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BLOG main image

온한글 전체보기 (655)
한글, 새로운 시선 (164)
온한글이 만난 사람 (52)
한글 행사와 모임 (54)
한글이 있는 작품 (64)
폰트 (41)
캘리그래피와 손글씨 (13)
트렌드와 마케팅 (46)
역사 속 한글 (19)
세계 속 한글 (40)
온한글 책꽂이 (44)
한글 관련 자료실 (27)
무료다운로드 (15)
단신 (74)
douglas pitassi
douglas pitassi
Clash of Clans Hack
Clash of Clans Hack
Related Web Page
Related Web Page
kitchen table
kitchen table
http://healthdrugpdf.com
http://healthdrugpdf.com
http://www.161997up.com
http://www.161997up.com
CT
CT
http://pharmacyreviewer2014.com
http://pharmacyreviewer2014.com
UT
UT
Laura Glading APFA
Laura Glading APFA
1,354,507 Visitors up to today!
Today 1 hit, Yesterday 56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훈민정음'에 해당되는 글 23건
2011. 11. 9. 15:57

SBS 수목드라마 뿌리깊은나무



첫방송부터 큰 화제를 낳으며 지난주엔 시청률 20%를 돌파한 SBS 수목드라마 <뿌리깊은나무>.
송중기, 신세경 등 신세대 스타의 출연과 한석규의 드라마복귀 등으로도 큰 화제를 불러모았던 드라마.
세종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이 드라마 속에서는,
한 인간으로서의 세종대왕과 우리의 '한글'을 만나볼 수가 있었다.
<뿌리깊은나무> 제작진이 말하는 기획의도
가. 한글을 창제한 왕! 세종의 이야기다.
나. 창제된 한글을 처음으로 접하게되는 백성의 대표! 채윤의 이야기다.
다. 이 드라마는 또한 사랑이야기다.
라.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이며 사대부의 나라이며 정도전의 나라다.
마. 조선사극으로는 처음으로 반촌(泮村)을 주요무대로 설정한다.


뛰어났지만 고독했던 왕, 세종
우리는 흔히 어떤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른 사람을 '왕'이라고 칭하기도 하고, 자신의 고집이 강한 사람에게도 '왕'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왕'의 이미지가 그렇다는 것이다. 가장 높은 지위에 있으며, 어떤 분야든 능통하고,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흔히 우리는 그것을 '왕'의 이미지로 떠올리곤 한다. 

왕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살았을까? 오히려 그누구보다 억압받고, 사생활 따윈 없는 고달픈 삶을 살았던 이가 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기존의 사극에 등장하던 임금들은 위엄있는 권위자의 모습으로만 비춰졌다. 그러나 <뿌리깊은나무> 속 세종대왕은 그동안 우리가 보아왔던 임금과는 다른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다. <뿌리깊은나무> 속 세종대왕이 위엄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그도 우리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여실없이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뿌리깊은나무> 4회에 등장한 세종대왕(한석규)은 '지랄, 젠장, 우라질'이라는 일명 욕 3종세트를 거침없이 쏟아내며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세종은 하례 시간이 됐다는 궁녀의 말에 "하례는 지랄"이라고 첫 말을 내뱉었다. 세종은 "대체 왕은 뭔 놈의 의식이 많은지"라며 "세자에게 위임했거늘 뭘 자꾸 하라는건지. 젠장"이라고 말을 이었다.

세종은 귀찮다는 표현을 거침없이 하면서 "우라질"이라는 말도 했다. 궁녀에게 "우라질이 맞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세종은 "말 가려서 쓴 것이다"며 "얼마나 내 정서를 잘 표현하느냐. 궁궐에는 이런 말이 없다"고 중얼거렸다.



[사진=뿌리깊은나무 방송화면 캡쳐]

[사진=SBS] 글자방



<뿌리깊은나무>는 지식충족 드라마?
이 드라마에서는 한글창제를 위해 ‘비바사론’, ‘|口亡己(곤구망기)’ , ‘君那彌欲(군나미욕), ‘팔사파어 음란서적’와 같은 단어들이 등장하면서 '지식충족 드라마'라는 애칭도 얻었다. 지난 방송에서는 세종대왕의 아지트이자 이 글자들의 비밀을 간직한 글자방이 공개되어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글의 창제과정에 대해서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흥미요소를 잘 끌어내고 있는 SBS 드라마 <뿌리깊은나무>. 앞으로도 흥미진진하게 그려질 한글창제 이야기들이 주목된다.



※SBS 수목극 뿌리깊은나무 공식홈페이지 http://tv.sbs.co.kr/root/index.html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1기 이세진

ⓒ온한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1. 10. 14. 09:20
지난 10월 9일은 한글날이었습니다. 한글이 표현할 수 있는 글자수는 몇가지 일까요?

[사진=seoulbysubway.wordpress.com] 한글



한글을 표현할 수 있는 글자 수는 몇 가지?
한글은 초성(19자), 중성(21자), 종성(28자)를 이용해서 표현하게 되는데요. 한글이 표현할 수 있는 글자의 수는 무려 총 11,172자라고 합니다. 

한글은 초성(자음)+중성(모음)의 조합과, 조성(자음)+중성(모음)+종성(받침/자음)의 조합이 있습니다. 
초성 자음 19개, 중성 모음 21개, 종성 받침 자음 27개!
 
자음: ㄱ ㄲ ㄴ ㄷ ㄸ ㄹ ㅁ ㅂ ㅃ ㅅ ㅆ ㅇ ㅈ ㅉ ㅊ ㅋ ㅌ ㅍ ㅎ
모음: ㅐ ㅑ ㅒ ㅓ ㅔ ㅕ ㅖ ㅗ ㅘ ㅙ ㅚ ㅛ ㅜ ㅝ ㅞ ㅟ ㅠ ㅡ ㅢ ㅣ
받침: ㄱ ㄲ ㄳ ㄴ ㄵ ㄶ ㄷ ㄹ ㄺ ㄻ ㄼ ㄽ ㄾ ㄿ ㅀ ㅁ ㅂ ㅄ ㅅ ㅆ ㅇ ㅈ ㅊ ㅋ ㅌ ㅍ ㅎ

이 조합을 계산해보면 무려 11,172자라는 어마어마한 글자들을 탄생시키게 됩니다. 정말 방대한 규모네요.

[사진=새전북신문] 서예비엔날레 한글 11,172자전


실제로 10월 한달간 전북에서 펼쳐지고있는 제8회 세계서예비엔날레에서는 '한글 11,172字전’이 전시되고 있어 눈길을 끄는데요. '한글 11,172字전’은 784명의 작가들이 1인당 14-15자씩 나눠 쓴 총 길이 약 30m의 대형 작품입니다. 비엔날레 조직위는 한글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고 대외적으로는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광화문광장 옆 세종로공원에 시민들이 한글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한글글자마당'이 조성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한글글자마당은 시민들에게 휴식을 제공함과 동시에 한글의 과학성과 사용 편의성을 시민들과 외국인에게 알리기 위한 것으로서, 한글의 초성(19자), 중성(21자) 종성(28자)로 조합 가능한 11,172자를 새겨 넣은 사각형의 돌들을 배치하여 공간을 조성한다고 합니다.


다음은 한글이 표현할 수 있는 글자 11,172자입니다.

