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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전각'에 해당되는 글 3건
2009. 9. 4. 10:04

경기도 파주의 헤이리마을 한 켠에는 한글을 활용해 멋진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신
강복영 작가님의 ‘취림헌’(http://chweerim.com)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취림헌을 맨 처음 보게 되면 전면 유리를 장식하고 있는 전각작품을 활용한 블라인드가
눈에 들어옵니다.
보는 순간, ‘아~ 이렇게 멋진 작품이 한글로부터 비롯되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죠.
오늘은 취림헌의 한글 사랑을 한 번 들여다볼까 합니다.
 


취림헌의 주인장이신 강복영 작가님은 18년간 교직생활을 해오신 아주 특이한
경력을 보유하고 계십니다.
일반 작가와는 조금 다른 길을 걸으셨다고 할 수 있을까요?
교직생활 후 처음에는 서예에 관심을 가지고 작품활동을 하셨으며,
진흘림체에서 작가님만의 영역을 확보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취림헌에 방문하면 서예작품보다는 알록달록 화려한 색의 한글 전각 작품이 눈에 띕니다.
최근에는 전각에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셔서 일텐데요, 오늘 주로 이야기할 부분도
바로 ‘한글 전각’입니다.

전각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도장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강복영 작가님의 경우에는 한글 자음과 모음을 형상화하거나 한글 자체를
자연과 연결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시키는 전각 작품을 만들어내고 계십니다.

전각이라는 용어가 다소 세월이 느껴지는 것에 비해, 강복영 작가님의 전각 작품은
신세대도 좋아할 만큼 신선하다고 할까요?
조금 전문적인 언어를 사용하자면, ‘전각의 현대적 재해석’을 이뤄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강복영 작가님의 활동은 단순히 한글을 새로운 모습으로 새겨내는데에 그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한글 전각을 이리저리, 작가님의 다른 작품과 융합하여
아주 새로운 작품도 만들어내고 계시니까요.


취림헌 한 켠에 있는 진열장에서는 그 동안 작가님이 만들어낸 전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각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작품으로서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고나 할까요?
이러한 전각 작품들이 모이고 모여, 작가님만의 것으로 재해석 과정을 거치고 나면,
아주 멋진 전각 작품이 탄생되게 됩니다.

전각이라는 용어에서도 느껴지듯이 칼로 딱딱한 무언가를(주로 돌이 사용됩니다) 새겨내야 하는
것이기에 매우 힘든 작업입니다.
그래서인지 강복영 작가님의 손을 보면 거친 남성을 연상시키듯 매우 투박합니다.
작가님의 화려하면서 때로는 아기자기한 작품에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죠.
하지만 작가님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세월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고 있는
‘젊은이의 열정’이 담겨있음을 발견해낼 수 있습니다.  


취림헌은 1층에는 작가님의 작업실과 작품의 일부가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 전각만으로 구성된 작품과 전각과 서예가 서로 조화를 이룬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취림헌을 찾아온 손님에게는 작가님의 정성이 담긴 따뜻한 (날이 더울 때는 시원한) 차도
내주시니 한 번 방문해서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을 듯 하네요.


ⓒ 온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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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 3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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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이란?
전각에 대한 견해는 서예에 대한 이야기부터 소재의 범주에 대한 것들까지 논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말하여지곤 한다. 나에게 묻는다면 글씨와 그림, 조각이 합일되어 ‘금은동목석, 심지어 흙까지 모든 재료에 칼로 새기는 것’이라고 모든 범주를 담아 말하고 싶다. 그리고 전각은 독자적 예술이다.
 그런 점에서 도법(刀法)만 있는 서각(書刻)과는 달리 모각(模刻)의 한계를 뛰어넘은 창작작품만이 전각의 범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나의 예술작업의 시작도 무지에서 시작되었다. 전각이라는 단어조차 들어보기 쉽지 않았던 시절의 불모지에서 사람들의 눈에 내 일은 그저 도장 파는 일에 불과했다. 무언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에 사로 잡혀 인장의 고수들을 찾아다니며 그 의미를 찾아보려 했지만 그들이 보여준 것은 생업을 위한 고도의 기능에 불과했다.
 그것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일은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예술이란, 대중과의 소통이다. 작가의 메시지나 스타일을 대중들과 나누는 일이다. 그 길이 결코 쉽지는 않다. 대다수가 인정하는 순간이 오면 이미 예술가는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대중이 몰이해하는 범주를 건드려 마침내 그 막힌 담을 깨뜨리는 일이 예술가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전각가로서의 삶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근사한 명분 같은 것은 없었다. 하고 싶었고, 해서 무언가 이루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을 뿐이다. 그저 남들이 닦아놓은 길을 자동차를 타고 한 걸음에 달려가기 보다는 더디지만 없는 길을 내면서 역사의 주름을 잡아가는 사람이 되는 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예술가로서의 사명감이 전각을 하게 한다는 것인가?

