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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행사와 모임

재미있는 수다 한판 한울전 가보셨어요?



10월 7일부터 13일까지 인사동 grau gallery에서 한울전 9.0이 열렸습니다. 사진 찍어도 된다 하여 팡팡팡 찍어왔고요.  +_+ 스크롤 내려갑니다~!

대중성; “대중과 친해지고 싶어.” 선입견; “날 어려워하지마.” 오락성; “나랑 놀자.”올바른 사용; “바르게 알아줘.” 재창조; “새롭게 태어나고 싶어.” 필요성; “난 꼭 필요한 존재야.” 현대성; “지금의 나를 찾아줘.”

한울전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한글의 현재에 대해 탐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반성하다'라는 말을 내걸고 그 동안 발전이 없었다는 것을 반성한다는 내용의 글이 붙어있었는데요, 반성한 것이라면 정말 아주 다양하고 철저하게 하셨더군요. ^^;; 무엇보다도 팸플릿이나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 한글에 대해 다양한 수다가 오가는 기획팀의 모습이 상상이 가서 보는 사람도 즐거워지는 전시였어요그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넘치는 한글들에 대한 스케치와 연구

한글은 이미 이미지로서도 우리 생활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좋다, 나쁘다, 예쁘다, 안 예쁘다'의 판단을 떠나서 우리가 움직이는 세상의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인데요, 이러한 모습들을 기록하고 분해하고 작은 단위에서 변화시켜보고 나아가서는 이를 알려보는 일까지 다양한 의도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한글이 조형미가 뛰어나고 기하학적으로 우수하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지 않으시나요말로만 들었을 때는 잘 와닿지 않는 한글의 조형미라는 것을 이렇게 한 폭에 끌어내놓은 결과물들을 보니 훨씬 더 이해하기가 쉬웠어요.

'또 다른 시선' - 민경문,이문형/단국대tw

시장길을 지나가다가 분식점이나 음식점의 매뉴를 보면 우동튀김떡볶이오뎅을 우튀떡오라고 읽게 되는 경험은 모두가 해보셨죠? 그래서 '또 다른 메뉴'라는 것이 탄생하게 될 때도 있죠. ^^; 제 친구 중 누구는 한글의 고질적인 자간과 행간의 문제!’라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누구나 공감하는 이러한 경험을 떠올릴 수 있도록 간판과 메뉴판을 모아놓은 작업물도 있었습니다.

‘나 가라고?-_-;’

'한글서체공장' - 장연지/단국대tw

요즘은 맑은 고딕이나 윤고딕많이 사용하시죠삐침과 같은 것이 없는 산세리프(sans-serif)체가 깔끔하고 멋있기는 한데요한글의 세리프체는 아직까지 바탕체 외에는 많이 사용되고 있지 않는 것 같아요바탕체와 굴림체 이외의 어떤 것이 더 가능할까요? 가가가가가가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둥 등 라는 글씨 하나를 세리프체로 작업해보면서 각 글씨가 갖는 개성이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세밀한 부분들을 다듬으면서 그 차이를 느끼고 하나의 서체를 만드는 것도 결국은 이러한 가능성을 엿보는 즐거움에서 시작하지 않을까요?

'한글 브로슈어' - 이지홍,조문선,최미영/연세대 콜로폰

디자인을 하시는 분들 중에서는 타이포그래피가 많이 발전하여 있는 영문으로 디자인 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요한글 서체 연구와 관련된 작업 중에서는 모아쓰기와 풀어쓰기 등 알파벳과 한글의 사이에서 쉽게 한글의 구조를 풀어 쓴 책자가 있었습니다텍스트를 읽지 않고 눈으로만 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차이점을 잘 풀어놓았더군요



감성 터치!

캘리그라피, 참 인기 많죠? 취미로 서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요, 손글씨는 대량 인쇄되는 활자체와 다르게 글자를 쓰는 사람의 감정이 전해진다는 강점을 갖고 있죠. 활자술의 발달로 인쇄되면서 누웠던 문자들이 유비쿼터스 시대에 와서는 다시 일어서고 있습니다. 일어난 글자들은 사람들이 만져보거나 느껴볼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한글 손글씨 교본' - 유요한,조예림/한성대 한성타이포연구회 + 이수정,정해정/원광대 붓소리

"지금 이 선을 긋는 붓은 단지 도구일 뿐이오. 붓에는 의식이 없소. 붓을 쥐고 있는 자의 욕망에 따를 뿐이오. 그런 점에서 붓은 '삶'이라 불리는 것과 닮아 있소.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인도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다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오."(…) 그랬다. 자기가 쥐고 글을 쓸 붓을 존중하다보면 자연히 글을 쓰기 위해 평상심과 품격을 갖춰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평상심은 그런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포르토벨로의 마녀>

'한글 복주머니' - 반달님/원광대 붓소리

'한글 복주머니' - 반달님/원광대 붓소리


위의 글자에서 그 느낌이 전해져 오세요규칙이나 약속이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덜덜덜과 므흣을 해석해보면 그 뜻이 서체의 느낌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재미있어요이 작업에서는 특히 인터넷에서 쓰는 썩소덜덜덜므흣뭥미오나전과 같은 감각적인 말들을 작업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요, 활자가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그 자체로 감정을 전달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는 점을 잘 캐치해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좀 예쁘고 재미있게 만들어볼까?

