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영 ˙ book artist ˙ Y 디자인 실장 ㅎ ㅎ ㅎ |
1.이야기,-이야기들 | 2.연극(Spiel)-내지 | 3.의자(Die-Stuehle) | 4.낯선길 |
드로잉의 우리말이라 생각하여 스스로 만든 용어. | |
세상은 너로 채워져 있지만 그곳에 나를 넣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 |
생화보다 더 매력적이다. | |
터잡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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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미디어가 종이를 대체할 것을 목표로 생겨나고 있지만, 종이가 주는 질감과 안정성에 사람들은 여전히 책을 찾고 있다. 책의 묵직함과 휴대성 그리고 원하는 내용을 쉽게 찾을 수 있는 편리성을 다른 미디어로 대체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텍스트를 접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이다. 근래 들어 인터넷 웹 페이지 이용도가 높긴 하지만, 여전히 구식인 종이 위에 잉크를 찍어 만든 책이 인기다. 책의 역사는 인쇄술로 시작하여 현대의 수많은 출판물이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표지와 내지로 이뤄진 겉모습에 큰 변화는 없다.
책의 본래 사전적 의미는 ‘종이를 여러 장 묶어 맨 물건’이다. 그러던 책이 변신을 하고 있다. 텍스트가 전혀 없는 책, 철판으로 만들어진 책 등 정보 전달만을 위한 책이 아닌 그 자체로 살아 숨쉬는 책이 생겨나고 있다.책의 소유자는 누구도 아닌 책 자신이어야 한다는 북 디자이너, 페이지가 갖는 한계에 도전하는 Y디자인 정신영 실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온한글최근 하고 계신 프로젝트 중 가장 대표적인 프로젝트를 소개해주세요.
정신영‘김영태의 글씨’가 기억에 남습니다. 김영태 씨는 대학생 때 좋아했던 시인이었고, 최근에 뵙게 되어 함께 작업을 했습니다. 계속해서 대화하며 기획하면서 컨셉을 잡어 오랫동안 함께 했던 일이었습니다.
책에 대해 얘기를 하자면, 타이포그라피 북 혹은 드로잉 북이냐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내용에 서예의 정체성이 강해 서예 집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서예 집이 되는 그런 내용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유롭고 편한 드로잉 북’의 컨셉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책의 제목으로는 김영태씨는 ‘가슴에 달린 서랍’을 원했습니다. 부제를 서체, 서예의 느낌이 강해 ‘김영태의 글씨’라고 붙였습니다.
초판은 15권입니다. 소량판매를 기본으로 하고 추가로 주문이 있을 시에 더 찍을 예정입니다. 새로 출판되는 책에 시리얼 넘버를 넣어 차별화를 할 예정입니다. 소량 생산되다 보니 규격을 포기해가며 만들고 싶은 데로 만들었습니다. 포장부터 내지까지 모두 제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책을 제작하며 느낀 것으로, 우리나라에는 소량생산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소량으로 만드는 것은 무시를 당합니다. 종이를 사는 데도 큰 전지 단위로 팔기에 적은 양을 구매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인쇄, 제본 역시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너무 대량 생산에만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온한글박영률출판사 Y디자인에 계십니다. 그곳에서 현재 어떤 일을 하는지요? 그 외 하시는 일도 소개해주세요.
정신영Y 디자인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강의를 하다가 출퇴근을 하게 됐습니다. 디랙터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2003년 3월부터 강의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온한글그 동안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 기억에 남는 것은요?
정신영함부르크 유학시절 만든 책으로 쇠로 이뤄진 책이었습니다. 이것이 책이냐 아니냐는 얘기가 많지만, ‘움지이는 페이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을 붓고 텍스트 중 대문자, 소문자, 마침표, 문장부호를 잘라서 물 위에 띄우는 것으로 책이 완성됩니다. 입으로 불거나 손으로 젓고 바람이 불면 끝없이 다른 페이지가 만들어 집니다. 해독이 불가한 페이지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우연히 읽을 수 있는 단어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전시를 할 때 물을 담고 글자를 띄우다 보니 금속 틀 바닥이 부식되어 물 색상이 아름답게 나옵니다. 이 책에는 마지막과 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책을 본다는 것은 책과 독자가 대화를 하는 것으로 그 한계가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첫페이지부터 무한페이지가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대부분이 처음과 마지막 페이지가 있습니다. 이런 형식을 탈피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었습니다.
