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BLOG main image

온한글 전체보기 (655)
한글, 새로운 시선 (164)
온한글이 만난 사람 (52)
한글 행사와 모임 (54)
한글이 있는 작품 (64)
폰트 (41)
캘리그래피와 손글씨 (13)
트렌드와 마케팅 (46)
역사 속 한글 (19)
세계 속 한글 (40)
온한글 책꽂이 (44)
한글 관련 자료실 (27)
무료다운로드 (15)
단신 (74)
douglas pitassi
douglas pitassi
Clash of Clans Hack
Clash of Clans Hack
Related Web Page
Related Web Page
kitchen table
kitchen table
http://healthdrugpdf.com
http://healthdrugpdf.com
http://www.161997up.com
http://www.161997up.com
CT
CT
http://pharmacyreviewer2014.com
http://pharmacyreviewer2014.com
UT
UT
Laura Glading APFA
Laura Glading APFA
1,373,294 Visitors up to today!
Today 20 hit, Yesterday 163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한글날'에 해당되는 글 36건
2009. 5. 13. 10:10

사용자 삽입 이미지


광목으로 조여 묶은 멍든 가슴 멍든 마음
누가 알아보고 품어 줄까 안아 줄까
어매야 아배야 어쩌자고 날 낳았오
어쩌자고 날 만들었오

<딸년을 땅에 묻고 돌아오다>
                                                    정유년(丁酉年, 1537년) 시월 보름, ‘해문이슬’



한글 창제 600주년 2044년의 한글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학원을 초등학교 때부터 다녀야 하나요?”
“당연하죠!”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한 어학원의 광고 문구입니다.

영어 공교육 강화, 영어 공용화…… 뜨거운 논란 속에 결론 없이 영어 교육 열풍만 거세지고 있습니다.

 

 “국어 못해도 좋으니 영어만 좀 어떻게……”라며 왕왕거리는 사회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날까요? 태어날 때부터 쓰던 영어가 모국어인 한국어보다 편하고, 한글은 국어 시간에나 배우는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기는 『뚜깐뎐』의 제니가 혹시 미래의 우리 아이들은 아닐까요?

 

 한글 창제 600주년이 되는 2044년, 한글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그 시간속으로 고고!!  


 

 때는 한국에서는 영어 공용화 법안이 통과된 뒤, 영어가 일상어로 자리를 잡게 된 한글   창제 600주년 2044년. 

 한글은 학교 국어 시간에나 접할 수 있고, 한글 논술 시험을 보는 한국 대학들의 인기는 점점 떨어지는 등 한글이 사라질 위기에 처합니다. 

 여느 아이들처럼 한글에 대해 관심 없고 영어가 익숙한 열여섯 살 소녀 제니는 ‘한글 창제 600주년’을 기념하는 바이러스를 접한 날, 엄마의 유품으로 한글 시가 적힌 비단과 ‘뚜깐뎐’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받게 됩니다. 

 ‘뚜깐뎐’은 제니가 살던 시대로부터 540년 전, 주막집 딸로 태어났으나 양반을 무서워 않고, 계집으로 태어났으나 사내를 어려워 않고, 시집갈 생각은 않고 세상 구경할 생각만 하는 열여섯 살 소녀 뚜깐의 이야기였습니다. 

 뚜깐은 주막 일을 혼자 돌보느라 매일 고생만 하는 어머니와 노름꾼 아버지 밑에서 사내아이처럼 천방지축으로 자랐지만, 최 역관 댁 서진 도령을 사모하게 되고, 뚜깐을 탐하는 양반집 도령들에게 호된 모욕을 당하며, 여인으로 성숙해 갑니다. 

 그 즈음, 임금을 깨우치려 한글 괘서를 돌리며 한글을 유포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뜰에봄 일당을 만나 한글을 배운 뒤 양반집 도령들의 횡포로 풍비박산이 난 집을 떠나게 됩니다. 

 뚜깐은 ‘똥뚜깐’에서 태어났다는 뜻의 ‘뚜깐’ 대신 ‘해를 물고 있는 이슬’이라는 뜻의 한글 이름 ‘해문이슬’을 사부에게서 새롭게 받고, 그의 가르침대로 학문에 정진하여 한글로 된 시를 남깁니다.


"해를 물고 있는 이슬이라는 뜻이니라.”
잠든 줄 알았던 사부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벽에 쓴 ‘해믄이슬’을 두고 하는 말인 듯했다. 

 ‘해를 물고 있는 이슬?’

“동틀 녘 들판에 나가 보면, 들풀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지. 그 들풀 잎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느냐? 이슬이 맺혀 있었을 게야. 그 이슬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해가 들어 있느니!”
사부는 여전히 눈을 감을 채 천천히 말을 이었다.

 뚜깐은 사부가 쓴 숯 글씨를 응시했다.
‘해믄이슬.’
뚜깐은 입 속으로 중얼거려 보았다.

 “네 이름이니라!”
내 이름……. 뚜깐은 숨이 탁 막혀 왔다.
“부디 나라말 공부 팽개치지 말고 열심히 해서, 나라말로 고운 시(詩)를 쓰는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하려므나!”

