니가?”, “대구 사람들은 ‘계추’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이게 어디서 온 말입니까?” 등의 질문에 대해 답하고 풀이하다 보면 사투리가 지닌 깊은 역사성과 그 가치를 더욱 실감하게 된다.
사투리가 아닌데도 사투리로 잘못 알려진 낱말을 발견할 때도 있었다.
‘부산 사람들의 성격은 아싸리하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아싸리’가 경상도 사투리인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아싸리’를 표제어로 싣고, ‘차라리’의 비속어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잘못이다. 옛 한글 문헌 어디에도 ‘아싸리’와 연결될 만한 말이 없다. 이것은 일본어인 あっさり를 차용한 낱말임이 확실하다.
필자가 사투리 연구를 하기 위해 현지조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81년부터였다. 금릉군 (현재의 김천시) 감천면의 농촌 마을에서 어느 할배와 할매의 말을 조사한 것이 처음이었다. 그 후 학생들과 여름방학 때 현장조사를 하거나 방언학 수업의 일부로 현지조사 실습을 하는 방법 등을 통해 방언자료를 모으곤 했다.
또한 사투리를 반영한 옛 문헌도 적지 않게 찾아보았다. 예컨대 18세기 때 유의양이라는 분이 남해로 귀양 가서 지은 『남해문견록』에는 당시 남해 방언어휘들이 실려 있다. 16세기 후기에 영주 희방사에서 간행한 『칠대만법』에는 ‘가시나’(딸아이), ‘통시’ (변소)와 같은 방언형이 실려 있다. 18세기 초기에 예천의 용문사에서 간행한 『염불보권문』에는 당시의 보통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쓴 발음형도 많이 표기되어 있다. 이런 문헌은 사투리는 물론 우리말의 역사적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자료는 지금의 일상생활에서 듣는 사투리들이다. 주변에 계신 어르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흥미로운 표현을 들으면 적바림해 두곤 하였다. 주변의 친지들이나 어르신의 말씀들이 모두 공부의 대상이 된 셈이다.
그리고 이미 간행된 방언사전들과 ‘21세기 세종계획’ 사업의 결과로 나온 ‘한민족언어정보화 통합검색 프로그램’이 사투리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다.특히 ‘한민족언어정보화 통합검색 프로그램’은 눈 깜짝할 사이에 전국의 방언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도구이다.
사실 국어학자들이 사투리를 연구한 학술서적은 적지 않게 간행되어 왔다. 방언사전도 각 지역 별로 나와 있고, 방언의 말소리, 어휘, 문법 등을 깊이 있게 연구한 학술 논저들이 축적되어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대부분 자기가 알거나 쓰고 있는 사투리 속의 특이한 낱말들이다. 가령 타 지역에서는 안 쓰이는 특이한 낱말들이 왜 자기네 사투리에 있는지, 그런 낱말의 유래가 무엇인지를 궁금해 한다.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가리로 맹근다』는 그런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고자 만든 책이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경상도 사투리에서 쓰이는 특이한 낱말과 표현을 중심으로 그 어원과 용법 그리고 역사적 연원을 풀이한 책이다.
각각의 낱말들이 쓰이는 상황을 제시하고, 그것들이 쓰이는 살아 있는 의미를 느낄 수 있도록 내용을 구성하고 문장을 다듬었다. 아울러 지역주민의 일상생활 속에서 이 낱말들이 가지는 정서적 가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그리고 쉬운 문장으로 된 짤막한 글을 기본으로 하고 내용과 연관된 사진을 넣음으로써 독자에게 친숙히 다가가고자 했다. 개별 낱말을 차례대로 설명하기는 했으나, 구성이 자유로워 아무 쪽이나 펼쳐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다.
그 중 책 끝머리에 있는 ‘왜 사투리가 뜨는가’는 일종의 언어 시평(時評)의 관점에서 사투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분석한 글이다.
우리말을 연구한 학술서는 많지만 대중 교양서는 적은 우리의 현실에서 이 책은 나름대로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표준어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털어내고, 사투리에 대해 보다 객관적이고 바람직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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