가장 유쾌하고 명랑했던 파트는 한글을 놀이의 소재로 삼았던 작품들이었습니다글자를 만지기 시작하면 감정을 전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재료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한 마음인 것 같아요촉감은 영감을 주는 원초적인 감각이니까요.

'한글 퍼즐하면서 놀자' - 길소담,장민주/원광대 붓소리

'한글 만지며 놀자' - 김슬기,임채형,임혜미/한성대 한성타이포연구회

'한글 퍼즐하면서 놀자' - 길소담,장민주/원광대 붓소리

'한글날에 놀자, 한글이랑 놀자' - 권윤혜,이상미/한양대 타입플레이

'한글날에 놀자, 한글이랑 놀자' - 권윤혜,이상미/한양대 타입플레이

'새김:달(月)' - 박진경,정영혜/원광대학교 붓소리

'우리말 사진 사전 프로젝트' - 김하림/중앙대 와이포


순수한글로만 단어를 바꿔보는 사진 사전 프로젝트도 재미있었어요. 골세레모니를 득점뒤풀이로, 하이파이브를 기쁨맞장구라고 하다니! 하하. 코믹하지 않으면서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던 단어는 '라이터'를 '불쌈지'로 바꾼 것이었어요. 정겨운 어감이 꽤 마음에 들던 걸요.

개인적으로는 '타이포그래피'나 '커뮤니케이션'과 같은 단어까지 고유어로 풀어써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요, 사진 사전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재미있는 사진을 곁들여 놓아 말을 '순화해야한다'기보다는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고 있는 외래어들을 한글로 바꿔생각해본다는 정도였기 때문에 유쾌하게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움직이고 만들어지는 한글 서체

'재창조 서체' - 고영석,우태희,이진욱/단국대tw


전시작품 중에서는 관객이 참여하여 함께 완성해 나가는 미디어아트와 같은 형태의 것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단국대tw에서 그러한 작품을 많이 보여주고 있었는데요, 위의 작품은 조작할 수 있는 몇 가지 옵션을 주고 그 옵션 내에서 관객이 선택을 하면 그에 따라 글꼴이 만들어져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글꼴이 바뀜에 따라서 포스터의 서체와 느낌도 바뀌게 됩니다.

이밖에는 불법다운로드와 관련하여 사람들이 금지어를 피해 어떻게 한글을 이용하고 있는지를 관객과 함께 시뮬레이션 해보며 아카이빙하는 작품도 있었습니다.




전시에는 정말 한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모았다고 해도 과연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밝고 명랑한 분위기에 위트가 넘쳤어요. 뱃지나 교육용 한글 자료 등 출판디자인, 한글 타이포그래피 등에 관심있는 분들이 가시면 유용하게 얻을 수 있는 팁도 많았던 것 같아요. 사진 속에는 담겨 있지 않았지만 전시 작품 외에 참여작가분들 개개인의 명함 디자인 역시 세련되어 눈길을 끌더군요.

전시를 보면서 한 가지 떠올렸던 점은 한국어, 한글, 표준어 등의 개념들에 대한 세밀한 구분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글이 문자로서 갖는 장점과 '한국어, 표준어, 우리나라'라고 하는 부분이 쉽게 결합되는 것 같은데요, 기존의 한울전보다는 훨씬 다양한 분야에서 자유로운 작업물들이 나왔지만 한글과 한국어, 표준어 사이의 경계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면 더 재미있는 작품들이 나올 것 같아요. 몇몇 작품들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문자로서 한글 그 자체는 억압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언어와 문화에 있어서 변화와 생성을 촉진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으니까요.

작가의 개인전을 보러 갈 때와 다르게 이렇게 특정 분야의 단체전을 보는 것은 앞으로 5년, 10년 이후에 나올 작품들을 살짝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대량으로 생산되는 판매품들이 아니라 아이디어 샘플들만 모아놓아 알짜배기를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번 한울전 치르느라 정말 고생하셨고요, 앞으로도 풍성하고 유익한 활동 부탁드립니다. ^^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1기 조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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