 사부는 낮은 목소리로 뚜깐에게 당부한 뒤,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 본문 중에서-

 ‘뚜깐뎐’을 다 읽은 제니는 비단에 수놓인 시를 해독하며, 이를 물려주려 한 엄마의 마음과 한글을 지키려 했던 수많은 이들의 애환을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한글은 창제된 후 수백 년 동안 언문 취급을 받으며 수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은 그 명맥을 유지해 현대에 이르러 세계 최고의 문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한글 창제 이후 한문을 한글로 풀어 쓴 책이 수백 권에 이르렀고, 연산군 시절에는 한글 괘서 사건으로 한글이 불온문자로 낙인찍혀 사용이 금지되기도 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상상력으로 얽어, 민초들과 그들을 닮은 한글 이야기를『뚜깐뎐』통해 풀어 놓고 있습니다. ‘해문이슬’ 뚜깐이 한글로 된 최초의 시를 남겼다는 허구의 설정 위에 쓰여진 이 소설은, ‘한글’ 창제의 실제적인 의미, 고유의 말과 글을 지닌 우리 자신의 실존에 대한 성찰을 하게 만듭니다.

 국제화, 글로벌시대에 초점을 맞춰 정작 소중히 여겨야할 우리의 한글이 천대받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아이들에게 외국의 문자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곰곰히 생각해보게 됩니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9. 5. 7. 09:22


  노영선
  조선대 서양화과, 홍익대 미술대학원(회화 전공) 
  10여 회 개인전과 군집 개인전 개최, 100여 차례 단체전 및 교류전 참가 
  서울여성미술대전 특선, 광주광역시 시장상, 녹색미술 회화상, 
  대한민국 미술작품 기증 소장전 우수상, 신전미술가협회전 미술평론가상,
  환경미술대전 협회장상 등 수상 
 



 노영선 작가는 한글을 통해 행복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마음으로 닿아, 말 한 마디에도, 작품 하나 하나에도 담겨 있었습니다. 
 한글을 모티브로 한 다양한 작품 속에서 노영선 작가의 작품이 눈에 띄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인 듯합니다. 
 한글날에 준비하는 또다른 ‘노영선의 한글 이야기’를 성심껏 준비하고 있는 그를 만나보았습니다.


 기억 : 작업 중 항상 생각나는 단어인데, 작업은 어떠한 기억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비 : 때때로 나비의 아름다움 보다 연약함이 대견해 보인다.
 다리 : 언젠가 인대를 다쳐 목발을 사용하였는데 목발이 많이 힘들었다. 그런 뒤 온몸을 지탱하는
              다리가 새삼 기특하단 생각을 했다.
랄~라라 : 작업할 땐 대부분 이런 콧노래가 나온다.




 마음 : 머리와 가슴속 마음은 다른 것 같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은 따로일 때가 있으니까..
바람 : 싱그러운 솔잎 냄새 풍기는 그런 바람이 코끝에 닿는 것 같다.
사라지다 :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체들이 어느 순간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음악 : 인간이 만든 것 중 정말 대단한 것 중 하나다. 이성과 감성을 모두 움직이는 것 같아서… 

 


잠 : 작업을 하면 항상 수면부족이다. 그래서 머리 속에 ‘아~ 잠자고 싶다’란 생각이 자주 든다.
차 : 작업하면 항상 옆에서 떠나지 않는 찻잔… 한 잔의 차는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커피 : 특히 차 종류 중에 커피를 가장 즐겨 마신다. 구수한 냄새가 참 향기롭다.
터미널 : 버스를 자주 이용하므로 터미널은 옆집보다 자주 가는 것 같다. 또, 기차보다 마음에 
                 든다. 속도감도 있고, 종점에 내리니까. 기차는 종종 정차역을 지날 때가 있다.
 푸~ : 정말 김빠진다. 생각 했던 일이 흐트러지면…
하하하 : 그래도 난 자주 웃는다 크게 하하하 웃으며 그럼 절로 신이 나고 작업도 잘 되고 또 행복
                 해진다.





온한글
   ‘노영선의 한글 이야기’전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글 이야기전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노영선
  몇 년 전 스리랑카를 보름 동안 여행하며, 너무나 아름답고 고귀한 많은 유산들이 방치되고
있는 것을 보고 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아름다운 유산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사람들은 잘 모르면서 서양이나 외래문명을 모방하고 선호하고 따라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들의 또다른 모습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 작품과 가장 잘 어울리는 모티브로 한글을 찾게 되었고, 한글이야말로 노영선이라는 한 사람을 가장 잘 대표해서 표현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온한글
  한글을 모티브로 표현한 다양한 작품들이 선보이고 있습니다. 노영선 작가의 작품 특징을 대표적인 작품 사례와 함께 설명해주세요.

노영선
  어느덧 마흔이라는 나이를 바라보고 그동안 삶을 되돌아보며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윤동주의 서시를 생각하게 되어 다시 한번 초심으로 돌아가 경건한 마음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뜻에서 서시의 자모음을 변형하고 오방색을 사용하였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아이가 돌이 되면 색동옷을 입히고 잔치를 하였는데 그것은 색동이 의미하는 무병장수를 아이에게 기원하는 것으로, 부모의 간절한 사랑과 마음을 담은 것입니다.
작품에서의 오방색 또한 아이의 무병장수를 비는 부모의 마음을 작품에 옮겨 담은 것으로, 작품을 본 사람들에게 행복이 전해지길 바라는 뜻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온한글
  자신의 작품에 담고 싶은 것은 있다면?