 
1970년대, 20대 후반부터 나는 무언가 내 삶의 버팀목이 될 것을 찾고자 무진 애를 썼다. “무슨 일이든 내가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이라면 오랫동안 연애편지 쓰는 기분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해답이 예술가로서의 삶이었다. 또한 10여 년이나 인장(印章)을 해오는 동안 무언가 더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갈증에 시달렸던 이유도 결국 그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 전각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매진하기 시작했지만 다들 손끝의 재주인 기능성과 고전 답습 정도에 머물 뿐 예술혼에 대해 별로 고민하지 않는 터여서 나는 개척자로서의 길을 나서야 했다.




 
결국 전각의 예술성을 환기시킨 장본인으로 기록되고 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을텐데…?

 
마침내 전통인장을 현대적 조형언어로 표현해내게 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나 바로 그 다른 점 때문에 시비에 시달리기도 했다. 지금은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지만 처음엔 다들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았고, 늘 보수적인 서단과 미술계의 잣대인 ‘정통성’이라는 벽에 부딪혀야 했다.
 하지만 내가 만약 미술대학을 갔더라면 더 좋은 것을 얻을 수는 있었겠지만 지금과 같은 전각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일말의 후회도 없는 전각의 매력은 과연 무엇인가?

 
전각공부는 처음에 지름이 3Cm밖에 안 되는 방촌(方寸)으로 시작하기 마련이다. 그 작은 공간 안에 점과 선과 면이 직곡(直曲)의 합일로 어우러지도록 하는 작업은 우주를 끌어들이는 작업이라고 할 정도로 리듬감과 테크닉이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이다.
 나는 그 세계의 아름답고 절묘한 맛을 비단 인장 뿐 아니라 타이포그래피 디자인,판화 등 여러 평면적인 예술분야와 조각, 설치 등 입체적인 작품세계로 표현해내는 실험을 계속해왔으며 최근엔 퍼포먼스나 애니메이션의 영역까지 접근하는 등 전각의 세계를 확대해나가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 모든 과정과 노력이 내게는 연애편지를 쓰는 것처럼 언제나 즐거운 시간들이었고 할수록 더욱 다양한 작품을 하고 싶은 욕심이 난다.


 
영역을 확대시켜 나가는 일이란 단순히 여러 분야에 명함을 내민다고 되지는 않을 것이다. 방법적인 측면에서의 남다른 시도가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전각이라 하면 흔히들 생각하는 것들, 가령 도장이나 빨간색을 떠올리는 등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우선 다색화(多色化)를 모색했다. 빨간색만이 아닌 우리 고유의 오방색(五方色)과 전각의 오방색인 적록청황흑(赤紫靑黃黑) 또는 금박·은박을 이용하여 우리의 정서를 보다 다양한 느낌으로 담아내는 시도를 했다. 그리고 비단 글자만이 아닌 전각화(篆刻畵)를 시도하다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현대적인 감각의 작품들을 선보일 수 있었다. 아마도 회화적인 전각화를 시도한 것으로는 세계 최초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한 노력들이 현대 전각의 개념과 위상을 바꿀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그 이전까지는 전각의 위치가 서예의 한 분야 정도로만 여겨지지 않았던가?

 
전각을 서예의 하위 개념이 아닌 현대 예술의 한 분야로 정립해나가기 위한 노력은 일종의 독립운동이었다. 90년대 초중반 굵직한 미술대전에서의 잇단 수상이 내 독립운동을 의미 있게 해주었는데, 특히 95년 조계사에서 세계 처음으로 현대적으로 해석한 금강경을 선보였던 것이 개인적인 입지 뿐 아니라 전각이 독립적인 영역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음을 인식시키고 나 자신에게도 사명감을 더해준 계기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새김아트라는 용어를 주창하게 된 것도 그 사명감의 발로에서였나?

