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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새로운 시선

광화문 네거리에는 글꽃이 핀다

숨 가쁘게 흘러가는 열띤 도시의 소음 속에서
빛을 잃어가는 모든 걸 놓치긴 아쉬워
잠깐 동안 멈춰 서서 머리 위 하늘을 봐
우리 지친 마음 조금은 쉴 수 있게 할 거야
                    
        - 대중가요 더 준(The June)의 ‘한 걸음 더’ 중에서

 
 우리는 바쁩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지요. 빡빡한 하루 일과를 모두 소화해내다 보면, 종일 하늘 한번 올려다보지 못하고 깜깜한 밤이 될 때까지  땅만 보고 일하다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반복된 일상, 그러다 문득 메마른 감성이 슬퍼질 때 가슴속으로 소리치는 외마디 비명
‘사노라면’

  더 준(The June)의 ‘한 걸음 더’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잠깐 동안 멈춰 서서 머리 위 하늘을’봤더니 어라? 도심 한복판에 글 꽃이 가득 피었습니다. 이곳은 어딜까요? 서울의 중심, 광화문 사거리입니다.


가로 20m, 세로 8m로 이뤄진 교보생명 본사 외벽에 걸린 <광화문 글판>, 이 네모난 공간 위에 누구나 읽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우리의 글이 자유롭게 뛰어놉니다. 빠른 걸음으로 걷던 사람들이 종종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조용히 미소 짓게 만드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19년째 광화문을 지나는 시민의 사랑을 받는 광화문 글판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광화문 글판은 1991년 故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의 제안으로 첫선을 보입니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종로1가 1번지 우리나라 최고 노른자위 땅에 서점(현 교보문고)을 만들겠다는 엉뚱한 발상이 오늘날 대한민국 최고 서점을 만들어 낸 것처럼, 광화문 글판도 문화 예술에 대한 순수한 애정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교훈과 직설적 표어 중심이던 초창기 광화문 글판)
자료 출처 : 교보생명 '광화문글판' 

 초창기 글판의 내용은 직설적인 교훈을 담은 격언이나 표어가 대부분이었지만 IMF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신용호 창립자는 ‘기업 홍보는 생각하지 말고 시민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글판으로 운영하자’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이에 따라 1998년 고은 시인의 <낯선 곳>이란 시의 일부인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가 글판에 걸리면서 우리 문학의 시심(詩心)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운 시어를 최초로 사용했던 '고은'시인의 '낯선 곳')   


(IMF 외환위기 이후 시민을 위안하는 내용으로 바뀐 광화문 글판)

이후 시인들이 빚어낸 감성 넘치는 글귀가 담긴 광화문 글판은, 시민과 함께 울고 웃으며 따뜻한 위로, 도전과 희망을 담아내는 훈훈한 메시지를 전하며 더욱 꽃피게 되었습니다.

 시인이 만든 언어만이 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계절마다 있는 광화문 글판 문안공모이벤트에 뽑히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습니다. 광화문 네거리에 걸리는 기쁨과 상금까지 우리 문학과 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도전해보세요.

(자유로운 생각, 도전과 희망 메시지를 담은 오늘날의 광화문 글판) 

  사람들은 세상이 자꾸 삭막해진다고 말합니다. 경쟁과 실적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이 시대의 삶은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차가운 세상을 따뜻하게 안아주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겁니다. 광화문에 네거리 글판 위에 가득 핀 글꽃처럼 마음속 감성을 꽃피우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광화문 네거리에는 글꽃이 핀다'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1기 김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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