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가꾸는 수목원, 이라면 무엇을 하는 곳일까요? ^^ 사실 '디자인수목원'의 작업물 중에서 한글이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외국어에 비해 작다고 해요. 매우 다양한 언어로 관광홍보물을 작업하고 있는 '디자인수목원'의 김진옥 실장님께 수목원의 작업 이야기와 한글 홍보, 한글 디자인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디자인수목원은 무슨 뜻이며,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요?
디자인수목원은 1999년에 문을 연 디자인회사입니다. 뜻과 마음이 맞는 디자이너 둘, 카피라이터 한 명이 회사를 차리고 이름을 고민하다가 "일하는 사람 한 명, 한 명이 나무처럼 각각의 개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제멋대로 자라 어느새 숲을 이루는 회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라, 그러면 수목원이잖아?"해서 ‘디자인수목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현재 수목원 작업의 80% 정도는 한국관광공사,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시, 강원도, 경기도 등에서 제작하는 해외마케팅용 관광홍보물들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해당 기관마다 목적이나 대상 시장은 다르지만, 공통의 목적은 "우리의 관광지를 보다 효과적이고 매력적으로 홍보하는 것"이에요. 이처럼 수목원은 특히 ‘관광콘텐츠 전문 그래픽디자인 회사’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데요, 이러한 방식의 정의가 지금까지 수목원에서 해온 일들과 앞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일들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 봄에는 더 갤러리의 전시 <홍대전>에 초대를 받았었는데 여기서도 수목원의 정체성을 한 번 확인해볼 수 있었습니다.
- 여러 나라들의 문자를 접하는데, 디자이너가 그 언어를 알지 못 하여도 괜찮은가요?
디자이너가 언어를 알면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본인이 직접 읽고 이해하면서 작업하게 되면 아무래도 작업이 빠를 수밖에 없죠. 하지만 중요한 건 '언어를 알고 모르고'가 아니라 그 작업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느냐, 라고 생각합니다. 언어를 안다고 해서 작업을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수목원에서는 해외의 작업물이더라도 한글 원고를 가지고 작업을 시작합니다. 디자이너가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만약 텍스트가 애초에 외국어로 된 것 밖에 없다면(가끔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비용이 들더라도 한글로 번역을 해서 작업을 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작업은 기획부터 카피라이팅까지 수목원에서 하는 경우가 많아, 작업에 대해서 디자이너들이 다른 기획 과정을 담당하신 분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은데요, 이런 것도 좋은 결과물을 내는 데에 도움이 되겠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언어를 알고 모르고는 기술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해결이 가능한 문제인 거죠.
이렇게 결과물이 나왔을 때 가족들에게 우리가 만든 작업물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우리가 직접 그 언어를 다 알고 작업한 줄 알고 굉장히 놀라워해요. ^^
'디자인수목원'의 강원도 - 내 몸이 숨을 쉬는 곳
- 정보디자인이라는 분야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보는 사람의 시각적 동선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 정보디자인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어떤 것을 선택하여 보여줄 것이냐, 또 어떠한 방식으로 보여줄 것이냐,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고 정보디자인은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목원에서 하는 작업들은 정보디자인으로서의 매력도 갖고 있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모르는 정보를 최초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훨씬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남산 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어렵든 쉽든 상관없지만, 서울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일본 사람에게라면 문제가 정말 달라지죠. 디자인으로 간접적인 경험을 시작하는 거니까요. 이러한 작업물들이 궁극적으로 ‘사람의 몸을 움직’이게 합니다.
- 동선을 유도한다고 하셨는데, 사람들이 시각적으로 정보를 흡수하는 과정이 작업물 안에 있는 문장이나 단어에도 영향을 끼치나요?
대부분의 사람은 홍보물에서 그림을 먼저 봅니다. 특히 큰 그림부터 보는데요, 그 이미지를 바로 정보로 치환하는 것이 '관광홍보물'입니다. 즉, 큰 사진으로 들어간 관광지를 가장 좋은 관광지라는 ‘정보’로 받아들이는 거죠. 다른 홍보물이라면 그냥 '멋지다' 혹은 '후지다' 정도로 끝날 수 있는 이미지가 관광홍보물에서는 바로 '정보'가 되기 때문에 그 관계를 서로 잘 이용하지 않으면 엉망이 됩니다.
