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는 잘 다녀오셨나요? 오늘은 여행사에 근무하는 후배가 해준 얘기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요점인 즉, 여행 상담하러 온 손님이 중국의 ‘해남도’에 관해 문의하더래요. 그래서 이 친구가 대뜸 “하이난 섬이요?”라고 반문했더니 그 고객은 “아니오, 해남도 말입니다. 해남도요.”라고 대꾸하더랍니다. 졸지에 하이난 섬[海南島(해남도)]과 해남도는 다른 장소가 되어버렸습니다.
외래어, 특히 중국어의 한글 표기 방식을 둘러싼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식 한자음으로 표기할 것인가, 아니면 중국 현지음으로 쓸 것인가를 놓고 말입니다. 이에 반해 외래어 표기법의 기준은 명료합니다.
인명은 1911년의 신해혁명을 기준으로 그전 시대의 과거인은 한자음으로 적고, 이후의 현대인은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현지음으로 적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함께 적도록 돼 있습니다. 중국 지명도 마찬가지로, 현재 쓰이지 않는 역사 지명에 한해 기존 한자음으로 표기토록 규정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중국의 지명이나 인명을 읽을 때, 한자를 우리 발음대로 읽지 않고 중국에서 발음하는 대로 읽도록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따라서 북경은 베이징, 서안-시안, 상해-상하이, 청도-칭다오, 항주-항저우, 소주-쉬저우, 곤명-쿤밍, 계림-구아린, 석림-스린, 모택동-마오쩌뚱, 등소평-덩샤오핑, 요녕-랴오닝, 흑룡강-헤이룽강, 길림-지린, 사천-쓰촨, 성도-청뚜, 천진-티엔진, 남경-난징, 청해-칭하이, 하북-허베이, 하남-허난 등으로 말이지요.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중국 영화배우 성룡(成龍)도 언제부턴가 모든 매체에서 ‘청룽’으로 호칭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청룽이 누구야?”라고 궁금해하다가 괄호 속 한자음을 보고서 그가 성룡 임을 알았던 기억이 나네요.
모 매체에서 [성룡과 청룽 중 어떤 이름이 더 친숙한가]에 대한 설문을 했는데, 국민 대다수는 ‘성룡’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요즘엔 주윤발은 저우룬파로, 이연걸을 리롄제로 바꾸어 표기되고 있더군요. 최근 등장한 여배우들의 경우, 장쯔이나 탕웨이처럼, 처음부터 현지음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해남도와 하이난처럼 같은 지명과 인물을 두고 혼동하는 이들도 꽤 많습니다. 심지어 어떤 중국영화 포스터에 남자 주인공은 주윤발과 유덕화로 표기하고, 여자 주인공은 '장쯔이'라고 써놓은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웃지 못할 일이 우리 주변에는 비일비재합니다.
국립국어원에서 명시한 외래어 표기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특히 [제 2절]에 우리가 궁금해하는 부분이 명시되어 있네요.
[제 1절]
표기 원칙
<제 1항>
외국의 인명, 지명의 표기는 제1장, 제2장, 제3장의 규정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2항>
제3장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언어권의 인명, 지명은 원지음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 Ankara 앙카라
▶ Gandhi 간디
<제3항>
원지음이 아닌 제3국의 발음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은 관용을 따른다.
▶ Hague 헤이그
▶ Caesar 시저
<제4항>
고유 명사의 번역명이 통용되는 경우 관용을 따른다.
▶ Pacific Ocean 태평양
▶ Black Sea 흑해
[제 2절]
동양의 인명, 지명 표기
<제1항>
중국 인명은 과거인과 현대인을 구분하여 과거인은 종전의 한자음대로 표기하고, 현대인은 원칙적으로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
<제2항>
중국의 역사 지명으로서 현재 쓰이지 않는 것은 우리 한자음대로 하고, 현재 지명과 동일한 것은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
<제3항>
일본의 인명과 지명은 과거와 현대의 구분 없이 일본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
<제4항>
중국 및 일본의 지명 가운데 한국 한자음으로 읽는 관용이 있는 것은 이를 허용한다.
東京 도쿄, 동경 京都 교토, 경도 上海 상하이, 상해
臺灣 타이완, 대만 黃河 황허, 황하
[제 3절]
바다, 섬, 강, 산 등의 표기 세칙
<제1항>
'해', '섬', '강', '산' 등이 외래어에 붙을 때에는 띄어 쓰고, 우리말에 붙을 때에는 붙여 쓴다.
