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글, 새로운 시선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미래를 말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매체의 변화, 다양화에도 불구하고 한글, 한글꼴, 한글 타이포그래피라고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매개체가 젊은이들에게 호기심의 대상, 연구의 가치, 매력의 요소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울과 같은 대학 한글 타이포그래피 연합모임의 활동과 성과에 비추어 볼 때, 한글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연구하고 발전시키려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매년 모든 학교가 연례행사로 치르는 졸업작품전에서는 한글 타이포그래피 작업을 찾아보는 것이 힘들다. 거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교육현장에서 느끼는 바를 통해 우리가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를 짚어보는 것으로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미래를 조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글자의 역할에 대한 그 시대의 요구와 기술이 융합하여 나타나는 표현이 타이포그래피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생각과 환경, 요구되는 역할을 접어둔 채 이야기될 수 없는 것이 디자인이고 타이포그래피이며, 한글 타이포그래피이다.한동안 해체적 타이포그래피, 모더니즘과 반 모더니즘, 키네틱
타이포그래피를 논했지만 지금은 감성, 감응이 시대의 이슈로 떠오르는 시점이니만큼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감성을 드러내는 부드러운 타이포그래피가 주류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 감성을 표현하는 방법을 서구 스타일의 모방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찾아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인데, 붓으로 쓴 글씨, 캘리그래피가 이 감성표현의 선두주자로 나섰는지도 모르겠다. 키네틱 타이포그래피가 디지털시대를 대변하는 표현방법이라면 이러한 기계적인 느낌의 반작용으로 일어난 캘리그래피는 이 시대 또 하나의 트렌드이다.
 캘리그래피의 특징은 글씨를 쓰는 도구와 재료에 의하여 생기는 즉흥적 형태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독립된 장르를 형성해 비례, 균형, 조화 등을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 하여 마음을 다스리는 수단으로, 감상의 대상으로 여겼던 전통서예와는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독창성이 우선시되는 캘리그래피와 타이포그래피의 관계는 어떠한가?
 글자의 형태에 맞는 장식과 자연스러운 우연적 효과 그리고 기계적 표현이 아닌 손으로 혹은 적당한 용구를 사용해서 독특한 개성을 담은 글자를 가리켜 캘리그래피라고 한다면, 단발성으로 끝나는 영화의 타이틀이나 책표지에 쓰인 경우 디지털화 되지 않은 서체이기에 캘리그래피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필묵서체와 같이 디지털화되어 상용되는 타입을 활용한 표현은 타이포그래피라 명할 수 있다. 즉 활자화된 글자를 이용하여 디자인하는 것이 타이포그래피라면 특정 도구를 이용하여 시간성과 순간성, 우연성을 느낄 수 있는 단발적인 글자 표현이 캘리그래피인 것이다.

 요즈음 캘리그래피가 많은 사랑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글자로서의 글자가 아니라 그림으로서의 글자를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선호도 때문이 아닐까?
 문자는 그 의미를 알 수 있거나 소리로 읽어지는 경우, 비로소 글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의미와 소리를 모두 알 수 있는 글자는 글자로 인식되고, 의미는 알 수 없으나 그 소리는 알 수 있는 글자는 형태적 성질이 강해지며, 의미와 소리를 모를 경우엔 형태적 성질이 최대화된다. 

 이러한 성질을 타이포그래피의 텍스트성과 이미지성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글자는 구체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시각형태지만, 글자라고 하는 형태와 그 글자형태가 담고 있는 정확한 의미 사이의 관계를 교육받기 이전까지는 단지 추상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글자는 형태만 있는 그림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와 친숙하지 못한 외국어가 덜 복잡하게 느껴지고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도 그림처럼 인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글자의 의미를 알고 그 형태와 친숙해진 후에는 더 이상 그림이 아니라 구체적인기호가 된다. 따라서 한글의 형태가 다른 나라 글자의 형태보다 아름답지 못하다는 생각은 한글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우리만의 느낌일 수 있다. 반면, 캘리그래피를 아름답게 느끼는 것은 글자의 텍스트성보다 이미지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동그라미와 사각형, 수평선, 수직선이 글자가 될까?’