저희가 만드는 대부분의 관광홍보물은 특성상 감성 소구의 이미지성 카피라이팅보다는 정확히 동기부여가 되는 카피라이팅, “왜 그곳에 가야 하는가”에 대한 ‘정보’가 우선됩니다. 한 면의 디자인 안에서 시각적으로 눈에 보이는 문장이나 단어가 정보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카피라이팅 단계에서 전략적으로 하는 것은 물론이고 디자인할 때도 정확하게 의미 전달이 되도록 합니다. 아마도 내용에 따라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부분은 편집 디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정 단어를 키우거나 줄이거나 하는 문제도 정확하게 기획의도와 맞아 떨어져야 하니까요.
'디자인수목원'의 람사르총회용 대암산용늪 홍보물
- 한국을 다른 나라에 홍보할 때 대상국가에 따라서 어떤 식으로 디자인이 달라지나요?
대상 국가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 홍보할 목적이라면 한국은 굉장히 도시적이고 세련된 모습으로 디자인됩니다. 그런 모습이 중국인들이 "가보고 싶어하는" 한국의 모습이기 때문이죠. 반대로 유럽이나 미국 등 영미권 국가에 홍보를 할 때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먼저 보여줍니다. 그들에게 도시문화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굳이 한국까지 오지 않아도 싱가폴이나 홍콩, 일본에서 그러한 도시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거든요.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아주 상식적인 차이이고, 실제 작업에서는 훨씬 더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야 해요. 한국의 어떤 상품을 어필할 것인가와 관련되기 때문에 홍보물에 들어가는 작은 오브제 하나, 이야기의 모티프 하나까지도 전략적으로 기획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 한국어를 잘 하는 한국사람인데도 한글을 갖고 디자인할 때 새로 공부할 필요성이 있나요?
중국 한자는 굉장히 회화적입니다. 문자만으로도 디자인이 완성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같은 한자이기는 하지만 일본에서 사용하는 약자는 중국에 비해 부드럽고 여성적이라는 느낌을 받아요. 현지의 디자인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서 외국에 나가면 무조건 홍보물을 챙겨오는 습관이 있는데, 같은 한자를 쓰는데도 중국하고 일본의 홍보물은 딱 봐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전체적인 느낌이 달라요. 누가 보고,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서 같은 글자라도 전혀 다른 느낌을 줍니다.
말을 잘 알거나 하는 것과 디자인을 잘 하는 것은 별개라서, 공부는 늘 필요합니다. 디자인을 잘 하기 위해서는 한글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말 뒤에 숨은 뜻을 이해하고, 혹은 말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면서요. 그래서 디자이너가 한글에 대해서 배워야 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우리 문화에 대해서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 얼마나 다양한 문자를 보셨었나요? 어떤 문자가 기억에 남으세요?
아주 많이 보지는 않았어요. 아마 가장 다양한 문자를 보려면 삼성전자의 신제품 매뉴얼을 만들면 될 거예요. ^^ 제가 본 것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러시아어. 아무리 규칙을 찾아보려고 해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한 문자였어요. 도통 알아먹을 수 없는 문자였지만, 보기에는 너무 아름다워서 지금도 제일 멋진 문자, 하면 러시아어를 꼽아요.
'디자인수목원'의 문화체육관광부 -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99년도부터 문을 열었다면 햇수로 십 년이 넘어가는데요, 오랫동안 관광홍보물을 작업해오면서 같은 한글인데도 과거와 지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수목원이 생각하는 한글 디자인의 트렌드는 무엇인가요?
2008년 람사르총회가 열렸을 때, 원주지방환경청의 의뢰를 받아 총회 참석자들에게 나눠줄 홍보물을 제작했습니다. 국제적인 행사이다 보니 국문판과 영문판을 함께 작업해야 해서, 국영문 혼용판을 만들었습니다. 언어 혼용 홍보물은 제작 편의적인 방법이라서 수목원에서는 기피하는 방식이었는데, 그 작업물의 경우는 오직 해외 참석자들에게 ‘한글’을 보여주고 싶다는 목적에서 그렇게 제작을 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외국인들에게서 대단히 아름다운 홍보물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니까요.
오랫동안 관광홍보물 쪽에서 디자인을 하다 보니 확실히 국내외에서의 반응이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은 받습니다. 관광홍보물에서도 예전에는 해당 국가의 언어만 썼는데, 이제는 표지나 본문에서 한글과 함께 보여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제 조금씩 해외에서도 ‘한글’을 ‘한국의 것’으로 인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죠.
외국인들이 한글을 접할 기회는 사실 많지 않습니다. 중국의 한자는 워낙 잘 알려져 있고, 또 일본어의 경우도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의외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한글은 이제 첫 선을 보이는 단계라고 할 수 있죠. 한국의 국가적인 위상이 올라가면서, 또 우리나라 기업들이 해외에서 선전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문화에 호감을 갖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인구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마도 몇 년 안에 한글이 새로운 디자인의 모티브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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