노영선
  혼이, 정신이 담긴 그런 작품을 그리고 싶습니다. 누구에게나 감동이 전해지는... 작품 한 점으로 사람들의 가슴에 사랑과 행복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온한글
  지금까지 참 많은 전시를 진행하셨는데요. 그동안 참여한 전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다면?

노영선
  전시는 어떤 전시든 크고 작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난 전시에 미련이나 감동을 크게 생각하지 않고, 지금 전시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물론 지난 전시들에서 얻은 교훈들을 바탕으로... 





온한글  앞으로 어떤 작품을 계속 하고 싶으세요?

노영선
  작가에게 가장 큰 소망은, 좋은 작업을 남기는 일입니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9. 3. 20. 10:41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8년 한글날에 진행되었던 <한글상상 2008 : 한글 손글씨, 거리를 물들이다> 행사.
아름다운 한글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된 축제였는데요.

홍대 상상마당 주차장에 자신의 소원을 페인팅 하는 행사도 있었고, 손글씨로 엽서 보내기,
손글씨로 꾸민 '아트 윌', 한글 캘린더 전시 등 많은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행사는 (주)윤디자인연구소와 KT&G 상상마당의 공동 프로젝트였던,
온라인 및 오프라인에서 2350명의 손글씨를 한 자획씩 직접 받아 하나의 폰트
완성한 한글상상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그 감동을 다시한번 느끼고자
이번 무료다운로드의 주인공은 바로 '한글상상체' 올립니다. 호호~

한글상상체는 각기 다른 자필로 만들어진 정말 재미있고 매력이 넘치는 서체입니다.
마음껏 다운 받아 가시고, 그때의 그 감동을 다시한번 느껴보세요

 

· 서체명 : 한글상상체
· Design : (주)윤디자인연구소
· 다운로드 : 클릭 

**한글상상체의 무료 다운로드 서비스는 KT&G 상상마당의 재가를 받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9. 2. 23. 09:45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글날이란?
한글날은 세종대왕께서 우리 글자인 한글(훈민정음)을 만들어 반포한 날을 일제시대인 1926년에
기념일로 정해 기리다가 지난해부터 국경일로 정해 경축하는 날이다.




 한글날의 시작은 일제 식민지 시대인 1926년 11월 4일, 훈민정음 반포 480돌인 날에 조선어연구회와 신민회의 공동주최로 한글학자와 민족지도자 400여 명이 모여 ‘ 가갸날 ’ 을 선포하고 처음 기념식을 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로부터 두 해 뒤인 1928년에 기념일 이름을 ‘ 한글날 ’ 로 바꾸기로 한다.  날짜도 훈민정음 반포일이 조선왕조실록에 음력 9월로 기록되어 있다 하여 음력 9월 마지막 날인 29일로 옮겼다가 1934부터는 이를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한 날인 양력 10월 28일로 바꾸어 1937년까지 기념식을 착실하게 시행했다.

 그런데 일제가 일본말만 쓰라며 우리말은 못쓰게 탄압해 한글날 기념식을 못하다가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날짜를 10월 9일로 바꾸어 다시 시행한다. 1940년에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에 보면 반포일이 음력 9월 상한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를 양력으로 환산한 날짜인 10월 9일로 바꾼 것이다. 다음 해인 1946년 미군정은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는데 마침 한글 반포 500주년이 되던 해여서 덕수궁에서 대대적인 기념식을 거행하고 거리행진을 하기도 했다.

 1948년 대한민국이 제대로 세워진 후에도 한글날은 계속 공휴일로 이어졌으며 한글학회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의 한글 단체들이 주관하는 한글날 행사가 매년 있어왔다.


왜 한글날을 만들었나?

 1446년 세종대왕이 우리 글자인 훈민정음을 만들었지만 그 뒤 500여 년 동안은 널리 쓰이지 못한다. 한문에 길든 학자와 관리들이 큰 나라인 중국 눈치를 보면서 우리 글자를 우습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조선 말기부터 한글을 많이 쓰게 되는데, 대한제국 때 고종이 공문서에도 국문을 쓴다는 칙령을 내리면서 비로소 나라 글자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때 주시경과 여러 선각자가 한글을 살려 써서 강대국의 침략에 맞서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10년에 일제 식민지시대를 맞게 된다.

 식민지 시대에도 한글이 훌륭하고 중요함을 깨달은 주시경의 제자들은 ‘조선어학회’를 세워 겨레말을 지키려고 애쓴다. 그러던 중 1926년에 이르러 한글학자와 민족지도자들이 '겨레의 보물인 한글을 갈고 닦아 우리말을 살리고 겨레의 얼을 지키는 일을 더욱 잘 하자'는 취지로 훈민정음 반포일을 기념일로 정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해마다 한글날 그 다짐과 정신을 되새겨 오다가 1933년엔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만들기도 한다. 또한 우리말 사전을 만드는 작업을 하다가 그 때문에 1942에는 한글학자와 민족지도자들이 함흥 경찰서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목숨까지 잃기도 한다.

 한글날은 이렇게 일제에 나라를 빼앗겨 겨레가 사라질 위기에 있을 때 세계 으뜸가는 글자인 우리 한글로 우리말을 지키고 빛내어 겨레를 지키고 나라를 되찾겠다는 꿈으로 만든 날이다.   