 외국인들이 한글에 대해 가장 신기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한글은 단순하고 간결할 뿐 아니라 ‘반복’과 ‘대칭’, ‘회전’의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글자로, ‘ㅣ’자 계열 모음자에서 보이는 상·하의 대칭과 ‘ㅡ’자 계열의 모음자에서 보이는 좌·우의 대칭이 뚜렷하다. ‘ㄱ’과 ‘ㄴ’에서도 대칭과 회전의 원리를 찾아볼 수 있으며, ㄲ, ㅋ, ㄸ, ㅌ, ㅃ, ㅔ, ㅕ, ㅖ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가획의 원리로 새로운 형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또 다른 ‘반복의 원리’를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한글의 형태는 구조적이고 논리적이다.

 그 창제 기원부터 철저한 계획과 표현원리에 의해 이루어진 한글이지만, 그 발전과정에서는 소극적이라고 할 만큼 조심스럽게 전개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훈민정음 해례본’과 ‘석보상절’, ‘용비어천가’의 목판본에서 볼 수 있듯이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 몇 년간은 기하학적인 형태로 보일 정도로 가로와 세로획의 굵기가 일정했으며, ‘o’의 형태는 정원에 가깝고, ‘ㅅ’과 ‘ㅈ’은 대칭적인 형태를 하고 있는데 그 시대의 글씨를 쓰는 도구가 붓이었다는 점을 의심하게 할 정도로 색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 서구에서 로만체가 펜으로 쓴 글씨의 형태를 재현하고자 노력하여 얻어낸 형태였다는 점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데 1500년대부터 이러한 기하학적 형태가 사라지고, 오히려 지금의 명조체나 목판체와 비슷한 글자체로 변모한 이후 일제침략기까지 한글의 모습엔 점진적인 변화만 있었을 뿐이었다.
 해방 이후에야 새로운 인쇄기술로 인하여 형태의 전환기를 맞게 되는데, 붓글씨체를 기본으로 한 명조체와 이와 대비되는 형태인 고딕체가 최정호 선생에 의해 정리되고 다듬어진 것은 실로 한글 형태의 발전에 초석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태동한 시기도 이때부터였지만, 모던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정립시키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고, 그저 서구 디자인을 무분별하게 모방해 한글에 대입하는 혼돈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모든 결과에는 과정과 이유가 있기 마련인데 풀이과정도 모른 채 답만 베끼다 보니 그것이 오답이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1990년을 전후하여 매킨토시 컴퓨터가 보급되어 디자인의 양적 팽창이 시작되면서 과거의 인쇄방법은 전자출판방법으로 대체되었고, 이를 뒷받침하고 이끌어갈 타이포그래피 분야에도 일대 혼란이 일었다. 수작업으로 글자를 만들던 시대는 사라지고, 디지털 방식으로 모든 디자인을 해결하게 되었고, 이러한 기술적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폰트의 개발이 가속화되어 인쇄물의 표정은 다양해졌지만 아이덴티티가 결여된 글자꼴의 무분별한 적용과 활용은 많은 과제를 남기게 되었다.
 새로운 폰트가 나오면 우선 하드디스크에 저장해 놓고는 그저 풀다운 폰트메뉴에 가득 찬 것만 보아도 보험을 들어놓은 것 같은 위안을 느끼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언가 낙오된 것 같아 불안감을 느끼는 디자이너들의 형태감각과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능력은 항상 시험받게 되었고, 그만큼 점점 폰트와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공부가 요구되었다.


매체의 변화는 그동안 철칙으로 알았던 내용의 수정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글자에서의 가독성은 필요조건으로 여겨져 왔으나 그 또한 사용되는 목적에 따라 충분히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 될 수 있다. 어린이들은 어려서부터 TV, 영화, 비디오에 익숙해 있으며, 컴퓨터를 친구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상호작용적인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N세대는 일방적인 TV세대와는 다르게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웹을 선호한다.
 자기들만의 커뮤니케이션 용어와 기호가 있고, 아날로그적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공동영역을 구축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글자가 필요한 이유와 선호도는 매우 다르다.