 
현대의 전각은 전통적으로 우리가 사용해온 전각이라는 용어의 틀 속에 담기에는 훨씬 넓은 개념을 가지고 있어서 뭔가 새롭고 넓은 그릇이 필요했고, 그 해답으로 ‘새김’이라는 용어를 생각해내게 되었다.
 그것은 자법(子法)에 있어 그저 전서의 스타일에만 국한되거나 돌이나 나무 등 재료에 한계를 두거나 일정한 색만을 고집하는 등의 기존의 우물에서 벗어나 보다 광활한 세계로 뻗어나가려는 미래지향적인 의식을 표현해내기 위함이었다.
 또한 단순히 물리적인 작업 뿐 아니라 작가의 사상과 감성까지도 새겨 넣어야 진정한 작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각을 글꼴상품으로 발전시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평소 멀티 아티스트가 되고자 애써온 사람으로서 전각의 디자인 상품화 또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최근 전각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젊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혹은 알고 사용해서 표절시비에 걸리게 되는 것을 보면서 차라리 편하게 쓸 수 있도록 상품화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예술이란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때 그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꼭 처음부터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도 그것을 좀 더 발전시켜 인류문화사적인 기록을 남길 수 있다면 그 또한 작품을 하는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사라지지 않는 작품으로 남을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는 일일 것이다.


 
한글전각을 하면서 느끼는 한자전각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한자의 경우 상형문자에 그 뿌리를 두고 있고 좌우대칭형이기 때문에 모양을 내기가 쉬운 편이다. 그런데 천지인의 원리를 원·방·각만으로 기호화한 한글은 직선과 곡선의 구분이 매우 명확한 기하학적인 문자로 결과물은 보다 모던한 반면 시각적인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서간체와 궁체, 훈민정음 목판본 등을 종합분석하면서 경직된 각도를 벗어나 공간을 재구성하는 등의 방법으로 나름의 조형언어를 찾고자 노력했다.


 
최근 붓글씨를 서체화한 캘리그래피를 비롯해 손글씨가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는데, 전각서체 역시 손맛이 관건이 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고 보아도 무방한가?

 
전각서체는 새김이라는 고유의 특성을 강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손글씨와는 여실히 차별화된다고 본다. 종이 위에 쓴 글씨만으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것들과 달리 전각서체는 먼저 인고(印稿)를 쓴 뒤에 그것을 돌이나 나무 등의 재료 위에 쓰고 새겨 찍어내는 과정을 거쳐야 완성되며, 따라서 다루는 재료의 물성과 칼맛이 느껴지는 질감 있는 서체가 되는 것이다.


 
특유의 비주얼적인 완성미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가장 자연스럽게 보이려면 가장 철저하게 숨겨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리고 토할 것만 철저하게 토해내야 한다. 자유와 방종의 차이를 늘 경계하며 직곡의 강약과 완급을 조절해야 한다.


 
전각이라는 장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노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층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늙지 않는 느낌이다. 미래를 향해 가는 현대예술을 하고 있으니, 그것도 누구보다 즐겁고 재미있게 하고 있으니 생각만은 오히려 더 젊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온한글의 '한글 전각' 관련 포스트 더보기~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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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 12.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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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전각과 서체

 전각예술은 서·화와 함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변화되어 온 동양예술로, 전서가 지닌 문자성 위에 독자적인 조형미를 書·畵·刻의 종합예술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한 예술성을 인식하여 우리나라에서도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전각계가 활기를 띠며 다수의 전각인들이 눈부신 활동을 하게 된다.
 해방 후에는 한글전각이 등장하게 되어 지금까지 어느 정도 발전을 보았고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전각이라 하면 대부분이 한자 전각을 생각하게 되는데 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째로는 한글의 역사가 짧다는 것이다. 한글이 지금으로부터 530여 년 전에 제작된 것인 만큼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한문의 역사에 비하면 예술적 가치를 발휘하기엔 기간이 너무 짧았다.
 둘째로는 문자의 구조이다. 한자는 상형문자로서 수만자의 글자가 어떠한 형으로부터 변천하여 이루어지기까지 그 구조와 자형이 복잡하여 조형성을 의식한 예술성이 풍부하고 다양한 데 반해, 한글은 표음문자로서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자형이 이루어지므로 그 구조가 간단하여 조형적 배려가 단조롭다는 것이다. 