한글날이 겨레와 나라에 이바지한 공로

 어두웠던 일제 식민지 시대에 한글은 우리 겨레의 희망이었고 한글날은 독립을 준비하는 기념일이었다. 한글날이 있었기에 한글이 더욱 빛날 수 있었고 겨레의 말과 얼을 지키며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선각자들이 한글날을 만들고 목숨까지 바치며 한글을 지켜 나갔기에 일제가 물러간 뒤 우리 말글로 된 교과서도 만들고 공문서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한글날은 나라를 잃은 시기엔 독립을 다짐하고 준비하게 한 '건국 공로일'이며, 광복 후엔 국민을 자주민주시민으로 키워내고 나라를 더욱 굳건히 하는 데 이바지 한 민족 최대의 기념일이다. 대한민국 시대의 한글날은 ‘나라 사랑, 한글 사랑’을 생각하고 그 바탕에서 튼튼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한 날이다.
 한글이 우리나라를 문맹 없는 나라로 만들어 주었다면 한글날은 한글을 지킬 뿐만 아니라 빛내 주었으며 나아가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빠지게 된 이야기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글날은 광복 후부터 공휴일로 지정되어 매년 한글 단체들이 공식적으로 행사를 주관해 왔었다. 그러던 것이 전두환 정권 때인 1981년엔 서울시가, 그 다음 해엔 문화공보부(지금의 문화관광부)가 주관하기 시작하면서 마지못해 하는 행사처럼 치러진다. 그리고 1990년대 초 노태우 정부가 마침내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버리면서 3등 기념일로 전락하게 된다.

 경제단체들이 연합해 ‘공휴일이 많아서 나라 경제가 어렵다’며 투덜대자 정부가 이를 위해 세운 대책이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시키는 것이었다. 그 결과 한글 사랑 정신이 식고 겨레의 말과 얼이 흔들리니 나라까지 흔들리고 기울게 되어 국제 투기 자본의 먹이가 되는 경제 식민지 시대를 맞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은 군사 독재 정치에 대한 국민과 노동자의 저항을 줄이고 환심을 사려고 공휴일을 많이 늘렸었다는 사실이다. 양력 1월 1일 새해 첫날만 쉬던 것을 음력 설까지 쉬게 하더니 이를 3일로 늘리고, 한가위도 이틀만 쉬던 것을 3일로 늘려 놓았다. 게다가 성탄절만 쉰다고 불교인들이 불만을 표하니 석가탄신일도 공휴일로 지정한다. 그러니 전경련, 무역협회 등 경제단체들로서는 휴일이 너무 많아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불만스러워할만도 했을 것이지만, 그 폐해를 완화시키기 위해 한글날을 희생시킨 것은 한글단체와 민족지도자들을 봉기시키는 발단이 되었다. 

 이로부터 한글단체는 15년에 걸쳐 국경일 제정운동을 하게 되었고 2005년 마침내 국회에서 국경일 지정 법안이 통과되어 국경일이라는 위치를 되찾게 된다. (그러나 공휴일이 아닌 국경일이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 운동

 한 나라의 말은 그 나라의 얼과 정신이 담겨 있는 그릇이다. 말이 흔들리고 지저분해지면 그 나라까지 흔들리고 지저분해진다. 한글날을 짓밟으니 우리 말글살이가 혼란스럽게 되고 민족자주정신이 흔들리면서 국운도 시들었던 것이다. 한글단체들의 ‘한글날 국경일 승격 운동’은 이러한 전제와 대의에서 시작되었다.

 정부가 끝내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시키자 1991년 2월 전국국어운동대학생연합회 학생들이 탑골공원에 모여 정부를 규탄하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시키라고 외치며 서울 명동까지 거리행진을 한다. 그리고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회장 안호상)이 1991년 10월 1일에 국회의장에게 ‘한글날 국경일 제정 청원서’를 내는 것을 필두로 한글단체들은 정부와 국회에 건의와 청원을 쉬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의 애타는 호소도 못 들은 듯 오히려 한글날 기념식도 무성의하게 해치우곤 한다. 또한 김대중 정부에 와서는 그때까지 기본적으로 한글 전용 정책이던 것을 일본처럼 한자를 혼용하는 정책으로 바꾸려 하더니 결국 한자 병용 정책을 강행한다. 이에 한글단체가 분노해 거세게 반대 시위를 하고 나오니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겠노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이를 계기로 한글 단체들이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 공청회’를 여는 등(1999년 7월 9일) 대정부 촉구를 보다 본격적으로 하니, 마침내 신기남 의원 외 34명이 ‘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한 법률안 ’ 을 입법안으로 발의한다 (2000년 10월 2일). 그리고 그 해 11월 15일자로 여야 의원들이 ‘한글날 국경일 추진을 위한 의원모임’을 발족하고 30일에 국회에서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한 공청회’를 연다.

    그러나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게 한 경제단체가 또 반대하니 행정자치
   부가 그들 편을 들어 법안을 제대로 심의조차 하지 않는다. 이에 한글
   단체와 시민들이 하나가 되어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위원회'
   (위원장 전택부)를 만들어 국회와 정부를 찾아가기도 하고, 촉구 결의
   대회나 1인 시위를 하는 등 더욱 활발한 운동을 펼쳐 나간다.
    그러한 투쟁의 결과로 2005년 12월 5일 국경일 지정 법안이 국회를 통과
   하게 된 것이다.
 