또 다른 책으로, 독일 유학시절에 ‘섬’이란 책을 만들었습니다. 함부르크에는 물길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도시가 마치 섬같이 느껴졌고, 그 느낌을 사진기에 담아 냈습니다. 사진과 시를 엮어서 책을 만들었습니다.약 50페이지 정도의 책이 나왔고, 듬성듬성 사진과 시가 들어간 트레이싱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여백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여백에는 첫 번째 섬, 두 번째 섬이라는 문구만 넣었습니다. 페이지 넘버를 대신한 것이었습니다.
여백의 의미는 이 책이 미완성이라는 겁니다. 제가 만들었지만, 제 소유가 아닙니다. 누군가 이 책을 손에 넣었을 때 그 사람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그 여백을 채울 때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온한글커피 필터를 이용한 책도 만들었어요.
정신영커피를 무척 좋아합니다. 유학 중에도 원두커피를 갈아서 필터에 내려서 많이 마셨습니다. 그렇게 얼룩지고 지져분해진 필터를 말려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책 이름은 ‘이야기, 이야기들’입니다. 텍스트로는 첫 페이지의 제목과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란 문구와 마지막 페이지의 ‘다시 한번 끓여야겠습니다.’만 넣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필터에 진 얼룩입니다. 그 얼룩이 스스로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놀랍도록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얼룩이 변해가고 색이 바래 곰팡이가 피면서 수시로 변합니다. 그래서 제목이 ‘이야기, 이야기들’입니다. 텍스트로 꾸며놔야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온한글독일에서 오랫동안 유학 생활을 하셨는데요. 어떤 공부를 했는지요?
정신영 학위명은 ‘출판 미디어’로 책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동안 여러 가지 책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한계를 느끼면 못 읽게도 만들고 색다른 형식으로도 만들었습니다. 제본의 경우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아 박물관 등을 돌며 스스로 익혔습니다.
본래 미술사를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갔고, 미술사 강의를 한 학기 들었지만, 디자인에 미련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함부르크의 디자인 학교에 입학하여 북디자인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온한글독일 유학 중, 2000년 Love Letter to Gutenberg라는 주제의 독일 주최 북아트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간단히 소개를 해주세요.
정신영 2000년 독일 마인츠 시에서 지난 천 년간의 인물로 구텐베르크를 선정했고, 그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했던 공모전이었습니다. 당시 교수님의 추천으로 만들어 작성했고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였기에 반응이 좋았습니다. 책을 만들 기회를 상금으로 제공해 주었습니다. 제가 직접 500권을 만들어 400권은 협회가 가지고 100권은 제가 갖는 형식으로 상품이 지급되었습니다.
온한글북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정신영 기본적으로 책을 읽는 것이 좋았습니다. 대학 시절 타이포그라피 수업 때 글자를 가지고 책을 만들었던 흥분을 잊지 못했습니다. 그 것을 계기로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결심했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매번 책을 만들 때 마다 매혹적인 매력에 취합니다. 끊을 수 없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온한글좋은 북 디자인이란 어떤 것일까요.
정신영 화장을 심하게 하지 않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공적인 안료가 너무 많이 사용되지 않은 책,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어도 아름답게 늙어가는 책, 아름답게 제본이 되어 있어도 광고판 같지 않은 책이 좋습니다. 과도한 화장과 치장이 들어간 책은 개인적으로 싫어 합니다. 빼도 될 내용이 들어간 책이 요즘에는 너무 많습니다.시간이 흘러 가면서 변해가는 책이 좋습니다. 시끄럽게 떠들지 않는 필요한 정보만 들어가 있는 단아한 책일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아릅답게 변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멋있어지는 겁니다.
온한글앞으로 꼭 하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요.
정신영 읽을 수 없는 책. 잉크를 사용하지 않은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읽을 수 없는 책을 만들면 그 텍스트의 내용은 책의 것이 됩니다. 하나의 텍스트를 가진 책이 아니라 열린 의미의 책이 되는 겁니다. 현재의 책은 사람이 상황을 설정하고 텍스트를 꾸며놓아 책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텍스트와 바탕에 차별을 두지 않고 최소화한 것, 느낄 수 있다거나 늘상 봐오던 흑백의 차별화가 아닌 다른 방식의 조용한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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