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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새로운 시선

바뀐 새주소,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는?

우리나라도 주소의 기준을 지번에서 도로명과 건물번호로 변경하였습니다. 도로명 주소는 도로 이름과 건물 번호를 알면 도로에 설치된 표지판만 보고서도 누구나 주소를 찾아갈 수 있다고 하네요.

도로명 주소법에는 2012년 1월부터 새 주소만 사용하도록 하고 있으나 행안부는 2012년 총선과 대선 때 혼란이 생기는 것을 막고자 법 개정을 통해 2012년 이후에도 당분간은 기존 주소와 함께 사용토록 할 방침이랍니다.

따라서 10월 27부터 11월 30일까지 각 가구별 도로명주소의 예비 안내를 실시하고, 내년 7월까지는 최종 고시할 예정입니다. 고시 전에도 도로명 주소를 택배나 우편 등에 생활주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 등 증명서는 내년 하반기부터 신규ㆍ갱신분 부터 순차적으로 도로명 주소로 변경할 예정입니다.

부동산 관련 문서에 표시되는 기존의 토지 지번은 새 주소가 시행되더라도 계속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부동산 관련 계약서 등을 작성할 때는 부동산 표시란에는 종전과 같이 지번을 쓰고 당사자 주소는 도로명 주소를 써야 합니다.

지금껏 써온 주소 말고 새로운 주소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다소 어려운 표지판 읽는 법도 새로 익혀야 하니 말입니다. 공적인 증명서 외에 신용카드나 전화요금 고지서같이 개개인의 실생활을 위해 기업 등에 제공하는 주소도 일일이 다 수정해야 하고요.

정부는 “전 세계 OECD회원국 모두가 도로방식 주소체계 운영하고 있다”라고 하면서 “중국, 러시아, 북한 등 동북아 주변국도 모두 도로방식주소체계 운영 중”이라며 도로명 주소의 도입 배경에 대해 밝히고 있습니다.

그럼, 새로 바뀐 도로명 주소로 길을 찾으려면 어떻게 봐야 할까요? 도로명 주소는 도로를 기준으로 건물이 도로의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표시하는 방식으로 돼 있습니다. 도로는 폭에 따라 ‘대로(大路)’(40m 이상), ‘로(路)’(12∼40m), ‘길’(기타 도로) 등으로 구분되고, 큰길에서 분기된 작은 길은 큰길의 이름을 딴 하위 번호를 쓰면서 체계를 이룹니다.

도로 번호는 서→동, 남→북으로 진행되며 20m 간격으로 도로의 왼쪽은 홀수, 오른쪽은 짝수가 부여됩니다. 도로명 주소의 번호에 10을 곱하면 건물이 도로 시작점에서 떨어진 거리(m)를 짐작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서초구 반포대로 58번 건물은 반포대로가 시작한 지점에서 580m가량 떨어진 지점의 도로 우측에 있습니다. 또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30길 35번 건물은 서초대로에서 오른쪽으로 15번째로 분기된 작은 길을 찾아 그 길에서 350m 정도 들어가면 길 왼편에 있는 건물이 됩니다.

서초구 샘마루길 34-14번 건물은 서초구 헌릉로 인근 샘마루길 시작지점으로부터 340m 떨어진 곳에서 오른쪽으로 분기된 작은 길로 140m 들어가면 길 우측에 자리하고 있겠습니다.

도로 곳곳에 시작점과 분기점 등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고 도로 중간에도 위치를 알 수 있는 표식이 설치돼 국민은 기준이 되는 도로가 어디에 있는지 알면 표지판만 따라가 쉽게 길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도로명 주소의 확정 및 고시가 이뤄진 시점에서도 새주소에 대한 반발과 우려가 거셉니다. 행정안전부는 1997년부터 새 주소 사업을 추진해 올해까지 14년간 3692억이나 들였습니다. 하지만 새주소를 주먹구구식으로 정해 도로명 주소가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도로명 주소’의 전면 시행을 앞두고 전국 자치단체가 고시한 도로명이 천태만상입니다. 최근엔 종교계를 비롯하여 역사가 깃든 주소가 사라짐에 대한 반발도 거세지고 있네요. 우리 실생활과 함께해야 할 주소, 무엇이 우리를 불편하게 할까요? 몇 가지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우리 교회는 봉은사로에 있습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41-3번지엔 주찬양교회가 들어서 있다. 이 교회는 이제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63길 27’이란 도로명 주소를 법정 주소로 써야한다. 인근 은혜교회(봉은사로 68길 41), 서울이기는 교회(봉은사로 455)도 같은 처지다.

김운태 한국기독교 총연합회 총무는 “삼성동도 잘 알려진 명칭인데 굳이 봉은사로로 바꿔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길 이름을 사찰 명으로 하면 기독교는 곤란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2. 천년을 이어온 사찰 이름이 담긴 주소가 사라질 판.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있는 보문사(普門寺) 스님들은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1115년 창립된 이 절은 사찰 이름을 주소로 써왔지만 앞으로는 새 주소로 ‘지봉로 19길’을 사용해야 한다. 보문사 측은 성북구에 주소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보문사 도은 교무스님은 “주소를 되찾을 때 까지 1인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종교 색채가 강한 도로명을 놓고서는 지자체들이 엇갈린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강북구 수유동 ‘화계사로’를 ‘덕릉로’로, 앞서 언급ㅎ나 성북구 보문동 ‘보문사길’은 ‘지봉로’로 변경했다. 이처럼 불교식 도로명이 일반 도로명으로 바뀐 곳은 전국적으로 100여 곳에 달한다.