 셋째로 한자는 첩학(帖學)이나 비문 등 고전적인 자료가 풍부하나 한글은 자료가 부족하고 예술적 조형의지가 빈약하다. 문자 생성의 역사에서 그 길고 짧음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겠지만, 한글이 반포된 이후 귀족 양반사회의 사용문자로서 주인 구실을 하지 못한 원인도 크다. 한자의 풍부한 비첩(碑帖)의 자료에 비하면 예술적 조형의지를 가지고 제작된 한글 작품은 1900년 이전까지 한 점도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글 비(碑)로서 유일한 것은 ‘양주영비각자(楊洲靈碑刻字)’ 1)가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봉건적 유교사회의 사대성에 젖어 한글을 한자의 종속가치로 경시하는 경향이 뿌리 깊었던 것은 시대적 상황이었으나 현재까지도 그 잔재가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앞으로 한글에 대한 더욱 많은 연구가 이루어짐으로써 단순성의 극복과 함께 한글의 장점을 살린 전각예술이 그 미적 가치를 과시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한글 전각에 쓰인 서체를 보면 우선 <인장 이미지 1>를 통해 판본체를 볼 수 있다. 이는 훈민정음이 반포된 당대에 간행된 용비어천가나 월인천강지곡 등에 나타난 서체로서 중후한 맛을 지녀 격조 높은 전각예술로서의 미를 엿볼 수 있다. 

 여기서 판본체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는데 ‘각’자에서 ‘ㄱ’은 직각으로 꺾어져 있고, ‘대’자에서 ‘ㄷ’이 아닌

으로 위쪽의 가로획이 아래쪽 가로획보다 왼쪽으로 조금 길게 나와 있고, ‘한’ ‘민’ ‘원’ ‘전’의 받침 ‘ㄴ’은 윗글자의 너비와 같도록 하였다.
 그리고 판본체를 기본으로 하되 작가의 주관대로 자형을 조금씩 변형시킨 것이 있다.<인장 이미지 2> 이는 판본체보다 좀 더 경쾌한 느낌의 조형미가 보인다. 또한 조형적인 면에 더욱 관심을 두어 작가의 특유한 장법(章法), 도법(刀法), 자법(字法) 등으로 구성한 것을 볼 수 있으며,<인장 이미지 3> 극히 드물지만 궁체와 같은 자체(字體)도 볼 수 있다. <인장 이미지 4> 
 이렇게 판본체로 된 전각 외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한글 전각들이 있는데, 특히 장법을 중심으로 그들의 조형적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인장이미지 참고하기>




8가지 장법(章法)을 통해 본 한글 전각
 인(印)을 각(刻)하는 데 있어서는 장법이 상당히 중요하다. 장법이란 크게 보아 자체의 내용, 배자, 전반적인 인면 구성문제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인재에는 큰 것, 작은 것, 둥근 것, 사각인 것 등으로 그 형은 여러 가지이고, 그것에 각하는 문자는 자체가 많은 것과 적은 경우가 있으며, 획수가 많은 것과 적은 것이 있어서 그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리하게 같은 방법으로 각할 수는 없기 때문에 반드시 각각 잘 알맞은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중략)
중국의 장법으로 한자의 전각에 참고로 쓰이는 것은 14가지로서 임고(臨古), 소밀(疏密), 경중(輕重), 증손(增損), 굴신(屈伸), 나양
, 승응(承應), 교졸(巧拙), 의기(宜忌), 변화(變化), 반착(盤錯), 이합(離合), 계화(界畵,) 변연(邊緣)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이들 중 한글전각에 적용되는 경우는 소밀, 경중, 나양, 승응, 변화, 이합, 계화, 변연 등으로 필자는 한글 전각의 장법을 논함에 있어 배자(配字), 자체(字體), 공지(空地), 종형(縱衡), 윤곽(輪廓), 주백문 상간(朱白文 相間), 印의 形, 변화 등 8가지로 나누어보려 한다. 
 

1. 배자(配字)
 배자란 문자의 배치를 말하는 것으로 이에는 상당히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크게 세 가지 형으로 나눌 수 있다. 획이 많은 자인 경우에는 넓은 인면(印面)을 할애하고 획이 적은 자는 인면을 적게 할애하는 방법, 획의 다과(多寡)에 구애받지 않고 문자의 수대로 똑같은 인면을 할애하는 방법, 문자의 획과 수의 다과에 구애받지 않고 작가의 주관에 의해 임의로 인면을 할애하는 경우 등이다.