가 각 갂 갃 간 갅 갆 갇 갈 갉 갊 갋 갌 갍 갎 갏 감 갑 값 갓 갔 강 갖 갗 갘 같 갚 갛 개 객 갞 갟 갠 갡 갢 갣 갤 갥 갦 갧 갨 갩 갪 갫 갬 갭 갮 갯 갰 갱 갲 갳 갴 갵 갶 갷 갸 갹 갺 갻 갼 갽 갾 갿 걀 걁 걂 걃 걄 걅 걆 걇 걈 걉 걊 걋 걌 걍 걎 걏 걐 걑 걒 걓 걔 걕 걖 걗 걘 걙 걚 걛 걜 걝 걞 걟 걠 걡 걢 걣 걤 걥 걦 걧 걨 걩 걪 걫 걬 걭 걮 걯 거 걱 걲 걳 건 걵 걶 걷 걸 걹 걺 걻 걼 걽 걾 걿 검 겁 겂 것 겄 겅 겆 겇 겈 겉 겊 겋 게 겍 겎 겏 겐 겑 겒 겓 겔 겕 겖 겗 겘 겙 겚 겛 겜 겝 겞 겟 겠 겡 겢 겣 겤 겥 겦 겧 겨 격 겪 겫 견 겭 겮 겯 결 겱 겲 겳 겴 겵 겶 겷 겸 겹 겺 겻 겼 경 겾 겿 곀 곁 곂 곃 계 곅 곆 곇 곈 곉 곊 곋 곌 곍 곎 곏 곐 곑 곒 곓 곔 곕 곖 곗 곘 곙 곚 곛 곜 곝 곞 곟 고 곡 곢 곣 곤 곥 곦 곧 골 곩 곪 곫 곬 곭 곮 곯 곰 곱 곲 곳 곴 공 곶 곷 곸 곹 곺 곻 과 곽 곾 곿 관 괁 괂 괃 괄 괅 괆 괇 괈 괉 괊 괋 괌 괍 괎 괏 괐 광 괒 괓 괔 괕 괖 괗 괘 괙 괚 괛 괜 괝 괞 괟 괠 괡 괢 괣 괤 괥 괦 괧 괨 괩 괪 괫 괬 괭 괮 괯 괰 괱 괲 괳 괴 괵 괶 괷 괸 괹 괺 괻 괼 괽 괾 괿 굀 굁 굂 굃 굄 굅 굆 굇 굈 굉 굊 굋 굌 굍 굎 굏 교 굑 굒 굓 굔 굕 굖 굗 굘 굙 굚 굛 굜 굝 굞 굟 굠 굡 굢 굣 굤 굥 굦 굧 굨 굩 굪 굫 구 국 굮 굯 군 굱 굲 굳 굴 굵 굶 굷 굸 굹 굺 굻 굼 굽 굾 굿 궀 궁 궂 궃 궄 궅 궆 궇 궈 궉 궊 궋 권 궍 궎 궏 궐 궑 궒 궓 궔 궕 궖 궗 궘 궙 궚 궛 궜 궝 궞 궟 궠 궡 궢 궣 궤 궥 궦 궧 궨 궩 궪 궫 궬 궭 궮 궯 궰 궱 궲 궳 궴 궵 궶 궷 궸 궹 궺 궻 궼 궽 궾 궿 귀 귁 귂 귃 귄 귅 귆 귇 귈 귉 귊 귋 귌 귍 귎 귏 귐 귑 귒 귓 귔 귕 귖 귗 귘 귙 귚 귛 규 귝 귞 귟 균 귡 귢 귣 귤 귥 귦 귧 귨 귩 귪 귫 귬 귭 귮 귯 귰 귱 귲 귳 귴 귵 귶 귷 그 극 귺 귻 근 귽 귾 귿 글 긁 긂 긃 긄 긅 긆 긇 금 급 긊 긋 긌 긍 긎 긏 긐 긑 긒 긓 긔 긕 긖 긗 긘 긙 긚 긛 긜 긝 긞 긟 긠 긡 긢 긣 긤 긥 긦 긧 긨 긩 긪 긫 긬 긭 긮 긯 기 긱 긲 긳 긴 긵 긶 긷 길 긹 긺 긻 긼 긽 긾 긿 김 깁 깂 깃 깄 깅 깆 깇 깈 깉 깊 깋 까 깍 깎 깏 깐 깑 깒 깓 깔 깕 깖 깗 깘 깙 깚 깛 깜 깝 깞 깟 깠 깡 깢 깣 깤 깥 깦 깧 깨 깩 깪 깫 깬 깭 깮 깯 깰 깱 깲 깳 깴 깵 깶 깷 깸 깹 깺 깻 깼 깽 깾 깿 꺀 꺁 꺂 꺃 꺄 꺅 꺆 꺇 꺈 꺉 꺊 꺋 꺌 꺍 꺎 꺏 꺐 꺑 꺒 꺓 꺔 꺕 꺖 꺗 꺘 꺙 꺚 꺛 꺜 꺝 꺞 꺟 꺠 꺡 꺢 꺣 꺤 꺥 꺦 꺧 꺨 꺩 꺪 꺫 꺬 꺭 꺮 꺯 꺰 꺱 꺲 꺳 꺴 꺵 꺶 꺷 꺸 꺹 꺺 꺻 꺼 꺽 꺾 꺿 껀 껁 껂 껃 껄 껅 껆 껇 껈 껉 껊 껋 껌 껍 껎 껏 껐 껑 껒 껓 껔 껕 껖 껗 께 껙 껚 껛 껜 껝 껞 껟 껠 껡 껢 껣 껤 껥 껦 껧 껨 껩 껪 껫 껬 껭 껮 껯 껰 껱 껲 껳 껴 껵 껶 껷 껸 껹 껺 껻 껼 껽 껾 껿 꼀 꼁 꼂 꼃 꼄 꼅 꼆 꼇 꼈 꼉 꼊 꼋 꼌 꼍 꼎 꼏 꼐 꼑 꼒 꼓 꼔 꼕 꼖 꼗 꼘 꼙 꼚 꼛 꼜 꼝 꼞 꼟 꼠 꼡 꼢 꼣 꼤 꼥 꼦 꼧 꼨 꼩 꼪 꼫 꼬 꼭 꼮 꼯 꼰 꼱 꼲 꼳 꼴 꼵 꼶 꼷 꼸 꼹 꼺 꼻 꼼 꼽 꼾 꼿 꽀 꽁 꽂 꽃 꽄 꽅 꽆 꽇 꽈 꽉 꽊 꽋 꽌 꽍 꽎 꽏 꽐 꽑 꽒 꽓 꽔 꽕 꽖 꽗 꽘 꽙 꽚 꽛 꽜 꽝 꽞 꽟 꽠 꽡 꽢 꽣 꽤 꽥 꽦 꽧 꽨 꽩 꽪 꽫 꽬 꽭 꽮 꽯 꽰 꽱 꽲 꽳 꽴 꽵 꽶 꽷 꽸 꽹 꽺 꽻 꽼 꽽 꽾 꽿 꾀 꾁 꾂 꾃 꾄 꾅 꾆 꾇 꾈 꾉 꾊 꾋 꾌 꾍 꾎 꾏 꾐 꾑 꾒 꾓 꾔 꾕 꾖 꾗 꾘 꾙 꾚 꾛 꾜 꾝 꾞 꾟 꾠 꾡 꾢 꾣 꾤 꾥 꾦 꾧 꾨 꾩 꾪 꾫 꾬 꾭 꾮 꾯 꾰 꾱 꾲 꾳 꾴 꾵 꾶 꾷 꾸 꾹 꾺 꾻 꾼 꾽 꾾 꾿 꿀 꿁 꿂 꿃 꿄 꿅 꿆 꿇 꿈 꿉 꿊 꿋 꿌 꿍 꿎 꿏 꿐 꿑 꿒 꿓 꿔 꿕 꿖 꿗 꿘 꿙 꿚 꿛 꿜 꿝 꿞 꿟 꿠 꿡 꿢 꿣 꿤 꿥 꿦 꿧 꿨 꿩 꿪 꿫 꿬 꿭 꿮 꿯 꿰 꿱 꿲 꿳 꿴 꿵 꿶 꿷 꿸 꿹 꿺 꿻 꿼 꿽 꿾 꿿 뀀 뀁 뀂 뀃 뀄 뀅 뀆 뀇 뀈 뀉 뀊 뀋 뀌 뀍 뀎 뀏 뀐 뀑 뀒 뀓 뀔 뀕 뀖 뀗 뀘 뀙 뀚 뀛 뀜 뀝 뀞 뀟 뀠 뀡 뀢 뀣 뀤 뀥 뀦 뀧 뀨 뀩 뀪 뀫 뀬 뀭 뀮 뀯 뀰 뀱 뀲 뀳 뀴 뀵 뀶 뀷 뀸 뀹 뀺 뀻 뀼 뀽 뀾 뀿 끀 끁 끂 끃 끄 끅 끆 끇 끈 끉 끊 끋 끌 끍 끎 끏 끐 끑 끒 끓 끔 끕 끖 끗 끘 끙 끚 끛 끜 끝 끞 끟 끠 끡 끢 끣 끤 끥 끦 끧 끨 끩 끪 끫 끬 끭 끮 끯 끰 끱 끲 끳 끴 끵 끶 끷 끸 끹 끺 끻 끼 끽 끾 끿 낀 낁 낂 낃 낄 낅 낆 낇 낈 낉 낊 낋 낌 낍 낎 낏 낐 낑 낒 낓 낔 낕 낖 낗 나 낙 낚 낛 난 낝 낞 낟 날 낡 낢 낣 낤 낥 낦 낧 남 납 낪 낫 났 낭 낮 낯 낰 낱 낲 낳 내 낵 낶 낷 낸 낹 낺 낻 낼 낽 낾 낿 냀 냁 냂 냃 냄 냅 냆 냇 냈 냉 냊 냋 냌 냍 냎 냏 냐 냑 냒 냓 냔 냕 냖 냗 냘 냙 냚 냛 냜 냝 냞 냟 냠 냡 냢 냣 냤 냥 냦 냧 냨 냩 냪 냫 냬 냭 냮 냯 냰 냱 냲 냳 냴 냵 냶 냷 냸 냹 냺 냻 냼 냽 냾 냿 넀 넁 넂 넃 넄 넅 넆 넇 너 넉 넊 넋 넌 넍 넎 넏 널 넑 넒 넓 넔 넕 넖 넗 넘 넙 넚 넛 넜 넝 넞 넟 넠 넡 넢 넣 네 넥 넦 넧 넨 넩 넪 넫 넬 넭 넮 넯 넰 넱 넲 넳 넴 넵 넶 넷 넸 넹 넺 넻 넼 넽 넾 넿 녀 녁 녂 녃 년 녅 녆 녇 녈 녉 녊 녋 녌 녍 녎 녏 념 녑 녒 녓 녔 녕 녖 녗 녘 녙 녚 녛 녜 녝 녞 녟 녠 녡 녢 녣 녤 녥 녦 녧 녨 녩 녪 녫 녬 녭 녮 녯 녰 녱 녲 녳 녴 녵 녶 녷 노 녹 녺 녻 논 녽 녾 녿 놀 놁 놂 놃 놄 놅 놆 놇 놈 놉 놊 놋 놌 농 놎 놏 놐 놑 높 놓 놔 놕 놖 놗 놘 놙 놚 놛 놜 놝 놞 놟 놠 놡 놢 놣 놤 놥 놦 놧 놨 놩 놪 놫 놬 놭 놮 놯 놰 놱 놲 놳 놴 놵 놶 놷 놸 놹 놺 놻 놼 놽 놾 놿 뇀 뇁 뇂 뇃 뇄 뇅 뇆 뇇 뇈 뇉 뇊 뇋 뇌 뇍 뇎 뇏 뇐 뇑 뇒 뇓 뇔 뇕 뇖 뇗 뇘 뇙 뇚 뇛 뇜 뇝 뇞 뇟 뇠 뇡 뇢 뇣 뇤 뇥 뇦 뇧 뇨 뇩 뇪 뇫 뇬 뇭 뇮 뇯 뇰 뇱 뇲 뇳 뇴 뇵 뇶 뇷 뇸 뇹 뇺 뇻 뇼 뇽 뇾 뇿 눀 눁 눂 눃 누 눅 눆 눇 눈 눉 눊 눋 눌 눍 눎 눏 눐 눑 눒 눓 눔 눕 눖 눗 눘 눙 눚 눛 눜 눝 눞 눟 눠 눡 눢 눣 눤 눥 눦 눧 눨 눩 눪 눫 눬 눭 눮 눯 눰 눱 눲 눳 눴 눵 눶 눷 눸 눹 눺 눻 눼 눽 눾 눿 뉀 뉁 뉂 뉃 뉄 뉅 뉆 뉇 뉈 뉉 뉊 뉋 뉌 뉍 뉎 뉏 뉐 뉑 뉒 뉓 뉔 뉕 뉖 뉗 뉘 뉙 뉚 뉛 뉜 뉝 뉞 뉟 뉠 뉡 뉢 뉣 뉤 뉥 뉦 뉧 뉨 뉩 뉪 뉫 뉬 뉭 뉮 뉯 뉰 뉱 뉲 뉳 뉴 뉵 뉶 뉷 뉸 뉹 뉺 뉻 뉼 뉽 뉾 뉿 늀 늁 늂 늃 늄 늅 늆 늇 늈 늉 늊 늋 늌 늍 늎 늏 느 늑 늒 늓 는 늕 늖 늗 늘 늙 늚 늛 늜 늝 늞 늟 늠 늡 늢 늣 늤 능 늦 늧 늨 늩 늪 늫 늬 늭 늮 늯 늰 늱 늲 늳 늴 늵 늶 늷 늸 늹 늺 늻 늼 늽 늾 늿 닀 닁 닂 닃 닄 닅 닆 닇 니 닉 닊 닋 닌 닍 닎 닏 닐 닑 닒 닓 닔 닕 닖 닗 님 닙 닚 닛 닜 닝 닞 닟 닠 닡 닢 닣 다 닥 닦 닧 단 닩 닪 닫 달 닭 닮 닯 닰 닱 닲 닳 담 답 닶 닷 닸 당 닺 닻 닼 닽 닾 닿 대 댁 댂 댃 댄 댅 댆 댇 댈 댉 댊 댋 댌 댍 댎 댏 댐 댑 댒 댓 댔 댕 댖 댗 댘 댙 댚 댛 댜 댝 댞 댟 댠 댡 댢 댣 댤 댥 댦 댧 댨 댩 댪 댫 댬 댭 댮 댯 댰 댱 댲 댳 댴 댵 댶 댷 댸 댹 댺 댻 댼 댽 댾 댿 덀 덁 덂 덃 덄 덅 덆 덇 덈 덉 덊 덋 덌 덍 덎 덏 덐 덑 덒 덓 더 덕 덖 덗 던 덙 덚 덛 덜 덝 덞 덟 덠 덡 덢 덣 덤 덥 덦 덧 덨 덩 덪 덫 덬 덭 덮 덯 데 덱 덲 덳 덴 덵 덶 덷 델 덹 덺 덻 덼 덽 덾 덿 뎀 뎁 뎂 뎃 뎄 뎅 뎆 뎇 뎈 뎉 뎊 뎋 뎌 뎍 뎎 뎏 뎐 뎑 뎒 뎓 뎔 뎕 뎖 뎗 뎘 뎙 뎚 뎛 뎜 뎝 뎞 뎟 뎠 뎡 뎢 뎣 뎤 뎥 뎦 뎧 뎨 뎩 뎪 뎫 뎬 뎭 뎮 뎯 뎰 뎱 뎲 뎳 뎴 뎵 뎶 뎷 뎸 뎹 뎺 뎻 뎼 뎽 뎾 뎿 돀 돁 돂 돃 도 독 돆 돇 돈 돉 돊 돋 돌 돍 돎 돏 돐 돑 돒 돓 돔 돕 돖 돗 돘 동 돚 돛 돜 돝 돞 돟 돠 돡 돢 돣 돤 돥 돦 돧 돨 돩 돪 돫 돬 돭 돮 돯 돰 돱 돲 돳 돴 돵 돶 돷 돸 돹 돺 돻 돼 돽 돾 돿 됀 됁 됂 됃 됄 됅 됆 됇 됈 됉 됊 됋 됌 됍 됎 됏 됐 됑 됒 됓 됔 됕 됖 됗 되 됙 됚 됛 된 됝 됞 됟 될 됡 됢 됣 됤 됥 됦 됧 됨 됩 됪 됫 됬 됭 됮 됯 됰 됱 됲 됳 됴 됵 됶 됷 됸 됹 됺 됻 됼 됽 됾 됿 둀 둁 둂 둃 둄 둅 둆 둇 둈 둉 둊 둋 둌 둍 둎 둏 두 둑 둒 둓 둔 둕 둖 둗 둘 둙 둚 둛 둜 둝 둞 둟 둠 둡 둢 둣 둤 둥 둦 둧 둨 둩 둪 둫 둬 둭 둮 둯 둰 둱 둲 둳 둴 둵 둶 둷 둸 둹 둺 둻 둼 둽 둾 둿 뒀 뒁 뒂 뒃 뒄 뒅 뒆 뒇 뒈 뒉 뒊 뒋 뒌 뒍 뒎 뒏 뒐 뒑 뒒 뒓 뒔 뒕 뒖 뒗 뒘 뒙 뒚 뒛 뒜 뒝 뒞 뒟 뒠 뒡 뒢 뒣 뒤 뒥 뒦 뒧 뒨 뒩 뒪 뒫 뒬 뒭 뒮 뒯 뒰 뒱 뒲 뒳 뒴 뒵 뒶 뒷 뒸 뒹 뒺 뒻 뒼 뒽 뒾 뒿 듀 듁 듂 듃 듄 듅 듆 듇 듈 듉 듊 듋 듌 듍 듎 듏 듐 듑 듒 듓 듔 듕 듖 듗 듘 듙 듚 듛 드 득 듞 듟 든 듡 듢 듣 들 듥 듦 듧 듨 듩 듪 듫 듬 듭 듮 듯 듰 등 듲 듳 듴 듵 듶 듷 듸 듹 듺 듻 듼 듽 듾 듿 딀 딁 딂 딃 딄 딅 딆 딇 딈 딉 딊 딋 딌 딍 딎 딏 딐 딑 딒 딓 디 딕 딖 딗 딘 딙 딚 딛 딜 딝 딞 딟 딠 딡 딢 딣 딤 딥 딦 딧 딨 딩 딪 딫 딬 딭 딮 딯 따 딱 딲 딳 딴 딵 딶 딷 딸 딹 딺 딻 딼 딽 딾 딿 땀 땁 땂 땃 땄 땅 땆 땇 땈 땉 땊 땋 때 땍 땎 땏 땐 땑 땒 땓 땔 땕 땖 땗 땘 땙 땚 땛 땜 땝 땞 땟 땠 땡 땢 땣 땤 땥 땦 땧 땨 땩 땪 땫 땬 땭 땮 땯 땰 땱 땲 땳 땴 땵 땶 땷 땸 땹 땺 땻 땼 땽 땾 땿 떀 떁 떂 떃 떄 떅 떆 떇 떈 떉 떊 떋 떌 떍 떎 떏 떐 떑 떒 떓 떔 떕 떖 떗 떘 떙 떚 떛 떜 떝 떞 떟 떠 떡 떢 떣 떤 떥 떦 떧 떨 떩 떪 떫 떬 떭 떮 떯 떰 떱 떲 떳 떴 떵 떶 떷 떸 떹 떺 떻 떼 떽 떾 떿 뗀 뗁 뗂 뗃 뗄 뗅 뗆 뗇 뗈 뗉 뗊 뗋 뗌 뗍 뗎 뗏 뗐 뗑 뗒 뗓 뗔 뗕 뗖 뗗 뗘 뗙 뗚 뗛 뗜 뗝 뗞 뗟 뗠 뗡 뗢 뗣 뗤 뗥 뗦 뗧 뗨 뗩 뗪 뗫 뗬 뗭 뗮 뗯 뗰 뗱 뗲 뗳 뗴 뗵 뗶 뗷 뗸 뗹 뗺 뗻 뗼 뗽 뗾 뗿 똀 똁 똂 똃 똄 똅 똆 똇 똈 똉 똊 똋 똌 똍 똎 똏 또 똑 똒 똓 똔 똕 똖 똗 똘 똙 똚 똛 똜 똝 똞 똟 똠 똡 똢 똣 똤 똥 똦 똧 똨 똩 똪 똫 똬 똭 똮 똯 똰 똱 똲 똳 똴 똵 똶 똷 똸 똹 똺 똻 똼 똽 똾 똿 뙀 뙁 뙂 뙃 뙄 뙅 뙆 뙇 뙈 뙉 뙊 뙋 뙌 뙍 뙎 뙏 뙐 뙑 뙒 뙓 뙔 뙕 뙖 뙗 뙘 뙙 뙚 뙛 뙜 뙝 뙞 뙟 뙠 뙡 뙢 뙣 뙤 뙥 뙦 뙧 뙨 뙩 뙪 뙫 뙬 뙭 뙮 뙯 뙰 뙱 뙲 뙳 뙴 뙵 뙶 뙷 뙸 뙹 뙺 뙻 뙼 뙽 뙾 뙿 뚀 뚁 뚂 뚃 뚄 뚅 뚆 뚇 뚈 뚉 뚊 뚋 뚌 뚍 뚎 뚏 뚐 뚑 뚒 뚓 뚔 뚕 뚖 뚗 뚘 뚙 뚚 뚛 뚜 뚝 뚞 뚟 뚠 뚡 뚢 뚣 뚤 뚥 뚦 뚧 뚨 뚩 뚪 뚫 뚬 뚭 뚮 뚯 뚰 뚱 뚲 뚳 뚴 뚵 뚶 뚷 뚸 뚹 뚺 뚻 뚼 뚽 뚾 뚿 뛀 뛁 뛂 뛃 뛄 뛅 뛆 뛇 뛈 뛉 뛊 뛋 뛌 뛍 뛎 뛏 뛐 뛑 뛒 뛓 뛔 뛕 뛖 뛗 뛘 뛙 뛚 뛛 뛜 뛝 뛞 뛟 뛠 뛡 뛢 뛣 뛤 뛥 뛦 뛧 뛨 뛩 뛪 뛫 뛬 뛭 뛮 뛯 뛰 뛱 뛲 뛳 뛴 뛵 뛶 뛷 뛸 뛹 뛺 뛻 뛼 뛽 뛾 뛿 뜀 뜁 뜂 뜃 뜄 뜅 뜆 뜇 뜈 뜉 뜊 뜋 뜌 뜍 뜎 뜏 뜐 뜑 뜒 뜓 뜔 뜕 뜖 뜗 뜘 뜙 뜚 뜛 뜜 뜝 뜞 뜟 뜠 뜡 뜢 뜣 뜤 뜥 뜦 뜧 뜨 뜩 뜪 뜫 뜬 뜭 뜮 뜯 뜰 뜱 뜲 뜳 뜴 뜵 뜶 뜷 뜸 뜹 뜺 뜻 뜼 뜽 뜾 뜿 띀 띁 띂 띃 띄 띅 띆 띇 띈 띉 띊 띋 띌 띍 띎 띏 띐 띑 띒 띓 띔 띕 띖 띗 띘 띙 띚 띛 띜 띝 띞 띟 띠 띡 띢 띣 띤 띥 띦 띧 띨 띩 띪 띫 띬 띭 띮 띯 띰 띱 띲 띳 띴 띵 띶 띷 띸 띹 띺 띻 라 락 띾 띿 란 랁 랂 랃 랄 랅 랆 랇 랈 랉 랊 랋 람 랍 랎 랏 랐 랑 랒 랓 랔 랕 랖 랗 래 랙 랚 랛 랜 랝 랞 랟 랠 랡 랢 랣 랤 랥 랦 랧 램 랩 랪 랫 랬 랭 랮 랯 랰 랱 랲 랳 랴 략 랶 랷 랸 랹 랺 랻 랼 랽 랾 랿 럀 럁 럂 럃 럄 럅 럆 럇 럈 량 럊 럋 럌 럍 럎 럏 럐 럑 럒 럓 럔 럕 럖 럗 럘 럙 럚 럛 럜 럝 럞 럟 럠 럡 럢 럣 럤 럥 럦 럧 럨 럩 럪 럫 러 럭 럮 럯 런 럱 럲 럳 럴 럵 럶 럷 럸 럹 럺 럻 럼 럽 럾 럿 렀 렁 렂 렃 렄 렅 렆 렇 레 렉 렊 렋 렌 렍 렎 렏 렐 렑 렒 렓 렔 렕 렖 렗 렘 렙 렚 렛 렜 렝 렞 렟 렠 렡 렢 렣 려 력 렦 렧 련 렩 렪 렫 렬 렭 렮 렯 렰 렱 렲 렳 렴 렵 렶 렷 렸 령 렺 렻 렼 렽 렾 렿 례 롁 롂 롃 롄 롅 롆 롇 롈 롉 롊 롋 롌 롍 롎 롏 롐 롑 롒 롓 롔 롕 롖 롗 롘 롙 롚 롛 로 록 롞 롟 론 롡 롢 롣 롤 롥 롦 롧 롨 롩 롪 롫 롬 롭 롮 롯 롰 롱 롲 롳 롴 롵 롶 롷 롸 롹 롺 롻 롼 롽 롾 롿 뢀 뢁 뢂 뢃 뢄 뢅 뢆 뢇 뢈 뢉 뢊 뢋 뢌 뢍 뢎 뢏 뢐 뢑 뢒 뢓 뢔 뢕 뢖 뢗 뢘 뢙 뢚 뢛 뢜 뢝 뢞 뢟 뢠 뢡 뢢 뢣 뢤 뢥 뢦 뢧 뢨 뢩 뢪 뢫 뢬 뢭 뢮 뢯 뢰 뢱 뢲 뢳 뢴 뢵 뢶 뢷 뢸 뢹 뢺 뢻 뢼 뢽 뢾 뢿 룀 룁 룂 룃 룄 룅 룆 룇 룈 룉 룊 룋 료 룍 룎 룏 룐 룑 룒 룓 룔 룕 룖 룗 룘 룙 룚 룛 룜 룝 룞 룟 룠 룡 룢 룣 룤 룥 룦 룧 루 룩 룪 룫 룬 룭 룮 룯 룰 룱 룲 룳 룴 룵 룶 룷 룸 룹 룺 룻 룼 룽 룾 룿 뤀 뤁 뤂 뤃 뤄 뤅 뤆 뤇 뤈 뤉 뤊 뤋 뤌 뤍 뤎 뤏 뤐 뤑 뤒 뤓 뤔 뤕 뤖 뤗 뤘 뤙 뤚 뤛 뤜 뤝 뤞 뤟 뤠 뤡 뤢 뤣 뤤 뤥 뤦 뤧 뤨 뤩 뤪 뤫 뤬 뤭 뤮 뤯 뤰 뤱 뤲 뤳 뤴 뤵 뤶 뤷 뤸 뤹 뤺 뤻 뤼 뤽 뤾 뤿 륀 륁 륂 륃 륄 륅 륆 륇 륈 륉 륊 륋 륌 륍 륎 륏 륐 륑 륒 륓 륔 륕 륖 륗 류 륙 륚 륛 륜 륝 륞 륟 률 륡 륢 륣 륤 륥 륦 륧 륨 륩 륪 륫 륬 륭 륮 륯 륰 륱 륲 륳 르 륵 륶 륷 른 륹 륺 륻 를 륽 륾 륿 릀 릁 릂 릃 름 릅 릆 릇 릈 릉 릊 릋 릌 릍 릎 릏 릐 릑 릒 릓 릔 릕 릖 릗 릘 릙 릚 릛 릜 릝 릞 릟 릠 릡 릢 릣 릤 릥 릦 릧 릨 릩 릪 릫 리 릭 릮 릯 린 릱 릲 릳 릴 릵 릶 릷 릸 릹 릺 릻 림 립 릾 릿 맀 링 맂 맃 맄 맅 맆 맇 마 막 맊 맋 만 맍 많 맏 말 맑 맒 맓 맔 맕 맖 맗 맘 맙 맚 맛 맜 망 맞 맟 맠 맡 맢 맣 매 맥 맦 맧 맨 맩 맪 맫 맬 맭 맮 맯 맰 맱 맲 맳 맴 맵 맶 맷 맸 맹 맺 맻 맼 맽 맾 맿 먀 먁 먂 먃 먄 먅 먆 먇 먈 먉 먊 먋 먌 먍 먎 먏 먐 먑 먒 먓 먔 먕 먖 먗 먘 먙 먚 먛 먜 먝 먞 먟 먠 먡 먢 먣 먤 먥 먦 먧 먨 먩 먪 먫 먬 먭 먮 먯 먰 먱 먲 먳 먴 먵 먶 먷 머 먹 먺 먻 먼 먽 먾 먿 멀 멁 멂 멃 멄 멅 멆 멇 멈 멉 멊 멋 멌 멍 멎 멏 멐 멑 멒 멓 메 멕 멖 멗 멘 멙 멚 멛 멜 멝 멞 멟 멠 멡 멢 멣 멤 멥 멦 멧 멨 멩 멪 멫 멬 멭 멮 멯 며 멱 멲 멳 면 멵 멶 멷 멸 멹 멺 멻 멼 멽 멾 멿 몀 몁 몂 몃 몄 명 몆 몇 몈 몉 몊 몋 몌 몍 몎 몏 몐 몑 몒 몓 몔 몕 몖 몗 몘 몙 몚 몛 몜 몝 몞 몟 몠 몡 몢 몣 몤 몥 몦 몧 모 목 몪 몫 몬 몭 몮 몯 몰 몱 몲 몳 몴 몵 몶 몷 몸 몹 몺 못 몼 몽 몾 몿 뫀 뫁 뫂 뫃 뫄 뫅 뫆 뫇 뫈 뫉 뫊 뫋 뫌 뫍 뫎 뫏 뫐 뫑 뫒 뫓 뫔 뫕 뫖 뫗 뫘 뫙 뫚 뫛 뫜 뫝 뫞 뫟 뫠 뫡 뫢 뫣 뫤 뫥 뫦 뫧 뫨 뫩 뫪 뫫 뫬 뫭 뫮 뫯 뫰 뫱 뫲 뫳 뫴 뫵 뫶 뫷 뫸 뫹 뫺 뫻 뫼 뫽 뫾 뫿 묀 묁 묂 묃 묄 묅 묆 묇 묈 묉 묊 묋 묌 묍 묎 묏 묐 묑 묒 묓 묔 묕 묖 묗 묘 묙 묚 묛 묜 묝 묞 묟 묠 묡 묢 묣 묤 묥 묦 묧 묨 묩 묪 묫 묬 묭 묮 묯 묰 묱 묲 묳 무 묵 묶 묷 문 묹 묺 묻 물 묽 묾 묿 뭀 뭁 뭂 뭃 뭄 뭅 뭆 뭇 뭈 뭉 뭊 뭋 뭌 뭍 뭎 뭏 뭐 뭑 뭒 뭓 뭔 뭕 뭖 뭗 뭘 뭙 뭚 뭛 뭜 뭝 뭞 뭟 뭠 뭡 뭢 뭣 뭤 뭥 뭦 뭧 뭨 뭩 뭪 뭫 뭬 뭭 뭮 뭯 뭰 뭱 뭲 뭳 뭴 뭵 뭶 뭷 뭸 뭹 뭺 뭻 뭼 뭽 뭾 뭿 뮀 뮁 뮂 뮃 뮄 뮅 뮆 뮇 뮈 뮉 뮊 뮋 뮌 뮍 뮎 뮏 뮐 뮑 뮒 뮓 뮔 뮕 뮖 뮗 뮘 뮙 뮚 뮛 뮜 뮝 뮞 뮟 뮠 뮡 뮢 뮣 뮤 뮥 뮦 뮧 뮨 뮩 뮪 뮫 뮬 뮭 뮮 뮯 뮰 뮱 뮲 뮳 뮴 뮵 뮶 뮷 뮸 뮹 뮺 뮻 뮼 뮽 뮾 뮿 므 믁 믂 믃 믄 믅 믆 믇 믈 믉 믊 믋 믌 믍 믎 믏 믐 믑 믒 믓 믔 믕 믖 믗 믘 믙 믚 믛 믜 믝 믞 믟 믠 믡 믢 믣 믤 믥 믦 믧 믨 믩 믪 믫 믬 믭 믮 믯 믰 믱 믲 믳 믴 믵 믶 믷 미 믹 믺 믻 민 믽 믾 믿 밀 밁 밂 밃 밄 밅 밆 밇 밈 밉 밊 밋 밌 밍 밎 및 밐 밑 밒 밓 바 박 밖 밗 반 밙 밚 받 발 밝 밞 밟 밠 밡 밢 밣 밤 밥 밦 밧 밨 방 밪 밫 밬 밭 밮 밯 배 백 밲 밳 밴 밵 밶 밷 밸 밹 밺 밻 밼 밽 밾 밿 뱀 뱁 뱂 뱃 뱄 뱅 뱆 뱇 뱈 뱉 뱊 뱋 뱌 뱍 뱎 뱏 뱐 뱑 뱒 뱓 뱔 뱕 뱖 뱗 뱘 뱙 뱚 뱛 뱜 뱝 뱞 뱟 뱠 뱡 뱢 뱣 뱤 뱥 뱦 뱧 뱨 뱩 뱪 뱫 뱬 뱭 뱮 뱯 뱰 뱱 뱲 뱳 뱴 뱵 뱶 뱷 뱸 뱹 뱺 뱻 뱼 뱽 뱾 뱿 벀 벁 벂 벃 버 벅 벆 벇 번 벉 벊 벋 벌 벍 벎 벏 벐 벑 벒 벓 범 법 벖 벗 벘 벙 벚 벛 벜 벝 벞 벟 베 벡 벢 벣 벤 벥 벦 벧 벨 벩 벪 벫 벬 벭 벮 벯 벰 벱 벲 벳 벴 벵 벶 벷 벸 벹 벺 벻 벼 벽 벾 벿 변 볁 볂 볃 별 볅 볆 볇 볈 볉 볊 볋 볌 볍 볎 볏 볐 병 볒 볓 볔 볕 볖 볗 볘 볙 볚 볛 볜 볝 볞 볟 볠 볡 볢 볣 볤 볥 볦 볧 볨 볩 볪 볫 볬 볭 볮 볯 볰 볱 볲 볳 보 복 볶 볷 본 볹 볺 볻 볼 볽 볾 볿 봀 봁 봂 봃 봄 봅 봆 봇 봈 봉 봊 봋 봌 봍 봎 봏 봐 봑 봒 봓 봔 봕 봖 봗 봘 봙 봚 봛 봜 봝 봞 봟 봠 봡 봢 봣 봤 봥 봦 봧 봨 봩 봪 봫 봬 봭 봮 봯 봰 봱 봲 봳 봴 봵 봶 봷 봸 봹 봺 봻 봼 봽 봾 봿 뵀 뵁 뵂 뵃 뵄 뵅 뵆 뵇 뵈 뵉 뵊 뵋 뵌 뵍 뵎 뵏 뵐 뵑 뵒 뵓 뵔 뵕 뵖 뵗 뵘 뵙 뵚 뵛 뵜 뵝 뵞 뵟 뵠 뵡 뵢 뵣 뵤 뵥 뵦 뵧 뵨 뵩 뵪 뵫 뵬 뵭 뵮 뵯 뵰 뵱 뵲 뵳 뵴 뵵 뵶 뵷 뵸 뵹 뵺 뵻 뵼 뵽 뵾 뵿 부 북 붂 붃 분 붅 붆 붇 불 붉 붊 붋 붌 붍 붎 붏 붐 붑 붒 붓 붔 붕 붖 붗 붘 붙 붚 붛 붜 붝 붞 붟 붠 붡 붢 붣 붤 붥 붦 붧 붨 붩 붪 붫 붬 붭 붮 붯 붰 붱 붲 붳 붴 붵 붶 붷 붸 붹 붺 붻 붼 붽 붾 붿 뷀 뷁 뷂 뷃 뷄 뷅 뷆 뷇 뷈 뷉 뷊 뷋 뷌 뷍 뷎 뷏 뷐 뷑 뷒 뷓 뷔 뷕 뷖 뷗 뷘 뷙 뷚 뷛 뷜 뷝 뷞 뷟 뷠 뷡 뷢 뷣 뷤 뷥 뷦 뷧 뷨 뷩 뷪 뷫 뷬 뷭 뷮 뷯 뷰 뷱 뷲 뷳 뷴 뷵 뷶 뷷 뷸 뷹 뷺 뷻 뷼 뷽 뷾 뷿 븀 븁 븂 븃 븄 븅 븆 븇 븈 븉 븊 븋 브 븍 븎 븏 븐 븑 븒 븓 블 븕 븖 븗 븘 븙 븚 븛 븜 븝 븞 븟 븠 븡 븢 븣 븤 븥 븦 븧 븨 븩 븪 븫 븬 븭 븮 븯 븰 븱 븲 븳 븴 븵 븶 븷 븸 븹 븺 븻 븼 븽 븾 븿 빀 빁 빂 빃 비 빅 빆 빇 빈 빉 빊 빋 빌 빍 빎 빏 빐 빑 빒 빓 빔 빕 빖 빗 빘 빙 빚 빛 빜 빝 빞 빟 빠 빡 빢 빣 빤 빥 빦 빧 빨 빩 빪 빫 빬 빭 빮 빯 빰 빱 빲 빳 빴 빵 빶 빷 빸 빹 빺 빻 빼 빽 빾 빿 뺀 뺁 뺂 뺃 뺄 뺅 뺆 뺇 뺈 뺉 뺊 뺋 뺌 뺍 뺎 뺏 뺐 뺑 뺒 뺓 뺔 뺕 뺖 뺗 뺘 뺙 뺚 뺛 뺜 뺝 뺞 뺟 뺠 뺡 뺢 뺣 뺤 뺥 뺦 뺧 뺨 뺩 뺪 뺫 뺬 뺭 뺮 뺯 뺰 뺱 뺲 뺳 뺴 뺵 뺶 뺷 뺸 뺹 뺺 뺻 뺼 뺽 뺾 뺿 뻀 뻁 뻂 뻃 뻄 뻅 뻆 뻇 뻈 뻉 뻊 뻋 뻌 뻍 뻎 뻏 뻐 뻑 뻒 뻓 뻔 뻕 뻖 뻗 뻘 뻙 뻚 뻛 뻜 뻝 뻞 뻟 뻠 뻡 뻢 뻣 뻤 뻥 뻦 뻧 뻨 뻩 뻪 뻫 뻬 뻭 뻮 뻯 뻰 뻱 뻲 뻳 뻴 뻵 뻶 뻷 뻸 뻹 뻺 뻻 뻼 뻽 뻾 뻿 뼀 뼁 뼂 뼃 뼄 뼅 뼆 뼇 뼈 뼉 뼊 뼋 뼌 뼍 뼎 뼏 뼐 뼑 뼒 뼓 뼔 뼕 뼖 뼗 뼘 뼙 뼚 뼛 뼜 뼝 뼞 뼟 뼠 뼡 뼢 뼣 뼤 뼥 뼦 뼧 뼨 뼩 뼪 뼫 뼬 뼭 뼮 뼯 뼰 뼱 뼲 뼳 뼴 뼵 뼶 뼷 뼸 뼹 뼺 뼻 뼼 뼽 뼾 뼿 뽀 뽁 뽂 뽃 뽄 뽅 뽆 뽇 뽈 뽉 뽊 뽋 뽌 뽍 뽎 뽏 뽐 뽑 뽒 뽓 뽔 뽕 뽖 뽗 뽘 뽙 뽚 뽛 뽜 뽝 뽞 뽟 뽠 뽡 뽢 뽣 뽤 뽥 뽦 뽧 뽨 뽩 뽪 뽫 뽬 뽭 뽮 뽯 뽰 뽱 뽲 뽳 뽴 뽵 뽶 뽷 뽸 뽹 뽺 뽻 뽼 뽽 뽾 뽿 뾀 뾁 뾂 뾃 뾄 뾅 뾆 뾇 뾈 뾉 뾊 뾋 뾌 뾍 뾎 뾏 뾐 뾑 뾒 뾓 뾔 뾕 뾖 뾗 뾘 뾙 뾚 뾛 뾜 뾝 뾞 뾟 뾠 뾡 뾢 뾣 뾤 뾥 뾦 뾧 뾨 뾩 뾪 뾫 뾬 뾭 뾮 뾯 뾰 뾱 뾲 뾳 뾴 뾵 뾶 뾷 뾸 뾹 뾺 뾻 뾼 뾽 뾾 뾿 뿀 뿁 뿂 뿃 뿄 뿅 뿆 뿇 뿈 뿉 뿊 뿋 뿌 뿍 뿎 뿏 뿐 뿑 뿒 뿓 뿔 뿕 뿖 뿗 뿘 뿙 뿚 뿛 뿜 뿝 뿞 뿟 뿠 뿡 뿢 뿣 뿤 뿥 뿦 뿧 뿨 뿩 뿪 뿫 뿬 뿭 뿮 뿯 뿰 뿱 뿲 뿳 뿴 뿵 뿶 뿷 뿸 뿹 뿺 뿻 뿼 뿽 뿾 뿿 쀀 쀁 쀂 쀃 쀄 쀅 쀆 쀇 쀈 쀉 쀊 쀋 쀌 쀍 쀎 쀏 쀐 쀑 쀒 쀓 쀔 쀕 쀖 쀗 쀘 쀙 쀚 쀛 쀜 쀝 쀞 쀟 쀠 쀡 쀢 쀣 쀤 쀥 쀦 쀧 쀨 쀩 쀪 쀫 쀬 쀭 쀮 쀯 쀰 쀱 쀲 쀳 쀴 쀵 쀶 쀷 쀸 쀹 쀺 쀻 쀼 쀽 쀾 쀿 쁀 쁁 쁂 쁃 쁄 쁅 쁆 쁇 쁈 쁉 쁊 쁋 쁌 쁍 쁎 쁏 쁐 쁑 쁒 쁓 쁔 쁕 쁖 쁗 쁘 쁙 쁚 쁛 쁜 쁝 쁞 쁟 쁠 쁡 쁢 쁣 쁤 쁥 쁦 쁧 쁨 쁩 쁪 쁫 쁬 쁭 쁮 쁯 쁰 쁱 쁲 쁳 쁴 쁵 쁶 쁷 쁸 쁹 쁺 쁻 쁼 쁽 쁾 쁿 삀 삁 삂 삃 삄 삅 삆 삇 삈 삉 삊 삋 삌 삍 삎 삏 삐 삑 삒 삓 삔 삕 삖 삗 삘 삙 삚 삛 삜 삝 삞 삟 삠 삡 삢 삣 삤 삥 삦 삧 삨 삩 삪 삫 사 삭 삮 삯 산 삱 삲 삳 살 삵 삶 삷 삸 삹 삺 삻 삼 삽 삾 삿 샀 상 샂 샃 샄 샅 샆 샇 새 색 샊 샋 샌 샍 샎 샏 샐 샑 샒 샓 샔 샕 샖 샗 샘 샙 샚 샛 샜 생 샞 샟 샠 샡 샢 샣 샤 샥 샦 샧 샨 샩 샪 샫 샬 샭 샮 샯 샰 샱 샲 샳 샴 샵 샶 샷 샸 샹 샺 샻 샼 샽 샾 샿 섀 섁 섂 섃 섄 섅 섆 섇 섈 섉 섊 섋 섌 섍 섎 섏 섐 섑 섒 섓 섔 섕 섖 섗 섘 섙 섚 섛 서 석 섞 섟 선 섡 섢 섣 설 섥 섦 섧 섨 섩 섪 섫 섬 섭 섮 섯 섰 성 섲 섳 섴 섵 섶 섷 세 섹 섺 섻 센 섽 섾 섿 셀 셁 셂 셃 셄 셅 셆 셇 셈 셉 셊 셋 셌 셍 셎 셏 셐 셑 셒 셓 셔 셕 셖 셗 션 셙 셚 셛 셜 셝 셞 셟 셠 셡 셢 셣 셤 셥 셦 셧 셨 셩 셪 셫 셬 셭 셮 셯 셰 셱 셲 셳 셴 셵 셶 셷 셸 셹 셺 셻 셼 셽 셾 셿 솀 솁 솂 솃 솄 솅 솆 솇 솈 솉 솊 솋 소 속 솎 솏 손 솑 솒 솓 솔 솕 솖 솗 솘 솙 솚 솛 솜 솝 솞 솟 솠 송 솢 솣 솤 솥 솦 솧 솨 솩 솪 솫 솬 솭 솮 솯 솰 솱 솲 솳 솴 솵 솶 솷 솸 솹 솺 솻 솼 솽 솾 솿 쇀 쇁 쇂 쇃 쇄 쇅 쇆 쇇 쇈 쇉 쇊 쇋 쇌 쇍 쇎 쇏 쇐 쇑 쇒 쇓 쇔 쇕 쇖 쇗 쇘 쇙 쇚 쇛 쇜 쇝 쇞 쇟 쇠 쇡 쇢 쇣 쇤 쇥 쇦 쇧 쇨 쇩 쇪 쇫 쇬 쇭 쇮 쇯 쇰 쇱 쇲 쇳 쇴 쇵 쇶 쇷 쇸 쇹 쇺 쇻 쇼 쇽 쇾 쇿 숀 숁 숂 숃 숄 숅 숆 숇 숈 숉 숊 숋 숌 숍 숎 숏 숐 숑 숒 숓 숔 숕 숖 숗 수 숙 숚 숛 순 숝 숞 숟 술 숡 숢 숣 숤 숥 숦 숧 숨 숩 숪 숫 숬 숭 숮 숯 숰 숱 숲 숳 숴 숵 숶 숷 숸 숹 숺 숻 숼 숽 숾 숿 쉀 쉁 쉂 쉃 쉄 쉅 쉆 쉇 쉈 쉉 쉊 쉋 쉌 쉍 쉎 쉏 쉐 쉑 쉒 쉓 쉔 쉕 쉖 쉗 쉘 쉙 쉚 쉛 쉜 쉝 쉞 쉟 쉠 쉡 쉢 쉣 쉤 쉥 쉦 쉧 쉨 쉩 쉪 쉫 쉬 쉭 쉮 쉯 쉰 쉱 쉲 쉳 쉴 쉵 쉶 쉷 쉸 쉹 쉺 쉻 쉼 쉽 쉾 쉿 슀 슁 슂 슃 슄 슅 슆 슇 슈 슉 슊 슋 슌 슍 슎 슏 슐 슑 슒 슓 슔 슕 슖 슗 슘 슙 슚 슛 슜 슝 슞 슟 슠 슡 슢 슣 스 슥 슦 슧 슨 슩 슪 슫 슬 슭 슮 슯 슰 슱 슲 슳 슴 습 슶 슷 슸 승 슺 슻 슼 슽 슾 슿 싀 싁 싂 싃 싄 싅 싆 싇 싈 싉 싊 싋 싌 싍 싎 싏 싐 싑 싒 싓 싔 싕 싖 싗 싘 싙 싚 싛 시 식 싞 싟 신 싡 싢 싣 실 싥 싦 싧 싨 싩 싪 싫 심 십 싮 싯 싰 싱 싲 싳 싴 싵 싶 싷 싸 싹 싺 싻 싼 싽 싾 싿 쌀 쌁 쌂 쌃 쌄 쌅 쌆 쌇 쌈 쌉 쌊 쌋 쌌 쌍 쌎 쌏 쌐 쌑 쌒 쌓 쌔 쌕 쌖 쌗 쌘 쌙 쌚 쌛 쌜 쌝 쌞 쌟 쌠 쌡 쌢 쌣 쌤 쌥 쌦 쌧 쌨 쌩 쌪 쌫 쌬 쌭 쌮 쌯 쌰 쌱 쌲 쌳 쌴 쌵 쌶 쌷 쌸 쌹 쌺 쌻 쌼 쌽 쌾 쌿 썀 썁 썂 썃 썄 썅 썆 썇 썈 썉 썊 썋 썌 썍 썎 썏 썐 썑 썒 썓 썔 썕 썖 썗 썘 썙 썚 썛 썜 썝 썞 썟 썠 썡 썢 썣 썤 썥 썦 썧 써 썩 썪 썫 썬 썭 썮 썯 썰 썱 썲 썳 썴 썵 썶 썷 썸 썹 썺 썻 썼 썽 썾 썿 쎀 쎁 쎂 쎃 쎄 쎅 쎆 쎇 쎈 쎉 쎊 쎋 쎌 쎍 쎎 쎏 쎐 쎑 쎒 쎓 쎔 쎕 쎖 쎗 쎘 쎙 쎚 쎛 쎜 쎝 쎞 쎟 쎠 쎡 쎢 쎣 쎤 쎥 쎦 쎧 쎨 쎩 쎪 쎫 쎬 쎭 쎮 쎯 쎰 쎱 쎲 쎳 쎴 쎵 쎶 쎷 쎸 쎹 쎺 쎻 쎼 쎽 쎾 쎿 쏀 쏁 쏂 쏃 쏄 쏅 쏆 쏇 쏈 쏉 쏊 쏋 쏌 쏍 쏎 쏏 쏐 쏑 쏒 쏓 쏔 쏕 쏖 쏗 쏘 쏙 쏚 쏛 쏜 쏝 쏞 쏟 쏠 쏡 쏢 쏣 쏤 쏥 쏦 쏧 쏨 쏩 쏪 쏫 쏬 쏭 쏮 쏯 쏰 쏱 쏲 쏳 쏴 쏵 쏶 쏷 쏸 쏹 쏺 쏻 쏼 쏽 쏾 쏿 쐀 쐁 쐂 쐃 쐄 쐅 쐆 쐇 쐈 쐉 쐊 쐋 쐌 쐍 쐎 쐏 쐐 쐑 쐒 쐓 쐔 쐕 쐖 쐗 쐘 쐙 쐚 쐛 쐜 쐝 쐞 쐟 쐠 쐡 쐢 쐣 쐤 쐥 쐦 쐧 쐨 쐩 쐪 쐫 쐬 쐭 쐮 쐯 쐰 쐱 쐲 쐳 쐴 쐵 쐶 쐷 쐸 쐹 쐺 쐻 쐼 쐽 쐾 쐿 쑀 쑁 쑂 쑃 쑄 쑅 쑆 쑇 쑈 쑉 쑊 쑋 쑌 쑍 쑎 쑏 쑐 쑑 쑒 쑓 쑔 쑕 쑖 쑗 쑘 쑙 쑚 쑛 쑜 쑝 쑞 쑟 쑠 쑡 쑢 쑣 쑤 쑥 쑦 쑧 쑨 쑩 쑪 쑫 쑬 쑭 쑮 쑯 쑰 쑱 쑲 쑳 쑴 쑵 쑶 쑷 쑸 쑹 쑺 쑻 쑼 쑽 쑾 쑿 쒀 쒁 쒂 쒃 쒄 쒅 쒆 쒇 쒈 쒉 쒊 쒋 쒌 쒍 쒎 쒏 쒐 쒑 쒒 쒓 쒔 쒕 쒖 쒗 쒘 쒙 쒚 쒛 쒜 쒝 쒞 쒟 쒠 쒡 쒢 쒣 쒤 쒥 쒦 쒧 쒨 쒩 쒪 쒫 쒬 쒭 쒮 쒯 쒰 쒱 쒲 쒳 쒴 쒵 쒶 쒷 쒸 쒹 쒺 쒻 쒼 쒽 쒾 쒿 쓀 쓁 쓂 쓃 쓄 쓅 쓆 쓇 쓈 쓉 쓊 쓋 쓌 쓍 쓎 쓏 쓐 쓑 쓒 쓓 쓔 쓕 쓖 쓗 쓘 쓙 쓚 쓛 쓜 쓝 쓞 쓟 쓠 쓡 쓢 쓣 쓤 쓥 쓦 쓧 쓨 쓩 쓪 쓫 쓬 쓭 쓮 쓯 쓰 쓱 쓲 쓳 쓴 쓵 쓶 쓷 쓸 쓹 쓺 쓻 쓼 쓽 쓾 쓿 씀 씁 씂 씃 씄 씅 씆 씇 씈 씉 씊 씋 씌 씍 씎 씏 씐 씑 씒 씓 씔 씕 씖 씗 씘 씙 씚 씛 씜 씝 씞 씟 씠 씡 씢 씣 씤 씥 씦 씧 씨 씩 씪 씫 씬 씭 씮 씯 씰 씱 씲 씳 씴 씵 씶 씷 씸 씹 씺 씻 씼 씽 씾 씿 앀 앁 앂 앃 아 악 앆 앇 안 앉 않 앋 알 앍 앎 앏 앐 앑 앒 앓 암 압 앖 앗 았 앙 앚 앛 앜 앝 앞 앟 애 액 앢 앣 앤 앥 앦 앧 앨 앩 앪 앫 앬 앭 앮 앯 앰 앱 앲 앳 앴 앵 앶 앷 앸 앹 앺 앻 야 약 앾 앿 얀 얁 얂 얃 얄 얅 얆 얇 얈 얉 얊 얋 얌 얍 얎 얏 얐 양 얒 얓 얔 얕 얖 얗 얘 얙 얚 얛 얜 얝 얞 얟 얠 얡 얢 얣 얤 얥 얦 얧 얨 얩 얪 얫 얬 얭 얮 얯 얰 얱 얲 얳 어 억 얶 얷 언 얹 얺 얻 얼 얽 얾 얿 엀 엁 엂 엃 엄 업 없 엇 었 엉 엊 엋 엌 엍 엎 엏 에 엑 엒 엓 엔 엕 엖 엗 엘 엙 엚 엛 엜 엝 엞 엟 엠 엡 엢 엣 엤 엥 엦 엧 엨 엩 엪 엫 여 역 엮 엯 연 엱 엲 엳 열 엵 엶 엷 엸 엹 엺 엻 염 엽 엾 엿 였 영 옂 옃 옄 옅 옆 옇 예 옉 옊 옋 옌 옍 옎 옏 옐 옑 옒 옓 옔 옕 옖 옗 옘 옙 옚 옛 옜 옝 옞 옟 옠 옡 옢 옣 오 옥 옦 옧 온 옩 옪 옫 올 옭 옮 옯 옰 옱 옲 옳 옴 옵 옶 옷 옸 옹 옺 옻 옼 옽 옾 옿 와 왁 왂 왃 완 왅 왆 왇 왈 왉 왊 왋 왌 왍 왎 왏 왐 왑 왒 왓 왔 왕 왖 왗 왘 왙 왚 왛 왜 왝 왞 왟 왠 왡 왢 왣 왤 왥 왦 왧 왨 왩 왪 왫 왬 왭 왮 왯 왰 왱 왲 왳 왴 왵 왶 왷 외 왹 왺 왻 왼 왽 왾 왿 욀 욁 욂 욃 욄 욅 욆 욇 욈 욉 욊 욋 욌 욍 욎 욏 욐 욑 욒 욓 요 욕 욖 욗 욘 욙 욚 욛 욜 욝 욞 욟 욠 욡 욢 욣 욤 욥 욦 욧 욨 용 욪 욫 욬 욭 욮 욯 우 욱 욲 욳 운 욵 욶 욷 울 욹 욺 욻 욼 욽 욾 욿 움 웁 웂 웃 웄 웅 웆 웇 웈 웉 웊 웋 워 웍 웎 웏 원 웑 웒 웓 월 웕 웖 웗 웘 웙 웚 웛 웜 웝 웞 웟 웠 웡 웢 웣 웤 웥 웦 웧 웨 웩 웪 웫 웬 웭 웮 웯 웰 웱 웲 웳 웴 웵 웶 웷 웸 웹 웺 웻 웼 웽 웾 웿 윀 윁 윂 윃 위 윅 윆 윇 윈 윉 윊 윋 윌 윍 윎 윏 윐 윑 윒 윓 윔 윕 윖 윗 윘 윙 윚 윛 윜 윝 윞 윟 유 육 윢 윣 윤 윥 윦 윧 율 윩 윪 윫 윬 윭 윮 윯 윰 윱 윲 윳 윴 융 윶 윷 윸 윹 윺 윻 으 윽 윾 윿 은 읁 읂 읃 을 읅 읆 읇 읈 읉 읊 읋 음 읍 읎 읏 읐 응 읒 읓 읔 읕 읖 읗 의 읙 읚 읛 읜 읝 읞 읟 읠 읡 읢 읣 읤 읥 읦 읧 읨 읩 읪 읫 읬 읭 읮 읯 읰 읱 읲 읳 이 익 읶 읷 인 읹 읺 읻 일 읽 읾 읿 잀 잁 잂 잃 임 입 잆 잇 있 잉 잊 잋 잌 잍 잎 잏 자 작 잒 잓 잔 잕 잖 잗 잘 잙 잚 잛 잜 잝 잞 잟 잠 잡 잢 잣 잤 장 잦 잧 잨 잩 잪 잫 재 잭 잮 잯 잰 잱 잲 잳 잴 잵 잶 잷 잸 잹 잺 잻 잼 잽 잾 잿 쟀 쟁 쟂 쟃 쟄 쟅 쟆 쟇 쟈 쟉 쟊 쟋 쟌 쟍 쟎 쟏 쟐 쟑 쟒 쟓 쟔 쟕 쟖 쟗 쟘 쟙 쟚 쟛 쟜 쟝 쟞 쟟 쟠 쟡 쟢 쟣 쟤 쟥 쟦 쟧 쟨 쟩 쟪 쟫 쟬 쟭 쟮 쟯 쟰 쟱 쟲 쟳 쟴 쟵 쟶 쟷 쟸 쟹 쟺 쟻 쟼 쟽 쟾 쟿 저 적 젂 젃 전 젅 젆 젇 절 젉 젊 젋 젌 젍 젎 젏 점 접 젒 젓 젔 정 젖 젗 젘 젙 젚 젛 제 젝 젞 젟 젠 젡 젢 젣 젤 젥 젦 젧 젨 젩 젪 젫 젬 젭 젮 젯 젰 젱 젲 젳 젴 젵 젶 젷 져 젹 젺 젻 젼 젽 젾 젿 졀 졁 졂 졃 졄 졅 졆 졇 졈 졉 졊 졋 졌 졍 졎 졏 졐 졑 졒 졓 졔 졕 졖 졗 졘 졙 졚 졛 졜 졝 졞 졟 졠 졡 졢 졣 졤 졥 졦 졧 졨 졩 졪 졫 졬 졭 졮 졯 조 족 졲 졳 존 졵 졶 졷 졸 졹 졺 졻 졼 졽 졾 졿 좀 좁 좂 좃 좄 종 좆 좇 좈 좉 좊 좋 좌 좍 좎 좏 좐 좑 좒 좓 좔 좕 좖 좗 좘 좙 좚 좛 좜 좝 좞 좟 좠 좡 좢 좣 좤 좥 좦 좧 좨 좩 좪 좫 좬 좭 좮 좯 좰 좱 좲 좳 좴 좵 좶 좷 좸 좹 좺 좻 좼 좽 좾 좿 죀 죁 죂 죃 죄 죅 죆 죇 죈 죉 죊 죋 죌 죍 죎 죏 죐 죑 죒 죓 죔 죕 죖 죗 죘 죙 죚 죛 죜 죝 죞 죟 죠 죡 죢 죣 죤 죥 죦 죧 죨 죩 죪 죫 죬 죭 죮 죯 죰 죱 죲 죳 죴 죵 죶 죷 죸 죹 죺 죻 주 죽 죾 죿 준 줁 줂 줃 줄 줅 줆 줇 줈 줉 줊 줋 줌 줍 줎 줏 줐 중 줒 줓 줔 줕 줖 줗 줘 줙 줚 줛 줜 줝 줞 줟 줠 줡 줢 줣 줤 줥 줦 줧 줨 줩 줪 줫 줬 줭 줮 줯 줰 줱 줲 줳 줴 줵 줶 줷 줸 줹 줺 줻 줼 줽 줾 줿 쥀 쥁 쥂 쥃 쥄 쥅 쥆 쥇 쥈 쥉 쥊 쥋 쥌 쥍 쥎 쥏 쥐 쥑 쥒 쥓 쥔 쥕 쥖 쥗 쥘 쥙 쥚 쥛 쥜 쥝 쥞 쥟 쥠 쥡 쥢 쥣 쥤 쥥 쥦 쥧 쥨 쥩 쥪 쥫 쥬 쥭 쥮 쥯 쥰 쥱 쥲 쥳 쥴 쥵 쥶 쥷 쥸 쥹 쥺 쥻 쥼 쥽 쥾 쥿 즀 즁 즂 즃 즄 즅 즆 즇 즈 즉 즊 즋 즌 즍 즎 즏 즐 즑 즒 즓 즔 즕 즖 즗 즘 즙 즚 즛 즜 증 즞 즟 즠 즡 즢 즣 즤 즥 즦 즧 즨 즩 즪 즫 즬 즭 즮 즯 즰 즱 즲 즳 즴 즵 즶 즷 즸 즹 즺 즻 즼 즽 즾 즿 지 직 짂 짃 진 짅 짆 짇 질 짉 짊 짋 짌 짍 짎 짏 짐 집 짒 짓 짔 징 짖 짗 짘 짙 짚 짛 짜 짝 짞 짟 짠 짡 짢 짣 짤 짥 짦 짧 짨 짩 짪 짫 짬 짭 짮 짯 짰 짱 짲 짳 짴 짵 짶 짷 째 짹 짺 짻 짼 짽 짾 짿 쨀 쨁 쨂 쨃 쨄 쨅 쨆 쨇 쨈 쨉 쨊 쨋 쨌 쨍 쨎 쨏 쨐 쨑 쨒 쨓 쨔 쨕 쨖 쨗 쨘 쨙 쨚 쨛 쨜 쨝 쨞 쨟 쨠 쨡 쨢 쨣 쨤 쨥 쨦 쨧 쨨 쨩 쨪 쨫 쨬 쨭 쨮 쨯 쨰 쨱 쨲 쨳 쨴 쨵 쨶 쨷 쨸 쨹 쨺 쨻 쨼 쨽 쨾 쨿 쩀 쩁 쩂 쩃 쩄 쩅 쩆 쩇 쩈 쩉 쩊 쩋 쩌 쩍 쩎 쩏 쩐 쩑 쩒 쩓 쩔 쩕 쩖 쩗 쩘 쩙 쩚 쩛 쩜 쩝 쩞 쩟 쩠 쩡 쩢 쩣 쩤 쩥 쩦 쩧 쩨 쩩 쩪 쩫 쩬 쩭 쩮 쩯 쩰 쩱 쩲 쩳 쩴 쩵 쩶 쩷 쩸 쩹 쩺 쩻 쩼 쩽 쩾 쩿 쪀 쪁 쪂 쪃 쪄 쪅 쪆 쪇 쪈 쪉 쪊 쪋 쪌 쪍 쪎 쪏 쪐 쪑 쪒 쪓 쪔 쪕 쪖 쪗 쪘 쪙 쪚 쪛 쪜 쪝 쪞 쪟 쪠 쪡 쪢 쪣 쪤 쪥 쪦 쪧 쪨 쪩 쪪 쪫 쪬 쪭 쪮 쪯 쪰 쪱 쪲 쪳 쪴 쪵 쪶 쪷 쪸 쪹 쪺 쪻 쪼 쪽 쪾 쪿 쫀 쫁 쫂 쫃 쫄 쫅 쫆 쫇 쫈 쫉 쫊 쫋 쫌 쫍 쫎 쫏 쫐 쫑 쫒 쫓 쫔 쫕 쫖 쫗 쫘 쫙 쫚 쫛 쫜 쫝 쫞 쫟 쫠 쫡 쫢 쫣 쫤 쫥 쫦 쫧 쫨 쫩 쫪 쫫 쫬 쫭 쫮 쫯 쫰 쫱 쫲 쫳 쫴 쫵 쫶 쫷 쫸 쫹 쫺 쫻 쫼 쫽 쫾 쫿 쬀 쬁 쬂 쬃 쬄 쬅 쬆 쬇 쬈 쬉 쬊 쬋 쬌 쬍 쬎 쬏 쬐 쬑 쬒 쬓 쬔 쬕 쬖 쬗 쬘 쬙 쬚 쬛 쬜 쬝 쬞 쬟 쬠 쬡 쬢 쬣 쬤 쬥 쬦 쬧 쬨 쬩 쬪 쬫 쬬 쬭 쬮 쬯 쬰 쬱 쬲 쬳 쬴 쬵 쬶 쬷 쬸 쬹 쬺 쬻 쬼 쬽 쬾 쬿 쭀 쭁 쭂 쭃 쭄 쭅 쭆 쭇 쭈 쭉 쭊 쭋 쭌 쭍 쭎 쭏 쭐 쭑 쭒 쭓 쭔 쭕 쭖 쭗 쭘 쭙 쭚 쭛 쭜 쭝 쭞 쭟 쭠 쭡 쭢 쭣 쭤 쭥 쭦 쭧 쭨 쭩 쭪 쭫 쭬 쭭 쭮 쭯 쭰 쭱 쭲 쭳 쭴 쭵 쭶 쭷 쭸 쭹 쭺 쭻 쭼 쭽 쭾 쭿 쮀 쮁 쮂 쮃 쮄 쮅 쮆 쮇 쮈 쮉 쮊 쮋 쮌 쮍 쮎 쮏 쮐 쮑 쮒 쮓 쮔 쮕 쮖 쮗 쮘 쮙 쮚 쮛 쮜 쮝 쮞 쮟 쮠 쮡 쮢 쮣 쮤 쮥 쮦 쮧 쮨 쮩 쮪 쮫 쮬 쮭 쮮 쮯 쮰 쮱 쮲 쮳 쮴 쮵 쮶 쮷 쮸 쮹 쮺 쮻 쮼 쮽 쮾 쮿 쯀 쯁 쯂 쯃 쯄 쯅 쯆 쯇 쯈 쯉 쯊 쯋 쯌 쯍 쯎 쯏 쯐 쯑 쯒 쯓 쯔 쯕 쯖 쯗 쯘 쯙 쯚 쯛 쯜 쯝 쯞 쯟 쯠 쯡 쯢 쯣 쯤 쯥 쯦 쯧 쯨 쯩 쯪 쯫 쯬 쯭 쯮 쯯 쯰 쯱 쯲 쯳 쯴 쯵 쯶 쯷 쯸 쯹 쯺 쯻 쯼 쯽 쯾 쯿 찀 찁 찂 찃 찄 찅 찆 찇 찈 찉 찊 찋 찌 찍 찎 찏 찐 찑 찒 찓 찔 찕 찖 찗 찘 찙 찚 찛 찜 찝 찞 찟 찠 찡 찢 찣 찤 찥 찦 찧 차 착 찪 찫 찬 찭 찮 찯 찰 찱 찲 찳 찴 찵 찶 찷 참 찹 찺 찻 찼 창 찾 찿 챀 챁 챂 챃 채 책 챆 챇 챈 챉 챊 챋 챌 챍 챎 챏 챐 챑 챒 챓 챔 챕 챖 챗 챘 챙 챚 챛 챜 챝 챞 챟 챠 챡 챢 챣 챤 챥 챦 챧 챨 챩 챪 챫 챬 챭 챮 챯 챰 챱 챲 챳 챴 챵 챶 챷 챸 챹 챺 챻 챼 챽 챾 챿 첀 첁 첂 첃 첄 첅 첆 첇 첈 첉 첊 첋 첌 첍 첎 첏 첐 첑 첒 첓 첔 첕 첖 첗 처 척 첚 첛 천 첝 첞 첟 철 첡 첢 첣 첤 첥 첦 첧 첨 첩 첪 첫 첬 청 첮 첯 첰 첱 첲 첳 체 첵 첶 첷 첸 첹 첺 첻 첼 첽 첾 첿 쳀 쳁 쳂 쳃 쳄 쳅 쳆 쳇 쳈 쳉 쳊 쳋 쳌 쳍 쳎 쳏 쳐 쳑 쳒 쳓 쳔 쳕 쳖 쳗 쳘 쳙 쳚 쳛 쳜 쳝 쳞 쳟 쳠 쳡 쳢 쳣 쳤 쳥 쳦 쳧 쳨 쳩 쳪 쳫 쳬 쳭 쳮 쳯 쳰 쳱 쳲 쳳 쳴 쳵 쳶 쳷 쳸 쳹 쳺 쳻 쳼 쳽 쳾 쳿 촀 촁 촂 촃 촄 촅 촆 촇 초 촉 촊 촋 촌 촍 촎 촏 촐 촑 촒 촓 촔 촕 촖 촗 촘 촙 촚 촛 촜 총 촞 촟 촠 촡 촢 촣 촤 촥 촦 촧 촨 촩 촪 촫 촬 촭 촮 촯 촰 촱 촲 촳 촴 촵 촶 촷 촸 촹 촺 촻 촼 촽 촾 촿 쵀 쵁 쵂 쵃 쵄 쵅 쵆 쵇 쵈 쵉 쵊 쵋 쵌 쵍 쵎 쵏 쵐 쵑 쵒 쵓 쵔 쵕 쵖 쵗 쵘 쵙 쵚 쵛 최 쵝 쵞 쵟 쵠 쵡 쵢 쵣 쵤 쵥 쵦 쵧 쵨 쵩 쵪 쵫 쵬 쵭 쵮 쵯 쵰 쵱 쵲 쵳 쵴 쵵 쵶 쵷 쵸 쵹 쵺 쵻 쵼 쵽 쵾 쵿 춀 춁 춂 춃 춄 춅 춆 춇 춈 춉 춊 춋 춌 춍 춎 춏 춐 춑 춒 춓 추 축 춖 춗 춘 춙 춚 춛 출 춝 춞 춟 춠 춡 춢 춣 춤 춥 춦 춧 춨 충 춪 춫 춬 춭 춮 춯 춰 춱 춲 춳 춴 춵 춶 춷 춸 춹 춺 춻 춼 춽 춾 춿 췀 췁 췂 췃 췄 췅 췆 췇 췈 췉 췊 췋 췌 췍 췎 췏 췐 췑 췒 췓 췔 췕 췖 췗 췘 췙 췚 췛 췜 췝 췞 췟 췠 췡 췢 췣 췤 췥 췦 췧 취 췩 췪 췫 췬 췭 췮 췯 췰 췱 췲 췳 췴 췵 췶 췷 췸 췹 췺 췻 췼 췽 췾 췿 츀 츁 츂 츃 츄 츅 츆 츇 츈 츉 츊 츋 츌 츍 츎 츏 츐 츑 츒 츓 츔 츕 츖 츗 츘 츙 츚 츛 츜 츝 츞 츟 츠 측 츢 츣 츤 츥 츦 츧 츨 츩 츪 츫 츬 츭 츮 츯 츰 츱 츲 츳 츴 층 츶 츷 츸 츹 츺 츻 츼 츽 츾 츿 칀 칁 칂 칃 칄 칅 칆 칇 칈 칉 칊 칋 칌 칍 칎 칏 칐 칑 칒 칓 칔 칕 칖 칗 치 칙 칚 칛 친 칝 칞 칟 칠 칡 칢 칣 칤 칥 칦 칧 침 칩 칪 칫 칬 칭 칮 칯 칰 칱 칲 칳 카 칵 칶 칷 칸 칹 칺 칻 칼 칽 칾 칿 캀 캁 캂 캃 캄 캅 캆 캇 캈 캉 캊 캋 캌 캍 캎 캏 캐 캑 캒 캓 캔 캕 캖 캗 캘 캙 캚 캛 캜 캝 캞 캟 캠 캡 캢 캣 캤 캥 캦 캧 캨 캩 캪 캫 캬 캭 캮 캯 캰 캱 캲 캳 캴 캵 캶 캷 캸 캹 캺 캻 캼 캽 캾 캿 컀 컁 컂 컃 컄 컅 컆 컇 컈 컉 컊 컋 컌 컍 컎 컏 컐 컑 컒 컓 컔 컕 컖 컗 컘 컙 컚 컛 컜 컝 컞 컟 컠 컡 컢 컣 커 컥 컦 컧 컨 컩 컪 컫 컬 컭 컮 컯 컰 컱 컲 컳 컴 컵 컶 컷 컸 컹 컺 컻 컼 컽 컾 컿 케 켁 켂 켃 켄 켅 켆 켇 켈 켉 켊 켋 켌 켍 켎 켏 켐 켑 켒 켓 켔 켕 켖 켗 켘 켙 켚 켛 켜 켝 켞 켟 켠 켡 켢 켣 켤 켥 켦 켧 켨 켩 켪 켫 켬 켭 켮 켯 켰 켱 켲 켳 켴 켵 켶 켷 켸 켹 켺 켻 켼 켽 켾 켿 콀 콁 콂 콃 콄 콅 콆 콇 콈 콉 콊 콋 콌 콍 콎 콏 콐 콑 콒 콓 코 콕 콖 콗 콘 콙 콚 콛 콜 콝 콞 콟 콠 콡 콢 콣 콤 콥 콦 콧 콨 콩 콪 콫 콬 콭 콮 콯 콰 콱 콲 콳 콴 콵 콶 콷 콸 콹 콺 콻 콼 콽 콾 콿 쾀 쾁 쾂 쾃 쾄 쾅 쾆 쾇 쾈 쾉 쾊 쾋 쾌 쾍 쾎 쾏 쾐 쾑 쾒 쾓 쾔 쾕 쾖 쾗 쾘 쾙 쾚 쾛 쾜 쾝 쾞 쾟 쾠 쾡 쾢 쾣 쾤 쾥 쾦 쾧 쾨 쾩 쾪 쾫 쾬 쾭 쾮 쾯 쾰 쾱 쾲 쾳 쾴 쾵 쾶 쾷 쾸 쾹 쾺 쾻 쾼 쾽 쾾 쾿 쿀 쿁 쿂 쿃 쿄 쿅 쿆 쿇 쿈 쿉 쿊 쿋 쿌 쿍 쿎 쿏 쿐 쿑 쿒 쿓 쿔 쿕 쿖 쿗 쿘 쿙 쿚 쿛 쿜 쿝 쿞 쿟 쿠 쿡 쿢 쿣 쿤 쿥 쿦 쿧 쿨 쿩 쿪 쿫 쿬 쿭 쿮 쿯 쿰 쿱 쿲 쿳 쿴 쿵 쿶 쿷 쿸 쿹 쿺 쿻 쿼 쿽 쿾 쿿 퀀 퀁 퀂 퀃 퀄 퀅 퀆 퀇 퀈 퀉 퀊 퀋 퀌 퀍 퀎 퀏 퀐 퀑 퀒 퀓 퀔 퀕 퀖 퀗 퀘 퀙 퀚 퀛 퀜 퀝 퀞 퀟 퀠 퀡 퀢 퀣 퀤 퀥 퀦 퀧 퀨 퀩 퀪 퀫 퀬 퀭 퀮 퀯 퀰 퀱 퀲 퀳 퀴 퀵 퀶 퀷 퀸 퀹 퀺 퀻 퀼 퀽 퀾 퀿 큀 큁 큂 큃 큄 큅 큆 큇 큈 큉 큊 큋 큌 큍 큎 큏 큐 큑 큒 큓 큔 큕 큖 큗 큘 큙 큚 큛 큜 큝 큞 큟 큠 큡 큢 큣 큤 큥 큦 큧 큨 큩 큪 큫 크 큭 큮 큯 큰 큱 큲 큳 클 큵 큶 큷 큸 큹 큺 큻 큼 큽 큾 큿 킀 킁 킂 킃 킄 킅 킆 킇 킈 킉 킊 킋 킌 킍 킎 킏 킐 킑 킒 킓 킔 킕 킖 킗 킘 킙 킚 킛 킜 킝 킞 킟 킠 킡 킢 킣 키 킥 킦 킧 킨 킩 킪 킫 킬 킭 킮 킯 킰 킱 킲 킳 킴 킵 킶 킷 킸 킹 킺 킻 킼 킽 킾 킿 타 탁 탂 탃 탄 탅 탆 탇 탈 탉 탊 탋 탌 탍 탎 탏 탐 탑 탒 탓 탔 탕 탖 탗 탘 탙 탚 탛 태 택 탞 탟 탠 탡 탢 탣 탤 탥 탦 탧 탨 탩 탪 탫 탬 탭 탮 탯 탰 탱 탲 탳 탴 탵 탶 탷 탸 탹 탺 탻 탼 탽 탾 탿 턀 턁 턂 턃 턄 턅 턆 턇 턈 턉 턊 턋 턌 턍 턎 턏 턐 턑 턒 턓 턔 턕 턖 턗 턘 턙 턚 턛 턜 턝 턞 턟 턠 턡 턢 턣 턤 턥 턦 턧 턨 턩 턪 턫 턬 턭 턮 턯 터 턱 턲 턳 턴 턵 턶 턷 털 턹 턺 턻 턼 턽 턾 턿 텀 텁 텂 텃 텄 텅 텆 텇 텈 텉 텊 텋 테 텍 텎 텏 텐 텑 텒 텓 텔 텕 텖 텗 텘 텙 텚 텛 템 텝 텞 텟 텠 텡 텢 텣 텤 텥 텦 텧 텨 텩 텪 텫 텬 텭 텮 텯 텰 텱 텲 텳 텴 텵 텶 텷 텸 텹 텺 텻 텼 텽 텾 텿 톀 톁 톂 톃 톄 톅 톆 톇 톈 톉 톊 톋 톌 톍 톎 톏 톐 톑 톒 톓 톔 톕 톖 톗 톘 톙 톚 톛 톜 톝 톞 톟 토 톡 톢 톣 톤 톥 톦 톧 톨 톩 톪 톫 톬 톭 톮 톯 톰 톱 톲 톳 톴 통 톶 톷 톸 톹 톺 톻 톼 톽 톾 톿 퇀 퇁 퇂 퇃 퇄 퇅 퇆 퇇 퇈 퇉 퇊 퇋 퇌 퇍 퇎 퇏 퇐 퇑 퇒 퇓 퇔 퇕 퇖 퇗 퇘 퇙 퇚 퇛 퇜 퇝 퇞 퇟 퇠 퇡 퇢 퇣 퇤 퇥 퇦 퇧 퇨 퇩 퇪 퇫 퇬 퇭 퇮 퇯 퇰 퇱 퇲 퇳 퇴 퇵 퇶 퇷 퇸 퇹 퇺 퇻 퇼 퇽 퇾 퇿 툀 툁 툂 툃 툄 툅 툆 툇 툈 툉 툊 툋 툌 툍 툎 툏 툐 툑 툒 툓 툔 툕 툖 툗 툘 툙 툚 툛 툜 툝 툞 툟 툠 툡 툢 툣 툤 툥 툦 툧 툨 툩 툪 툫 투 툭 툮 툯 툰 툱 툲 툳 툴 툵 툶 툷 툸 툹 툺 툻 툼 툽 툾 툿 퉀 퉁 퉂 퉃 퉄 퉅 퉆 퉇 퉈 퉉 퉊 퉋 퉌 퉍 퉎 퉏 퉐 퉑 퉒 퉓 퉔 퉕 퉖 퉗 퉘 퉙 퉚 퉛 퉜 퉝 퉞 퉟 퉠 퉡 퉢 퉣 퉤 퉥 퉦 퉧 퉨 퉩 퉪 퉫 퉬 퉭 퉮 퉯 퉰 퉱 퉲 퉳 퉴 퉵 퉶 퉷 퉸 퉹 퉺 퉻 퉼 퉽 퉾 퉿 튀 튁 튂 튃 튄 튅 튆 튇 튈 튉 튊 튋 튌 튍 튎 튏 튐 튑 튒 튓 튔 튕 튖 튗 튘 튙 튚 튛 튜 튝 튞 튟 튠 튡 튢 튣 튤 튥 튦 튧 튨 튩 튪 튫 튬 튭 튮 튯 튰 튱 튲 튳 튴 튵 튶 튷 트 특 튺 튻 튼 튽 튾 튿 틀 틁 틂 틃 틄 틅 틆 틇 틈 틉 틊 틋 틌 틍 틎 틏 틐 틑 틒 틓 틔 틕 틖 틗 틘 틙 틚 틛 틜 틝 틞 틟 틠 틡 틢 틣 틤 틥 틦 틧 틨 틩 틪 틫 틬 틭 틮 틯 티 틱 틲 틳 틴 틵 틶 틷 틸 틹 틺 틻 틼 틽 틾 틿 팀 팁 팂 팃 팄 팅 팆 팇 팈 팉 팊 팋 파 팍 팎 팏 판 팑 팒 팓 팔 팕 팖 팗 팘 팙 팚 팛 팜 팝 팞 팟 팠 팡 팢 팣 팤 팥 팦 팧 패 팩 팪 팫 팬 팭 팮 팯 팰 팱 팲 팳 팴 팵 팶 팷 팸 팹 팺 팻 팼 팽 팾 팿 퍀 퍁 퍂 퍃 퍄 퍅 퍆 퍇 퍈 퍉 퍊 퍋 퍌 퍍 퍎 퍏 퍐 퍑 퍒 퍓 퍔 퍕 퍖 퍗 퍘 퍙 퍚 퍛 퍜 퍝 퍞 퍟 퍠 퍡 퍢 퍣 퍤 퍥 퍦 퍧 퍨 퍩 퍪 퍫 퍬 퍭 퍮 퍯 퍰 퍱 퍲 퍳 퍴 퍵 퍶 퍷 퍸 퍹 퍺 퍻 퍼 퍽 퍾 퍿 펀 펁 펂 펃 펄 펅 펆 펇 펈 펉 펊 펋 펌 펍 펎 펏 펐 펑 펒 펓 펔 펕 펖 펗 페 펙 펚 펛 펜 펝 펞 펟 펠 펡 펢 펣 펤 펥 펦 펧 펨 펩 펪 펫 펬 펭 펮 펯 펰 펱 펲 펳 펴 펵 펶 펷 편 펹 펺 펻 펼 펽 펾 펿 폀 폁 폂 폃 폄 폅 폆 폇 폈 평 폊 폋 폌 폍 폎 폏 폐 폑 폒 폓 폔 폕 폖 폗 폘 폙 폚 폛 폜 폝 폞 폟 폠 폡 폢 폣 폤 폥 폦 폧 폨 폩 폪 폫 포 폭 폮 폯 폰 폱 폲 폳 폴 폵 폶 폷 폸 폹 폺 폻 폼 폽 폾 폿 퐀 퐁 퐂 퐃 퐄 퐅 퐆 퐇 퐈 퐉 퐊 퐋 퐌 퐍 퐎 퐏 퐐 퐑 퐒 퐓 퐔 퐕 퐖 퐗 퐘 퐙 퐚 퐛 퐜 퐝 퐞 퐟 퐠 퐡 퐢 퐣 퐤 퐥 퐦 퐧 퐨 퐩 퐪 퐫 퐬 퐭 퐮 퐯 퐰 퐱 퐲 퐳 퐴 퐵 퐶 퐷 퐸 퐹 퐺 퐻 퐼 퐽 퐾 퐿 푀 푁 푂 푃 푄 푅 푆 푇 푈 푉 푊 푋 푌 푍 푎 푏 푐 푑 푒 푓 푔 푕 푖 푗 푘 푙 푚 푛 표 푝 푞 푟 푠 푡 푢 푣 푤 푥 푦 푧 푨 푩 푪 푫 푬 푭 푮 푯 푰 푱 푲 푳 푴 푵 푶 푷 푸 푹 푺 푻 푼 푽 푾 푿 풀 풁 풂 풃 풄 풅 풆 풇 품 풉 풊 풋 풌 풍 풎 풏 풐 풑 풒 풓 풔 풕 풖 풗 풘 풙 풚 풛 풜 풝 풞 풟 풠 풡 풢 풣 풤 풥 풦 풧 풨 풩 풪 풫 풬 풭 풮 풯 풰 풱 풲 풳 풴 풵 풶 풷 풸 풹 풺 풻 풼 풽 풾 풿 퓀 퓁 퓂 퓃 퓄 퓅 퓆 퓇 퓈 퓉 퓊 퓋 퓌 퓍 퓎 퓏 퓐 퓑 퓒 퓓 퓔 퓕 퓖 퓗 퓘 퓙 퓚 퓛 퓜 퓝 퓞 퓟 퓠 퓡 퓢 퓣 퓤 퓥 퓦 퓧 퓨 퓩 퓪 퓫 퓬 퓭 퓮 퓯 퓰 퓱 퓲 퓳 퓴 퓵 퓶 퓷 퓸 퓹 퓺 퓻 퓼 퓽 퓾 퓿 픀 픁 픂 픃 프 픅 픆 픇 픈 픉 픊 픋 플 픍 픎 픏 픐 픑 픒 픓 픔 픕 픖 픗 픘 픙 픚 픛 픜 픝 픞 픟 픠 픡 픢 픣 픤 픥 픦 픧 픨 픩 픪 픫 픬 픭 픮 픯 픰 픱 픲 픳 픴 픵 픶 픷 픸 픹 픺 픻 피 픽 픾 픿 핀 핁 핂 핃 필 핅 핆 핇 핈 핉 핊 핋 핌 핍 핎 핏 핐 핑 핒 핓 핔 핕 핖 핗 하 학 핚 핛 한 핝 핞 핟 할 핡 핢 핣 핤 핥 핦 핧 함 합 핪 핫 핬 항 핮 핯 핰 핱 핲 핳 해 핵 핶 핷 핸 핹 핺 핻 핼 핽 핾 핿 햀 햁 햂 햃 햄 햅 햆 햇 했 행 햊 햋 햌 햍 햎 햏 햐 햑 햒 햓 햔 햕 햖 햗 햘 햙 햚 햛 햜 햝 햞 햟 햠 햡 햢 햣 햤 향 햦 햧 햨 햩 햪 햫 햬 햭 햮 햯 햰 햱 햲 햳 햴 햵 햶 햷 햸 햹 햺 햻 햼 햽 햾 햿 헀 헁 헂 헃 헄 헅 헆 헇 허 헉 헊 헋 헌 헍 헎 헏 헐 헑 헒 헓 헔 헕 헖 헗 험 헙 헚 헛 헜 헝 헞 헟 헠 헡 헢 헣 헤 헥 헦 헧 헨 헩 헪 헫 헬 헭 헮 헯 헰 헱 헲 헳 헴 헵 헶 헷 헸 헹 헺 헻 헼 헽 헾 헿 혀 혁 혂 혃 현 혅 혆 혇 혈 혉 혊 혋 혌 혍 혎 혏 혐 협 혒 혓 혔 형 혖 혗 혘 혙 혚 혛 혜 혝 혞 혟 혠 혡 혢 혣 혤 혥 혦 혧 혨 혩 혪 혫 혬 혭 혮 혯 혰 혱 혲 혳 혴 혵 혶 혷 호 혹 혺 혻 혼 혽 혾 혿 홀 홁 홂 홃 홄 홅 홆 홇 홈 홉 홊 홋 홌 홍 홎 홏 홐 홑 홒 홓 화 확 홖 홗 환 홙 홚 홛 활 홝 홞 홟 홠 홡 홢 홣 홤 홥 홦 홧 홨 황 홪 홫 홬 홭 홮 홯 홰 홱 홲 홳 홴 홵 홶 홷 홸 홹 홺 홻 홼 홽 홾 홿 횀 횁 횂 횃 횄 횅 횆 횇 횈 횉 횊 횋 회 획 횎 횏 횐 횑 횒 횓 횔 횕 횖 횗 횘 횙 횚 횛 횜 횝 횞 횟 횠 횡 횢 횣 횤 횥 횦 횧 효 횩 횪 횫 횬 횭 횮 횯 횰 횱 횲 횳 횴 횵 횶 횷 횸 횹 횺 횻 횼 횽 횾 횿 훀 훁 훂 훃 후 훅 훆 훇 훈 훉 훊 훋 훌 훍 훎 훏 훐 훑 훒 훓 훔 훕 훖 훗 훘 훙 훚 훛 훜 훝 훞 훟 훠 훡 훢 훣 훤 훥 훦 훧 훨 훩 훪 훫 훬 훭 훮 훯 훰 훱 훲 훳 훴 훵 훶 훷 훸 훹 훺 훻 훼 훽 훾 훿 휀 휁 휂 휃 휄 휅 휆 휇 휈 휉 휊 휋 휌 휍 휎 휏 휐 휑 휒 휓 휔 휕 휖 휗 휘 휙 휚 휛 휜 휝 휞 휟 휠 휡 휢 휣 휤 휥 휦 휧 휨 휩 휪 휫 휬 휭 휮 휯 휰 휱 휲 휳 휴 휵 휶 휷 휸 휹 휺 휻 휼 휽 휾 휿 흀 흁 흂 흃 흄 흅 흆 흇 흈 흉 흊 흋 흌 흍 흎 흏 흐 흑 흒 흓 흔 흕 흖 흗 흘 흙 흚 흛 흜 흝 흞 흟 흠 흡 흢 흣 흤 흥 흦 흧 흨 흩 흪 흫 희 흭 흮 흯 흰 흱 흲 흳 흴 흵 흶 흷 흸 흹 흺 흻 흼 흽 흾 흿 힀 힁 힂 힃 힄 힅 힆 힇 히 힉 힊 힋 힌 힍 힎 힏 힐 힑 힒 힓 힔 힕 힖 힗 힘 힙 힚 힛 힜 힝 힞 힟 힠 힡 힢 힣



