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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새로운 시선

서울말 속에 숨겨진 사투리


어릴 적, 저희 어머니께서는 소소한 반찬거리 심부름을 시키실 때마다 행여 잊어버릴까 봐 메모지에 사올 거리를 적어 주셨었습니다. 그 중, 지금까지 참 의아했던 것이 ‘겨란 한 판’이었어요. ‘겨란’이라고? ‘계란’을 편의상 그렇게 발음한다고 치더라도, 말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을 보고선 왠지 부끄럽기까지 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머니는 '겨란‘이 ‘계란’ 또는 ‘달걀’임을 알고 계셨지만 ‘겨란’이 더 익숙하므로 그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저희 어머니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셨거든요. 아버지도 마찬가지 시구요. 저 역시 서울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저희 집안은 현재 확인되는 것으로 3대가 대대로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사람입니다.

요즘 초중고교들에서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제가 학교 다닐 때는 국어 혹은 문법 시험에 ‘표준어의 정의’를 묻는 주관식 시험이 종종 출제되곤 했습니다. 지금까지 그 의미를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학년을 거듭날수록 자주 출제되었던 문제였기 때문에 머릿속에 입력이라도 되었나 봅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 대사전에서 의하면, 표준어에 대한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 표준어 : 한 나라에서 공용어로 쓰는 규범으로서의 언어. 의사소통의 불편을 덜기 위하여 전 국민이 공통으로 쓸 공용어의 자격을 부여받은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 ≒대중말ㆍ표준말.

또한, 국립국어원 측이 발표한 바로는,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은 1933년부터 조선어학회에서 만들어 써 오던 ‘한글맞춤법통일안’을 1988년에 정부 차원에서 처음 개정한 것으로서, 그 이후로는 개정된 바가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표준어로 명시된 서울말이 사투리라니요?”라고 반문하는 이들이 많을 겁니다. 저도 표준어의 개념상 서울 사투리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표준어의 개념은 앞서 언급했듯 교양 있는 서울 사람들이 쓰는 말이지요. 대부분 사람들은 이 같은 표준어의 개념 때문에 서울 사투리가 있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처음, 저희 집 얘기를 꺼내면서 잠시 말씀드렸지만, 서울말도 몇 가지는 사투리로 분류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한 예로, 서울 사람들은 '~하구요'라는 말을 잘하는데, 이것은 전형적인 서울 사투리의 일종입니다. 서울말은 ‘오’가 ‘우’로 바뀌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미에서 ‘있고요’를 ‘있구요’로 말하는 것이지요. 즉 표준어는 '~하고요'이지만, 서울 사람들은 ‘~하구요’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있지요. ‘-했걸랑’ 같은 표현도 서울 사투리랍니다.

‘댕기다’같은 동사의 경우도 표준어에서는 ‘불이 옮아붙다’라는 뜻이 있지만, 서울 사투리로 넘어오면 ‘다니다’로 그 뜻이 바뀝니다. 이 외에도 개와집(기와집), 부주(부조), 해필(하필), 삼춘(삼촌), 가우(가위), 쨍아(잠자리), 중신(중매), 구녕(구멍), 낭구(나무), 겨란(계란) 등으로 발음하는 것이 모두 서울 사투리에 해당합니다.

서울말도 전라도나 경상도 말처럼 서울 토박이가 사용하는 방언(方言)에 불과합니다. 언어학적으로 ‘토박이’는 3대째 이상 한곳에서 거주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말한답니다. 이젠 서울 토박이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있습니다. 압축적인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라 지방에서 서울로 인구 유입이 가속하면서 서울 토박이는 퇴조하고 있다고 하네요. 어떤 이가 지방 출신이라도 그의 2세, 3세는 서울사람이 된다는 뜻이지요.

서울 방언 중 70%는 표준말에 편입됐지만, 나머지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소중한 지방 방언과 함께 조금씩 사라져가는 서울 방언을 되살리는 데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겠습니다.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1기 배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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