 그중 첫 번째 경우의 예를 보면 <인장 이미지 5>의 ‘뫼는 높고 믈은 길고’에서 비교적 획이 적은 ’는’ ‘고’ ‘은’과 같은 자들은 작은 인면을, 획이 많은 ‘높’ ‘믈’ ‘길’ 등의 자들은 넓은 인면을 차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인장 이미지 6>을 보면 ‘주’ ‘시’ ‘이’의 공간을 ‘좋’ ‘을’ ‘놀’자 등에게 양보함으로써 더욱 느긋한 형을 이루게 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 장법 중 나양
의 방법과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두 번째 경우와 같이 문자의 수대로 똑같은 인면을 할애한 방법 예로는 <인장 이미지 1>에서 9개의 문자가 획수에 관계 없이 거의 같은 인면을 차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형식은 인의 기본골격을 갖추어 엄격중후하면서도 각 인면마다 공지(空地)의 대소로서 변화감을 느끼게 하여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게 한다.

 세 번째인 작가의 주관에 의해 인면을 할애하는 경우는, 윗글자의 받침 안에 문자를 집어넣어 인면을 활용한 경우<인장 이미지 7, 8>와 삼합자로 인면을 구성한 경우<인장 이미지 9, 10>, 인면에 적당히 공간을 남겨 여백을 살린 경우<인장 이미지 11, 12, 13>, 한 글자가 들어가고 남은 공간에 다시 글자를 잘 배치하여 자연스럽게 얽히고 설킨 듯한 인면을 구성한 경우<인장 이미지 14, 3>, 하나의 자음이나 모음을 두 자나 석 자에 공통으로 이용하여 배자한 경우<인장 이미지 15>, 문자끼리 조금씩 겹치도록 배자한 경우<인장 이미지 16, 17>, 배자함에 있어 자음과 모음을 가로로 풀어쓰는 방법으로 한 경우<인장 이미지 18, 19> 등 매우 다양한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들 중 마지막 세 가지 경우는 한자 전각에서는 이용될 수 없는 방법임을 알 수 있다.
 방법들은 한 글자 한 글자 문자 그 자체의 묘(妙)보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며 조형적인 면을 강조하여 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각기 특이한 인면 할애로 작가의 개성을 드러나게 한다.

 또한 획수와의 관계 외에 문자를 배열하는 순서도 여러 가지를 볼 수 있다. 인면구성에 있어서 한자의 문자배열은 회문인의 경우에는 상좌우, 하좌우의 순으로 새겨서 사용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고2), 보통 한자인에서는 우에서 좌로 배열하고 있다.
 그러나 한글인에서는 이러한 방법 외에 문자를 좌에서 우로 나열하듯 배열하고 있는 것도 찾을 수 있다. 그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3)

 


 
2.자체(字體)
 인면에 사용되는 서체에는 제한이 없으나 한글 전각에 있어서 판본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판본체를 기본으로 하되 작가의 개성에 따라 어느 정도 변형된 자체를 쓰는 경우도 있으며, 조형적인 면에 더욱 관심을 두어 작가가 주관적인 방법으로 자체를 구성해나간 경우도 있고, 극히 소수이나 궁체의 흘림자를 사용한 경우도 있다.

ㄱ. 판본체를 사용한 경우 보면, 우선 훈민정음 원본에 쓰인 자체의 전형적인 특징을 지닌 인을 볼 수 있는데, <인장 이미지 20>에서 모음 ㅗ, ㅕ, ㅜ 등의 상, 하, 좌에 붙어있는 획이 둥근 점획으로 된 것 등이다.
 또한 용비어천가나 월인천강지곡에서는 훈민정음에서 보였던 모음의 짧은 원필(圓筆)이 방필(方筆)의 획으로 바뀜을 볼 수 있는데, 그 예로 <인장 이미지 21>을 보면 ‘자’자의 ‘ㅏ’에 있어 모음의 짧은 획이 방필의 획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ㅈ’의 각도가 거의 60°를 이루고 있는 판본체와는 달리, <인장 이미지 22>의 ‘ㄱ’은 모두 직각을 이루고 있으며 받침은 윗글자 너비와 같게 썼고 모음의 짧은 획은 