관련기사 :
http://www.s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81701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10715111629463&p=yonhap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1기 이세진

ⓒ온한글
이전 댓글 더보기
ㄷㅎ곡 | 2012.02.29 13:5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여기서 단어에 쓰이는 글자는 몇개지??.ㅋ
| 2012.03.23 18:25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李侖根 | 2012.05.17 14:52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하지만 대부분 발음할수없는 글자일텐데..즉 무의미함..
李侖根 | 2012.05.17 14:54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그리고 글자랑 표현이 많은거랑은 별개의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예를 들어 일본어나 영어가 한국어보다 표현력이 떨어지는 언어는 아니거든요..
곰팅이 | 2012.07.13 19:55 | PERMALINK | EDIT/DEL | REPLY
헐.ㅋㅋㅋㅋ
| 2012.08.05 10:01 | PERMALINK | EDIT/DEL | REPLY
머....머지?????
| 2012.08.06 11:57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2012.08.07 23:4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님 (한문을 몰라서 이렇게 적음) 일본어나 영어가 한국어보다 표현력이 떨어지는 언어는 아니지만, 한글의 장점은 바로 소리나는데로 적을 수가 있어서 쉽습니다. 예를들면 일본어로는 하늘을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고, 영어로는 하늘을 sky라고 적고 스카이라고 읽습니다. 하지만 한국어로는 하늘 이렇게 적고 하늘이라고 읽습니다. 그리고 영국, 미국이 한글에 가장 우수한 단어로 말하였습니다.^.^
한글의장점 | 2012.09.05 07:24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한글은 세상에있는거의 모든 소리를 쓸수있고 그리고 똑똑한 사람은 반나절이면 배워요.
BlogIcon 나2 | 2012.11.19 21:09 | PERMALINK | EDIT/DEL | REPLY
ㅇㅇㅇㅇㅇ
BlogIcon 나2 | 2012.11.19 21:1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위에 '나' 님, 우리는 한글을 사용하니까 영어를 '스카이'라고 읽는거죠, 미국에서는 'sky'라고 읽는다고 말합니다.
BlogIcon 나2 | 2012.11.19 21:1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영어로 표현할 수 있는 글자는 무한인데............
BlogIcon 버블파이터 | 2013.01.01 08:15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한글이표현할수있는글자 답:11172



BlogIcon 버블파이터 | 2013.01.01 08:15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한글이표현할수있는글자 답:11172



| 2013.01.01 08:18 | PERMALINK | EDIT/DEL
비밀댓글입니다
BlogIcon 버블파이터 | 2013.01.01 08:23 | PERMALINK | EDIT/DEL | REPLY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logIcon 버블파이터 | 2013.01.01 08:23 | PERMALINK | EDIT/DEL | REPLY
버블파이터하시는분
BlogIcon 버블파이터 | 2013.01.01 08:2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요
BlogIcon 버블파이터 | 2013.01.01 08:23 | PERMALINK | EDIT/DEL | REPLY
ㅋㅋㅋ






BlogIcon 안녕 | 2013.01.07 10:31 | PERMALINK | EDIT/DEL | REPLY
ㅇㄻㄻㄻㅇㄴㄻ ㅋㅋㅋㅋㅇㅇㅎㅇㅀㅇ론ㅁㅋㅋㅋㅋ
xdad | 2013.02.16 15:2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거 적은사람진심 대박이다 럽싨 잘못써서 신기한게뜨길래 여기와봣도ㅓ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1. 5. 9. 09:57
'왜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한번쯤은 궁금해하지 않으셨나요? 그 궁금증을 풀어줄 재미있는 책이 있어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색다른 구성의 역사서를 통해 훈민정음이 왜 탄생했는지에 대해 알아보세요!


@리브로


왜 세종 대왕은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최만리 VS 세종 대왕 /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이한우 글 | 이남고 그림 | (주)자음과모음 펴냄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ㆍ세계사법정> 시리즈는 역사 속에 라이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역사 이야기를 두고 원고와 피고, 증인 등이 되어 재판을 벌이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균형잡힌 시각과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학교 교과서에서 담고있는 해석과 함께 교과서와는 다른 해석과 생각들에 대해서도 수록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를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해주죠.



세종대왕 vs 최만리



법정에서 펼쳐지는 역사 이야기 '왜?'
24권「왜 세종 대왕은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는 조선 역사상 후대에게 가장 칭송 받는 왕인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했던 최만리에게 소송이 걸리면서 시작합니다. 흥미로운 가정속에 시작되는 책은 기본적으로 법정에서 변호사와 함께 두 사람이 자신의 견해에 대해 주고받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최만리가 세종대왕에게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했을 뿐인데 사대주의자로 낙인 찍힌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였죠. 이 과정에는 단순히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이 창제되었을 당시의 역사적 사실이나 외교적인 문제 등이 두루 담겨 있습니다.



@yes24




사대주의자 최만리, 훈민정음에 이의를 제기하다
세종 대왕은 조선 5백년 역사에서 가장 칭송받는 왕입니다. 훈민정음의 창제는 그의 수많은 업적 중 가장 위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세종 대왕에게 '감히 발칙하게' 고소장을 내밀었다는 것에서 책 내용은 시작합니다. 고소장을 내민 주인공은 바로 훈민정음의 창제를 반대했던 최만리, 그는 나라를 위해서 충언을 했을 뿐인데 사대주의자로 낙인찍혔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이 억울함을 풀겟다며 소송을 시작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훈민정음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졌는지, 당시 조선의 외교 관계는 어떠했는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역사도 배우고, 법정 모습도 알아보고… 일석이조!
이 책은 기본적으로 '훈민정음 창제'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지만, 법정 소송과정이라는 독특한 상황을 가정하였기 때문에 역사 뿐만 아니라 법정 모습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책이 무겁지는 않습니다. 책 중간중간에 짧은 카툰형식의 컷만화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법에 관련한 용어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주석을 통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yes24



교과서 속 견해에 대해서는 다시한번 강조하여 혼란 방지
이 책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담고있기 때문에 역사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는 있지만,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에 대비하여 이 책은 교과서에서 담고있는 견해에 대해서는 주석을 통해 교과서에서는 어떠한 시선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서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혼란은 주지않되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1기 이세진

ⓒ온한글
BlogIcon 해피프린팅 | 2011.10.07 10:15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한글날을 맞아 훈민정음이 창제된 과정을 되새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한글은 정말 자랑스런 유산인 것 같습니다!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1. 4. 28. 09:48
2011년 한반도에서 사용되고 있는 문자는 '한글' 입니다. 6백여년의 시간을 우리와 함께 동고동락해온 한글을 통해 지나간 조선의 역사를 돌아본다? 상당히 흥미롭지 않은가요. <조선언문실록>이 바로 그런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왕을 비롯하여 사대부와 왕실 여성,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이 사용한 한글들을 통해 예전의 한글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왜 '언문'일까
한글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훈민정음, 언문, 한글 등으로 다양하게 불렸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조선'언문'실록이 된 이유는 세종대왕이 새 문자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부터 <실록>에는 언문이라는 이름이 쓰였고, <실록>에 담긴 용어를 그대로 살린다는 의미로 제목에 훈민정음, 한글 대신 '언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언문실록>
1장 언문을 사랑한 임금
::새 문자를 만들어 널리 쓰다 / 한문 권력과 언문
::임진왜란과 선조의 언문 교서 / 왕실의 언문 교육
2장 사대부, 언문 편지를 쓰다
::관리가 되려면 언문을 익히라 / 비밀을 담은 언문 편지
::정음청 혁파 사건
3장 여성의 삶과 언문
::언문 연서의 비극 / 폐비 윤씨와 언문 투서
::왕대비의 언문 수렴청정 / 궁녀와 연애 편지
4장 배성의 소통범
::언문 상소로 억울함을 호소하다 / 언문 소설의 매력에 빠지다
::언문 익명서 사건 / 언문을 어떻게 배웠을까
5장 언문, 국문이 되다
::백성들이 읽을 수 있도록 언문으로 번역하라
::비밀문서는 언문으로 쓰라 / 국문의 탄생



언문에 대한 편견… 조선시대 당시 널리 보급되지 않았었다?
'언문'이라 하면 여러분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는지요? 세종대왕이 백성들을 어여삐여겨 만드신 한글이였지만, 처음부터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습니다. 한자를 선호하는 상류층들은 한자쓰기를 고집했기 때문이였죠. 저는 이러한 분위기가 조선시대가 끝날때까지 계속 지속되었다고 막연히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언문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었더군요. 


"이과(吏科)와 이전(吏典)의 취재(取才) 때에는 <훈민정음>도 아울러 시험해 뽑게 하돼,
비록 의리(義理)는 통하지 못하더라도 능히 합자(合字)하는 사람을 뽑게 하라."

<조선왕조실록> 세종 28년(1446) 12월 26일



세종대왕은 일반 백성뿐 아니라 사대부를 비롯한 지배 계층에서도 훈민정음이 통용되기를 바랐기때문에 과거 과목에 <훈민정음>을 포함시키라고 명했습니다. 하급관리인 서리를 선발하는 과목에서 <훈민정음>을 익히라는 명이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적어도 서리가 되려는 유생들은 훈민정음의 원리를 이해하고 운용하는 법을 알아야만 했으니, 훈민정음 보급을 위해서는 무척 효율적이면서도 강력한 정책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사진=오륜행실도] ⓒ네이버 백과사전



암호로 사용되었던 우리 문자 한글
이 책은 조선시대 속 다양한 계층, 다양한 상황에서 언문이 사용되었던 실제 예들을 생생하게 담아내어 읽는 내내흥미를 잃지 않도록 해주었는데요. 한글이 창제된 세종 25년부터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 때까지에 이르기까지 한글 관련 사건과 정책, 교서, 상소 등의 내용과 언문 편지로 비밀을 주고받은 사대부, 애절한 사랑을 담아 언문 연서를 담은 여인과 언문 상소로 억울함을 전한 백성들 등의 모습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언문은 결코 천대받은 글이 아니라 의사소통의 귀중한 도구였으며 이미 많은 이들에게 사용되어 왔다는 점을 알 수 있었죠. 

훈민정음의 보급을 위해 애쓰신 세종대왕의 일화 외에도 언문을 암호로 사용했던 이야기가 매우 재미있었는데요.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2년 9월, 함경도로 피난 갔던 두 왕자 임해군과 순화군이 적장에 잡혀 포로가 되자 선조는 왕자들을 구출할 궁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비변사에서는 왜적을 이간시킬 계책을 임금에게 아룄는데, 왜인들이 알지 못하도록 언문으로 편지를 써 보낸다는 대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언문은 우리의 의사소통 역할 뿐만 아니라 암호와 같은 비밀 문자의 역할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죠.


조선시대 한글에 대한 편견을 깨고 새로운 시각을 열 수 있는 책
책 <조선언문실록>은 조선시대에 한글이 어떻게 쓰여왔는지를 알 수 있는 새로운 역사서입니다. 한글의 역사를 다룬 책도, 아예 역사적인 부분만을 다룬것도 아니지만 역사 속에서 볼 수 있는 한글의 흔적들을 통해 그 당시 한글의 역할을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해줍니다.

막연하게 '한글이 탄생한 이후에도 조선시대에는 한자사용을 더 선호했다'고 생각하는 편견을 깨고 조선시대 속 언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내용이 그리 무거운 편도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을 수 있습니다.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1기 이세진

ⓒ온한글

언문이라.. | 2011.04.28 23:2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어떤 분이 말씀하시길, 그 '언문'이란 호칭은 한글을 낮잡아 보르는 호칭이었다고도 하던 데..
그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 분 말씀마따나 한글을 낮잡아 보른 호칭이 '언문'이었습니까?

...

온한글에서 언문이라 호칭하기에 한번 물어보는 겁니다...
BlogIcon 이세진 | 2011.04.29 09:28 신고 | PERMALINK | EDIT/DEL
안녕하세요.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책에 '언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된 계기를 설명한 부분이 있어서 보여드릴게요. ^^

-
한글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훈민정음, 언문, 한글' 등으로 다양하게 불렸지만, 우리는 책의 제목을 '한글실록'이라 하지 않고 '언문실록'이라 붙였다. 세종대왕이 새 문자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부터 <실록>에는 '언문'이라는 이름이 쓰였기 때문이다.

물론 '언문'이라는 말이 언짢을 수도 있다. <실록>에서는 중국의 한자를 '문자'로 부르고 우리의 한글은 '언문'이라고 하고 있어 그 명칭 안에 한글에 대한 비하와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를 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실록>에 담긴 용어를 그대로 살린다는 뜻에서 '언문'을 사용하고 책 제목을 '조선언문실록'이라 하였다. 다만 본문에서는 '언문', '훈민정음', '한글'이라는 용어를 번갈아 사용하였다. 문맥에 따라 최적의 의미를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용어를 굳이 통일하지는 않았다.

- 조선언문실록 펼치는글 中...

(직접 타이핑했어요. 헥헥...ㅎ)


제가 생각하기에는..
중국의 황제와 조선의 왕... 뭐 이러한 개념과도 비슷한 부분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실제 사용되던 용어를 책에서 그대로 살리려다보니 '언문'이라는 용어도 혼용하게 된 것 같습니다.

다시한번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0. 12. 30. 09:31
21세기 세종대왕 프로젝트


'반크'라는 단체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 뭐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독도나 동해(east sea),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 등 우리나라의 역사나 지도상의 표기가 잘못되어있는 것을 정정하는 일들을 하는 것이 주로 생각나실 텐데요.


반크에서 '한글사랑'으로 '나라사랑'을 실천하는 활동이 있어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프로젝트명#. 21세기 세종대왕 프로젝트 http://sejong.prkorea.com/kor/main.jsp

지난해부터 시작된 이 활동은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가 세계인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한글을 알려나가는 21세기 세종대왕 프로젝트입니다. 한글을 바로 알릴 수 있는 인재를 '21세기 세종대왕'을 양성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웹사이트, 교과서, 백과사전 등에 한글에 대해 잘못 등재되어있는 부분들을 바로잡는 것이 바로 21세기 세종대왕 프로젝트의 주요 임무입니다.


세종대왕과 한글


21세기 세종대왕 활동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요.
1) 펜팔 친구를 사귀어서 한글과 세종대왕을 직접 알리는 맨투맨 홍보,
2)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블로그서비스의 블로그를 운영하는 방법,
3) 유투브와 같이 유명 UCC 사이트에 관련 UCC를 게재하는 방법,
4) 전세계 정부기관, 출판사, 웹사이트에 잘못된 정보에 대해 정정을 요구하는 활동 등이 있습니다.


활동1. 맨투맨홍보) http://chingu.prkorea.com/
활동2. 블로그홍보) http://ucc.prkorea.com/academi/column.jsp
활동3. 동영상홍보) http://ucc.prkorea.com/academi/column.jsp
활동4. 한글오류시정) http://sejong.prkorea.com/kor/error/error.jsp



잘못된 정보에 대해 정정요구를 하는 모습


실제로 많은 해외사이트에는 한국이 '한국어'라는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어'나 '일본어' 등을 사용한다고 잘못 게재되어있는 곳이 많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가 직접 '정정 요구'를 해야만 바뀔 수 있는 부분들입니다. 작은 노력들이 모여서 한글의 위상을 높여줄 수 있겠죠? 한글에 대한 애정으로 약간의 시간 투자만 한다면 동참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한국어와 한글에 대한 대표적인 해외 오류 사례를 살펴보면, 먼저 미국 정부 사이트(www.state.gov)는 "한국어는 일본어와 매우 유사하고, 문법적으로 중국어와 다르다"고 소개하고 있어 한국어가 마치 일본어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기술하고 있습니다. 또 세계 유명 백과사전 출판사인 인사이클로피디아(www. encyclopedia.com)와 내이션스인사이클로피디아(www. nationsencyclopedia. com) 등은 "한글은 중국 한자를 모방해 만들었다" 는 왜곡된 내용을 전하고 있는가 하면, 미국 CBS 방송의 공식홈페이지(www.cbs.com)는 '한국의 언어는 한국어와 영어'라고 표기하여 영어가 한국어와 함께 한국의 공식 언어인양 소개하고 있습니다.

출처 : http://sejong.prkorea.com/kor/business/business.jsp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1기 이세진

ⓒ온한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0. 9. 27. 09:30

오는 10월 9일은 한글날이 564돌을 맞는 날입니다. 한글이 이 땅 위에서 사용된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요즘같은 글로벌 세상에는 한글이 오직 '한반도'에서만 사용되지는 않죠. 해외에있는 동포들,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들, 혹은 한글을 차용하는 찌아찌아족 까지…)

그렇다면 한글은 처음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을 갖추고 있었을까요?

『동국정운(東國正韻), 1448년』에 쓰인 한글의 모습

처음 『훈민정음』에 보인 한글의 모습은 대부분 오늘날의 것과 일치하지만 얼마간은 달랐다고 합니다. 특히 오늘날의 ‘ㅏ, ㅗ, ㅓ, ㅜ’ 및 ‘ㅑ, ㅛ, ㅕ, ㅠ’가 ‘ㅣㆍ, ㆍㅡ’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ㅏ, ㅗ, ㅑ, ㅛ’ 등을 제자할 때 ‘ㅣ’와 ‘ㆍ’를, 또는 ‘ㅡ’와 ‘ㆍ’를 좌우, 또는 상하에 하나, 또는 두 개 결합하여 만든 것을 반영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시기에는 ‘ㆍ’가 완전한 원형으로 되어 있는 것도 특징적인데요. 거의 모든 획들이 직선이면서 그 모서리가 원필로 되어 있는 것도 후대 문헌에서와는 다른 부분입니다.


『석보상절(釋譜詳節), 1447년』과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1447년
독자적인 모음으로서의 ‘ㆍ’의 동그라미 모습이나 획의 모서리 모습은 계속 유지됩니다. 그러나 ‘ㅏ, ㅗ’ 등에서 ‘ㆍ’의 동그라미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오늘날의 모습이 이미 이 무렵에 완성된 것입니다. 

1459년에 간행된 『월인석보(月印釋譜)』부터는 ‘ㆍ’도 더 이상 동그라미 모양을 띠지 않게 되고 다른 획들도 모서리가 조금씩 사각으로 바뀌면서 부드러워집니다.