▶ 카리브 해
▶ 북해
▶ 발리 섬
▶ 목요섬
<제2항>
바다는 '해(海)'로 통일한다.
<제3항>
우리 나라(4)를 제외하고 섬은 모두 '섬'으로 통일한다.
▶ 타이완 섬
▶ 코르시카 섬
▶ (우리 나라(5): 제주도, 울릉도)
<제4항>
한자 사용 지역(일본, 중국)의 지명이 하나의 한자로 되어 있을 경우, '강', '산', '호', '섬' 등은 겹쳐 적는다.
▶ 온타케 산(御岳)
▶ 주장 강(珠江)
▶ 도시마 섬(利島)
▶ 하야카와 강(早川)
▶ 위산 산(玉山)
<제5항>
지명이 산맥, 산, 강 등의 뜻이 들어 있는 것은 '산맥', '산', '강' 등을 겹쳐 적는다.
▶ Rio Grande 리오그란데 강
▶ Monte Rosa 몬테로사 산
▶ Mont Blanc 몽블랑 산
▶ Sierra Madre 시에라마드레 산맥
최근, 조선 중앙방송 등 북한의 공식매체에서 중국 인명과 지명을 현지음에 가깝게 표기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북한은 지금까지 중국 인명과 지명만은 우리식 한자 독음으로 표기하는 방식을 지켜왔습니다.
이 같은 변화가 언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다만,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독점 계약을 맺고 있는 연합뉴스 측에 따르면, 북한이 지난 2일 조선중앙방송의 ‘중국, 인민해방군 창건 84돌 기념’ 기사에서 “‘후진타오’ 동지를 총서기로…”라며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이름을 현지 발음으로 부르면서 표기법을 바꾼 것 같다고 보도했답니다. 이튿날인 3일 조선중앙통신과 평양방송 등 다른 매체들도 ‘후진타오’라는 발음과 표기를 사용했고요.
북한은 그간 일본 인명과 지명을 ‘수상 간 나오토’ ‘후쿠시마’ 등으로 일본어 현지음에 가깝게 표기했었습니다. 멕시코를 ‘메히꼬’라 표기하는 등 어떤 경우 한국보다 더 현지어 발음을 중시해 왔으며 유독 중국에 대해서만 우리식 발음을 고수해 왔다고 하네요.
중국어를 한국식 한자음으로 표기할 것이냐, 아니면 중국 현지음으로 표기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앞서 설명한 신해혁명을 기준으로 삼은 표기법을 반대하는 측은 한자음 표기 하나로 통일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이 주장을 우려하는 이들에 의하면, 그렇게 바꾸게 되면 그동안 정착돼 오던 중국어 표기에 커다란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제 이 현안은 ‘사대사상의 부활’과 ‘글로벌화’에 대한 시각으로까지 확대되어 양쪽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네요.
여기에, 중국어 한자음 표기 논란에서 벗어나, '외래어 표기법'이 아니라 '외국어 한글 표기법'으로 바꾸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어떻게 정리될지 두고 봐야 알겠지만, 확실한 건 이제는 ‘성룡’과 ‘청룽’이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검색 사이트에서도 두 이름을 번갈아 가면서 쳐도, 모두 같은 내용이 검색되고요. 아무튼, 우리도 어떤 하나의 방안을 확실히 정해서 그것이 정착되도록 해야겠지요. 익숙함에 다소 시간이 흐르더라도 말입니다.
제가 한자나 중국 쪽에 대해서는 지식이 짧습니다. 이 포스트에 부족한 점이 있거나, 더 추가할 사항이 있다면 댓글 올려주세요. 중국과 중국어에 해박하신 분들께서 지식을 나눠주신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자료 및 사진 출처]
국립국어원 / http://www.korean.go.kr/09_new/dic/rule/rule_foreign_0303.jsp
경향신문 / 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8071630321&code=910303
문화일보//www.munhwa.com/news/view.html?no=2011081101033037191004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1449299&docid=185126&dir_id=10010904
http://www.ukopia.com/ukoHollywood/?page_code=read&uid=139560&sid=35&sub=3-19
온한글 블로그기자단 3기 배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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