 (아래 아)를 제외하고는 모두 방필의 형태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ㄴ. 판본체를 기본으로 하되 작가의 개성에 따른 변형된 자체를 쓰고 있는 경우 있다. 이들은 판본체가 지닌 고박(古朴)한 맛과 작가의 개성을 함께 엿보게 한다.
 <인장 이미지 11>의 경우 자체는 거의 판본체의 형을 하고 있으나 모든 획에서 작가의 개성적인 변화를 주고 있어 중후한 맛은 그대로 살리면서 전체적으로 경쾌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또한 <인장 이미지 2>의 모든 세로획의 끝을 보면 판본체의 특징인 직각의 형태를 이루지 않고 사선으로 되어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원각경언해>그림1에 나타난 획의 특징과 유사하다.

 ㄷ. 궁체를 사용한 경우 있다. <인장 이미지 4>는 궁체의 흘림자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판본체가 지닌 고박, 고졸(古拙)한 맛보다는 선의 우아함이 두드러져 보인다고 할 수 있다. 

 ㄹ. 조형적인 인 전체의 분위기에 관심을 두어 작가의 주관적인 방법으로 인면을 구성해나간 경우 있다. 여기서는 자체라든가 공간구성에 있어 조형적이고 조금은 자유로운 느낌을 주는데, <인장 이미지 23, 24>는 완전한 문자의 자체보다는 인위적이지 않은 순수함을 강조해 보고자 다른 맛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방법은 글씨의 묘보다는 인 전체에 나타나는 조형적인 면이라든가 구성미를 다루었다고 볼 수 있고, 중국에서 이렇게 조형적인 면에 치중한 인의 예로는 제백석(齊白石)의 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외에도 붓의 갈필의 맛을 강하게 낸 자체도 볼 수 있는데, <인장 이미지 25>가 그 예다. 또한 그밖에 한글 수결인(手決印)으로 <인장 이미지 26>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자체의 형태는 고전을 근본으로 제작되어진 것에서부터 작가의 개성적인 제작에까지 다양한 면을 보이고 있으며, 자체에 따라 모두 다른 특이한 분위기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3.공지(空地)
 공지란 인면에서 자와 획을 제외한 나머지를 말하며 주문인 경우는 흰 부분, 백문인 경우는 붉은 부분을 말한다. 공지의 조정은 배자 이전에 이미 구상되어 있어야 하는데 매우 어려운 과정이다. 대체로 인면의 상좌우보다 하단부에 많은 공지를 남기고 있는데 이것은 다른 어느 곳보다 안정감과 공간감을 지니게 한다.
 또한 인에서 글자 외에 상하로, 혹은 좌우로, 또는 대각선 방향으로 각각 공간을 두어 서로의 공간이 호응하여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인장 이미지 27>에서는 상좌우 부분의 공간과 하의 좌우의 공간이 서로 호응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고, <인장 이미지 28>에서는 ‘그’자를 좁혀 써서 공간을 생기게 하여 ‘새’자의 우측에 생기는 공간과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 <인장 이미지 29>는 대각선의 방향으로 서로의 상응하는 공간을 만들어 조화시키고 있다. 


 
4.종형(縱衡)
 종형에 있어서 종이란 인면에 사용한 세로의 선을 말하는 것이고, 형이란 가로의 선을 말하는 것으로 그 근원은 십자분계법(十字分界法)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종형은 대부분 문자의 수가 많은 경우에 사용되거나 문자의 획이 매우 적어 인면의 공간이 너무 많이 비어 있게 될 때 많이 사용하게 된다.
 종의 경우는 <인장 이미지 30, 31, 32> 등에서 볼 수 있고, 형의 경우는 <인장 이미지 2>가 있다. 또한 문자의 획이 종이나 형의 역할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인장 이미지 33, 34, 35, 7> 등이 그들이다. 
 
