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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한글이 만난 사람

[인터뷰] 노승관-한글의 구조적 미학 탐구하는 영상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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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란 거대한 캔버스다. 시간의 흐름을 갖는 움직이는 캔버스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디자이너 노승관 씨에게 도시란 창작의 원천이며 작품을 표현할 수 있는 무대이다. 오히려 무질서하게 범람하는 이미지들과 소음이 안락함과 재미를 준다. 그중에서도 특히 네온사인들의 발광 속에서 부유하는 한글에 묘한 매력을 느껴 실험적인 미디어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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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상한글’전에 출품한 작품의 제목이 ‘한글 패브릭’이었는데, 이는 한글이 씨실과 날실처럼 얽혀 만들어진다는 구조적인 특징을 암시하고자 함이었나?
 

‘한글 패브릭’은 그러한 거창한 의미를 암시하기보다 편안한 패브릭을 떠올리며 만든 작품이다. 언젠가 남산공원에 오르다가 내려다본 서울의 전경이 누워서 자고 싶은 패브릭으로 느껴졌던 경험을 담아낸 것이다.



     
                                                            <한글 패브릭-노승관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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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서울 전경이 그렇게까지 편안히 쉬고 싶은 패브릭으로 느껴졌다는 것을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서울의 어지러운 네온사인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편안할 뿐 아니라 가끔 밀레오레 같은 건물 아래서 네온사인을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아마도 도시에서 나고 자란 영향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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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자랐다고 해서 모두 그렇게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공기나 물의 오염만큼이나 시각물의 공해에 누구나 지쳐가고 있지 않은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길거리 노래방들의 조명이나 육교 위에서 바라본 도시의 스펙터클한 전경 등이 좋은 것을 어쩔 수 없다.
 나로서는 인공적인 것들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작가로서 질서를 부여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럴 때마다 “자연에 대한 무책임한 비유를 경계하기 위해 나는 한동안 도시에서 시를 썼다”는 고 기형도 시인의 말이 떠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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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인으로 사는 경험들을 새로운 질서로 재창조해낸다는 말인가?

무질서한 듯 보이는 네온사인과 간판들은 보는 사람의 관심이나 관점에 따라 시각적으로 가깝게 다가오고 점멸하는 내용이 달라질 것이라는 전제가 내 작업의 출발점이 된다. 또한 그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눈에 들어오고 나가고를 반복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변화를 상징화하기 위해 일정한 움직임을 갖는 인공적인 프로그램을 부여하는 것이다.



본질적인 영상언어와 움직임의 심리학적 해석에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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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글자들이 쉬지 않고 움직이며 읽혔다가 안 읽혔다가 하는 것이 그렇게 깊은 뜻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

개인적으로 움직임이 들어간 것에 관심이 많다. 애니메이션 작업에서도 스토리텔링 보다 움직임의 현상 자체에 집중하고 그 움직임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주목한다. 지각심리학의 ‘가현운동(apparent motion)’ 의 현상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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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것이 작품에 많은 영향을 줄 것 같다.
 

원래는 미술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고 1때 색약판정을 받아 그 꿈이 좌절되면서 미술이라는 학문과 가장 비슷한 심리학과를 선택하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지금의 작업들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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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심리학이 다른 학문들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비롯되며 작가의 인지과정을 통해 자연이 재해석되고 재조립된다는 측면에서 미술은 심리학과 닮은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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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미국에서는 심리학을 계속하지 않고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는데,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나?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특히 게슈탈트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때가 마침 매킨토시 시대가 시작되던 시점이었다. 당시 ‘맥다모’라는 동호회에 참여해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맥 페인트나 초창기 하이퍼 카드 등을 가지고 놀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미국 유학할 준비를 하는 친구를 돕다가 덩달아 시각적인 인지현상 과정을 담은 애니메이션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지원해봤는데 합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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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도 여러 학교를 옮겨 다니며 공부했는데 어떤 이유에서였나?
 

처음 들어간 SVA(School of Visual Arts)에서 1년 정도 커머셜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다 보니 좀 더 본질적인 영상언어를 공부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로드아일랜드 스쿨오브 디자인(RISD)으로 옮겨 필름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며 타임 아트(Time Art)에 대한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대학원을 캘아츠(CalArts)로 선택한 것은 RISD의 지도교수를 가르치셨던 실험애니메이션계의 큰 스승 Jules Engle 교수께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으로, 덕분에 시각예술 뿐 아니라 연극이나 무용 등 종합예술, 미디어 아트 등을 모두 경험해볼 수 있었다.

 

한글은 인물의 성격을 가진 캐릭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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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미디어에 대한 수업과 경험들에 한글을 등장시킨 것은 무빙타이포그래피를 연구하기 위함인가?