자모(字母) 수의 변화
창제 당시 28자라고 하였을 때는 ‘ㆍ’, ‘ㅿ’, ‘ㆆ’ 등이 쓰였던 것인데 후세에 이것들이 쓰이지 않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중고교시절 교과서에서 이러한 것을 한번쯤은 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또한 당시에는 ‘아’, ‘안’ 등에 음가 없이 쓰이는 ‘ㅇ’과 ‘강’, ‘풍’ 등에 쓰이는 ‘ㆁ’이 구별되어 있었는데 이 구별도 곧 없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초기에는 28자에는 들어 있지 않았으나 순경음 ‘ㅸ’도 활발히 쓰였는데 이것도 이내 사라지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해서 잠시 시험적으로 도입된 것이긴 하나 ‘ㅱ’도 쓰인 적이 있고 치음(齒音)을 ‘ᄼ, ᅎ, ᅔ와 ‘ᄾ, ᅐ, ᅕ로 구별하여 표기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된소리 표기의 변화
된소리 표기로 각자병서(各自竝書)라고 부른 ‘ㄲ, ㄸ, ㅃ’ 등이 그때에도 쓰이기는 하였으나 이들은 아주 한정된 경우에만 쓰였고, 오늘날 된소리인 것들은 대개 ‘ㅺ’, ‘ㅼ’, ‘ㅽ’처럼 ‘ㅅ’을 결합한 이른바 합용병서(合用竝書)로 표기하였다고 합니다.
‘ㅴ’나 ‘ㅵ’와 같이 세 자음을 결합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군요.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ㆅ’, ‘ㅥ', 'ㆀ'와 같은 결합도 사용하였었다고 하네요.


※자료출처 : http://www.hangeulmuseum.org/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1기 이세진

ⓒ 온한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0. 1. 29. 09:12

숨쉬는 것 만큼이나 우리는 한글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는 있지만, 한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한글의 과학적, 문화적, 역사적 가치 뿐만 아니라 디자인적 가치로도 각광받고 있는데요. 한글의 매력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는 책은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한글에 관심을 갖고 계신 여러분을 위해 한글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책 3권을 추천해드립니다.
신년을 맞아 책과 함께 한글의 매력에 푹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
(김슬옹,신준식 /  아이세움)



흔히 한글은 과학적인 문자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한글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글이 왜 과학적인가' 에 대해 명확히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근본적이지만 우리가 정확히 모르고 있는 한글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책이 바로 <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 입니다.

훈민정음의 역사를 시작으로 한글만의 독창성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한글의 매력을 샅샅히 살펴볼 수 있는 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이 책의 저자는 한글에 대해서 단순히 특정한 시대에 만들어져서 특정한 시대에만 사용된 한정적인 문자가 아니라, 컴퓨터 등 다양한 정보기기가 발전한 현대사회에서도 전혀 문화적 충돌 없이 사용될 수 있는 가장 세련되고 가치있는 문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글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최경봉,시정곤,박영준 / 책과함께)



<한글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이라는 책 제목 만큼이나 풍성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문자가 만들어지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이 문자를 보급하는 부분입니다. 이 책은 한글의 보급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도 상세히 담고 있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일본어 상용화 정책'으로 한글이 사라질 위기에 몰렸지만 한국인 정신이기도 한 한글이 어려운 시기를 꿋꿋히 이겨내며 21세기에도 변함없이 한국인의 글로 사용될 수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한글은 과학적인 문자체계로 컴퓨터 자판이나 핸드폰 자판에서도 편리함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어 소중하고 위대한 한글을 어떻게하면 더욱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볼 수 있는 책입니다.


한글 + 한글디자인 + 디자이너
(이용제 / 세미콜론)




<한글+한글디자인+디자이너>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한글의 디자인적 가치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한글 글꼴에 대한 연구와 디자인적으로 한글을 활용하는 범위가 하루가 다르게 넓어지고 있는 만큼 캘리그라피 등 다양해진 한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 
"한글 디자이너에게 윤리적 사명감은 중요합니다. 시장논리에 맞춰 싼 값으로 짧은 기간에 서체를 개발하면 우리 모두에게 손해거든요."



한글 디자인은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만큼 한글을 단순히 문자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얼마나 더 아름답게 한글을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1기 이세진

ⓒ 온한글
BlogIcon 김인호돼지박사 | 2010.01.29 10:1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좋은 내용 잘 보고 갑니다...
BlogIcon 온한글 | 2010.02.01 09:34 신고 | PERMALINK | EDIT/DEL
도움이 되셨다니 온한글도 보람찹니다.

자주 놀러와주세요^^
BlogIcon 이세진 | 2010.02.15 22:15 신고 | PERMALINK | EDIT/DEL
감사합니다^^
BlogIcon 호모구거투스 | 2010.02.09 21:53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읽고 싶은 책 위시리스트에 추가했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BlogIcon 온한글 | 2010.02.10 09:12 신고 | PERMALINK | EDIT/DEL
포유류님

온한글에 관심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위시리스트에 추가하셔서 꼭 한번 읽어보세요^^
BlogIcon 이세진 | 2010.02.15 22:15 신고 | PERMALINK | EDIT/DEL
좋은 정보 얻어가셨다고 하시니 제가 더 기쁩니다^^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9. 12. 11. 09:18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백과>

지난 '07년도에 MBC에서 방영했던 다큐멘터리를 기억하실 분들이 있을런지요? 저도 아주 어렴풋이 기억하며 다음 카페검색하게 되었고 MBC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카페 이름은 바투바투인데요, 과연 한글창제의 미스테리가 무엇인지 지금부터 접근해 들어가겠습니다. (영상을 올리지 않는 이유는 저작권 문제때문임을 참고 바랍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많은 의혹의 일설 중에 인도의 언어와 일본의 신대문자에 관한 것으로 파고들고 있습니다. 인도의 구자라트에서 발견되는 한글 간판과 실제로 영상에서는 분명 한글인데 다르게 읽는 인도의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한글은 인도의 언어에서 온 것일까요?

이번에는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요? 일본의 신사에 기록되어 있는 신대 문자, 신다이 문자라고도 하는 이 언어는 인도의 언어보다 한글과 더 흡사하고 음도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이 신의 언어라고 굳게 믿는 그 신대문자를 세종대왕이 베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예전 외국 관광객들에게 관광 안내자가 한글창제를 설명하면서 한글의 글자는 '문풍지'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글자라고 말했다는 기사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도 말하고 쓰고 듣는 그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은 일본의 신대문자를, 인도의 언어를 베껴서 만들지 않았습니다.

다큐멘터리는 인도의 언어가 실제로 우리나라의 언어와 흡사함을 여러 부분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령 신체부위에서 '이빨'을 인도에서는 '빨'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유사함이 다분하다고 해서 인도의 언어를 베꼈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또 일본의 한 다큐메턴리 감독이 주장하듯 신대문자는 태초의 언어도 아니며 또 일본의 민간 신앙을 이끄는 지도자가 조선에 와서 신대문자를 세종대왕에게 전달해 준 것도 더더욱 아닙니다.
일본에서 신대문자 99점을 보관하고 있다는 역사깊은 이세신궁에서 신대문자 옆에 보이는 현대의 언어가 있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한글은 이러한 언어들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창제되었을까요? 그리고 왜 이 같은 한글창제를 둘러싸고 의혹의 눈길과 또 갖은 모방설이 나오게 되었을까요?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그 단초가 최만리의 상소문과 세종실록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앞서 기사에 썼던 누가 왕의 학사를 죽였나에서도 한글창제를 둘러싸고 최만리와 진보세력이 상당히 갈등 했던 것처럼 실제 역사에서도 최만리는 "'한글'을 쓰는 것은 오랑캐들과 같아지는 것"이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또 세종실록에서도 세종대왕이 고어를 참조했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합니다.

물론 세종대왕은 분명 완벽하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상에 나오는 인도의 한 대학교수의 진술처럼 또는 일본의 일부 역사왜곡을 조장하는 이들의 진술처럼 한글이 그들의 언어를 모방했다는 것은 억지스러운 주장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 때문입니다. 사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연산군 때 없어질뻔 했는데요, 영상에서도 그때의 거사의 급박함을 보여주면서 연산군이 명백히 언문탄압을 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세종대왕이 만든 것을 그 후손이 막음으로써 언어는 단절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만약 그때 훈민정음 해례본이 불타버렸다면 19세기를 지나 주시경 선생이 한글의 뜻을 밝힌다해도 이 수많은 의혹들을 벗겨내기에는 어렵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한글의 자음은 사람의 입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그 원리는 익히 들어보아 아시겠시겠지만 'ㄱ, ㄴ, ㅁ, ㅅ,ㅇ' 에 한 획을 더 해서 'ㅋ, ㄷ*ㅌ*ㄹ, ㅂ*ㅍ, ㅈ*ㅊ, ㅎ' 이 나오는 과학적인 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모음은 사람을 뜻하는 'ㅣ'와 하늘은 뜻하는 '.' 와 땅을 뜻하는 'ㅡ' 이 세 가지를 만들어 '천지인'의 원리로 한글을 구성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글창제를 둘러싼 미스테리는 없습니다. 있다면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그의 천재성 그리고 그 천재성을 밝혀주는 해례본을 통해 과연 그 시대에 이런 과학적인 언어를 어떤 계기로 생각할 수 있었는지 그것이 미스테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영상의 마지막에서도 언급하듯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언어로 한글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도 이런 과학적인, 다시 말해 '조직적인' 언어로서의 한글은 조합이 잘 되어 있는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또 얼마 전 찌아찌아족의 표기문자로 한글이 선택된 것도 알파벳이 적은 탓도 있지만 그 적은 알파벳으로 여러 언어를 만들 수 있고 또 조합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언어를 백성들을 생각하며 만든 세종대왕은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겠죠.

그 자부심을 가지며 오늘도 우리말을 소중히 사용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1기 김태형

ⓒ 온한글 




 
BlogIcon 김태형(간이역) | 2009.12.12 18:12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영상의 마지막에서도~' 로 시작하는 문장이 오타가 많아서 고쳤습니다. 다시 복사해서 온한글 블로그에 공개 부탁드리겠습니다. 14일에 공개되는지 알았는데 빨리 공개되었네요.
BlogIcon 온한글 | 2009.12.14 09:37 신고 | PERMALINK | EDIT/DEL
안녕하세요. 김태형 기자님

말씀하신 부분 다시 수정해서 공개했습니다.

감사합니다.
BlogIcon 자격증무료자료받기클릭 | 2012.05.27 00:17 | PERMALINK | EDIT/DEL
해례본 미스터리글 잘 보았습니다.. 아래 자격증관련 정보도 있네요..

유망 직종 및 모든 자격증에 대한 자료를 무료로 제공 받을수 있습니다..

유망 자격증을 종류별로 무료 자료 신청가능하다고 하네요..

신청 해보세요 -> http://license119.com/newki
고마 | 2012.08.23 17:2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정말 답답하네요. 역사학자라는 놈들이 죄다 친일파라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주지 않고 계속 감추려 합니다. 김해 허씨의 시조인 허왕후는 인도사람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쇄뇌한 반도사관으로 한반도 내의 사람들만 한민족으로 봅니다. 고대에 인도는 한민족들이 대거 이동해 정착해 살고 있었는데 대표적인 예가 허왕후의 가문과 석가모니의 석가족입니다.
고마 | 2012.08.23 17:3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일본은 다 아시다시피 대표적인 한민족 이주 케이스입니다. 지금우리가 쓰는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드셨지만 고조선시대에 음양법칙에 맞추어 표음문자와 상형문자를 만들었습니다. 한자의 원형이라는 갑골문이고 갑골문은 은나라에서 나왔으며 은나라는 고조선이 세운나라입니다.중국학자들 대부분이 한자는 동이족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오직우리나라역사학자들만이 악을 쓰며 한반도에서 그런기록이 없으니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고조선은 만주지방에 있는데도 말입니다
고마 | 2012.08.23 17:36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한글의 경우도 그 원형이되는 글자를 고조선에서 이미 만들었습니다. 학자들이 이글잘 가림다 또는 가림토 한글이라 부르는데 이것이 고조선의 세력과 고조선인들의 이주로 인해 퍼졌습니다. 즉 지금 한글이 자기들한테서 나왔다고 주장하는 나라는 실제로는 과거 한민족의 지배를 받거나 한민족이.이주해 간곳입니다
고마 | 2012.08.23 17:3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일본은 다 아시다시피 대표적인 한민족 이주 케이스입니다. 지금우리가 쓰는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드셨지만 고조선시대에 음양법칙에 맞추어 표음문자와 상형문자를 만들었습니다. 한자의 원형이라는 갑골문이고 갑골문은 은나라에서 나왔으며 은나라는 고조선이 세운나라입니다.중국학자들 대부분이 한자는 동이족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오직우리나라역사학자들만이 악을 쓰며 한반도에서 그런기록이 없으니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고조선은 만주지방에 있는데도 말입니다
고마 | 2012.08.23 17:3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정말 답답하네요. 역사학자라는 놈들이 죄다 친일파라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주지 않고 계속 감추려 합니다. 김해 허씨의 시조인 허왕후는 인도사람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쇄뇌한 반도사관으로 한반도 내의 사람들만 한민족으로 봅니다. 고대에 인도는 한민족들이 대거 이동해 정착해 살고 있었는데 대표적인 예가 허왕후의 가문과 석가모니의 석가족입니다.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9. 10. 19. 08:59

프랑스로 배낭여행을 온 한국인 이한글(24)군은 루브르 박물관을 찾았다가 편리한 경험을 했다.
세계적인 작품들을 감상할 때, 우리말로 설명된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던 것.
유럽에서도 우리 모국어로 된 설명을 자세히 들을 수 있다니 이한글군은 왠지 모를 국민적 자긍심을 느꼈다.

혹시 여러분께서는 해외에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으신가요?
연간 8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최대 규모의 루브르박물관에서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꾸준히 받을 수 있도록 후원한 기업 대한항공의 글로벌 마케팅 사례를 통해, 세계속으로 날갯짓하는 '우리 말과 글'의 가능성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서울시 서소문동 대한항공 빌딩)

(인터뷰 및 자료 제공- 통합 커뮤니케이션 팀 임재원  대리)

◈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어 안내 서비스

작품 해설용 오디오 기기를 최신형 멀티미디어가이드로 교체하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이 대한항공 측에 스폰서를 처음 의뢰했을 때, 대한항공이 '한국어 안내 서비스 삽입 조건'을 제안하자 루브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문화 예술 후원에 관심이 많았던 대한항공 조양호 사장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이후 루브르 박물관 측을 잘 설득하여 한국어 서비스를 도입할 수 있게 되었고,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2008년 2월 12일부터 한국어 서비스가 시행되어, 다빈치의 모나리자, 미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상,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상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세계적인 작품 약 600여 점에 대한 설명을 우리 말로 자세하게 들으며 관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입구 대여소, 한국어 안내 서비스는 전 세계 관람객들들에게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한국어 안내 서비스 이용법을 듣고있는 한국 관광객들)

이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의 가치를 알게 된 대한항공은 우리말 글로벌 마케팅의 도약을 멈추지 않고,
이번에는 영국의 대영박물관의 문을 두드립니다. 대영박물관은 현재까지도 구형 오디오 가이드 기기를 통해 50여 개 작품에 대해서만 영어∙프랑스어∙독일어∙일본어 등 9개 언어로 안내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매년 대영박물관을 찾는 한국인 관람객들은 우리말 안내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아 불편을 겪어왔었습니다.

그러나 다가오는 2009년 12월부터는 대영박물관의 박물관 작품 안내용 장비를 최신형 개인휴대단말기(PDA)로 교체해서, 박물관 주요 작품 200점에 대한 음성∙동영상 안내를 한국어를 포함한 10개 언어로 제작하게 된다고 합니다. 또한 새롭게 후원을 시도한 러시아 최고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는 '처음 울려 퍼지는 동양어'로서 지난 2009년 6월 29일부터 이미 한국어 안내 서비스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각국의 박물관에서 우리 말을 통해 세계적 작품들을 생생하게 만날 기회가 점점 늘어가고 있으니 앞으로 세계 곳곳에서 만나볼 한국어를 더욱 기대해봅니다.

◈ 하늘을 나는 훈민정음 비행기

훈민정음과 모나리자가 새겨진, 동서양의 문화가 조화롭게 래핑된 B747-400 항공기가 2008년에 운항하였는데요, 그 취지는 루브르박물관 한국어 안내 서비스 도입을 기념하고, 세계에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훈민정음 타이포그래피를 모나리자로 형상화한 래핑은 우리나라 최고 문화유산인 한글과 모나리자의 만남을 상징하여 국민에게 자긍심을 불어넣는 계기가 돼 주었습니다. 당시 커다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훈민정음 타이포그래피 래핑 항공기는 어떤 방송 CF나 지면 광고보다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훈민정음과 모나리자로 래핑한 항공기)

대한항공과 같은 기업 글로벌 마케팅 속에 우리 글과 말이 빛나는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아름다운 한글과 한국어의 미래 지향적인 가치를 새롭게 여겨볼 수 있었습니다. 세계를 향한 우리 말과 글의 유쾌한 날갯짓에 더 많은 힘을 실어줄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두고 지켜나가야겠습니다.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1기 김의진

ⓒ 온한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9. 10. 15. 08:37

지난 9일, 광화문광장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등장해 시민들의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세종대왕의 업적에 대해 전시해둔 <세종이야기>가 개관을 했는데요. 개관과 동시에 많은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세종대왕의 업적에 대해 더욱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저도 세종대왕의 동상을 보기 위해 광화문역을 찾았습니다. 6번출구를 통해 걸어들어가다보니 '해치'에 대한 설명을 해둔 전시관을 통해 광화문광장으로 가는 '지름길'이 보입니다.


지나가던 길이긴 하지만, '해치'에 대해서도 알아볼까요?

해치는 선과 악을 간파하여 정의를 지키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이 외에도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로서의 의미도 지니고 있는데요, 실제로 조선시대의 경복궁 광화문 앞과 근정전의 처마 마루 등 궁궐 내 곳곳에 해치의 상이 놓여 졌는데 이는 전각 내에서 정사를 볼보는 임금의 공평무사를 비는 뜻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고로 현재 서울 경복궁 앞에 배치한 '해치' 상은 선과 악을 판단하는 심판자로서의 의미보다는 서울을 지켜주는 수호적인 존재로 해석되는게 바람직하다고 하네요. 단지 화마뿐 아니라 온갖 나쁜 기운을 막아줌과 동시에 행운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존재로 설명될 수 있다고 합니다.



해치서울을 지나가자 광활한 광화문 광장이 한눈에 들어오는데요.
파란 하늘과 함께 마음을 뻥~ 뚫어주는 듯 합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세종대왕 동상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이미 많은 시민들이 세종대왕 동상을 보러 모여있는 모습입니다.

세종대왕의 동상 앞에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과학기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하나하나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혼천의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는 고대 관측 기구입니다.

측우기
조선시대의 강우량 측정 기기이죠. 15세기에 제작된 세계 최초의 기상관측기기로 세종 이후부터 조선 말까지 수백 년동안 강우량 측정에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실제 측우기는 기상청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해시계(앙부일구)
해시계는 정남향으로 배치해 실제로 햇빛 그림자에 의한 시간을 알 수 있게 했다고 하네요.

세종대왕의 백성에 대한 마음을 읽을 수 있죠?^^

넓은 하늘만큼이나 백성을 사랑하셨던 세종대왕.

세종대왕 동상 측면에 새겨진 한글입니다. 무척 멋지죠?

세종대왕 동상 후면에는 세종대왕 연보가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올 가을, 백성을 사랑하셨던 임금인 세종대왕의 이야기를 보러 광화문 나들이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1기 이세진

ⓒ 온한글
BlogIcon 세미예 | 2009.10.15 10:02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역시 세종대왕은 대왕이십니다.
한글을 주셨으니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하고 위대한 지 모르겠습니다.
후손된 자들로서 한글을 잘 가꾸고 빛내야 하는데 오늘날 돌아보니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고운 하루 되세요.
BlogIcon 이세진 | 2009.10.15 12:06 신고 | PERMALINK | EDIT/DEL
안녕하세요, 세미예님^^
맞아요, 저도 요즘 새삼스레 한글의 소중함에 대해 느끼고, 감사함과 자랑스러움을 느껴요.
좋은하루되세요^^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9. 10. 13. 08:49


9일 오전, 서울 경복궁 근정전에서는 563돌 한글날 기념 '훈민정음 반포 재현 행사'가 열렸습니다. 특히 세종대왕의 19대 후손인 이군익씨가 세종대왕 역을 맡아 그 의미를 더했습니다. 반포재현행사는 문무백관이 진열하고 왕이 훈민정음을 선포하는 모습을 재현했고, 한글날 행사를 보기위해 경복궁을 찾은 수많은 관람객들을 위해 특별히 축하공연 또한 선보였습니다. 그 외에도 행사장 안에서는 한글과 관련된 각종 기념품 판매와 한글을 활용한 작품 전시회 등 관람객들이 참여할 만한 재미있는 볼거리들을 많이 제공하였습니다.


한글날?
한글날은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국경일입니다.
1926년 11월에 매년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하여 행사를 거행했고, 1928년이 되서야 '한글날'이라고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지금의 한글날은 1940년 발견된 <훈민정음> 원본의 내용을 기초로 하여 정해진 10월 9일입니다. 2005년에는 한글날이 국경일로 지정이 되었으며, 매년 한글날에는 세종문화상 시상과 세종대왕의 영릉 참배, 각종 학술대회와 백일장 등이 성대하게 거행됩니다.


경복궁

세종대왕의 모습

축하공연

문무백관들의 모습





▲ 한글날 훈민정음 반포 재현행사 축하공연 영상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1기 이세진

ⓒ 온한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9. 7. 15. 09:42




영화 「Back to the future」시리즈 아시나요?!
어릴 때 정말 타임머신이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의 나래를 펴며 재미있게 봤던 영화였는데요.

 지금,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공룡을 볼 수 있는 쥐라기 시대? 아니면 서기 3009년의 대한민국?

「역사광, 훈민정음을 지켜라」
라는 책에서는 세 명의 어린이가 세종대왕 시대로 돌아가, 역사를 바꾸려는 이에 맞서 우리 역사를 지키는 활약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역사광은 주인공 사마역과 김사랑, 광사마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만든 모임인데요.

이름만으로도 이들의 활약기가 재미있을 것 같죠?


타임머신 이외에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천기누설폰'과 함께 과거로 간 역사광 세 어린이의 활약상을 잠시 살펴 볼까요?

 

주인공 광사마는 어느 날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국어 수업 시간에 갑자기 한글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영어로 말을 합니다!!!
마침 삼촌의 호출을 받고 삼촌의 연구소로 달려가니 세종 시대의 역사가 뒤바뀌어
한글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제 할 일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훈민정음을 지키는 것!!!
비록 머리는 안 따라주지만 몸으로 부딪치는 것은 잘하는 광사마.
과거로 가서 악당과 마주하게 되는데...


하하하- 줄거리 소개는 언제나 살짝 아쉬운 게 묘미죠?  

어린이 소설이라고 해서 가상의 일을 다뤘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역사광, 훈민정음을 지켜라」는 소설 속 실제 인물들과 활약상을 책 속에 담고 있습니다 .

훈민정음을 만든 데에는 집현전 학사들보다 세종대왕 가족들의 힘이 더 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데요.(실은 저도 몰랐습니다;;

또한, 집현전 학사들이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했고 세종대왕이 이를 꿋꿋하게 물리쳐 훈민정음이 반포되었다는 사실 역시 생소한 일 않을까요?

허구와 역사적 사실을 섞어 놓으면 실제 사실이 무엇인지 헛갈릴 수 있다구요?

맞습니다. 요즘 사극을 보며 항상 따라 다니는 질문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가?' 잖아요.

실물로 본 세종대왕은 지폐에 그려진 얼굴과는 조금 달랐다.
만 원권 속의 세종대왕이 근엄한 할아버지 같다면, 실제의 세종대왕은 힘 좋아 보이는 동네 아저씨 같다. 
좋게 말하면 조금 친근해 보이고, 나쁘게 말하면 조금 무식해 보였다. 잔뜩 흥분한 광사마가 만 원권을 꺼내 세종대왕의 얼굴과 지폐를 번갈아 가며 보는 동안 사태는 뜻밖의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아바마마, 어찌 그러실 수가 있습니까?” 
정의공주가 따지듯 묻자, 세종대왕은 조금은 움츠러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전에도 정의공주에게 적지 않게 당해 온 듯한 자신 없는 모습이었다. 
“내가 또 무슨 잘못이라도 했던고?”
“훈민정음 창제는 우리 가족끼리의 비밀이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저 아이를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광사마의 거짓말이 탄로 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본문 114~115쪽 중에서


 이 책에서는 어린들이 알아두어야 할 역사적 사실이 팁과 부록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한글이 얼마나 뛰어난 글인가에서부터 세종대왕과 그 시대에 대한 상식들,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과 뒷 이야기, 그리고 한글 소설까지.

그리고 '타임머신을 정말로 만들 수 있을까?'와 같은 다양한 상식도 책 속에 담고 있습니다.

 

성삼문이 무사들과 함께 사라지자 광사마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면 그렇지. 너는 항상 이런 식이야.’ 

그야말로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린 격이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이대로 영영 찾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정말 우리나라는 영어를 쓰는 나라가 되는 거야? 

광사마는 머리를 싸맸다. 절망하던 광사마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 영어 녀석이 <훈민정음 해례본>을 가지고 갈 곳은……. 그래, 한 곳밖에 없어.’  

-본문 168쪽 중에서


과연, 개성 있는 주인공들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 재산인 훈민정음을 잘 지켜낼 수 있을까요?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9. 4. 14. 10:16


사용자 삽입 이미지

 훈민정음 창제 과정이 숨기고 있는 충격적 사실을 79통의 편지로 엮은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역사소설!
 훈민정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세자빈 봉씨의 동성애 비밀 모임(자선당 봉선화 모임)과
 새 왕좌를 꿈꾸는 정치적인 집단의 숨막히는 승부!


 지난 온한글 책꽂이에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편찬한 책 리스트를 소개해드렸는데요.
오늘은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에 얽힌 흥미진진한 스릴러 소설을 소개코자 합니다.

 바로 '훈민정음의 비밀' 인데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만큼 여간 흥미롭지 않습니다.
훈민정음에 어떤 무시무시한 음모가 서려 있는지 역사속으로 고고!!!


'훈민정음의 비밀'의 간략한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세종의 두 번째 며느리인 세자빈 봉씨가 폐위되고도 12년 뒤인 1448년 세종 30년.
정식 궁녀가 되기 위해 관례식(신랑 없는 혼례식)을 올리기로 되어 있던 한 궁녀가 폐세자빈 봉씨의 거처였던 자선당에서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나체로 발견된 이 궁녀의 옷가지 속에서 세자빈 봉씨의 이름으로 쓰인 편지가 발견되죠.
죽은 세자빈의 원혼은 억울함을 풀기 위해 다시 산자의 몸을 빌어 돌아왔으며, 앞으로 남자의 자리에 여자들을 앉힐 것이며, 이로 인해 여인들이 죽어간 숫자만큼 남자들이 죽어나갈 것이라는 믿기 어려운 무시무시한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시신을 부검했던 내의녀는 내명부의 심상치 않은 술렁임을 감지하고 수사에 나서게 됩니다.
중전과 세자빈이라는 내명부를 다스리던 최고 자리들이 비어 있던 특이한 상황!
자선당 봉선화 모임이라는 궁녀들의 동성애 비밀 모임에 대한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하며
애증과 관계의 그물들이 궐안에서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왕권과 신권의 미묘한 대립은 훈민정음 창제 이후 커다란 충돌로 이어지고,
“훈민정음을 널리 쓸 방안을 찾으라”는 별시 책문의 장원급제자가 자격루 물받이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궁녀와 급제자의 죽음!
연관 없어 보이는 두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세종은 밀지를 내려 집현전 박사를 수사관으로 임명했으나... 잇달아 의문스런 죽음과 사건이 계속 일어납니다.

 죽음의 유일한 단서는 시체 곁에 놓였던 훈민정음 필사본!
필사본을 둘러싸고 훈민정음을 만들고 널리 쓰고자 하는 집현전의 7학사와
한문을 권력의 언어로 유지하고자 하는 반언문 7인회의 대결이 펼쳐집니다.

궁궐의 음지와 양지를 넘나들며 필사본에 담겨 있는 죽음의 비밀을 풀어가는 내의녀와 집현전 박사.
두 사람 앞에 서서히 드러나는 거대한 음모의 전말은 뜻밖에도…….


'뜻밖에도...' 그 다음이 무척 궁금해지는 줄거리 소개는 여기까지!
줄거리부터 흥미롭지 않나요?


79통 편지 속에 얽힌 인물들의 목소리와 시선

사용자 삽입 이미지
 '훈민정음의 비밀'은 세종대왕 당시의 궁궐 안팎에서 욕망하고 꿈꾸고 다투며 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왕과 왕비, 세자와 세자빈, 벼슬아치와 내명부의 이름난 이들. 그리고 묵묵히 제 역할을 하면서 역사의 바퀴를 굴려간 이름 없는 백성들과 궐의 빛나는 자리의 뒤꼍에 소리 없이 버티어 섰던 궁녀들.

 작가의 상상력으로 새 숨을 받은 인물들의 편지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의 물결을 일으키며 살인사건 안에 숨겨진 비밀스런 진실들을 속삭입니다.

 자선당 건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궁녀들의 비밀스런 사랑 이야기와 훈민정음과 한문으로 대변되는 문화적 권력을 차지하려는 암투가 마치 살아있는 이들의 육성을 듣는 것 같이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이미지들로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놓습니다.

 왕과 신하, 남자와 여자, 양반과 상민 등 적과 아군이 구별되지 않는 숨겨진 관계의 그물 속에서 모두가 비밀스런 자신의 마음을 편지로 새겨내고 있습니다. 중심을 관통하는 커다란 사건의 줄기는 궐 안의 숨겨진 주인인 내명부 여인들의 외로운 삶과 슬픈 사랑, 왕의 권위로 대변되는 권력을 욕망하는 사대부 남성들의 치열한 다툼으로 갈라집니다.

 궐의 안과 밖에서 펼쳐지는 사건마다 이면에서 출렁이는 인물들의 그림자를 볼 수 있습니다.  대왕세종이 개혁하고자 했던 조선의 권력구조와 정치와 무관한 존재처럼 살아야 했던, 혹은 그렇게 역사화 된 여성들의 정치적 현실이 소설 속에서 감춰진 문양을 드러내는 것이죠.

 결국 이 소설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내면에 비추어진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들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김다은 작가는 '훈민정음의 비밀'을 통해 구중궁궐 속 여인들이 주고받는 은밀한 편지 속의 대화를 통해,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정서 그리고 기운 등을 매우 촘촘하고 세밀하게 복원하였습니다. 서간체 소설이 갖는 힘은, 과장과 왜곡을 제어하는 사실성의 복원을 통한 리얼리티의 확보에 있는데요.
 작가는 장편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서간체 소설을 의식적으로 실험하고 있는 것으며, 이는 한국 문학이 갖는 외연을 확장하는 매우 귀중한 노력이 아닐까 합니다.

 다음은 감질맛 났던 줄거리 소개가 아쉬웠던 분들을 위한 보너스~

감찰상궁이 제조상궁에게 - 1448년 6월 2일

 마마님, 여영의 죽음 때문에 놀라셨지요. 쇤네의 불찰이 크지만, 마마님의 지혜로운 지시에 따라 무리 없이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마마님, 궐내 누가 이런 큰 일을 처리하겠습니까? 중전 마마도 승하하셨고, 세자빈 마마도 계시지 않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주상 전하께서는 소갈증에 눈병까지 나셔서, 세자 저하가 첨사원에서 정사를 대신 돌보고 있습니다. 세자 저하가 곧 왕위를 이어받을 것을 염두에 두고 동궁의 엄 상궁이 상전 노릇을 하려고 듭니다.

 하지만 우리 내명부의 육백여 명의 나인들을 총괄하는 분은 바로 제조상궁 마마님이 아니겠습니까? (……) 엄 상궁은 평생 세자 마마를 모신 사람입니다. 세자 저하의 마음과 느낌을 누구보다 잘 읽어내는 사람입니다. 

 물론 여영은 말도 별로 없고 궐 밖에 연고도 없고 세자 저하의 마음에 들 그런 미모를 지니지도 않았지만, 뛰어난 미모의 어떤 세자빈이나 궁녀에게도 마음을 주시지 않던 세자 저하시니 그 속내를 어찌 알겠습니까.  (본문 50~52페이지)


엄상궁이 제조상궁에게 - 1448년 6월 25일

 자네, 궐 안에 도깨비가 사는 것 아는가. 궐내에서 도깨비장난을 심심찮게 볼 수 있지. 자고 일어나면 빗자루, 짚신, 부지깽이들이 제자리에 있지 않고 이리저리 옮겨져 있기 예사 아니던가. (……)

 도깨비는 장난을 좋아해서 신발을 섞이도록 하거나 바꾸어 놓지. 도깨비는 신발만 바꾸어 놓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바꾸어 놓는다네. 이 방에 자야할 사람이 아침에 깨어나면 저 방에 있고, 저 방 친구가 이 방에서 잠을 깨기도 하는 것이네. 
 
 무슨 말인지 자네도 이해할 것이네.  나와 자네, 우리도 마찬가지였네. 각자의 방에서 밤을 보내지 않고 이 방 저 방으로 옮겨 다녔지. 당시 세자빈 봉씨는 자선당에 은밀하게 나인들을 불러들였네. 자선당에서 손톱에 봉숭아꽃물을 들인다는 명분으로 다들 모여서 놀았네. (……)  꼬리가 길면 잡히게 되어 있지 않은가.  (본문 285~287페이지)


김문이 7인회에게 - 1448년 6월 2일

 이번 문과 초시에서 주상 전하가 내신 책문이 무엇인 줄 들으셨겠지요. 무서운 분이십니다. 태종 상왕 전하께서 손에 피를 묻히시며 개혁을 하셨다면, 지금의 주상 전하는 손에 전혀 피를 묻히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뒤집는 일을 계획하신 것입니다.

 조선의 기반을 이루는 사대부들을 흔들어 버리겠다는 의중이 아니라면 그런 책문이 나올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문과 초시의 책문에 “언문을 널리 쓸 방안을 찾으라”니요.

 (……) 우리 7인회가 만들어진 지 이미 4년이 되었습니다. 훈민정음 반대 상소 사건은 우리 일곱 사람을 곤경에 빠뜨렸지만, 오늘 있었던 언문 과거시험은 앞으로 조선의 전 양반들을 위기로 몰아넣게 될 것입니다. (……)  며칠 후에 있을 7인회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도록 미리 좋은 대책을 세워 보시기 바랍니다.  (본문 137~141페이지)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9. 3. 23. 10:10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국보 70호이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우리의 『훈민정음』은
대한민국을 넘어 인류의, 과거를 넘어 미래의 문화유산으로 생명력을 발하는 한글의 창제 원리를 설명하는 한문 해설서입니다.

그럼, 오늘의 말로 쉽게 풀어 쓴 『훈민정음』의 참 가치를 밝혀 보겠습니다.


-알기 쉽게 풀어 쓴 『훈민정음』-
도서출판 생각의 나무

 

세계 언어학자들이 놀란 28자 문자혁명 『훈민정음』을 오늘의 말로 읽다!

 세계화를 맞아 영어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일상에서 영어 한두 마디 섞어 쓰지 않으면 세련되지 못한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요. 

 인터넷이나 핸드폰으로 주고 받는 한글의 경우, 기본 문법은 물론 국적 불명의 속어까지 남발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말과 글이 위기를 맞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훈민정음의 위대한 가치를 새삼 깨우치고 널리 알리는 일은 그래서 더없이 소중한 것입니다. 

 국가 어문 정책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국어 관련 정보를 세계에 널리 보급하는 일을 하는 국립국어원은, 훈민정음을 세계에 널리 알리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기획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한글과 영문을 병기하여 국내 독자 뿐만 아니라 세계의 독자들에게 훈민정음의 참 가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훈민정음이라고 하면 익히 들어서 다 알고 있는 듯 하지만, 실상 제대로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문데요. 우리의 문자 이름이기도 하면서 책 이름이기도 한 훈민정음은 여전히 연구대상이자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야 할 문화유산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소개하는 데 소극적이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훈민정음의 창제 배경, 창제 과정, 의의, 제자 원리 등을 전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한문으로 씌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심오한 철학과 글자의 운용을 밀접하게 연결시켜 놓아 읽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훈민정음 해례본을 '오늘의 말'로 옮겨 담았습니다. 
 이 책의 뒤쪽에는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을 옛 책 모습 그대로 영인(影印)하여 실어, 발간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만인을 소통하게 할 문자, 한글의 제자 원리를 밝힌 『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은 두 가지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1443년에 창제된 한국 특유의 문자 이름이고, 또 하나는 이 문자를 설명하여 1446년에 발간한 책의 제목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조선 제4대 임금인 세종은 우리말의 표기에 적합한 문자 체계를 완성하고 이를 ‘훈민정음’이라 명명하였습다. 

 세종의 명을 받아 정인지 등이 이를 설명한 한문 해설서를 전권 33장 1책으로 발간하였는데, 이 책의 이름이 ‘훈민정음’입니다. 새 문자에 대한 해설이 붙어 있어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도 한답니다.

인류의 문화사를 보면 문자는 통치의 도구이며 문자는 곧 권력과 지위의 상징으로서 문자를 소유한 자는 그 사회의 통치자에 속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한글의 창제 동기는 어리석은 백성이 제 생각을 잘 나타낼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중세에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훈민정음의 세종 임금 서문에는 당시의 세계관으로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내용이 담겨 있다.  
                                                                                                                   -27쪽


 훈민정음에는 문자를 만든 원리와 문자 사용에 대한 설명이 상세히 적혀 있는데요. 이 책은 당시 한자로 씌어진 훈민정음이란 책을 오늘의 말로 옮겨 알기 쉽게 풀어놓았습니다.

 최근 상주에서 또 하나의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는데, 현재 국보 70호,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훈민정음 해례본은 경북 안동군 주하리에 있는 이한걸 씨 댁 회양당에 소장되어 있던 것입니다. 

 뒤늦은 1940년에 세상에 알려졌는데, 그 전에는 훈민정음의 기원과 관련하여 각종 가설이 난무했었지만 훈민정음이 발견되어 이 모든 가설을 불식시켰답니다. 