 또한 사자인(四字印)의 경우 중간에 
를 긋거나 삼자인의 경우 중간에 ㅣ,ㅏ, ㅓ, 二의 선을 긋거나, 이자인(二字印)의 경우 중간에 ㅣ또는ㅡ의 선을 긋는 일이 있다. 이러한 예로는 <인장 이미지 36, 37, 38> 등이 있다. 그리고 2개 이상의 종형을 한 인에 사용한 경우도 있는데, 이는 <인장 이미지 39, 40>에서 볼 수 있다

 
5.윤곽(輪廓)
 윤곽은 백문인 경우는 나머지의 공지가 그 구실을 하므로 별로 필요치 않으나 주문인 경우에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인문(印文)을 묶어 작품을 더욱 견고하게 하며 통일감을 불어넣고 안정된 효과를 내는 데 필수적이나 인문을 위한 부수적인 위치로서뿐 아니라 인문과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작 시 극히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윤곽의 두껍고 얇은 정도는 작가의 주관에 의하여 좌우되지만, 주문, 백문 구별 없이 자체가 인면에 가득 찼느냐 아니냐에 따라 대체로 달라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각에 있어서 기본 포자(布子) 형식은 자체를 인면에 가득 채우고 각 획간의 간격은 고르게 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런 형식을 만자법(滿字法)이라 부르는데 인의 형식 대부분이 이에 속한다.4)

 그러나 자체가 인면을 가득 채우지 않는 경우 작은 자체를 보완하고 많은 공지를 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윤곽이 만자법의 인형(印形)보다 두꺼운 경우를 볼 수 있다.5) 그 특징을 보면 대부분 전체적으로 상단부보다 하단부에 많은 공지를 남기고 있으며 장중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인장 이미지 1>의 형식은 윤곽이 넓고 두꺼워 더욱 중후한 맛을 내는데 이러한 형식은 중국의 과거 전각 구첩전(九疊篆) 형식에서 변모되어 수·당대에 사용되었던 관인(官印)이나 이조시대 고관의 관인에서 그 형식을 볼 수 있다. 

 또한 윤곽에 방락(傍落)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윤곽 전체에 방락을 하지 않아 간결한 맛을 살리는 경우가 있고, 윤곽의 적소에 방락을 하여 긴장감을 없애고 여유를 느끼게 하며 방락이 되어 있는 부분은 강하게 떨어져 있어 그 격을 가일층 높이는 경우가 있다.
 방락이란 인의 고박한 멋을 살리기 위해 인면의 적당한 부분을 때리거나(打) 마찰하기(磨), 혹은 깎아(刻) 그 정격(政格)을 깨뜨리는 과정을 말하는데, 크게 세 가지 방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인도(印刀)의 후미 부분이나 다른 도구로 작가의 주관에 의해 인면을 때리는 타법이다. 이때 중요한 필획이 떨어져 나가서는 안 된다.
 둘째는 각법으로 첫 번째의 방법으로 효과를 보기 어려운 나무에 쓰이나 석인재에도 쓰이며 그 특징은 예리한 맛에 있다.
 셋째는 마법(磨法)으로 굵은 모래를 펴놓고 그 위에 인면을 눌러 마찰하는 방법인데 모래와 인면의 접촉 정도를 세심히 고려해 제작하여야 한다.

 치밀한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섬세한 맛은 떨어지나 둔한 듯 중후함이 느껴지는 작품을 제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위의 모든 방법은 처음부터 쉽게 의도되는 대로 이루어 지지는 않고 오랜 경험과 연구로만 좋은 효과를 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백문에도 쓰이기는 한다.
 또한 하나의 인면에 사용된 윤곽은 주문의 경우 좌우상의 윤곽보다는 하단부의 윤곽을 대체로 넓게 하여 제작한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인면의 공지가 하단부를 많이 차지하고 있는 데에 대한 제어의 역할로서 만자인 경우는 얇은 윤곽을 사용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두꺼운 윤곽을 사용하는 형식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단부의 윤곽이 두꺼움으로서 인에 안정감을 주고 있는 사실도 한눈에 알 수 있다.<인장 이미지 27, 41, 16, 42, 43>
 또 윤곽이 본래의 역할과 함께 획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는 형식이 근래 많이 사용되면서 인에 멋스러움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윤곽을 일정한 굵기로 하고 있는 것들은, 조형적인 변화보다는 고졸한 맛을 내기 위한 방법으로 <인장 이미지 31, 44, 45, 46> 등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주문이면서도 윤곽이 전혀 없는 것도 볼 수 있는데 <인장 이미지 47> 등이 그러하다. 또한 봉니의 탁본과 같이 자연스러운 넓은 윤곽을 보여주고 있는 경우도 있고<인장 이미지 22>, 윤곽 밖으로 글씨가 나온 경우도<인장 이미지 48> 있다.
 그리고 4면을 다 두르지 않고 2면<인장 이미지 49, 12>, 3면<인장 이미지 50, 5, 51>, 또는 공지의 적소에만 윤곽을 두른 것<인장 이미지 11, 52, 53> 등 여러 가지를 볼 수 있다. 