엄밀하게 무빙타이포그래피 개념이라기보다 애니메이션적 접근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한글이라는 캐릭터를 문자 개념의 캐릭터가 아닌 인물의 성격을 가진 캐릭터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한글은 무척 재미있는 소재가 된다. 형태적 구성적으로 재미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모아쓰기 등과 같은 체계가 있어서 성격이 있는 움직임의 주체로 작업할 수 있게 한다. 

 한 예로 ‘ㅇ의 여행’이라는 작품을 보면, 수직과 수평구조의 자모음들과는 다른 형태를 가진 ‘ㅇ’가 가출하거나 귀가하는 상황에 따라 글이 읽히기도 하고 안 읽히기도 한다. 여기서 ‘ㅇ’은 마치 미운 오리새끼 같은 역할을 하는 배우나 무용수처럼 보인다. 즉, 글자들의 움직임으로 하나의 무대를 연출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ㅇ의 여행’-노승관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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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의 글자들이 쉽게 읽혀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어떻게 해야 예쁘게 혹은 잘 읽혀질 것인가?’보다는 사람은 어디서든 의미나 재미를 찾고 혹은 자기 앞의 대상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심리가 있다는 측면에 더 주목하고 있다. 내 작품은 그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끌어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저마다 독자적인 움직임의 규칙을 가진 자모들이 다른 자모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것을 보는 동안 관객은 예상치 못한 글자와 단어를 발견하는 재미에 빠져들게 된다. 자모들이 움직이다가 충돌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수직적인 형태의 글꼴을 수평적으로 움직이도록 재구성하거나, 전각에서처럼 각 글자들의 스페이스에 포지티브와 네거티브로 변화를 주는 것도 재미있다. 이러한 장치와 현상들이 도시의 이미지들과 시간의 느낌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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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계층적인 구조가 미디어 작업을 가능케 하는 양질의 성분이라고 말할 수 있나? 

형태적 구성적으로 재미있는 구조를 가진 한글의 특수성이 움직임 자체를 연구하는 내 작업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한글의 무빙타이포그래피 작업에서는 우선 글꼴을 만들어 놓고 움직임을 부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 추가되는 움직임으로 인해 원래 글자꼴의 조형미가 파괴되는 경우가 많다.
 애프터이펙츠 같은 소프트웨어 들을 이용하여 무빙타이포그래피 작업을 할 때도 고민이 필요하다. 이들 소프트웨어의 기능들 중 대부분은 로만알파벳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면서 한글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한글은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뭘 줄 수 있나?’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각각의 캐릭터는 각자에게 맞는 연기와 구성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좋은 작품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터랙션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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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 경계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피지컬한 참여에 의한 인터랙션보다는 관람객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인터랙션을 지향하고자 한다. 관람객들의 참여 유도에만 신경 쓰다 보면 더 중요한 ‘감상’과 ‘체험’을 놓칠 수 있다. 훌륭한 회화작품을 감상할 때 머리 속에서 엄청난 인터랙션이 일어난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가령, 세잔의 정물화를 볼 때 우리는 움직이지 않는 그림 속에서도 구도, 형태, 색 등에 대해 많은 수수께끼와 해답을 발견할 수 있고, 그 질문과 대답이 많아질수록 좋은 감상을 경험하게 된다. 정지된 화면이 아닌 움직이는 화면을 쓰고 있는 지금에도 ‘감동’이라는 전통적인 미학이 밑받침되어야만 작품의 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예전에 비하면 인프라가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미디어 작업을 하는 데에는 작품을 실연하기 위한 도구나 디스플레이 방법 등에서 많은 비용이 드는데, 그 또한 절반은 작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주어진 환경에 맞는 컨텐츠를 담기 위해 고민하다 보면 작품의 특성상 쉽게 팔고 사기 어려운 미디어 작품을 놓고 ‘해프닝이냐 비즈니스냐’ 하는 논란을 벌이는 일도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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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늘 한글을 소재로 한 미디어 작업을 해나갈 계획인가?

사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국내에서는 내가 꿈꾸는 애니메이터로서 살기 어려운 것 같아 한동안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만 열중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돌아가신 Jules Engle 선생의 장례식에 다녀온 이후로 어디서라도 작업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 한글작업이었다. 그 결과 2년여 만에 나름대로 인정도 받게 되었지만 하면 할수록 새로운 구상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것은 움직이는 캔버스 위여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움직임은 보다 직접적인 호소력을 갖는 세계 공통어라고 말하고 싶다. 시간의 흐름을 동반하며 작품을 살아있게 한다. 그러한 무대에 한글이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계속 연기하게 할 수 있다면 연출가로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