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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한글 책꽂이

한 농학박사의 우리말 사랑 <성제훈의 우리말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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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료를 많이 주면 잘 쓰러진다’고 해야 할 것을 ‘다비하면 도복한다’고 표현하는 바람에 만들어진 책이 있다. <성제훈의 우리말 편지>가 바로 그 책이다. 

 농학박사인 저자는 농업 관련 잡지에 기고하던 글을 읽은 한 농부로부터 문의전화를 받고서야 그동안 우리말로 쉽게 쓸 수도 있는 말을 ‘당최 알 수가 없게’ 써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을 그저 일본식 용어가 많은 서적들을 참고하다 보니 생긴 단순한 일로 치부해버리고 말았더라면 <성제훈의 우리말 편지>라는 책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순박한 농부의 솔직한 충고를 겸손하게 새기면서 우리말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고 그 내용들을 주위 사람들과 나누고자 전자우편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 ‘우리말 편지’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2003년부터 보냈던 편지들 중 일부를 엮은 책이 바로 <성제훈의 우리말 편지>이다.

                                  

성제훈_우리말 편지


 지금도 저자는 아침마다 우리말 편지를 기다리는 수천명의 애독자들을 위해,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우리말에 대해 공부하고 자료를 수집한다.
 놀라운 것은 그의 이력이다. 여타의 우리말 바루기에 대한 책을 낸 사람들과 다르게 그는 국어학 전공자도 아나운서도 아니다.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농과대학을 나와 농업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박사학위를 받은 뒤로 농촌진흥청에서 일하고 있는 토종 농업학자이다.
 편지들 곳곳에서 계절감과 자연에 대한 애착심이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말에 대한 전문가로서 누군가를 가르치려 하보다 자신 또한 배우는 사람으로서의 자세로 일관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저 일상 속에서 발견한 말글살이의 문제점에 대한 단상들을 제 식구들의 이야기나 일터의 모습들과 버무려내고 있습니다. 조금만 살펴보면 주위에 틀리게 쓰인 말들이 많습니다. 간판을 봐도 틀린 게 보이고 전공서적이나 라디오, TV 등에서도 틀린 말들이 보입니다. 덕분에(?) 매일 매일 편지를 쓸 수 있습니다.”

 사실 아무리 우리말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더라도 본업만으로도 바쁜 직장인이 하루도 빠짐없이 대중을 상대로 편지를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날마다 ‘우리말 편지’를 기다려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이 앞서 매일 아침 어김없이 컴퓨터를 켠다.

 그의 우리말 사랑은 지난 해 한글학회로부터 ‘우리말글 지킴이’로 위촉되면서 확실히 공인되었다. 그의 인사말대로라면 ‘농업연구자가 농업기술이나 농업상식을 다른 사람에게 쉽게 알리고자 우리말 공부를 시작했고, 그것을 주위 분들과 나누고 있을 뿐인데 큰 상을 받게 되었다’지만, 꽃씨를 퍼뜨리듯 매일 아침 띄우는 ‘우리말 편지’가 있었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말의 향기를 음미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는 기회를 가졌을 것이다.

 한 출판사의 제안으로 출간한 봄/여름편과 가을/겨울편 두 권의 책들은 그동안의 편지들을 재구성한 것이다. 따라서 책의 내용도 잘못된 말이나 어투 등을 바로잡고 순 우리말을 소개하는 것 등이 주를 이룬다.
 저자의 생활 속에서 잘못 쓰이고 있는 말들을 찾아내 사전에서 그에 대한 바른 예들을 보탠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 그래서인지 문법에 대한 글이 많은 책들보다는 읽기 편하다는 평을 듣곤 한다. 

 문법에 대해서라면 국립국어원의 가나다전화에 물어보라고 소개하고 있다. 우리말에 관한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책을 출간한 저자임에도 철저하게 비전문가로서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자료를 참고했을 뿐이라는 이유로 인세도 모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우리말을 바로 쓰기 위해서는 나누고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진작부터 누구라도 ‘우리말 편지’를 누리집에 올려도 좋다고 말해온 터였다. 이렇게 순수하게 우리말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은 메아리처럼 감사편지가 되어 돌아오곤 한다.

 “외국에 나가 있는 주재원이나 특파원 가족들로부터 자녀들의 한국어 교육에 좋은 소재가 된다고 고마워하거나, 맞춤법 공부를 다시 하게 되니 아이들 앞에서 큰소리 칠 수 있게 되었다는 회신을 받곤 합니다. 또 우리말 편지의 내용으로 종례시간에 퀴즈를 낸다는 선생님도 있고….”

 그런 ‘우리말 편지’가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책으로 만들어졌으니 누리꾼들 뿐 아니라 그동안 '우리말 편지‘에 대해 몰랐던 일반인들에게까지 우리말 사랑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상적인 점은 누리꾼들까지도 온라인상으로만 읽던 편지를 손 안에 들어오는 책으로 만나게 된 것을 무척이나 반가워한다는 것이다.

 <성제훈의 우리말 편지>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다음 책을 준비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처음부터 책의 저자가 되고자 한 적도 없지만 책을 내는 일은 출판사들의 소관일 뿐, 본래의 모습대로 우리 농업의 발전을 위한 연구를 하면서, 매일 아침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말 사랑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건네는 발신자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고자 한다.

 “농업에는 우리 선조의 얼과 넋이 녹아 있습니다. 농업의 중요성을 꼭 먹을거리를 만드는 데서만 찾으면 안 됩니다. 우리 문화의 보물창고가 바로 농업입니다. 마침 제가 농업을 하고 있기에, 농업 속에 서려 있는 조상의 숨결과 얼을 찾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그것이 ‘우리말 편지’가 해야 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우리말과 우리글, 우리 문화를 찾아 알리는 데 힘쓸 것입니다.”

 토종 농학자인 그에게 우리말과 우리글을 가꾸는 것은 조상 대대로 이어온 우리땅을 지키고 사랑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인 것이다. ‘우리말 편지’의 구절구절마다 소박한 농심이 묻어나고, 바른 우리말 사용에 소홀한 것에 대한 진심어린 반성이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포장내 위치별 지력의 변이가 상당하다’가 아니라, ‘논 안에서도 이곳저곳의 땅심이 다르다’라고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바꾼 이야기도 그중 한 대목일 것이다.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고 가꾸는 일이 전문가들만의 몫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의 원형을 애틋하게 돌아볼 줄 아는 마음을 갖는다면 누구나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성제훈의 우리말 편지>를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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