 지금은 간송미술관(서울시 성북동 소재)에 소장되어 있으니 이책을 읽고 직접 가서 본다면 와닿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위해서 만든 과학적인 글자인 ‘한글’의 제자 원리를 설명해 놓은, 이제까지의 인류문화사에 전무후무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든 이와 만든 시기를 분명히 기록해놓고 있고, 한글 제자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적혀 있습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는, 모든 위대한 창조적 업적이 그런 것처럼, 하나의 기적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이 문자를 만드는 데는 그 당시 우리나라에 알려진 여러 알파벳 계통의 문자들을 보고 이와 비슷한 성질의 체계가 한국어의 표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위에 든 외국 문자들 중의 어느 하나를 택하여 조금 손질하여 한국어 표기에 적용하려고 하지 않은 점이 우리의 주목을 끈다. 이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요 세계 문자사의 통례였음을 감안하였을 때 더욱 특이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41쪽


 우리말의 구조와 음운체계에 알맞은 문자를 마련해야겠다는 세종의 강력한 의지와 모든 백성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하려는 민본주의, 소리와 글자에 담긴 음양오행의 이치 등 행간에 담긴 많은 뜻을 이 책을 통해 새겨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의 1장에는 세종대왕이 왜 한글을 새로 만들어 훈민정음을 발간했는지, 왜 훈민정음이 한자로 쓰였는지, 한글을 어떻게 창제했는지, 한글이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는지를 조목조목 알기 쉽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2장에는 한국어문회 고문이자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인 강신항 교수가 오늘의 말로 옮긴 훈민정음 해례본이 실려 있습니다. 원문을 그대로 오늘의 말로 옮겼기 때문에 한자로 쓰여진 원문을 새롭게 읽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답니다. 

 마지막으로 훈민정음 해례본과 훈민정음 언해본의 영인이 실려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넘어 인류의 문화유산, 『훈민정음』

 이 책은 자연의 모든 소리를 담을 수 있는 한글 창제의 목적과 원리를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스물여덟 글자로 이뤄낸 문자혁명 훈민정음은 한국인만의 문자가 아닌 인류 보편의 문자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발음 기관을 본떠서 만들었기 때문에 보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훈민정음이 과거의 인류 문화유산일 뿐만 아니라 미래의 인류 문화유산이라는 점을 이 책을 통해 널리 알려지길 바래봅니다.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박선희 | 2009.03.23 14:18 | PERMALINK | EDIT/DEL | REPLY
늘 훈민정음이라는 소리는 많이 들어봤어도.. 훈민정음이 어떻게 쓰여져 있는지 제대로 읽어 볼 기회가 없었던것 같습니다. 세종대왕의 우수성은 세계적으로 많이 이슈가 되었지만 정작 그 안의 제대로 된 의미를 알지 못하고 살아온 듯 합니다. 한국인이라면 한번쯤은 이 책을 꼭 읽어 봐야될 것 같습니다. 한글이 세계화가 되기 위해선 우리의 문화유산을 잘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책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BlogIcon 온한글 | 2009.03.23 20:19 신고 | PERMALINK | EDIT/DEL
네 박선희님의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입니다. 요즘은 외국에서 한글의 아름다움에 열광하는데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시큰둥한 듯 해서 안타깝습니다. 꼭 읽어보시고 소감 남겨주세요~ ^^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9. 3. 6. 13:24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글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우리가 오늘날 어떤 언어생활을 하고 있을지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한글이 없었을 때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문자생활을 했는지, 그리고 고유문자가 없는 언어들이 어떤 문자를 채택했는지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알려져 있는 것처럼, 한글이 창제되기 전에 우리 조상들은 순수하게 한문을 사용했거나 한문에 한자로 토를 달았거나 향가에서 보는 것처럼 한자의 음과 훈을 이용하여 우리말을 적었다. 한글이 창제되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 역시 조상들의 방법으로 문자생활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고유문자가 없는 다른 언어의 경우처럼 문자생활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예컨대 베트남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 필리핀의 타갈로그어 등은 자신들의 언어를 적을 때에 로마자를 쓴다. 베트남어의 경우는 성조가 복잡하여 로마자에다 점과 기호 등을 부가해서 표기하는데, 로마자를 쓴다는 점에서는 말레이인도네시아어, 타갈로그어 등과 다를 바 없다.

 그밖에 터키어, 스와힐리어, 소말리아어 등 수많은 언어들이 로마자를 문자로 사용한다. 우리도 이들처럼 문자 생활을 하고 있다면, 예를 들어 ‘나는 지금 편지를 쓰고 있어요’라고 적는 대신 다음과 같이 적고 있을 것이다.


 naneun jigeum pyeonjireul sseugo isseoyo.

 중국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문자를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 저명한 문인인 루쉰은 한자가 망하지 않으면 중국이 망한다면서 한자를 폐지할 것을 주장하였다. 물론 한자는 폐지되지 않았지만 대신 간화자로 크게 바뀌었으며 한어병음이라 하여 로마자가 보조적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한글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편리한 언어생활을 누리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편리를 누리지 못할 뿐 아니라 문화적 자부심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글은 누가 만들었을까? 이 물음에 답하기에 앞서 문자 일반에 대해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구상에는 여러 문자가 있지만 언어의 수만큼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살아 있는 언어는 5천 내지 6천 개로 보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들 중에는 문자가 없는 언어도 꽤 있으며 문자가 있는 언어들 중에도 실제 사용되는 문자는 백 개도 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국가의 공용어로 쓰이는 언어를 적는 문자는 30개 정도에 불과하다. 언어에도 사멸한 것이 있듯이 문자도 지금은 사라진 것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사용되고 있는 문자들 가운데 특정 시기에 특정인이 ‘만든’ 문자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한글이 아닌 다른 문자들은 대체로 오랜 세월에 걸쳐 차츰 진화해 왔거나, 다른 문자를 변형시켜 만들었기 때문에 ‘창제’라는 말을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물론 다른 문자들 중에도 일부 만든 이가 뚜렷이 기록되고 인정된 경우가 있기는 하다. 410년에 아르메니아어 문자를 만든 아르메니아의 메스로브(Mesrob), 1283년에 태국문자를 만든 태국의 람캄행 대왕 등이 그들이다(타이문자는 캄보디아문자를 변형시켜 만들었다).

 이런 극히 일부의 예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문자는 어떤 특정 시기에 갑자기 출현한 게 아니라 서서히 조금씩 변형되며 형성되었다. 그래서 창제자를 말할 수 없다. 한글은 이에 반해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가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 중의 하나인 세종실록은 한글이 1443년에 만들어졌고 1446년에 반포되었으며 세종대왕이 친히 지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도 지은 사람이 누군지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세종이 단독으로 만들었다는 주장부터 왕자와 공주를 시켜 만들었다는 주장, 혹은 세종대왕이 직접 만들었을 리가 없고 집현전의 학사들에게 시켜서 만들었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설이 있다.

  한글을 누가 만들었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유일한 기록은 세종실록 권102 세종 25년 계해 12월조 말미의 다음 구절이다.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干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 《訓民正音》 。


이를 현대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기록이 이러함에도 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세종대왕이 직접 단독으로 한글을 만들지 않고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을 거라는 설이 널리 퍼져 있었다. 정사에 바쁜 임금이 홀로 새로운 문자 체계를 고안하기는 어려웠을 거라는 추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추정은 어디까지 추정일 뿐 기록상의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록상의 근거를 놓고 보면 실록에 ‘친제(親制)’가 명기되어 있는 만큼 직접 창제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친제했다고 보더라도 이 일이 언제부터 시작되어 몇 년만에 완성된 것인지, 문자를 만드는 과정에 누구와 상의하였는지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이 완성된 지 3년만인 1446년에 ‘훈민정음해례’라는 책이 간행되었다. 훈민정음해례는 새 문자에 대한 이론적 해설서이다. 세계의 문자 가운데 문자 창제와 동시에 그 문자에 대해 해설한 책이 쓰인 경우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책은 집현전 학사인 정인지, 신숙주, 최항, 박팽년, 성삼문, 강희안, 이개, 이선로 등이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서 저술한 것이다(194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되었고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으며 서울 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그런데 문자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집현전 학사들을 배제했다가 해설서의 집필만 맡겼으리라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에 세종이 단독으로 만들었기보다는 집현전의 학사들을 이끌고 그들을 부려서 만들었다는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세종대왕 홀로 한글을 만들었든 학자들의 도움을 받았든 세종의 역할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가 새로운 문자에 대해 강력히 반대했지만, 세종은 최만리를 크게 꾸짖으면서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는 일을 추진했던 것이다(최만리는 세종 26년인 1444년 2월 상소문을 올려 새 문자를 만드는 데 반대했다.).

 그럼, 세종대왕은 왜 새로운 문자를 만들기로 마음먹었을까? 이는 ‘훈민정음해례’의 어제서문에
명확하게 나와 있다.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의 말과 달라서 어리석은 백성들 가운데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제 생각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 이를 가엾게 여겨 새로 글자를 만든다고 했다.

 과연 한문으로 우리말을 적기란 대단히 불편해서 양반층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백성이 문자생활을 하지 못하는 문맹상태인 것을 안타깝게 여겨 누구나 쉽게 배워서 쓸 수 있는 문자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세종대왕의 이러한 애민정신은 이미 ‘삼강행실도’를 만든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선과 중국의 충신, 효자, 열녀를 뽑아 그 행적을 글과 그림으로 소개함으로써 풍속을 교화하려 한 것이다. 세종 13년인 1431년 한문본으로 간행된 삼강행실도는 후일 성종 12년인 1481년에 한글로 번역되어 나왔다. ‘훈민정음해례’가 간행되고 용비어천가,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등이 바로 간행되었다.

<용비어천가>는 조선건국을 합리화하기 위해 지은 것이고, <석보상절>은 세종대왕의 아들인 수양대군이 돌아가신 어머니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부처님의 일대기를 서술한 것이다.

또 <월인천강지곡>은 세종대왕이 직접 지은 것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데에는 또 한 가지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한자음의 혼란을 바로잡아 보고자 하는 필요성도 크게 작용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중국 한자음을 통일할 필요성과 아울러 우리 한자음의 통일도 중요한 관심사였다. 그런데 한자음을 통일하기 위해서는 소리글자를 만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소리글자로써 한자 하나하나에 대한 발음 표시를 해 두어야만 한자음이 통일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한자음의 통일을 위해 <동국정운>을 저술케 했고 중국 한자음의 통일을 위해서는 <홍무정운역훈>을 저술케 했다.

 세종대왕은 당시 언어생활에 필수불가결했던 한자의 발음 통일에 크게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과연 오늘날까지도 한자음은 매우 안정된 상태로 정리되어 있는 편이다. 아무튼 세종대왕은 언어의 통일을 중요한 과제로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어떻든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후 그가 기대하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민간에서는 편지를 한글로 주고받는 일이 잦아졌고 16세기 이르러서는 한글소설이 저술되고 유통, 보급되기 시작했다. 관공서의 공식문서는 여전히 한문으로 작성되었지만 편지나 소설류 등에서 한글이 사용됨으로써 백성들의 의사소통과 문학활동에 크게 기여했다.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언해류가 만들어져 그것들이 없었다면 그 내용을 접해보지 못했을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게 되었다. 15세기에 한글로써 간행된 문헌만 해도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두시언해’ ‘악학궤범’과 같은 시가, <석보상절>, <능엄경언해>, <금강경언해>, <반야심경언해>, <원각경언해>와 같은 불교 관련 문헌, <내훈>, <삼강행실도> 은 교화 용 문헌, <구급방언해>와 같은 의약 관련 문헌, <금양잡록> 등의 농사 관련 문헌, <훈민정음해례>, <동국정운>, <홍무정운역훈>과 같은 어학 관련 문헌 등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글의 창제에 대한 이설에 대해 살펴보자. 한글이 고조선시대에 존재했던 가림토 문자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설이 있는데, 그 근거가 매우 희박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설은 1911년에 계연수가 편찬했다고 하는 <한단고기(또는 환단고기)>의 기술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한단고기> 자체가 매우 의구스러운 문헌인데다 정말 고조선시대에 가림토문자가 있었다면 왜 그 이후에 사용되지 않았는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일본에서 쓰였던 ‘신대문자’를 본떠서 한글을 만들었다는 설도 있지만 오히려 ‘신대문자’가 한글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9. 2. 26. 10:14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글 서체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1990년대에 들어와 활성화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으나 서체의 분류나 명칭에 대한 견해는 각양각색이어서 서체연구에 상당한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선행연구들이 각각의 기준을 바탕으로 서체를 분류한 것에 의하면 모필과 관련된 서체용어만도 40여 종1)이나 된다. 이러한 현상은 조선시대에 생산된 서체가 그만큼 복잡다단함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서체란 일정한 시기에 통용되면서 사회성을 확립하여 '정형화'될 때 한 유형으로 인정되는 바, 서체 분류에 있어 일정한 기준이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까지 한글 서체 연구는 주로 글자 기계화와 관련하여 글자체 개발을 위해 이루어져 왔으며 조선시대 서체에 대한 연구는 그나마 서예술적 측면에서 주로 다루어졌다. 그래서 한글 서체의 분류 및 그 명칭들이 서예술적 요소들을 기반으로 삼고 있어 보다 본질적인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가령 어떤 합리적인 기준이 미비한 채 단순히 선행연구의 것들을 적절히 절충한 명칭으로 분류하는 단편성 등이 그것이다.

 물론 각 연구자마다 서체의 분류 명칭이 다른 점은 조선시대에 출현한 한글 자형이 그만큼 복잡해서 일정한기준을 두고 유형화하기 어려움이 따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다행인 것은 선행 연구자들의 서체분류의 바탕을 살펴보면 서체를 대략 세 가지 군으로 유형화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첫째, 훈민정음 창제와 함께 문자의 시원을 보인, 직선, 둥근 원, 둥근 점으로써 정방형으로 이룬 글자체군,
 둘째, 붓글씨로 썼을 때 나타나는 필서의 기운이 있는 것으로서 필사본의 글씨체나 활자본, 판각본에 나타난 글자체군,
 셋째, 이 붓글씨체 중 노봉으로 기필하여 오른쪽 흐름 축을 맞추어 독특하게 구성된 서체군 그것들이다.




1.조선시대 한글 서체의 형성요인

 한글은 종래 한자를 빌려 쓰던 틀을 완전히 깨고 우리말에 맞도록 창제된 소리글자라는 점에서 발생학적인 특수성을 갖는다. 우선 글자의 자형과 글자가 가지는 음가를 정확하게 제시해야 할 뿐 아니라 정형화된 글꼴을 제시해야 글자를 이해하는 데 혼란이 없을 터인즉, 창제 당시를 보면 나름대로 글자의 도안적 성격과 아울러 기본 글꼴로서의 가치를 가짐과 동시에 서체의 대강을 제공하고 있다.

 다음은 글자보급과 관련된 특수성이다. 이 또한 한글이 창제 글자라는 특수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곧, 창제된 글자를 언중에게 최단기간에 보급하기 위해 당시 어떤 방편을 강구했을까 하는 문제인데, 현전하는 당시의 자료가 주로 판본이나 활자본인 점을 고려하면 판각이나 활자에 의해 다량의 서책을 찍어내는 방법을 취했음을 알 수 있다.
 서체연구에 있어서 판본이나 활자본, 필사본을 그 목적에 따라 나누어 연구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으나, 판본과 활자본도 결국 필사한 서체를 모사한 것이기 때문에 간본에 의거해 서체를 연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한글 창제 초기에 도안된 서체와 그 뒤 붓글씨 형태의 서사적 글꼴이 주를 이루는 시기가 서체분류에 있어 큰 분수령이 되므로, 서사형태나 방법에 의해 서체를 나누는 것이 좀 더 변별성과 객관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낱자의 ‘모아쓰기’ 로 하는 문자생활도 또 하나의 특수성이다. 한글은 소리글자로 창제되었는데 실제 문자생활에서는 초성자, 중성자, 종성자를 합자하여 한 음절에 하나의 합자형이 대응되도록 했으므로 서체연구는 합자형과 관련하여 할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 당시 서사도구가 ‘붓’ 이었다는 점도 서체연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사도구의 변천은 단순하다. 개화기 이전까지의 자료는 판본이나 활자본, 또는 필사본으로 남아있는데, 이들은 붓글씨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개화기 이후에나 ‘펜’ 종류가 유입됨으로써 붓과 펜이 혼용된 것으으로 미루어, 조선시대 한글 서체에 대한 연구는 붓으로기록된 자료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한글 서체의 분류기준
 
 앞서 지적한 바에 근거해 조선시대 한글 서체의 분류 기준이 되는 자질로 ‘전형성’ ‘중앙축성’ ‘기필의 노봉성’을 들고자 한다.

2-1. 전형성
 전형성은 글자로서 보편성을 확보하기까지 글자의 전범으로 주어지는 특성으로 글자 창제 때 나타나는 특성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될 당시에 사대부를 비롯한 지식층은 한자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어서, 읽기나 쓰기가 꽤 자유로워 한자의 필기엔 대단히 능숙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새로운 글자를 창제하여, 그것을 지배층 뿐 아니라 일반에게까지 보급하기 위해서는 자형을 쓰기 위주 보다는 읽기 위주로 구성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으며,2) 또 시각상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엄격히 제한된 도안적인 형식을 구사해야 했을 것이다. 이러한 의식을 바탕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오는 고딕체 모양의 글자 형태가 나왔을 것이며 바로 그 점에 전형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창제 후 간행된 「용비어천가」,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동국정운」등에서의 자형이 「훈민정음 해례본」과 같은 전형성을 가진 형태로 나타난 점은 바로 ‘읽기 위주’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글자는 필서의 맛이 없이 직선적이면서 모가 나고 원은 완전히 둥근 형태여서 판각이나 활자로 사용하기에는 적당했을지라도 당시의 주 필기도구였던 붓으로 쓰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형태였다.
  아래 <그림 1>을 보면 창제 글자로서의 전형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략 세 가지 원칙이 부여된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서선의 굵기가 일정하며 끝과 모서리는 둥글게 다듬었다.
 둘째, 글자의 획은 직선과 둥근 원만으로 구성되었다.
 셋째, 시각성을 강조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보여지듯이 한글과 한자를 동일한 면에 함께 사용했음에도, 한자의 해서나 행서와는 전혀 다른 고딕체 형태의 한글을 사용한 것은 시각적으로 현저함을 드러내기 위함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후 「훈민정음 언해본」에 오게 되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전형성이 다소 약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래 <그림 2>에서 그 변화를 비교해볼 수 있다.



 위를 비교해 보면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정방형의 직선적인 글꼴이던 것이 「훈민정음 언해본」에서는 붓글씨체 느낌으로 완성됨을 볼 수 있으며, 우선 중성자의 길이가 차츰 길어지기 시작하여 정방형을 벗어남과 동시에, 획 간 공간 조절이 강조되어 조형성이 생기기 시작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수평이던 가로 서선이 오른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쓰기가 중심이 되는 이른바 궁체에 오게 되면 <그림 3>에서와 같이 한글 창제 당시의 전형성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

 아래의 <그림 4>는 이러한 전형성의 변화를 해례본의 서체에서부터 궁체 흘림체까지의 흐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2-2. 중앙축성

 다음 기준은 모아쓰기 방식으로 운필함에 특정한 순서가 있다는 점을 바탕으로 글자 구성의 축을 어떻게 잡았느냐 하는 것이다.

 운필 시 흐름의 축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각 서체별 특징이 나타나는데, 해례본에서는 정방형 틀에 모아쓰기 하는 한글의 제자원리에 따라 자소를 직선, 둥근 원, 둥근 점만으로 구성하되 획의 연결성은 전혀 없으면서 앞선 자소의 좌우 혹은 상하의 중앙부분에 다음 자소를 위치시키는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획의 순서와 관계 없을 뿐 아니라 획의 모양에도 변화가 없고, 오직 흐름의 무게를 두는 흐름축이 글자 가운데에 있는 이러한 특징을 바로 ‘중앙축성(中央軸性)’형이라 한다.


 <그림 5>와 <그림 6>은 모아쓰기를 함에 있어 ‘ㅡ, ㅗ, ㅜ, ㆍ’와 어울리는 글자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축성이 중앙에 있음을 알 수 있다.3)
 <그림 6>은 모아쓰기를 하여 글자를 구성할 때는 구성의 차례를 좇아 각 자소 위치는 반드시 앞 구조의 중앙에 배치됨을 보인 것이며,〈그림 7〉은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등에서 볼 수 있는 중앙축성의 실례들이다.



 이러한 중앙축성은 「훈민정음 언해본」에 오면 다소 변형된다. 「훈민정음 언해본」에서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방형 서체구성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으나, 차츰 필서의 맛이 나는 서체로 바뀌게 되면서 다음 획으로 향하는 필의를 살려 씀에 따라 글자 모양도 변형되고, 조형성까지 갖추는 등 다양하게 써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오른쪽 세로획을 중심으로 한 오른쪽 종렬 축의 서체가 된 것이 아니고, 한자의 행서나 해서의 필서와 같이 글자의 중앙에 흐름의 축을 싣고 있다. 특히 국한문 혼용을 많이 사용하게 됨으로써 한글도 그 흐름 축이 한자와 같이 중앙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구성했다.



 다음의〈그림 8〉과〈그림 9〉를 보면 글자의 중앙을 흐름의 축으로 하여, 좌우 같은 비율로 변화를 주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점이 「훈민정음 해례본」의 글씨와 다르다.




      

 궁체 단계에서는 위의〈그림 10〉에서 보는 바와 같이 초·종성자의 오른쪽 끝과 우측 중성자의 맨 오른쪽 세로획에 흐름의 축을 두고 맞추어 쓰도록 구성, 초·중·종성자 모두 종렬축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또한 우측 중성자는 더욱 길게 늘어나고 우측 중성자나 종성자의 세로획은 반드시 끝을 뽑아서 아래에 있는 다음 획으로 향하게 한다. 즉, 궁체에는 글씨의 흐름을 오른쪽 흐름 축에 정확히 맞추어 쓰는 서체적 특징이 있다.

 이상을 바탕으로 글자의 축성을 개념도로 보이면 <그림11> 과 같다.



2-3. 기필의 노봉성
 다음 분류 기준으로는, 서체에 작용하는 것이 필법이며 조선시대의 서사도구가 붓이 중심이었다는 점을 고려하여 ‘기필의 노봉성(露鋒性)4)’을 들 수 있다.

 획의 기필(입필)에 있어 역입 여부에 따라 각 서체의 특징을 찾을 수 있는데, 「훈민정음 해례본」의 글씨체는 획이 곧은 직선이나 둥근 원이면서 시작의 머리 모양이 한자의 전서처럼 둥글거나 막대 모양으로 뭉툭하게 된 것이 특징이다. 붓끝을 감추지 않으면 획의 시작 머리를 만들 수가 없는 것이 필봉의 이치다.

 따라서 「훈민정음 해례본」의 글씨체는 기필할 때 반드시 역입하여 필봉을 감추어 장봉으로 휘필하는 필법을 구사하고 있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판각을 목적으로 하였기에 편리한 쪽으로 생각하여 디자인하거나 판각기술로 다듬었을 것이나, 만일 붓으로 한자의 전서처럼 획을 쓴다면 기필에서 반드시 역입, 장봉하여 서사해야 필봉의 뾰족한 맛을 감출 수가 있는 것이다.

 또 「훈민정음 언해본」에 쓰인 글꼴은 한자 해서의 필획과 닮은 점이 많다. 다음의〈그림 12〉에서 보다시피 가로 세로획은 마제잠두(馬蹄蠶頭) 형으로, 기필에서 송필을 거쳐 '수필' 에서는 회봉함으로써 필압에 따라 서선의 변화가 뚜렷이 나타난다. 이는 당시 한자 필서에 익숙했던 식자층들이 필서를 하다 보니 한자 획과 닮은 부분이 자연스럽게 많아지게 된 것으로, 한자 해서를 서사할 때 기필을 역입하여 장봉하는 운필법을 따랐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궁체는 앞의 해례본체와는 달리 기필을 역입하지 않고노봉으로 서사했다는 점이 방법상의 큰 특징이다. 따라서 아래〈그림 13〉과 같이 봉이 겉으로 드러나(노봉) 날렵한 맛이 나며 주로 작은 글씨에 많이 썼다.

 이 궁체는 궁중 여성들에 의해 많이 필서되었으며 획의 시작과 대부분의 끝 획에서 필봉이 겉으로 드러남으로써 그 미세한 변화를 엿볼 수 있으며 단아하면서도 활달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이는 운필상 방필에 의한 서체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조선시대의 서체를 전형성, 중앙축성, 기필의 노봉성을 자질로 들어 분류해 보았다. 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위〈표 1〉에 따르면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체는 읽기 위주의 서체이며 중앙 흐름 축을 가진 서체로 운필상 역입하여 장봉하고, 「훈민정음 언해본」의 글씨체는 쓰기 위주의 서체로서 초기에는 중앙 흐름 축 중심으로 쓰다가 점차 오른쪽으로 흐름 축이 이동하는데 운필상으로는 역입하며, 궁체는 쓰기 위주이나 우측에 흐름 축을 형성하며 기필 시 역입하지 않고 반드시 노봉으로 시작한다.


3.조선시대 한글 서체의 유형과 명칭

 위의 분류기준에 따라 조선시대의 한글 서체를 ① 훈민정음 해례본체(줄여서 해례본체), ② 훈민정음 언해본체(줄여서 언해본체), ③ 궁중서체(줄여서 궁체) 등으로 3대분할 수 있다. 이렇게 명명한 것은, 서체적 특징을 정형화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그 형성범위가 넓으면서 내용은 객관적이되 고유한 성격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이 전제되었을 때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명칭을 붙인 좀 더 구체적인 이유5)는 다음과 같다.

 1) ‘해례본체’는 훈민정음 창제와 더불어 처음으로 목판으로 나온다. 여기에 사용된 글자는 자·모의 모아쓰기 형태로서 자형은 바른네모꼴이다. 서선이 곧고 획의 굵기가 일정한 것이 마치 그려서 디자인한 모양으로 붓글씨 맛은 없다.

 이와 같이 만들어진 글자가 목판에 새겨지면서 붓의 맛보다는 칼의 느낌이 강하고, 시각적으로는 창제 글자의 전형을 보여주는 형태로 강하고 뚜렷한 글자형을 나타내고 있다. 획은 직선과, 완전 둥근 원, 그리고 둥근 점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뒤에 나온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 등에 사용된 글자형들도 다 이 체로 분류할 수 있다.

 2) ‘언해본체’ 해례본체와는 달리 당시의 서사용구인 붓의 특징을 잘 살려서 쓴 서체이다. 붓으로 쓴 육필이나 혹은 육필을 모본(등재본)으로 하여 판각한 판본이나 활자본에 나타난 붓글씨체로서 후에 나온 궁체를 제외한 모든 한글 붓글씨체는 「훈민정음 언해본」에 쓰인 글씨와 같은 유형이므로 ‘언해본체’로 분류할 수 있다.

「훈민정음 언해본」은「월인석보」전후의 ‘세종어제 훈민정음’만을 따로 제책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흔히 ‘훈민정음 국역본’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세종의 어지와 예의 부분만 언해했는데, 처음에는 해례본의 이름과 같은 「훈민정음」으로 시작하였으나 세종 때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조 때 간행되어 나오면서 제목을 고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훈민정음」에 없는 치두, 정치에 관한 규정이 추가되어 있으며 해례본 간행 직후 1년 이내에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 원간본은 1459년 세조 4년에 간행되었지만,「석보상절」의 권두에도 실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 훈민정음이 반포된 후 1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월인석보」의 권두에 ‘세종어제 훈민정음’을 새로 넣었다기보다는 1447년 간행된 「석보상절」의 체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 즉 ‘세종어제 훈민정음’의 언해는 1446년 9월 「훈민정음 해례본」의 반포 이후 1447년 「석보상절」의 간행 이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에 판각된 서체는 판의 체제나 서체로 볼 때 한문필서에 익숙한 사람의 글씨를 등재본으로 하여 ‘세종어제’란 4자를 추가하고 앞 부분의 넉 줄을 개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필획을 보면 기필, 송필, 수필의 기맥이 뚜렷하고, 가로획 서선은 오른손 쓰기에 의해 오른쪽으로 어깨가 차츰 올라가고 있다. 또한 서사하는 순서에 의해서 초·중·종성자가 놓이는 위치와 모양이 다르게 변하고, 획에는 시작과 중간과 끝의 서체적 특징이 있어 획간과 자간의 연결과 흐름은 물론 필서로서의 속도감이 뚜렷해 보이는 붓글씨체이다.

 3) ‘궁체’ 오직 궁중에서만 사용하던 서체라는 개념에서가 아니라, 궁중이라는 특수 환경에서 창안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궁체로 된 것은 앞선 다른 서체와는 달리 최초의 간본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하나의 서체가 완전한 필법과 결구로 자형이 정립되어 정형화하기까지는 많은 변화의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그 특징을 드러낼 수 있었기에 최초나 대표적인 간본 자료의 이름을 쓰지만, ‘궁체’만은 서체가 창안된 특수한 환경적 요인과 배경을 중시하여 명명한 것이다. 즉 궁중이라는 공간적 특수성과 여성이라는 신분적 특수성을 배경으로 창안된 서체인 것이다.

 궁체는 붓으로 필서함으로써 붓글씨의 흐름과 특징이 확연한 것으로, 필법에 따른 자형과 결구 등이 한자 필법에 익숙했던 사람들의 서체인 「훈민정음 언해본」에 쓰인 체와는 다른 독특한 서체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당시 한자를 써 오던 습관으로 서사된 획과는 완전히 다른 서체로서, 초성자와 중성자에는 일정한 '서법적' 기
준이 있고 글자의 조형성과 정형화된 형태적 틀을 갖춘 정제된 서체이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미려한 감각이 돋보이는 서체라 할 수 있다.
 
 글씨는 특정 서체를 범본으로 하여 연마되지 않는 한 계속적으로 발전되었다고 볼 수 없다. 한자 서체의 흐름을 ‘전서-예서-초서-해서-행서’로 보되 이를 발전순서 보다는 출현이나 분화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듯이, 궁체도 특수한 여건에서 출현한 것이지 범본이 있어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한글 서체의 유형을 위와 같이 해례본체, 언해본체, 궁체등으로 대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각 유형의 특성을 가지면서 한 자 한 자, 한 획 한 획을 연결 없이 또박또박하게 표현한 것은 ‘정자’로, 획과 획의 붓길(필의)에 따른 연결과 글자간의 연결과 흐름을 살린 서체는 ‘흘림’으로, 글자간의 연결이 있으면서도 획은 축약으로 변형되는 등 글자형은 물론 연결 정도가 커서 어떤 것은 마치 암호처럼 사용된 것도 있는 서체는 ‘진흘림’으로 하위분류하면 다음과 같은 표로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표 2〉에 대응하는 각 서체의 보기는 다음〈그림 14〉<그림 15>, <그림 16>에서 찾을 수 있다.
 










1) 홍윤표, 2004, 「한글 서예 서체의 명칭」, 서예학술대회 발표 요지,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부 서예문화연구소, 1~13쪽
2) 김성계, 2002, 「훈민정음에 나타난 글꼴의 형성원인」, 비닥디자인 저널 통권 1호, 한국시각디자인협회
3)해례 초성해 ‘ 與   而爲  之類’ 에서 보이는 ‘  ’ 모양 을 초성자가 없음에도 초성자 자리를 비워 ‘   ’ 으로
쓰지 않고 굳이 중성자를 글자의 중앙에 배열한 것은 창제자가 글자의 축을 중심에 두고자 함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4)기필(起筆)이란 처음 붓을 대어 쓰기 시작하면서 붓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시작하는 운필의 한 형태이며, 노봉(露鋒)이란 획의 시작과 끝에서 뾰족한 붓의 끝(필봉)이 겉으로 드러난다는 뜻으로, 운필의 한 형태이다.
5) 동·식물 분류 체계나 성씨 형성 체계를 보면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써 형태적 혹은 본질적 특성을 따거나, 최초의 시원을 나타내는 지명, 조상 이름 등을 따서 명명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한글 문자와 관계되는 명칭 문제는 관련 학문 분야에서 이미 통용되는 것을 활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hangulsalang | 2010.08.11 05:0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요, 그림이 뜨지 않는데 다시 링크 걸어주실수 있나요?
BlogIcon 온한글 | 2010.08.13 09:50 신고 | PERMALINK | EDIT/DEL
hangulsalang님 안녕하세요.
우선 http://onhangeul.com/30043633020
에서도 볼 수 있는데요. 사진은 곧 다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9. 2. 23. 09:45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글날이란?
한글날은 세종대왕께서 우리 글자인 한글(훈민정음)을 만들어 반포한 날을 일제시대인 1926년에
기념일로 정해 기리다가 지난해부터 국경일로 정해 경축하는 날이다.




 한글날의 시작은 일제 식민지 시대인 1926년 11월 4일, 훈민정음 반포 480돌인 날에 조선어연구회와 신민회의 공동주최로 한글학자와 민족지도자 400여 명이 모여 ‘ 가갸날 ’ 을 선포하고 처음 기념식을 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로부터 두 해 뒤인 1928년에 기념일 이름을 ‘ 한글날 ’ 로 바꾸기로 한다.  날짜도 훈민정음 반포일이 조선왕조실록에 음력 9월로 기록되어 있다 하여 음력 9월 마지막 날인 29일로 옮겼다가 1934부터는 이를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한 날인 양력 10월 28일로 바꾸어 1937년까지 기념식을 착실하게 시행했다.

 그런데 일제가 일본말만 쓰라며 우리말은 못쓰게 탄압해 한글날 기념식을 못하다가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날짜를 10월 9일로 바꾸어 다시 시행한다. 1940년에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에 보면 반포일이 음력 9월 상한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를 양력으로 환산한 날짜인 10월 9일로 바꾼 것이다. 다음 해인 1946년 미군정은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는데 마침 한글 반포 500주년이 되던 해여서 덕수궁에서 대대적인 기념식을 거행하고 거리행진을 하기도 했다.

 1948년 대한민국이 제대로 세워진 후에도 한글날은 계속 공휴일로 이어졌으며 한글학회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의 한글 단체들이 주관하는 한글날 행사가 매년 있어왔다.


왜 한글날을 만들었나?

 1446년 세종대왕이 우리 글자인 훈민정음을 만들었지만 그 뒤 500여 년 동안은 널리 쓰이지 못한다. 한문에 길든 학자와 관리들이 큰 나라인 중국 눈치를 보면서 우리 글자를 우습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조선 말기부터 한글을 많이 쓰게 되는데, 대한제국 때 고종이 공문서에도 국문을 쓴다는 칙령을 내리면서 비로소 나라 글자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때 주시경과 여러 선각자가 한글을 살려 써서 강대국의 침략에 맞서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10년에 일제 식민지시대를 맞게 된다.

 식민지 시대에도 한글이 훌륭하고 중요함을 깨달은 주시경의 제자들은 ‘조선어학회’를 세워 겨레말을 지키려고 애쓴다. 그러던 중 1926년에 이르러 한글학자와 민족지도자들이 '겨레의 보물인 한글을 갈고 닦아 우리말을 살리고 겨레의 얼을 지키는 일을 더욱 잘 하자'는 취지로 훈민정음 반포일을 기념일로 정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해마다 한글날 그 다짐과 정신을 되새겨 오다가 1933년엔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만들기도 한다. 또한 우리말 사전을 만드는 작업을 하다가 그 때문에 1942에는 한글학자와 민족지도자들이 함흥 경찰서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목숨까지 잃기도 한다.

 한글날은 이렇게 일제에 나라를 빼앗겨 겨레가 사라질 위기에 있을 때 세계 으뜸가는 글자인 우리 한글로 우리말을 지키고 빛내어 겨레를 지키고 나라를 되찾겠다는 꿈으로 만든 날이다.   


한글날이 겨레와 나라에 이바지한 공로

 어두웠던 일제 식민지 시대에 한글은 우리 겨레의 희망이었고 한글날은 독립을 준비하는 기념일이었다. 한글날이 있었기에 한글이 더욱 빛날 수 있었고 겨레의 말과 얼을 지키며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선각자들이 한글날을 만들고 목숨까지 바치며 한글을 지켜 나갔기에 일제가 물러간 뒤 우리 말글로 된 교과서도 만들고 공문서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한글날은 나라를 잃은 시기엔 독립을 다짐하고 준비하게 한 '건국 공로일'이며, 광복 후엔 국민을 자주민주시민으로 키워내고 나라를 더욱 굳건히 하는 데 이바지 한 민족 최대의 기념일이다. 대한민국 시대의 한글날은 ‘나라 사랑, 한글 사랑’을 생각하고 그 바탕에서 튼튼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한 날이다.
 한글이 우리나라를 문맹 없는 나라로 만들어 주었다면 한글날은 한글을 지킬 뿐만 아니라 빛내 주었으며 나아가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빠지게 된 이야기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글날은 광복 후부터 공휴일로 지정되어 매년 한글 단체들이 공식적으로 행사를 주관해 왔었다. 그러던 것이 전두환 정권 때인 1981년엔 서울시가, 그 다음 해엔 문화공보부(지금의 문화관광부)가 주관하기 시작하면서 마지못해 하는 행사처럼 치러진다. 그리고 1990년대 초 노태우 정부가 마침내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버리면서 3등 기념일로 전락하게 된다.

 경제단체들이 연합해 ‘공휴일이 많아서 나라 경제가 어렵다’며 투덜대자 정부가 이를 위해 세운 대책이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시키는 것이었다. 그 결과 한글 사랑 정신이 식고 겨레의 말과 얼이 흔들리니 나라까지 흔들리고 기울게 되어 국제 투기 자본의 먹이가 되는 경제 식민지 시대를 맞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은 군사 독재 정치에 대한 국민과 노동자의 저항을 줄이고 환심을 사려고 공휴일을 많이 늘렸었다는 사실이다. 양력 1월 1일 새해 첫날만 쉬던 것을 음력 설까지 쉬게 하더니 이를 3일로 늘리고, 한가위도 이틀만 쉬던 것을 3일로 늘려 놓았다. 게다가 성탄절만 쉰다고 불교인들이 불만을 표하니 석가탄신일도 공휴일로 지정한다. 그러니 전경련, 무역협회 등 경제단체들로서는 휴일이 너무 많아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불만스러워할만도 했을 것이지만, 그 폐해를 완화시키기 위해 한글날을 희생시킨 것은 한글단체와 민족지도자들을 봉기시키는 발단이 되었다. 