국경일 제정의 의의

   한글학회와 외솔회,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등 한글단체뿐 아니라
  전교조, 국어교사모임, 참교육학부모회 등의 교육단체와 국회의원,
  시민단체까지 힘을 모아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지난
  15년에 걸친 세월 동안 이 많은 단체들이 하나가 되어 한글날을 국경
  일로 만들고자 했었던 참뜻은 무엇이었는가?

   첫째, 정부와 정치인, 경제단체와 일부 학자들까지 한글과 한글날을
  우습게 여기는 잘못을 바로 잡으려고 했던 것이다.

   한글날을 온 국민과 함께 뜻깊게 보내는 데 앞장서야 할 지배층들이
  한글날을 3등 기념일로 내리면서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등의 주장을
  하는 얼빠진 정신과 풍조를 바로 잡자는 것이었다.

   둘째, 우리 한글 문화, 자주 문화를 꽃피우자는 것이었다. 한글은 세계
  언어학자가 인정하는 세계 으뜸 글자다. 그럼에도 헌신짝 보듯 해온
  역사를 반성하고 한글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자 하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사실,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고는 하나 내놓을만한 우리 문학작품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문으로 씌여졌던 고전들은 중국 문학과 문화의 곁가지에 지나지 않았고, 일제시대 때 길든 일본식 한자 혼용이 우리 말글살이인 줄 알고 한글을 살려 쓰는 것을 가로막는 한국인도 많았었다. 그러나 이제라도 우리말과 우리 글자인 한글로서 우리 문화를 부흥시키는 계기를 삼고자 했다.

 셋째, 과학과 철학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한글을 더욱 갈고 닦아서 과학 강국, 철학 강국이 되자는 것이었다. 정보통신 학자들이 ‘세종대왕은 셈틀(컴퓨터)을 이용한 정보통신시대를 내다보고 600년 전에 한글을 만든 것 같다’고 할 정도로 한글과 셈틀은 찰떡궁합이다.
 그리고 실제로 한글은 우리 나라가 정보통신 강국이 되는 데 크게 이바지해왔다. 그 공을 살려 문화 경쟁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라도 한글날은 국경일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한글날을 마음껏 즐기고 기리자

 우리에겐 삼일절, 개천절, 제헌절, 광복절 등의 4개 국경일이 있지만, 지금까지 중앙 정부 차원에서 매년 기념식이나 치르는 것 외에 국경일의 참뜻을 살리는 국민 참여행사를 마련하지는 못했었다. 그러다 보니 국경일이란 그저 등산이나 가고 집에서 노는 날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것 같다. 국경일은 경사스러웠던 날을 온 국민이 함께 기념하며 경축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한글날이 정부와 국민이 모두 함께 참여하고 즐기는 국경일이 되고 세계인이 주목하는 문화의 잔칫날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스스로 500여 년동안 천대했던 것을 반성하고 한글이 제 빛을 발하고 제대로 된 대접을 받기를 바란다.

 한글 창제 정신과 만든 원리는 민주정치와 과학시대에 딱 어울린다. 한글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신 있게 자랑할 수 있는 우리 보물이고 긍지다. 세계에서 으뜸가는 글자를 만든 세종대왕의 위대한 정신을 잘 계승하고 그 글자를 가진 겨레라는 긍지와 자신감으로 학문, 예술, 정치, 문화의 선진국을 만들자.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라도 한글날은 우리 국민 스스로가 먼저 마음껏 자랑하고 즐겁게 기리는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한주헌 | 2010.09.30 22:1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요.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 그런데 본문 처음부분에 조선어 학회라고 쓰셨는데요. 제가 알기론 조선어 학회는 1932년도에 창립한것으로 알고있습니다. 1926년도에는 조선어 연구회가 아닌가하는 생각이드네요. 사실확인 부탁드립니다.
BlogIcon 온한글 | 2010.10.05 09:11 신고 | PERMALINK | EDIT/DEL
한주헌님 안녕하세요.
지적 감사합니다. 님이 말씀하신 대로,
1926년도에는 조선어연구회가 맞네요.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9. 1. 29. 10:42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국립국어원,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외솔회, 한글학회 등 우리말글살이 일선의 4개 단체들로 구성된 '562돌 한글날 큰잔치 조직위원회'는 2008년 10월 4일 경복궁 수정전 앞뜰에서 한글주간 선포식을 거행했다.
 ‘한글, 피어나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선포식은 그동안 각 기관이나 단체들이 개별적․산발적으로 행해 온 한글날 관련 행사들이 앞으로 한글주간이라는 이름 아래 집결될 것임을 알리는 행사이기도 했다. 그 어울림에 구심점 역할을 했던 국립국어원의 이상규 원장을 만나보았다
.




‘한글, 피어나다’라는 주제로 한글단체들의 힘 결집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선, 한글날 큰잔치 조직위원회라면 몇 년 전부터 그 해의 한글날 행사를 위해 결성되곤 했던 조직인데, 특별히 올해 한글날에 즈음해 처음으로 한글주간 선포식을 갖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2006년 한글날이 국경일로 승격된 뒤 한글 관련 단체들 사이에서 한글주간 선포식을 갖자는 움직임이 있어 온 터였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추진되지 못하다가 새로 취임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한글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보여주셔서 이번 562돌 한글날을 맞아 마침내 한글주간 선포식을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다면 한글주간 선포식이 갖는 의의와 목적은 무엇이며, ‘한글, 피어나다’라는 주제는 어떤 의미인지요?

