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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서체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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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기업들은 전용서체 개발에 그야말로 ‘꽂혀있다’. 

 신문이나 잡지 등 특정 인쇄매체를 위해 명료하게 식별이 되는 글자형태로 덜 피로하게 읽을 수 있는 전용서체 개발의 역사는 100여 년을 훌쩍 넘겼지만 기업이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전용서체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한다.

 본래의 목적은 로만 알파벳을 문자로 사용하되 언어가 다른 서구의 국가들을 대상으로, 다국적 기업이 동일한 광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하나의 서체를 지정하거나 개발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는데, 이제는 브랜드의 특성과 비전을 글꼴로 표현하여 장기적으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선진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도구로 인식되고 있다. 

 심벌이나 로고가 고정적인 ‘얼굴’에 해당한다면 그 얼굴이 대화를 거는 ‘말’을 보여주는 것이 전용서체이고, 이는 그 기업이나 브랜드를 살아있는 것으로 느끼게 해준다. 이렇듯 전용서체를 개발하는 것은 곧 성공적인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인 셈이다.


서울시가 7월 15일, 시 전용서체를 공표하였다.
 

 기업이 전용서체를 통해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생생한 메시지에 실어 장기적으로 이미지를 공고히 구축하듯 서울시 또한 시가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이 응축된 서체를 지속적으로 활용하여 시민에게 시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것이다. 

 민간 기업이 아닌 행정단체, 시가 선진행정을 위해 고도의 시각 커뮤니케이션 기법인 전용서체를 개발했다는 것 자체가 주목받을 만하다. 서체의 개발은 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어느 유명 건축가의 건축물, 유명 조각가의 작품 등 명사에 비유할 수 있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동사에 비유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이라서 더욱 흥미롭다.
 서체는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에 개발 자체보다 활용에 그 가치가 있다.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아가느냐에 따라 디자인 행정의 보물이 될 수도, 디자인 전시행정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

 서울시 서체는 ‘열린 마음’, ‘어울림’, ‘여백의 미’ 등의 키워드를 글자 모양에 담아내는 방향으로 개발됐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서체는 명조 ‘서울한강’체 고딕 ‘서울남산’체 하나의 패밀리를 이룬다. 



서울서체의 첫인상은 간결함과 단아함이다.
 

 빈번히 등장하는 닿자인 이응은 정원에 가깝고, 명조체라 하더라도 가로획은 수평에 세로획은 수직에 가깝다. 기하학적 간결함은 시대를 타지 않는 현대적 미감을 보여준다. 붓글씨의 성격과는 멀어진 현대적 명조체이지만 둥근 돌기나 완만한 맺음, 히읗이나 치읓에 표현된 굵기의 변화 등은 단순함을 단아함으로 승화시킨다.

 네모틀을 유지하면서도 민글자와 받침글자 간의 높이 차이가 있고 기존 서체에 비해 닿자의 크기가 작은 편이어서 서울서체는 여백을 가진다. ‘열린 마음’을 표현하고자 고안된 히읗과 피읖의 열린 구조는 안과 밖의 공간을 연결하여 더욱 지면의 흰 공간을 드러내는 효과를 준다.
 이렇듯 가볍고 밝은 시각적 특성을 보여주는 서울시 서체 패밀리는 글자 형태와 구조에 있어서 명조체와 고딕체의 연관성이 높아 조화를 이루는 반면 서로간의 간극은 가까워 보인다. 명조체는 기존의 명조에 비해 간결하고 직선적이며 고딕체는 명조체와 형태, 구조 등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고딕에 비해서 부드러운 인상을 가지게 되었다.

 본문용 서체로서의 서울서체는 기존의 명조체, 고딕체와 구별되는데 서울명조체는 로만 서체 패밀리가 가지는 세미세리프(semi-serif)적인 특성을, 서울고딕체는 세리프적 특성을 산세리프의 구조에 흡수하여 보여주는 휴머니스트 산세리프(Humanist sans serif)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명조와 고딕이라는 본문용 한글 서체의 발달된 두 서체군 사이를 짚어주는 서체들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서울서체는 내부문서, 공공장소의 외부사인, 모바일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될 것이라 한다. 시민들은 거리에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공공기관 등에서 마주치게 되는 정보디자인과 사인 등을 통해서 서울 서체를 만나게 될 것이다. 

 도시경쟁력이 높은 서구의 도시들을 방문할 때 쾌적하고 선진적이라고 느끼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입국의 관문인 공항이나 이동시 만나게 되는 양질의 시각정보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장소와 종류의 정보디자인물을 꿰뚫어 통일성 있는 목소리를 만드는 주된 역할자는 곧 그 도시가 공공디자인에 사용하고 있는 서체인 것이다.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서체를 적용한 외부 사인의 시안들은, 그동안 여러 서체의 혼재로 일관된 목소리가 부재했던 서울시의 사인들이 하나의 서체 패밀리로 정리되는 쾌적한 환경을 기대하게 한다.

 서구에서는 기업이나 대중매체를 위한 전용서체가 만들어질 때 기간의 차이는 있지만 늦어도 1년후에는 대중에게 사용이 공개되어 왔다. 디자이너들이나 서체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에게 새로운 서체는 호기심의 대상이다. 특히 서울시를 대표하는 서체의 탄생은 적지 않게 흥분되는 사건이다.
 바람이 있다면 서울서체가 좋은 형태와 기능으로 디자이너들이 선호하는 서체 목록에 올라갈 수 있으면 하는 것이다. 개별 글자나 몇 개의 글자 모임으로 본 서울서체는 분명히 형태적 새로움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능력 있는 서체는 매력적이고 가독성 있는 글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서울서체의 제작진은 직접 서체를 활용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끝까지 귀기울이며 사용자들의 사랑을 받는 서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해 주길 바란다. 서울서체가 전문가에게나 일반인에게 애용되어 우리의 문자생활과 문화를 보다 풍요롭게 하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또한 서울시는 현재 의도하는 다양한 영역들에 서울서체를 적용함에 있어서 각 매체의 특성에 따라 전문가를 참여시켜 우수한 디자인과 사용 가이드라인 작업을 하는 등 보다 수준 높은 도시환경의 구축에 힘써주었으면 한다.

 20세기 후반기의 서울의 개발 방향이 자동차와 차도를 중심으로 하였다면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보행자와 인도로 그 중심을 옮기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로부터 더 나아가 시민들이 보다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도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도시로 발전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진행되고 있는 모든 디자인 프로젝트들이 사용자인 시민과 보존해야 할 환경을 가장 중심에 두고 개발되길 바란다. 이러한 때에 서울서체 또한 많은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것이 되길 바라고, 행정당국이 시민에게 공유해야 할 가치와 과정들을 여러 매체와 형태로 늘 가깝게 전달하는 적극적 소통의 목소리가 되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서울시 서체의 탄생을 축하하며 환영한다.


서울한강체와 서울남산체는 '디자인서울' 사이트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 윤디자인연구소 온한글