 이로부터 한글단체는 15년에 걸쳐 국경일 제정운동을 하게 되었고 2005년 마침내 국회에서 국경일 지정 법안이 통과되어 국경일이라는 위치를 되찾게 된다. (그러나 공휴일이 아닌 국경일이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 운동

 한 나라의 말은 그 나라의 얼과 정신이 담겨 있는 그릇이다. 말이 흔들리고 지저분해지면 그 나라까지 흔들리고 지저분해진다. 한글날을 짓밟으니 우리 말글살이가 혼란스럽게 되고 민족자주정신이 흔들리면서 국운도 시들었던 것이다. 한글단체들의 ‘한글날 국경일 승격 운동’은 이러한 전제와 대의에서 시작되었다.

 정부가 끝내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시키자 1991년 2월 전국국어운동대학생연합회 학생들이 탑골공원에 모여 정부를 규탄하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시키라고 외치며 서울 명동까지 거리행진을 한다. 그리고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회장 안호상)이 1991년 10월 1일에 국회의장에게 ‘한글날 국경일 제정 청원서’를 내는 것을 필두로 한글단체들은 정부와 국회에 건의와 청원을 쉬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의 애타는 호소도 못 들은 듯 오히려 한글날 기념식도 무성의하게 해치우곤 한다. 또한 김대중 정부에 와서는 그때까지 기본적으로 한글 전용 정책이던 것을 일본처럼 한자를 혼용하는 정책으로 바꾸려 하더니 결국 한자 병용 정책을 강행한다. 이에 한글단체가 분노해 거세게 반대 시위를 하고 나오니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겠노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이를 계기로 한글 단체들이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 공청회’를 여는 등(1999년 7월 9일) 대정부 촉구를 보다 본격적으로 하니, 마침내 신기남 의원 외 34명이 ‘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한 법률안 ’ 을 입법안으로 발의한다 (2000년 10월 2일). 그리고 그 해 11월 15일자로 여야 의원들이 ‘한글날 국경일 추진을 위한 의원모임’을 발족하고 30일에 국회에서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한 공청회’를 연다.

    그러나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게 한 경제단체가 또 반대하니 행정자치
   부가 그들 편을 들어 법안을 제대로 심의조차 하지 않는다. 이에 한글
   단체와 시민들이 하나가 되어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위원회'
   (위원장 전택부)를 만들어 국회와 정부를 찾아가기도 하고, 촉구 결의
   대회나 1인 시위를 하는 등 더욱 활발한 운동을 펼쳐 나간다.
    그러한 투쟁의 결과로 2005년 12월 5일 국경일 지정 법안이 국회를 통과
   하게 된 것이다.
 







국경일 제정의 의의

   한글학회와 외솔회,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등 한글단체뿐 아니라
  전교조, 국어교사모임, 참교육학부모회 등의 교육단체와 국회의원,
  시민단체까지 힘을 모아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지난
  15년에 걸친 세월 동안 이 많은 단체들이 하나가 되어 한글날을 국경
  일로 만들고자 했었던 참뜻은 무엇이었는가?

   첫째, 정부와 정치인, 경제단체와 일부 학자들까지 한글과 한글날을
  우습게 여기는 잘못을 바로 잡으려고 했던 것이다.

   한글날을 온 국민과 함께 뜻깊게 보내는 데 앞장서야 할 지배층들이
  한글날을 3등 기념일로 내리면서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등의 주장을
  하는 얼빠진 정신과 풍조를 바로 잡자는 것이었다.

   둘째, 우리 한글 문화, 자주 문화를 꽃피우자는 것이었다. 한글은 세계
  언어학자가 인정하는 세계 으뜸 글자다. 그럼에도 헌신짝 보듯 해온
  역사를 반성하고 한글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자 하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사실,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고는 하나 내놓을만한 우리 문학작품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문으로 씌여졌던 고전들은 중국 문학과 문화의 곁가지에 지나지 않았고, 일제시대 때 길든 일본식 한자 혼용이 우리 말글살이인 줄 알고 한글을 살려 쓰는 것을 가로막는 한국인도 많았었다. 그러나 이제라도 우리말과 우리 글자인 한글로서 우리 문화를 부흥시키는 계기를 삼고자 했다.

 셋째, 과학과 철학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한글을 더욱 갈고 닦아서 과학 강국, 철학 강국이 되자는 것이었다. 정보통신 학자들이 ‘세종대왕은 셈틀(컴퓨터)을 이용한 정보통신시대를 내다보고 600년 전에 한글을 만든 것 같다’고 할 정도로 한글과 셈틀은 찰떡궁합이다.
 그리고 실제로 한글은 우리 나라가 정보통신 강국이 되는 데 크게 이바지해왔다. 그 공을 살려 문화 경쟁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라도 한글날은 국경일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한글날을 마음껏 즐기고 기리자

 우리에겐 삼일절, 개천절, 제헌절, 광복절 등의 4개 국경일이 있지만, 지금까지 중앙 정부 차원에서 매년 기념식이나 치르는 것 외에 국경일의 참뜻을 살리는 국민 참여행사를 마련하지는 못했었다. 그러다 보니 국경일이란 그저 등산이나 가고 집에서 노는 날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것 같다. 국경일은 경사스러웠던 날을 온 국민이 함께 기념하며 경축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한글날이 정부와 국민이 모두 함께 참여하고 즐기는 국경일이 되고 세계인이 주목하는 문화의 잔칫날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스스로 500여 년동안 천대했던 것을 반성하고 한글이 제 빛을 발하고 제대로 된 대접을 받기를 바란다.

 한글 창제 정신과 만든 원리는 민주정치와 과학시대에 딱 어울린다. 한글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신 있게 자랑할 수 있는 우리 보물이고 긍지다. 세계에서 으뜸가는 글자를 만든 세종대왕의 위대한 정신을 잘 계승하고 그 글자를 가진 겨레라는 긍지와 자신감으로 학문, 예술, 정치, 문화의 선진국을 만들자.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라도 한글날은 우리 국민 스스로가 먼저 마음껏 자랑하고 즐겁게 기리는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한주헌 | 2010.09.30 22:1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요.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 그런데 본문 처음부분에 조선어 학회라고 쓰셨는데요. 제가 알기론 조선어 학회는 1932년도에 창립한것으로 알고있습니다. 1926년도에는 조선어 연구회가 아닌가하는 생각이드네요. 사실확인 부탁드립니다.
BlogIcon 온한글 | 2010.10.05 09:11 신고 | PERMALINK | EDIT/DEL
한주헌님 안녕하세요.
지적 감사합니다. 님이 말씀하신 대로,
1926년도에는 조선어연구회가 맞네요.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9. 2. 17. 13:09


 지구상에는 수천여 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그 수가 정확하지 않아서 적게는 3000개, 많게는 6000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들쑥날쑥한 이유는 정밀한 조사의 부족도 있지만 언어의 구별 기준, 혹은 방언과 언어의 구별 기준이 모호한 데에 있다. 사용되고 있는 언어의 수가 이렇게 많지만, 이 많은 언어를 표기하는 데 쓰이는 문자의 수효는 이보다 훨씬 적다.
 역사적으로 흘러간 과거에 존재하였던 문자를 포함한 총수는 대략 400여 개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사용되고 있는 문자의 수는 30~40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문자를 가지지 못한 언어가 압도적으로 많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한국말을 할 때 사용하는 말소리는 ‘한글’이라는 문자로 표기된다. 한국말의 소리는 귀에 들리는 청각적 존재이고, 이것을 시각적 존재인 문자로 나타내 주는 것이 ‘한글’이다. 우리의 문화적 긍지이면서,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에서 그 위력을 더욱 크게 발휘하고 있는 한글.
 우리에게 친숙한 이 ‘한글’이라는 말이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을 당시부터 쓰였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문자를 가리키는 명칭인 이 낱말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그 시작은 물론 ‘훈민정음(訓民正音)’이었다.
 




훈민정음(訓民正音)과 정음(正音)

「훈민정음」해례본에서 우리 문자를 전체적으로 지칭한 표현은 ‘訓民正音’과 ‘正音’이다. 후자는 ‘正音二十八字’(제자해)라고 구체화되어 표현되기도 했다.「훈민정음」에 나타난 ‘훈민정음’과 ‘정음’의 용례를 모두 찾아보니 다음과 같다.

(1) ‘훈민정음’과 ‘정음’의 용례
㉠ 癸亥冬, 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 略揭例義以示之, 名曰訓民正音.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옵서 正音 스물여덟 글자를 창제하시고, 간략하게 예와 뜻을 들어 보이시니 이름 지어 가로되 訓民正音이라 하셨다. (정인지 해례서문)
㉡ 正音之作, 無所祖述, 而成於自然.
정음을 지으심에 先人의 서술에 의지함이 없이 스스로 그러함의 이치로 이룬 것이 다. (정인지 해례 서문) 
㉢ 今正音之作, 初非智營而力索, 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
  이제 正音을 지은 것은 애초부터 슬기로써 도모하고 힘써서 찾아낸 것이 아니라
  다만 그 聲音에 기인되어 있는 이치를 지극히 한 것이다. (제자해)
㉣ 正音二十八字, 各象其形而制之. 初聲凡十七字 (····云云····).
  정음 28자는 각각 그 형상을 본떠 만들었다. 초성은 17자이니···· (제자해)
㉤  正音作而天地萬物之理成備. 其神矣哉. 是殆天啓聖心 而假手焉者乎.  
  아! 정음의 지음에 천지만물의 이치를 이룩하여 갖추니 신묘하도다. 이는 거의 하
  늘이 성상의 마음을 열어서 그 손을 빌린 것이로다. (제자해)
㉥ 正音制字尙其象 因聲之每加
  정음의 제자는 그 모양을 존중하여 소리에 따라 거세지면 획을 더하였다. 正音之
  字只卄八 정음의 字는 오직 스물여덟. (제자해 訣)
㉦ 正音初聲, 卽韻書之字母也. 聲音由此而生, 故曰母.
  정음의 초성은 곧 운서의 자모이다. 聲音이 이로부터 생기므로 母라고 말한다.
  (초성해)

 
 해례본과 함께 당시의 사실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25년 기사에도 ‘訓民正音’이라는 용어가 쓰였다. 세종실록 28년 9월 기사에도 “이 달에 훈민정음이 완성되었다”(是月訓民正音成)이라 하여 ‘訓民正音’이라는 용어가 나타난다. ‘훈민정음’은 책 이름 으로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가리키기도 하고, 세종이 만든 문자 체계를 가리키기도 하는 두 가지 뜻을 가진다.

 위의 ㉡ 이하에 쓰인 ‘正音’은 ‘訓民正音’에서 관형부 ‘訓民’을 생략한 것이다. ‘正音’은 제자해에 4회, 초성해에 1회, 정인지 서문에 2회 나타난다. 여기에 쓰인 ‘정음’이 문자를 지칭하는 것은 확실하다. ㉣의 ‘正音二十八字’와 ㉥의 ‘正音制字’와 같이 ‘正音’이 ‘字’와 한 덩어리로 묶여 사용된 것이 그 명백한 증거이다. 훈민정음의 약칭으로서의 ‘正音’은 「直解童子習」(成三問 지음), 「釋譜詳節 序」,「月印釋譜 序」에서도 쓰였다.
「석보상절 서」의 협주에 “正音은 正 소리니 우리 나랏마 正히 반기 올히 쓰논 그릴  일후믈 正音이라 니라” (정음은 바른 소리니 우리나라 말을 바르고 반드시 옳게 쓰는 글이므로 그 이름을 정음이라 한다)라고 ‘정음’의 뜻을 명확히 규정하였다. 이 협주는 ‘正音’을 문자로서 인식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에서 ‘正音’이 ‘성음’(聲音)의 대립어로 쓰이고 있는 점도 ‘정음’이 문자 체계를 지시하는 것임을 잘 보여 준다. 이 문맥에서 ‘성음’은 음성언어 즉 ‘말소리’이고 ‘正音’은 그것을 시각화한 글자를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정음’이 쓰인 전후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용어에는 다른 의미가 함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에서 ‘정음의 초성은 운서의 자모’이며 ‘이로부터 성음(말소리)이 생겨난다’고 하였다. 이 문맥에서 ‘정음’은 현대 언어학의 ‘음소’의 의미와 같은 것으로 파악된다. 현대 언어학에서 심리적 차원에 존재하는 음소단위로부터 생리적· 물리적인 말소리(음성언어)가 생성· 인지된다는 관점과 ㉦에 나타난 ‘正音’과 ‘성음’의 관계는 매우 가까운 것이다.

 한편 해례본에는 ‘정음’안에 ‘초성, 중성, 종성’이 있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성운학에서는 음(音)과 성(聲)을 구별하여 쓰지 않았다. 따라서 ‘正音二十八字’에 속한 문자들은 초성, 중성, 종성이라는 청각적 소리단위이면서 동시에 시각적 문자단위이기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언문(諺文), 언자(諺字), 반절(反切)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쓰이지 않았지만, 훈민정음 창제와 동시에 우리 문자를 가리키는 명칭어로 가장 널리 사용된 용어로 ‘언문(諺文)’이 있다. 언문이라는 용어가 가장 먼저 나타난 예는 「朝鮮王朝實錄」 기사 중의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일 것이다.
 이것은 세종 25년(1443년) 12월 30일의 실록 기사이고, 이어서 세종 26년(1446년) 2월 16일에 최항, 박팽년 등에게 언문으로 「韻會」를 번역하게 했다는 실록 기사에도 나온다. 같은 해 2월 20일 최만리 등이 언문 제작의 부당함을 아뢴 상소문(실록 번역문)에서는 무려 22회나 쓰였고, 이 상소문을 본 후 최만리 등을 불러 꾸짖는 세종의 말을 기록한 기사에도 ‘언문’이 출현한다.

 훈민정음 또는 정음이 공식적인 명칭이라면 언문은 속칭으로 사용했던 용어라 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언문을 비칭(卑稱)으로 보는 경향이 있으나 적어도 세종 당대에는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보는 근거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조선왕조실록의 “이 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셨다”(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세종 25년 12월 30일)라는 기록이다. 실록에서 임금이 친제한 문자를 언문이라 한 것이다. 언문이 비하적인 의미를 가졌다면 이런 문맥에서 결코 쓸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 근거는 최만리의 반대상소에 쓰인 언문의 용례다. 언문이 비하적 의미를 함의했다면 최만리가 임금이 직접 만든 문자를 지칭하는 데 이 용어를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훈민정음(혹은 정음)이 격식을 갖춘 정중한 용어라면 ‘언문’은 이것을 평범하게 칭하는 명칭이라 할 수 있다.
 
 이밖에도 실록 기사에는 우리 문자를 지칭하는 언문이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이들을 일일이 거론할 필요는 없다. 다만 특이한 경우로 ‘일본 문자를 가리키는’ 언문의 용례가 있음은 언급해둘 만하다.

(2) 국법(國法)은 귀천(貴賤)·남녀(男女)를 막론하고 6, 7세 때부터 언문(諺文)을 가르치는 데, 이를 이름하여 ‘가나(假名)’라고 하며 공사(公私)의 문서는 모두 이 ‘가나’를 사용합니다. 진문(眞文)의 관원 자리가 하나 있는데, 시서(試書)를 알고 해서(楷書)·초서(草書)를 대략 이해하는 사람이면 곧 이 자리에 차임합니다.(순조 9년(1809년) 12월 2일)

 이 기사는 도해역관(渡海譯官) 현의순(玄義洵), 최석(崔昔) 등이 일본에 대해서 보고 들은 것을 보고하는 별단(別單)을 옮긴 것이다. 이 기사에서의 언문은 당시의 조선인이 일본 문자를 가리키는 뜻으로 썼으며, ‘眞文(漢字)’과 대립되는 용어이다. 이는 우리가 훈민정음을 가리키기 위해 ‘漢字’의 대립어로 쓴 ‘언문’의 용법과 같은 것이다.

 한편 실록 기사에는 언문과 같은 뜻으로 ‘언자(諺字)’라는 용어도 더러 나타난다. 그 중 이른 시기의 것 두 예만 보이기로 한다.

(3) 임금이 동궁에 있을 때 서연관(書筵官)에게 명하여 「대학연의」를 언자로써 어조사(語助辭)를 써서 종실 가운데 문리(文理)가 통하지 않는 자를 가르치려고 하였다.(문종 원년(1451년) 12월 17일)

(4)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최항(崔恒), 우승지(右承旨), 한계희(韓繼禧) 등 문신(文臣) 30여 인에게 명하여, 언자(諺字)를 사용하여 「잠서(蠶書)」를 번역하게 하였다.(세조 7년 3월 14일)

(5) 승전색(承傳色) 설맹손(薛孟孫)이 언자와 한자를 섞은 편지 한 장을 가지고 와서 승정원에 보였다.(성종 10년(1479년) 9월 4일)


 (3)의 기사는 훈민정음을 이용하여 「대학연의」의 본문에 구결을 달았던 사실을 적은 것인데, 종전 한자의 약체(略體)로 된 차자(借字) 구결을 대신하여 일찍부터 한글 구결을 만들어 활용했음을 알려준다. 이 기사를 통해 우리는 훈민정음이 왕자의 한문의 학습에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4)는 「잠서 언해」에 관한 기록에서 우리 문자를 ‘언자(諺字)’라 부른 예이다. (5)는 양반관료가 훈민정음과 한자를 섞어서(이른바 국한문 혼용) 서간문을 작성한 사실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이와 같이 언문을 언자라고 부른 예도 적지 않는데 이로 보아 두 용어는 구별 없이 혼용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언문과 별도로 우리 문자를 가리킨 용어로 ‘반절(反切)’이 있다. 이 용어는 최세진이 지은 「훈몽자회」의 ‘범례’항에 나온다. 여기에는 ‘諺文字母’ 아래 ‘俗所謂反切二十七字’라 하여 반절을 우리 문자 명칭어로 썼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 반절이 우리 문자를 지칭한 용례는 없다.
 
 반절이란 용어는 중국 한자음을 성모와 운모라는 두 개 단위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 「동국정운」, 「홍무정운역훈」 등에서 중국 한자음을 표기하는 수단으로 쓰였던 데에서 훈민정음을 반절이라 부르기도 하였던 것이다. 반절은 우리나라에서 만든 우리 문자 명칭어로 보기 어렵다. 중국의 성운학에서 쓰이던 용어가 잠시 전용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국문(國文)의 출현

 앞에서 보았듯이 우리 문자를 지시하는 명칭으로 훈민정음, 정음, 언문, 언자 등이 통용되다가 19세기 말엽 서구 열강과 수교를 맺고, 청나라와의 사대관계가 약화됨에 따라 독립과 자주의식이 고취되면서 우리의 고유문자는 국가의 문자로 그 지위가 격상된다.
 즉 諺文이 국가의 문자가 되면서 그 명칭이 ‘국문(國文)’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문자를 국가적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국문이라고 칭하게 된 시기는 「고종실록(高宗實錄)」에서 확인할 수 있다.

(6) 軍國機務處啓, 議政府以下各衙門官制職掌. 學務衙門 管理國內敎育學務等政
(··중략··) 編輯局 掌國文綴字各國文繹及敎課書編輯 等事.
학무아문은 국내의 교육과 학무 등을 관리한다. 편집국을 두어 국문 철자와 각국의 문장을 번역하고 교과서를 편찬하는 일을 관장케 한다.(고종 31년(1894) 6월 28일)

 갑오개혁 이후 군국기무처에서 의정부 이하 각 관청의 편제와 직무를 근대 정부조직으로 개편하면서 학무아문(學務衙門) 내에 편집국을 설치하여 ‘國文綴字’ 등에 관한 업무를 관장토록 한 기록이다. 이 규정에 이르러 종전의 ‘언문’이 ‘나랏글’ 즉 국가의 공용 문자로 자리매김 되었다.
 1443년에 창제된 이후 450년 동안 우리 문자 생활의 주변부에만 머물러 있던 훈민정음이 비로소 자기 자리를 찾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성능 좋고 간편한 우리 문자를 뒷전에 두고, 어렵고도 불편한 남의 문자[漢字]에 얽매여 있던 질곡에서 우리는 해방되었던 것이다. 그밖에 ‘國文’이 나타난 주요 기사는 다음과 같다.

(7) 凡國內外公私文字. 遇有外國國名地名人名之當用歐文者. 俱以國文繹施行事. 일체 국내외 공적인 문서와 사적인 문서에 외국의 나라 이름, 고장 이름, 사람 이름을 구라파 글로 쓴 것이 있으면 모두 국문으로 번역할 것입니다.(고종 31년 7월 8일)

(8) 銓考局條例.(··중략··) 一. 普通試驗 國文漢文寫字算術內國政外國事情內情外事 俱發策.전고국 조례(銓考局條例). 보통시험에는 국문, 한문, 글자쓰기, 산술, 국내 정사, 외국사정, 국내 사정, 외무 관계 문제를 모두 시험 문제로 낸다.(고종 31년 7월 12일)

(9) 勅令第一號 朕裁可公文式制 使之頒布 從前公文頒布例規.(··중략··) 第十四條 法律勅 令 總以國文爲本 漢文附譯 或混用國漢文. 칙령 제1호에서는 “내가 결재한 공문규정을 공포하게 하고 종전의 공문 공포 규정은 오늘부터 폐지하며 승선원 공사청도 전부 없앨 것이다.”라 하였다. 제14조 법률, 칙령은 모두 국문(國文)을 기본으로 하고 한문으로 번역을 붙이거나 혹은 국한문을 섞어 쓴다.(고종 31년(1894) 11월 21일)

(10) 勅令第四十九號 法官養成所規程. 第四條 凡本所의 生徒되 者 年齒二十歲以上으로 入學試驗에 及第 者 或現在官署에 奉職 者限홈. 入學試驗科目이 左와 如홈. 一. 漢文作文. 一. 國文作文. 一. 朝鮮歷史及地誌大要.
칙령 제49호 법관양성소 규정. 제4조 본 양성소의 생도로는 20살 이상으로서 입학시험에 합격한 사람이나 또는 현재 관청에서 근무하는 사람으로 제한한다. 입학시험 과목은 아래와 같다. 1. 한문 작문 1. 국문 작문 1. 조선역사와 지리대요(고종 32년(1895) 3월 25일) 

(11) 勅令第八十六號 公文式 裁可頒布. 第一章 頒布式.(··중략··) 第九條 法律命令은다 國文으로 本을 삼 漢譯을 附며 或國漢文을 混用홈. 칙령 제89호 공문식을 재가반포하다. 제1장 반포식 제9조. 법률과 명령은 다 국문으로 서본을 삼고 한문 번역을 덧붙이거나 혹은 국한문을 혼용토록 함. (고종 32년 5월 8 일)
 
(12) 學部告示第四號 (··중략··) 學徒 八歲以上으로 十五歲지 增集야 其科程은 五倫 行實로붓터 小學과 本國歷史와 地誌와 國文과 算術其他外國歷史와 地誌等 時宜에 適用 書冊을 一切敎授야 (···하략···) 학생은 8살부터 15살까지 더 모집하고 그 과정은 오륜행실로부터 소학과 우리나라 역사와 지리, 국문, 산술 그 외에 외국 역사와 지리 등 시의에 적용되는 책을 일체 가르쳐서···. (고종 32년 9월 28일)
 
(13) 內閣總理大臣李完用奏, 以學部大臣李載昆請, 議設置國文硏究所.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이 아뢰고 학부대신 이재곤이 청하여 국문연구소를 설치하였다. (고종 44년(1907) 7월 8일)  

 
(7)은 각종 문서의 외국어 고유명사를 국문으로 번역토록 한 것이다. (8)은 각급 아문의 관리 등용 시험에 ‘國文’을 부과한 것이고, (9)는 국가의 공용문서 기록에 국문을 기본으로 삼고 국한문도 쓸 수 있게 한 역사적 규정이다. 이 칙령 1호 14조에 의해 한글은 국가의 문자로 공인받게 되었으니 이것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참으로 큰 것이다. 이 내용은 (11)에서 보듯이 칙령 89호로 더욱 구체화되어 반포된다.  
 
 (10)는 법관양성소 입학시험 과목에 ‘國文’을 부과한 규정이다. 이들은 세종 당대에 제한적으로 이서배(吏胥輩) 선발 시험에만 훈민정음을 부과한 이후 관리 임용 시험 전반에 ‘國文’을 부과한 최초의 사건이다. (12)는 학교의 정규 교과목으로 ‘國文’을 가르치도록 한 법률이다. (13)은 우리글을 연구하는 국가 기관 ‘국문연구소’의 설립 기사이다. 주지하다시피 주시경 등 주요 인사들이 많은 토론을 거쳐 국문을 새롭게 정비한 ‘의정안’을 만들었으나 국운이 다하여 시행에 들어가지는 못하였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우리말을 가리키는 ‘國語’는 널리 쓰이지만, 우리글을 가리키는 용어로는 ‘國文’보다 ‘한글’이 일반적으로 쓰인다. 현재 ‘國文’이라는 용어는 노년층에서 일부 쓰이기는 한다. ‘國文’은 대학의 국어국문학과를 줄여서 부르는 ‘國文科’ 정도에서 부분적으로 쓰일 뿐 우리 문자를 가리키는 술어로서의 기능은 ‘한글’에게 물려주고 말았던 것이다.


'한글'의 출현
 
 한글’이라는 용어는 일제의 억압으로 쓸 수 없게 된 ‘國文’을 대신하여 우리글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려는 애국적 의도에서 만든 것이다. ‘한글’을 누가 언제 만들었는가 하는 문제는 고영근의 ‘한글의 유래’(1994)에서 명료하게 밝혀졌다. 

 최남선(1946:179~180, 1973:87)에서는 朝鮮光文會에서 ‘한글’을 만들었다고 서술하였으나, 1910년 주시경의 글에 나타나는 ‘한나라글’에서 ‘한글’의 유래가 비롯되고, 주시경의 손으로 쓴 각종 증서에 ‘한말’, ‘배달말글’, ‘한글’이 실용되고 있는 증거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한글’의 작명부는 주시경으로 봄이 옳다.(고영근1983a/1994:294)
 ‘한글’이 처음 출현한 것은 1913년 3월 23일에 창립한 조선언문회 창립총회 기록에 나타난다. 창립총회의 전말을 기록한 「한글모 죽보기」의 ‘四二四六年 三月二十三日(日曜) 下午一時 ··· 本會의 名稱을 ‘한글모’라 改稱하고····’에서 ‘한글’이 처음 등장한다.1) 따라서 한글의 최고(最古) 사용 연대는 1913년 3월 23일이 된다(고영근 1983a/1994:293).2)

 그후 ‘한글’이라는 명칭은 「아이들보이」(1913.9)의 ‘한글풀이’란에 처음 실용화되었고, 1914년 4월에 조선어강습원의 이름을 바꾸어 ‘한글배곧’이라 부른 데서도 쓰였다. 여기서 나온 중등과 제4회 수업증서, 고등과 제3회 수업증서, 우등증(1915.3) 등에 ‘한글배곧’이 나타난다.

 주시경의 후학에 의해 ‘한글’이 처음 쓰인 기록은 김두봉의 「조선말본」(1916)의 머리말에 ‘한글모임자 한샘’이란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이규영의 「한글적새」와 「한글모 죽보기」의 두 원고는 1916~1919년에 엮어진 것인데 여기에서 ‘한글’이 쓰인 것으로 보아, 주시경의 제자들이 이 말의 보급에 앞장섰던 것을 알 수 있다. (고영근 1984a/1994:295) 3)

 '한글’이 종래 천대하는 언문의 이름을 갈음하는 새 이름으로 널리 쓰인 것은 1926년 훈민정음 반포 기념식을 성대히 거행한 이후의 일이다. 1927년에 ‘한글’이 창간되어 이 이름이 일반인의 의식에 오르게 되고 이 해의 기념일부터는 ‘한글날’로 고쳐 일컫게 되어, 한글의 운동이 자꾸 성대하여짐에 따라, 한글이란 이름도 더욱 널리 퍼지고 깊이 뿌리를 박아 일반 사회가 즐겨 쓰게 되었다. (최현배 1976:52~53).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글에 대한 명칭어는 시대별로 용어 사용에 일정한 특징과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훈민정음 창제 시기: ‘훈민정음’, ‘정음’, ‘언문’이 공존한 시기. 이때의 ‘언문’은 비하적 의미를 가졌던 것이 아니다.
② 16세기~ 19세기 말 : ‘언문’이 주류이고 ‘언자’(諺字)도 부분적으로 쓰였다. 후자는 ‘글자’라는 뜻이 강하여 전자보다 더 좁은 의미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③ 19세기 말~ 20세기 초 : 개화기 이후 민족의식이 본격적으로 발로되면서 ‘국문’이 등장하였다.
④ 20세기 초~ 현대 : 일제 치하에서 ‘국문’이라는 용어를 쓸 수 없게 됨에 따라 ‘한글’이 만들어져 널리 쓰이게 되었고 이것이 현대로 이어졌다.




1) 이 ‘한글모’는 ‘朝鮮言文會’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여기서 ‘한글’은 ‘朝鮮言文’에 대응하고 ‘모’는 ‘會’를 뜻한다.
2)「한글모 죽보기」의 검토를 통해 ‘배달말글’의 최고(最古) 사용 연대(1911.9.3)도 문증(文證)되었다. ‘배달말글’이란 말은 광복 후 최현배에 의해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미 주시경에 의해 1911년에 사용된 것이다(고영근 1994).
3) 고영근(1983a/1994) “한글의 유래”, 「통일시대의 어문 문제」, 도서출판 길벗.
고영근(1983b/1994), “개화기 국어연구단체와 국문보급활동”, 「통일시대의 어문 문제」, 도서출판 길벗.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BlogIcon 멋진백작 | 2009.02.17 23:58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윤디자인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잡지형 블로그인가요? ^^
좋은 한글회사 ^^ 오래된 고객이랍니다.
여기서 뵈니 반갑습니다. ^^

한알에스에스(영문으로 쓰기가 거북한^^)에 등록하고 자주 들를 게요.
엮인글과 댓글 감사합니다. oTL
BlogIcon 온한글 | 2009.02.18 09:32 신고 | PERMALINK | EDIT/DEL
백작님 반갑습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정보 많이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
자주 찾아와 주세요ㅎㅎ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9. 2. 9. 09:41
사용자 삽입 이미지


1.한글의 제자 원리

 「훈민정음」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해설을 한 부분은 첫머리의 제자해 (制字解) 부분이다. 여기에서 한글 자형이 어디에 근거한 것이며 어떤 구성으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해 언어학적인 측면과 철학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상세하고 깊이 있게 해설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언어학적인 측면의 해설만을 토대로 한글의 제자 원리를 살펴보기로 한다.

 한글 자모 28자는 각각 뿔뿔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몇 개의 기본자를 먼저 만든 다음 나머지는 이것들에서 파생시켜 나가는 식의 이원적인 체계로 만들어졌다. 자음(당시 용어로서는 초성)글자 17자는 먼저 기본자 다섯 자를 만들었는데 그것들은 모두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제자해에서의 설명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아래쪽 세 글자에 대한 내용이 쉬우므로 그 쪽부터 보기로 한다. 순음 ㅁ자는 ㅁ음, 즉 〔m〕음을 소리 낼 때 쓰이는 발음기관인 입술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고, 치음 ㅅ자는 같은 원리로 그 소리, 즉 〔s〕음을 소리낼 때 조음점(調音點) 구실을 하는 이의 모양을, 후음 ㅇ자는 역시 같은 원리로 목구멍의 둥근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앞의 두 글자 ㄱ과 ㄴ도 그 소리를 낼 때 관여하는 발음기관의 모양인 혀를 본떠서 만든 점에서는 나머지 세 글자에서와 같다. 다만 이번에는 그 발음기관 자체의 모양, 즉 가만히 있을 때의 혀 모양이 아니고 바로 그 소리를 낼 때의 혀 모양을 본떴다는 점이 특이하다.


 즉, 아음(牙音, 즉 연구개음) ㄱ자는 그 소리 〔k〕음을 낼 때의 상태를 본뜬 것으로 설근(舌根)이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본떴으며, 설음(舌音) ㄴ자는 그 소리 〔n〕음을 낼 때의 상태를 본뜬 것으로 혀가 윗 잇몸에 닿는 모양을 본떴다는 것이다.

 설근이 목구멍을 막는다고 한 것은 혀 뒤 쪽이 연구개에 닿아 숨의 통로를 막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겠고, 혀가 윗 잇몸에 닿는다고 한 것은 혀끝이 윗 잇몸에 닿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겠다. 이때 ㄱ을 소리 낼 때는 혀 뒤쪽이 입천장까지 올라가므로 혀 앞쪽은 자연히 내려오는데 ㄱ자는 바로 그러한 혀 모양을 형상화하였다는 것이며, ㄴ을 소리낼 때는 반대로 혀 앞쪽이 윗잇몸에 가 붙으려니까 혀 뒤쪽이 처지게 되는데 ㄴ자는 바로 그러한 혀 모양을 형상화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림 1과 그림 2를 보면 쉽게 이해된다. 이 그림은 〔ŋ〕과 〔n〕을 발음할 때의 혀의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각각 ㄱ과 ㄴ의 모습과 가까운 모양을 하고 있다. (〔ŋ〕보다 〔k〕를 발음할 때의 것이 더 좋겠으나 해당 그림이 없어 대체한 것이다. 혀 모양에서는 똑같으므로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는 어느 것이나 좋을 것이다.)
  

   

 

  자음 17자 중 나머지 글자는 이 기본자에다 획을 하나씩 더해서 만들었다. 그 과정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⑶은「훈민정음」의 해당 부분 원문이다.



 여기에서 획을 더해 만든 글자들은 그 화살표 앞쪽의 기본자와 같은 종류에 속하는 자음들이다. 즉, ㅋ은 ㄱ과 마찬가지로 아음(牙音)이며, ㅂ과 ㅍ은 ㅁ과 마찬가지로 순음(脣音)이다.

 같은 종류의 자음이되 획이 하나 씩 덧붙으면 소리가 한 단계씩 더 거센() 소리가 되는데 가획은 바로 그것을 표시해주는 기능을 한다고 하였다. 다만 괄호 안에 있는 글자들은 화살표 왼쪽의 기본자들로부터 가획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이 경우에는 소리가 더 거세다는 것을 표시해주는 뜻은 없다고 하였다.
 괄호 속의 글자 중 자는 그 중에서도 예외적인 글자에 속한다. 은 아음(연구개음)인데 그것을 아음의 기본자인 ㄱ에서 파생시킨 것이 아니라 후음 ㅇ에다 획을 덧붙여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 ㅇ이 워낙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었다고 설명되어 있다. 이 두 자는 오래되지 않아 자형에서 구분이 없어져 초성 자리에 쓰일 때는 아무 소리가 없는, 다만 빈 자리를 메워 주는 역할만 하게 되었고 종성 자리에서는 애초 자가 대표하던 〔ŋ〕으로 발음하게 되었는데 오늘날 음성적으로 거리가 먼 둘이 한 자형을 가지게 된 것은 이러한 역사의 산물이다.

 모음(당시의 용어로는 중성) 글자 11자는 먼저 기본자 세 자를 만들고 나머지는 이것들을 조합하여 만드는 방식을 취하였다. 기본자는ㆍ, ㅡ, l 인데 이들의 제자 원리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모음의 기본자 3자는 각각 천(天) 지(地) 인(人) 삼재(三才), 즉 하늘과 땅과 사람의 형상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자음의 기본자들이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떴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이 글자들은 이들을 발음할 때의 혀의 모양과도 가깝다는 점을 지적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들을 발음할 때는 각각 혀를 오그리고 펴고 세우게 되는데 ㆍ, ㅡ, ㅣ는 각각 그 모양을 형상화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모음자의 나머지 여덟 글자는 ㆍ 를 ㅡ와 ㅣ에 결합시켜 만들었다.




 이들 모음자 중 ⑸는 ㆍ를 하나씩 결합하여 만들고 ⑹은 두 개씩 결합하여 만들었다. 이는 ⑸ 가 단모음임을, ⑹ 이 이중모음임을 구별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이것은 초출(初出)과 재출(再出)이라는 용어로 구별했는데 ㅛ, ㅑ 등은 ㅣ+ㅗ, ㅣ+ㅏ로 구성되어 있어 ㅣ에서 일어나는 소리이므로 재출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ㆍ가 ㅡ의 위쪽과 아래쪽, ㅣ의 왼쪽과 오른쪽 어디에 배치되었느냐에 따라 구분하였는데 여기에도 어떤 뜻을 담고 있다. ㆍ가 왼쪽과 오른쪽에 찍힌 것은 그 모음이 양모음 (陽母音) 임을 나타내주고, 아래쪽과 왼쪽에 찍힌 것은 음모음 (陰母音) 임을 나타내 주는 것이 그것이다.
 당시에는 지금보다도 더 엄격한 모음조화 규칙이 있었으며, 더욱이 훈민정음 제작의 철학적 배경이 되었던 성리학 (性理學)에서 음양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었으므로 양모음, 음모음의 구분이 이처럼 제자의 원리에까지 적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모음자의 ㆍ는 「훈민정음」 및 「동국정운」(1447)에서는 제 모습을 지키지만 이들 이외의 문헌에서는 ㆍ가 아직 완전히 동그라미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문헌에서나 동그라미 모양이 흐트러진 문헌에서나 다같이 ㅗ, ㅏ, ㅛ, ㅠ 등의 ㆍ는 이미 그것이 기원적으로 ㆍ자였다는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것은 실용적으로 이들 모음을 「훈민정음」에서와 같은 형체로 쓰기 불편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 글자에서 ㆍ가 제 음가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것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ㅗ는 자형상으로는 ㅡ와 ㆍ의 결합으로 만들었으나 ㅗ가 음성적으로 ㅡ음과 ㆍ음의 복합이라는 뜻을 담았던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ㅗ, ㅏ 등에서 ㆍ의 모습을 살려 둘, 그 글자의 제자 과정을 굳이 살려 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훈민정음」에는 이상 28자 이외의 자모의 제자 원리에 대해서도 해설을 하고 있다. ‘세종이 언문 28자를 만들었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더 많은 자모를 만들었던 것이다. 먼저 순경음(脣輕音)이라 불린 ㅸ가 있었다. 이는 ㅂ 밑에 후음 ㅇ을 연서(連書)하여 만든 것인데 순경음이 ㅂ에 비해 입술을 거벼이 다무는 소리임을 표시한 것이라 하였다. ㅂ 〔p〕음이 폐쇄음임에 비해 ㅸ〔ß〕음이 마찰음임에서 생기는 차이, 즉 숨의 차단의 정도가 다름을 나타냈던 것으로 해석된다. ㅸ 이외에도 ㅱ, ㆄ를 비롯하여 등의 글자를 만들었는데 한자음의 표기에만 쓰였을 뿐 한국어의 표기에는 쓰이지 않았다.