그동안의 한글날 행사들은 각 단체들이 산발적으로 진행해 규모도 미미했지만 힘이 분산되는 아쉬움이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 만큼 좀 더 조직적으로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한글주간 선포식은 그 바람이 모인 결과라는 점만으로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목적은 한글 반포 562돌을 맞아 ‘위대한 문화유산인 한글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전 국민이 함께 하는 공감의 자리를 마련한다’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를 통해 국민과 함께 하는 문화대축제로 승화시킨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한글, 피어나다’라는 대주제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꿈이 한글로 피어나고, 그 한글의 위상이 아시아와 세계로 피어나간다는 뜻을 함축한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8월의 ‘국어사랑 큰잔치’를 비롯해 ‘한글문화관 건립을 위한 토론회’, 이번에 대대적으로 준비한 562돌 한글날 큰잔치 등으로 한글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과 관심이 높아지는 것과 관련해 ‘한글날의 공휴일 재지정’에 대한 기대도 없지 않은데요….

한글날의 공휴일 재지정을 위해 많은 한글단체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입법부에서 통과되어야 할 사안인 만큼 단시일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우리말과 글을 너무 함부로 다루고 있음을 자성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봅니다. 우리의 언어생활이 갈수록 파괴적 폭력적으로 치닫고 있음을 돌아보고 아름다운 말씨로 소통의 품격을 되찾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펼친다한들 주인이 주인행세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겠습니까? 국립국어원의 역할도 그런 환경을 지속적으로 마련하고 지원하는 일일 것입니다.

 

 
 

아름다운 우리말과 글로 소통의 품격 되찾아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마 전 있었던 한글문화관 건립을 위한 토론회에서 그동안의 한글문화정책이 국어교육 중심의 정책에 치우쳐 정작 한글의 정신이나 창제원리 등에 대한 한글문화에 대한 정책은 미비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어문정책의 행정부라고 할 수 있는 국립국어원의 수장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한글이 어문정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립국어원에 한글 자체에 대한 연구부서를 별도로 가지고 있지는 않고, 웹상에서 운영하는 ‘디지털한글박물관’에 한글에 관한 방대한 자료들을 싣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립국어원의 최우선적인 역할은 우리 국어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사회교육 강화 차원에서 최근 실시한 군인들의 국어능력향상 프로그램 등이 그런 예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글문화관 건립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입니까?

한 마디로 환영합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사 속에서 빛나는 한글임을 알릴 수 있는 거점을 마련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세계 문자들과 함께 비교분석하는 전시를 한다면 우리 한글이 얼마나 우수하고 자랑할만한 것인지 한 눈에 알게 될 겁니다. 우리도 우리지만 외국인들에게 우리 한글에 대해 좀 더 체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또한 한글을 국가적인 브랜드로 키우는 구체적인 계기가 되어 한글의 상품성이 우리에겐 큰 밑천임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글의 상품화라면, 이미 곳곳에서 시도해 왔지만 아직 큰 성과는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글의 아름다움을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을 만한 상품을 만들려면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한글’로 다시 태어나려면, 과학성이나 예술성에 대한 학술적 연구도 중요하지만 이 시대를 담아내기 위한 고뇌가 필요합니다. 훈민정음의 위대함을 단순히 기술하는 것만으로 한글의 우수성을 전달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비주얼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문자는 더 이상 단순소통을 위한 기호가 아니고 한 시대의 문화와 예술, 인간의 심성과 사유방식 등을 담아내는 비주얼 요소임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로마자만 보더라도 로마시대의 글꼴과 영국에서의 글꼴이 다르지 않습니까? 시대의 문화적 품격이나 예술성의 느낌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한글이 과학적인 문자라고는 하지만, 한글의 자음과 모음 낱글자들에 대해서는 소중히 다루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알파벳>이라는 책에서 알파벳 하나하나에 신화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 한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4개의 우리 자모에도 스토리텔링을 담아 생명력과 예술성을 불어넣어볼만 하지 않을까요? 기호 속에 신화를 담는 작업이야말로 울림을 잃어버린 우리 문자를 되살려내고 문화컨텐츠의 원형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멸 위기에 놓인 우리 토속어와 방언에 대한 연구도 한층 북돋워야 할 것입니다.


한글 자모 24자에 창조적인 스토리텔링 담아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직접 펴내신 <방언의 미학>을 통해서도 같은 맥락의 메시지를 전하셨던 것 같습니다만, 결국 방언 속에서 우리 문자에 담을 신화를 발견할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사투리를 몰아내려는 한 시대의 잘못된 국어정책으로 우리는 방언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우리 토속어를 도외시하는 것은 우리만의 기호를 포기하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우리의 지식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자가 생기기 전 언어는 본래 주술성을 가지고 구전으로 문화를 축적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문자가 생겨나면서 삶의 방식의 틀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방언은 그러한 언어와 문자의 역사를 좀 더 본래의 모습에 가깝게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민족의 ‘고유한 모습’을 비추어주는 기호이자 신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다면 최근 우리 언어생활 속에 신조어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 반감이 크실 것 같습니다. 일각에서는 신조어의 흐름도 결국 우리말의 현재적인 모습이므로 아우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신조어의 심각성은 외국어의 혼태라는 점에 있습니다. 외국어가 남용되면서 우리말과의 혼태로 생겨나는 신조어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시대가 시대니만큼 외국어라고 무조건 배척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말을 생산해내는 사람들이 우리말을 순화시키는 데 앞장서주길 부탁하고 싶습니다.
물론 신조어나 외국어에 대해 탄력적인 정책이 불가피한 것도 사실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우리말의 현재적인 모습으로 인정한다는 차원에서 언어정보처리 작업에 있어 모르는 척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권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늘날 아우름이란, 분야를 막론하고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글에 있어 아우름이란 과제는 어떤 방향의 모색이어야 할까요?
 