 가독성이 높다는 것은 글자꼴의 변별성이 뛰어나 연속적인 본문을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고딕체의 경우 글자가 만드는 글줄의 상단과 하단이 큰 변화 없는 수평정렬이기 때문에 문자의 변별성이
낮다. 반면 명조체는 불규칙한 모양으로 글자의 변별요인이 풍부하여 문자의 인식속도가 높게 나타난다.
 그러나 명조체의 경우 화면상에서는 다른 중고딕체나 그래픽체에 비해 가독성이 떨어지는데, 지면에서 변별성의 요인이었던 명조체의 세리프가 화면에서는 오히려 모니터의 발광으로 인해 변별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표현 매체에 따라 목적을 만족시키는 형태의 조건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읽는 대상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어린이는 성인과 다르게 탈네모꼴의 글자를 화면상에서 훨씬 편하게 빨리 읽는다는 한 연구결과가 이를 말해 준다.


목적과 쓰임에 따라 적합한 제품이 필요하듯 글자 또한 마찬가지이다.

폰트 디자인은 제품 디자인, 타이포그래피는 시각디자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과장일까? 폰트 디자인의 특성 중 하나는 그 제품이 또 다른 제2의 상품으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하나의 완성된 디자인인 동시에 또 다른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흔쾌히 되어준다는 사실이다.

 최근 폰트 디자인의 이슈는 웹폰트의 등장이었다. 웹폰트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무상으로 폰트를 다운받아 사용해온 사람들에게 글자도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상품이라는 인식을 갖게 해주었고,홈피를 자신의 스타일로 만들 수 있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해주었으며, 폰트라고 하는 상품의 중심에 사용자가 자리하고 있다는 새로움과 더불어 글자의 역할을 한층 확장시켜 주었다.

 글자꼴을 만드는 폰트 디자인 분야는 고도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분야이다. 장인정신을 요구하는 예술과 디자인이 접목된 특수영역이기도 하다. 또한 창의적인 생각과 구조적, 논리적인 문제해결능력이 요구되는 영역이 글자꼴을 만드는 일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형태적인 해결을 최소한 2,350자에 일관성 있게 적용시켜야 하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자꼴을 만드는 일 이상으로 개발된 폰트를 효과적으로 전개시키고, 적용·활용할 수 있는 능력 또한 매우 중요하다. 같은 글자꼴 안에서도 굵기와 자폭 조절, 크기, 다른 이미지와의 관계, 글자꼴이 놓이는 위치 등에 따라 아주 다른 디자인이 만들어지는데, 이때 어느 글자꼴은 어디에 적합하다는 식의 수학적 공식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더 매력적인지도 모른다.
 디자이너들은 아주 섬세하고도 정교한 눈으로 글자꼴을 선택하고 적용시켜야 하며, 명확한 판단력과 정확한 안목을 위하여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 특히 타이포그래피의 역사에 대한 학습이 필수적이다. 효과적인 폰트를 디자인하고, 조화로운 폰트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글자가 가지고 있는 문화, 역사, 그리고 형태적인 면을 파악하는 공부가 선행되어야 한다. 왜 이 글자와 저 글자는 어울리지 않는지, 글자의 크기에 어떻게 변화를 주면 어울리지 않던 글자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지 등 많은 의문점들을 풀어줄 수 있는 해법을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표현대상을 기하학적이고 단순한 형태로 만드는 것을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고, 포스터는 간단명료한 형태와 3~5가지 색만을 사용하여 깔끔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배운 적도 있었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과 교육은 자유로운 생각과 표현의 폭을 제한시켰고, 목적성과 논리성을 결여시켰다. 그런데 이러한 잘못이 타이포그래피 교육에서도 범해지고 있다.
 디자인 실무분야 뿐 아니라 디자인 교육현장에서 이구동성으로 모든 디자인의 기본은 타이포그래피라며 그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기본이 여타 수업에서는 간과되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이다. 이에 대해 타이포그래피 수업에서 습득한 지식과 기술을 다른 수업에서는 적용, 응용하지 못하는 학생의 능력부족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이 생활화 되도록 지도해 주어야 하는 교육자의 무책임함이 더 크다. 기본은 모든 디자인 교육 프로그램에서 유지되어야 하고, 일관된 모습이어야 하는 데도 마치 ‘국어시간에만 맞춤법에 맞는 글을 쓰는 학생’을 키워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국어교사만의 잘못이라고 할 것인가?