 28자 이외의 자모로 ㄲ, ㄸ, ㅃ, ㅆ, ㅉ, ㆅ처럼 같은 글자를 두 개씩 겹쳐 만든, 이른바 각자병서(各字竝書)가 있었다. 이렇게 두 글자를 겹쳐 만든 것은 이 소리들이 엉기는 소리임을 표시해주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엉긴다(凝)’는 표현은 된소리에 대한 인상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모음자에도 11자 이외에 많은 자모를 만들어 썼다. 이들은 그 발음에 따라 11자 중의 2자 내지 3자를 복합하여 만든 것으로서 ⑺에서와 같이 세 계열로 나누어 볼 수 있다.(여기서는 ㆍ의 형체를 살리지 않고 현재의 글자체로 예시하겠다. 그리고 당시에도 한국어 표기에는 쓰이지 않던 6개의 자모가 더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빼기로 한다.)



  
 이상에서 보면 한글의 제자 원리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글자의 모양을 발음기관에서 따왔든 천(天), 지(地), 인(人) 삼재에서 따왔든 그 근거가 확실하다는 것 하나와, 낱자 28자가 제각기 다른 연원을 가지고 관련이 없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몇 개의 기본 글자를 만들고 나머지는 그것들을 출발점으로 만듦으로써 글자의 조직성을 높였다는 것 하나다.
 이 중 발음기관에서 글자의 모양을 본뜨겠다는 착상은 매우 기발하며, 자모들을 이원적으로 만들겠다고 한 착상도 여간 뛰어난 것이 아니다. 한글을 흔히 과학적인 문자, 독창적인 문자라고 평가하는 것은 올바른 평가일 것이다. 특히 ㄱ과 ㄴ을 발음할 때의 혀의 모양에 대한 기술(記述)의 과학성은 각별한 주목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글 창제 때 중국 한자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에 대해 많은 논의가 계속되어 오고 있다. 이는 「훈민정음」이나 그 이전 「세종실록」권 102 세종 25년12월 조의 기록에 다같이 ‘자방고전(字倣古篆), 즉 한글의 자형이 고전을 닮았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록의 표현이 너무 소략하여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한글은 모양이 전반적으로 네모지다. 발음기관을 본떠 만든다고 해도 실제 자형은 여러 가지로 달리 디자인될 수 있을 터인데 입술의 모양이든 혀의 모양이든 ㅁ, ㄱ, ㄴ처럼 네모꼴로 만든 것은 한자의 영향일 수 있을 것이다. 기본 글자를 만들고 거기에 가획을 하거나 그것들을 조합하여 새 글자를 만드는 방식도 한자의 육서(六書)에서 영향을 받았을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한자뿐 만 아니라 당시 주변 국가의 문자들을 여러모로 참조하고 그것들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종류의 영향이든 한글의 제자 원리가 과학적이고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을 바꾸어 놓는 발명품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바로 앞 시대까지의 축적된 지혜에서 한걸음 발전한 산물인 것이다.

 
2. 한글의 특징

 앞에서 한글의 제자 원리를 살펴보면서 한글이 문자적으로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보았고, 다른 자리에서도 한글의 독특한 특징을 여러 가지 보아 왔지만 여기에서 몇 가지 좀더 부연해 설명해 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먼저 한글 자모의 복합성에 대해 다시 보기로 하자. 한글은 이원적인 구성방식으로 만들어짐으로써 자모의 한 부분이 어떤 음성정보를 대표하는 구실을 한다.
 가령 ㅋ은 한 자모지만 가운데 획이 분리되어 나올 수 있으며 동시에 그것은 유기성(〔+aspiratel〕)이라는 음성자질을 대표하는 요소다. 이것은 ㅌ의 가운데 획도 마찬가지다. ㅛ,ㅑ등도 한 자모들인데 그 중의 한 획이 반모음 j 를 대표하고 있다. 한 자모가 한 음소보다 작은 자질들로 분석될 수 있다는 것은 세계 다른 문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매우 독특한 특징이 아닐 수 없다.
  이 특징을 Chao(1968)는 다음과 같이 꽤 유머러스하게 지적한 바 있다.

 ⑴  한국 문자(‘한글’ 또는 ‘언문’ 이라 불린다)의 체계는 두 가지 점에서 흥미있다. 첫째, 그것은 일본 문자인 ‘가나’보다는 알파벳에 가깝다. 둘째, 문자 디자인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단위 기호의 부분들이 음성의 분석적 자질을 대표하는 문자체계이다. 중국 문자에서 산발적으로 존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계의 어떤 다른 문자체계에도 그러한 것이 없다. 예컨대, 영어의 자음 b는 기둥이 위로 되어 있어서 유성음이고 p는 기둥이 아래로 되어 있어서 무성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유성 치음인 d는 기둥을 아래로 하면 q가 되는데, 만약 이와 같은 분석이 유효하다면 그것은 무성 치음 〔t〕를 나타내야 할 것이다. 한편, 한국 문자에서는, 자모의 일부분조차도 때로는 음성학적으로 연관성이 있다. 예컨대, 경음의 글자는 평음기호를 겹쳐서 만들어지는데, 예를 들면, ㅅ은 평음 s이고, ㅆ은 경음 s(흔히 로마자로 ‘ss'로 표기한다)를 나타내며, ㄱ은 k를 ㄲ은 경음 k('kk')를 나타내는 것 등이다. 모음자의 어떤 변형은 선행하는 반모음을 의미하는데, 예를 들면 ㅏ는 a, ㅑ는 ya, ㅓ는 를, ㅕ는 y를, ㅗ는 o를, ㅛ는 yo를 나타내는 것 등이다. 

 이 특징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Sampson(1985)이다. Sampson은 순전히 한글만을 위해 지금까지 문자의 분류에 등장한 일이 없는 자질문자(featural writing) 란 종류를 하나 따로 설정하였다.
 
 <그림3> 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한 자모가 음소보다 작은 음성자질로 구성되어 있음을 독립된 문자의 종류로 분류하는 근거로 삼은 것이다.



 한글을 자질문자라는 별개의 종류로 분리해 내야 하느냐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문자의 분류는 각 자모가 한 덩어리로서 언어의 어떤 단위를 대표하느냐에 따라 음절문자, 음소문자로 나누는 만큼 한글은 그 점에서 역시 음소문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특이한 문자의 종류로 등록될 만큼 한 자모의 일부가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한글은 글자들 사이에 유연성이 높다.
 우리는 ㄱ과 ㅋ이 한 계열의 소리를 대표하는 글자요, ㄴ, ㄷ, ㅌ이 다른 한 계열의 소리를 대표하는 글자라는 것을 글자형으로써 짐작할 수 있다. 또, ㅏ, ㅓ, ㅗ, ㅜ에 비해 ㅑ, ㅕ, ㅛ, ㅠ가 어떤 공통점을 가지는 글자들이며 그러한 공통점을 제외하면 ㅏ와 ㅑ, ㅗ와 ㅛ가 하나로 묶이는 글자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는 한 자모 안의 획이 무의미한 단순한 획이 아니고 어떤 음성자질을 대표하는 획이기 때문인 것이다.

 다음은 한글의 다른 특징으로 ‘모아쓰기’에 대해서 다시 보기로 하자. 한글은 음절 단위로 묶어 다시 한 자로 만들어 쓰는 특이한 운영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앞에서 지적한 대로 이미 「세종실록」권 102의 기록에 나와 있다. 새 문자에 대해 거의 아무런 구체적 정보도 제공해 주지 않는 그 짤막한 기록에서 이 모아쓰기에 대한 규정을 넣고 있는 것은 우리의 흥미를 자극하는 바가 있다. 이 규정은 「훈민정음」의 예의(例義)와 합자해(合字解)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모아쓰기에 대해서 이처럼 계속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은 이 방식이 워낙 특이 하여 올바로 주지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음자와 모음자를 분리해서 음소문자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다시 음절 단위로 묶어 운영하려고 하니 자연히 어려움도 따르고 세심하고 상세한 규정도 필요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중성자, 즉 모음자를 초성자, 자음자와 완전히 다른 꼴로 만든 것이 무엇보다 그러하지만 글자 모양의 디자인에서부터 모아쓰기를 전제로 세심한 배려를 한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한글을 이처럼 모아쓰기로 운영하려 한 데는 한자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당시 문헌은 으레 한자와 한글이 섞여 쓰였고 또 한자에는 한글로 한자음을 다는 방식을 취하였다. 이때 한자 하나에 한글도 한 글자의 꼴로 나타내는 것이 한글을 풀어 썼을 때 보다 어울렸을 것이다. 또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도 ‘訓民’을 ‘ㅎㅜㄴㅁㅣㄴ’ 으로 표기하는 것보다 ‘훈민’ 으로 표기하는 것이 서로의 관계를 쉽게 연결시킬 수 있어 좋았을 것이다.  

 그 동기가 어떻든 모아쓰기는 한글로 하여금 매우 특이한 문자가 되게 하였다. 활자를 만들 때 한글은 ‘한’을 하나 ‘글’을 하나 독립된 활자로 만든다. 이때 ‘한’이란 묶음을 부를 언어학 용어는 무엇인가? ‘letter’ 도 아니요 ‘alphabet’ 도 아니요‘syllabary’ 도, ‘character’도 아니다. ‘alphabetic syllabary’ (Taylor1980) 라고나 할까?  한글의 모아쓰기 방식이 그만큼 특이한 증거다.
 컴퓨터의 한글코드를 만들 때도 조합형으로 하느냐 완성형으로 하느냐가 논란거리가 되어 왔다. 완성형이란 처음부터 ‘ 한, 값 ’ 처럼 음절단위로 묶인 글자모양을 입력하는 방식인데, 이러한 일로 논란을 벌이는 일이 한국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역시 특이한 모아쓰기 방식이 빚어내는 사건들이다. 이 외에 더 근원적인 문제로 사전의 자모 배열 순서며 받침의 문제들이 있음은 이미 앞에서 논의한 바다. 한 마디로 모아쓰기는 한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며 한글의 운명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요소일 것이다.

 * 이 글은 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인 이익섭 교수의 저서 중 「한국의 언어」중에서 저자의 재가를 얻어 발췌하였습니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9. 2. 4. 10:20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한글의 창제와 반포
 
 한글의 반포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한글의 창제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한글이 1443년(세종 25)에 창제되어 1446년(세종 28)에 반포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1443년 창제와 1446년 반포라는 설은 <세종실록>의 다음의 기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1) 이 달에 임금께서 친히 언문 28자를 만드셨다.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世宗實錄> 25년(1443) 12월조 끝부분
(2) 이 달에 훈민정음이 완성되었다.(是月訓民正音成)
    <世宗實錄> 28년(1446) 9월조 끝부분


 20세기 초의 학자들은 이 두 기록을 놓고서 고민에 빠졌다. 1443년 12월에 언문이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1446년 9월에 다시 훈민정음(=언문=한글)이 완성되었다고 말하고 있으니, 도대체 한글이 완성된 시기가 둘 중 어느 것인지 혼란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1443년 12월에 한글이 일단 완성되기는 했으나, 이것을 실제로 사용해 본 결과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어 수정·보완하는 과정을 거쳐 1446년 9월에 최종완성된 것이라는 것이다. 조금 더 추측을 보태어, 1443년 12월에는 한글이라는 문자를 정식으로 온 나라에 공표한 것은 아니나, 1446년 9월에는 한글을 온 나라에 반포(頒布)한 것이라는 설명도 나오게 되었다.

 한글날을 정함에 있어서도, 위의 두 기록 중 후자를 더 중시하게 되었다. 1443년 12월의 언문제작은 말하자면 일종의 베타버전인 셈이고, 1446년 9월에 정식으로 출시된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세종실록>의 두 기록 모두 정확한 날짜가 명시되어 있지 않고 그냥 ‘이 달에(是月)’라고 하여서, 한글날을 정확히 며칠로 해야 할 지 난감하였다. 그래서 그냥 9월 그믐날인 9월 30일로 가정하고 이것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29일을 한글날로
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위의 (2)의 기록은 훈민정음(=언문=한글)이라는 문자가 완성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 문자를 해설한 책인 <훈민정음>(<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도 함)의 원고가 완성되었다는 뜻이다. 세종은 1443년 12월 한글을 완성한 뒤, 신숙주, 성삼문 등의 신하들로 하여금 한글과 관련된 연구 및 여러 책을 편찬하는 일을 하게 하였는데, <훈민정음>은 그러한 책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서 한글의 제자원리 및 사용방법을 해설한 책인 것이다. 세종의 명을 받은 신숙주 등의 신하들이 이 책의 원고를 작성하여 1446년 9월에 완성한 것이다.
 실록에서 예컨대 ‘東國正韻成’이라고 하면 <동국정운>이라는 책의 원고가 완성되었다는 뜻이며, 이와 비슷한 예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요컨대 (2)의 기록은 문자로서의 한글의 완성이 아니라 <훈민정음>이라는 제목의 책의 완성을 말하는 기록인 것이다.

 1446년 9월은 <훈민정음>이라는 책이 정식으로 출간된 시기는 아니다. 위의 (2)는 <훈민정음>이라는 책의 원고, 즉 초고가 완성되었다는 뜻이다. 원고가 완성된 뒤에도 이것을 책으로 간행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주자소나 교서관 같은 출판 관련 기관에 원고를 보내면 거기서 이 원고로 활판을 짜거나 목판에 글자를 새겨야 하고 이것을 먹으로 찍어내고 제본하는 등등의 일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책이 완성된다.
 완성된 책을 임금에게 바치면 임금이 이것을 신하들에게 나누어주는데, 이것을 보통 반사 (頒賜)라고 한다. 세종이 <훈민정음>이라는 책을 신하들에게 반사(=반포)한 것은 1446년 9월보다 최소한 몇 달 뒤의 일일 것이다. 원고가 완성되고 신하들에게 반사되기까지 1년 이상 걸리는 일도 종종 있다. 요컨대 1446년 9월은 <훈민정음>이 반사 내지 반포된 시기도 아닌 것이다.

 위의 내용은 일찍이 1930년대에 방종현(方鍾鉉) 선생이 밝힌 바 있다.
그래서 김민수(金敏洙) 선생 같은 분은 위의 (2) 대신 (1)이 한글의 완성시기임이 분명하므로 한글날도 이에 따라 양력 1월(음력 12월 그믐날을 양력으로 환산한 것)로 바꾸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두 선생의 주장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한글날은 고쳐지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한글이 1443년에 창제되어 1446년에 반포되었다는 잘못된 주장도 대중들에게 계속 유포되었다. 한글이 1443년 12월에 완성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1446년에 반포되었다는 것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한글을 공식적으로 반포한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일일텐데, <세종실록>을 비롯한 사료에서 한글 반포에 관한 기사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렇게 중대한 일이, 그것도 공식적인 일이 사료에 누락되었을 리는 없다. 한글을 공식적으로 반포한다는 것은, 당시의 분위기상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분위기가 어떠했는가는 아래에서 논하겠다.

 오랫동안 실물을 찾아볼 수 없었던 <훈민정음>(속칭 해례본)이 1940년대에 발견되었는데, 그 책의 정인지(鄭麟趾)가 쓴 서문의 날짜가 1446년 9월 상순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훈민정음>의 원고가 완성된 시기를 좀 더 좁혀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본래 (2)의 기사를 바탕으로 한글날을 음력 9월 그믐날로 잡았었는데, 이것을 20일 정도 앞으로 당길 필요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한글날을 10월 29일에서 10월 9일로 바꾸게 되었다. 그러나 이 날이 한글이라는 문자가 완성된 날이 아니라 그 문자를 해설한 책의 원고가 완성된 날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2. 한글 창제의 주체
 
 한글을 만든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세종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세종이 임금으로서 여러 政務에 바빴을텐데 혼자서 한글 창제 업무를 담당했겠느냐? 집현전에 훌륭한 신하들이 많이 있었으니, 세종은 지시만
하고 실제 한글 창제 업무는 집현전의 신하들이 하지 않았겠느냐’고 다시 물으면, 아마 십중팔구 그 말에 동의할 것이다. 즉 한글을 세종이 친히 만들었다는 親制說보다는, 세종이 신하들과 힘을 합쳐 만들었다는 協贊說 내지 세종은 지시만 하고 실제로는 신하들이 만들었다는 命制說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한글을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는 생각은, 사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잘못된 생각이다. 사료에서는 일관되게 한글을 세종이 親制했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1)이 그러하고, <훈민정음>(속칭 해례본)의 정인지의 서문도 그러하다.

(3)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창제하시고 간략히 例義를 들어 보이시고 이름하여 훈민정음이라 하셨다. …… 삼가 생각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하늘이 내려 주신 聖人으로서 제도와 施政 업적이 百王을 초월하시며, 정음을 만드신 것도 옛것을 본뜨지 않고 자연에서 이룬 것이라 참으로 그 지극한 이치가 있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인위적인 사사로움으로 된 것이 아니다. (癸亥冬 我殿下 創制正音二十八字 略揭例義以示之 名曰訓民正音 …… 恭惟我殿下 天縱之聖 制度施爲超越百王 正音之作 無所祖述 成於自然 豈以其至理之無所不在 而非人爲之私也) <訓民正音> 鄭麟趾 序 (1446년 9월 상순)

 協贊說이나 命制說을 옹호하는 이들은, 당시에는 신하들이 한 일이라도왕의 업적으로 돌리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역사에 이런 기록이 남게 된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러나 <세종실록>을 다 뒤져 보아도 세종대에 이루어진 많은 일들 가운데 ‘親制’라는 표현을 쓴 것은 한글이 유일하다. 세종이 신하를 시켜서 한 일은 분명히 신하를 시켜서 했다고 하지 세종이 직접 했다고 한 경우가 없다. 실록이나 기타 기록에서 세종이 한글을 친제했다고 몇 번이나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세종은 한글 창제 작업을 집현전 학자들에게 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매우 은밀하게 진행하였다. 위의 (1), (2)의 실록 기사에서 ‘이 달에’라고만 하고 정확한 날짜를 명기하지 않은 것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실록에서 이렇게
날짜를 명기하지 않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세종이 어전에서 공개적으로 신하들에게 한글 관련 사업을 하도록 명을 내렸다면, 史官이 이것을 史草에 기록했을 것이고, 이것은 실록 편찬시에 사초의 정확한 날짜와 함께 수록되었을 것이다.

 위의 (1), (2) 기사에 날짜가 명기되지 않은 것은, 그 사건이 공개적으로 행해진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비공식적으로, 은밀하게 행해졌다는 증거이다.

 세종이 한글 창제 작업을 은밀하게 진행했던 것은, 신하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힐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글이 완성된 이상 언제까지나 비밀로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문자는 널리 사용하려고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세종이 한글을 이용하여 처음으로 공개적인 사업을 추진한 것은 1444년(세종 26) 2월 16일이다. 
 
(4) 집현전 교리 최항, 부교리 박팽년, 부수찬 신숙주, 이선로, 이개, 돈녕부 주부 강희안 등에게 명하여 의사청에 나아가 언문으로 <운회>를 번역하게 하고, 동궁과 진양대군 王柔, 안평대군 瑢으로 하여금 그 일을 감독, 관장하게 하였는데 모든 일을 임금께 여쭈어 결정하였다. (이 일에 대한) 상과 보상도 넉넉하고 후하게 하였다. (命集賢殿校理崔恒 副校理朴彭年 副修撰申叔舟 李善老 李塏 敦寧府注簿姜希顔 等 詣議事廳 以諺文譯韻會 東宮與晉陽大君王柔安平大君瑢 監掌其事 皆稟睿斷 賞賜稠重 供億優厚矣) <世宗實錄> 26년(1444) 甲子 2월 16일 丙申條

 나중의 결과야 어찌 되었든, 위 (4)의 기사는 세종이 한글을 가지고서 공개적으로 추진한 최초의 사업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운회>(<古今韻會擧要>로 추정됨)라는 중국의 韻書(한자들을 발음별로 분류한 책)에 한글로 음을 표시하여 달도록 지시한 것이다. 이 일에 집현전의 비교적 하급관리에 속하는 신하들을 동원한 것이 주목된다. 집현전의 관리들을 동원하고 싶으면, 아무리 임금이라 하더라도 집현전의 책임자와 상의하여 人選을 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러나 세종은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일을 급속하게 추진한 듯하다. 당시 집현전의 사실상의 책임자는 副提學인  崔萬理였다, 

 최만리로서는 자기를 제쳐놓고 새파랗게 젊은 직원들을 차출해 간 세종의 처사가 못마땅했을 것이다. 한글이란 걸 만들어서 뭔가 일을 추진하려 하는 세종의 처사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신하들이 최만리의 등을 떠밀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결과 최만리 등이 1444년 2월 20일 그 유명한 한글 창제 반대 상소문을 올리게 되었다. 이 상소문의 내용이 한글 창제 과정과 관련된 중요한 사실들을 알려주는데, 그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약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을 동원하여 일찍부터 드러내 놓고 한글 창제 사업을 진행했다면, 최만리 등이 이제 와서 반대하기 시작했을 리 없다. 세종이 혼자서 한글 창제 작업을 은밀히 추진하였기 때문에 몰랐을 것이고, 알았다 하더라도 공식적으로 추진되는 사업이 아닌 까닭에 공개적으로 거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글과 관련해서 공개적으로 일이 추진되는 것은 이 때(1444년 2월)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비로소 반대 상소문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들의 상소문을 받아 본 세종은 크게 진노하여서, 상소에 참여한 최만리 등 7명의 집현전 관리들을 불러다 호통을 친 뒤 의금부에 가두도록 했다 (그러나 그 다음날 석방했다). 세종이 상소에 참여한 관리들을 불러다 놓고 한 말을 보면 세종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당시 세종의 반응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또 이두를 만든 본 뜻이 곧 便民을 위한 것이 아니냐? 便民으로 말하자면 지금의 언문도 또한 便民을 위한 것이 아니냐? 그대들이 薛聰은 옳게 여기면서 그대들의 임금이 한 일은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② 또 그대들이 韻書를 아느냐? 四聲과 七音을 알며 字母가 몇인지 아느냐? 만일 내가 韻書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누가 바로잡는단 말이냐?
③ 상소문에 말하기를 “하나의 새롭고 신기한 재주”라고 하였는데, 내가 늘그막에 소일거리가 없어서 책을 벗삼고 있는 것이지, 어찌 옛 것을 싫어하고 새 것을 좋아해서 이 일을 하는 것이겠는가?
④ 또 내가 늙어서 국가의 모든 일을 세자가 도맡아서 하고 있고 작은 일이라도 세자가 참여해서 결정하고 있으니, 하물며 언문이야 말할 것이 있겠느냐?

 위의 ②는 세종이 음운학에 대해 지닌 학문적 자부심을 잘 드러내 준다.
한글은 당시 우리말의 음운 체계를 정확하고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음운학에 대해 조예가 깊은 학자가 아니면 그런 일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을 할 만한 당시의 음운학자를 꼽자면 세종이 첫 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세종은 그러한 언어학적 식견을 가지고서 한글을 만들었으며, 기득권에 젖어 있던 儒臣들이 강력히 반대하고 나올 것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기에, 한글 창제 사업을 신하들 몰래 은밀히 추진하였다. 한글을 다 만들고 나서, 한글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사업을 전개하기 위해 집현전의 신숙주, 성삼문 등을 비롯한 젊은 학자들을 동원하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儒臣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으나 세종은 강한 의지로 이것을 돌파한 것이다. 한글을 세종이 친히 만들었다는 위의 내용은 사실 이기문(李基文) 선생이 오래 전에 소상히 밝힌 것이다. 그런데도 일반 대중과 학자들의 인식이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한글의 協贊說이나 命制說을 옹호하는 이들은 성현(成俔, 1439-1504)의 <용재총화(齋叢話)>에 나오는 다음 기록을 친제설에 반하는 증거로 들곤 한다.

(5) 世宗께서 諺文廳을 설치하여 申叔舟, 成三問 등에게 命하여 諺文을 짓게 하니, 초종성이 8자, 초성이 8자, 중성이 12자였다. 그 字體는 梵字를 본받아 만들었으며 우리 나라와 다른 나라의 語音 가운데 文字(漢字)로 적을 수 없는 것도 모두 통하여 막힘이 없다. <洪武正韻>의 글자들 또한 모두 諺文으로 쓰고 드디어 五音을 나누어 분별하니, 이를 牙音, 舌音, 脣音, 齒音, 喉音이라 하는데, 순음에는 輕重의 다름이 있고 설음에는 正反의 구별이 있고, 글자에 또한 全淸, 次淸, 全濁, 不淸不濁의 차이가 있다. 비록 무지한 아낙네라도 똑똑히 깨닫지 못함이 없을 정도이니, 聖人께서 物을 창조하시는 지혜는 凡人의 힘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世宗設諺文廳 命申高靈成三問等 製諺文 初終聲八字 初聲八字 中聲十二字 其字依梵字之 本國及諸國語音 文字所不能記者 悉 洪武正韻諸字 亦皆以諺文書之 遂分五音而別之 曰牙舌脣齒喉 脣音有輕重之殊 舌音有正反之別 字亦有全淸次淸全濁不淸不濁之差 雖無知婦人 無不瞭然曉之 聖人創物之智 有非凡力之所及也) 성현 <용재총화> 권7

 세종이 언문청이라는 기관을 설치하여 신숙주, 성삼문을 시켜서 한글을 만들게 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사는 다음의 기사들과 함께 비교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6)
  ① 세종이 언문을 창제하고 궐내에 局을 열어 친히 이름난 선비 8명을 뽑아 <훈민정음>, <동국정운> 등의
      책을 짓는 것을 맡게 하였다. (世宗創制諺文 開局禁中 親簡名儒八員 掌製訓民正音東國正韻等書) 姜希孟
    「太虛亭墓誌文」
  ② 세종이 언문을 창제하고 궐내에 局을 열어 당대의 이름난 선비들을 특별히 뽑아 해례를 지어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깨치게 하였다. (世宗創制諺文 開局禁中 極簡一時名儒 著爲解例 使人易曉) 任元濬
    「保閑齋集序」
  ③ 임금께서 “우리 나라의 음운이 중국말과 비록 다르나 그 五音(牙舌脣齒喉), 淸濁, 高下는 중국과 다를 바
      없다. 여러 나라가 다 자기나라 말을 적을 수 있는 글자를 가지고 있는데 유독 우리 나라만 없다”고 하여
      언문 자모 28자를 만드시고 궐내에 局을 설치하여 문신들을 뽑아 찬정하게 하였다. (上以本國音韻 與華語
      雖殊 其牙 舌脣齒喉 淸濁 高下 未嘗不與中國同 列國皆有國音之文 以記國語 獨我國無之 御製諺文字母二十
      八字 設局於禁中 擇文臣撰定) 姜希孟「文忠公行狀」
  ④ 세종께서 “우리 나라의 음운이 중국말과 비록 다르나 그 五音(牙舌脣齒喉), 淸濁, 高下는 중국과 다를 바
      없다. 여러 나라가 다 자기나라의 글자를 가지고 있어서 자기 나라 말을 적고 있는데 유독 우리 나라만
      없다”고 하여 언문 자모 28자를 만드시고 궐내에 局을 설치하여 문신들을 뽑아 찬정하게 하였다. (世宗以
      本國音韻 與華語雖殊 其五音淸濁高下 未嘗不與中國同 而列國皆有國字 以記國語 獨我國無之 御製諺文字 
      母二十八字 設局於禁中 擇文臣撰定) 李坡의 「申叔舟墓誌」
  ⑤ 세종께서 “모든 나라가 각각 글자를 만들어 자기 나라 말을 적고 있는데 유독 우리 나라만 없다”고 하여
      자모 28자를 만드시고 궐내에 局을 열어 문신들을 뽑아 찬정하게 하였다. (世宗以諸國各製字 以記國語
      獨我國無之 御製字母二十八字 名曰諺文 開局禁中 擇文臣撰定) 李承召 「申叔舟碑銘」
  ⑥ 本朝 세종 28년 임금께서 훈민정음을 만드셨다. 임금께서 “모든 나라가 각각 문자를 만들어 자기 나라의
      방언을 적고 있는데 유독 우리 나라만 없다”고 하여 드디어 자모 28자를 만들어 언문이라 이름하였다.
      궐내에 局을 열어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최항 등에게 명하여 이를 찬정하게 하였다. 대체로 古篆을
      본떴으며 초성, 중성, 종성으로 나누었고 글자가 비록 간이하나 전환이 무궁하여 여러 언어의 소리 중에서
      문자(漢字)로 능히 적을 수 없는 것까지 다 통하여 막힘이 없다. (本朝世宗二十八年 御製訓民正音 上以爲
      諸國各製文字 以記其國之方言 獨我國無之 遂製子母二十八字 名曰諺文 開局禁中 命鄭麟趾 申叔舟 成三問
      崔恒 等 撰定之 盖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字雖簡易 轉換無窮 諸語音 文字所不能記者 悉通無) <增補文獻備
      考> 권108 「樂考」訓民正音條


 ①은 崔恒의 文集인 <太虛亭集>에 수록되어 있고 ②~⑤는 申叔舟의 文集인 <保閒齋集>에 수록되어 있는데, 6개의 글이 모두 거의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 世宗이 諺文 자모 28자를 창제한 후 禁中에 局을 설치하여 名儒(또는 文臣) 몇 명을 뽑아서 訓民正音 解例 등의 책을 만들게 하였다는 것이다.
 ③~⑥에서는 ‘撰定’이라고만 되어 있고 구체적인 책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으나, ‘撰定’이란 말이 책이나 詩文을 짓는다는 뜻이므로 <訓民正音>(해례본)과 같은 책을 만들게 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지 訓民正音이란 문자를 만들게 했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6)의 기록들에서 局을 설치했다고만 하고 구체적으로 局의 이름을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이 局을 <齋叢話> 권7에서 언급한 諺文廳과 동일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문청은 世宗이 언문 자모들을 다 만든 뒤에야 설치되었으며, 그 주임무는 이 문자에 대한 해설서인 <訓民正音>(해례본) 등의 책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리고 (6)의 기록들을 바탕으로 해서 (5)의 내용을 합리적으로, 서로 모순 없이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5)에서 ‘製諺文’이라고 한 것을 책으로서의 <훈민정음>을 만들게 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5)에서는 세종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이야기는 빠졌지만 그 뒤의 내용은 (6)의 기사들과 일치하게 된다. ‘諺文’이라는 말이 문자로서의 한글이 아니라 책으로서의 <훈민정음>을 의미하는 예는 다른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7) (세종이) 만년에는 조정의 업무에 싫증이 나서 朝會에 나오지 않았으나 학문적인 일에 있어서는 더욱 극진히 생각하여 유신들에게 명하여 局을 나누어 여러 책을 차례로 편찬하게 하였으니, <고려사>, <치평요람>, <역대병요>, <언문>, <운서>, <국조오례의>, <사서오경음해>등이 동시에 찬수되었고 다 임금의 재가를 거쳐 책이 완성되었다. (晩年倦勤 不視朝 然於文學之事 尤所軫慮 命儒臣分局 撰次諸書 曰高麗史 曰治平要覽 曰兵要 曰諺文 曰韻書 曰五禮儀 曰四書五經音解 同時撰修 皆經睿裁成書) 徐居正 <筆苑雜記> 권1


3. 한글의 보급 과정
 
 한문을 공부할 기회가 없는 일반 백성들도 문자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세종의 취지는 당시의 분위기에서는 매우 파격적이고 개혁적인 것이었으며, 그런 생각이 실제로 실현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우선 지배층은 한문을 사용한 공식적인 문자생활을 여전히 유지하였고, 여기에 한글이 침투할 여지는 거의 없었다. 백성들이 국가에 문서를 제출할 때에도 한자를 이용하여 이두문으로 작성하도록 했다. 한글로 작성한 문서는 국가에서 문서로서의 효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대신 한글은 한자, 한문과는 차별적인 역할을 맡음으로써 자신의 세력을 서서히 확장시키게 된다.  

 한글이 일반 백성들을 위해 만들어진 문자인 만큼, 한글은 우선 백성들 사이에서 주요한 기능을 하게 되었다. 지배층 중에도 한글을 사용할 줄 아는 이가 늘어갔지만, 이들은 한자와 한문이라는 공식적이고 특권적인
문자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한글을 사용하여 글을 쓰는 일이 별로 없었다. 반면에 일반 백성들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점차 한글을 요긴하게 사용하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강압에 못 이겨 왜국에 투항한 백성들에게 선조임금은 왜군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것을 호소하는 교서를 한글로 써서 내렸다. 이것은 당시에 한글이 백성들 사이에 상당히 보급되어 있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백성들뿐 아니라 사대부계층에서도 한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이가 점차 늘어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1504년 연산군의 폭정을 비판하는 내용의 한글 괴문서가 나타나자, 연산군은 한글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금하고 한글로 된 책을 불사르게 하고 한글을 사용할 줄 하는 사람을 모두 신고하게 하였다. 당시 괴문서를 작성한 이는 양반계층이었을텐데, 아마도 자기신원의 노출을 피하려는 속셈으로 한글을 사용한 듯하다.
 
 한글 사용의 확대에는 여성들의 역할이 컸다. 양반 사대부계층에서는 여성도 한문 교육을 받는 일이 많이 있기는 했지만, 점차 한글을 많이 사용하게 된 듯하다. 그래서 여성들끼리, 또는 여성과 남성이 편지를 주고받을 때에는 주로 한글을 많이 사용했다. 또한 주로 여성들을 독자로 상정하는 책은 한글로 간행된 것들이 많다.

 다음으로는 불교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조선시대에 표면적으로 숭유억불 정책을 쓰기는 했지만, 일반 민중들의 의식 속에서 불교는 여전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세종, 세조 등 한글창제 및 초기의 사용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던 왕실 사람들은 불교의 신심이 독실하였다.
 그래서 한글을 사용하여 할 수 있는 여러 사업 중에서도 특히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여 간행하는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였다. 궁궐 내에 불당을 지어 놓고 예불을 드리며 활자를 가져다가 불경을 찍어내는 일이 빈번하자, 신하들은 이에 강력히 항의하지만 세종, 문종, 세조대에 이러한 사업은 꾸준히 이루어졌다. 그 뒤에는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 불경을 한글로 간행하는 일을 계속 진행하였다. 한문을 모르는 일반 백성들도 한글로 불경을 읽어서 불교의 진리를 깨닫고 극락왕생할 수 있게 하려는 취지였다.

 17, 18세기에 이르면 소설이 한글의 보급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당시 지배층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문소설을 탐닉하는 이들이 많았다. 순정(純正)한 고문(古文)이 아니라 백화적(白話的)인 요소가 많이 들어 있는 연애소설, 통속소설들이 들어와서 사대부들 사이에 많이 읽혔고, 그런 글을 많이 읽은 사대부들은 자기가 쓰는 글에서 그런 소설의 문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것이 정조임금에게 문체반정(文體反正)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였지만, 이런 소설들이 한글로 번역되어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많이 읽히게 되었다. 어떤 소설은 초기에는 필사본으로 유포되다가, 상품으로의 가치가 있자 방각본(상업적 출판물)으로도 간행되게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수많은 방각본 한글소설들은, 당시에 소설이 널리 읽혔음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도 크지만, 한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매우 많았음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문자생활사적 의의도 크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한글은 여성과 일반 백성들 사이에 널리 보급되었다. 어떤 시기에, 예를 들어 18세기나 19세기에 전 국민 중 몇 퍼센트가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었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시기에 우리 나라에서 한글로 읽고 쓸 줄 아는 국민의 비율은 당시의 서양의 문자 해득률에 비해 결코 낮지 않았던 듯하다. 병인양요 때 강화도에 왔던 프랑스 군인이 돌아가서 쓴 기록을 보면, 당시 조선의 일반 백성들의 집에 책이 많이 있다는 데에 놀라고 부러움 내지 열등감을 느꼈다는 대목이 있다. 당시 동아시아의 문화수준이 유럽에 비해 결코 처지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이렇게 소설이 유행하고 상업적 출판이 대두되는 것은 근대를 향한 징후였다. 또한 여기에 공통 문어 중심의 중세적 문화에서 민족어를 중시하는 근대적 문화로의 이행이 함께 얽혀 있다. 한문을 대신해서 한글이 우리 나라의 지배적인 문자로 자리잡게 되는 것은 근대를 향한 진보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갑오개혁으로 국가의 공식적인 문서에서 한글을 사용하게 되고, 개화기에 한문 대신 한글을 사용해야 근대적인 부강한 국가로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대두되게 되었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할 때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결국 실현된 것이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9. 1. 15. 10:27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한글, 그리고 컴퓨터 
 
 전세계에서 쓰이고 있는 언어의 숫자는 수천 개에 이르지만 그 나라 언어를 표현할 수 있는 글자를 가진 언어는 단지 200여 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한글’ 덕분에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문맹률이 낮다.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은 오늘날 우리로 하여금 24개의 자음과 모음을 익히고 이들을 조합할 수 있는 방법만 배우면 11,000여 자에 이르는 글자를 만들어 쓸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적은 수의 자모를 가지고 많은 수의 글자를 만들어 내는 문자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유네스코에서도 해설서인 훈민정음을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타자기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한글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게 되었다.
 한글이 적은 수의 자모를 사용하여 많은 수의 음절글자를 만들어 내는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는 있지만 이를 글자로 만들려면 초성, 중성, 종성을 갖추어 한 음절로 모아써야 하기 때문에 타자기가 들어오면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컴퓨터가 들어오면서 컴퓨터에서 표현하는 방식과 나타낼 수 있는 글자 수의 문제로 한글은 한 번 더 고초를 겪어야 했다. 초기에 만들어졌던 컴퓨터는 로마자를 기반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확장 가능성이 높은 한글을 처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를 위한 한글 입력 프로그램이 개발되면서 타자기 시대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한글은 다시 그 위용을 자랑하게 되었다.