앞서 비주얼 시대의 한글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만, 문자는 이제 단순히 의사소통의 기호가 아닙니다. 그 나라와 시대의 문화와 정서가 총체적으로 담긴 얼굴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국어학자들뿐 아니라 과학, 디자인, 음악 등 모든 문화예술로 옷을 입히는 한글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지식경쟁력이 세계 40위밖에 안 되는 이유는 학문 간의 협업과 공유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서로 문을 열고 상생하기 위한 방향을 모색한다면 지식기반을 훨씬 높일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자모의 음양이론과 이원론적인 특성이 디지털 세계에서 더 없이 적합한 이론이라는 사실이 우리 IT산업에 중요한 자원이 되었듯이, 훈민정음의 신비한 원리와 이야기들이 모든 분야를 넘나들며 다양한 결과물을 낳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9. 1. 15. 13:35


2008년 10월 9일 한글날을 기념했던 다양한 행사들 가운데 ‘한글 손글씨, 거리를 물들이다’는 KT&G 같은 대기업과 전시그룹 글+책+말, 윤디자인연구소 등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에서 디자인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2350명이나 되는 일반인의 손글씨를 한 자리에 모았다는 점에서도 단연 화제였다. 한글문화단체가 아니라 기업과 디자이너와 일반인들이 함께 이뤄낸 ‘새로운 한글날’로 기록될만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바로 캘리그래퍼 강병인이다. 우리 디자인계에서 한글 캘리그래피로 새바람을 일으켜 온 그의 경험과 디자인 철학을 들어보았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562돌 한글날에 마련된 ‘한글 손글씨, 거리를 물들이다’는 한글과 캘리그래피에 대해 일반인들의 관심을 환기하는 계기였다.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온 주역으로서 그 성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전시그룹 ‘글+책+말’ 멤버들과 상상마당, 윤디자인연구소 등 정말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이뤄낸 행사였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마포구청 등의 후원도 힘이 됐다. 그러나 2350자의 주인공들을 행사장까지 초대하고, 주차장 바닥에 페인트로 캘리그래피 퍼포먼스를 하려 했던 것 등이 진행여건 상의 한계로 좌절돼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또 홍대 앞이라는 장소적인 특성을 좀 더 살리지 못한 점이나 홍보의 부족 등을 반면교사로 삼아 더욱 발전된 행사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던 일을 벌였다는 측면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전시그룹 ‘글+책+말’의 전시회도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 개인 작업도 쉬지 않으면서 틈틈이 이런 큰일을 계획하고 치러낼 수 있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나?

‘글+책+말’ 그룹은, 늘 디자인 현장에서 ‘작가 마인드로 하지 말고 마케팅 마인드로 하라’는 소리와 싸워야 하는 북 디자이너들과 함께 90년대 이전의 책들을 마음껏 재해석하는 전시를 해보자는 취지로 작년에 결성한 그룹이다. 올해엔 캘린더를 매체로 ‘한글, 시간에 말을 걸다’라는 주제의 전시를 선보였다. 문인들로부터 받은 좋은 글귀들을 캘리그래피로 쓰고 이를 디자이너들이 타이포그래피 작업한 장식적인 캘린더와, 유시화 선생의 인디언 달력을 캘리그래피로 앉힌 가방, ‘기억의 채집’이라는 제목으로 그날그날의 기억할만한 오브제들을 미니어처 작업으로 만든 입체 캘린더, 일문자 작품 등으로 그야말로 ‘시간에 말을 거느라’ 지난 여름을 잃어버렸다. 이렇게 자꾸만 무언가 시도하는 것은 한글의 아름다움에 대한 믿음과 그것을 알리고 싶은 욕심, 그리고 ‘디자인+서예’의 가능성을 실험해보고 싶은 마음을 멈추지 못해서일 것이다.


한글의 진면목과 디자인 가능성 함께 알려준 캘리그래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번 한글날을 전후해 마련됐던 일련의 행사들을 보면서 한글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예전에 비해 많이 높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캘리그래피가 기여한 점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한글 서체의 발전사를 돌아보면 한동안 디지털 서체에 대한 연구에 치중돼 있었다. 그러나 최근 글꼴의 다양성과 함께 한글의 조형미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서 손으로 쓴 글씨를 탐구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른 성과들이 한글의 진면목과 새로운 가능성을 알리는 데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고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글의 진면목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한글은 막연하지만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멋있는 글자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다가 90년대 초부터 몇 번 갔던 일본 여행을 통해 붓글씨가 현대적인 디자인에 멋스럽게 쓰이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한 글자만으로도 멋을 부려 쓰고 있었는데, 그런 식이라면 우리 한글이 훨씬 가능성이 있어보였던 것이다. 우리말 중에는 꽃, 봄, 꿈 등 말도 예쁘지만 글자의 구조도 예쁜 것들이 많지 않은가? 이러한 말들을 ‘의미적 상형성’ 가진 글자로 살려내면 한글에 감성과 표정을 실어 나를 수 있다. 가령 ㄲ은 붓의 놀림에 따라 꽃 모양으로 표현이 가능하지 않은가?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의미적 상형성의 바탕이 우리 한글 자모의 제자 원리와 닿아 있다는 점이다. 천지인의 원리로 만든 모음들은 사람의 형상을 닮았다. 초성과 종성에 쓰이는 자음들은 단순한 듯하지만 붓의 놀림에 따라 자연의 요소나 사물의 모양을 담아낼 수 있다. 그래서 ‘봄’자의 경우, 초성 ㅂ은 꽃봉오리처럼, ㅗ는 사람이나 나뭇가지처럼, 종성 ㅁ은 화분처럼 표현해 봄의 느낌을 살려낼 수 있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90년대라면 한국에서 캘리그래피란 용어조차 낯선 때가 아니었나?