폰트 디자인 분야와 타이포그래피를 분리, 교육할 필요가 있다.


 글자의 형태를 창조하는 일과 창조된 형태를 가지고 또 다른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일은 작곡을 하는 일과 작곡된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일처럼 매우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타이포그래피는 폰트 디자인을 포함하지만 폰트 디자인이 타이포그래피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에게 작곡가 겸 연주가를 요구해 왔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글자를 디자인하는 일과 글자로 디자인하는 일을 상하로 나눌 수는 없을 터인데도 대부분의 대학들이 레터링이나 문자 디자인 수업을 저학년 기초과정에 개설해 운영하는것은 종합적이고 전문적이어야 할 글자꼴 디자인 분야를 지나치게 기술습득 정도의 과정으로 끝나게 할 우려가 있다. 글자꼴 디자인 작업은 수학적 예술작업인데 말이다. 모든 형태적 미감이 습득되고 난 후에야 해결 가능한 영역임에도 기존의 폰트 몇 글자 베껴보고 흉내 내어 만들어 보는 수업에 지나지 않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글자를 보는 눈을 키우는 것은 그림 보는 눈을 키우는 것과 같다.

 어떤 폰트가 좋은 폰트인지 구별해내는 안목이 단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나 교육과 학습을 통해 디자이너가 꼭 갖추어야 할 요건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도 자신의 폰트를 만들고 이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자랑하는 시대이다 보니 미적으로 좋은 형태에 대한 기준까지 혼란스러운 때가 아닌가?
 Bembo와 같은 글자꼴에서 순수한 아름다움을 느낄 때까지의 시각경험이 디자인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지름길 임에도 0.1포인트의 다름을 인지하지 못한 채 새로운 형태, 튀는 형태를 좋은 형태로 잘못 생각하는 오류를 쉽게 범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교육의 중요성을 통감한다. 자간과 행간 조절 없이 컴퓨터에 세팅되어 있는 크기의 굴림체를 그대로 출력한 레포트를 제출하는 디자인 전공 학생들을 볼 때는 더욱 그러하다.
 기본을 알고 행할 때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미래 또한 탄탄해질 수 있다.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고 그 미디어가 새로운 기술을 갖출 때마다 자신의 생각이나 정보를 표현하는 방법은 날로 다양해지고 있는데, 글자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 활용의 폭은 과거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졌다.
 의미전달이나 가독성이라는 문제들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장 중요한 글자의 존재이유였고. 지금까지도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지고 있는 내용이긴 하지만, 여기에 덧붙여 과거의 '글자'라는 개념을 뛰어넘어 새로운 그래픽 도구로서 활용할 수 있는가치의 발견을 이 시대는 요구한다.
 따라서 디자인 영역의 무경계화는 물론 장르의 구분도 무의미해지고 있는 시대의 요구를 모두 담아낼 수 있는 사고의 확장과 수용의 유연성이 교육현장에도 필요하다. 여기까지가 타이포그래피이고, 여기부터는 다른 영역이라는 생각은 변화하는 이 시대에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와 시각을 전제할 때 한글꼴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에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들이 고민하고 토론하는 만큼 우리 한글의 디자인적인 기본이 제대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이 신명나게 에너지를 쏟는 만큼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내일이 밝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글을 도구로 다른 사람과 가장 적절하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방법의 모색’이 한글 타이포그래피라면, 우리 교육현장의 시행착오까지도 달게 겪으며 한글 사랑에 매진하고 있는 젊은 그들이야말로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가능성이며 미래일 것이다.


 온한글의 '대학 한글 타이포그래피 모임' 관련 포스트 더보기~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