하지만 충북도는 2009년 고시된 종교적 도로명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보은 법주사로, 단양 구인사로 등 불교식 도로명 15곳, 음성 성당길 등 천주교식 도로명 3곳, 음성 향교길 등 유교식 도로명 3곳을 계속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충북도 관계자는 “종교적 논란을 불러올 도로명은 가급적 사용하지 말라는 게 정부 방침이지만 주민들이 원하면 쓸 수 있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밝혔다.

#3. 일제 강점기 때의 주소까지 등장?
인천시 중구 도원동 주민자치센터 앞길 새주소는 ‘도산(桃山)로’다. 이는 일제 강점기 때의 지명 모모야마(桃山) 정(町)을 되살린 것이다. 모모야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거주하던 성 이름이다. 인천의 향토사가 조우성씨는 “해방 직후 정리한 왜색 지명이 부활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4. 유서 깃든 마을 이름도 새주소 도입으로 사라져
서울 종로구 가회동은 ‘북촌로’ 등으로, 안국동은 ‘윤보선길’ 등으로 바뀌어 지도에서 없어진다. 양영채 우리글진흥원 사무청장은 “역사가 담긴 마을 이름 4만 개가 사라지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5. 외국어 남발
8월 11일 지자체에 따르면 인천 서구가 고시한 청라지구의 도로명 주소는 ‘크리스탈로’ ‘사파이어로’ ‘에메랄드로’ ‘루비로’ 등 외국어 일색이다. 청라지구 사업시행자가 만든 사업 존(zone)을 그대로 인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도로명 주소에 외국어를 써야 세련된 이미지를 풍겨 집값이 올라간다는 생각을 가진 주민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란 분석이 있다. 실제로 루비존의 한 도로명을 우리말로 했다가 집단민원에 밀려 뜻을 접어야만 했다. 송도지구도 ‘센트럴로’ ‘하모니로’ ‘벤처로’ 등 단지의 13개 도로 가운데 7개 도로가 외국어 명칭이다.

광주시 북구 첨단지구 엠코테크놀러지사 앞길은 처음 ‘천변로’에서 ‘엠코로’로 변경됐다. 광주 신안사거리∼임동오거리 구간은 일대 자동차 부품·정비업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미로’에서 ‘자동차로’로 바꿨다.

#6. 발음이 어려운 옛 지명을 사용
인천시 연수구의 ‘함박뫼로’ ‘먼우금로’ ‘미추홀로’와 남동구의 ‘매소홀로’ 등은 옛 지명을 되살린 것이지만 발음이 어려워 주민 인식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제주역사문화진흥원이 제주시에 제시한 ‘이형상 목사길’ ‘고조기로’ ‘김대건 해안도로’ ‘이기풍 목사길’ 등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정실동길은 ‘배비장로’, 동광로는 ‘오돌또기로’, 연삼로는 ‘설문대로’, 번영로는 ‘자청비로’로 바꿨다. 이들 인물 중 상당수는 역사학자나 알 수 있는 이름이다.


이 외에도 방향의 기준에 대한 애매함 때문에 새로운 혼란을 야기 한다는 의견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도로명 주소에 아파트 이름이 빠지는 사항을 두고 ‘아파트 이름=집값’이라는 등식 때문에 우리나라 대표적 부촌 내 고급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의 반발도 거세고요. 

도로명 주소가 틀렸거나 건의 사항이 있으면 구청 등에 통지하면 된다고 하네요. 주소 사용자 5분의 1 이상이 시장이나 군수, 구청장에게 도로명 변경을 신청할 수 있고, 지자체는 도로명주소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주소 사용자 2분의 1 이상의 동의를 거쳐 바꿀 수 있습니다.

이에,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6월까지 전국에서 접수된 새 주소 민원은 579건에 달한다고 하네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도로명주소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이의 신청 기간을 연장 하라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행정안전부는 도로명 주소에 대한 주민들의 문제 제기가 잇따르자 지난 6월 말까지였던 이의신청 기간을 연말까지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제아무리 ‘글로벌 스탠더드’를 표방한다 해도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으면 반발만 커지고, 세금 낭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도로명을 정하는 데 기본적인 규정이나 지침을 무시하면서 이해득실을 따지는 주민들의 의견이나, 공공기관 위주로 일방적인 의견이 너무 많이 반영되는 사안을 두고 우려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전국의 모든 민원을 해결할 수 없고, 고시 이후 3년간 확정된 주소는 변경할 수 없습니다.

새주소는 워낙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 조심스럽긴 합니다. 주소는 국민의 생활과 매우 밀접한 부분입니다. 따라서 반발과 민원이 거센 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새 도로명 주소가 앞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정착될지, 그리고 정부가 도입 방침에서 밝힌바 대로 실생활에 어떤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지 계속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옛 지명이나 역사적 의미를 담은 도로명을 조사해서 알려 드릴게요.

새로운 도로명 주소가 궁금한 분들은 도로명주소 안내시스템 http://www.juso.go.kr/openIndexPage.do
을 활용해 보시면 됩니다.

이번 주말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됩니다.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 ^^

 

[참고문헌 및 사진]
도로명주소안내시스템 http://www.juso.go.kr/openIndexPage.do
해럴드 경제 http://biz.heraldm.com/common/Detail.jsp?newsMLId=20101018000742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B%AF%BC%EA%B5%AD%EC%9D%98_%EC%A3%BC%EC%86%8C
중앙일보 / www.joins.com
서울신문 http://www.seoul.co.kr/ 2011년 8월 12일 자

 

온한글 블로그기자단 3기 배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