당시 디자인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내가 생각하는 손글씨 한글에 대한 자료가 없었다. 그래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고 98년부터 준비해서 2002년에 홈페이지를 열어 그동안의 실험작들을 내놓았다. 그런데 내가 몰랐을 뿐이지 알고 보니 ‘필묵’이라는 데에서 먼저 그런 노력들을 해오고 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완성도와 함께 자기만의 독창성 브랜드화 필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한국 캘리그래피의 개척자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아마도 몇몇 히트작들 덕분일 것이다. 특히 아직 캘리그래피에 대한 인식이 없던 때 ‘참이슬’이라는 상품이 기존의 스타일들과 다른 라벨을 달고 등장한 것이 당시로서는 기대 이상의 반향을 불러일으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그 뒤 영화포스터나 출판물 등에서 캘리그래피의 영향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데에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캘리그래퍼들의 활약도 컸다. 때마침 우리 디자인계 전반이 기존의 것들과 차별화된 디자인을 내놓고 싶어 골몰하던 시기였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더라도 한국 캘리그래피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점에 별로 이의가 없을 것 같은데… 강병인의 캘리그래피가 시쳇말로 ‘먹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굳이 찾자면 디자인 프로세스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디자이너로 일했던 경험이 광고주나 디자이너들의 요구와 시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시안작업을 광고주의 요구에 맞는 시안과 담당 디자이너의 시각을 생각한 안, 그리고 내가 제시하고 싶은 안 등 세 가지로 하는 것도 그 때문인데, 그중에서 마지막 안을 작업할 때가 가장 어렵다. 내 스스로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내놓기 위해 피를 토하듯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캘리그래피는 순수 서예와는 달리 클라이언트의 요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일이기에 아무래도 작가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표출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도와 함께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정립해나가는 일도 필요할 것 같은데….



안 그래도 효봉 여태명 선생 같은 분은 일찍부터 ‘너무 가볍게 쓰는 글씨들이 많아지고 있다’ 걱정하신 바 있다. 나 역시 그 점을 걱정하고 있고 늘 한계에 부딪히곤 하지만, 그래도 “이 작품 누가 썼지?”라는 질문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한다. ‘○○○스타일’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누군가 “사람과 많이 닮아 있는 글씨”라고 평해줄 때가 가장 기쁜 것을 보면 내가 추구하는 방향은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지금처럼 자연과 사람에 주목하며 하나하나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 ‘강병인 스타일’이라고 할 만한 것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한글 캘리그래피, 한국 타이포그래피의 새로운 모색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좀 더 애정이 가는 분야가 있다면 무엇인가?

술 상품으로 유명세를 타긴 했지만, 책을 만드는 작업을 할 때가 가장 즐겁다. 글자 수가 많은 제목을 만나면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공부도 할 수 있고 그만큼 몰입도 잘 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어느 분야든 좋은 디자인을 만나는 운이 따라줘야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고 보니 다른 분야의 히트작들도 많지만 참이슬에 이어 산사춘이나 대포, 짚동가리생주 등 일련의 주류 브랜드 작업에 계속 참여해온 점이 재미있다. 혹시 ‘캘리그래피 술통’이라는 회사의 이름과 어떤 관련이 있나?

술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유는 서로의 마음을 열게 해주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과 소통’을 합성한 의미로 술통이라 이름 지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술술 잘 통하자’라는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봄 창단된 한국캘리그래피협회는 그동안 어떤 일들을 모색해 왔나?



우리 캘리그래피계의 구심점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이론화 작업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 분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노력을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뿐만 아니라 서예계와 디자인계를 아우르는 작업, 후진양성 등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정리하는 자리를 연말쯤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지막으로,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후학들에게 ‘왜 캘리그래피인가?’라는 질문에 답한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나?

어렸을 때부터 먹을 갈고 붓글씨를 쓸 때 평화를 찾곤 했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그러한 개인적인 취향이 아니더라도 한글 캘리그래피는 조형성, 독창성, 심미성 등에서 이 시대 우리 타이포그래피가 발전할 수 있는 돌파구를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매달려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필과 지필묵은 동양문화의 원류를 몸으로 느끼게 해주고 한글에는 우리 문화 창조의 원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 정병규 선생이 했던 말처럼 한국의 디자이너라면 서예를 배우고 훈민정음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저 아름다운 글씨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삶의 희로애락을 해학적으로 담아내고자 노력하라고 권하고 싶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prev"" #1 #2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