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글이 있는 작품

우리 노랫말이 선사하는 가슴시린 아름다움 그 네번째 - 10cm

제가 온한글 블로그에서 ‘야심차게’ 연재하는 ‘우리 노랫말이 선사하는 가슴시린 아름다움’ 시리즈 어느 새 네 번째 포스팅이 됐군요. 아직 열 번은 안 된 셈이지만 나름 뿌듯하네요. 괜시리 뿌듯한 마음에 오늘은 ‘아메~아메~아메~아메~아메리카노~’나 한 잔 마셔야겠어요. 유치하다고요? 이번 한 번만 받아주세요. 오늘 소개할 뮤지션이 바로, 짜장면 먹고 후식으로 좋다는, 여자친구와 싸우고서 바람 필 때도 좋다는 <아메리카노>의 주인공 ‘10cm’입니다. 

이들의 결성은 지금으로부터 9년전으로 올라갑니다. 펑키한 메틀 사운드를 위주로 하던 밴드 ‘해령’에서 각각 보컬과 베이스 기타로 활동하던 권정렬과 윤철종은 어찌어찌 군대를 가게 되면서 팀을 나오게 되고, 병역의 의무를 마친 후 어찌어찌 다시 뭉친 게 바로 지금의 10cm입니다. 그런데, 왜 10cm냐고요? 권정렬이 윤철종보다 10cm 작아서, 그냥 그렇게 이름을 지어버렸다고 해요. ;-]
사실 10cm가, 젬베와 통기타 한 대뿐인 어쿠스틱한 음악을 하려는 생각은 원래 아니었다고 해요. 그렇습니다. 이들은 원래 록밴드였잖아요!!! 하지만, (이들 말로는)멤버 구하기도 귀찮고 해서 그냥 둘이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해요. 거리 공연도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마땅한 연습실이 없어 놀이터 같은 곳에서 연습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나요? 

세간에는 <아메리카노>로 유명해지기는 했지만, 이들의 히트곡은 이것 뿐만은 아닙니다. 이들의 첫 EP에 실린 다섯 곡 모두 꽤 좋았지만, <눈이 오네>나 <죽겠네> 같은 사람들은 제법 많은 사람들이 내려받았다고 해요. 한 남자의 첫 성 경험을 그린 듯 한 야시시한 가사의 <새벽4시>같은 노래도 인기가 있었죠. 컴필레이션 ‘Life’라는 컴필레이션에 수록된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같은 노래는 음원 차트 상위권에 한참 랭크돼 있었어요. 

10cm 음악의 매력은, ‘담백한 기타와 젬베에 실린 아름다운 보컬’ 뿐만이 아닙니다. 이들의 가사는 완전 재치 덩어리에, 가끔은, 초등학교 시절 훔쳐보던 ‘선데이 서울’급의 알궃은 내용들을 능청스럽게 담고 있어요. 앞서 말씀드린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가사를 한 번 읽어 보실래요?

-1절 생략-
혹시나 내가 못된 생각 널 갖기 위한 시커먼 마음
의심이 된다면 저 의자에 나를 묶어도 좋아
창밖을 봐요 비가 와요 지금 집에 가긴 틀렸어요
버스도 끊기고 여기까지 택시도 안와요

오늘 밤은 혼자 있기가 무서워요
잠들 때까진 머릿결을 만져줘요
믿어줘요 나원래 이런사람 아냐 그냥 오늘밤만 내게안겨서
불러 주는 자장노랠 들을래 제발 오늘 밤만 가지 말아요

어떠세요? 남자와 여자가 한 공간에서 꿈꾸는 짓궂은 ‘동상이몽’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나요? ‘나 이런 사람 아냐. 의심의 된다면 저 의자에 나를 묶으라’면서도, ‘이제 비도 오고, 버스 택시도 없으니 집에 가긴 글렀다’며 너스레를 떠는 남자의 속마음이 생각나 빙긋 웃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2월 15일 공개한 그들의 정규 1집 ‘1.0’도, 좋아진 녹음 상태 만큼 가사도 끝내줍니다. 이번엔 10cm가 1집에서 ‘미는 곡’인 <그게 아니고>를 한 번 읽어보죠. 

-1절 생략-
책상 서랍을 비우다 니가 먹던 감기약을 보곤 
환절기마다 아프던 니가 걱정돼서 운 게 아니고 
선물 받았던 목도리 말라빠진 어깨에 두르고 
늦은 밤 내내 못 자고 술이나 마시며 운 게 아니고

보일러가 고장 나서 울지  

어두운 밤 골목길을 혼자 털레털레 오르다 
지나가는 네 생각에 우네

그녀와 헤어진 후에 생각나는 그녀의 흔적들에 운 게 아니라, ‘나는 보일러가 고장나서 우는거야’라고 변명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솔직한 심정을 밝히는 그들의 재치가 부럽기만 합니다. 

지난 2월 15일 공개한 그들의 정규 1집 ‘1.0’은 초판 1만 장을 너끈히 팔아치우고 벌써 다시 1만장을 찍었다고 해요. 예전부터 좋아하던 록 밴드도 하고 싶다는 이들... 이들이 ‘떼돈을 벌겠다’고 음악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요... 속으로는 이들이 돈벼락을 맞을 만큼 성공해 하고 싶은 음악을 원 없이 할 수 있는 환경이 얼른 왔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응원해 주세요. 

덧> 단 하나 아쉬운 점... 이들이 공식적으로 자기들을 ‘십센치’라고 불러달라고 했다는 게 아주 조금 씁쓸하네요. 사실, ‘십센치미터’ 보다는 ‘십센치’가 부르기 편하기는 하지만요. :-]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2기 이정민

ⓒ 온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