 한글은 한 음절 단위로 글자가 만들어지되 초성, 중성, 종성의 순서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순서를 지키지 않고 입력하면 컴퓨터에서 완성된 글자가 만들어지지 않아 오타를 사전에 발견할 수 있는 부가기능이 생기게 되었고, 한 음절 단위로 글자를 만들어 입력해야 하므로 입력할 때 리듬감을 살릴 수 있어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한글은 자소의 수가 20여 자에 지나지 않으므로 한자 등의 다른 문자들처럼 로마자나 타 문자의 도움을 받을 필요 없이 입력기 창에서 직접 자모를 선택하여 입력할 수 있는 강점을 지닌다. 더구나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한글은 하나의 기본자소를 만들고 여기에 획을 더하여 다른 자소를 만든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본 자소만 있어도 정보화 기기에서 입력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ㅂ, ㅍ’을 입력하기 위해서는 ‘ㅁ’을 누르고 여기에 한 획이나 두 획을 더하는 키만 누르면 가능하기 때문에 세 개의 자소를 만드는 데 하나의 키만 있으면 된다. 한글의 이러한 구성원리는 휴대폰을 비롯한 모바일 기기와 같이 부피가 작은 정보화 기기에서 효과적으로 운용, 발전시킬 수 있게 하고 있다.


2. 한국어와 한글, 그리고 정보화
 
 
  문자의 발명과 성경의 보급이 인간의 언어를 가치 있는 정보로 발전시켜 문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듯이 21세기에는 컴퓨터라는 또 하나의 매체가 인간의 언어를 훨씬 정교하게 정보화하여 인간의 생활모습을 혁신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언어에 의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언어 자료를 가치 있는 정보로 바꾸게 되면 생활 자체가 좀 더 효율적이고 질 높은 것으로 바뀌게 된다. 언어의 정보화는 그 나라 민족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동시에 그 나라 언어문화의 발전을 이끌어가는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언어의 정보화에 대한 깊이가 그 나라와 민족의 삶의 질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언어를 정보화하는 작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언어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다양한 검색용 컨텐츠를 만드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를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컴퓨터용 사전과 문법을 만드는 것이다.
  전자의 정보화 작업으로 그동안 한국어로 이루어진 많은 컨텐츠가 축적되었고 이를 효과적으로 검색, 연결시키기 위하여 후자의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컴퓨터 환경이 인간과 컴퓨터의 의사소통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면 앞으로의 컴퓨터 환경은 컴퓨터와 컴퓨터 간의 의사소통을 전제로 한 것이 될 것이다.
 최근에 사용자가 직접 만든 컨텐츠(UCC)를 서로 공유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데 이를 효율적으로 자동화하여 처리하기 위해서는 후자의 작업을 통해 얻어지는 컴퓨터 간의 의사소통 기술(웹 2.0)이 필수적이다.

 컴퓨터 간의 의사소통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미국이나 러시아, 영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1960년대부터 컴퓨터로 인간의 언어를 처리하기 위한 기계 번역 작업을 시작하였고 이 과정에서 언어자료를 보다 정교하게 형식화하고 정보화하는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다양한 형태의 자료 구축과 언어 분석 기법도 마련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보 기술 환경이 발달하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이러한 방면에 대한 연구가 전산학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의 사업을 통하여 기초 단계의 한국어 처리 기술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는데 1990년대 후반에 문화관광부의 ‘21세기 세종계획’사업 마련되면서 인문학자와 전산학자를 공동 작업의 장으로 끌어들였다. 이는 ‘21세기 세종계획’ 사업이 가진 큰 의의이기도 하다.
 

3. 한국어 정보화, 그 수준은? 
 
 1980년대 초에 우리나라에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한국어, 한글로 된 많은 자료들이 전산화되기 시작하였다. 많은 연구 보고서와 기본 자료들이 컴퓨터 파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연세대학교, 국립국어원, 한국학중앙연구원(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등에서 시작한 대규모 국어사전 편찬 사업에서 사전 편찬 지원 시스템을  개발하고 이를 통하여 사전 편찬 작업을 진행하였다.
 특히 이 시기에 국어사전의 용례자료를 확보하기 위하여 대량의 문헌자료들을 입력하는데 이것이 본격적으로 한국어 말뭉치를 대량으로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한국어와 한글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보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게 된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국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면, 21세기에는 컴퓨터를 활용한 언어자료 구축과 분석작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한국어와 한글의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었고, 그 일환으로 1997년에 탄생한 것이 ‘21세기 세종계획’이었다.

  ‘21세기 세종계획’은 한국어 자료를 총체적으로 정리하여 문화유산으로서의 한국어를 보존해 나가는 동시에 컴퓨터의 언어 처리를 위한 새로운 자료들을 만들어 나감으로써 한국어 자료의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문화관광부 산하의 국립국어원(NIKL: The National Institute of the Korean language)에서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 계획을 세워 추진해온 사업으로, 언어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보화하기 위하여 가장 기본이 되는 말뭉치(corpus)를 구축하고 구축된 말뭉치를 활용하여 전자사전이나 전문용어 데이터베이스, 국어정보 검색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이 계획을 7~8개의 세부 과제로 나누어 몇몇 대학이나 연구소와 함께 공동으로 추진해왔으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현대 국어 말뭉치 구축 : 현대 국어 중심의 문헌 등을 입력한 원시 말뭉치, 원시 말뭉치를 형태 분석한 형태 분석 말뭉치, 원시 말뭉치를 구문 분석한 구문 분석 말뭉치를 구축하고 이들 말뭉치를 활용한 말뭉치 검색 프로그램과 형태 분석 프로그램, 구문 분석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② 특수 말뭉치 구축 : 옛 문헌을 입력한 역사 자료 말뭉치, 다국어 자료를 대응시킨 한영, 한일 병렬 말뭉치, 북한 및 해외 한국어 말뭉치, 전문 용어 말뭉치를 각각 원시 말뭉치와 형태 분석 말뭉치로 만들어 그 자료들을 활용한 검색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③ 전자사전 개발 : 형태 분석이나 구문 분석 프로그램 등 컴퓨터가 한국어를 분석해내기 위하여 필요한 형태의 전자사전을 만들었다.
④ 한민족 언어 정보화 : 다양한 형태의 말뭉치 자료를 활용하여 한국어 어문 규정, 한국어 방언 자료, 남북한 사전, 한국어의 어휘 역사 자료 등을 검색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⑤ 전문용어 데이터베이스 구축 : 과학 기술 용어를 중심으로 한 전문용어 3개국 대응 목록 및 조어 방법 분석 자료를 구축하였다.
⑥ 문자코드 연구센터 운영 : 한글 및 한자의 국제 표준 코드와 관련된 기초 연구를 수행하였다.
⑦ 글꼴 개발 보급 센터 운영 : 옛 문헌을 중심으로 새로운 한글 글자체를 만들 수 있는 기초 자료를 정리하였다.
⑧ 국어 정보화 아카데미의 운영 : 한국어의 정보화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연구 인력을 양성하기 위하여 국어 정보화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⑨ 국어정보 관리센터의 운영 : ‘21세기 세종계획’을 통하여 만들어진 자료를 다양하게 활용하고 보급하기 위하여 국어정보 관리센터를 운영하였다.  

  ‘21세기 세종계획’은 언어자원을 보존하는 동시에 언어정보산업에 응용할 수 있는 자원까지 만들어내기 위하여 세워졌기 때문에 그 결과물들은 한국어 교육, 한국어 사용 현황 조사, 한국어 정보처리 산업 분야에 광범위하게 활용될 수 있다.
 더불어 국립국어원에서는 1998년부터 한국어와 한글 관련 자료를 널리 보급할 수 있는 ‘국어정보 보급관리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이 시스템도 ‘한국어 통합 관리 시스템’으로 발전되어 표준국어대사전, 어문규정 용례, 국어순화, 신어, 말뭉치, 전자사전, 전문용어, 발음학습, 디지털 한글 박물관 등의 관련 분야는 물론 한국어나 한글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광범위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4. 한국어 정보화와 한글의 응용 
 
 현대 한글은 일반적으로 가로로 쓴다. 그러나 한글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에는 글자를 세로로 써 나갔다. 이는 한글이 음절글자로 만들어질 때 정방형 모양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자모를 조합하되 한 음절 글자의 틀을 만들어 나가기 때문에 그 모양을 정방형으로 만들기가 쉬운 것이다.
 그래서 한글은 세로로 쓰기 어려운 로마자와 달리 가로쓰기나 세로쓰기가 모두 가능하다. 또한 자모를 기본 단위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자유롭게 배치하면 정방형만이 아닌 다양한 조형미를 갖는 글자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한글 글자체 중에는 이러한 한글의 속성을 이용해 정방형의 모양에서 탈피한 글자체들이 많이 있는데 이는 다른 정방형 문자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요소이다. 최근에는 인쇄매체가 아닌 각종 영상매체를 위한 시각적인 글자체들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글자들은 한글의 가독성과 조형미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다듬어지고 있는데 현대 사회의 주된 정보 전달이 인쇄매체가 아닌 영상매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것이다.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는 컴퓨터를 이용한 다양한 서비스가 인간생활을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한글의 우수한 점을 컴퓨터 시대에 맞게 잘 다듬어야 할 것이다.
 한국어를 정보화하는 것은 디지털 시대에 한국의 문화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농경사회에서는 땅을 지배해야만 승자가 될 수 있었고 산업사회에서는 경제를 지배해야만 승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보화 사회에서는 정보를 지배해야만 승자가 될 수 있다.
 한글을 중심으로 한 우수한 우리 문화유산들을 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발전시키려면 이들을 끊임없이 디지털 자료로 만들고 이를 조직화, 체계화시켜 부가가치가 높은 정보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9. 1. 13. 11:1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나라 말소리가 중국과 달라서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일반 백성들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펼 수 없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내가 이를 딱하게 여기고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는데,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나날이 쓰기에 편토록 하고자 할 따름인 것이다.




ㄱ는 어금닛소리니 ‘군(君)’자의 처음 나는 소리(‘군’자의 음을 발음할 때의 첫소리)와 같으니 나란히 쓰면 ‘
() ’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다.ㅋ는 어금닛소리니 ‘ 쾡(快)’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다.
ㅇ는 어금닛소리니 ‘업(業)’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다.
ㄷ는 혓소리니 ‘ (斗)’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으니 나란히 쓰면 ‘ 땀(覃)’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다.
ㅌ는 혓소리니 ‘ ()’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다.
ㄴ는 혓소리니 ‘ 낭(郎)’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다.

ㅂ는 입술소리니 ‘ 볋()’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으니 나란히 쓰면 ‘뽕(步)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다.
ㅍ는 입술소리니 ‘ (漂)’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다. 
ㅁ는 입술소리니 ‘밍(彌)’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다.
ㅈ는 잇소리니 ‘즉(卽)’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으니 나란히 쓰면 ‘ (慈)’ 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다.
ㅊ는 잇소리니 ‘침(侵)’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다.


<출처:newsis>

ㅅ는 잇소리니 ‘슗(戌)’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으니 나란히 쓰면 ‘썅()’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다.
는 목구멍소리니 ‘ ()’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다.
ㅎ는 목구멍소리니 ‘헝(虛)’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으니 나란히 쓰면 ‘(洪)’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다.
ㅇ는 목구멍소리니 ‘욕(欲)’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다.
ㄹ는 반혓소리니 ‘령(閭)’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다.

Δ는 반잇소리니 ‘ (穰)’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다.
는 ‘ (呑)’자의 가운데 소리 (‘ ’자의 음을 발음할 때의 가운데 소리)와 같다.
ㅡ는 ‘ 즉(卽)’자의 가운데 소리와 같다.
ㅣ는 ‘ 침(侵)’자의 가운데 소리와 같다.
는 ‘ (洪)’자의 가운데 소리와 같다.
는 ‘ 땀(覃)’자의 가운데 소리와 같다.
는 ‘ 군(君)’자의 가운데 소리와 같다.

 

는 ‘ 업(業)’자의 가운데 소리와 같다.
는 ‘ 욕(欲)’자의 가운데 소리와 같다.
는 ‘ 양(穰)'자의 가운데 소리와 같다.
는 ‘ 슗(戌)’자의 가운데 소리와 같다.
는 ‘ 볋()’자의 가운데 소리와 같다. 
종성 표기에는 다시 초성 글자를 쓰라. ㅇ을 입술소리 아래 이어 쓰면 입술 가벼운 소리가 된다.  

초성 글자를 아울러 쓰려면 나란히 써야 하니 종성도 같다.
는 첫소리 글자의 아래에 붙어 쓰고  는 첫소리 글자의 오른쪽에 붙여 쓰라.
무릇 글자란 반드시 아울러 써야만 하나의 소리(음절)를 이룬다(음절을 표기할 수 있는 문자 단위가 된다). (음절 단위로 표기된 글자의) 왼쪽에 한점을 더하면 거성이요, 점이 둘이면 상성이요, 없으면 평성이요, 입성은 점을 더하기는 같으나 촉급하다.

  


*** 이 글은 성균관대 국문과 명예교수인 강신항 교수의 주요 저서인「훈민정음 연구」수정증보판에서 훈민정음 본문(예의편) 부분을 저자의 재가를 얻어 발췌하였습니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9. 1. 9. 15:24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과학과의 찰떡궁합, 훈민정음

 이제 한글(훈민정음)의 과학성은 세계의 전문가들이 두루 입증하는 세상이 되었다. 유엔의 유네스코에서 문맹 퇴치에 이바지한 사람들에게 주는 상 이름을 ‘세종대왕상(The King Sejong Prize)’라고 명명한 것은 아주 상징적인 예이다.
 ‘문맹률 0%’ 가까운 국민이라는 놀라운 사실이 한글의 과학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그들도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과학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이다. 그러나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다. 과학의 꽃 컴퓨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문자임을 입증하면 된다.

 컴퓨터 과학자인 변정용 교수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컴퓨터야말로 한글과 궁합이 매우 잘 맞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만능의 기계로 생각하는 컴퓨터는 단 두개의 숫자 ‘0’과 ‘1’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되풀이하는 것인데 이 세상을 순식간에 정보화시대로 만들지 않습니까? 서양음악의 경우도 ‘도레미파솔라시도’ 일곱 개의 음만을 가지고 모짜르트의 고전음악에서부터 우리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서태지의 랩음악까지 무궁무진하게 만들어 냅니다.
 한글의 경우도 똑같습니다. 28글자의 유한수의 기호와 몇 가지의 규칙만으로 천지자연의 무한한 소리를 만들어 표현하는 방식이 바로 한글의 특성이지요. 그런 점에서 한글은 다른 어떤 글자보다 과학적이며 현대 첨단과학의 산물인 컴퓨터의 원리에 매우 잘 부합하는 문자입니다.
  한글이 로마자보다 컴퓨터에 더 적합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자판에 글자를 배열할 때 타자의 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사용하고 집게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좀 더 자주 사용할 수 있게 배열해야 되는데, 로마자의 경우 소리마디의 구성에서 자음과 모음이 어울리는 규칙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배열이 매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서 현행 쿼티키보드에서 R, E, A, D를 칠 때 왼손만으로 쳐야 합니다. 그런데 한글은 한 소리마디 구성에서 자음-모음, 또는 자음-모음-자음의 두 가지로 일정합니다.”1)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한글이 핸드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문자임을 입증하면 된다. 핸드폰이야말로 컴퓨터 원리의 최고 집적물이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과학의 꽃이라면 핸드폰은 컴퓨터의 꽃인 셈이다. 핸드폰의 자판은 컴퓨터의 자판보다 글자쇠가 더 적기 때문에 한글의 과학성이 더욱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현재 휴대전화 자판은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표 1>에서 보듯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이들은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뚜렷하지만 저마다 회사의 이익이 걸려 있어 표준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두 방식 모두 가획과 배합의 한글의 과학 원리를 반영하고 있다. 자음과 모음의 과학적 원리를 어느 쪽이 더 많이 반영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자음위주의 배치방식은 모음 최소 배치를 통해 모음자 만드는 원리를 최대한 반영하고, 모음위주의 배치방식은 자음 최소 배치를 통해 자음 만드는 원리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방식이든 간에 영자 자판과 비교할 때 그 운용체계가 훨씬 합리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널 사랑해’와 ‘I love you’만 비교해 봐도 금방 드러난다. 자모음의 자소 자체는 한글은 10자지만, 영어는 8자로 두 자가 적다. 그러나 실제 자판을 누르는 횟수는 한글은 18번, 영문은 커서를 옆으로 옮기는 것을 제외하고도 26번이다. 
 또한 한글은 굳이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도 무슨 뜻인지 거의 알 수 있지만 영문은 띄어쓰기를 하지 않으면 정확한 의미를 알기가 어렵다. 가령, ‘널사랑해’와 ‘ Iloveyou’를 보면 알 수 있다. 또 한글과 달리 영문은 대소문자가 나누어져 있어 메뉴버튼을 눌러서 대소문자를 변환시켜주어야 하기 때문에 매번 메뉴버튼을 눌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2. ‘과학 한글’의 실체 

 2-1. 문자 생성의 과학성 
 일반적으로 과학이라고 하면 자연과 대립적인 말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과학을 기술이나 물질문명 차원에서 얘기할 땐 자연과 대립적인 개념이지만, 알고 보면 과학 그 자체는 자연과 하나가 된다. ‘자연과학’이란 말이 있듯이 자연 속의 보편법칙을 찾아내 설명하는 것이 과학이기 때문이다.
 근대과학을 열고 완성한 갈릴레이나 뉴우튼 역시 자연 속의 보편법칙을 제대로 찾아내 설명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종은 인간의 소리에서 보편법칙을 제대로 찾아내 문자화시켰다. 이는 자음자와 모음자의 상형방식에서 드러난다.




 자음을 순우리말로 ‘닿소리’라고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모음과는 달리 발음하는 과정이 특정 발음기관, 발음부위와 연관되어 있다. 반면에 모음은 순우리말로 ‘홀소리’라고 하는데 자음자와 달리 특정 발음기관과 관련이 없다.
 세종은 이런 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자음자의 원형문자 다섯 자를 발음기관과 발음작용을 상형해 만들었고, 모음자의 원형문자 세 자를 하늘과 땅과 사람의 추상적인 모습으로 상형했다. 그래서 한글은 창제과정이 분명한 가장 인공적인 문자이면서도 가장 자연스러운 문자가 되었다. 가장 자연스러운 문자를 만들고 보니 가장 과학적인 문자가 된 셈이었다.
 소리문자의 대표격인 서양의 알파벳이 소리의 자연 이치를 직접 반영하지 않은 데 반해 한글은 직접 반영한 소리문자인 셈이다. 나머지 문자도 이러한 원형문자에서 배합 확장해 나가는 방식을 썼기 때문에 기본 문자 모두가 소리문자로서의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이다.


  여기서 이체자라는 것은 가획의 원리를 전혀 적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계열의 문자들과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른바 꼭지이응은 생긴 것은 목소리 글자들과 같은 계열이지만 소리로서는 기역과 같은 계열이다. 소리 성질에 따라 어금닛소리는 목소리에서 이어져 나는 곳이므로 목소리 동그라미에 꼭지를 가획하여 만들었다.
 소리 나는 과정을 반영하다 보니 박쥐(이것과 저것을 함께 포함하는)같은 기호가 되었다. 반설음과 반치음도 가획의 원리를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가획의 의미가 없고 소리성질의특이성 때문에 특별한 명칭과 더불어 이체자라 한 것이다. 곧 다른 가획자는 획을 더함으로써 거센소리가 되고 원형문자와 논리적 관계에 놓이게 되지만 이들 반설음과 반치음은 그렇게 논리정연한 자리매김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운용(응용)문자는 <표 5>에서 보듯 합체방식에 의해 가로로 합체하는 병서와 세로로 합체하는 연서글자를 만들어 냈다. 여기서 각자병서의 ㅇㅇ,ㄴㄴ는 글자 설명에는 나오지 않지만 실제 문헌에서 쓰인 글자이다.
 이 두 자를 빼면 자음자는 모두 37자, 두 자를 합치면 39자가 된다. 실제 우리말 표기에 쓰이지 않은 글자도 있지만 ‘원형문자’에서 ‘기본문자’로 ‘기본문자’에서 ‘응용문자’로 확대해가는 과정이 논리정연하다.



 모음자의 경우는 원형문자 세 자를 1차 배합하여 초출자 4자를, 2차 배합에서 4자를 만들어, 기본자 11자가 되었다. 초출자, 재출자에 쓰인 아래아(·)는 다른 글자(-, 1)와 대등하게 합쳐진 것이 아니라 글자 생성의 기준역할을 한 셈이다. 운용글자 18자에 쓰인 아래아(·)는 대등한 자격으로 합쳐진 글자이다.

 


 2-2. 문자 도형의 과학성
  
 한글의 두 번째 과학적인 특성은 도형의 과학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치 수학의 연산기호처럼 간단한 도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도형의 기본이 점과 선과 원이라면, 한글은 이런 기본도형으로 이루어졌다. 직선과 사선을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가로와 세로, 긴 선과 짧은 선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그야말로 도형문자, 그래픽 문자를 만들어냈다.
 특히 자음자와 모음자를 막론하고 도형의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대칭구조가 되었다. 기본 자모음자 28자 가운데, 대칭원리가 적용되지 않은 글자는 ‘ㅋ’자가 유일하다. 자음자를 대칭방식별로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ㄱ ㄴ’ 의 경우 두 글자 대각선 대칭이다. 모음의 경우는 글자 각각으로 보면 상하, 좌우 대칭이지만 기본 글자를 모두 모아 보면 사방 대칭이 된다. 모음자의 경우, 한 글자 내부 대칭은 물론 기본자 11자가 짜임새(시스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자음자와 모음자가 대칭구조로 되어 있다 보니 자음자 모음자도 합리적인 배치가 가능한 것이다. 더욱이 아래 그림처럼 21세기 첨단 입체수학인 위상학(topology)의 원리와도 같이 최소한의 공간에서 최대한의 문자결합을 이뤄낸다. 한 글자를 같은 자리에서 90도 단위로 회전시키면 새로운 글자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자음자와 모음자를 확연하게 다르게 도형화시킨 것도 과학적인 특성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훈민정음은 다른 문자와는 달리 자음과 모음의 균형대응이 된다. 영어는 26자 자모 중에 모음은 다섯 자(a, e, I, o, u) 뿐이면서 자음이 21자나 되지만, 훈민정음은 자음이 17자, 모음이 11자로 수적인 균형이 어느 정도 맞는다.



 실제 쓰임새에서 영어는 자음과 모음의 배열이 들쑥날쑥하다. ‘school'은 ‘자자자모모자’이고, ‘apple'은 ‘모자자자모’이다. 그러나 훈민정음은 매 음절마다 모음이 배치되어 일종의 기준 역할을 한다. 이런 자음과 모음의 효율적인 대응성은 컴퓨터 자판을 보면 금방 드러난다.
 한글자판은 왼쪽은 자음, 오른쪽은 모음으로 확연히 나누어져 있어 배우기 쉽고 치기 쉽다. 이에 반해 영어는 모음의 글쇠 위치에 일정한 원칙이 없고 칠 때도 ‘read'의 경우와 같이 오로지 왼손으로만 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음운은 초성, 중성, 종성으로 삼분법으로 나누되 문자는 초성자와 종성자를 같이 쓰게 하는 이원화의 방법을 채택했는데, 오늘날 두벌식 표준화 자판이 가능한 것은 훈민정음의 이런 중층 (이분법과 삼분법)의 속성 때문이라 볼 수 있다.





 2-3. 소리성질의 과학성  
 흔히 한글을 자질 문자 또는 소리 바탕 문자라고 한다. 문자 자체가 소리의 성질을 과학적으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영국의 저명한 문자 학자 샘슨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뒤로 붙여진 이름으로 이제는 자연스러운 명칭이 되었다. 

 “과학적으로 볼 때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라는 사실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한글은 일정한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문자라는 점에서 세계에서 그 유례가 없습니다. 로마자, 그리스 문자 등 세계의 모든 문자들은 오랜 옛날에 중동지방에서 생겨난 알파벳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한글은 음성기관의 소리 나는 모습을 따라 체계적으로 창제된 과학적인 문자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문자 자체가 소리의 특질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영어의 T와 N이라는 글자는 소리를 갖고 있지만 그들과 음성기관의 모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글의 ㄴ은 혀가 잇몸에 닿는 모습을 본떠 만들었고 또 T에 해당하는 ㄷ은 ㄴ에 한 획을 더하여 같은 자리에서 소리 내는 것을 나타내고 글자는 이런 방식으로 발성기관의 모양을 따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세계의 다른 어떤 문자에서도 그런 과학적 원리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놀랍게도 한글은 500년 전에 그런 언어학적 원리에 따라 창조되어 실용화되었습니다. 서구의 많은 학자나 지식인들은 이 특이한 한글의 창조원리에 감탄해마지 않습니다.”2)

 자음의 경우 발음기관 위치에 따라 다섯 음으로 나눈 뒤 네 가지 소리성질을 반영해 분류했다. 원형문자 다섯 자 가운데 세 자가 가장 여린 소리인 울림소리에 해당된다. 문자 만드는 원리에 소리성질을 바탕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거센 소리는 가획자로 이루어져 있고, 된소리에 해당되는 전탁자는 전청글자를 거듭 써서 만들어 소리와 문자의 유기적 관계를 보여 주고 있다.
 모음자도 아래아(·)가 위쪽과 오른쪽으로 향해 있으면 양성모음이요 아래쪽과 왼쪽으로 향해 있으면 음성모음이다. 모음조화의 성질을 문자 자체에 반영해 놓은 것이다. 자음의 경우 발음기관 위치에 따라 다섯 음으로 나눈 뒤 네 가지 소리성질을 반영해 분류했다. 원형문자 다섯 자 가운데 세 자가 가장 여린 소리인 울림소리에 해당된다. 문자 만드는 원리에 소리성질을 바탕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문자에 소리성질을 담다 보니 다른 문자에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1자 1음주의’라는 과학성을 이뤄냈다. 음운과 문자가 일치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최대한 이런 원칙에 근접시킴으로써 읽기 쉽고 쓰기 쉬운 문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특징이 왜 과학적이고 실용적인지는 영어의 불편함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영어는 한 소리가 여러 문자로 표기되거나 한 문자가 여러 소리를 낸다. 이를테면 a는 열 가지 정도의 발음으로, e, o는 열세 가지 정도, u는 아홉 가지 정도로 발음된다. 거꾸로 [o]라는 발음은 ‘all, caught, poll’ 등과 같이 다양한 문자로 표기된다. 그래서 발음기호가 필요한 것이다.
 미국의 생물학자 다이아몬드는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한 바 있다.
 
 “영어를 읽고 쓸 줄 아시오?”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의당 이렇게 답할 것이다. “물론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 잡지를 어떻게 읽고 있단 말이오?” “그렇다면 영어의 글말에 숨어있는 규칙(맞춤법)을 남에게 설명해 보려고 한 적이 있어요? 말하자면, ‘seed'란 낱말은 왜 ‘cede'나 ‘ceed', 또는 ‘sied'로 쓰지 않고 하필 그렇게 적으며, [sh] 소리는 왜 ‘ce'(ocean)나, ‘ti'(nation) 또는 ‘ss'(issue)같이 여러 가지로 적을 수도 있는 것인지 말이오.” 물론 이러한 예는 수없이 많다. 모두 영어의 글말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드러내고 있는 악명 높은 보기들이다.
 요즘 내가 1학년에 다니는 우리 집 쌍둥이 아들들을 통해서 새로이 느끼고 있는 바이지만, 영어의 맞춤법은 너무나 일관성이 없어서 비록 맞춤법의 기본규칙(그런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을 익힌 어린이라고 해도, 아직도 읽지 못하는 낱말이 많을 뿐 아니라, 들은 말을 글로 적지 못하는 일이 많은 것이다.3)
 
  이러한 영어 알파벳의 발음과 기호의 불일치는 숱하게 지적되어 온 것이며, 존 맨도 한글이 모든 알파벳의 꿈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장에서 반 이상을 영어 알파벳의 불편함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영어 철자법 알아맞히는 학생들 대회가 매우 비중 있는 행사가 된 것이다.
 세계음성기호(IPA)는 그런 불일치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것인데, 한글은 그 자체가 이런 음성기호 구실을 할 수 있는 바탕문자인 것이다. 한글은 몇 가지 예외는 있으나 한 음운이 한 문자로 표현되고(/a/-ㅏ), 거꾸로 한 문자는 한 음운(ㅏ-/a/)으로 나타난다.
 이 원리가 지켜진다면 배우기도 쉽고 표기법을 세우기도 쉽다. 또한 정보기기에서의 음성인식에서도 놀라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실제로 핸드폰에서 음성으로 이름과 번호를 검색할 수 있는 것은 이런 특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더 나아가 훈민정음은 소리의 이치를 따랐기에 음률의 이치까지 담을 수 있었다. 훈민정음 해례를 보면 자음들이 어떻게 우리 국악의 오음에서 배치되는지를 분명히 밝혀 놓았지만, 대다수 학자들은 이를 오행에 따른 관습적 배치로만 여겼었다.
 그러나 한태동(2003)은 이를 현대음악으로 입증하였다.4)  이렇게 보면 자음에 아래와 같은 동양의 오행철학을 부여한 것은 자연의 소리성질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모음자의 경우 수리적 의미를 부여했는데, 숫자적 의미 부여를 통해서 자음자에 비해 유동적인 모음자의 체계를 좀 더 짜임새 있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해례에서의 설명을 숫자 차례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위 설명을 입체그림으로 그려 보면 열 개의 모음이 그야말로 정형화된 기하구조로 배치됨을 알 수 있다. 이런 한글의 자질문자로의 위치를 일본의 저명한 훈민정음 연구학자인 우메다 히로유기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이 세상의 글자는 크게 3가지로 발달되어 있습니다. 한자와 같은 뜻글자, 일본의 가나와 같은 음절문자 그리고 로마자나 한글과 같은 음소문자가 그것입니다. 이들 글자들은 만들어진 시대상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기능상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음소문자이면서도 로마자보다 한층 차원이 높은 자질문자입니다. 이것은 한글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특징입니다.”




 2-4. 음절배합의 과학성 
 한글은 영어와는 달리 음절단위로 모아쓴다. 이런 특징 때문에 한글은 가로로 뿐 아니라 세로형으로도 글자를 배열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모아쓰기 음절글자의 장점은, 자음과 모음을 결합하여 수많은 음절글자를 생성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과학적 원리의 실용성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아래의 표에서 보여주는 현대 자모음들만 보더라도 현대어에서 생성될 수 있는 음절글자는 받침 없는 음절 399자(초성 19자 X 중성 21자), 받침 있는 음절 10,773자(399자 X 종성 27자) 등 무려 11,172자나 된다. 15세기의 자음자와 모음자는 현대말보다 훨씬 많으므로 생성 가능한 글자 수도 더욱 많았다.
 15세기 자음자의 <표 5>와 모음자의 <표 6>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받침 없는 음절은 986자(34자×29자), 받침 있는 음절은 33,524자(986자×34자)에 이른다. 이러한 놀라운 숫자는 한글의 과학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그만큼 인간 소리에 대한 표기영역이 넓다는 반증인 것이다. 



 3. 마무리
 
 한글의 과학적 원리의 원천은 ‘훈민정음 해례본’ 중 제자해에서의 다음 설명이 극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그 내용을 오늘에 되살려 해석하면 자연의 이치에 따라 만든 문자가 바로 한글이라는 것인데, 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앞에서 살펴본 내용들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한글이 과학으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천지자연의 이치는 오직 음양오행뿐이다. 곤괘와 복괘의 사이가 태극이 되고, 움직이고 멎고 한 뒤가 음양이 된다. 무릇 천지자연의 어떤 생물이든 음양을 버리고 어찌 살 수 있는가? 따라서 사람의 말소리도 모두 음양의 이치가 있건마는 생각건대 사람들이 살피지 않을 뿐이다.
 이제 정음을 만든 것도 처음부터 지혜로써 경영하고 힘써 찾아 낸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소리에 따라서 그 음양의 이치를 다하였을 뿐이다.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닌 즉 어찌 천지의 신(귀신)과 더불어 그것을 부려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주)
1) , 2) 훈민정음 기록 영화 ‘세계로 한글로’(감독:이봉원, 시나리오 초안 구성:김슬옹, 제작:국어정보학회), 1996년 10월 9일 KBS 방송
3) Diamond, Jared, 1994,〈Writing Right〉, Discover, June/ 이현복 옮김,「한글 새소식」1994년 8월호.)
4) 훈민정음의 음률도(한태동 2003: 171)
 
구분 변상 변치
불탁(不濁) ㅁ ㅱ
전청(全淸) ㅂ ㅸ    
차청(次淸) ㅍ ㆄ    
전탁(全濁)   ㅆ ㅉ  
기준모음 ·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pikgy | 2009.03.28 06:17 | PERMALINK | EDIT/DEL | REPLY
http://blog.naver.com/pikgy/130044930232
평가 좀 해주세요~!!
BlogIcon 온한글 | 2009.03.29 18:30 신고 | PERMALINK | EDIT/DEL
pikgy님 블로그에 가서
글 읽어보았습니다.
연구하기 쉽지 않으실 텐데...
이미지와 함께 한 설명까지,, 대단하시네요!!
한글을 풀어서 서체를 만든다는 건
참 좋은 생각인거 같습니다.
그러나 일반인이 보기엔 다소 어려운 감이
있지 않을까 쉽네요.. 좀 더 쉽게 풀어주신다면
많은 분들이 공감하지 않을까요?
덕분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장단점을 정확히 짚어드리겠습니다. ㅋ | 2009.05.23 02:3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정보 수집력이 일단 상당하시내요. 이런 걸 쓰는 분들은 대체 어떻게 이렇게 정보를 수집하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서도 아무튼 참 대단하시단 말을 먼저 드리며 일단 이 글이 길면서도 크게 지치지 않고, 눈에도 즐거운 이유.

1.고지식적인 말이 없다
- 흔히 말하는 '있는 척'하기 위해 영어를 난무하거나 마치 자신이 신인냥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이건 글의 양식이 비교적 객관적인 글이죠(중간 주관적 요소들도 보이지만).
스크롤 압박(?)에 일부는 상당히 고지식적인 글임에도 쉽게 누구나 알 수 있는(세종 대왕의 의지를 이어받은...)어휘로 풀이해 주신 게 굉장히 마음에 들고요. 괜히 어려운 말 쓰고, 영어(여기는 한글을 이해시키는 글인데, 영어가 나왔다면 그건 가차없이 -겠죠?)도 없으며 부담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

2.스크롤 압박의 글임에도 지치지 않는다(?)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게 정말 보기 쉽게 문단별로, 주제별로 나눠서 포스팅해 주셨는데 이건 +를 주고 싶내요. 그저 문단별로 나눈 것이 아닌 나름대로 글자도 적절히 조정해 가면서 굵기도 중요도에 따라 나눠주셨고, 이게 사실 굉장히 긴 글임에도 정말 재밌게 읽은 것 같습니다.

3.적절한 예시
-사실 글 좀 아는 사람들은 이 예시를 써야만 약발이 확실하다는 것을 많이 알고 있을 텐데요. 일단 예시를 쓰면 상당히 신뢰도 가고, 설사 짧은 인용문이라 할지라도 어려운 내용을 단방에 이해시킬 수가 있죠. 위에서 말한 뉴턴, 33,524자(986자×34자)..
무엇보다도 R.E.A.D같은 경우는 굉장히 무엇을 말해주고 싶은지를 정확히 전달할 수가 있죠. 딴거 필요없고 편리하게 좌우 연타로 빠르게빠르게 입력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예시 하나하나가 정말 제대로 가져오면 효과가 굉장합니다. +점수 팍팍이죠.

4.이미지를 활용한 서술 방식
-정말 이 긴 글이 그저 한글로만 매꿨다면 눈이 아려왔을텐데, 이미지도 같이 첨부해주셨군요. 현재 엑박처리가 되어 무엇으로 되는지 이해는 안 갑니다만..굉장히 완벽을 추구하시는 것 같군요. 긴 글임에도 그다지 지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문단 나누기도 시원시원하게 나눠져 글이 빽빽히 들어선 모양새가 거의 나지 않는군요.그리고 글자도 막연히 한 색으로 하면 눈이 정말 피로한데 지금 글을 중앙에 두고, 좌우를 비어두게 함으로써 답답하다는 느낌도 배제되는군요.


아쉬운 점
1. 사실 글이 굉장히 길어, 많은 사람들이 읽어도 보기전에 그냥 X로 손이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한글이 굉장히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원리로 만들어진 글이라 이렇게 담으려면 어쩔 수가 없지만 그래도 단점을 찾아내라면 어쩔 수 없는 허점이겠군요.
BlogIcon 온한글 | 2009.05.25 09:20 신고 | PERMALINK | EDIT/DEL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우선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적해주신대로, 한글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원리로 이루어진 글이라 많은 사람들이 읽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온한글도 재미있게 정보를 전달 해 드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한글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더욱 더 노력하겠습니다. ^ ^
| 2011.12.26 17:51 | PERMALINK | EDIT/DEL | REPLY
굉장히 자세하게 써주셔서 한글에 대한 많은 정보를 습득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문맹률 통계치를 보니 우리 나라가 0% 문맹률은 아니다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네요. 문맹률 통계치를 조사해 보니 우리나라 문맹률은 1%를 차지하고 있었고, 문맹률 세계 17위였습니다.

혹, 다른 의미에서 0%라고 작성하신 거라면 죄송하고, 다시 한 번 좋은 컨텐츠를 작성해 주신 점에 감사드립니다. ^^

지나가던 사람 | 2012.04.24 20:1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우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제가 학교에서 대회를 나가는데 주제가 한글이거든요 덕분에 정말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ㅇㅇ | 2012.05.21 17:46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학교 수행에 큰 도움이 됬어요ㅎㅎㅎ
근데 오타가ㅜㅜ
한글이 핸드폰 자판에 가장 잘 어울리는 ~ 문단의 6번째 줄
모두 가획과 배합의 < 가아니라
모두가 획과 배합의 아닌가요?
| 2012.10.15 23:10 | PERMALINK | EDIT/DEL
비밀댓글입니다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