 
6.주백문 상간(朱白文 相間)
 이것은 주문(朱文)형식과 백문(白文)형식을 같은 인면에 함께 사용하는 방법으로, 크게 보아 주백 (朱白)의 인면 할애가 같지 않은 경우로 구별지을 수 있다.
 주백문 상간인(朱白文 相間印)의 인면 할애는 용이하지 않으며 효과를 제대로 살려낸 작품은 주백의 양자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변화와 특징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백의 인면 할애가 똑같은 면적인 경우로 <인장 이미지 54>를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백문으로 각되어진 문자의 굵기와 주문으로 각되어진 문자의 굵기가 차이가 나면서도 전체적인 조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주백의 인면할애가 같지 않은 경우로는 <인장 이미지 55>를 볼 수 있는데, 특이한 점은 대부분의 주백문 상간인에서는 주와 백으로 분리할 때 글자 각체로 분리하는데 여기서는 하나의 글자를 주백으로 분리하였다는 점이다.

 
7.인(印)의 형(形)
 인의 모양은 매우 다양하고, 다양한 만큼 각기 그 모양에 따라 문자의 배치라든가 공간의 구성을 잘 고려하여야 하는 것이다. 인의 형은 크게 방형과 원형으로 나눌 수 있다.
 방형인 경우는 대부분 정방형인 경우와 장방형인 경우가 많다. 또한 방형의 인을 마름모꼴의 형으로 만든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배자할 때 문자와 마름모꼴과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도록 세심하게 고려를 해야 한다.
 그 예로는 <인장 이미지 56, 57> 등이 있다.
 원형의 경우는 정원과 타원으로 구별지을 수 있는데 정원의 형으로는 <인장 이미지 58, 59, 60, 61> 등이 있고 타원으로는 <인장 이미지 62>가 있다. 그리고 최근에 이르러 재료에 가공을 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상태 위에 제작하여 조야(粗野)한 맛을 그대로 살린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한 예로는 <인장 이미지 63, 3, 64, 65> 등이 있으며 육면체의 형태도 있는데 그 예는 <인장 이미지 66>에서 볼 수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의 인에 나타난 배자방법은 모두 각각의 형에 잘 조화되도록 구성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각각의 형이 지닌 분위기가 다양하게 보인다.


8.변화
 인을 만들 경우에는 변화가 있는 것이 좋으나 그 변화라는 것을 말로 표현하기가 매우 어렵다. 한 문자에는 한 문자로서의 변화가 있고 한 인에는 한 인으로서의 변화가 있으므로 반드시 먼저 문자의 연결상태와 인 전체가 지닌 분위기의 흐름을 충분히 생각하여서 字나 劃을 가볍게 하느냐, 무겁게 하느냐, 공간을 크게 만드느냐, 작게 만드느냐 하는 것을 세밀히 검토하여 문자형의 조화와 전체의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의 인에 두 자 혹은 그 이상의 동일 문자가 있을 경우에는 변화를 주어 같은 형이 나란히 있지 않도록 해야 하고 이때 전체 분위기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잘 조화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본 글은 한글 전각의 조형적 가능성의 폭과 깊이에 관한 관심이자 탐색이었다.
 민족문화의 새로운 창달과 주체성 회복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도 한글 전각에 대한 연구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양회화 특히 남종 문인화가 화가의 직접 체험 못지 않게 간접 체험으로서의 인식가치를 중히 하는 데 그 특징이 있다면, 그리고 그러한 조형적 가치관 속에서 발생된 것이 ‘文字香 書卷氣’의 일환으로서의 전각예술이라면 그 전통을 시대적 미의식과 주체적 미감에 맞게 오늘에 접목해 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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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주영비각자 : 이 비는 현재 경기공업전문대학(공릉동 구 서울공대) 뒷산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중종 31년(1536년) 이문건(李文楗)이 그이 부모 묘비에 잡인이 접근하는 것을 우려하여 언문으로 비신 측면에 따로 각한 것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2) 김영기, <동양미술론>,(서울, 우일출판사,1980),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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